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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작가: 진헤이
유영은 저택에 발을 들이자마자 어수선한 분위기를 직감했다. 문을 열어준 장숙이 긴장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사모님께서 와계십니다.”

유영은 눈썹을 꿈틀했다.

어제 쌀쌀맞게 대했으니, 어젯밤에 당장 쳐들어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진영숙은 소파에 앉아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 이유영은 매번 진영숙이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시종처럼 납작 엎드려서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때는 강이한을 사랑했기에 그의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서 핸드백을 소파에 던졌다.

“아줌마!”

“예, 사모님.”

장숙은 다급히 다가와서 진영숙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

진영숙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집안에 굿을 좀 해야겠어. 여자 하나 잘못 들였더니 망조가 든 건지 사고가 끊이지를 않아.”

유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냉랭한 눈빛으로 진영숙을 노려보았다.

장숙은 난감한 눈빛으로 유영의 눈치를 살폈다. 유영은 조용히 외투를 벗더니 바닥에 던졌다.

진영숙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영을 바라보았다.

얘 요즘 뭘 잘못 먹었나?

“지금 뭐 하자는 거니?”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집에 망조가 들었는지 재수 없는 일이 끊이지를 않네요.”

유영은 진영숙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유영은 시어머니가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진영숙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유영 너 미쳤어?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그런 말을 들먹여?”

“세강의 며느리 자리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이한이랑 이혼하고 싶어?”

집으로 들어서던 강이한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발견한 장숙이 다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오셨어요?”

진영숙은 아들을 보자마자 표정을 바꾸고는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아들에게 말했다.

“넌 마누라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애가 이 모양이니?”

신혼 때, 두 사람은 본가에서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진영숙이 하도 이유영을 괴롭혀서 그녀가 안쓰러웠던 강이한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로 분가한 것이다.

그 일로 한동안 진영숙은 아들이 결혼하고 변했다며 난리를 쳤지만 강이한의 태도는 단호했다. 진영숙도 아들과 더 멀어지기 싫었기에 결국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번 명절 때 시댁에 가면 그녀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유영을 괴롭혔다. 다행히 일 년에 만날 날이 며칠 되지 않았기에 유영은 꾹 참고 견뎠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여사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저 이제 여사님 며느리 아니에요. 당신 아들이랑 이혼할 거라니까요?”

“이유영!”

강이한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혼, 이혼, 이혼!

어떻게 이 여자는 마주칠 때마다 이혼 소리를 입에 담고 살까?

진영숙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영을 바라보았다. 어제 전화로 얘기했을 때는 그냥 홧김에 생떼를 부리는 줄 알았는데….

“네가 감히 먼저 이혼을 얘기해?”

이유영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진영숙은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유영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강이한은 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올라가자.”

“이한이 넌 누구 편이야!”

진영숙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매번 충돌이 생길 때마다 이유영 편을 드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아줌마, 운전기사 불러서 사모님 집까지 모시라고 해요.”

강이한은 이유영의 손을 잡아끌며 장숙에게 말했다.

화가 날 대로 난 진영숙이 그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거기 서! 거기 안 서?”

하지만 강이한은 그대로 이유영을 데리고 계단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체 쟤가 어디가 그렇게 예쁘다고 엄마 말까지 무시하는 거야! 이 불효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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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겼으면서 이제 와서 단 하나의 일로 모든 걸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다니?갑자기, 허리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순간, 이유영이 강이한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따뜻한 숨결이 얼굴에 닿았고 그와 동시에 키스가 마치 폭풍처럼 이유영을 휘감았다.이유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강이한의 손길은 더욱 강하고 거칠게 그녀를 붙들었다. 그의 숨결에는 알 수 없는 절망과 말을 잃은 듯한 깊은 고통이 서려 있었다.마치 자신을 뼛속 깊이 각인시키려는 듯한 격렬한 집착이 느껴졌다.강이한의 따뜻한 손가락 끝이 이유영의 뺨을 부드럽게 스쳤다. 그리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면, 그렇게 해줄게.”서주의 혼란이 자신을 옭아매기 위한 덫이라면, 강이한은 이유영이 원하는 대로 해줄 각오를 다졌다.만약 이것이 이유영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강잏나은 모든 걸 감내하겠다고 다짐했다.“이건 네가 해주는 게 아니야. 그건 네 죄에 대한 당연한 대가일 뿐이야.”이유영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눈동자의 이유영은, 내뱉는 말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꽂혔다.이유영을 품에 안고 그녀의 숨결을 느끼면서도 그 숨결에서 단 한 점의 온기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강이한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이유영은 마치 온기를 잃은 사람 같았다.어쩌면 이유영이 가진 마지막 온기는 강이한이 스스로 다 소진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차가움뿐이었다.“네 말이 맞아. 이건 내가 받아야 할 대가야.”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반복하며 인정했다.하지만 강이한이 그게 무엇이든 이유영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다짐했다.강이한의 키스가 다시 한번 이유영을 집요하게 덮쳤다. 그 속에는 강이한의 절박함과 미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유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이유영의 손은 강이한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을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6화

