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아, 나 때문에 저런 인간들이랑 싸울 필요 없어. 난 전혀 신경 안 써.”밖으로 나온 뒤, 소은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댁에서 친구를 괴롭힐까 봐 걱정했다.유영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야. 곧 이혼할 건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강이한을 위해 시댁에서 아무리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혀도 유영은 말대꾸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받아줄 거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댁의 횡포는 더 심해져만 갔다.핸드백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강이한의 연락이었다.“이거 봐. 그새를 못 참고.”유영은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희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강서희한테 다 들었을 거면서 왜 물어봐? 한지음이랑 둘이 같이 있던데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래?”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소은지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둘이 언제 이 정도로 사이가 나빠진 거야?”전화를 끊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영의 얼굴에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은지야, 일하는 곳까지 데려다줄 수 없을 것 같아. 나 먼저 갈게.”그녀는 친구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비록 그 친구들이 자신의 처지를 다 알고 있을지라도.소은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유영은 차로 돌아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불쾌한 목소리가 전해졌다.“지금 당장 본가로 와.”“싫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린 뒤,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했다. 그 뒤로 휴대폰 화면이 여러 번 깜빡였지만 그녀는 전부 무시로 일관했다.저택으로 돌아오자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살갑게
오후가 되자 강이한이 돌아왔다.그는 오자마자 서재에 틀어박혀 한참이나 어딘가로 통화하다가 나왔다. 유영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애착 인형을 품에 안은 뒤, 소파에서 TV를 시청했다.남자가 다가와서 그녀의 품에서 인형을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 유영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한지음이 납치당했다고 지금 나한테 화풀이하는 건가?“왜 이래?”“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그럼 그냥 말하면 되지 인형은 왜 던지고 그래?”강이한도 짜증이 치밀었다. 남편이 얘기 좀 하자는데 그까짓 인형 좀 던졌다고 성질을 낼 일인가?그녀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그를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그는 씩씩거리며 소파에 다가가서 앉았다.유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인형을 다시 품에 안았다.“내가 말을 말아야지.”그녀의 이런 행동은 남자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오늘 지음이 만났다고 들었어.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지?”강이한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그래, 전생에도 이런 말투였었지.전생에 한지음이 납치당했을 때도 그는 출장 중에 부랴부랴 돌아와서 지금처럼 범인을 심문하는 태도로 그녀에게 따진 적 있었다.그때 그녀는 어떻게 다른 여자 때문에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건 나한테 질문할 게 아니라 당신 여동생한테 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그건 또 무슨 소리야?”유영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당신이 나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뭐야? 우리 아직 부부 아니야? 지금 바깥 여자 때문에 날 추궁하는 거야?”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내를 보자 강이한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외부인이 납치를 당했다고 10년을 함께한 아내에게 추궁하는 꼴이라니!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영아, 한지음이 납치당했어.”“그래서?”“당신은 오늘 한지음을 만났었고.”“그래서?”계속해
“이한 씨한테는 어제 이혼하자고 말했어요. 그러니 회사가 망하든 말든 그건 이제 제 알 바가 아니에요.”시어머니의 맹비난에도 이유영은 느긋하게 대처했다.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지금 뭐라고 했니?”“우리 이혼할 거라고요.”주변 공기마저 싸늘해졌다.며느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시어머니도 그 말을 듣고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어쩐지 아침에 연락했을 때도 태도가 시큰둥하더니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어?반면 이유영은 더 이상 시댁 식구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서희에게도 그랬고 시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니 그렇게 속 편할 수가 없었다.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이 집에서 고용인들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 그들의 구박 때문에 아이도 잃었다.재벌가에서 아이를 임신하면 대우가 좋아진다는 말은 세강 일가에게 통하지 않았다.그들이 한 역겨운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혼을 얘기해? 네가 뭔데?”이성을 상실한 시어머니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유영은 듣고 있을 가치조차 안 느껴져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예전의 나약하고 온순하던 이유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더 이상 시댁 식구들의 횡포를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여론은 예상보다 더 빨리 이상한 방향으로 퍼졌다.형사가 저택으로 찾아왔다. 강이한도 그 자리에 있었다. 형사의 뒤를 따라온 강이한을 발견한 순간, 이유영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가 형사에게 뭐라고 했는지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한지음 씨 납치 사건 때문에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니 저희랑 같이 가주시죠.”젊은 형사가 그녀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은 얼음장 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강이한을 쏘아보았다.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더니 말했다.“유영아, 나도 이 사건과 당신이 관련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야.”유영은 냉소를 머금었다.그런 사람이 형사를 집까지 데려와?“10년이야.
