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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진헤이
이유영은 홧김에 손을 번쩍 들고 남자의 귀뺨을 때렸다.

남자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잡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오늘 아침부터 이상했어. 대체 무슨 일인지 이유는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강이한은 그제야 이유영이 단지 기분이 나쁜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줄곧 온화하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얌전한 현모양처였다. 정말 화가 나는 순간이 와도 그녀는 혼자 삭히고 오히려 먼저 그에게 다가와 줄 줄 아는 여자였다.

이유영은 자신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곧 있으면 법원 직원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야. 일단 서류부터 제출하고 다시 얘기하자.”

“이유영!”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유영은 매몰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가슴을 밀쳤다. 하지만 남자는 태산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강이한은 운전 기사에게 곧장 집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

어차피 기분이 엉망이라 돌아가서 회의를 계속 진행하기도 무리였다.

돌아가는 길, 운전기사의 등 뒤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집에 도착한 뒤, 이유영과 강이한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제 얘기해 봐.”

“더 얘기할 것도 없어. 말하긴 뭘 말해?”

반년 사이 비서와 바람이 난 사실을 온 청하시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작 그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해명조차 해주지 않았다.

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이유영을 잡아먹을 것처럼 훑어보았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남자의 표정이 점점 더 험하게 일그러졌다.

“이유영, 세강 일가에게 이혼이란 존재할 수 없어. 사별이면 몰라도.”

이유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는 착잡한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지난 생에 나를 불에 태워 죽인 거니?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첫 이혼이면 되겠네. 아니면 나가서 죽거나.”

강이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이유영을 내려다보았다.

왕의 기질을 타고난 이 남자는 화가 날 때면 항상 이런 식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유영은 두려움 없는 시선으로 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 모습이 강이한을 미치게 만들었다.

결국 강이한이 먼저 뒤돌아섰다.

얘기를 계속하다가는 이 여자를 목 졸라 죽여버릴 것 같았다.

이유영은 한때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자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강이한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당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 잘 고민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 이상한 말 할 거면 연락하지 마.”

회의실에서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임원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이 여자의 저 요망한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쉽게 이혼을 얘기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반년 동안 밖에서 소란스러울 때도 묵묵히 참았던 그녀였다.

이유영은 그의 등 뒤에 대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 이름이 한지음이라고 했나? 당신 이대로 나가면 오후에 은지랑 같이 그 여자 찾아갈 거야.”

그 말은 강이한의 참았던 분노를 건드렸다.

그는 뒤돌아서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유영은 팔짱을 끼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안에 이혼을 처리하기엔 이미 그른 것 같았다.

하지만 한지음은 내일 분명 납치를 당할 것이다. 이혼이 불가능하다면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이한을 이 집에 묶어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의심은 그녀에게 쏠릴 것이다.

“참 할 말 없게 만드네.”

강이한의 으르렁거림에 이유영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피차일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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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숙은 울먹이며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강이한의 숙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도와준다니 믿기지 않았다.“정말, 도와줄 거야?”정말 도와줄까?예전에 강이한과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그녀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박연준이 정말 도와줄 수 있을까?박연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왜 날 도와주는 건데?”진영숙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처럼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강이한이 서주에서 모든 것을 박연준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강이한이 실종되기 전 서주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다.각 가문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도무지 상황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 혼란의 중심에는 강이한이 있었다.하지만 서주를 장악하려던 강이한이 갑자기 사라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리고 모든 것이 어떻게 박연준에게 넘어간 걸까?“그냥 기다리세요. 곧 소식이 올 겁니다.”박연준은 진영숙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남겼다.진영숙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기다려본 사람만이 안다.기약 없이 떠나버린 사람을 찾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소식을 기다리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이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보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그 기다림의 끝에 남은 것은 늘 절망뿐이었다.하지만 지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칠 동안 미친 듯이 강이한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끊임없이 실패했다.그렇다면 이제 박연준을 믿어야 할까?그를, 정말 믿을 수 있을까?청하시에 있을 때, 박연준은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자신을 돕겠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이유영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한 뒤, 바로 백산 별장으로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8화