    “한지음이 당신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게, 내가 마지막으로 알아낸 사실이었어.”이유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우지와 우현은 이유영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유영이 강이한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여자가 이런 고통을 감내했다면 어떤 보상으로도 그 상처를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그들은 그것이 전생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유영이 강이한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강이한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이유영의 분노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그것은 한 여자가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었다.“그 아이는 존재하지 않아!”강이한은 지금껏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설명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과거에 한지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유영의 반응은 너무 격렬했기 때문에 이유영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이유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어떤 일이 있었던지 지금은 분명히 해명해야 했다.“갈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강이한의 온몸이 굳어졌다.이유영의 말은 너무도 날카로웠다. 때로는 이유영의 날카로운 직감이 강이한의 가슴을 찌르고 아프게 했다.강이한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그 고통은 너무도 쓰라리고 견디기 힘들었다.“떠나는 게 나을 거야. 서주에 너무 오래 머물렀잖아. 네가 돌아갔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기대되네.”이유영의 말은 마치 비웃음과도 같았다.엔테스 가문의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금,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그 문서를 손에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그리고 그 문서의 절반은 강이한의 손에 있었다.하지만 절반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온전한 문서가 있어야만 가치가 있었다.문제는 전기봉이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이다. 문서의 절반을 가진 강이한에게 이 문서는 귀중한 자산이 아니라 끝없는 골칫거리일 뿐이었다.게다가 그의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5화

    한지음은 강이한에게 너무도 중요한 존재였다. 만약 강이한에게 또다시 기회가 주어졌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오직 이유영과 아이뿐이었을 것이다.“유영아...”강이한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는 정말 아무런 자격도 없었다. 심지어 고통받을 자격조차 없었다.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곁을 지킬 권리도 자격도 없었고 이유영의 말처럼, 강이한은 정말 아무런 자격도 없었다.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강이한이 이유영의 곁에서 겪었던 내적 변화를.이유영을 바라볼 때마다 강이한의 가슴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으로 아팠다. 그 고통은 뼛속까지 쓰라리고 깊게 파고들었다....점심이 되자 또다시 쓰디쓴 약이 준비되었다.그때 박연준이 찾아왔다.박연준은 강이한과 서재에서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이 서재에서 나왔을 때의 무거운 분위기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서주 쪽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우현 씨.”“네, 아가씨.”우현이 이유영의 부름에 공손히 다가왔다.“국물 맛있네요. 한 그릇 더 줘요.”두 사람의 무거운 분위기가 이유영의 마음속에 묘한 위안을 주는 듯 이유영의 말투는 가벼웠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유영과 강이한, 그리고 박연준 사이의 관계였다.두 사람이 고통 속에 있을 때만 이유영의 마음은 잠시나마 가벼워지는 듯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의 눈에서 무겁고 복잡한 감정을 읽어냈다.이유영은 두 사람을 원망하고 있었다.이번 생에서 두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그들을 미워하며 마주할 때마다 이유영의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이건 인과응보와도 같았다.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들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과거의 강이한과 박연준은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아가씨.”우현은 조심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4화

