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이 병실을 나가자 강서희는 피곤한 기색의 진영숙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도 피곤하면 돌아가지 그래?”진영숙은 아직 자고 있는 한지음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아니야. 여기 있을래. 마취가 깨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울 거야.”“내가 잘 돌볼 수 있어. 엄마 피곤할까 봐 그래.”“지음이 깨는 것만 보고!”진영숙의 단호한 태도에 강서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렇게나 한지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맹장수술을 할 때 간병인만 보내고 병실에 한번 찾아온 적 없던 모습이 떠올랐다.진영숙은 항상 강서희를 친딸처럼 아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한지음을 대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며칠 사이 강이한은 유영을 찾지 않았다.그는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고 유영도 마찬가지였다.신제품 출시 시즌이 다가오기에 유영은 공모전을 내고 당첨자의 작품을 신제품으로 출시하기로 했다.유영도 보석 디자인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크리스탈 가든의 스타일은 매우 독특했다. 유행 요소도 고민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는 게 관건이었다.그 중에서도 한정판 제품 디자인이 가장 골머리가 아팠다.유영은 인수인계 작업만 해도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국진은 그녀에게 회사를 맡긴 뒤로 운영에 손도 대지 않았다.대표로 부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전임 대표는 일부 디자이너의 뇌물을 받고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묻어버린 사실이 들통나면서 해임되었다고 했다.“대표님, 이거 좀 보세요.”디자인 팀장이 선별한 원고를 유영에게 건넸다.전임 대표에게 뇌물을 바친 디자이너의 작품도 있었는데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유영이 물었다.“이거 어떻게 된 거죠?”“회장님께서는 다시는 이 디자이너의 작품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런데 그 사람 작품이 왜 내 앞에 나타난 거냐고요.”유영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디자인팀 팀장 장정윤은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세강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세강이 또 왜요?”“지금 우리 고객들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강이한이 주도한 걸까요?”“아니요. 진영숙 여사랑 그 집 둘째 어르신입니다.”조민정이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그녀는 심기만 뒤틀리면 권력으로 갑질하는 인간들을 가장 혐오했다.진영숙은 세강 오너 일가의 권력을 행사하여 유영을 청하시에서 몰아내려는 수작이었다.하지만 절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그럼 회장님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고객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다져야죠.”유영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권력놀음? 그건 유영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알겠습니다.”조민정은 정중한 어투로 대답했다.유영이 이렇게 하라고 한 이상 그녀도 더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유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눈을 감았다.눈을 감자마자 떠오른 건 강이한과 함께했던 추억들이었다.두 사람이 여기까지 올 줄을 그때는 누가 알았을까?진영숙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공격해 올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핸드폰 진동음이 울려서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진영숙이었다.유영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진 여사님이 어쩐 일이신가요?”“이유영, 네가 빼앗아간 프로젝트를 원상복귀 해놓으면 나도 더 이상 널 공격하지 않을게.”“제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제가 무슨 능력으로 이미 체결한 계약을 원상복귀시켜요?”“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널 이 도시에서 몰아내는 수밖에 없어!”수화기 너머로 진영수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냉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제가 그 사업들을 다 세강에 돌려줄 수는 없지만 청하시에 남아 있을 능력은 충분하네요.”과거에는 매사에 진영숙의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했다면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그래?”“그럼요. 두고 보면 알겠죠.”“하, 건방진 것!”“지금의 저는 건방져도 괜찮은 위치에 있거든요.”유영은 한마디도
과거에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이 이유영 덕분에 어쩌다가 의견 일치를 보았다.왕숙이 다가와서 공손히 물었다.“사모님, 식사 준비 끝났는데 바로 식사하러 가실까요?”“그래.”진영숙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둘째 어르신에게 말했다.“시간 괜찮으시면 식사하고 가세요.”“됐어!”“에이, 그러지 말고 식사라도 하고 가요, 아주버님.”노부인이 위층에서 내려오며 강현석을 만류했다.조금 전 계단 입구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내려온 것이었다.한때는 적이었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시 뭉치는 일은 재벌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노부인은 진영숙을 지나치며 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노인은 며느리 진영숙의 처사가 항상 마음에 들었다.“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인데 식사하고 가요.”“그래요.”평소였다면 노부인이 외척에게 이렇게 신경 써줄 이유는 없었다. 이런 일은 진영숙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테이블에 마주앉은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며느리를 잘못 들여서 요즘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네요.”“이제 며느리는 아니죠.”강현석이 말했다.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었다.“그렇죠. 이한이는 아직 어리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요.”진영숙이 바라는 바였다.