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그녀에게 알려줘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성세 그룹 안주인이에요. 최근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 같은데 혹시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아. 네. 알겠습니다.”경찰서에서 나온 뒤 여관 주인은 곧장 집으로 간 뒤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성세 그룹 안주인이었다니, 들키면 그녀는 끝장이다.수년 동안 무사히 이 일을 해왔는데 한순간에 똥물을 뒤집어쓰다니.경찰은 이곳에서 단서가 끊기자 그 길을 지나간 모든 차량들의 조사에 착수했다.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화려한 장식으로 감춰진 뼛속까지 썩어 문드러진 더러운 곳.“나한테 손대지 말아요!”장소월이 강제로 차에 올라탔다.“날 어디에 데려가려는 거예요.”남자 두 명이 그녀를 밧줄로 묶고 그녀 몸을 더듬고 있었다.“넌 운도 참 좋아. 해성시 거물급 인사 눈에 들었으니 말이야. 지금 그분한테 가는 길이야. 도착하면 절대 그분 심기를 건드리면 안 돼. 그때가 되면 아무도 널 구해내지 못한다는 거 명심해.”“됐어. 당장 몸에서 손 떼. 옷 다 찢어지겠어.”유홍선의 한마디 말에 두 남자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차는 한 시간 반을 달려 7시에 한 낯선 곳에 도착했다.정장을 입은 매니저가 음침한 눈빛으로 장소월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그녀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장소월의 목, 팔, 그리고 다리에 수상한 기계를 채웠다.“저 여자가 무대에 오르면 원래 가격대로 보너스 줄게요.”장소월은 유홍선이 자신을 이곳에 팔아넘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유홍선이 떠난 뒤, 장소월은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의 무리에 던져졌다.이후, 문이 닫혔다.미모가 출중한 여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다들 야한 옷차림을 하고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었다. 또 앳돼 보이는 몇몇 어린 여자아이들은 이상한 물건을 몸에 달고 구석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장소월은 그들에게 접근해 상황을 알아보려 했다. 이 낯선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장소월은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그림 그렸었어요. 다른 일 없으면 미안하지만... 비켜주실래요.”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너...”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장소월의 모습을 본 주지연은 단단히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잡으려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장소월이 들어왔다.장소월은 몇 마디 나누고 난 뒤에야 아이는 부모님에 의해 이곳 해상시 천상인 업소에 팔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 몸에 단 기계는 시간을 기록하는 용도였다. 손님이 여자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시간을 기록해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든 절대 반항할 수 없고, 그 룰을 어긴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그녀 몸에 나 있는 상처가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얼마 후, 빠르게 그녀 차례가 되었다.“설마 이곳에서 도망치려는 건 아니죠?”“소용없어요. 아무도 우릴 구하지 못해요. 해성시 경찰들까지 이곳 사람들과 한통속이니까요. 도망친다고 해도 그들에게 잡혀 돌아올 거예요. 언니.. 저 또 팔려가고 싶지 않아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장소월은 따뜻한 말로 그녀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걱정하지 마. 곧 괜찮아질 거야.”그녀는 전연우가 인맥과 권력을 총동원해 자신을 찾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어린 소녀의 양부모는 고작 열여덟 살밖에 안 되는 아이를 이곳에 팔아버렸다. 오직 남동생을 잘 키우기 위해 말이다.천상인 업소 VIP 룸 안, 남자가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강 소장님, 최상급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바로 데려올게요.”주지연은 천상인에서 미모가 가장 출중한 에이스였다. 하여 그녀는 자연스럽게 강지훈의 옆에 앉아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뒹굴며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보았었다. 뚱뚱하고 기름이 번지르르한 아저씨부터 시작해 딱딱하고 준수한
오늘 밤이 지나면 설날이다.길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히터가 충분히 켜져 있는 차 안, 기성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저희가 반드시 소월 아가씨를 모시고 올 겁니다. 대표님 몸도 성치 않으신데 직접 가실 필요 없습니다.전연우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자마자 장소월을 찾아 나섰다.다행히 그들은 결국 장소월의 위치를 찾아냈다.거짓말이 들통난 여관 주인은 그들의 집요한 협박 끝에 진실을 털어놓았다.경찰이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 또한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전연우는 종래로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장소월이 그녀의 손에 잡혀 정신을 잃고 업소에 보내졌다는 사실을 안 이후, 그는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자른 뒤 경찰서에 던져버렸다. 예전 전연우의 성격이었다면 그녀는 절대 다음 날의 태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이후 법원 판결을 받은 뒤 감옥에 들어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괴로울 것이다.경찰은 이번 기회에 인신매매 소굴을 뒤집어엎으려 했다. 그중엔 나체 사진을 찍어 협박해 업소녀가 되게 하는 경우가 즐비했다. 