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선생님.”장소월은 시뻘게진 몸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려왔다.간호사가 침대에 내려놓기 바쁘게 아이가 잠에서 깨어 눈을 감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너무 많이 힘을 준 탓에 머리에 꽂았던 링거 관을 따라 혈액이 역류했다.간호사가 장소월에게 말했다.“보호자분,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 것 같아요. 모유 컵이 있으시다면 어서 모유를 받아 아이에게 먹이세요.”장소월은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죄송해요. 전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유는 있어요.”“아이가 몸이 약해 되도록 모유를 먹여야 해요.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우유라도 따뜻하게 데워오세요.”“네. 지금 바로 가져올게요.”장소월이 다급히 우유병에 우유를 담아왔다.“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간호사가 우유병 온도를 체크하고는 말했다.“네. 이제 먹이시면 돼요.”장소월은 옆으로 내려온 잔머리를 정리하고 우유병을 아이의 입가에 가져갔다.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그쳤다.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처음 하시는 일 같은데 정말 잘하셨어요. 전에 어느 정도 배우셨나 봐요.”“보호자분, 앞으로... 분명 좋은 엄마가 되실 거예요.”순간 우유병을 쥔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간호사가 의료용품을 준비하러 병실을 나서자 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가엾은 이 아이를 보고 있으니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순간 아이의 포도알 같은 큰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장소월은 아이가 또 울음을 터뜨릴까 봐 당황했지만, 아이는 우유를 마시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은 입을 움직여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바람에 입에 넣었던 우유를 모두 토해내 옷을 적셨다. 장소월은 곧바로 우유병을 잡고 휴지로 아이를 닦아주었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 착하지. 밥 먹어야 쑥쑥 크는 거야.”“아.”아이가 장소월의 말을 알아
장소월은 자신이 어디로 가든, 아이의 눈동자가 그녀를 따라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장소월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주의력을 집중시켰다.간호사가 들어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지금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장소월은 새로 산 아이의 옷을 손세탁한 뒤 건조기에 말렸다. 아이가 다 나아 퇴원하고 나면 입을 수 있게 말이다.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장소월은 희미한 조명만 켠 채 병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새벽 두 시.병실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들어와 벽을 더듬어 조명 스위치를 찾았다. 그 순간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본 그는 즉시 손을 멈추고 미약한 조명 불빛을 빌려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장소월은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피부에 맞닿은 뜨거운 체온과 코를 찌르는 역한 술 냄새에 잠이 깨어 번쩍 눈을 떴다.“큰소리 내지 마. 애가 깨.”전연우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거친 손바닥이 치마를 헤치고 들어와 그녀의 하얀 다리에 안착했다. 그가 뭘 하려는지 짐작한 장소월은 손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제지했다.“하루 종일 애 보느라 수고했어.”장소월은 옆에 있는 주정뱅이를 밀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정리했다.“일찍 자.”“난 바깥 소파에서 잘게.”이곳은 VIP 병실이라 일반 가정집처럼 없는 것이 없다. 장소월은 목이 말라 거실에 나가 물을 한 컵 따랐다.그녀가 한 모금 마셨을 때, 어느새 여기까지 왔는지 돌연 전연우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삼켰던 물을 토해낼 뻔했다.전연우는 장소월의 긴 머리를 모두 한쪽으로 넘긴 뒤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했다.“너한텐 예전 같은 긴 머리가 어울려.”오늘의 그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나 물 좀 마시면 안 될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멈추는 전연우의 모습에 장소
장소월은 일에 부딪히면 늘 우유부단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전연우와는 정반대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우리보다 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적합한 가정은 없어. 너만 원한다면 이 아이는 영원히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될 거야.”장소월은 전연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고작 그녀가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 때문에?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아이는 그녀가 직접 낳았던 그 아이다.이렇듯 아무렇게나 주워온 아이가 아니라 말이다.장소월도 더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네 마음대로 해! 치료 끝나면 호적에 올리고 이름도 지어줘.”전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 달로 정하자. 기성은에게 서류를 준비하라고 할게.”“응.”장소월은 대충 대답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고요한 깊은 밤, 알코올 기운이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장소월은 점점 그윽해지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치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두 번째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전연우가 힘껏 그녀를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압박하고 있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도망치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손이 셔츠 단추를 하나씩 차례로 풀어헤치고 건장하고 단단한 가슴팍을 드러냈다.“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다리를 벌렸고, 그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향했다...장소월은 이 세상 모든 공기가 사라진 듯한 숨 막힘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음란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때, 돌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엔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환청은 아니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밀어내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말했다.“아이한테 가봐야 해.”분위기를 깨는 달갑지 않은 아이 울음소리에 전연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끝나면 가.”“억지 부리지 마. 바늘까지 꽂고 있는 아이야.”“조금만 기다려. 일단 보고 올게.”
