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의 말을 듣고 나니 이유영 눈 밑의 한기는 사라지고 대신 침착함이 감돌았다.‘설마 이것이 바로 한지음 배후의 사람이 원하던 건가? 배후의 사람...’오늘 저녁에 한지음을 만나고 나니 이유영은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정국진이 전에 말했던 짐작들도 다 들어맞았다. 한지음의 배후에는 사람이 있었다.이런 생각들이 들자,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또다시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루이스는 전화를 아주 빠르게 받았다.“아가씨!”“강이한에게 내 뜻만 보여주면 돼요.”이 말인즉, 진짜로 일을 벌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반드시 상대방에게 교훈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네! 알겠습니다.”...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었다.이튿날 대 아침 정국진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유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난 네가 한동안은 여기 안 올 줄 알았어.”이유영은 정국진을 보며 말했다.“외삼촌이 전에 한지음이 저랑 강이한 곁에 나타난 건 다 의도를 하고 나타난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왜 뜬금없이 이 소리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이유영이 말했다.“...”‘유영이도 알아챘다고?'이유영을 바라보는 정국진의 눈 밑에는 심오함이 반짝거렸다. 로열 글로벌에 있는 이 2년 동안 이유영도 정말 많은 경험치를 쌓았다.2년 동안에 이유영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아무도 모른다.그리고 매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합작과 어울리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 했다.이유영이 오늘날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정말 쉽지만은 않았다.그래서 2년 전에는 안 보이던 일들이, 잘 모르겠다던 사실들이 이제는 지금은 조금씩 감이 잡히기도 했다.정국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정국진의 탄식 소리에 이유영은 더 어안이 벙벙했다.“외삼촌.”“나도 아직은 강이한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어. 강이한 배후자의 신분이 확인되면 그때는 한지음의 배후자가 누구인지도 알아낼 수 있어.”“강이한의 신분?”“너 설마
‘정리를 제대로 하라고? 나랑 강이한 사이?’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 사이의 이것저것은 다 이미 정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리고 이유영도... 싶지 않았다.“나도 네가 강이한이랑 다시 엮이는 걸 안 좋아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중간의 자초지종은 반드시 정리를 잘해야 해.”“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이점에 대해 이유영은 아주 맘에 안 들었다.정국진이 답했다.“만약 너랑 강이한이 함께 있게 된 게 다 누군가의 계획이었다면?”이 말을 듣자, 이유영은 순간 안색이 확 변했다.‘한지음이 나랑 강이한 사이에 끼어든 것은 아마도 계획이었을 수 있지.’‘하지만 지금 외삼촌이 말한 나랑 강이한이 함께 있게 된 것조차도 계획이라니?’‘그거 어떻게 가능하지?’ “외삼촌...”이유영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만약 외삼촌의 이 추측마저 진짜라면 그럼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얼마나 무섭게 엮여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정국진은 앞에 놓인 우유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내 추측이 틀렸기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그래 보이지 않아!”만약 진짜 외삼촌의 추측대로라면 이 전체 일들의 배후자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한지음의 배후에 사람이 있다는 건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배후의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정말 감이...그 사람의 목적이 도대체 뭐고 상대방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이것들이 바로 정국진이 이유영더러 정리를 하라고 한 이유였다....이유영은 어떻게 백산 별장에서 나왔는지도 모른 채 얼굴색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루이스의 차에 오르려고 했는데 바로 멀지 않은 곳의 차 옆에 강이한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이한은 진귀하고 얇은 올 블랙 코트를 입고 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딱 한눈 보았는데 그는 바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왔다.이유영이 반을 채 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확 그녀를 잡아 자기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당신 뭐 하는 짓이야? 이거 놔!”강이한은 솜뭉치를 다루듯이 이유영을 차 안으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회사까지 왔는지도 모른다.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임소미의 말들을 듣자, 이유영의 눈 밑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외숙모 고마워요.”이유영의 말에는 온통 감격뿐만 아니라 감동도 들어있었다.“얘 봐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에 있어야 너도 마음이 좀 편하잖아.”“네.”틀린 말이 아니었다.임소미가 퀘벡에 있으니, 이유영도 이쪽에서 그나마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었다.외숙모는 아주 세심한 사람이었다....다른 한편 유 아주머니는 조용히 조식을 먹는 한지음을 보며 말했다.“주임님께서 이번의 효과가 아주 마음에 드신다고 하십니다.”“허!”한지음은 콧방귀를 뀌었다.