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전연우는 그녀를 살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녀를 보는 순간 화가 가라앉았다.“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장소월의 표정이 냉담해서 전연우는 보자마자 그녀의 마음속에 고민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전연우는 어떻게 해서든 알아낼 것이다.장소월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다. 전연우가 지난밤에 그녀의 몸에 남긴 흔적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백설같이 흰 피부에 아직도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전연우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안고 한 팔로 그녀를 들어 올려 테이블 위에 앉혔다.“나한테 화풀이하려고 네 몸을 힘들게 하지 마. 난 네가 그러는 거 싫어. 알겠어?”부드러운 어조에 그렇지 않은 차가운 눈빛, 하지만 전생에 장소월을 대하는 전연우의 태도에 비하면 이번엔 많이 온화해진 듯했다.그는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눈을 피하려는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뭐 먹고 싶어? 준비하라고 할게.”장소월은 힘이 없어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한마디만 뱉었다.“다 괜찮아.”시선을 그의 얼굴에서 옮겨 흰색 침대 시트로 향했다.“착하지.”전연우는 칭찬하는 의미로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그리고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해서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30분도 안 되어서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갖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 가지 요리와 디저트를 전부 테이블로 옮겼다.“소월 씨, 맛있게 드세요!”전연우는 통유리창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는 담배는 빨간빛을 내면서 연기를 뿜어냈고 방 안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장소월은 입을 가리고 몇 번 기침했다. 전연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돌아보더니 바로 담뱃불을 껐다.몇 마디를 한 후 전연우는 전화를 끄고 장소월 곁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전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살펴보았다.“표절 사건은 기 비서가 해결했어. 네가 말만 잘 들으면 회사에 출근
“영수야, 그러지 마...”손을 빼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녀에게 꽉 쥐어졌다.전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악몽을 꾸고 있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입으로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가지 마...”“싫어!”장소월은 악몽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강영수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겨우 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이 혼자 있었다. 장소월은 병실에 쳐들어가서 의사를 찾고 싶었지만 병원 전체를 뛰어다녔지만 텅 비어 있고 한 사람도 없었다.그러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강영수는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하면서 그녀와 작별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심장이 저릿해 나는 게 꼭 현실 같았다.장소월은 그를 잡고 싶었지만 아무리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강영수는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남았던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지고 장소월도 점차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전연우의 표정은 마치 폭풍우 전의 고요함 속에서 살랑살랑 부는 찬 바람 같이 냉랭하고 어두웠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장소월은 심장이 저릿저릿 아파와서 깨어났는데 옆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숨을 참으며 손으로 침대를 바치고 벌떡 일어났다. 손에 쥐여 있던 책장은 찢겨 나갔다.전연우의 어두운 눈동자를 보고 장소월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의 눈빛은 그녀로 하여금 겁이 나 떨게 했다.그러나 전연우 눈가의 냉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장소월은 마치 자신이 방금 헛것을 본 줄 알았다.전연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흘러내린 잔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악몽 꿨어?”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피하지는 않고 곁눈질로 그의 손을 쳐다보았다.“아무것도 아니야. 화장실 가서 세수해야겠어.”“그래.”전연우는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장소월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욕실로 걸어갔다. 수도꼭지를 틀고 얼음같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자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것 같았다. 방금 꿨던 꿈을 돌이켜보니 왜 그렇게 현실적이었는
장소월은 하루 종일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기운이 없었다.하지만 그런데도 전연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장소월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다.해먹 소파는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다. 장소월은 뒤에서 걸어오는 인기척을 듣지 못했다. 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장소월은 발버둥 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나 혼자 있고 싶어.”전연우는 정장을 벗고 검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리고 건장하고 힘 있는 팔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녀의 흰 피부와 선명하게 대비되어 시각적으로 힘 차이가 크게 나는 듯 보였다. 장소월의 힘없어 보이는 가녀린 팔은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이런 연약한 모습은 남자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다.전연우는 고개를 떨구고 장소월의 부드러운 손바닥을 만지다가 손등에 키스했다. 