“내 말 듣고 있어?”전연우는 무심히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왜 필요 없다는 거야? 난 아이를 길러본 적 없어.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전연우가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난 네가 잘할 거라 믿어. 모르면 책 보고 배우면 되잖아.”장소월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전연우는 후한 상이라도 주는 듯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냥 이 아이와 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안 돼?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이 아이는 앞으로 쭉 우리 옆에 있을 거야.”장소월이 그를 보는 눈빛은 마치 미쳐버린 정신병 환자를 보는 듯했다.“이게 네가 요즘 만든 새로운 게임이야?”“넌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난 아니야. 너와 이런 게임을 즐길 생각은 더더욱 없고. 넌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우린 절대 안 돼.”“아이를 갖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널 위해 낳아줄 여자는 아주 많을 거야.”“네가 나한테 키우라고 한다면 난 키울 수밖에 없어. 난 거절할 방법이 없으니까.”장소월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억지로 짜놓은 허상에 불과한데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그와 인시윤은 혼인신고도 했고, 오늘이 지나면 결혼식도 올릴 것이다. 대체 몇 개의 가족을 원한단 말인가.전연우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싫어도 받아들여야 해.”차갑게 일갈한 그가 몸을 일으켰다.“나 씻어야겠어. 나오기 전까지 아이를 달래놔.”전연우는 거실 밖 욕실로 향했다.장소월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너무 졸려 당장에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큰 눈을 깜빡이며 애써 장소월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칠 때면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전생에서 전연우
이들은 모두 금융계 톱급 능력자이자 성공 인사들이다. 프로젝트 계획부터, 위험성 평가까지, 모든 일들을 철저하게 일사천리로 진행한다.전연우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다음 일정을 말해봐.”“앞으로 2주 동안의 일정은 해외 화상 회의를 제외하고 모두 뒤로 미뤘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서류 결재밖에 없습니다.”기성은은 말을 마친 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전연우에게 건넸다. 전연우는 대충 훑어보고는 맨 마지막 장에 사인했다.내일이 바로 전연우의 결혼식이라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2주라는 시간은 전연우가 자신에게 내어준 휴가나 다름없다.기성은은 서류를 받은 뒤 송시아를 힐끗 보고는 방에서 나갔다.송시아는 전연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요염한 자세로 그의 정장 단추를 잠가주었다.“정말 질투 난단 말이에요. 내일이면 결혼을 한다니요...”“연우 씨, 모레 신혼여행에 저도 같이 갈까요?”송시아가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의 가슴팍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내가 네 밑바닥을 저평가했나 보네.”송시아가 그에게 키스하려고 하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멈춰 세우고는 힘껏 소파에 던져버렸다.얼음장같이 차갑게 돌아서는 그를 보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에 지독한 질투의 감정이 선명히 피어올랐다.밑바닥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전생에서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 흘러넘쳤었다. 함께 손을 잡고 도모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전연우... 네 밑바닥은 대체 어딘데?방에 들어가니 이미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전연우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 자신의 몸에 살포시 기대게 했다. 그는 시선을 내리뜨려 만족스러운 얼굴로 어젯밤 남긴 흔적을 감상하며 말했다.“깼으면서 왜 날 찾아오지 않았어?”장소월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옆방에 있는 아이를 보려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그런 그녀를 두고만 볼 전연우가 아니었다. 그는 장소월의 손목을 끌어당겨 다시 무릎 위에 앉혔다.“잠깐만 안
전연우가 병원을 떠난 뒤, 장소월은 아이가 잠들어 있는 틈을 타 그를 보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인시윤은 이미 문 앞 전연우가 고용한 경호원을 돌려보내고 자신의 사람들로 채웠다. 이제 장소월은 걱정 없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그녀가 들어갔을 때, 담당의가 강영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서 선생님, 환자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심장 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약물 양을 조금 줄일까요?”서철용은 펜 뚜껑을 닫은 뒤 의사 가운 가슴 앞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아니. 며칠 더 관찰해보고 명확한 호전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치료를 해야 해.”“네. 서 선생님.”강영수의 주치의가 서철용이었다고?장소월의 인지 속 서철용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그가 전연우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인씨 가문이 모르는 건가?