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가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고? 아직 잠자리를 한 적도 없다고?믿을 수 없는 인시윤의 말에 깜짝 놀란 장소월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그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장소월의 인식 속 전연우는 절대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자신의 이익과 야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다.그럼 송시아는?백윤서는?전생에서 전연우는 백윤서의 죽음 때문에 송시아와 관계를 맺었었다.지금 인시윤은 장소월에게 전연우의 마음속엔 오직 그녀 한 명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소월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전연우가 직접 죽인 그 아이가 그는 완전히 그녀에게 등을 돌렸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적나라하게 증명해준다.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네가 믿을진 모르겠지만 네 연적은 내가 아니라 지금 전연우 옆에 있는 송시아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탄 내는 파렴치한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아.”“난 이만 방에 들어갈게.”“연우 씨가 정말 송시아를 좋아한다면 왜 바로 사귀지 않았겠어? 장소월... 거짓말로 날 현혹하려 하지 마.”전연우와 송시아 사이에 정말 무언가 있었다면 그녀가 왜 몰랐겠는가?성세 그룹 직원들 중 절반은 인하 그룹 사람이다. 그들은 인씨 가문의 눈이기도 하다.둘 사이에 미묘한 변화라도 있었다면 인시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때문에 인시윤의 눈에 장소월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다.벼랑 끝에 몰려 미쳐버린 인시윤은 곧바로 폭력적인 본모습을 드러내고 장소월을 잡아챘다.인시윤의 날카로운 매니큐어가 장소월의 손목에 붉은 생채기를 냈다.장소월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시선이 손목에 남겨진 상처에 향했다.“만약 내가 곧 죽는다면?”“너... 너 뭐라고 했어?”장소월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덤덤히 말했다.“인시윤... 나 곧 죽는대.”“그러니까 아무도 너한테서 전연우를 빼앗지 못해. 이제 알겠어?”인시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나랑 장난해?”장소월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
12시에 맞춰 전연우가 도착했다.도우미들은 이미 점심 식사 준비를 마쳤다.여태까지 전연우는 늘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었다.하지만 오늘은 먼 거리를 달려왔다. 장소월은 그가 온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전연우는 집에 들어온 뒤 곧바로 겉옷을 벗고 도우미를 모두 내보내고는 장소월 한 명만 남겼다.오늘 점심은 아주 풍성했다.탁자 위 미처 치우지 못한 찻잔을 본 전연우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오늘 누가 왔었어?”장소월은 밥상 위 음식을 몇 술 뜨고는 부인하지 않았다.“내가 인시윤을 불렀어. 물어볼 게 좀 있어서.”전연우의 시선이 그녀의 팔에 남아있는 손톱에 긁혀 생긴 상처에 향했다.“무슨 일인데 나한테 묻지 않고?”“여기 아파?”장소월이 움찔하며 말했다.“괜찮아. 밥 먹어.”전연우가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부부 같았다.“3일이 지났어. 대답은?”장소월이 말했다.“여기 남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전연우가 어이없는 말이라도 들은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의 제일 매력적인 곳이 어디인지 알아?”“...바로 네 몸이야, 소월아! 네 몸보다 유혹적인 건 이 세상에 없어.”장소월은 순간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맛있었던 이 반찬도 돌연 너무 짜게 느껴졌다.“너한텐 엄연히 법적 아내가 있어. 이러면 인시윤한테 미안하지 않아?”그녀는 인시윤이 준 청첩장을 꺼냈다.“시윤이가 두 사람의 결혼식에 날 초대했어. 난 응했고.”“네가 아직 날 네 동생으로 생각한다면, 시윤이한테 미안한 일 다시는 하지 마. 앞으로 인시윤은 내 새언니야.”전연우가 말했다.“내가 인시윤과 결혼하길 바라?”“내가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네가 내 말대로 하기나 해?”“안 될 게 뭐가 있어?”“전연우, 결혼은 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야. 인시윤은 몇 년 동안 줄곧 너한테 애정을 쏟았어. 어떻게 그런 사람을 버리려고 할 수가 있어? 인시윤도 사람이야. 이렇게 상처 주면 너 벌 받
전연우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는 장소월의 얼굴을 움켜쥐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한 모든 결정을 틀리지 않았어.”전연우는 그녀를 무릎에 앉힌 채로 밥을 모두 먹게 한 뒤에야 놓아주었다.그는 이어 장소월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자신이 좋아하는 원피스로 갈아입혔다. 그녀는 마치 아름다운 바비 인형처럼 전연우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장소월은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가디건을 걸친 뒤 결국 그의 차에 탔다.서울시에서 가장 큰 쇼핑몰 성세 백화점.이곳은 부잣집 사모님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부터 고급 액세서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전연우는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장소월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들의 뒤엔 경호원이 늘 따라다녔다.그들은 한층 한층 걷고 또 걸었다.전연우가 그녀에게 말했다.“사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나 정말 필요한 거 없어. 난 집에 가고 싶단 말이야, 전연우!”장소월은 어려서부터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차분하게 그녀를 달랬다.“물건을 다 사면 집에 데려다줄게.”실상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을 애틋한 커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했다. 그곳엔 가구 전문 매장들이 들어서 있었다.매니저가 곧바로 달려와 두 사람을 가구를 진열한 홀에 안내했다.“대표님, 보세요. 모두 최고급 재료로 만든 가구들입니다. 침대도 있고 옷장도 있어요. 뭘 사시려는 거예요?”전연우의 시선이 장소월에게 닿았다.“어떤 게 마음에 들어? 골라봐.”장소월은 그를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사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알아서 골라.”장소월은 말을 마치고 난 뒤 곧바로 몸을 돌렸다. 전연우의 얼굴이 못마땅한 듯 일그러졌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허리를 끌어당긴 뒤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말을 안 들으면 이 오빠가... 화낼 거야!”“소월아, 그 후과가 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매니저는 그들
