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한지음도 강이한에게 완전히 마음을 주지는 않은 상태였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그래서 갑자기 태도가 바뀐 진영숙을 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조차 난감했다.“아줌마….”진영숙이 말했다.“걱정 마. 내가 다 해결해 줄게.”그녀는 한지음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한지음은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다.‘아니야, 약해지면 안돼! 이유영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려면 아줌마 도움이 필요해!’한지음은 이혼으로 부족했다. 비록 강이한과 이혼했지만 유영은 여전히 활개치며 살아가고 있었다.그녀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강이한이 아니라 유영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결말이었다.“감사해요, 아줌마.”한참 고민을 마친 뒤, 한지음이 말했다.진영숙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불쌍한 아이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이 세상에 가족 하나 없이 혼자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였다. 유일한 혈육인 오빠는 강이한을 구해주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솔직히 너를 양녀로 입양하고 싶지만 최근에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문에 대해 말이 많잖아.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아.”한지음이 안타깝지만 세강의 이미지도 고려해야 했다.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한지음을 양녀로 들이면 세강은 또 온갖 여론을 몰고 다닐 것이다.“이해해요.”한지음이 말했다.“이한 씨도 그걸 걱정해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아요.”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들이 진영숙을 소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강이한은 유영과 싸우느라 바쁘고 한지음도 모든 신경을 유영에게 쏟았다.하지만 진영숙은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더 애잔한 눈빛으로 한지음을 바라보았다.한지음의 병실을 나온 진영숙은 주치의를 만났다. 하지만 주치의는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라졌다고 했다.진영숙은 묻고 물어서 한지음이 처한 상황을 듣게 되었다. 망막 이식이 시급하다는 내용이었다.병원에서 나온 진영숙은 곧장 강이
진영숙이 탄식하며 말했다.“지음이한테 망막을 이식해 주는 조건으로 원하는 대로 다 줘. 지음이한테 시간이 얼마 없다고 들었어.”비록 강이한도 그런 결정을 내렸었지만 엄마의 입에서 그 말을 듣자 저절로 숨이 막혔다.유영이 멀쩡한 망막을 떼서 한지음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가슴이 아팠다.“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거예요.”강이한이 단호하게 말했다.전에는 그 역시 이런 식으로 유영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사실 그녀가 시력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손을 뻗으면 끝없는 어둠이 펼쳐진 그런 세상에 산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다.서투르게 손을 뻗으며 주변을 더듬거리며 힘겹게 걷는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익숙하지만 안쓰러운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손발이 흠칫 떨렸다.‘아… 아니야! 최근에 피곤해서 환각이 보였나 봐!’비록 유영에게 많이 실망하고 배신감도 느꼈지만 그런 모습은 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자존심 강한 그녀가 밥 먹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런 고통을 감당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안 돼! 그렇게 되면 이유영은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할 거야!’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저릿하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진영숙은 아들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너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땀 좀 봐!”집안의 온도는 적절했고 땀을 흘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강이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그 생각, 포기하세요.”“이한아!”“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거예요.”한지음에게 광명을 되찾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렇다고 유영을 시각장애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진영숙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금도 걔 편을 드는 거야?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이야? 걔가 최근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잊었어?”이혼도 하지 않고 해외로 가서 늙은 남자랑 바람이 난 며느리였다.그것만 생각하면 진영숙은
유영은 일에 치여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업무만 끝난다면 모든 것을 양승호 변호사에게 넘기고 파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될 수는 없는 법.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우우웅-이때, 핸드폰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저장되지 않는 번호였지만, 유영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지난번에 한지음이 그녀에게 걸었던 번호였다.유영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난 이미 강이한과 이혼했어. 도대체 뭘 더 바라는 거야?”한지음이 먼저 입을 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선수 쳤다.사실 이혼한 것만으로 이 상황이 끝이 나지 않을 거라는 건 유영도 알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전화 넘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설마 겨우 이혼으로 모든 것이 끝날 거라 생각했어? 내가 원하는 게 강이한, 그 뿐인 줄 알았어?”“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뭔데?”“난 너의 눈, 팔, 다리… 모든 걸 원해!”강이한은 시작에 불과했다.목소리만으로 유영은 한지음의 강한 증오와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어?”유영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미움을 받더라도 이유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만났다면?