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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진헤이
이유영은 홧김에 손을 번쩍 들고 남자의 귀뺨을 때렸다.

남자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잡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오늘 아침부터 이상했어. 대체 무슨 일인지 이유는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강이한은 그제야 이유영이 단지 기분이 나쁜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줄곧 온화하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얌전한 현모양처였다. 정말 화가 나는 순간이 와도 그녀는 혼자 삭히고 오히려 먼저 그에게 다가와 줄 줄 아는 여자였다.

이유영은 자신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곧 있으면 법원 직원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야. 일단 서류부터 제출하고 다시 얘기하자.”

“이유영!”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유영은 매몰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가슴을 밀쳤다. 하지만 남자는 태산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강이한은 운전 기사에게 곧장 집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

어차피 기분이 엉망이라 돌아가서 회의를 계속 진행하기도 무리였다.

돌아가는 길, 운전기사의 등 뒤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집에 도착한 뒤, 이유영과 강이한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제 얘기해 봐.”

“더 얘기할 것도 없어. 말하긴 뭘 말해?”

반년 사이 비서와 바람이 난 사실을 온 청하시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작 그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해명조차 해주지 않았다.

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이유영을 잡아먹을 것처럼 훑어보았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남자의 표정이 점점 더 험하게 일그러졌다.

“이유영, 세강 일가에게 이혼이란 존재할 수 없어. 사별이면 몰라도.”

이유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는 착잡한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지난 생에 나를 불에 태워 죽인 거니?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첫 이혼이면 되겠네. 아니면 나가서 죽거나.”

강이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이유영을 내려다보았다.

왕의 기질을 타고난 이 남자는 화가 날 때면 항상 이런 식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유영은 두려움 없는 시선으로 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 모습이 강이한을 미치게 만들었다.

결국 강이한이 먼저 뒤돌아섰다.

얘기를 계속하다가는 이 여자를 목 졸라 죽여버릴 것 같았다.

이유영은 한때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자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강이한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당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 잘 고민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 이상한 말 할 거면 연락하지 마.”

회의실에서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임원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이 여자의 저 요망한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쉽게 이혼을 얘기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반년 동안 밖에서 소란스러울 때도 묵묵히 참았던 그녀였다.

이유영은 그의 등 뒤에 대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 이름이 한지음이라고 했나? 당신 이대로 나가면 오후에 은지랑 같이 그 여자 찾아갈 거야.”

그 말은 강이한의 참았던 분노를 건드렸다.

그는 뒤돌아서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유영은 팔짱을 끼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안에 이혼을 처리하기엔 이미 그른 것 같았다.

하지만 한지음은 내일 분명 납치를 당할 것이다. 이혼이 불가능하다면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이한을 이 집에 묶어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의심은 그녀에게 쏠릴 것이다.

“참 할 말 없게 만드네.”

강이한의 으르렁거림에 이유영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피차일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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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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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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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한의 가슴은 칼날에 도려내듯 아려왔다.영원히 기다릴 수 없는 이를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둬야 하는 고통을, 이제야 강이한은 깨달았다.한때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는 비극이었다.이유영의 모든 기다림을 강이한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던가!그렇기에 지금, 이유영의 냉담함을 견뎌내는 고통은 그만큼 절망스러웠다.“이제 그만 울어, 응?”“엄마가 보고 싶어요.”작은 아이는 울먹이며 강이한을 바라보았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강이한은 눈가에 맺힌 씁쓸함과 고통을 감추려는 듯 눈을 감았다.강이한 역시도 이유영이 보고 싶었다.우천시를 떠난 후, 그는 이유영에 대한 생각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3개월은 많은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서주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대부분 마무리되었다.그 일들은 서주와 파리 엔데스 가문 전체를 뒤흔들었다. 진실을 아는 이는 정국진뿐이었고 나머지는 강이한이 미쳤다고 여겼다.강이한은 다시 파리에 오게 되었다.강이한의 방문에 임소미는 여전히 좋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태도와 분위기에서 분명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임소미는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는 위층에 있어.”임소미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지난번처럼 아이를 보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고맙습니다.”“...”강이한이 다시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고 임소미는 이것이 아이를 만나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에 더욱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이유영은 우천시에 머물 날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강이한에게도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며칠 동안, 모두가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염 선생이 이유영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포기할 수가 없었기에 마지막 며칠이라도 모두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임소미 역시 알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이 여전히 호전되지 않는다면, 오늘 강이한이 아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확실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8화