유 아주머니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한지음은 계속해서 말했다.“당연히 만족해야죠. 지금 파리에는 온통 다 이유영의 부정적인 기사들인데 로열 글로벌도 이것 때문에 흔들리겠죠?”“...”“그 사람의 목적이 이거였어요?”‘이유영의 뒤에 있는 로열 글로벌이 타깃이었어?’한지음의 말이 끝나자, 식당 안의 분위기는 조금 더 무거워졌다.유 아주머니의 기운도 한지음의 말에 더욱 싸늘해졌다.유 아주머니는 입을 열고 경고했다.“그건 우리가 물어볼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나 도대체 언제 그 여자를 만날 수 있어요?”여전히 이 문제였다.원래 그 여자 때문에... 한지음은 이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마땅했다. 하지만 매번 한지음은 성질을 참지 못했다.다른 사람한테 억제당해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자니 한지음은 정말 속이 말이 아니었다.예전에 한지음이 자발적으로 이유영을 상대할 때 주인님은 그녀에게 있어서 든든한 뒷받침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협박을 당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은 아무래도 말이 아니었다..유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주인님께서 아가씨더러 그만 물어보시라고 하십니다.”“이럴 거면 다음부터 일 시킬 거면 다른 사람 시키라고 하세요.”드물게 한지음은 태도가 더욱 세졌다.처음이었다. 이것
소식이 나온 순간 사람들은...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접촉은 회사 인수를 위해서 인가하고 생각했다.아무리 전 와이프 전남편 사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여론은 이렇고 스스로 무너졌다.안민이 인수 예약서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어쩌다 그 사람이 되게 협조적이네.”이유영의 마음속에 있어서 강이한은 뻔뻔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기 멋대로만 하고 엄청나게 무지막지한 사람이었다.예전에 이유영이 조금이라도 한지음이나 강서희한테 불리하게 대하면 강이한은 이유영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강이한은 특히 청하시에 있었던 그 기간에는 정말 마음이 독한 나머지 이유영을 냅다 감옥에 처넣기까지 했다.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오전에 금방 한지음한테 무슨 짓을 하지 말라고 이유영한테 경고해 놓고 동시에 계약서의 진행은 또 그대로 추진했다.“그쪽에서 난감하게 굴지는 않았습니다.”안민이 답했다.‘난감하게 굴지도 않았다고? 참 희한한 일이네!’하지만 이유영도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로열 글로벌 쪽이 위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건 다 자기랑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지잉 지잉.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외삼촌의 전화였다.이유영은 전화를 받았다.“외삼촌.”“그래. 기사 난 거 다 봤어. 이번 일 잘 처리했어. 이제 그룹을 너에게 맡겨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정국진의 말은 진심이었다.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유영은 아주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심지어 이렇게 신속하게 처리를 해서 회사에 추호의 영향도 안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건 이유영이 회사 운영 방면에 지금은 아주 능수능란하다는 것을 설명했다.“외삼촌.”외삼촌의 말에 이유영은 조금 부끄러웠다.어쨌든 외삼촌 같은 배테랑과는 정말 비교할 수도 없었다.“난 한동안 퀘벡으로 가서 네 외숙모랑 같이 지낼 거야.”“외숙모?”“그래. 그래서 최근 한동안은 파리에 없을 거니까 넌 전에 말한 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있어
저녁때 강이한은 직접 이유영을 데리러 왔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보자 얼굴색이 안 좋아졌다.이유영은 소은지를 생각하며 결국은 참으며 강이한의 차에 올라탔다. 이번에 차는 반산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원산으로 갔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이유영은 반산월의 바뀐 점을 발견하였다. 이곳의 등은 전부 다 바뀌었다.강이한의 효율이 높은 건 정말 알아줘야 했다.전에 반산월 쪽의 등을 바꾸는데 이유영이 떠난 반달 동안이나 걸려서 등을 다 바꿨는데 강이한은 고작 하루 만에 다 바꾸었다.“지금 여기의 등이 어때?”강이한은 이유영을 잡고 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이유영은 두 사람의 꽉 잡은 손을 보며 눈 밑이 어두워졌다.‘오전에 이 남자는 금방 한지음의 일 때문에 나를 심문했는데 이젠 또 이렇게 친밀한 행동을 한다니!?’이유영은 아무런 내색 없이 조용히 손을 강이한의 손에서 빼냈다.강이한은 휙 빈손을 보며 마음도 같이... 허전해졌다.그리고 강이한은 입을 열었다.“유영아, 기실 우리 사이는...”“맞아!”강이한의 말은 재차 끊겼다.마치 지금처럼, 강이한이 우리를 얘기하거나 한지음을 얘기하면 이유영은 바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분명한 건 자기랑 강이한 사이든지, 아니면 한지음을 포함한 세 명 사이든지, 이유영은 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심지어 어젯밤의 일에 대해 이유영은 아주 무지막지하게 설명조차 주지 않았다.강이한은 말문이 막혔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내가 정말 당신을 과소평가했네.”이곳의 등은 이유영의 시력에 아주 적합했다.“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강이한은 마치 이유영 말투 속에 담긴 가시를 못 들은 것처럼 이유영을 관심하며 물었다.정국진한테서 이유영의 시력에 대해서 듣고 난 후부터 강이한도 겁이 난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얼른 사람보고 준비하라고 했다.강이한은 불빛이 이유영에게 조금의 자극이라도 줄까 봐 두려웠다.“없어!”이유영의 대답은 아주 차가웠다.마치 강이한이 아주 공을 들여 한 일인데 아무런 호응