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너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전화 너머 한지음이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내듯 악의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뱉었다.유영은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한지음이 자신을 왜 이토록 증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회귀 전에 강이한에게 접근했던 이유도 자신을 향한 이 악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그러나 전엔 어땠을지 몰라도 이번엔 절대로 호락호락 당해줄 마음이 없었다.“그래? 어디 해봐! 내가 그냥 당해 줄 것 같아?”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유영이 말했다.“하, 그래! 어디 한번 사랑하던 남자한테 눈을 뺏기는 기분이 뭔지 느껴봐!”라는 말과 함께 한지음이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유영은 충격에 한동안 자리에 미동도 할 수 없었다.우우웅-그러다가 다시 울리는 벨 소리
유영은 이 중대한 사실을 이제야, 그것도 강이한이나 그의 가족이 아닌 삼촌한테 듣게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강이한이 10살 때 일어난 일이야. 그때 거의 죽을뻔했다고 들었어.”정국진이 말했다.이 말을 들은 유영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그래서 나한테 말하지 않았구나….’끔찍한 일이었을 테니, 강이한은 어쩌면 이 사건을 입에 담기조차 싫었으리라 그녀는 추측했다."그때, 한지음의 오빠가 강이한을 구해줬어. 강이한은 살아남았지만, 한지석은 죽었지."“….”그녀는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한지석이 죽었다고…? 그래서…!’“유영아, 조심해. 강이한은 물론 그 주변 인물 모두를. 아니면 차라리 지금 파리로 돌아올래?”정국진의 추측대로라면 강씨 집안사람들은 아직 한지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강이한이 유영과의 갈등으로 집안사람들한테 말할 시기를 놓친 것이다. 한지석은 강이한은 물론 그의 가족들에게도 큰 은인이었다. 그러니 한지석의 동생인 한지음이 나타난다면 강씨네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떠받을게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지음이 유영을 적대시한다? 그러면 당연히 온 가족이 그녀의 편을 들 것이고 유영은 궁지에 몰릴 것이다.정국진은 이부분이 매우 걱정스러웠다.깊이 숨을 들이킨 유영이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 일이 한지음이 저를 미워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그녀는 한지음으로부터 적나라한 증오를 느꼈다.“그건 나도 아직 뭐라 단정 짓진 못하겠어. 일단 빨리 파리로 돌아오기나 해!”정국진이 단호하게 말했다.강이한과 이혼한 지금, 유영이 청하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하지만 유영은 머뭇거렸다.“저 아직 이쪽에서 맡은 일을 끝마치지 못했어요. 파리로 돌아가려면 우선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요.”“이런….”유영이 지금 맡고 있는 건 아주 큰 프로젝트였다.이번 프로젝트는 그녀의 커리어에 큰 획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유영이 파리로 돌아오려면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으리
"루이스를 네게 보낼게." 정국진이 말했다.‘루이스? 삼촌의 개인 경호원?’"그러실 필요 없는데…." 유영이 말했다. 청하시의 치안은 좋았으니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루이스가 필요할 것 같아요."전화를 끊은 후, 유영은 정국진이 말한 한지음과 강이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둘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사이였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이혼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한지음한테 얼마나 더 많은 증오를 받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분명 더 큰 문제들이 생겼으리라.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유영이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만날 수 있어?""지금?" 전화 넘어 강이한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응, 지금!" 유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이 시점에 만나자고 요청할 줄 몰랐다. 최근 이유영은 마치 그를 피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나 지금 사무실에 있어.""알았어, 곧 갈게!" 이유영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조민정이 준 물건들을 가방에 넣었다. 그러다 잠시 정국진이 좀 전에 말한 한지음과 강이한의 관계를 떠올렸다. 그녀는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한지음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절대로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한지음보다 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사랑과 은혜, 강이한이 선택한 것은 항상 한지석의 은혜였다.한편 외출했다가 돌아온 강서희는 강이한과 이유영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이제는 대놓고 이유영을 싫어하는 티를 내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앞으로 한지음에게 좀 더 잘해줘." 진영숙이 강서희에게 말했다.강서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진영숙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엄마?"진영숙은 살짝 못마땅한 듯 강서희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한지음에게 좀 더 잘해주라고 했어."그제야 강서희는 말의 뜻을 자각했다. "왜?" 그녀는 왜 진영숙이 이런 말을 했는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어?”강서희가 진영숙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깜빡거렸다. 한지음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 왜 이런 요구를 하는 걸까?강서희는 진영숙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한지음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었다. 진영숙이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강서희를 바라보았다.“한지음은 네 오빠의 은인이자, 우리 강씨 집안의 은인이니까!”“은인?”강서희가 놀라 물었다.“그래.”진영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사건은 여전히 그녀에게 악몽으로 떠오를 정도로 끔찍한 기억이었다. 겉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녀도 속에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에 관한 거라면 더욱 그랬다.