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의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인시윤은 비로소 깨달았다.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느냐는 쉽게 보아낼 수 있다. 그 사람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지가 그 첫 번째 증거다.혼인신고를 했음에도 인시윤은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인시윤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아왔다.그녀는 절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소월아, 왜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이 새언니한테 말해봐.”인시윤이 등장하고 나서야 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녀는 조금 전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해 잠옷 차림으로 집을 나섰었다. 이제 가을이라 날씨는 꽤 쌀쌀했다.그녀와 인시윤은 서로 날을 세우지도,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저 표면적인 반응일 뿐이다.전연우의 거칠고 두꺼운 피부엔 아직도 옅은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장소월이 얼마나 힘주어 때렸는지 알 수 있었다.장소월은 인시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이건 너희 가족 일이야. 알아서 해결해.”“거기 서!”장소월은 멈춰 서지 않았다.“여보.”인시윤이 장소월을 쫓아가고 있는 전연우를 향해 소리쳤다.그녀의 마음속에서 분노에 휩싸인 질투가 활활 타올랐다. 바람 한 가닥만 불어오면 크나큰 초원 전체를 모조리 불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인시윤은 집에 돌아가 알아보고 나서야 전연우가 보육원에서 아이 한 명을 데려와 장소월에게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장소월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전연우는 이제 일반인들은 쳐다볼 수도 없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때문에 확실히 그에게도 성세 그룹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필요하다. 그녀는 전연우의 아내이니,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다.저 아이는 그저 전연우가 장소월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주워 온 장난감일 뿐이다.지금 인씨 집안 전체가 모레 있을 결혼식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그때 도우미가 방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누군가 사모님을 찾아왔습니다.”“그래. 서재에 모셔.”“네. 사모님.”인경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이제 내가 할 말은 너한테 다 했어. 혼자 잘 생각해 봐. 난 바빠서 이만 내려가 봐야 해.”서재에 들어가니 험상궂게 생긴 중년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검은색 천으로 감싼 상자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원하던 물건입니다.”인경아가 걸어가 검은 천을 풀자 유골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어보니 유골과 완전한 뼈대 하나가 들어있었다.“확실히 그 사람 맞아요?”“못 믿으시겠다면 저한테 영상도 있으니 보세요. 바다에서 건져내고 며칠 뒤, 화장을 마치고 옮겨온 거예요.”인경아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그럼 그년은요?”“강일주는 심유가 죽은 뒤 유골을 바다에 뿌렸어요. 그리고 스스로 바다에 빠져 목숨을 끊었고요.”인경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유골함에서 시선을 거두고 의자에 앉았다.“임무를 완수했으니 약속했던 돈은 부족하지 않게 보내줄게요. 돌아가요.”남자가 방에서 나간 뒤 인경아는 한참을 멍하니 검은색 유골함을 바라보았다.“당신은 그 여자와 함께 죽고, 같은 곳에 묻히고 싶었겠지. 하지만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일수록 난 절대 당신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 잡종 또한 마찬가지야. 절대 편히 지내게 하지 않을 거야.”장소월은 전연우에 의해 강제로 로즈 가든에 끌려왔다.돌아오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그 아이 때문에 말이다...장소월은 자신이 낳지도 않은 아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거절하자 전연우는 아이로 그녀를 협박했다. 만약 그녀가 키우지 않는다면 지금 즉시 아픈 아이를 보육원에 돌려보내겠다면서 말이다.느긋하게 걸어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전연우의 뒤에서 장소월이 욕설을 퍼부었다.“난 아이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소중한 한 아이의 생명이야. 넌 충분히 아이를 치료해준 뒤 인씨 집안에 데려가 키워줄 수
“뭐 하는 거야? 내려놔.”“뺨 때린 대가야.”전연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뜨겁게 키스했다.장소월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씻어. 오늘 씻지도 않았잖아. 몸에서 냄새나.”30초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전연우의 호흡은 이미 거칠어졌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다 하고 씻을게.”“싫어!”전연우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입은 싫다고 하지만 몸은 반응하고 있잖아.”그가 장소월의 치마를 들어 올리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복부에서 전해져오는 통증 때문에 장소월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새로 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침대가 격렬한 흔들림에 삐걱거리며 소리 냈다.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건 꽤 이른 시간이었다.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바디워시를 발라주던 중 그의 시선이 장소월의 복부에 멈췄다.가슴속에서 돌연 미묘한 감정이 일렁거렸다.전연우는 그녀를 물에서 꺼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 뒤 그녀를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두 시간 뒤, 장소월은 시큰거리는 몸을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잔 탓인지 전연우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장소월은 허리에 올려진 전연우의 손을 내려놓은 뒤 옷을 입고 방에서 나갔다.