    강이한은 아이의 손등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착하게 있어야 해.”“아빠, 엄마 찾으러 가는 거야?”“...”아빠, 엄마...그 두 단어가 온유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에 강이한의 가슴은 더욱 답답하게 조여왔다. 그는 온유의 아빠였고 이유영은 온유의 마음속에서 엄마였다.월이라는 존재만 없었다면 어쩌면 이유영이 온유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까?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과거와 현재의 악연, 그리고 연서까지... 이 모든 것이 쌓인 이상, 이유영이 온유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온유야.”강이한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속의 답답함을 억눌렀다.온유는 멍한 눈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아빠?”“엄마는 잊어.”“...”아이의 눈에서 순간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강이한의 눌러 두었던 아픔이 다시 치밀어 올라 목이 메었고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다.“엄마는... 잊어, 응?”이유영은 엄마가 아니었고 이제는 영원히 엄마가 될 수 없었다.강이한은 온유가 가족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다.“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아요?”“...”“엄마는 동생만 원하는 거죠?”작은 아이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고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강이한은 알고 있었다.온유는 태어난 이후로 한지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는데 그것은 박연준의 계략 때문이었다.온유에게 엄마는 항상 이유영이었다.박연준의 가장 잔혹한 행동은 온유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건데, 하지만 강이한은 박연준이 온유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박연준이 온유를 보았다면 아마도...돌이켜보면 박연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강이한이 그에게 저지른 잘못도 작지 않았다.“잊어, 응? “이 아이가 이유영을 잊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더 이상 기다릴 수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항상 고통이 뒤따랐다.과거, 한지음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 때문에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7화

    이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이한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일이 이 지경까지 오자, 늘 강이한 곁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이정과 신시욱 모두 한지음이 강이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한지음이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면서도 강이한은 단 한 번도 각막을 기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유영의 각막을 기증하겠다고 말했지만 모두 그가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수술실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 기간 동안 수많은 일이 벌어졌고 혼란 속에서 누구도 강이한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특히 강이한이 직접 이유영을 감옥에 보냈을 때, 그들은 한지음이야말로 강이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하지만 이제야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분명해졌다.우천시에서 이유영은 침착하고 태연했으며 한지음처럼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강이한 역시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결심을 굳혔다. 만약 염 선생의 약으로 회복이 되지 않을 경우, 이유영을 위해 본인이 수술하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웠다.“이유영 씨는...”생각에 잠긴 이정은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 결국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뱉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밖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온유 아가씨와 오셨습니다.”“...”온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이정의 가슴은 더욱 아프게 조여왔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험난했던 과거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 그날 병원에서 이유영이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강이한이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연서의 존재마저도 온유와 월이의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서는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었다.“들어오라고 해.”강이한은 손에 든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썹에는 떨쳐낼 수 없는 긴장감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6화

    “반드시 확인해야 해요.”현우의 불확실한 대답에 소은지의 답답했던 가슴이 순간 목까지 차올랐다.지금의 전기봉은 비록 인장만큼 중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아직 핵심 인물임은 분명했기에 이런 상황에서 실수는 절대 용납될 수 없었다.현우는 더욱 깊은 눈빛으로 소은지를 바라봤다. 소은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었고 소은지는 강렬한 현우의 시선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윙윙윙.”소은지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현우의 휴대전화가 진동했고 현우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현우는 굳은 얼굴로 일어섰고 긴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더욱 날카롭고 위엄 있어 보였다.그 기세에 소은지의 마음도 거세게 요동쳤다.“알았어.”현우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현우의 시선은 소은지에게로 향했고 눈빛은 한층 더 깊어졌다.“잠깐 나갔다 올게요.”“저한테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어요.”소은지는 어색하게 말했다.최근 몇 달 동안 늘 바빴던 현우이기에 굳이 어디 가는지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소은지를 향해 말했다.“그 사람, 시험하려 하지 마요.”현우는 지금 소은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엔데스 회장이 돌아가기 전, 현우는 항상 본가에 머물렀지만 소은지는 계속해서 엔데스 명우와 대립했다.하지만 지금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엔데스 가문이 중요한 시기를 맞게 된 지금, 소은지가 예전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엔데스 명우의 한계를 건드릴 것이다.설선비 사건이 채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설유나마저 목숨을 잃었다.엔데스 명우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소은지에게 돌렸고 용서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제가 알아서 할게요.”“...”소은지의 말에 현우의 미간은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소은지가 돌아서서 떠나려고 할 때, 멀리서 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5화