그녀가 오늘 몸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전연우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욕망으로 인해 여기에서 바로 그녀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소월이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전연우는 욕망을 억눌렀다.“오늘 기 비서더러 파티에 등장하는 액세서리들을 전부 사라고 했어. 있다가 가지고 올 거야.”장소월은 전연우가 주는 물건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만약 정말로 가지면 두 사람이 스폰 관계라는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절대 그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애인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장소월은 그에게 뭐라고 말할지 몰랐다. 전연우는 그녀가 거절할 것을 예상하고 그녀의 허리를 꽉 감싸안아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난 앞으로 몇 년 동안 유럽에 사업 중점을 둘 생각이야. 그래서 당분간 돌아갈 계획이 없는데, 넌 어디 가고 싶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살자. 난 여기도 좋은데, 넌 어때? 마침 네 명의로 된 방을 구매할 계획이었어. 네가 전에 있던 곳은 기 비서더러 퇴실 처리하라고 했어.”장소월은 당황해했고 화도 난 듯했다.“오빠는 왜 항상 제멋
그녀의 아버지는 장소월이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전연우를 후계자로 들였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후계자가 있으니 장소월을 완전히 포기했다.전연우는 송시아의 도움으로 성세 그룹을 손에 쥐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었는데, 오직 장소월만이 도망치지도, 피할 수도 없었다.그녀가 돌아간다고 해도 곁에 아무 가족도 없고 혼자다.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했으며 괴롭고 질식할 것 같았다...장소월은 자신도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뒤돌아보면 집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면 했다.전연우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길래 멍을 때리고 있는지 몰랐다. 사실 그는 이미 장씨 가문을 충분히 봐줬고 언제든지 원하면 장해진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십여 년을 견뎌왔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전연우는 여유로운 듯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오빠는 소월이가 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어. 그냥 오빠에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장소월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심장이 저릿저릿 아파왔다.전연우는 아주 쉽게 그녀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번생엔 그의 새장에 갇혀지내야 했다.“오빠가 이렇게 하면 4년 전에 오빠가 나에게 했던 짓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그럴 수 없어. 난 오빠가 나한테 한 짓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난 오빠의 소유물이 아니야. 그리고 절대 오빠에게 의지하지도 않을 거야.”전연우... 송시아가 다시 태어나서도 말 안 했지? 전생에 당신은 날 죽도록 싫어했어. 심지어 나한테 눈길 한번도 주지 않았지. 그리고... 매번 날 힘들게 했고.나를 발밑에 짓밟고,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하찮게 생각했었지.이번 생에 당신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은 모두 부드러운 함정 같은 거야. 날 그 깊은 심연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겠지.“전연우... 모든 게 곧 끝날 거야.”그러나
“그거 말고 너한테 또 무슨 얘기를 했어?”장소월은 거울 속에 비친 전연우를 보며 그의 표정을 통해 마음에 찔려하는지 보려고 했지만, 그는 포커페이스에 능숙하여 아주 침착해 보였다.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송시아가 장소월을 찾았을 때 이미 자신도 환생했다고 고백했다.송시아의 성격 상 전연우에게 모든 것을 말했을 게 뻔했다. 그에게 전생에 그가 어떻게 장소월을 포기하고, 어떻게 비밀리에 일을 꾸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송시아와 함께 했는지 말이다.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있었다. 전연우는 전생처럼 이 이유만으로도 그녀와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내가 뭘 알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장소월은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백윤서와 송시아만이 오빠 마음속에서 중요한 존재야. 오빠는 그 두 사람만 신경 쓰면 돼. 나한테 이러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야. 난 사흘 뒤에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이미 예약했어. 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 오빠가 날 지켜보는 것도 소용없어. 내 집이 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 혼자여도 괜찮아. 지금의 난 스스로도 모든 걸 할 수 있어. 누구한테 의지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전연우, 당신은 자신의 능력으로 장씨 가문을 벗어났으니까 더 이상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지 마. 우리 관계는 여기서 끝이야.”“여기서 끝인지 아닌지는 네가 정할 게 아니야. 받아들이기 싫어도 그냥 견뎌야 해. 네가 떠나고 싶어도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전연우는 장소월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돌아세웠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목걸이를 그녀에게 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협박했다.“제운으로 돌아가서 다시 강영수랑 만날 망상은 하지 마. 지금의 강씨 가문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잖아? 소월이 착하지? 오빠 말 잘 들어.”장소월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전연우, 영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꼬집고 악마 같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
