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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나랑 같이 살 때는 다 죽어갈 것처럼 하더니, 박연준한테 가면 인생이 편해질 것 같아?”

유영은 착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세강의 며느리로 살면서 불행했던 그녀의 삶마저 그녀의 탓으로 돌리는 걸까?

시어머니가 자신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도 내 탓이라는 걸까?

그의 가족들이 그들의 아이를 죽였는데 그것도 내 탓인 걸까?

강서희가 볼 때마다 시비를 걸어댄 것도 내가 먼저 잘못해서 그랬다는 걸까?

이 남자 옆에서 자존심을 굽혀가며 살아온 세월들이 갑자기 허무해졌다.

겉보기에는 항상 유영을 지켜주려 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자신의 가족들 편에 서서 유영을 평가했던 게 아닐까?

진영숙이 유영을 외부인 취급했지만 어쩌면 강이한도 한 번도 그녀를 진짜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난… 당신이 사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했어. 결국… 돌아오는 건 이런 거구나.”

유영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의 작은 얼굴에는 실망감과 싸늘함만 가득했다.

강이한의 분노와 여자의 얼굴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난 당신과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본 적 없어. 그때는 모두를 위해 내가 양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유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가 바보라서 계속 양보만 한 게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어떤 건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차갑게 뒤돌아섰다.

등 뒤에서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바라는 대로 해줄게.”

유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덤덤히 대답했다.

“고마워. 내일 법원 앞에서 봐.”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제는 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지난 생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기 싫어서 먼저 이별을 택했지만 그가 알겠다고 하는 순간, 가장 아픈 건 그의 입에서 이별의 말을 듣는 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들의 10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주 잔인한 조건과 함께.

강이한이 말했다.

“망막 기증해 줘.”

유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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