“맞아. 왜? 무슨 문제가 있어?”‘무슨 문제가 있나? 이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강이한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냄비 바닥보다 더 검게 변했다.강이한은 눈빛을 시종 이유영의 얼굴에 떨군 채, 그저 그렇게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볼 것처럼...하지만 강이한은 실패 했다.이유영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다.“왜? 이런 방식은 싫어?”이유영은 낯빛이 차가워졌다.자기랑 박연준이 지내는 방식이 싫다면 강이한이랑 원래 지냈던 방식으로 바꿔야겠다고 이유영은 생각했다.강이한은 두 손에 주먹을 꼭 쥔 채 세게 한입 베어먹었다.이유영은 웃으며 말했다.“자.”또 한입 강이한의 입가에 갖다 댔다.이 모든 과정에서 이유영은 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유영과 박연준은 원래 이렇게 지내는 것처럼.이유영은 온유하고 다정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전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 식사하는 동안 내내 거의 이유영이 다 그에게 떠먹여 줬다...분명 강이한 본인이 제기한 요구였지만 결국인 자기의 마음이 불편했다.‘유영이 박연준이랑 이렇게 지냈다고!?’저녁 식사가 끝난 후 강이한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지폈다.처음으로...강이한은 이번에 결국 참지 못하였다. 전에는 다 이유영의 앞에서 참아가며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지금은 속이 하도 난잡하고 짜증을 억누를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뒤에 와서 부드러운 작은 손을 그의 어깨에 내려놓고 주물럭주물럭하자, 피로감은 훨훨 사라졌다.강이한은 갑자기 몸이 굳어져 버리더니 이유영의 손을 확 잡고 물었다.“당신 전에도 이렇게 박연준에게 안마를 해줬어?”“그래.”이유영은 아주 온화하게 대답했다.그렇지, 박연준...강이한이 이유영더러 박연준이랑 지내는 방식으로 자기를 대하라고 했으니, 그럼 이유영이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자연스럽게, 전에 박연준에게 했었던 것들이었다.말이 끝나자... 강이한의 두 눈은 붉게 물드러져 눈 밑에는 위험함이 그윽했다.“유영아...”그의 목소리
‘기술? 유영이랑 박연준 사이에 있었던?’강이한의 눈 밑에 드러난 분노와 비통을 보며 이유영은 마음이 한껏 통쾌했다.“왜? 싫어?”이유영은 강이한의 모습을 따라 하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어루만졌다.강이한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결국...강이한은 힘 있는 손으로 이유영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녀를 소파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쓸쓸함과 쌀쌀함이 가득한 뒷모습을 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이시욱은 들어올 때 로비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사모님...”이시욱은 아주 조마조마하며 다가갔다.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시욱 씨 왔어요?”“도련님은?”“뭐가 맘에 안 들어 하는 중이야!”“...”성숙한 남자라면 이유영의 말에 담긴 조롱을 듣고 절대로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생각 못 한 눈치였다.위층에서, 이시욱은 올라오자마자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문을 들어설 때 그는 이미 진한 담배 냄새를 느꼈다. 강이한은 아주 퇴폐한 모습을 하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담배 불씨는 마치 지금 그의 쓸쓸함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이시욱이 손을 내밀어 불을 열려고 하자, 강이한은 소리 내어 그를 말렸다.“불 켜지 마!”“도련님.”이시욱은 강이한의 말투 속에 숨겨진 슬픔을 듣고 멈칫했다.강이한 곁에서 지낸 최측근만이 알 수 있었다. 비록 강이한은 근 몇 년간 언제나 소탈한 사람이었지만 이 소탈함은 결국 이유영의 몸에서 멈췄다.“아이의 소식에 대해 두서가 조금 보입니다.”방안의 불은 순식간에 켜졌다!하지만 이시욱은 여전히 어둡게 느껴졌다. 이 불들은 다 특별히 이유영을 위해 바꾼 불이라는 것을 이시욱도 알고 있었다.그 건 이유영이 저녁에 이 도원산에서 행동이 자유롭고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이시욱은 강이한에게 다가가 그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강이한은 사진을 손에 쥐고 한눈 보았다
사진은 파리에서 찍은 것이었다!‘하지만 정유라는 파리에 돌아온 적이 없다고? 그럼 그 아이는 절대 정유라의 아이가 아니다.’강이한은 가슴이 미치게 벌렁벌렁했다...원래 혼란스럽던 머리는 지금, 이 순간 무척 선명해졌다.“정유라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럼 걔 아이일 수밖에 없잖아.”정국진과 임소미 쪽의 친척관계에 대해 강이한은 이유영보다 더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임소미가 병원 앞에서 안고 있는 아이는 정유라의 아이가 아니면 이유영의 아이였다.‘유영이, 우리 유영이...’오래오래 지나 강이한의 마음속에 휘몰아쳤던 강풍은 그제야 조금 평온해졌다.강이한은 크게 한숨 들이켜고는 이시욱에게 말을 건넸다.“잠시 이 일로 유영이를 놀라게 하지 말고 비밀리에 임소미의 행방을 찾아.”“네!”임소미...이유영이랑 같이 출국한 뒤로는 마치 사라진 것처럼 돌아올 때도 이유영 혼자만 돌아왔다.이때 이유영에게 물어봤자 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고, 오히려 경계심을 더 세게 내세울 거라는 걸 강이한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유영한테 소식이 안 들어가게 하는 선에서 비밀리에 임소미의 종적을 찾아야 했다. 아이는... 무조건 임소미랑 같이 있을 것이었다.‘아니면 임소미는 왜 파리에 돌아오지 않는 걸까?’임소미와 정국진은 결혼한 뒤로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떨어져 지낸 데는 무조건 문제가 있었다.이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알겠습니다.”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여 말했다.“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뭔데?”이시욱은 아이의 일로 정유라를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이상한 점?”“네. 정유라 아가씨 지금 나이로비에 계시는데 이 2년 동안에 줄곧 그곳의 빈민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나이로비의 제일 큰 빈민촌?”“네, 맞습니다.”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일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정유라는 정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나이로비의 빈민촌에서 2년이나 지냈다고? 도대