그들 사이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예정된 것 같았다. 그의 곁에 있는 장소월의 신분도 마찬가지였다.그 후 보름 동안 장소월은 송시아를 보지 못했고 그녀는... 이미 프랑스를 떠난 것 같았다.장소월은 결국 어머니의 기일도 놓쳤다.이 기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장소월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 어젯밤 전연우는 또 밤새도록 그녀를 원했고 깨어났을 때 창 밖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다.전연우가 그녀를 돌보기 위해 고용한 하인도 그녀를 안타까워했다.장소월은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여기에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마리아는 가디건을 가져다가 장소월에게 걸쳐 주며 말했다.“오늘 호텔에서 분수쇼가 있으니 꼭 보러 가세요. 방에 계속 틀어박혀 있으면 병에 걸릴 거예요.”장소월은 기운 없이 어두운 밤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팠어요. 마리아, 돌아가셔도 돼요. 나를 지킬 필요가 없어요.”“하지만 전 대표님은 제가 당신을 돌봐주길 원해요.”“괜찮아요. 당신을 탓하지 않을 테니 그냥 날 좀 내버려둬요.”“알았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해요. 언제든지 연락 주면 올게요.”마리아가 떠난 후 장소월은 불이 켜지지 않은 발코니 소파에 앉아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어둠 속에서 장소월은 환각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는데... 엄마, 나중에 죽으면 나도 별이 될까요?”“소월아, 사람이 죽으면 바람도 될 수 있고 햇빛도 될 수 있는 거란다... 마음으로 원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지금처럼 소월이가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할 때면 엄마는 네 곁에 나타날 거야.”“만약 언젠가... 내가 못 버티면 엄마는 날 원망할 거예요?”“너에겐 자유가 있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전연우는 파티에서 돌아와 술냄새가 몸에 배어 있었고, 기성은은 옆에서 그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발코니쪽으로 걸어가자 밖에 홀로 앉아 허공을 바라보
전연우가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가까이 걸어왔다. 장소월은 멍하니 자리에 서 있다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 바람에 어깨에 둘렀던 카디건이 바닥에 흘러 떨어졌다.“너... 다 들었어?”“전연우, 난 미치지 않았어. 나 정말 엄마를 봤단 말이야.”전연우는 허리를 굽혀 카디건을 줍고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소파에 걸쳐놓았다. 이어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는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품에 껴안았다.“집에 돌아가고 싶으면 가자. 기성은에게 이미 내일 서울로 돌아갈 항공권을 끊으라고 했어.”장소월은 그의 품에 기대었다. 그의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가 왜 갑자기 결정을 바꾸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그의 몸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향수 향을 맡았다. 역겨움이 꿈틀거렸지만 그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장소월은 전연우가 그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침 8시, 전연우가 잠들어있는 그녀를 안고 전용 비행기에 타 있었으니 말이다.장소월은 아직 꿈나라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전연우의 다리에 누워있었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기성은이 말했다.“최고 실력의 심리상담사를 모셨습니다. 오늘 안에 서울에 도착할 겁니다.”“알았어.”무거운 전연우의 대답이 들려왔다.귀가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함에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왜 비행기 안에 있단 말인가.창밖을 바라보니 군데군데 떠 있는 구름 송이도 볼 수 있었다.전연우는 그녀의 앞에 아침 식사를 놓아주었다.“출발한 지 얼마 안 됐고 저녁 6시 전엔 도착할 거야. 일단 아침밥 먹어.”장소월은 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담요를 다리에 덮었다.“고마워. 하지만 나 지금은 배 안 고파.”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말을 안 들으면 지금 당장 비행기를 착륙시킬 거야.”“알았어.”장소월은 정말이지 입맛이 없었지만 어쩔
엄마의 존재는 그녀에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준 것 같았다.분명 환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비록 허황하고 거짓스러운 환경일지라도 장소월은 엄마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엄마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그리고 그 우유...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장소월의 눈시울이 붉어진 눈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담겨있었다.“하지만 우유 때문에 받은 트라우마가 너무 잔인해. 마주할 수도 없고 마주해본 적도 없어. 그저 말없이 결과를 견뎌내고 있을 뿐이거든. 예전 일어났던 모든 일들, 나 다 기억해.”“전연우, 난 널 죽여버리고 싶어! 매번 널 볼 때마다 죽이고 싶어서 미치겠어.”장소월이 가감 없이 마음속의 말을 내뱉었지만 전연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는 눈곱만큼도 위협이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전연우가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잘 자.”그는 장소월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성은이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숨이 막힐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기성은이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가 보고했다.“인시윤 씨가 대표님의 귀국 소식을 아시고는 소월 아가씨를 위해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가구와 인테리어 모두 예전 그대로 맞췄다고 합니다.”“그 집으로 보내지 않을 거야. 내가 알아서 해. 나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서울에 도착하니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오랜만에 돌아오다 보니 공항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녀가 떠났던 4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그들은 VIP 통로로 공항을 나갔다.서울에도 가을이 찾아와 밤이 되나 꽤나 쌀쌀했다. 차엔 에어컨을 틀고 있어 춥지 않았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본래의 아담했던 건축물은 모두 하늘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이 되어 있었다. 차에 타고 달린 지 어느덧 30분이 지나고 있었다.이 길... 남원 별장으로 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