    모두가 아이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했다.왜냐하면 아이가 건강해져야 이유영도 비로소 괜찮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유영의 차분한 말이 이어질수록 강이한의 가슴은 점점 더 답답하게 조여 왔다.“그 아이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아이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아이를 데려가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거야?”이유영은 이런 이야기를 지금껏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었다.그러나 지금, 강이한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이유영이 월이를 이용해 이온유를 구하지 못하게 막았는지를.그 아이는 이유영에게 보물 같은 존재였다. 언제라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며 간절히 붙잡고 있었던 아이였으니, 이유영이 그걸 허락할 리 없었다.“강이한, 너 알아? 난 한 번도 너를 이렇게까지 미워해 본 적이 없었어.”“알아, 나도 알아.”강이한은 이유영을 끌어안으며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왜 이유영이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를.이유영은 단지 아이와 함께 평온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이유영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단순한 바람이 전부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원한을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단순한 바람마저 결국 강이한의 손으로 모두 부숴버렸다. 그래서 이유영은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그렇게 두려움 속에 갇혀버렸다.그렇게 이유영은 강이한과의 싸움을 이어가며 아이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강이한은 더 이상 이유영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그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하고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었다.어디에도 즐거운 기억은 없었다.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심장은 항상 불타고 있었다.그 누구도, 월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지 못했다.“그만해.”“이게 네가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 아니었어?”“...”“이게 바로 그 아이를 키우며 우리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3화

    “그때 소군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어.”그때 이유영의 주변 사람들은 이유영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며 설득하려 했다.하지만 아무리 주변에서 말려도 이유영은 끝까지 버텨냈다.“화상이 심했던 부위는 살을 도려내야 했어. 지금 내 몸에 남아 있는 움푹 패인 흉터들은 그때 생긴 상처를 치료하면서 생긴 거야.”“...”“마취를 할 수도 없었어.”마취를 할 수 없었다는 이 말 한마디는 강이한처럼 강인한 사람마저 몸을 떨게 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 남아 있는 흉터들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상처의 넓은 면적을 직접 본 그는 이유영이 겪었을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취 없이 그 모든 과정을 견뎌야 했다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유영아...”강이한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사람들이 그러더라. 아이는 여자가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존재라고. 전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월이를 통해 그 뜻을 알게 됐어.”그때 이유영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배 속의 아이를 지키겠다는 결심만큼은 굳건했다.이유영이 마음 깊은 곳에서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가늠조차 어려웠다.“아무리 조심해서 약을 써도 내 몸 상태 탓에 결국 월이는 조산하게 됐어.”이유영은 마치 별일 아닌 듯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유영이 겪은 모든 과정이 너무도 무겁고 가혹하게 느껴졌다.“유영아...”강이한은 입술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려 하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목구멍은 점점 더 조여 오는 듯했고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알고 있어? 월이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거.”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건 착각이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고통과 불안이 시작되었다.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물며 조산아를 키우는 데는 그보다 훨씬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2화

    그러나 그 세 글자는 아무것도 메울 수 없었다.이유영은 아무 말 없이 약을 단숨에 삼켰다.쓰디쓴 약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온몸을 떨리게 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약이 이유영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표정과 떨리는 몸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약을 삼킬 때마다 점점 더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처마 아래 놓인 흔들의자는 이유영이 특히 애착을 가지는 자리였다.강이한이 말했다.“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들어가자.”“대나무 향이 나.”은은하고 차분한 대나무 향기가 이유영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넌 지금 감기에 걸리면 안 돼.”강이한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하고 인내심이 담겨 있었다.“비는 언제쯤 그칠까?”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천시에 대한 기억은 끝없이 내리는 비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온 후로 비가 그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날씨 예보에 따르면 다음 주 내내 비가 온대.”“...”참으로 기묘한 날씨였다. 어떻게 이토록 비가 쉴 새 없이 내릴 수 있을까?우천시 사람들은 모두 이 기후에 익숙해졌을지 이유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우지 씨에게 수건 잘 말리라고 전해줘. 아침에 보니 수건에서 냄새가 나더라고.”사실 매일 수건을 잘 말리려 했지만 이곳의 습한 기후는 번번이 우지를 난처하게 했다.우지는 매일 정성을 다해 수건을 세탁하고 말렸지만 밤새 뽀송했던 수건도 아침이면 눅눅해지고 냄새가 배어 있었다.결국 매번 건조기에 넣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온전히 뽀송하지는 않았다.“알겠어.”강이한은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살며시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홍문동에 있었을 때도 이유영은 항상 완벽한 청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유영아.”“응?”“그 아이가 자라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 좀 이야기해 줘.”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강이한의 가슴은 미어졌다.“네가 그걸 알 자격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1화

