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가 올라오고, 식사가 시작되었다.“그래도 너무 방심하진 마.”소은지가 앞에 놓여져 있던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이유영에게 말했다. 소은지는 처음부터 진영숙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예견했었다. 이유영이 정국진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절대로 가만히 있을 진영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이토록 빠를 줄은 생각지 못했다.“진영숙 여사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 알겠지?”그녀의 말대로 진영숙이 조금이라도 이유영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 강이한과 이유영이 이혼까지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진영숙 여사가 날 찾아온 건 한지음 때문이야!”“한지음?”“한지음, 이번에 완전히 실명했잖아. 한지음이 강이한을 구해준 한지석의 동생이라는 게 재벌들 사이에 퍼졌나 봐. 그래서 이미지 지키려고 한지음을 강씨 본가에 들여놓았나 보더라고!”“진영숙은 그런 지금 둘이 엮일까 봐 걱정돼서 온 거란 말이야?”“응!”“미친 거 아니야?”“그리고 유경원 쪽하고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정말 난장판이네!”강이한과 한지음이 엮이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유경원과 약혼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진영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반대하고 나섰다. 이것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진영숙의 입장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이유영이었을 것이다. 이유영의 뒤엔 정국진이 있었으니까.“강서희가 바라던 대로 됐네.”과거, 강서희의 위험성을 느낀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경고를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불같이 화내는 모습에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그래 봤자 의미 없어.”이유영이 스테이크를 자르며 말했다. 진영숙의 성격대로라면 차라리 한지음을 선택할지언정 강서희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일은 없을 것이다.“그래도 조심해. 강서희가 강이한한테 얼마나 병적으로 집착하는지 너도 알잖아.”소은지가 말했다. 강서희가 이유영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얼마나 악랄하게 굴었는지 옆에서 봐 왔기 때문에 당연한 걱정이었다
뿌린대로 거둔다, 지금 한지음은 딱 그 꼴이었다. 이유영은 아주 속이 시원했다.“당연하지! 내가 그쪽에 신경 쓸 새가 어디 있어? 나 아주 바쁜 사람이야!”“암요, 아주 공사다망하시죠!”소은지가 장난스레 맞장구 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잘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강이한과 이혼할 때만해도 고생할 게 뻔해 참 걱정이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없던 가족이 생긴 것도 모자라, 그 가족이 어마 무시한 재벌이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만약 정국진을 못 만났다면, 이유영은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지도 몰랐다. 한편, 강씨 본가.집에 도착한 강서희가 가장 먼저 들은 소식은 진영숙이 한지음과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얼른 들고 있던 가방과 외투를 왕숙에게 넘기고 둘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비록 모든 밑작업을 마쳤지만, 한지음은 항상 조심해야 할 존재였다. “너 이유영의 이복동생이라며?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강서희가 방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진영숙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솔직하게 말해. 너 설마 청하시에 온 이유, 이유영한테 복수하기 위해서였어?”진영숙의 목소리가 점점 더 고조되었다. “이한 오빠 만나게 해주세요. 이한 오빠….”한지음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해?”그 말을 들은 진영숙은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럼 먹고 쓰는데 부족함 없이 챙겨줄 테니. 안 그러면, 내가 널 가만히 안 둬!”이 말과 함께 진영숙은 한지음을 쏘아본 후, 방을 나섰다. 한지음은 떨리는 몸으로 어떻게든 그런 진영숙을 붙잡으려 했지만, 잡히는 건 허공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둠 속에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언제 왔어?”방에서 나온 진영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강서희였다. “방금.”“너 나랑 어디 좀 가자!”진영숙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강서희는 순종적인 딸의 모습을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
한지음이 이유영의 이복동생이었다니, 강서희는 충격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진영숙은 즉시 강이한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연락했다. 잠시 후, 강이한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얼른 거실로 향했다.“빨리 처리해야 해. 너부터 일단 강주로 가 있어!”“알겠어!”강서희는 고분고분 답했지만, 지금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는지 소파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곧이어 뒤를 떠미는 진영숙의 손길에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지체하지 말고 바로 가!”“알겠다니까.”강서희가 아쉬운 눈길로 집을 나섰다. 강이한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영숙은 그런 강이한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한지음, 강주에 가서 살게 할까 해.”진영숙이 앞뒤 설명도 없이 말했다. “갑자기 왜요?”강이한이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넌 이미 알고 있었지? 한지음과 이유영의 사이.”그 말을 들은 강이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영숙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깨달았다.“너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구니?”“….”“이게 얼마나 큰 일인데, 왜 말을 안 했어!”진영숙이 흥분에 숨을 거칠게 쉬었다. 만약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진영숙이 한지음을 집까지 끌어들이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소문이 아직 밖에 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역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면, 강씨 가문은 얼마나 우스워졌을까?“이쯤 되면 한지음이 널 구해준 한지석의 동생이라는 것도 걔가 직접 퍼트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야 우릴 압박해 집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강이한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그건 아니에요!”강이한이 단호히 말했다.“그래, 누가 그랬든 지금 중요하진 않지. 일단 한지음은 강주로 보내야 해, 알겠어?진영숙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날카롭게 말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침묵했다. 얼마 전에 이유영과의 다툼에서 그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고 답했었다. 어떻게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