사실 유영이 세강에 시집온 뒤로 그녀는 어떻게 하면 며느리를 내쫓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진영숙은 아들이 조금 더 신분에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 재혼하기를 바랐다.그리고 3년을 싸운 끝에 드디어 유영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최근 유영이 밖에서 온갖 일들을 벌이지 않았으면 당장 왕래를 끊고 아들 약혼식이나 준비했을 것이다.진영숙은 유영을 곧 청하시에서 몰아낼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이 나이에 어린애한테 화풀이해서 뭐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유영 걔는 정말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이한이가 자기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는지!”유영이 했던 일을 생각하면 노부인은 치가 떨렸다.노부인도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로라 스튜디오와 계약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했던 회사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습니다.”“뭐라?”진영숙은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태도를 바꾸다니! 왜?“지금 거기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제 전화를 피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요.”진영숙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면서 전화를 피하다니!이번에 그녀는 강이한 쪽 사람을 쓰지 않고 자신과 강현석의 인맥을 빌려 유영과 계약한 회사들에 압력을 가했다.진영숙은 이제 와서 유영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강성건설과 서원그룹을 도와 대형 프로젝트 입찰에 성공하면서 유영의 오로라 스튜디오는 한순간에 명성을 떨쳤다.그래서 유영과의 협력을 위하는 회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이쪽에서 계속 압력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로라 스튜디오는 지금쯤 대박이 났을 것이다.계약을 중지하기로 했던 회사들이 하나 같이 등을 돌렸다는 소식에 진영숙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내가 유영의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걸까?진영숙의 두 눈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수화기 너머로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 씨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영 씨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에요.”“부모도 없는 고아를 누가 도와?”유영의 신분을 떠올리자 진영숙은 짜증부터 치밀었다.3년을 세강의 며느리로 살았는데 자신보다 유영의 배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기는 했다.“또 남자한테 가서 웃음 팔며 사정이라도 했나 보지? 그거 말고 걔를 도와줄 사람이 또 누가 있어?”다만 그 남자들이 하나 같이 유영을 도와주는 상황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로열 글로벌의 정 회장과 이유영 씨 관계가 단순한 애인 관계 같지는 않아서요!”진영숙의 대리인이 말했다.가정이 있는 재벌 회장님이 애인을 밖에 따로 두는 경우는 많았다.하지만 그런 여자들은
진영숙이 유영과 고객사 사이의 유대관계를 끊으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아무도 오로라 스튜디오와 계약을 해지하지 않았다.최근에 유영은 크리스탈 가든의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오로라 스튜디오는 완전히 조민정에게 맡겼다.운영을 맡은 조민정은 디자인팀에 인력을 세 명이나 더 추가했다.유영이 맡았던 강성건설 의뢰는 초안이 나온 뒤로 세부적인 수정은 디자인팀에 넘어갔다.나중에 전반적인 디자인도면이 완성되면 유영이 한번 확인하고 제출하기로 했다.스튜디오는 불과 몇 달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하면서 그녀의 능력치도 외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물론 유영이 이미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가 되었다는 걸 모르는 진영숙은 어떻게 하면 오로라 스튜디오를 청하시에서 몰아낼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그 시각, 강이한은 사무실에 앉아 조형욱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큰 사모님 쪽에서 요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셨습니다.”“어머니가?”“둘째 어르신과 손을 잡고 유영 씨를 청하시에서 몰아낼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아요.”조형욱은 더 이상 유영을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그녀에 관한 일을 이야기할 때 어조도 사무적인 어조로 바뀌었다.강이한은 창가에 서서 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이유영을 청하에서 몰아낸다고?”“아마 유영 씨 때문에 회사가 큰 프로젝트를 두 개나 놓치면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요.”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엄마의 성격에 대해 강이한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유영이 얌전한 세강의 며느리로 있을 때도 진영숙은 유영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이혼한 뒤로 유영에 대한 진영숙의 불만과 증오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조형욱은 강이한이 이제 이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줄 알고 긴장을 늦추고 있었다.그런데 뒤돌아선 강이한은 갑자기 차키를 챙기더니 밖으로 향했다.조형욱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이 시간에 어디로 가시려고요?”“따라올 필요 없어.”돌아오는 건 싸늘한
“그러면 일단 둘이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알아볼게요.”진영숙이 말했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럴 필요 없어요!”강이한이 싸늘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출현에 깜짝 놀랐다. 그는 매번 이상할 정도로 이유영을 언급할 때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혼 후에도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유영의 얘기를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듯 보였다.“이한아, 난 그저!”진영숙이 강이한을 향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강이한은 현관 옆에 놓여 있는 바구니에 차 키를 던져 넣은 다음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섰다. 