    정국진과 임소미는 부모로서 이유영이 강이한과 박연준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 누구도 강이한이 이유영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런 선택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이유영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지금 그녀는 우천시에 있었고 염 선생님의 약이 그녀에게 효과가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유영은 어떤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이에 그들은 마음을 조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유영에게 알리지 마세요!” 임소미는 잠깐의 고민을 거친 후 정국진에게 말했다.“당신 지금?”“그건 그 사람이 유영이에게 빚진 것이에요!”정국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임소미가 이 문제에 대해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맞는 말이다.그것은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빚진 것이기 때문에 이제 어떤 고통을 겪든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비록 독한 마음을 먹고 그렇게 말했지만 임소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퍼지고 있었다.이유영과 강이한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복잡했다.이유영이 강이한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스스로 어둠 속에 뛰어드는 것을 보았을 때 이유영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괴로움을 느꼈다....소은지도 그 뉴스를 보았다.이유영과 박연준이 혼인 신고를 마쳤다는 기사를 본 순간 그녀는 이유영이 머지않아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방에 들어올 때 마침 소은지가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모습을 본 엔데스 현우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가 돌아온 걸 보고 품속의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유영이와 박연준 씨가 결혼했대요.”이 말을 하는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엔데스 현우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엔데스 현우의 표정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살펴보았다.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엔데스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그것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4화

    “부러워?”옆에 있는 남자가 불만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그래, 부러워. 내가 저 여자였으면 좋겠어. 저 남자 정말 잘생겼어!”“알았어. 그만 입 다물어.”남자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이유영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 미소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오직 박연준뿐이었다.혼인 신고 절차는 복잡했지만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서류에 사인할 때 박연준이 이유영 대신 사인을 했다. 원칙상 이러면 안 되지만 이유영이 시각장애인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잘생긴 남자가 시각장애인과 결혼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당연히 축복할 만한 일이었다.시청에서 나온 박연준는 두 사람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문기원에게 건넸다.“얼른 가봐.” 박연준의 목소리는 깊고 무게가 있었다. 문기원은 박연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비록 아직 3일이 남아있지만 박연준은 이유영의 눈이 더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곧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기에 돌아가기 전에 그들을 막는 장애물은 모두 제거해야 했다.“유영아, 결혼 축하해.” 박연준이 이유영의 귀에 가볍게 입맞춤하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유영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이유영이 대답했다.“결혼 축하해!”그 다섯 글자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고 예리한 비수처럼 박연준의 가슴에 박혔다. 가슴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지만 박연준은 그 고통과 씁쓸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함께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그는 이를 악 물고 모든 어려움을 견뎌낼 것이다.그 누구도 미래에 이유영이 박연준와 강이한 사이에서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킬지 몰랐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의 눈이 다시 회복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이유영이 눈을 회복한 후 무엇을 할지는 모르지만 박연준와 강이한은 반드시 그녀가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다....박연준은 이미 현실을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3화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박연준은 더없이 고통스러웠다. 그의 곁에 있는 이유영은 남자의 호흡이 아주 거칠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가늠할 수가 있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유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어때? 무슨 느낌이야? 눈이 좀 보여?”박연준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 묻어났지만 이유영은 여느 때처럼 단호하게 답했다.“아니.”또다시 같은 대답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안 얼마나 반복된 질문이고 얼마나 반복된 대답인지도 모른다.그 순간 그녀는 박연준의 숨결이 한층 더 날카롭게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그건 단순한 긴장감이 아니라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필살 적으로 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그 감정은 너무나도 복잡했다.박연준이 도대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느낄 수 있었다.마침 식사를 마친 뒤, 박연준은 서재에서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전화를 마치고 서재에서 나오는 박연준의 표정이 많이 굳어져 있었다.“같이 갈 곳이 있어.”박연준이 깊이 한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잔뜩 긴장한 것 같은 남자와는 달리 이유영은 무덤덤한 말투로 물었다.“어딜 가려는 건데?”“시청.”이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우지와 우현은 숨을 죽인 채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풉!”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에서 무궁무진한 조소가 느껴졌다.“네가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이번에는 누구도 이용하지 않을 테니까 마음 놓아도 돼.”그의 말에 이유영은 여전히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그래?”그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박연준은 가슴을 찌르는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2화