서철용은 유리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말했다.“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요. 소월 씨!”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언제 그녀를 본 거지?장소월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서철용은 옆에 있던 몇 명의 간호사를 내보내고는 말했다.“문 닫아요.”“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서철용이 장소월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그는 의자 하나를 드르륵 끌고 와 다리를 꼬고 앉았다.“긴장하지 말아요. 난 그저 소월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니까.”“난 소월 씨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요?”장소월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대체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요.”“...”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장소월의 모습에 서철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모습 정말 그 사람을 닮았네요. 장해진의 딸이라는 걸 하마터면 잊을 뻔했어요...”“지금 절 갖고 노는 거예요? 서철용, 당신도 전연우와 똑같이 미치광이에요.”서철용은 검지를 쳐들고 좌우로 흔들었다.“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입 밖에 꺼내야 하는 말이 있어요. 지
“김남주를 강한 그룹 안주인 자리에 올리는 건 전연우에게 어렵지 않은 일에요. 김남주가 강영수와 결혼하는 데에 성공하기만 하면...”장소월이 망연하게 물었다.“김남주를 강씨 집안 며느리로 앉히는 것과 강한 그룹을 손에 넣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예요?”장소월을 보는 서철용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직도 모르겠어요? 강씨 집안 유일한 후계자인 강영수가 죽으면 그 아이가 바로 강한 그룹 다음 후계자가 되는 거예요.”장소월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하지만 인씨 집안이 있잖아요. 전연우는... 인씨 집안을 당해내지 못해요.”“인씨 집안이요?”서철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4년 전이든, 4년 후의 오늘이든, 전연우가 인시윤과 결혼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에요. 인씨 가문의 지지가 있다면 전연우는 손쉽게 강한 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요.”“소월 씨의 존재는 강영수를 공격하는 무기에 불과해요.”서철용이 한 걸음 내디디며 간신히 호흡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강영수가 저렇게 된 건 소월 씨 때문이에요. 그때 소월 씨가 떠나지 않았다면, 강영수가 소월 씨를 찾아 나서는 일도 없었을 거니까요. 전연우는 거기까지 예상하고 소월 씨를 찾으러 나갔죠. 그리고 그 교통사고...”“다만 죽은 건 강영수가 아니라 김남주였죠!”장소월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그러니까... 그 교통사고... 전연우가 벌인 일이란 말이에요?”서철용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그녀에게 명확한 정답을 알려주고 있었다.“소월 씨, 봐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저 지경이 되었어요. 대체 죽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어요.”“강한 그룹은 이미 풍비박산해 폐허가 되어버렸고, 마지막으로 남은 저택까지 전연우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어요.”“소월 씨는 전연우가 강한 그룹을 손에 넣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전연우가 소월 씨를 곁에 두고 있는 건 소월 씨에게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강한 그룹이 서서히 쇠락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
서철용이 떠난 뒤, 그가 했던 말들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장소월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장소월은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응시하며 가까이 다가갔다.“영수야, 정말 다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너도 지금처럼 누워있지 않았을까?”장소월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으로 인해 고초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병실에서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그녀가 젖은 면봉으로 그의 입술을 적셔주려고 할 때, 잡고 있던 강영수의 손에서 선명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긴장감과 환희가 섞인 얼굴로 조심스레 그를 살펴보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영수야, 내 말 다 듣고 있었던 거 맞지?”“내가 아는 강영수는 분명 다시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어.”“어서 눈 떠봐, 응?”그때, 장소월은 강영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그녀가 환희에 찬 얼굴로 말했다.“눈 뜨고 날 봐. 날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 알아. 이제 내가 이렇게 돌아왔잖아.”심장 파동이 대폭 증가하고,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장소월은 호흡을 멈추고 그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강영수가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몇 층으로 겹쳐 보였고 한참 뒤에야 장소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잠깐의 하얀 공백이 일더니, 이어 수많은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소... 소월?”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뜨거운 눈물이 그의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올게.”장소월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의사에게 달려갔다.“선생님... 영수가 깨어났어요.”얼마 되지 않아 담당 의사들이 신속히 달려왔다.장소월은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환자분은 꽤 안정된 상태입니다. 일단 담백한 죽을