    결국, 그들의 싸움에서 박연준이 이겼다.그렇게 해서 그는 이유영 곁에 남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박연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과연 이기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사랑에는 승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네 마음속에서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야?”“그래.”박연준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이유영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만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특히 진영숙에 대한 그의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박연준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박연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그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그런 그를 두고 이유영이 다시 돌아서려던 순간 박연준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유영아, 네가 오랫동안 쌓여온 게 많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면 안 돼.”그녀는 강이한의 어머니다. 그리고 강이한은 이유영을 위해 어떤 일까지 했던가?진영숙의 말처럼 지금 진영숙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흥!”이해할 수 없는 강이한의 말에 이유영은 실소를 터뜨렸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박연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그럼, 그 사람들은 날 함부로 대해도 됐다는 거야?”“하지만 모든 걸 잃은 사람이야.”“그건 당연한 결과야.”“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박연준의 목소리가 더욱 강하게 울렸고 이유영은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말, 오늘만 몇 번째인가? 하지만 박연준이 몇 번을 강조하던 이유영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인 원한이었다. 결혼생활 3년 동안 진영숙 곁에서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삼켜야 했는지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러나 그 억울함 속에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다.이미 갈대로 간 지금 이 상황에서 다시 감정을 억누르는 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이유영이 과거에 참고 견딘 만큼 그녀는 지금 냉정하고 차갑기만 했다.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단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7화

    진영숙은 이렇게까지 일이 꼬일 줄은 몰랐다. 강이한이 실종되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강이한은 대체 무엇을 견뎌낸 걸까?이미 평생 겪을 고통은 다 겪었다고 생각한 진영숙은 자신의 아들도 그런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녀는 참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남편은 오래전에 그녀의 세상에서 사라졌고 이제 아들마저 실종되었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하지만 그들에서 그녀는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왜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도 그녀만 몰랐을까?아무도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는 애초에 그들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였던 걸까?“아무도 없는 게 당연하죠.”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진영숙이 고개를 들었을 때, 이유영은 이미 등을 돌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문 앞에 다다른 순간, 이유영의 마지막 한마디가 허공을 가르며 날카롭게 꽂혔다.“저도 어딨는지 몰라요.”그 말을 들은 진영숙은 모든 힘이 빠져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눈동자는 텅 빈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당연하다고?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당연하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그저 자신의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랐을 뿐인데, 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그리고 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의 행방을 모르는 걸까?이유영조차 강이한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자 진영숙의 세상은 산산조각이 났다.진영숙은 온몸이 떨렸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절망이 그녀를 한없이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과거, 그녀가 이유영에게 얼마나 깊은 절망을 안겨주었던가. 지금 그 절망이 똑같이 되돌아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심지어 남편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지금 눈앞의 이유영을 마주 보며 그녀는 처음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가슴이 너무 아팠다.“왜... 왜?”진영숙은 힘없이 중얼거렸다.눈동자는 생기를 잃었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6화

    결혼 3년 차인데도 아이가 없다며 밖에서 사람들이 함부로 떠들어대는 악담이나 독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다만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려고 의사와 짜고 이유영의 약을 바꿔치기한 사실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다.그 분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이유영이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아이를 원해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친할머니 손에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 이유영은 진영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그때부터 이유영은 더 이상 진영숙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강이한을 위해 참아왔던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강씨 가문 저택을 방문하는 이유는 오직 강이한의 체면 하나 때문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진영숙이 무릎 꿇고 한 사과는 누구를 위한 속죄였을까? 뱃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유영의 아이를 위한 속죄라면 백 번 꿇어 마땅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이유영도 알고 있었다.진영숙은 후회를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 분명했다.진영숙은 눈물을 쏟으며 땅에 엎드린 채 간절히 말했다.“유영아, 넌 우리 애가 어디 있는지 알잖아, 그렇지?”“...”“제발 알려줘. 어디 있는지만 알고 있을게.”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하게 떨렸다.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끝내 강이한을 찾지 못하자 유일하게 그를 알고 있을 사람으로 이유영을 떠올렸다.오랜 세월 함께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자신만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을 함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결국 이런 파국을 맞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지금 이 상황까지 온 마당에 내가 그 사람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이유영이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 말에 진영숙의 온몸이 떨렸다.이유영이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강이한이 어디서 뭐 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지금, 이유영도 강이한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게 뻔했다.진영숙의 가슴이 조여 오는 듯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5화