“혼자 들어가. 난 바깥에서 기다릴 테니까. 남자가 속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비웃음거리가 된단 말이야. 착하지? 난 여기에서 기다릴게. 이 카드 줄 테니까 사고 싶은 거 마음껏 사. 이따가 밤에 한 벌씩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말고.”남자가 말을 마치고는 여자친구의 볼에 살짝 키스했다.그녀는 카드를 보자 요염한 자태를 취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진짜 미워 죽겠어. 흥.”남자는 건들거리며 여자의 엉덩이를 힘껏 움켜쥐었다.그 동시에 문 앞에 서 있는 장소월을 보자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였다.하지만 그가 한 걸음 떼기도 전에 경호원이 그를 막아섰다.“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더럽게 사납네!”남자는 장소월과 멀리 떨어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장소월을 힐끗거렸다.“이봐요, 아가씨, 경호원 너무 사나운 거 아니에요?”장소월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는 양아치 같은 말투를 보니 또 어느 집 도련님이겠지.“엄청 차갑게 구네요. 내 말 무시하지 말고 전화번호나 알려줘요. 저녁에 같이 놀래요? 내가 남자 소개해 줄게요.”“...”그때, 조금 전 들어갔던 여자가 울며 뛰쳐나왔다. 다리는 절뚝거렸고 얼굴엔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자기야, 얼굴 어떻게 된 거야?”“저 안에 있는 남자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날 희롱하려고 하길래 거부했더니 때렸어! 흑흑흑... 자기야, 꼭 복수해줘야 해!”“대체 어떤 미친 자식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저놈이야!”여자가 종이가방을 들고나오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가리켰다.눈을 희번덕거리며 당장이라도 뒤집어엎을 기세였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여자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이런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고! 저분은 성세 그룹 전 대표님이야.”전연우의 신분을 들은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너무 놀라 얼굴을 움켜쥐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장소월은 어려서부터 늘 혼자였다. 때문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가정이 갖고 싶었다.하여 그녀는 자신의 목마름을 전연우에게서 해결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장소월에게 전연우가 지금에 와서야 하는 이 모든 행동은 너무 늦어버린 것들이었다.“마음에 들어?”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밖에 나갈 때 그녀는 이런 것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옆에 있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안목이 정말 훌륭하시네요. 이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립스틱인데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아가씨와 너무 잘 어울려요. 바르면 분명 예쁘실 거예요.”전연우는 여자의 물건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너무 서툴러 뚜껑을 여는 것도 세 번이나 시도해서야 겨우 성공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얼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립스틱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바르려 했다.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렇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장소월의 입술이 쭉 내밀어졌다. 촉촉한 입술은 은은한 핑크색까지 띄고 있어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하지만 극강의 소유욕을 지닌 전연우는 다른 여자가 갖고 있는 것이라면 장소월에게도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이라도 어떻게든 구해 장소월의 품에 안겨주고 싶었다.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대표님, 그렇게 바르는 게 아니에요. 제가 도울까요?”전연우는 그녀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장소월의 입술에 조심조심 립스틱을 발라주었다.얼마 후, 직원이 거울을 가져와 장소월의 앞에 놓아주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턱을 잡고 자신의 걸작을 감상하듯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장소월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됐어?”전연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네. 이 립스틱 모든 색상 하나씩 다 살게요.”그는 카드 하나를 꺼내 눈도 깜빡하지 않고 몇백만 원을 긁었다.백화점에서 나오니 바깥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금색의 빛이 텅 빈 거리
