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다행히도 그림들은 소각되지 않았다. 그 그림 중 일부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장소월은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2층 안방에 들어갔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또다시 전연우의 방으로 갔는데 마침내... 그녀는 그 그림들을 찾아냈다. 모두 흰 천으로 덮여 있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장소월은 손을 떨면서 그림을 만졌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녀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다.그녀는 이 그림들을 다시 자기 방으로 옮겼고 이 역시 원래 그녀의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문을 나서자마자 하인이 그녀를 가로막았다.“이보세요, 이 물건들은 절대 움직이면 안 됩니다.”장소월은 싸늘하게 말했다.“저도 방금 이 물건들은 원래 제 것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다른 하인도 장소월을 못마땅하게 여겼다.“제가 보기에 이 사람은 망상증에 걸려서 미친 거 같아요!”“일단 그림을 가져와야 해요.”하인이 앞으로 나서자 검은 슈트를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위층으로 성큼성큼 올라와서 그 하인 두 명을 끌고 내려갔다. 그리고 공손하게 장소월에게 말했다.“대표님께서 여기 있는 물건은 아가씨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하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아래층으로 끌려갔다.무슨 일인지 물으려고 했는데 이미 해고되었다고 통지받았다.“왜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우리를 해고해요?”경호원 한 명이 차갑게 말했다.“이건 사장님의 결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상기시켜 드리지만 이 별장은 장가네 것입니다. 위에 있는 사람은 장가네 아가씨입니다. 앞으로 누가 감히 무례하게 큰 아가씨에게 무례하게 굴면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여러분의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나머지 하인들은 겁에 질려 말하지 못했다.그들은 여기서 몇 년간 일한 하인들이어서 장가네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그들이
인정아는 우아한 자태로 비서가 가져온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자네가 장소월이 돌아오자마자 시윤이를 남원별장에서 쫓아냈다고 들었네. 내가 시윤이를 자네한테 맡겼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자네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힘으로 된 것인지 잊으면 안 되지.”전연우는 책상 앞으로 곧장 걸어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사모님께서 한 말씀은 제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배은망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 여기에 온 것도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전연우는 자리에 앉아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였다.인정아가 냉소했다.“계속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인씨네 데릴사위로서 이렇게 예의를 몰라서 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장모님이라고 불러야지!”인정아는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서 전연우 앞으로 걸어가 붉은 청첩장을 꺼냈다.“이것은 내가 짠 한 달 뒤 연회 손님 초대 명단이야.”전연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 명단을 집어 들어 펼쳐보니 첫 번째 이름은 장소월이었다.그는 청첩장을 탁 닫았다.“저는 사모님께서 똑똑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인정아의 얼굴빛이 순간 어둡게 변하였다.“자네는 이미 4년 동안이나 질질 끌었어. 지금이라도 그때 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가 계약을 맺은 것을 잊지 마.”“지금 와서 옛날얘기를 하면 소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계약서가 저에게 아직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세요?”인정아는 테이블을 툭 쳤다.“지금 시윤이와 결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거야? 시윤이 마음은 7년째 자네에게 있어. 개를 키워도 지금이면 주인 말을 잘 따를거야. 어떤 사람이 한 사람에게 7년을 허비하겠는가. 자네가 어떻게 내 귀한 딸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가!”전연우는 다리를 꼬아 담배 하나를 꺼내 피고 흰 안개를 뱉으며 물었다.“사모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인정아는 눈 밑에 한기가 서리며 그를 협박
말을 하자마자 장소월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보자 장소월은 머뭇거리다가 수신 버튼을 눌렀고 좋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3일 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시간이 다 안 됐잖아.”“제사를 지내러 가고 싶으면 먼저 내 회사로 와.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 같이 갈게.”“같이 가줄 필요 없어. 나는 혼자 갈 수 있다고.”“안 가던가, 나랑 같이 가던가, 네가 직접 선택해!”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결국에는 그의 말에 순종했다.“회사 밑에서 기다릴게.”그녀는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아침에는 맑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갑자기 어두워지고 안개 낀 하늘을 보니 저녁이 되면 폭풍우가 내릴 것 같아 장소월은 만일을 대비해 우산을 준비했다.경호원은 차를 몰고 장소월을 뒷좌석에 태우고 약 1시간을 달려 성세그룹 빌딩 아래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차 안에 앉아 손에 도라지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는데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전설에 따르면 도라지꽃이 피면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다시 행복이 피면 누군가는 행복을 붙잡을 수 있고 누군가는 잡지 못하여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어릴 적 별장 화원에 도라지꽃을 한 아름 심었는데 오 아주머니가 어머니께서 예전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꽃들이 왜 하룻밤 사이에 시들어버렸는지 모르겠다.