강서희는 이야기를 들으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전혀 한지음의 오빠가 강씨 집안과 이런 깊은 인연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지석의 유일한 핏줄이 한지음인데, 우리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지음한테 잘해 줘야지!”진영숙이 말했다.“그, 그렇긴 한데….”비록 마음속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강서희도 일단 겉으론 동의하는 척했다. 진영숙이 한지음을 언급할 때마다 보이는 연민의 감정이 무엇보다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강서희가 아는 진영숙은 결단코 쉽게 누군가에게 연민을 가질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영숙의 마음속에 한지음의 위치가 얼마나 높을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한편 병원에서 한지음은 자신의 주치의가 사라진 것을 알고 당황했다. 그녀는 벌써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봤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때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온 것을 본 한지음이 물었다.“제 주치의는 어디 갔죠?”“이제 유 선생님이 담당하시게 되었어요.”“그게 무슨 말이죠?”“왕 선생님은 그만두셨어요.”“그만뒀다고요?”한지음이 놀람과 의아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그만두셔서 오늘부터 출근 안 하세요.”그 말을 들은 한지음은
드디어 강이한과 이유영이 이혼을 했다. 이제 한지음의 이용 가치는 없어졌다.강서희는 차갑게 조소를 날리며 한지음에게 거침없이 말했다.“하, 왜 이래?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분명 네 입으로 우리 오빠랑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뒤에선 더러운 수단을 써서 우리 엄마의 신임을 얻어?”이렇게 된 이상 한지음의 신분은 조만간 노부인의 귀까지 들어갈 터였다. 만약 노부인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한지음은 강씨 집안에서의 위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강서희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 있던 혹 떼려다가 더 큰 혹을 붙인 격이었다. 한지음은 이유영보다 다루기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이유영은 강씨 집안에 있을 때 더러운 술수를 쓰지 않았으나, 한지음은 달랐다. 한지음은 모든 것을 철저히 계산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한지음이 강씨 집안의 일원이 된다…?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강서희는 반드시 한지음을 막아야 했다!“한지음, 내가 말했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강서희는 단호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런 강서희의 태도에 한지음을 알 수 없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한지음은 자신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강서희는 물론 이유영도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그녀는 왕 주치의를 해고한 강서희의 대한 분노를 삭였다.“쯧!”전화를 끊은 한지음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은 간호사에게 향하지 않고 남겨둔 의료용 트레이에 머물렀다.한편 강이한의 사무실에서는….그는 드물게 주도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유영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비록 이혼했을지라도 이유영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다.이유영은 자신이 가져온 가방을 그에게 내밀었다. 강이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무엇이 담겨 있는지 물었다.“열어 봐, 놀라거야.”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강이한은 자기도 모
아주 망설임 없이 돌아온 이유영의 답에 강이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냉소를 머금은 강이한이 입을 열려던 순간, 그리고 이유영이 동영상 시작 버튼을 누르려던 동시에 강이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너머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이한 씨,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한지음 환자가….”“무슨 일인데요?”강이한은 한지음의 이름이 들리자 초조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다가 거의 이유영과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큰 키 때문에 이유영은 그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목을 한참 꺾어야 했다. 비록 통화 내용이 정확히 들리진 않았으나,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강이한은 바로 가겠다고 답을 한 뒤, 이유영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외투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문 쪽으로 향했다.“잠깐!”이유영이 소리쳤다.“지금은 안 돼, 오늘 일은 다음에 다시 시간 될 때 얘기해.”강이한은 지금 이유영이 찾아온 이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그를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잠깐, 아주 잠깐이면 돼…!”그녀가 말했다.“그냥 고개만 잠깐 돌려서 모니터를 보면 되는 일이야. 한지음의 진짜 모습 좀 보라고!”그러나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유영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강이한은 항상 한지음이 최우선이었다. 그녀는 회귀 전에 그가 자신에게 저질렀던 일들이 다시금 실감이 났다.강이한이 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이유영이 갑자기 뛰어오더니 그를 붙잡았다. 강이한의 싸늘한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 그는 마치 떼를 쓰는 철부지 아이를 보듯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강이한은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이거 놔!”그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하지만 이런 그의 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강이한은 심지어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에게 손찌검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오늘 그는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닌 거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