강이한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소문으로만 듣던 ‘염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다.그 시간 동안 우지와 우현은 휴대전화를 빌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강이한답게 이미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아침에 나갈 때부터 강 선생님의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했어요. 외부 사람들과 연락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우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둘러싼 모든 외부 연락을 완벽히 차단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이유영은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앞이 캄캄한 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우지가 이유영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아가씨.”“네?”“적어도 부인께는 아가씨 소식을 전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임소미를 말하는 것이었다.우지와 우현은 임소미가 이유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애타게 이유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아이를 잃은 뒤로, 임소미는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그리고 현재 이런 상황까지 겹쳤으니, 임소미의 심정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할지는 뻔한 일이었다.이유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네.”이유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이한에게 할 말은 이미 다 했지만, 그 남자는 끝내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밖에 비가 아직도 오고 있나요?”“네.”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우지의 대답을 듣고 나니 우천시의 비가 얼마나 지독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이유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빗소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마음마저 차분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강이한이 돌아왔을 때, 이유영은 처마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우지가 걸쳐준 망토를 두른 채, 조용히 비가 오는 풍경과 녹아든 모습이었다.강이한의 몸에서는 축축한 빗물 냄새가 났다.강이한이 다가오자마자 이유영은 그 냄새를 감지했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런 자신의 반응이 너무 싫
이곳이 싫어진 이유가 강이한과 함께 있기 때문일까? 한때는 이런 곳에서 강이한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었다.“우지를 불러줘!”이유영은 강이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이제는 견딜 수 없었다.이유영은 이 모든 것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아까 말했잖아. 우지랑 우현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러 나갔어. 여기 지역은 아침으로 특산 요리가 많거든, 그래서 주방에는 따로 요청하지 않았어.”“...”이유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의 이 침묵과 순응은 강이한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이유영은 차라리 말없이 기다리는 쪽을 택했고 절대로 강이한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예전에 아무리 바쁜 아침을 보냈어도 강이한은 이유영이 아침에 어떤 루틴을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내가 화장실까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이유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이러면 몸에 좋지 않아. 그냥 가자.”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과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화제를 돌렸다.“네가 우지 씨와 우현 씨의 핸드폰을 가져갔지, 그렇지?”강이한은 잠시 멈칫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래.”“부모님께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드리는 게 맞지 않아?”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이미 분노가 쌓여 있었다. 어젯밤 우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터질 것 같았다.강이한은 여전했다. 여전히 타인의 감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에게 어떤 짓까지 했는지, 그 기억은 이제 이유영에게 있어서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이 되었다.하지만 강이한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미 쪽지를 남겼어. 네가 눈 치료를 받으러 갔다는 건 부모님도 알고 계실 거야.”“...”“치료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 줄 거야.”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듣고 차갑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모든 행방을 전부 숨겼다는 거잖아?”