장소월은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 고개를 들어 꼭대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빌딩을 바라보았다.거의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누군가가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장소월은 시선을 거두고 차분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3일 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 때문이다.전연우는 차에 올라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오랫동안 맡지 못했던 그녀의 냄새를 맡았는데 예전과 똑같았다.“저녁에 식당을 예약했어.”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대답했다.“가자! 곧 비가 올지도 몰라.”차가 시동을 걸었다.전연우는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색 긴 치마를 주의 깊게 보았는데 그의
장소월이 웅크려 앉아서 보니 아직 마르지 않은 꽃다발이었는데, 이 꽃다발은 그녀의 손에 들린 꽃다발과 똑같게 생겼다. 손가락으로 묘비를 닦았는데 그 위는 깨끗했고 주변 잡초도 며칠 전에 누군가가 치운 듯했다.아버지가 오셨을 리가 없는데, 그는 이미 장만옥과 싱가포르에 갔다.그럼 누구지?묘비에는 사진이 없고 어머니의 이름 윤세희만 새겨져 있었다.그 당시의 윤세희는 경국지색의 미인이었고 서울 귀족들에게서 제1의 미인으로 불렸다.장소월도 윤세희의 외모를 물려받았다.전연우는 한쪽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피우다가 땅에 세 번째 담배꽁초가 떨어지자 장소월이 비로소 일어났다.‘엄마, 곧...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이번에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돌아가자.”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더니 곧 비가 올 것 같았다.지금 떠나지 않으면 이따가 하산하는 길이 더 힘들어질 거다.“더 말하지 않을 거야?”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가자.”산 아래로 내려가자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고 차 안에 앉아 있던 장소월이 몸에 걸친 검은 슈트를 벗어 돌려주며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전연우는 또 슈트를 그녀의 다리 위에 덮었다.“밤에는 추우니 먼저 덮어.”도덕군자인 척을 하기는.장소월은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기성은은 차를 몰고 구영관에 도착했다. 지배인은 전연우가 온다는 것을 알고 공손하게 맞이했고 얼굴에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짓했다.“전 대표님, 룸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전연우는 자연스럽게 장소월 옆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장소월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장소에서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그를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는데 그녀가 어떻게 힘을 써도 벗어날 수 없었다.전연우와 인시윤이 약혼한 것은 온 서울이 다 아는 사실인데 지금 다른 여자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왔다니...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소월은 알고 있다.사람들은 장소월을 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모
“지배인님, 남자분은 성세 그룹의 대표님인 거는 저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분께서는 인씨네 아가씨와 약혼하지 않았어요? 근데 저 여자는 누구에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바람을 피운 건 아니겠죠?”지배인은 걸어오는 기성은을 보며 종업원을 향해 사납게 호통을 쳤다.“그 입 다물지 못해! 다시 함부로 말하면 쫓아낼 줄 알아!”장소월은 이곳의 생선을 즐겨 먹는데 그녀가 젓가락질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이미 생선 가시를 발라내어 그녀의 그릇에 넣어 두었다.그는 조금 전 지배인이 덜어준 국을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릇째 쓰레기통에 버렸다.“이렇게 많이 못 먹어. 괜찮아, 천천히 먹으면 돼. 다 못 먹으면 테이크아웃해서 야식으로 먹어도 되고.”장소월은 생선 반 마리를 먹고 생선탕 두 그릇을 먹었는데 전연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식사는 두 사람이 조화롭게 먹는 몇 안 되는 한 끼였다.“나는 배불러. 오빠 혼자 먹어.”장소월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낭비하지 말고 그릇에 남은 것도 다 먹어.”전연우는 생선 한 점을 집어 그녀의 입가에 건네주었고 한 손은 아래에 받쳤다.장소월은 그가 겉치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잘해주는 것은 다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전연우는 그가 지금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전생에서 그녀가 모두 겪어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장소월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화장실에 다녀올게.”전연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떠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조금 전의 부드러움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었다.손을 들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 가까이 밥을 먹었다.이때 룸의 문이 열리고 키 크고 검은 스타킹을 신고 청순한 얼굴을 한 사람이 들어왔다.“대표님, 과일은 서비스입니다. 먼저 테이블을 치워드리겠습니다.”룸에서는 기름과 담배 냄새가 나서 종업원은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또 쟁반을 들어 거의 먹지도 않은 음식을 치우고 또 반대편으로 가서 접시에 놓여 있는 뼈를 치우는데 갑자기