그 죄목만으로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하기에 충분했다.“난 괜찮아.”전연우가 몇 번 기침했다.오늘은 설 전날 밤이라 모두 귀성길에 올랐기에 길이 심각하게 막혔다.결국 어쩔 수 없이 헬기를 불렀다.기성은은 대표님의 몸이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예전 장해진 밑에서 일할 때부터 생긴 고질병이다. 이젠 한 번 발작하면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남원 별장.은경애는 직접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만들었다. 모두 장소월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설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도우미들을 시켜 예쁜 장식까지 해놓았다.천상인 야간 업소.강지훈이 술 한 잔을 부어 장소월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저번에 만난 건 4년 전이었죠 아마? 오늘 밤 보니 더 예뻐졌네요.”주지연은 그들이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단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더라니.“대체 현아한테 무슨 짓
강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니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삼켜버릴 듯 뒤덮어버렸다. 순간 본능적으로 압박감과 위험을 느낀 장소월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강지훈은 조금씩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벽까지 몰아붙였다. 강지훈이 한 손을 올려 벽을 짚고는 더이상 물러날 곳 없어 멈춰선 그녀를 항해 허리를 굽혔다.급박한 그 순간, 장소월이 돌연 한 마디 꺼냈다.“강지훈 씨, 현아를 그렇게 오랫동안 속여 함께 지냈으면서 마음 조금도 안 줬어요?”장소월은 소현아에 대한 강지훈의 감정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도박을 걸고 있었다.“오늘 밤 제 몸에 손대면 현아는 평생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거 명심해요.”소현아 이름의 등장에 강지훈은 잠시 멈칫했다.머릿속에 천진난만한 얼굴과 동글동글 무해한 두 눈이 떠올랐다.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까지도...“강지훈 씨, 저 배고파요.”“강지훈 씨, 목말라요. 물 마시고 싶어요.”“강지훈 씨, 내 뱃살 깔았어요.”“강지훈 씨, 저 좀 더 자고 싶어요...”장소월은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찰나의 망설임을 포착했다.하지만 그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소현아보단 전연우를 내세우는 게 나을 텐데요. 전연우와 함께 일한 세월을 봐서 부드럽게 해줄게요.”바로 그때, 바깥에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장님.”“무슨 일이야?”부관이 앞으로 걸어와 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강지훈은 돌연 몸을 돌려 책상에 놓은 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던져버렸다.“이만 가봐요. 소월 씨 같은 재미없는 여자한텐 흥미 없으니까.”장소월은 강지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듣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룸을 뛰쳐나갔다.주지연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강 소장님, 왜 보내준 거예요?”강지훈이 어두워진 눈동자로 빙긋 웃어 보였다.“그 여자는 건드리면 안 돼. 천상인은 오늘 밤 해성시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주지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소장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천상인
조명이 흔들거리는 머리 위 새하얀 천장 아래, 향긋한 향초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 소리에 장소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누군가에 의해 다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든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거벗은 남자가 그녀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 음침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예쁜아, 모르는 척하지 말고 즐겨. 이 오빠한테 잘 협조하면 400만 원 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약효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아 장소월은 힘없이 침대를 짚고 일어났다.“내... 내 몸에 손대지 마!”절반 밖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을 때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힘껏 잡아당겨 다시 눕혀버렸다.“창녀 주제에 순진한 척은.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과 뒹굴어놓고선.”다른 한 명의 남자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다.“일단 놀고 봐야지, 쓸데없는 말 할 시간이 어딨어. 오늘 밤이 지나면 데려다줘야 해. 누님도 우리 둘이 이 여자 좀 건드렸다고 뭐라 하지 않을 거야.”“이리 와봐, 예쁜아.”가격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검은색 고급 세단이 천상인 문 앞에 정차했다.안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문지기가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섰다.“당신들 누구예요? 회원 맞아요?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내가...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온몸에 살기를 번뜩이는 남자를 본 프런트 직원이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전... 전 대표님?”이 나라 하늘 아래 전연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얼마 전까지 모든 신문에 신처럼 도배되었던 사람이 아닌가.어떻게 그를 몰라보겠는가!프런트 직원은 말도 내뱉지 못하고 곧바로 길을 비켜주었다.기성은이 사진 한 장을 꺼냈다.“이 여자 본 적 있어요?”프런트 직원이 겁을 먹고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저희 매니저님한테 물어보세요.”직원이 재빨리 매니저를 불러왔다.매니저는 사진 속 여자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아올랐다. 찾아온 사