이유영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다음 날 아침, 이유영은 지붕 위에서 여전히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옆에서 느껴지던 온기 역시 그대로였다. 이유영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강이한이 살짝 안으며 말했다.“깼어?”“당장 떨어져!”어젯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잠들었지만, 이 남자는 대체 어디서 이런 뻔뻔함이 나오는 걸까? 이유영이 몸을 움직이려 하자 강이한의 큰 손이 이유영의 손을 단단히 감싸며 태연하게 말했다.“움직이지 마. 춥잖아.”이불 밖으로 팔을 뻗자 싸늘한 한기가 순간적으로 스며들었다.우천시는 여름에 오면 굉장히 쾌적하다고 한다. 전통 가옥은 단열 효과가 뛰어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강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이유영의 짜증과는 반대로 강이한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부드러운 인내심이 배어 있었다.강이한은 마치 오랜 시간 이런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유영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일어날래? 내가 옷 입는 거 도와줄게!”“우지 씨를 불러.”시야를 잃은 이유영의 성격은 예전보다 한층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전히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으니, 이유영의 화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태연히 대답했다.“우지와 우현은 나갔어.”나갔다고? 말도 안 돼!우지는 이유영이 강이한과 단둘이 있기를 꺼린다는 걸 잘 알았기에, 늘 둘 중 한 명은 곁에 남아 있으려 했다.“강이한!”그러나 강이한은 이유영의 화난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여유롭게 말했다.“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나랑 조금 더 누워 있어.”“...”이유영은 비록 자신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강이한의 농담 섞인 말에 자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강이한이 옷을 입혀주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상황 같았지만 강이한은 의외로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강이한은 이곳의 기
임소미가 자리를 비운 서재.정국진은 여진우와 마주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이번 일, 넌 어떻게 보니?”이유영을 데리고 간 강이한에 대한 이야기였다.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번에는 정말 모든 걸 내던졌네요.”이유영을 위해 강이한은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서주의 상황이 이런 와중에 이유영을 데려간 것을 보면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이유영이 차지하는 자리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 사이의 시작은 ‘연서’라는 이름의 여자로 인해 엮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과정은 완전히 변질되었다.이유영은 이미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그 여자의 그림자가 아니었다.정국진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업보지.”이게 업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놓지 못했다. 이러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월이가 하루 종일 엄마를 찾더라.”정국진은 월이의 이야기를 하며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강이한이 과거 이온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강이한이 서주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유영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갔다고 해도 아버지로서 강이한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다.“곧바로 찾아내겠습니다.”여진우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해.”임소미가 생각했던 것처럼, 정국진 역시 아버지로서 이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앞섰다.이유영은 강이한 옆에서 한 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니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우천시.비가 내리고 있었다.전통 가옥의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밤공기 속에 은은하게 울렸다. 그 빗소리는 묘하게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우지와 우현은 이유영의 옆방에 있었다. 이유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유영이 처음에는 괜찮다
강이한은 조용히 이유영을 방으로 데려다주었다.방 안에서는 이미 우지와 우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한이 문밖으로 나가자, 이유영이 차분히 물었다.“연락해 봤어요?”정국진과 임소미와의 연락을 의미했다.“아가씨, 모르셨나요? 우리가 여기로 올 때 강 선생님이 우리의 휴대폰을 전부 통제하셨어요!”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조금 전까지 차분하던 이유영의 표정은 우지와 우현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굳어졌다.강이한, 제정신이 아니구나!우지가 말을 이었다.“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가씨의 눈이 나아질 때까지는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하라고 하셨어요!”이유영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이 강이한!이게 대체 뭐야? 