소민아는 임신했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신이랑이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몸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소민아가 잠들었을 때, 신이랑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그는 방에서 나와 발코니로 향했다.신이랑은 발신자 이름을 보고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전화를 받았다.성세 그룹 대표 사무실은 여전히 환하게 조명이 켜져 있었다.신이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기성은이 날카로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소현아 씨는 무사히 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민아 씨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민아 씨는 충분히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만 없다면요.”기성은이 이렇게나 빨리 그들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신이랑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소민아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다만 그의 자격지심과 나약함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 민아 씨 일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이제 두 사람 아무런 관계도 아니잖아요.”기성은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기는 잘 자라고 있나요?”신이랑이 대답했다.“나랑 민아 씨 아이예요.”오랜 침묵 끝에야 기성은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그 일은 사람을 보내 조사를 마친 뒤 내일 알려줄게요.”“네.”모두 소민아를 위한 일이다. 그녀가 소현아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여 그는 신이랑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주가은이 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 “왜 아직도 안 자요? 방금 누구랑 통화했길래 얼굴이 그렇게 안 좋은 거예요?”“아직 처리할 일이 좀 있어요. 먼저 자요.”주가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곧바로 눕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던 중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들뜬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곧 옆방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그녀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아직도 소민아가 그렇게 좋아요?
30분 뒤, 강용은 집으로 돌아왔다.와구와구 음식을 먹고 있는 소현아 옆, 장소월의 얼굴엔 바깥 상황에 대한 걱정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어때? 그 사람 아직도 우리를 찾고 있어?”강용은 소현아를 흘끗 쳐다보고는 천천히 장소월에게 다가가 말했다. “걱정돼?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준비해뒀어. 전연우한테 다시 잡혀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난 이제 그 사람이랑 아무 상관도 없어. 잡혀간다고 해도 무섭지 않아. 다만 별이가 따라다니면서 고생할까 봐 걱정돼. 전에 봤을 때도 많이 마른 것 같았거든.”“나쁜 자식. 널 다시 데려오려고 어린아이까지 끌어들이다니.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처럼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것보다는 그놈과 함께 있는 게 나을 거야.”“절대 그 아이 때문에 마음 약해지지 마. 전연우의 계략에 빠지면 안 돼.”“걱정하지 마. 다시는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을 거야.”강용은 장소월의 결연한 눈동자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이 때문에 물러설까 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소현아가 옆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가왔다. “소월아, 우리 여기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해? 전에 살던 큰 집이 그리워. 여긴 하나도 안 좋아. 뭔가 이상해.”“이틀만 더 참아. 이틀 후에 강용이 우리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 거야. 지금 우리는 나쁜 사람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사람들에게 잡히면 안 돼, 알았지?”“정말? 나 어릴 때 이 게임 제일 좋아했었어. 민아가 항상 날 못 찾겠다고 울어서 결국 내가 먼저 나와서 잡혀줬었지. 이건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 지금 숨을 곳을 찾을게. 소월아, 너희도 빨리 나 따라와.”강용과 장소월은 소현아를 따라 침실로 숨어들었다. 소현아는 옷장에 숨고 싶어 했지만 장소월이 막았다.“여긴 들어가지 말자. 옷장이 너무 높아. 배 속에 아이도 있는데 조심해야지.”“안 돼, 우리 모두 방 안에 있으면 너무 위험해. 나쁜 사람이 와서 방문을 열면 한꺼번에 다 잡히잖아. 안