매니저가 조명을 켰다.기성은이 빠르게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는 안 계십니다.”매니저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조금 전 이 룸에 서빙했던 종업원에게 물었다.종업원이 말했다.“그 아가씨 룸에서 나간 이후로 어디에 갔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기성은이 서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찾아. 모든 룸, 주변 호텔 방까지 전부 하나하나 뒤져. 경찰서에 말해 도시를 봉쇄해서라도 찾아와.”“CCTV도 단 한 곳도 놓쳐선 안 돼.”매니저는 또다시 위협적인 전연우의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너희들 전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천상인이 접대하는 손님은 모두 해성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연우의 말대로 하다간 VIP의 반감을 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해성시가 아무리 전연우의 관할 밖 도시라고 할지라도, 그의 권력이라면 해성시 하나 뒤집어엎는 건 일도 아니다.해성시의 명문 세가, 지하폭력배, 모두 서울의 집권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다.천상인 모든 룸을 샅샅이 뒤졌으나 장소월은 보이지 않았다.불만을 터뜨리던 손님들은 이 소란을 피우는 자가 전연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두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인 사람도 있었다. 필경 전연우같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 말이다.하지만 아무도 감히 그의 눈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했다.호텔 방에서 장소월은 두 팔이 남자에게 꽉 눌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원피스 가슴 쪽이 찢겨 새하얀 피부가 바깥으로 드러났다.해성시 바깥에선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에 그녀의 정신이 드디어 또렷해졌다.그녀가 남자의 중요 부위를 힘껏 걷어차자 남자는 괴로움에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그 행동이 남자를 더더욱 자극했다. 그가 장소월의 긴 머리를 잡고 거칠게 바닥에서 질질 끌어당기자 그녀는 고통스럽게 몸을 움츠렸다.“더러운 년, 매를 들
이 넓은 남교시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성세 그룹 대표의 와이프를 납치해오다니.그녀와 옷깃이라도 스쳐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죄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 매니저가 다급히 말했다.“전 대표님, 제가 사모님 위치를 알아내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겠어요?”...살을 에일 듯한 추위 속.펑펑 쏟아지는 눈송이가 장소월의 드러난 어깨에 내려앉았다.장소월은 여기저기 찢긴 옷에 몸에 상처까지 나 있어 마치 미치광이와도 같이 만신창이인 모습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설을 쇠러 집을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때 옆에 걸려 있는 거대 스크린에선 연예인들이 찍어둔 설 인사가 방영되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이 덮쳐오니 장소월은 얼굴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모든 소지품을 그들에게 빼앗겨버려 몸엔 일 전 한 푼도 없었다.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녀에겐 이제 돌아갈 집이 없다.장소월은 조금 전 비상구 계단으로 도망치던 도중 발목까지 접질려 절뚝거리며 걸어갔다.그 순간의 장소월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꽃잎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그때, 길 맞은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건장한 몸집의 낯익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깝지 않았던지라 또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그녀가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힘까지 소진하고 쓰러지던 그 순간, 강력한 힘이 감도는 팔뚝이 그녀를 지탱했다. 따뜻한 품에 안기는 순간 남자의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너... 너무 추위.”“괜찮아. 곧 따뜻해질 거야.”두꺼운 남자 코트가 장소월의 몸을 꼭 감쌌다.흐릿한 정신의 장소월은 지금 이 순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전연우는 그녀가 또다시 도망이라도 칠까 봐 품에 힘주어 끌어안았다.머지않은 곳 검은색 군용차 안, 강지훈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전연우! 네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이틀 후 남원 별장.기성은이 전연우에게 조사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아가씨를 납치한 놈은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를 하는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경찰이 철저히 조직을 소탕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가씨가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은... 법무팀에서 아가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할 것입니다.”“그 외, 병원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 소월 아가씨의 몸속에서 에틸에테르가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일부러 정신을 잃게 만든 게 분명합니다.”전연우가 쓰러져 있는 그녀를 품에 안고 체온을 측정했다.