조사가 끝나 경찰서를 나오자 밖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는 강이한과 소은지가 보였다. 강이한은 유영을 발견하자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유영은 그를 무시하고 소은지에게 다가갔다.뒤쫓아 온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데리러 왔어. 집에 가자.”“집?”유영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거긴 이제 내 집이 아니잖아.”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며 차분하게 말했다.죽음을 겪고 돌아온 뒤로 어떤 일에도 흥분하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전생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의 그녀는 넋이 나간 상태로 경찰서에 불려 와서 3일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소은지가 보석금을 낸 뒤에야 그녀는 풀려나올 수 있었다.“유영아!”남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유영은 담담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날카로운 눈매와 높이 솟은 콧대, 그리고 강인한 턱선, 모든 게 그녀가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였다.이 정도 외모와 재력을 갖춘 남자라면 결혼을 했더라도 들러붙는 여자가 많은 게 당연했다.처음 그와 시작할 때 그녀도 그의 매력에 푹 빠졌으니까.지금 이렇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 잘난 면상에 뜨거운 물을 끼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놔.”아무런 온도도 담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강이한은 그녀가 아직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다.유영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미련 없이 소은지를 향해 다가갔다.강이한은 멀어지는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껴안아 주고 보듬어 주고 싶을 만큼 저렇게 작고 나약한데 그들 사이에 무언가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차에 오른 유영의 얼굴은 약간 초췌해 보였다. 안 그래도 날렵한 턱선이 더 가늘어져 있었다.소은지는 따뜻한 음료수를 그녀에게 건넸다.“뭐라도 좀 마셔.”“고마워.”유영은 음료수를 받아 힘껏 뚜껑을 비틀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이리 줘. 내가 해줄게.”유영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내가 열 수 있어.”어떻
유영은 저택에 발을 들이자마자 어수선한 분위기를 직감했다. 문을 열어준 장숙이 긴장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사모님께서 와계십니다.”유영은 눈썹을 꿈틀했다.어제 쌀쌀맞게 대했으니, 어젯밤에 당장 쳐들어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진영숙은 소파에 앉아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은 매번 진영숙이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시종처럼 납작 엎드려서 비위를 맞춰주었다.그때는 강이한을 사랑했기에 그의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서 핸드백을 소파에 던졌다.“아줌마!”“예, 사모님.”장숙은 다급히 다가와서 진영숙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진영숙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노려보며 말했다.“집안에 굿을 좀 해야겠어. 여자 하나 잘못 들였더니 망조가 든 건지 사고가 끊이지를 않아.”유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냉랭한 눈빛으로 진영숙을 노려보았다.장숙은 난감한 눈빛으로 유영의 눈치를 살폈다. 유영은 조용히 외투를 벗더니 바닥에 던졌다.진영숙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영을 바라보았다.얘 요즘 뭘 잘못 먹었나?“지금 뭐 하자는 거니?”“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집에 망조가 들었는지 재수 없는 일이 끊이지를 않네요.”유영은 진영숙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유영은 시어머니가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아니나 다를까, 진영숙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이유영 너 미쳤어?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그런 말을 들먹여?”“세강의 며느리 자리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이한이랑 이혼하고 싶어?”집으로 들어서던 강이한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그를 발견한 장숙이 다급히 다가왔다.“도련님 오셨어요?”진영숙은 아들을 보자마자 표정을 바꾸고는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아들에게 말했다.“넌 마누
2층으로 올라온 이유영은 걸음을 멈추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이한은 그녀에게서 낯선 분노를 느꼈다.이렇게 작고 여린 여자에게 이런 모습도 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유영아, 우리….”탁!이유영은 매몰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섰다.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러세웠다.“이유영!”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홀연히 그를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1층으로 다시 내려온 이유영은 곧장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진영숙에게로 다가갔다.이유영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기세등등하던 진영숙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다.“너… 뭐 하자는 거야?”얘 갑자기 왜 이래?이유영은 목에 걸었던 목걸이를 벗어 진영숙의 얼굴에 던졌다.“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강이한이 달려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유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이게 뭔지 알아요?”