“가고 싶으면 며칠 후 내가 데려다줄게.”전연우는 비밀번호를 누른 뒤 손잡이를 아래로 당겼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장소월이 예전에 쓰던 향수였는데 냄새가 청아하고 달콤했다. 당시 그녀는 조수석에도 이 향수를 놓아두었지만 그 후 전연우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새로 산 가구들도 모두 놓여있었다. 핑크색 소파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집안일은 모두 도우미가 시간 맞춰 와서 할 거야. 넌... 매일 밥 해놓고 내가 오길 기다리면 돼.”방안 인테리어는 그녀의 취향대로 전체적으로 단란하고 따뜻했다. 반면 장소월은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려. 내가 널 위해 작업실을 하나 만들어 두었으니까.”그 작업실은 전연우의 서재 옆방이었는데 큰 창문이 들어서 있어 찬란한 햇볕이 따뜻하게 쏟아지고 있었다.그 외에도 방이 3개 더 있었는데 그들의 안방, 장소월 전용 옷방, 그리고 전연우의 운동방이었다.침실엔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찍힌 많은 장소월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중 한 장은 검은색 셔츠를 입고 두 손을 모은 채 침대에서 잠든 모습이었다. 검은색 셔츠는 허벅지까지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아래로 길고 매끈한 다리가 곧게 뻗어있었다. 이 중 임의로 사진 한 장을 골라도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될 것이다.그녀는 도원촌에 있을 때 전연우에 의해 강제로 찍힌 사진이라고 기억하고 있다.한 장 한 장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장소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 사진들... 다 네가 사람을 보내 몰래 찍은 거야?”전연우의 뜨거운 숨결이 장소월의 목덜미에 뿌려졌다. 그가 등 뒤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느덧 단단한 물건이 그녀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욕망을 분출할 듯한 기세였다.“별로야? 다음엔 사람을 바꿔 다시 찍으라고 해야겠어.”“이 침대에 누워봐. 내가 널 위해 선택한 거야.”3일 동안 그녀와 하지 않았으니 체취를 맡은 순간부터 전연우는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가디건을 벗기
손목의 피가 욕조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야말로 섬뜩한 광경이었다.“소월아,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알아? 인질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신을 가둔 범죄자와 사랑에 빠진대...”16살의 전연우는 살기 위해 장해진의 밑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었다. 그는 한 무리의 남자가 열몇 살의 소녀를 폭력적으로 범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소녀는 돈을 갚지 못해 팔려온 아이였다.마음과 육체에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붕괴한 뒤 여자아이는 폭력범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그 후 2주 동안 전연우는 줄곧 로즈 가든에 머물렀다. 출근할 때면 늘 장소월더러 옷을 입혀주고, 넥타이를 매주고, 아침을 만들게 했다.아내가 남편을 위해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냉담하고 기계적이었다. 그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억지로 할 뿐이었다.그녀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연우가 문 앞에 센서 장치를 설치해 두었기에 그녀가 나서기만 하면 그의 핸드폰에 경보음이 울린다.경호원도 곧바로 달려와 그녀를 돌려보낼 것이다.장소월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내뿐이었고 경호원이 줄곧 먼 곳에서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아래로 내려와 벤치에 앉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가슴을 꽉 메우는 답답함과 불안함이 하루종일 가시지 않았다. 장시간 집에 머무른 탓인 줄 알았으나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앉아있었음에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이런 느낌이 들 때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장소월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이?장소월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사실... 그녀는 강영수가 줄곧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년 전.허 교수님과 함께 풍경화를 그리러 파리를 떠나기 일주일 전, 그녀는 생활용품을 사러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늘 지나던
아마 허 교수님도 눈치채지 못하셨을 것이다.장소월은 제운 고등학교로 돌아와 인공 호수 주위를 거닐었다.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조각상의 팔은 본래 떨어졌었는데 지금 보니 예쁘게 원상복구 돼 있었다.그녀는 또 예전 강영수가 새겨두었다던 비밀이 생각나 조각상 뒤를 살펴보았다.그 비밀은 바로 그녀의 이름, 장소월이었다.당시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만났을 때, 실은 조각상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장소월을 즐겁게 해주려고 지어낸 강영수의 거짓말이었다.제운 고등학교를 나선 뒤, 장소월은 강영수와 김남주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길옆 LED 전광판엔 두 사람의 결혼 발표 기자회견이 방영되고 있었다.그녀는 이어 서울 대학교로 향했다.허이준, 소현아, 단모연은 모두 함께 서울대에 입학했다.소현아는 서울대 입학 자격을 부당한 방법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얻었다. 장소월이 떠나기 전 자신의 모든 필기를 그녀에게 넘겨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소현아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 덜렁거리다가 교실에 교과서를 두고 나왔다는 사실이 건물 아래에 도착해서야 생각나 부랴부랴 다급히 달려 올라가는 것이었다.친구들은 짜증이 잔뜩 섞인 얼굴로 그녀를 재촉했다. 한눈에 봐도 기다리기 싫은 눈치였다.장소월은 낯선 소현아의 친구에게 다가가 말했다.“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내려올 거예요.”친구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소현아가 내려왔을 때 장소월은 이미 자리를 떠났다.운동장에 가보니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열정적인 농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허이준과 단모연은 가장 훌륭한 파트너였다.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아안고 있었다.이후... 장소월은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이용해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친 뒤 곧바로 비행기 표를 끊고 러시아로 떠났다.그녀가 돌아온 건 다만 한 번이라도 그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떠나고 나면 또 언제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