“이번 일에 발을 담근 사람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전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그들은 아마 높은 확률로 중형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기성은이 떠난 뒤.서철용이 마침 시간 맞춰 도착했다.그가 장소월에게 알레르기 치료용 링거를 놓아주었다.“이 추운 날씨에 심리적 자극까지 받았으니 쓰러질 수밖에 없지. 발목은 며칠 쉬면 나을 거고 몸에 돋아난 알레르기도 3, 5일 정도면 완전히 회복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중요한 건 소월 씨가 깨어났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야.”천만다행으로 그녀는 무사히 돌아왔다.젼연우의 주의력은 온통 장소월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리 말해도 그의 귀엔 들리지 않을 테니 서철용은 다시 입을 닫았다.그가 의약 상자를 들고 나간 뒤, 문밖에서 불안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배은란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철용 씨, 그냥 이곳에 남아서 소월 씨 보살펴 줘. 몸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철용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별일 없을 거야. 열이 좀 나는 것뿐이니까 곧 괜찮아져.”그가 이곳에 남아 장소월의 눈에 띄면, 그녀를 더 괴롭게 만들 것이다..그보단 그녀와 일정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그녀가 필요로 할 때 다시 나타나면 될 것이다.도우미가 서철용의 손에서 의약 상자를 받아 차 트렁크에 넣었다. 그가 우산을 펴 배은란에게 씌
두 도우미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소현아의 임신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강지훈의 사람이 아니라 강씨 가문에서 보낸 강지훈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임신 사실을 강씨 어르신에게 보고했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배 속의 아이를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왔었다. 그 아이는 강씨 가문의 유일한 핏줄이니 어떤 사고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만약 주인님이 배 속의 아이에 대해 알게 된다면, 분명히 아이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지금은 다행히도 아기가 석 달이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강지훈이 일 때문에 바빠 별장을 떠나 있을 때, 그들은 몰래 소현아에게 유산 방지 주사를 놓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러시아에서 최고의 뇌 전문의를 섭외하고 난 다음 날, 두 도우미는 모든 짐을 챙겨 소현아와 함께 해외 치료를 떠났다.새벽, 헬리콥터가 착륙했다. 소현아는 손에 인형을 안고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말했다. “규영 씨, 미경 씨,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규영이 말했다. “현아 아가씨, 주인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곳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지금 거기로 가는 겁니다.”소현아는 자신이 쫓겨났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요?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그 나쁜 놈도 같이 가요?”“주인님은 할 일이 있으셔서 저희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면 주인님도 오실 겁니다.”소현아는 뒤돌아 계단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다지 실망하지는 않았다. 강지훈은 항상 바빠서 별장에 없는 날이 더 많으니까. “그럼 그렇게 해요. 하지만 난 며칠만 있다가 돌아와야 해요! 내 동생이 곧 결혼하거든요. 난 언니니까 반드시 결혼식에 참석해야 해요.”규영과 미경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측은한 마음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네.”소현아가 헬리콥터에 올라타자 헬리콥터는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방 안, 남자가
소현아가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엔 아무리 심통을 부렸어도, 내버려 두다가 식사 때가 되어 부르면 두말없이 내려오곤 했었다. 마음에 품었던 앙금을 절대 다음 날까지 가져가지 않았고 주인님과 화해하는 것도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게다가 오늘 밤엔 주인님 분부로 아가씨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분명히 방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도우미가 말했다. “평소대로라면 배고프면 스스로 나오셨을 텐데,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미동도 없으십니다.”천효연은 강지훈에게 아주 적합한 애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외에도 강지훈의 곁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남자의 다른 여자들을 용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북경 감옥에 사적으로 지어진 별장은 강지훈이 혼자 거주하는 곳으로, 그녀 외에는 아무도 드나든 적이 없었다. 때문에 외국에서 돌아와 그 바보를 보았을 때, 약간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천효연은 강지훈의 입술에 키스하며 말했다. “먼저 방에 돌아가서 씻을게요. 밤에 와요.” 그녀는 사람을 홀리는 매혹적인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떼고는 혼자 방으로 돌아갔다.강지훈은 발로 문을 걷어찼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남자는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방안을 본 그의 눈동자에 분노가 스쳤다.강지훈은 곧바로 창가로 가서 그녀가 뛰어내린 건 아닌지 확인했다.“주인님, 아가씨 여기 계십니다.” 도우미가 드레스룸 바닥에 누워 있는 소현아를 발견했다.소현아는 벽에 기대어 손에 먹다 남은 과자를 든 채 잠들어 있었다. 어렴풋이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눈에 칼자국이 있는, 무섭게 생긴 남자가 보였다.소현아는 꿈속이라고 여기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꿈에도 이 나쁜 놈이 나오는 거지? 싫어, 난 소월이랑 강용이랑 같이 놀 거야. 소월아, 지난번에 하던 이야기 아직 안 끝났잖아. 나중에 그 사람 어떻게 됐어?”“물 뿌려서