“유영 씨, 해외지사에 좀 급한 일이 생겨서 출국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이 못 가줘서 정말 미안해요.”전화 너머 박연준이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일이 더 중요하죠.”“정말 미안해요, 돌아오면 우리 꼭 제대로 데이트해요!”“알겠어요.”이유영은 아쉬웠지만, 받아들였다. 그래야 박연준이 미안함을 잊고 일어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계속해서 운전을 이어갔다. 비록 박연준의 부재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온 이상 혼자라도 일단 즐겨 보기로 했다.잠시 후, 전시장에 도착한 이유영이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고급스러운 외제차 한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강이한이 차에서 내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챈 이유영은 얼른 다시 자기 차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강이한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박연준, 최소 삼 년은 못 돌아올 거야. 함께 전시회 볼 사람 없어져서 아쉽게 됐네?”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설마?”그녀의 뇌리에 좀 전에 박연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해외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 일이 강이한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그녀의 분노한 표정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가자, 내가 대신 같이 관람해 줄게.”이유영이 매섭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분노가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끌어올랐다.“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유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해외로 나가게 된 이유가 강이한 때문이라면, 박연준은 어쩌면 상상이상의 위험에 빠질지도 몰랐다. 이유영은 다급한 손길로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락은 되지 않았다.“소용없어, 비행기 이미 떠났을 거야.”“너…!”이유영은 분노에 말문이 막혔다. 강이한이 재혼을 제안할 때만해도 그저 잠시 이성을 잃어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상
잠시 후, 카페에서 소은지와 만난 이유영은 오늘 강이한과 박연준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은 소은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뭐? 박 대표님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나도 모르겠어!”강이한이 무슨 수로 박연준이 청하시를 떠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지금 상황이 이유영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것! 강이한은 진심으로 재결합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소은지는 이유영이 걱정됐다.“은지야, 너도 잠깐 휴직하고 청하시를 떠나 있는 건 어때?”“설마 나한테까지 그러겠어?”소은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강이한은 청하시에서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가 이루자 한다면,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강이한은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든지 가혹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이유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지음은 정리됐으니, 이제 너랑만 해결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이혼해준 것도 네가 하도 조르니까 임시방편으로 일단 해준 것 인 것 같아.”“네 말은?”“강이한은 처음부터 널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이유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처음부터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린 이유영은, 그 말이 상당히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너 당분간 여기 좀 떠나 있는 게 낫지 않을까?”“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어!”“….”“지금 내가 맡은 일이 한두 개도 아니고, 어떻게 떠나.”홀몸이었다면 모를까, 지금 이유영의 뒤엔 오로라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자리까지 있었다. 당장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럼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소은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이한이 마음먹은 이상,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카페에서 나온 이유영은 머릿속이 온통 소은지가 했던 말들로 가득했다.“한지음은 정리됐으니, 이제 너랑만 해결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이혼해준 것도 네가 하도 조르니까 임시방