    순간, 이유영은 홱 돌아서며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때 뒤에서 무릎이 대리석 바닥에 세게 부딪히는 묵직한 '쿵' 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영아!”이유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온몸이 떨리고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며 주먹을 꽉 쥔 손등 위로 힘줄이 솟아올랐다.그 사람을 향한 혐오, 그보다 더 깊은 증오를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박연준과 강이한을 향한 증오일지도 모른다.다만 확실한 건, 그 감정이 이미 그녀의 핏속 깊숙이 스며들었고 영혼에까지 뿌리내렸다는 것이었다.한참을 그대로 서 있던 이유영은 간신히 가슴속의 분노를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위험할 만큼 차갑고도 날카로웠다.“네가 데려온 거야?”박연준의 옆엔 진영숙이 서 있었다.박연준은 그저 이유영의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와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야!”진영숙의 떨리는 목소리로 이유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과거 이유영이 어떻게 백산 별장을 떠났고 왜 진영숙에게 그렇게 분노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진영숙은 자신을 보자마자 돌아서던 이유영의 모습에서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자존심이 보았다.어쩌면 처음부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그래서였을까? 강이한 곁에 머무는 몇 년 동안,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이유영은 단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사람들은 이유영을 순종적이고 시키는 일을 묵묵히 따르는 며느리로 알고 있었다.강씨 가문 저택에서 연회가 열릴 때마다 와서 도왔고 다른 재벌가 며느리들과 달리 까다롭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부엌일까지 손을 보탰다.그러나 진영숙은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그렇게 했던 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오직 강이한의 체면을 위해서였다는 것을.처음부터 둘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유영은 그녀를 점점 무시하기 시작하더니 강이한이 없는 날이면 저택에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순응적인 듯했지만 그 안에는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강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4화

    하지만 이유영이 다치는 건 원치 않았다.박연준은 변했다. 완전히 변해버렸다.더 이상 강이한을 계략하던 광기 넘치던 박연준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완전히 흔들려 버렸다.얼음처럼 굳어 있던 그의 심장을 이유영이 녹여버린 것이다.“흥!”문기원의 말에 이유영은 냉소를 터뜨렸다.의지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연서와 거의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문기원은 이유영의 반응을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너무도 많은 일이 그녀의 세상을 뒤흔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유영 씨가 믿든 말든, 박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영 씨에게 진심이었습니다. 한 번도 해치려 한 적이 없었단 말입니다.”만약 박연준이 아무 감정도 없었다면, 이유영이 연서와 아무리 닮았다고 해도 그녀를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차갑고 온기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누구도 박연준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지만 이유영만은 달랐다.박연준이 물불 안 가리고 이유영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문기원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박연준의 마음은 이미 부정할 수도, 참을 수도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는 사실을.하지만 강이한과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모든 것을 멈추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이유영은 자신을 단지 대역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처음엔 대역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연준에게도, 강이한에게도 그녀는 더 이상 대역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문기원 씨,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이유영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높아졌다.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듣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마당에 더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문기원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너무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이유영이 박연준을 대하는 태도가 문기원이 보기엔 너무 잔인해 보였던 것이다.어쩌면 박연준뿐만 아니라 강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3화