얼마나 오랫동안 키스했는지, 소현아는 머리가 먹먹해지고 입술이 얼얼해졌다. 급기야 뇌에 산소가 부족해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네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 앞으로 다시 내 앞에서 그 자식 이름 꺼내기만 해봐. 내가 그놈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 버릴 거야”소현아는 갑자기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 더러워졌어.”그녀는 눈에 눈물이 맺힌 채 온 힘을 다해 남자를 밀어냈다. “앞으로 다른 여자랑 뽀뽀한 뒤에 나한테 하지 말아요.”“진짜 더러워!” 소현아는 입에 묻은 침을 닦으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소현아! 거기 서!”소현아는 결코 멈추지 않고, 빠르게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방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밖에서 열지 못하도록 물건으로 문을 막아 놓기도 했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그의 침이 역겨워 욕실에서 물을 틀었다. 하지만 그때, 코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나왔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윙윙거렸고, 이상한 이명까지 들려왔다. 갑자기 밀려온 극심한 두통에 소현아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저녁 식사가 준비된 뒤, 도우미들은 위층에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주인님, 아가씨 방문이 계속 닫혀 있고,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습니다.”“신경 쓰지 마.”그 짧은 말에 도우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밤이 깊어지고, 식탁에 놓인 음식들은 모두 치워졌다.천효연은 강지훈의 품에 안겨서 그에게 체리를 먹여주었다. “지훈 씨, 맛있어요?”강지훈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절반만도 못해.”“지훈 씨는 날 놀리기만 한다니까요.”“돌아갈 생각 없어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난 여기서 영원히 당신과 함께할 살 거예요.”어느덧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위층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배가 고프다며 내려왔을 텐데 말이다.오늘 처음으로 허기까지 참아내며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천효연은 남자의 마
도우미들은 정말로 그녀의 배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장면을 보면 분명히 울고불고 난리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엉켜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여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뇌를 다쳐서 마음이 넓어진 건가.소현아는 손에 들고 있던 꽃빵을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두 명의 도우미 역시 더는 위층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소현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천효연은 남자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그의 목에 두 손을 두른 채로 말했다. “지훈 씨, 왜 그래요? 그 여자 때문에 분위기 망치면 안 돼요. 우리 방으로 들어가요, 네?”소현아는 냉장고에서 마구마구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아이스크림을 본 도우미는 경악하며 얼른 빼앗아갔다. “아가씨, 의사 선생님께서 당분간 차가운 것을 드시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다른 걸 드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해드릴게요.”소현아가 말했다.“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못 먹었어요. 딱 몇 입만 먹을게요.”도우미는 그녀의 배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가씨, 제발 저희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 지난번에 차가운 음식을 몰래 드셨다가 배가 얼마나 아팠는지 잊으셨어요?”그 말에 소현아는 머쓱하게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럼... 안 먹을게요.”“배고프시면 제가 국수라도 끓여 드릴게요.”소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주...주인님!” 도우미 중 한 명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남자를 보고 즉시 고개를 숙였다.강지훈은 샤워 가운을 걸치고 냉랭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왔다. 소현아를 돌보던 두 명의 도우미는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비켜주었다.소현아는 도우미들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한테 국수 끓여 주기로 했잖아요? 왜 가요, 언제 돌아와서 끓여 줄 거예요?”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강지훈을 본 소현아는 덜컥 겁이 났다. 매번 이런