늘 그랬듯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거야?지금 상황에서 강이한이 정말 몰래 이유영을 데려온 거라면 백산 별장 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그렇다면 부모님 쪽은...!이유영이 생각했던 대로였다.아침부터 지금까지, 임소미와 정국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특히 임소미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정국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때, 여진우가 돌아왔다.임소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때? 소식 있어?”‘소식’은 이유영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임소미는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애초에 강이한은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임소미와 정국진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강이한 옆에 있으면 사건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말이다.“없어요.”하지만 여진우가 가져온 소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그 말은 임소미의 이미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강이한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춘 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강이한이라는 인물은 누구에게나 항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임소미의 초조함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여진
전생에서 이유영은 손을 뻗기만 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곤 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어둠이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전생의 기억 탓인지 어딘가 익숙하기도 했다.어둠 속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덕분일까? 기본적인 생활은 오히려 이유영이 가장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그런 이유영을 바라보며 강이한의 마음은 아픔으로 물들었다.강이한은 깊은숨을 고르며 조용히 말했다.“내가 참을성이 부족한 게 아니야. 지금은 이런 문제를 다룰 때가 아니야.”“...”“네 눈을 치료하고 나서, 우리 사이의 문제는 네 뜻대로 해결해.”강이한의 말은 하나하나 무겁고 또렷했다.이유영의 뜻대로?“나는 너를 천 번이라도 갈기갈기 찢고 싶을 만큼 증오해.”“좋아. 그럼 내가 칼을 네 손에 쥐여줄게. 어때?”그렇게 하면 되는 걸까? 이렇게 하면 이유영이 치료에 협조해 줄까?“...”온몸이 얼어붙은 듯했고 답답했던 가슴은 더욱 숨이 막혔다.강이한의 말은 언제나 마치 주먹을 솜에 내리친 듯 공허하고 숨 막히게 했다.“흥.”이유영이 더는 따지지 않자 강이한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유영의 시력 문제였다.다른 문제는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이유영의 뜻에 따라 다시 다뤄도 늦지 않았다.저녁 식사가 끝났다.이유영은 작은 그릇을 내려놓으며 살짝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식들은 이유영의 입맛에 잘 맞는 듯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표정을 보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이유영은 사실 음식에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유영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에도 강이한은 이유영의 입맛에 맞추느라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하기만 하면 답답한 마음에 참을 수 없었다.그때 이유영이 물었다.“언제 돌아갈 거야?”이유영의 물음은 여전히 단도직입적이었다. 강이한과 이곳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강이한은 잠시 망설인 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네 눈이 회복되면, 그때 떠날게.”이유영은
과거의 강이한에게는 이유영과 함께 이런 여유로운 장소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이유영은 음식을 특별히 거부하지 않았다. 파리로 돌아갔을 때, 그곳 음식이 전혀 입에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그 후 서주에 머물던 동안에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다행히 박연준이 정성을 다해 챙겨줬다.한지음과 이온유가 없을 때는 강이한의 관심이 온전히 이유영에게 향했었다.하지만 그 둘이 함께 있었을 때는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남는 관심을 겨우 받을 뿐이었다.이유영은 문득 생각했다.“얼마나 됐지?”이유영의 예기치 않은 질문이 강이한의 가슴을 세차게 조였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질문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챘다.“유영아, 미안해.”강이한의 목소리는 낮고 진중했다.강이한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자신이 얼마나 이유영을 외면해 왔는지를. 연서의 사건이 터진 후, 강이한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지나간 감정.이 단어는 언제나 무겁게 느껴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지나간 감정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그러나 그가 이유영과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것은 상처투성이였을 뿐이다.“흥!”이유영은 강이한의 사과에 차가운 냉소로 응답했다.유천의 음식은 대체로 매콤한 편이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눈 상태를 염려해 매운 음식을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음식을 담백하고 특별하게 준비했는데 그럼에도 맛있는 요리였다.저녁 식사.테이블에는 이유영과 강이한 단둘만이 있었다.“우지 씨는?”이유영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우지와 우현의 부재를 눈치챘다.“장거리 이동으로 피곤했을 것 같아 따로 식사하게 했어.”이유영은 강이한의 대답을 듣고 더 차갑게 굳어갔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이런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보였다.“이 국물 좀 먹어봐. 족발이 들어갔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아. 너 예전에 이거 먹고 싶다고 계속 말했잖아.”이유영이 우천에서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은 아주 많았었다. 다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이유영은 손을 뻗었다.강이