거실에선 기성은을 포함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주방에선 휴가를 마친 아주머니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택배기사가 물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장소월 씨, 주문한 물건 모두 배송했어요. 사인해 주세요.”기성은이 배송 목록을 장소월에게 건넸다.“대표님께서 장소월 씨의 이름으로 산 아기용품들입니다. 부족한 거 없나 살펴보세요.”장소월은 잠시 망설이다가 목록을 받아 살펴보았다. 정말 많은 양이었다.장소월은 단 몇 시간 안에 빠르게 꾸며놓은 아기방을 훑어보고는 말했다.“됐어요. 일단 이만하면 충분해요. 수고하셨어요.”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아가씨, 식사하세요.”도우미가 갈비탕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연우는 장소월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병원에 갔을 거라 예상했다. 경호원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으니 절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하여 그는 일을 처리하러 회사에 출근했다.대표 사무실에 들어가니 오랜만에 보는 송시아가 그의 자리에 앉아있었다.“이제 조금도 숨길 생각 없나 봐요? 책상 위에 장소월 사진을 버젓이 올려놓은 걸 보면.”송시아는 원래의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짧은 단발인 모습이었다.여자에겐 자고로 두 가지의 어려운 결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랜 시간 동안 길러온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다.전연우는 송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듯 태연하게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3분 시간을 줄게. 네 결정을 말해봐.”송시아가 서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의 얼굴이 자욱한 연기 속에 파묻혔다.사라진 며칠 동안 송시아는 확연히 야위었다. 얼굴엔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발랐지만 그 초췌함은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내 손으로 당신을 그 자리까지 올렸어요. 전연우 씨, 이게 내 수고에 대한 대가예요?”“인시윤과 결혼하고, 그것도 모자라 장소월과 살림을 차리고...”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은 정말 끔찍이도 생각하네요.”그녀를 위해서라면 전연우는 하지 못할 일이 없다.송시아는 장소월이 죽은 뒤 전연우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 그가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우스운지 모른다.전연우가 차갑게 말했다.“1분 남았어.”송시아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피운 뒤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로 걸어갔다. 이어 주객 전도된 모습으로 뻔뻔하게 그의 넥타이를 움켜쥐었다. 남색은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다.“하나가 더 늘어도, 줄어도 상관없어요. 인시윤은 내가 신경 쓸만한 위인이 못되 거든요.”“난 당신과 비슷해요. 충분히 깊은 인내심을 갖고 있죠. 난 당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가질 거예요.”“당신은 장씨 집안에서 20년이나
“네. 선생님.”장소월은 시뻘게진 몸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려왔다.간호사가 침대에 내려놓기 바쁘게 아이가 잠에서 깨어 눈을 감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너무 많이 힘을 준 탓에 머리에 꽂았던 링거 관을 따라 혈액이 역류했다.간호사가 장소월에게 말했다.“보호자분,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 것 같아요. 모유 컵이 있으시다면 어서 모유를 받아 아이에게 먹이세요.”장소월은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죄송해요. 전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유는 있어요.”“아이가 몸이 약해 되도록 모유를 먹여야 해요.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우유라도 따뜻하게 데워오세요.”“네. 지금 바로 가져올게요.”장소월이 다급히 우유병에 우유를 담아왔다.“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간호사가 우유병 온도를 체크하고는 말했다.“네. 이제 먹이시면 돼요.”장소월은 옆으로 내려온 잔머리를 정리하고 우유병을 아이의 입가에 가져갔다.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그쳤다.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처음 하시는 일 같은데 정말 잘하셨어요. 전에 어느 정도 배우셨나 봐요.”“보호자분, 앞으로... 분명 좋은 엄마가 되실 거예요.”순간 우유병을 쥔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간호사가 의료용품을 준비하러 병실을 나서자 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가엾은 이 아이를 보고 있으니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순간 아이의 포도알 같은 큰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장소월은 아이가 또 울음을 터뜨릴까 봐 당황했지만, 아이는 우유를 마시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은 입을 움직여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바람에 입에 넣었던 우유를 모두 토해내 옷을 적셨다. 장소월은 곧바로 우유병을 잡고 휴지로 아이를 닦아주었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 착하지. 밥 먹어야 쑥쑥 크는 거야.”“아.”아이가 장소월의 말을 알아