“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진영숙이 빽 소리를 질렀다.2년 전부터 유영은 항상 이 팬던트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싸구려를 목에 걸고 다닌다고 진영숙에게 얼마나 훈계를 들었는지 모른다.진영숙은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세강의 체면을 깎는다고 시비를 걸어왔다.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당연히 모르시겠지! 이 안에 당신 손자의 유골이 들어 있어!”모두가 입을 다물었다.“나한테 애도 못 낳는 병신이라고 욕했었지? 그러면서 비열하게도 내가 먹는 음료수에 더러운 약을 타서 내 아이를 죽였잖아. 그 아이도 당신 손자인데 왜 그랬어?”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그는 경악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진영숙이 순간 당황하더니 시선을 회피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구나.”“몰랐다고? 신안병원 진헌수 과장이 당신 중학교 동창이잖아. 그 사람 와이프 불러서 삼자대면이라도 해야 인정할 거야?”“너… 너….”진영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층으로 올라간 유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진영숙은 처음부터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유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이를 유산하게 된 배후에 시어머니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유영은 강이한에게 한 번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그때는 바보처럼 자신이 부족해서 시댁 식구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때의 유영은 자신이 노력하면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믿었다.부모님과 조부모가 돌아가신 뒤로 그녀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 없었기에 어렵게 이룬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하든 참고 인내했지만, 현실은 참혹했다.유영은 침울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강이한은 싸늘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누워 있는 유영에게 다가가서 무릎을 굽혔다.“유영아.”유영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남자가 손에 힘을 주며 그녀에게 물었다.“왜 전에는 말 안 했어?”“하!”유영은 싸늘한 비웃음을 터뜨렸다.친동생도 아닌 강서희에게 말 한마디 했다고 전화해서 다짜고짜 따지는 사람에게 네 가족이 우리 아이를 죽였다고 말한들 그가 자신의 편을 들어줬을까?강이한의 그런 애매한 태도 때문에 진영숙의 괴롭힘은 심해져만 갔다. 만약 강이한이 이 일로 엄마를 원망했다면 그가 없을 때 찾아와서 더 심하게 괴롭혔을 것이다.강이한이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유영의 손을 꽉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상대가 뭐라고 한 건지, 강이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유영을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알았어. 지금 갈게.”말을 마친 강이한은 전화를 끊었다.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한지음이 발견된 것이다.“지음이 찾았대. 나 잠깐 나갔다 올게.”“둘이 대체 무슨 사이야?”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강이한을 빤히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강이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다가 이마에 가볍게 키스한 뒤, 부드러운
집사는 불안한 눈빛으로 유영의 눈치를 살폈다. 며칠째 그녀는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온갖 욕을 먹고 있었다. 세강은 자연스럽게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그래서 안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들조차도 악질 네티즌들이 이렇게 변태적인 행보를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모님, 이걸 어떡할까요?”집사와 고용인들은 연민과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유영은 우아하게 수저를 내려놓고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절제된 단아함이 몸에 배긴 손놀림이었다.평소에도 차분하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 유영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경찰에 신고하죠.”“신고요?”“당연한 거 아닌가요?”유영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네티즌들이 보낸 것 같은데 이 상황에 신고까지 한다면….”집사는 말끝을 흐렸지만 아마 경찰이 나서도 악질 네티즌들을 모조리 처벌하기엔 무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인터넷에 숨어 횡포를 가하는 건 명백한 불법 행위예요.”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이들은 한지음이 매수한 심부름꾼들이었다.한지음은 공인도 아니었고 두터운 팬층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납치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지만 그녀를 위해 세강의 안주인에게 이 정도로 협박을 가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강이한은 며칠째 외박 중이었다.상대는 지금쯤 유영의 정신이 온전치 못할 거라고 판단하고 이런 무리수를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판단은 틀렸다. 이번 생의 유영은 전생처럼 나약하지 않았다.아직은 기댈 곳이 남편밖에 없는 전직주부에 불과하지만 유영은 자신의 방식대로 반격해 나갈 것이다.“알겠습니다.”집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경찰에 연락했다.하루 사이에 유영은 택배를 수십 개나 받았다.거실에는 온갖 동물 시체와 면도칼, 혈서 같은 것들이 스산하게 쌓여 있었다.전생의 그녀는 그것들을 보고 겁에 질려 며칠 밤을 잠들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이들의 목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