이유영은 자신이 크나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관계였다면, 지난 생에 불타 죽는 최후를 맞을 일도 없었을 테니!그날 저녁, 순정동.집에 도착하자, 집사가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오늘 많이 늦으셨네요.”“네, 별 일 없었죠?”이유영이 가방을 집사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저녁 식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이유영이 주방으로 걸어가며 집사에게 말했다.“앞으로는 좀 더 늦게 준비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정상 퇴근이 어려울 게 뻔했다. 식탁 위엔 정말 간단한 저녁거리가 차려져 있었다. 정국진이 봤다면 또 잔소리를 했겠지만, 이유영은 이것이 가장 편했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빠듯한 자금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그렇다 보니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식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순간,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밖에 무슨 소란인지 알아봐 주세요.”“네.”집사가 현관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강이한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경호원들이 뒤따라왔다. 현관은 순식간에 살벌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당장 몸싸움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강 대표님,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저희 아가씨도 피곤하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이때, 집사가 나서서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강이한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유영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팽팽한 분위기가 흘렀다. 여기서 이유영의 명령 한마디면 경호원들은 당장이라도 강이한에게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 강이한의 성격이라면 절대로 어떠한 준비도 없이 쳐들어 올 리 없었다. 그는 모험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집사님, 그래도 손님이니까 내버려 두세요.”이유영이 손님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그제야 경호원들과 집사가 뒤로
강이한이 이유영의 손에서 거의 뺏다시피 젓가락을 가져갔다. 이유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강이한의 뺨을 향한 순간, 반응할 새도 없이 시야가 바뀌었다. 강이한이 순식간에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 것이었다. “너무 화내지 마, 응?”“강이한, 죽고 싶어?”이유영은 그나마 자유로운 무릎을 이용해 그의 중심 부위를 가격하려 했지만, 그것마저 제지당했다.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집사와 경호원들이 다급히 달려왔다.“아가씨!”“당장 이거 못 놔?”이유영이 경호원들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을 놓아주기는커녕, 경고하듯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경호원 열 명이 온다 한들,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아?”“….”이유영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과거 그녀가 학생이었던 시절, 소매치기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구해줬던 사람이 강이한이었다. 강이한은 도둑을 2층에서 내동댕이쳐 거의 죽일뻔했다. “단둘이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다들 따라오지 마세요!”이유영이 깊게 숨을 들이쉰 뒤, 결심한 듯 말했다. 모든 것이 그가 재결합을 제안하고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지음의 눈은 이제 희망이 없었다. 이제 강씨 가문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물질적인 지원뿐이었다. 신경 쓸 일을 덜게 된 강이한은 이제 온전히 이유영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영은 낮에 소은지가 했던 말이 실감이 났다. 강이한은 처음부터 이유영을 놓아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강이한은 강제로 이유영을 차에 태웠다.“홍문동엔 절대로 안 가!”“다 준비해 놨어.”“강이한,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이유영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소은지와 얘기한 바가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강이한도 차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창문을 내린 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유영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었다. “네 의견 따위 중요하지 않아. 넌 오늘부터 홍문동
이유영은 강이한이 내민 손을 무시한 채 홍문동으로 들어갔다. 강이한은 그런 이유영의 태도에 화를 내기는커녕 피식 웃으며 뒤를 따랐다. 고용인들이 이유영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모두 처음 보는 생소한 얼굴들이었다. 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강이한이 모두 해고했기 때문이다.식탁엔 이유영이 좋아하는 요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요리들이 나오고 있었다.“어때? 순정동 것보다 낫지?”“겨우 저녁 한 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해?”그녀는 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군다나 회귀를 겪은 후로, 그녀는 습관처럼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을 피하고 다녔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강이한을 증오하며 아이를 밴 채 불길 속에서 죽어가던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었다. 그녀는 이렇게 해서라도 과거의 불행했던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씻겨내고 싶었다. “너 아직 모르나 본데.”강이한이 태연하게 이유영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뭘?”이유영은 강이한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박연준이면 몰라도, 넌 절대로 이 청하시에서 나갈 수 없어. 그리고….”강이한이 말을 하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너의 그 잘난 삼촌도 물론 이 청하시에 들어올 수 없을 거야.”“….”이유영은 분노를 넘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충격에 휩싸였다. “너 그, 그게 무슨 소리야?”그녀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박연준이 떠올랐다. 박연준도 청하시를 나가게 만들었는데, 정국진이 출입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강이한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이유영은 절망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우리 둘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전까진, 아무도 못 올 거야.”강이한이 여유롭게 요리들을 먹으며 말했다. 분노의 폭풍우에 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