장소월은 자신이 어디로 가든, 아이의 눈동자가 그녀를 따라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장소월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주의력을 집중시켰다.간호사가 들어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지금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장소월은 새로 산 아이의 옷을 손세탁한 뒤 건조기에 말렸다. 아이가 다 나아 퇴원하고 나면 입을 수 있게 말이다.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장소월은 희미한 조명만 켠 채 병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새벽 두 시.병실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들어와 벽을 더듬어 조명 스위치를 찾았다. 그 순간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본 그는 즉시 손을 멈추고 미약한 조명 불빛을 빌려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장소월은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피부에 맞닿은 뜨거운 체온과 코를 찌르는 역한 술 냄새에 잠이 깨어 번쩍 눈을 떴다.“큰소리 내지 마. 애가 깨.”전연우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거친 손바닥이 치마를 헤치고 들어와 그녀의 하얀 다리에 안착했다. 그가 뭘 하려는지 짐작한 장소월은 손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제지했다.“하루 종일 애 보느라 수고했어.”장소월은 옆에 있는 주정뱅이를 밀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정리했다.“일찍 자.”“난 바깥 소파에서 잘게.”이곳은 VIP 병실이라 일반 가정집처럼 없는 것이 없다. 장소월은 목이 말라 거실에 나가 물을 한 컵 따랐다.그녀가 한 모금 마셨을 때, 어느새 여기까지 왔는지 돌연 전연우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삼켰던 물을 토해낼 뻔했다.전연우는 장소월의 긴 머리를 모두 한쪽으로 넘긴 뒤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했다.“너한텐 예전 같은 긴 머리가 어울려.”오늘의 그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나 물 좀 마시면 안 될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멈추는 전연우의 모습에 장소
장소월은 일에 부딪히면 늘 우유부단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전연우와는 정반대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우리보다 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적합한 가정은 없어. 너만 원한다면 이 아이는 영원히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될 거야.”장소월은 전연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고작 그녀가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 때문에?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아이는 그녀가 직접 낳았던 그 아이다.이렇듯 아무렇게나 주워온 아이가 아니라 말이다.장소월도 더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네 마음대로 해! 치료 끝나면 호적에 올리고 이름도 지어줘.”전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 달로 정하자. 기성은에게 서류를 준비하라고 할게.”“응.”장소월은 대충 대답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고요한 깊은 밤, 알코올 기운이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장소월은 점점 그윽해지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치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두 번째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전연우가 힘껏 그녀를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압박하고 있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도망치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손이 셔츠 단추를 하나씩 차례로 풀어헤치고 건장하고 단단한 가슴팍을 드러냈다.“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다리를 벌렸고, 그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향했다...장소월은 이 세상 모든 공기가 사라진 듯한 숨 막힘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음란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때, 돌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엔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환청은 아니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밀어내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말했다.“아이한테 가봐야 해.”분위기를 깨는 달갑지 않은 아이 울음소리에 전연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끝나면 가.”“억지 부리지 마. 바늘까지 꽂고 있는 아이야.”“조금만 기다려. 일단 보고 올게.”
“내 말 듣고 있어?”전연우는 무심히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왜 필요 없다는 거야? 난 아이를 길러본 적 없어.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전연우가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난 네가 잘할 거라 믿어. 모르면 책 보고 배우면 되잖아.”장소월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전연우는 후한 상이라도 주는 듯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냥 이 아이와 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안 돼?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이 아이는 앞으로 쭉 우리 옆에 있을 거야.”장소월이 그를 보는 눈빛은 마치 미쳐버린 정신병 환자를 보는 듯했다.“이게 네가 요즘 만든 새로운 게임이야?”“넌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난 아니야. 너와 이런 게임을 즐길 생각은 더더욱 없고. 넌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우린 절대 안 돼.”“아이를 갖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널 위해 낳아줄 여자는 아주 많을 거야.”“네가 나한테 키우라고 한다면 난 키울 수밖에 없어. 난 거절할 방법이 없으니까.”장소월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억지로 짜놓은 허상에 불과한데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그와 인시윤은 혼인신고도 했고, 오늘이 지나면 결혼식도 올릴 것이다. 대체 몇 개의 가족을 원한단 말인가.전연우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싫어도 받아들여야 해.”차갑게 일갈한 그가 몸을 일으켰다.“나 씻어야겠어. 나오기 전까지 아이를 달래놔.”전연우는 거실 밖 욕실로 향했다.장소월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너무 졸려 당장에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큰 눈을 깜빡이며 애써 장소월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칠 때면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전생에서 전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