차에서 내릴 때, 강이한이 자연스레 이유영을 안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유영의 단호한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우지 씨.”“네, 아가씨.”강이한의 손이 닿기 전, 우지가 서둘러 다가와 이유영의 곁에 섰다. 우지는 이유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차에서 내리도록 도왔다.이유영은 귀를 기울이며, 주변의 적막함과 선선한 바람 속에서 지금이 밤임을 직감했다.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부드러웠다.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어떤 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상쾌했다.입구에서.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을 부축하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문턱이 있어요.”문턱? 강이한이 데려온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이유영의 마음속에 의문이 떠올랐다.집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리고 은은한 페인트 냄새도 섞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지만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향이었다.“선생님, 돌아오셨군요.”집사가 다가와 공손히 강이한에게 인사했다.강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분간 여기서 머물 거예요.”“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집사는 공손히 대답했다.강이한은 이미 도착 전에 이곳을 정리하도록 지시했던 듯했다.전통 가옥의 집은 제대로 청소하고 정돈해야 비로소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집사는 강이한과 이유영을 방으로 안내했다.우지는 정원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아늑했고 작은 정원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심겨 있었다.그 덕분에 공기마저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이유영은 방 안에 들어와 단단한 나무 의자에 앉으며 손끝으로 그 감촉을 느꼈다.이곳 환경에 궁금했다.“우지 씨.”“네, 아가씨. 물 드실래요?”“여기는 어디예요?”이유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다.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은 이유영에게 항상 큰 공포를 주었다. 주변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참기 어려웠다.“여긴 전통 가옥이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차 안의 공기가 한순간 얼어붙었다.차 안에 있던 강이한과 이유영 외의 모든 사람, 특히 우지와 우현은 숨조차 삼가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모두가 이유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을 선명히 느꼈다.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연서라는 사람이 강이한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 문서를 보게 된 이유영도 잘 알고 있었다.연서는 강이한에게 있어 한지음이나 이온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였다.그 오랜 세월 동안, 강이한은 오늘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내었다. 그만큼 그 이름은 강이한의 마음속 깊이 봉인된 듯한 존재였다.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그 이름만 떠올려도 그의 가슴은 터질 듯한 고통으로 무너졌다.그리고 지금, 연서의 이름을 다시 언급하자 강이한의 마음은 다시금 옥죄어왔다.연서...“하하.”이유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차가운 비웃음이었다.그 비웃음은 강이한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유영아...”“강이한, 만약 연서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 여자가 너에게 날 죽이라고 하면, 너는 그렇게 할 거야?”“...”강이한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한지음을 위해서도 이유영에게 그렇게 잔혹하게 굴었던 강이한이다. 만약 그것이 연서라면? 이유영에게는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이유영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 태도는 강이한의 숨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유영아, 사실은...”“그럴 거야, 맞지?”“아니!”강이한은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그의 부정에도 이유영의 냉소는 더욱 짙어졌다.“한지음을 위해서 넌 강무혁을 감옥에 보냈잖아. 연서는 한지음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 아닌가?”지금 와서 아니라고? 누가 믿겠는가!강이한은 몸이 굳어버렸다.강이한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의미 없어.”“홍문동 그 화재에 대해 난 전혀 몰랐어!”이유영이 예전에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