“네가 예전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고 싶어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제 그만해! 또다시 소월 씨 주변 사람들을 해치면, 소월 씨한테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난 분명히 말했으니까, 일이 잘못돼도 나 찾지 마!” “뚜뚜...” 서철용은 화가 치밀어 올라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녀 주변 사람들을 해친다고? 그가 손을 쓰지 않아도, 이미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친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전연우는 그저 그의 아내만을 원할 뿐이다. “리샬!” “보스! 무슨 일이십니까?” “세 사람을 잘 감시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해.” 그 말을 들은 리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연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지시한 일은 120%의 정신력으로 처리해야 했다. “보스,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임무 반드시 완벽하게 완수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도련님께서 계속 사모님을 찾으며 울고 계십니다. 도저히 달랠 수가 없습니다.” 전연우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데려와.” 리샬이 엉엉 울고 있는 별이를 전연우 앞에 데려왔다.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얼굴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만약 별이가 우리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네 마음이 약해질까?’ 전연우는 감히 자신 앞에서 울지 못하고 훌쩍거리기만 하는 별이를 보니 마음이 조금 녹아내렸다. 그는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소월이는 분명 마음 아파할 거야.” 별이는 전연우의 어깨에 얌전히 기대앉아 있다가 그가 장소월을 언급하자 입으로 연신 중얼거렸다. “엄마... 엄마...”“엄마는... 곧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 별이는 그의 따스한 품속에서 잠이 들었고, 전연우는 직접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준 뒤 방을 나섰다. 장소월과 소현아, 강용 세 사람은 집에서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다. 별장 주인이 친절하게 그들을 대접했지만, 불안한
리샬은 조용히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 이곳의 부동산은 대부분 전연우의 소유였다.모두 예전 세계 경제 위기 때 그가 매입한 것들이었다. 전연우는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장소월의 말을 기억하고 전국 각지에 집을 마련해 놓았다. 그녀가 가겠다고만 하면, 수시로 함께 떠날 생각이었다. 그들의 아이와 함께, 설사 그들뿐이라 해도... 전연우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계획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연우는 적잖게 술을 마셨고, 점점 더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소월아,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피할 생각이야.”장소월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감금되어 있었고, 전연우와 송시아는 다정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서 화를 돋우고 있었다. 그녀는 쇠사슬에 묶인 채 다른 여자들과 끈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장소월은 아픈 심장을 움켜쥐고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났다. 너무나도 괴로운 감정은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전연우, 지금 네 부와 권력이라면 그 어떤 여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잖아. 네가 남의 감정을 어떻게 농락하든,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어. 왜 아직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 거야...’ 장소월은 휴대폰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 번호를 눌렀다. 서철용은 한창 아이를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배은란은 얼마 전에 그녀와 눈매가 닮은 딸을 출산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아이를 내려놓고 방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연우가 깨어났다는 거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서철용은 허탈한 얼굴로 문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나 감시당하고 있어요. 미안해요. 그놈이... 기어이 소월 씨 찾아냈네요.” “참 뻔뻔하시네요. 그 사람과 연락이 닿을 수 있다면 전해주세요.” “제가 언젠간 강제로 끌려가는 날이 온다면, 그건 분명 시체일 거라고.” “이제 저한텐 아무것도 없어요. 때문에 협박