도우미들은 그런 광경에 익숙한 듯 두 사람이 편히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소파 위에서 천효연은 떨어지기 싫은 마음에 긴 다리를 남자의 허리에 감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완전히 힘이 빠진 상태였다.“지훈 씨, 나...”“당신한테 아이 낳아주고 싶어요...”단추가 하나씩 풀리고 검은색 군복이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흉터와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이 드러났다. 그는 소파에 파묻힌 여자에게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여자의 비명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만족스러운 쾌락을 담고 있었다.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을 때, 소현아는 두 시간 정도 잠들었다가 깨어났다. 밖에서 도우미들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소현아는 갑자기 배가 고파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 문을 연 순간, 도우미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 “현아 아가씨, 왜 나오셨어요? 빨리 다시 들어가세요.”침대 머리맡에 있던 꽃빵 두 개를 들고나온 그녀가 둥글게 불러온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배고파서 아래층에 내려가서 뭐 좀 먹고 싶어요.”도우미들은 눈썹을 찌푸렸다. “주인님께서 아래층에서 중요한 일을 상의하고 계시니, 현아 아가씨는 잠시만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저 지금 배고프단 말이에요. 물도 마시고 싶고요.”머리가 망가진 사람은 역시 다르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건가?그렇게 오랫동안 약을 먹었지만,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현아 아가씨, 지금은 주인님께서 바쁘게 일하고 계시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끝나면 뭐든 다 해드릴게요.”“정말 너무들 하네요! 그냥 내려가서 뭐 좀 먹겠다는 것뿐이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본 척할게요, 약속해요.” 소현아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도우미들을 바라봤다. 그 순수한 눈빛을 마주하니 누구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때, 밑에서 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현아
“때가 되면 돌려보내 줄게.”군복을 입은 경호원이 바깥에서 걸어들어왔다. “강 소장님, 이상한 놈 두 명이 잡혀 왔습니다. 지금 감옥에 가두었는데, 어떻게 처리할까요.”순식간에 차가워진 강지훈의 얼굴을 본 소현아는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가 먹여주는 약을 받아먹었다. 이 쓰디쓴 약을 며칠 동안 연속으로 먹었더니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강지훈은 그녀의 입가에 묻은 약을 닦아주며 말했다. “누가 보낸 건지 확인했어?”“부관님 쪽에서 보낸 사람들입니다.”“가두고 내버려 둬. 알아서 죽겠지.”“알겠습니다, 소장님.”소현아는 혓바닥을 쭉 내밀며 말했다. “이제 안 먹을래요. 강지훈 씨, 나 자고 싶어요. 너무 졸려요.”강지훈의 약 그릇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도우미가 다가가 그릇을 받아 들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졸리면 푹 쉬어.”소현아는 눈을 감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금세 잠들었다.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나가자, 방에 있던 도우미들도 그의 뒤를 따라 함께 방을 나서고 문을 닫았다.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검사한 거 맞지? 임신한 거 아니야?”도우미가 곧바로 대답했다. “현아 아가씨는 임신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께서 안 계신 동안, 주인님의 지시대로 아기씨를 돌보았습니다. 석 달에 한 번씩 건강 검진도 받게 했고요. 임신했다면 바로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무엇 때문인지 도우미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푹 숙인 채로 말하고 있었다.강지훈은 도우미의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하는 말 역시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하지만 소현아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다행히 평소에도 통통하게 살이 쪘던 덕분에 배가 점점 불러와도 주인님이 알아채지 못할 뿐이었다.하지만 이대로 계속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잠자리 과정에서 주인님의 흘러넘치는 힘이 분명히 배 속의 아이에게 충격을 줄 것이고, 그러다 혹시 피라도 나면...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서철용의 보기 드문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전연우와 강지훈이 언제부터 이토록 가까워진 걸까?그의 기억 속 강지훈은 여전히 전연우를 주인님이라 부르는 부하였다.북경 감옥.소현아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침대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옆에서 도우미는 무릎을 꿇은 채로 약을 들고 있었다. “주인님, 현아 아가씨가 몸이 불편하다며 계속 약을 안 드시겠다고 합니다.”막 바깥에서 들어온 강지훈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자 옆에 있던 도우미가 자연스럽게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검은색 군화가 바닥을 밟는 힘 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무슨 일이야?”엉덩이를 쳐들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있던 소현아는 강지훈이 나타나자 겁을 먹은 듯 얌전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노란색 헐렁한 잠옷 차림의 소현아는 동그란 배를 쭉 내밀고 손으로 어루만졌다. “강지훈 씨,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것 같아요. 봐봐요, 이렇게 커졌어요.”남자의 차가운 눈빛이 더욱 냉랭해졌다. “어젯밤 약 안 먹었어?”소현아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먹었어요. 만져봐요.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강지훈 씨, 나 정말 임신한 것 같아요.”강지훈은 여러 도우미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배에 손을 얹었다. 허벅지 사이로 야한 속옷이 드러났지만, 도우미들은 이런 광경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북경 감옥 요리사 솜씨가 좋아졌나 보네. 살이 많이 쪘어.”도우미 중 한 명이 눈을 내리깔고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강지훈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약 줘.”도우미가 약을 건네주자, 강지훈은 약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 약 왜 먹는 거야?”그녀가 더듬거리며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다른 도우미가 나서서 말했다. “이건 현아 아가씨를 위한 소화를 돕는 약입니다. 아가씨께서 어젯밤 야식을 너무 많이 드셔서인지 아침을 잘 못 드셨습니다. 하여 소화불량이 아닌가 싶어