그는 소파에 앉아 짜증스레 다리를 꼰 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나간 뒤,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진영숙과 노부인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지금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둘은 말없이 강이한이 먼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담배가 거의 절반 타들어 갈 때쯤,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정국진, 이유영의 외삼촌이에요.”“….”노부인과 진영숙의 얼굴이 동시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진영숙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말이야?”“들으신 대로예요.”강이한이 진영숙과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말 그대로 정국진은 이유영의 외삼촌, 즉 이유영 어머니의 동생이란 뜻이에요!”그제야 진영숙과 노부인은 말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외삼촌이라고? 친척? 이럴 수가!’“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진영숙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강이한과 이유영은 연애를 7년, 결혼 생활을 3년 했다. 진영숙은 둘이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든 뒷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이유영은 친척 하나 없는 것은 물론, 가진 재산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토록 둘의 관계를 반대했지만
충격적인 소식을 남긴 채, 강이한은 자리를 떠났다.한참 후, 그제야 진영숙과 노부인은 정신을 차렸다.“지금 이유영이 정국진의 조카라고 했니?”“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에요.”“그러니까 그 로열 글로벌 그룹의 정국진?”“그렇다니까요.”진영숙이 머리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이유영이, 이유영이….”노부인과 진영숙 모두 할말을 잃었다.이유영이 정국진의 조카라니,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없던 가족이 튀어나온 건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이유영의 유일한 가족일지도 모르는 존재가 정국진이라니! 게다가 둘은 관계가 아주 끈끈해 보였다. 진영숙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몰랐다.이때 강서희가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곧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곤 진영숙에게 다가갔다.“엄마, 무슨 일이야?”“서희야.”“어?”“….”진영숙은 어떻게 이 사실을 자기 입으로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천애 고아라고 생각했던 이유영이 알고 보니 이 상류사회의 최상위급 존재였다니!“무슨 일이야?”진영숙이 버벅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강서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진영숙은 결국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진영숙 자신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실을 어떻게 강서희에게 말하겠는가? 누구보다도 이유영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그녀였다.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이유영의 신분을 알게 된 이상 예전처럼 대할 수도 또 없었다. 진영숙은 아직 어떤 태도로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할머니, 엄마 왜 이래?”진영숙이 알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서희는 타깃을 바꿔 노부인에게 물었다.하지만 노부인 역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냥 묻지 마.”노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노부인 역시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의 태도를 본 강서희는 분명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이때 진영숙이 생각난 듯 강서희에게 물었다.“지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서희는 깜짝 놀랐다.강서희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왕숙을 바라봤다가, 이내 함께한 세월을 떠올리며 표정을 갈무리했다.“아줌마, 앞으로 뒤에서 갑자기 말 걸지 마. 알겠어?”표정은 감췄지만, 목소리까진 숨기진 못한 강서희였다. 하지만 왕숙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서도 방금 돌아오셨어요.”“오빠가 또 무슨 말 했어?”강이한이 왔다는 얘기를 들은 강서희는 진영숙과 노부인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짐작했다.‘설마 또 이유영 때문에?’강이한이 이혼했음에도 여전히 이유영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강서희도 알고 있었다. 앞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우선 이유영부터 청하시에서 내쫓아야겠다고 강서희는 생각했다. 그래야만 일이 좀 더 쉽게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유영과 정국진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나누셨어요.”왕숙은 이유영 편이었으나, 진영숙의 적대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그녀를 이름으로 호칭했다. 굳이 여기서 다른 호칭으로 불렀다가 강씨 집안에서의 삶이 피곤해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왕숙이 이유영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 모습에 강서희는 매우 만족했다.“그래서 무슨 관계래?”이유영과 정국진의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강서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머릿속엔 둘은 그저 불륜관계,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강서희는 안 그래도 싫어하던 이유영이 늙은이의 외도 대상이 되었다니, 아주 꼬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왕숙은 강이한 등이 거실에서 나눈 얘기를 모두 들은 상태였다. 이유영이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을 줄은 그녀도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그녀는 들은 대로 모든 사실을 강서희에게 전해주었다.얘기를 듣던 강서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뭐라고?”강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떠진 눈동자로 왕숙을 바라봤다. 왕숙은 그녀의 표정에 더욱 신나, 기름에 물을 붓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저도 전혀 몰랐다니까요. 어떻게 그동안 말 한마디도 없으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