“나도 갈 거야. 나도 그 나쁜 놈한테 잡혀가기 싫어. 소월이랑 강용이 어디를 가든, 현아도 함께 따라갈 거야.”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겉으로는 즐겁고 편안한 모습이었지만, 장소월은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찍혀버렸으니, 분명 헤쳐나가기 힘든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어쩌면... 그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죽을 때까지 전연우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연우가 놓아주지 않는 이상, 장소월은 떠날 방법이 없다. 그녀는 정말이지 서울이라는 감옥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곳을 떠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강용이 대답했다. “있어. 이미 연락했어.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쉬자. 내일 친구가 헬리콥터 보내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여기에 친구가 있다고?” 강용은 바닥에 앉아 다리 한쪽을 세우고 손을 머리 뒤에 받힌 채 산야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2년 전에 그 무리에게 쫓겨 이곳까지 흘러오게 됐는데, 그러다 조난당한 사람을 만났어. 큰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어서 내가 구해줬어. 나중에 그 사람도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줬어. 그렇게 우정을 쌓아갔지.” “어젯밤 내가 물어봤는데, 늦어도 내일은 도착한다고 하더라고. 빠르면 오늘 밤에 도착할 수도 있어.” 장소월은 그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있다니. 결국 우리가 너한테 민폐를 끼쳤네.” “강용,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네가 잘못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 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 줄기 빛이 얼굴에 쏟아지자 그는 손바닥으로 빛을 가렸다.“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어. 정처 없이, 발걸음이 닿는 대로 가는 거지 뭐.”“이게 네가 원했던 자유로운 삶 아니야?” 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자유로움 뒤에는 늘 외로움이 동반하는 법이다.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는 잃어야 하는 게 세상 이치
결코 그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강용, 그만해.” “대체 누가 우리 위치 폭로한 거지? 바보야, 혹시 누구한테 메시지 보냈어?” 강용의 추궁에 소현아는 즉시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민아가 물어봤을 때도 아무 말 안 했단 말이야.” “소월이 말대로 핸드폰 유심칩도 이미 버렸어.” “아빠 엄마 전화번호는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 적어놨어.” 장소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누군지 알 것 같아.”“서철용일 거야. 그 사람 말고는 내가 있는 곳 아는 사람 없어. 신분증도 모두 그 사람 도움으로 만든 거잖아. 진작에 예상했어야 했어. 서철용은 전연우의 사람이야. 그 사람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전연우는 나 찾지 못했을 거야.” “전에 네가 말했던 그 의사 말하는 거야?” 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네가 말했지, 전연우 외에 또 다른 무리가 너 쫓았었다고. 나 이제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아.” 정리가 거의 끝나가자 그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무리가 강지훈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용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못마땅한 듯 삐딱한 태도로 소현아에게 말했다. “야, 바보야.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냐?” 소현아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강용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강용.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소월이 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너인데,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너 괴롭히게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시킨 거 아니야. 강지훈은 정말 나쁜 놈이야... 전에 쇠사슬로 사람을 때리는 거 봤는데, 배 속에 있는 창자까지 다 드러나고 바닥엔 피가 흥건했어. 그것 때문에 며칠 동안 악몽 꾸고, 무서워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강용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푹 널브러지고는 소현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대단해!”“대단해! 정말 대단해! 소현아, 내가 어쩌다 널 만났을까. 우리 강씨 가문이
전연우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리샬이 태블릿을 들고 전연우의 병실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지역에 들어가신 후 신호가 사라졌습니다.”전연우는 눈을 감고 침대에 기대앉았다.“오늘은 그만하면 됐어. 나가봐.”“알겠습니다.”그가 가까이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그녀는 더 깊숙이 몸을 숨길 것이다. 그녀가 시내로 발을 디딘 순간, 즉시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소월아, 7일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시간이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와 함께 떠나야 할 거야.’강지훈은 전연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에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본 순간, 서늘했던 그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강지훈은 흥미로운 듯 의자에 앉았고, 뒤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이렇게 엉망인 모습은 처음 보네요. 어때요? 버림받은 기분이?”“아, 참. 그 여자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소용없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그 여자 당신과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설사 돌아간다 해도,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여자를 옆에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많은 돈을 생판 남에게 물려줄 리는 없을 테고.”