은경애는 새벽에 한 번 일어나 아이를 돌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편의를 위해 바로 옆방 침실에서 잤던 그녀는 옷을 걸친 채로 일어나 별이 방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건지 활짝 열려있는 문을 본 그녀는 어딘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도련님.”“또 어디에 가신 거예요!”은경애는 급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지독한 휘발유 냄새와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순식간에 졸음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일 났어요, 빨리 와 보세요! 큰일 났어요!”은경애는 별장의 모든 조명을 켰다. 옆방 침실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던 서철용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즉시 눈을 뜨고 옷을 입은 채로 방문을 나섰다. 별장을 가득 메운 불쾌한 냄새가 서철용의 코에도 흘러들어왔다. 코를 막고 계단을 내려가니 1층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사고를 친 아이는 서재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은경애는 급히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고, 우리 도련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바깥에서 경비를 서던 사람들이 달려왔다. 모두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경호원들이라 물이 흥건하게 펼쳐져 있는 바닥을 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리를 떴다.지난번에는 부엌에 불을 지르더니, 이번에는 물바다를 만들었네. 좋아, 아주 좋아!“도련님, 밤에 잠도 안 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이고!” 은경애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이렇게 멘붕이 오곤 했다. 이 일은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웠다. 장씨 가문에 들어와 갖은 일을 경험했지만, 돈 욕심 때문에 참고 견뎠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이를 데리고 몇 달 동안 겪었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혼란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은경애와는 달리 서철용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 불쾌한 냄새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걸까?그때 서철용의 눈에 구석 쪽 이상하게 고여있는 물이 들어왔다. 그는 걸어가 발로 툭툭 밟아 보았다. 그 순간 아
별이의 울음소리는 그제야 천천히 잦아들었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 울었던지라 볼은 붉게 퉁퉁 부어올랐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은경애 역시 긴장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의 목소리를 이렇게 듣게 되다니.은경애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이불을 덮고 말했다. “별아, 엄마야. 엄마 목소리 기억나?”“엄... 엄마...” 별이가 다소 불분명한 발음으로 옹알이를 했다.서철용이 은경애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일단 나가 계세요. 나중에 부를게요.”“네, 그럼 저는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은경애가 나가자 서철용은 휴대폰을 가져가려 했지만, 별이는 작은 손에 힘을 꽉 준 채 단단히 잡고 있었다.장소월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비록 선명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말로 자신을 엄마로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소월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진정제와도 같았다. “별아, 엄마가 없더라도 경애 아주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해, 알겠지?”“네...”“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야 해...”별이가 대답했다. “네...”지금 이 녀석의 얼굴엔 방금 전까지 자지러지게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약간의 거만함까지 담겨 있었다.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휴대폰에서 갑자기 소리가 끊겼다. 별이는 휴대폰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며 말했다. “엄... 엄마.”서철용이 전원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꼬맹아,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충전해야 해. 안심해. 네 엄마는 아빠가 꼭 찾아올 거야. 네가 있으니까, 두 사람은 절대 헤어질 수 없어.”별이는 이제 막 난 젖니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어 보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곯아떨어졌다. 서철용은 빠르게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받쳤다. 만에 하나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경을 치게 될 테니 말이다.서철용은 아이를 눕힌 뒤 방을 나섰다. 시간이 늦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