    최근 들어 무엇 때문인지 통화를 할 때마다 임소미가 자꾸 강이한을 입에 올렸기에 이유영은 매번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렸다.그 남자는 그녀에게 있어 마치 금기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친어머니인 임소미가 이야기해도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의 감정이 심하게 요동쳤다.전화기 너머의 임소미도 그런 변화를 감지한 듯 더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다른 일 없으면 저 먼저 끊을게요.”“그래, 몸조심해.”“알겠어요.”이유영은 임소미가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눈치챌까 두려워 서둘리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혼자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이유영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며칠 전 여진우로부터 전화가 와서 강이한이 파리로 왔기에 정씨 가문이 그를 철저히 경계하고 있으니 월이를 데려갈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유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그 남자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월이를 보러 간단 말이야?’...저녁때가 되자 박연준이 돌아왔다.그가 염 선생님을 만나고 온 이후로 아무리 바빠도 거의 모든 식사를 이유영과 함께했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한순간이라도 이유영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사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박연준은 고집을 세우며 끝까지 버티려 하고 있다.우지가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약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아가씨, 약입니다.”이유영은 말없이 그녀 앞에 놓인 약 그릇을 집어 들더니 박연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들이켰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설탕과 함께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빈 그릇이 탁자 위에 세기 내리박혔다. 맑은소리가 울려 퍼지며 비수처럼 박연준의 가슴 한가운데를 깊숙이 찔렀다.“저녁은 됐어.”사실 번마다 이렇게 많은 약을 마시고 나면 이유영은 더는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항상 밥을 먹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박연준도 오늘만큼은 아무 말 없이 보내주었다.우지는 조심스레 이유영을 씻기고 그녀를 부축해서 침대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91화

    박연준은 강이한처럼 이유영이 파리 쪽과 연락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령 연락된다고 하더라도 이유영은 우지에게 지금 그녀의 상황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현재 엔데스 가문과 서주 쪽은 이미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국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이유영은 자신의 가족들이 그녀를 너무 걱정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을 했다.그녀는 박연준이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연준이 또다시 자신을 이용하려 든다면 그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과거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얼음처럼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이때 임소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통화 내내 임소미는 이유영을 걱정하는 말뿐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요즘 느낌이 좀 와요.”“정말이야? 이젠 보여?”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임소미의 목소리는 잔뜩 긴장해 있었고 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저도 보였으면 좋겠어요.’사실,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순간부터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 이젠 다시 빛을 되찾는 것이 사치스러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대체 언제부터 광명을 되찾으려 하는 마음조차 사치가 되어버렸을까?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답답함이 밀려오며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이 온몸을 옭아맸다.“엄마, 곧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이유영은 그저 이런 말로 임소미를 안심시키는 것 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우천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는 언제나 온몸에 날을 세우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도 몰랐다.깜깜한 밤마다 이유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필사적으로 빛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이 어둠 속에서도 뭔가를 볼 수 있다면 언젠가 다시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틀렸다. 결국은 다시 한번 절망할 뿐이었다. 빛을 되찾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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