장소월은 그녀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손을 보여줘 봐, 아파?”“안 아파요.”장소월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정말 착하네. 엄마는 어디 갔어? 왜 여기 혼자 있어?”소녀는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엄마가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어서 제가 몰래 갖다주러 갔어요.”장소월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친화력이 있어 이 어린 소녀도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그래. 혼자 여기서 기다리면 위험하니 가게로 들어갈까?”“네, 좋아요.”장소월은 그녀의 태어나지도 않고 세상을 떠난 아이가 생각났다. 딸인데 만약 그녀가 살아 있다면 지금 이 소녀처럼 사랑스럽게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까?아이의 일은 장소월 평생의 아픔이다.하지만... 그녀는 다시는 아기를 갖지 못한다.전연우가 언제 나온지 몰랐고 장소월은 일어나 그와 눈을 맞추었다...장소월은 그와 함께 차에 탔고 기성은은 다 먹지 못한 음식을 싸서 트렁크에 실었다.두 사람은 모두 침묵했다. 아이의 일은 그들 사이에서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선 같았다.전연우는 이번 생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합치면 사형을 받을 만하다.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유일하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장소월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변하고 일도 많이 있었는데 전연우가 예측 못 한 것은 그가 장소월에 대한 감정이다.그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바로잡을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어떤 일은...그는 평생도 보상할 수 없다.남원별장 앞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소월은 차에서 내리자 돌아보지도 않고 들어갔다.전연우는 그녀가 야윈 몸을 끌어안고 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기성은 더러 차를 몰고 떠나게 했다.그리고 이틀 동안, 전연우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장소월은 모처럼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전연우를 만나지 않아서 좋았는데 다른 불청객이 찾아왔다.장소월은 3층에서 인시윤이 레드 페라리를 몰고 문
“다들 가서 일 보세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어요.”“알겠습니다.”하인들은 떠났고 큰 별장에는 그들만 남았다.“우리 다음 달 9월 20일에 결혼해.”그날은 인시윤의 생일이다.“축하해!”인시윤은 금박을 입힌 청첩장을 꺼내 장소월 앞으로 건넸다.“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 될 건데 예전 일 때문에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날은 참석 하길 바라.”장소월은 붉은 청첩장을 보며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벌써 잊어버렸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해.”“그리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꼭 해야겠어... 너와 연우 씨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라는 거 알고 있어. 게다가... 나도 바보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연우 씨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이 갔어!”장소월은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고 잠옷 자락을 잡고 있었다.그때 생각을 하니... 장소월은 부끄러운 마음 외에도 자신을 증오하는 마음이 더 컸고, 결국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되었다.“소월아, 내가 연우 씨와 결혼하면 네가 서울을 떠나줄 수 있어? 내가 거의 7년 동안 온 마음을 연우 씨에게 쏟았는데 지금은 연우 씨가 없으면 안 돼. 만약 그날 연우 씨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미쳐 버릴 거야. 그때 오빠 옆에 김남주가 있어서 네가 떠난 거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남의 감정에 끼어드는 그런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너의 존재가 무섭고 불안해. 심지어... 하루 종일 헛된 생각만 하고 있어. 나는 너와 화목하게 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인시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장소월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장소월 자신으로 변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이 장면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다시 한번 눈을 감고 뜨자 인시윤이 또 송시아의 모습이 되었다.머릿속
전연우가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고? 아직 잠자리를 한 적도 없다고?믿을 수 없는 인시윤의 말에 깜짝 놀란 장소월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그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장소월의 인식 속 전연우는 절대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자신의 이익과 야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다.그럼 송시아는?백윤서는?전생에서 전연우는 백윤서의 죽음 때문에 송시아와 관계를 맺었었다.지금 인시윤은 장소월에게 전연우의 마음속엔 오직 그녀 한 명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소월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전연우가 직접 죽인 그 아이가 그는 완전히 그녀에게 등을 돌렸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적나라하게 증명해준다.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네가 믿을진 모르겠지만 네 연적은 내가 아니라 지금 전연우 옆에 있는 송시아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탄 내는 파렴치한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아.”“난 이만 방에 들어갈게.”“연우 씨가 정말 송시아를 좋아한다면 왜 바로 사귀지 않았겠어? 장소월... 거짓말로 날 현혹하려 하지 마.”전연우와 송시아 사이에 정말 무언가 있었다면 그녀가 왜 몰랐겠는가?성세 그룹 직원들 중 절반은 인하 그룹 사람이다. 그들은 인씨 가문의 눈이기도 하다.둘 사이에 미묘한 변화라도 있었다면 인시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때문에 인시윤의 눈에 장소월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다.벼랑 끝에 몰려 미쳐버린 인시윤은 곧바로 폭력적인 본모습을 드러내고 장소월을 잡아챘다.인시윤의 날카로운 매니큐어가 장소월의 손목에 붉은 생채기를 냈다.장소월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시선이 손목에 남겨진 상처에 향했다.“만약 내가 곧 죽는다면?”“너... 너 뭐라고 했어?”장소월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덤덤히 말했다.“인시윤... 나 곧 죽는대.”“그러니까 아무도 너한테서 전연우를 빼앗지 못해. 이제 알겠어?”인시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나랑 장난해?”장소월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