“당신한테 어울리는 여자 소개해 줄까요? 당신한테 아기를 낳아줄 여자 말이에요.”강지훈은 사람을 약 올리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바보 하나랑 노는 게 그렇게 즐거워?”강지훈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시원한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밖에 있던 간호사가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듣고 제지하러 들어가려 했지만, 문밖의 경호원들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들의 허리에 찬 총을 본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강지훈은 다시 반격했다. “내 여자는 내 아이를 둘이나 가졌어요. 전연우 씨... 당신 여자는 어때요?”전연우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강지훈을 쏘아보고
“알겠습니다.”이미 정체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전연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울고 있는 별이를 전연우 곁으로 데려왔다. 별이는 얼굴 분장을 지웠지만, 분홍색 드레스는 여전히 입고 있었다.“네가 여자아이였다면, 엄마가 떠나는 게 더 어려웠을까?”별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빤히 바라보며 옹알이를 했다.“엄... 엄마...”전연우는 보기 드문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말에 답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별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전연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강용은 주변 길에 꽤 익숙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무인 구역에 도착했다. 액셀을 끝까지 밟고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강용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소현아는 가슴을 움켜쥐고 토할 것 같은 충동을 참았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힘들면 나한테 기대서 좀 자.”“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흐어엉... 소월아, 나 강지훈한테 잡혀가기 싫어.”장소월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괜찮아. 우리 이제 안전해.”강지훈에게 이 지역의 경찰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기와 탄약을 합법적으로 휴대할 수 있는 곳에는 강지훈만의 인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소현아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알기만 하면 즉시 도시 전체를 포위하여 그녀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봉쇄 직전, 강용이 모는 차가 딱 30초, 간발의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이다.강지훈은 소현아가 묵었던 호텔을 찾아갔다. 스위트룸 안, 침대에 던져진 임부복 드레스와 머리맡에 놓인 소현아의 사진이 보였다. “멍청한 년, 그깟 사람 하나 못 잡고, 뭐 하는
소현아는 규영과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제 이름은 김소단이에요.”규영은 즉시 소현아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미경아, 빨리 주인님 모셔와. 현아 아가씨 찾았어.”소현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아아아... 나쁜 사람. 빨리 이거 놔요.”“살려주세요! 임신부를 납치하려고 해요!”“미경아, 빨리 와... 아가씨, 더는 도망가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찾으러 오셨단 말이에요. 주인님은 아가씨를 잊지 않으셨어요.”“난 당신 몰라요. 놔줘요!”아무리 용을 써도 규영을 뿌리칠 수 없자, 소현아는 그녀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규영은 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현아 아가씨...”소현아는 작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재빨리 도망쳤다.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병원으로 달려갔고, 마침 강용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과 마주쳤다.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조심해. 뛰지 마.”“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소현아는 체형이 약간 통통한 데다 평소에 운동도 부족했던지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소현아가 다급히 말했다.“큰일 났어... 소월아, 강지훈이 나 찾으러 왔어. 방금 쇼핑몰에서 규영이랑 마주쳤어.”“흐흑... 소월아, 강지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현아는 너희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전연우 하나로도 모자라 이제 강지훈까지 나타나다니. 장소월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전연우는 강용이 풀어놓은 수면제를 먹고 기절한 상태라 당분간은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강지훈도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연우보다 상대하기 훨씬 어려운 인물이었다. 장소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용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강용이 말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