    강이한은 파리와 얽히며 복잡한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 또한 깊은 사연을 품고 있었다.저녁 식사 시간, 이유영은 반산월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의 조명은 대부분 새것으로 교체되었고 우지와 우현은 용성시의 모이산에서 돌아온 뒤 반산월을 돌보며 분주히 움직였다.그때 이유영이 환한 조명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조명이 밝아지니까 너무 좋아.”이유영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우지와 우현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도 좋아요.”이유영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빛을 마주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디를 다쳐도 눈만은 다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눈을 잃는다는 건, 곧 세상을 잃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웅웅.”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이유영이 화면을 확인하니 박연준이었다.“여보세요?”“어디야?”“반산월에 있어.”“문기원이 널 데리러 갈 거야.”“내가 말했잖아...”“유영아, 내 말대로 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일만 있어.”엔데스 가문의 모든 사람이 그들이 진짜 부부라고 믿게 만들려면 최소한 이 3일 동안은 완벽한 연극을 해야 했다.“…”이유영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너도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잖아.”잘 알고 있을 거라고?몰랐다 해도 그의 잔소리 덕분에 뼛속까지 깨닫게 될 터였다.“오라고 해.”이유영은 짧게 말하고는 박연준이 더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박연준과 함께 지내는 건 고사하고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조차 불쾌했지만 쉽게 물러설 박연준이 아니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기원이 차를 몰고 도착했다.이유영은 문기원을 마주하기가 어색했지만 결국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서 이유영은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러던 중 문기원이 갑자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너무 미워하지 마세요.”이유영은 놀란 눈으로 문기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서려 있었는데 그 속엔 차가운 냉기마저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2화

    제대로 된 가치관조차 가지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을 임소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진영숙은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사모님, 제발 부탁드립니다.”그러나 임소미는 차갑게 쏘아붙였다.“저한테 부탁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그냥... 어떻게 지내는지만 알고 싶어요.”진영숙이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처량한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과거에 이유영을 괴롭힐 때는 이유영의 부모가 파리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인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유영의 정체를 알게 된 후, 진영숙은 한동안 임소미를 마주할 수 없었는데 그녀는 도저히 얼굴을 들고 임소미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두 사람의 삶에서 조용히 발을 빼는 것뿐이었다.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떤가?아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영숙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저 아들이 무사한지만 알고 싶어요.”그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임소미 역시 엄마였다.과거, 이유영과 여진우를 위해 밤마다 하늘에 기도했던 사람인 만큼, 지금 눈앞의 진영숙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진영숙이 과거 이유영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시 떠오르자 마음속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강이한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서주를 떠났다고 들었어요. 이제 보니 진영숙 씨는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나 보네요.”임소미의 말에 진영숙의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핏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얼굴은 충격받은 듯 굳어 있었다.아무리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떻게 엄마를 버릴 수 있는 걸까?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진영숙에게 어떤 의미인지, 강이한은 모를 것이다.비록 최근 들어 아들 일에 많이 간섭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늘 관심 가졌던 진영숙이었다.이유영 일로 강이한한테 많이 실망하긴 했어도 그래도 결국 친아들 아닌가?아무리 실망하고 원망스러워도 자신의 하나밖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71화

    진영숙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결국 이런 소식이라니.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이유영은 끝없이 진영숙을 몰아세웠다.이유영은 강이한을 증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지난 몇 년간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것이다.“복수하려면 저한테 하라고 해요. 제가 유영이를 무시하며 두 사람 갈라놓으려고 했어요.”진영숙의 감정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였다.그렇다. 두 사람 사이를 원수로 만든 장본인은 진영숙이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가 됐을 때, 이토록 잔인하고 무서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임소미는 진영숙을 묵묵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이런 결말을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영을 봐서 적어도 이유영의 인생에서는 이 모든 것이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아니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직 저한테 복수하지 않았잖아요.”진영숙은 울먹이며 말했다.이제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오직 강이한만 무사하다면 어떤 결과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임소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복수라니?“이제 보니 우리와 생각이 너무 다르네요.”복수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이유영이 강이한에게 한 건 결코 복수가 아니었다.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내 아들은 잘못한 게 없어요...”진영숙은 임소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고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이유영에 관한 일에서 강이한은 잘못이 없었다. 단 하나, 그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과거에 이유영과 함께하려 했던 것뿐이다.누가 뭐라든 듣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유영과 함께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게 바로 진영숙을 가장 괴롭게 했던 일이었다.그때의 진영숙은 이유영을 철저히 무시하며 그녀의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왜소한 몸을 보며 아이를 제대로 낳을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웠고 이런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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