    “기다려야 해!”강이한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강경했다.“...”이유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맴돌며 무겁게 울려 퍼졌다.강이한은 이어 말했다.“엔데스 회장이 세상을 떠났어. 지금은 우천시에 머무는 게 더 안전해.”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분명했다. 이유영은 이전에 엔데스 명우와 얽혔던 적이 있었고 강이한은 이유영이 다시 위험에 휘말릴까 걱정하고 있었다.지금 정씨 가문은 겉으론 평온해 보였지만 그 이면에 어떤 현실이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이런 시점에서 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험 속으로 돌려보낼 리 없었다.이유영은 낮게 읊조리듯 물었다.“돌아가셨어?”이유영도 대충 파리 쪽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체로 그 문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엔데스 가문은 오래전부터 그 문제에 깊이 휘말려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유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그렇다면 우리 집은...”“네 아버지는 신중한 분이니까 누군가에게 쉽게 휘둘리진 않을 거야.”강이한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지금 이유영이 얼마나 가족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강이한도 잘 알고 있었다.강이한은 잠시 이유영의 얼굴을 살폈다.“그럼, 소은지는?”이유영이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소은지였다.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와 얽힌 원한뿐만 아니라 엔데스 현우와의 관계에서도 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엔데스 회장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상황은 오히려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질 줄은 몰랐다. 엔데스 가문은 이제 완전히 갈라진 듯했고 그 속에서 이유영이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소은지였다.강이한은 미소를 가장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너는 정말 모든 사람을 걱정하는구나.”이유영은 언제나 타인에겐 따뜻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무척 냉정했다.“...”이유영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40화

    끝없는 어둠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유영의 마음은 서서히 조여 들었다.이유영을 기다리고 있는 건 길고 막막한 나날들이었다.어둠에 갇힌 사람에게 허락된 일은 너무나도 적었다.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둠을 마주하는 데에는 누구에게나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이유영은 지금 그 말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이 어둠을 마주할 용기가 자신에게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나를 파리로 돌려보내 줘.”이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담담히 말했다.강이한의 마음은 이미 어둠에 억눌린 상태였는데 이유영의 요구를 듣고 나니 더욱 숨이 막혀왔다.“유영아...”“염 선생님은 훌륭한 의사잖아. 그런데 약을 먹어도 전혀 좋아지는 기미가 없어.”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수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나아질 기미조차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이유영의 말은 그녀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한지 그대로 드러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들으며 눈에 깊은 고통과 상처가 서렸다.“수술... 생각해 본 적 있어?”만약 정말 수술을 하게 된다면...수술이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실패한다면?눈 수술은 다른 수술과 달랐다.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염 선생의 도움을 받으면 어쩌면 최소한의 희망은 있었다.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다시 수술을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지금 당장 수술을 하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이한은 두려웠다. 강이한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유영과 관련된 일이었다.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강이한은 그걸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유영아, 나는 두려워.”강이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겁게 말했다.그가 두려운 것은 이유영의 수술이 실패로 끝나는 일이었다.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이유영은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강이한은 그 끔찍한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039화

    현우는 송연미가 소은지를 괴롭혀 왔다고 믿고 있는 걸까?현우는 틀렸다. 소은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소은지는 깊은숨을 고르고 나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송연미와 넷째 도련님의 관계는 이제 정말로 끝난 건가요?”송연미는 이전에 말했다. 넷째 도련님과의 관계는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고. 왜 그랬을까? 단순히 감정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송연미는 이런 방식으로 송씨 가문과 넷째 도련님 사이의 연을 끊으려 했다.분명한 사실은, 송연미는 강압적인 수단으로 넷째 도련님을 완전히 끊어내면서 넷째 도련님을 심각하게 적으로 돌렸다. 송씨 가문과 넷째 도련님의 관계는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지금 현우가 송씨 가문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결과는 자명했다. 모든 일이 훨씬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그러나 상황은 달랐다.지금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모든 희망을 회장님의 죽음에 걸었었다.그러나 회장님이 떠난 후,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무거워졌다.송연미와 넷째 도련님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현우는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예요.”그 사람들의 문제라고? 현우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론 내린 것일까?아니면 과거에 소은지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었던 걸까? 그래서 현우가 송연미와 엔데스 운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걸까?만약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현우가 지금처럼 냉담한 태도를 보일 리가 없었다.소은지는 혼란스러웠다. 현우의 생각을 읽어낼 수 없었다.“그럼, 여섯째 도련님 쪽은 어떻게...”소은지가 엔데스 명우를 언급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소은지의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에게 남긴 심리적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가 보였다.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소은지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걱정하지 마요. 소은지 씨는 반산월에 잘 머물기만 하면 돼요. 알겠죠?”현우는 소은지에게 더 이상 많은 걸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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