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호텔로 돌아온 김남주는 혁이의 상처를 간단히 치료해주었다. 울다가 지친 아이는 힘이 빠져 바로 잠들었다.강혁은 강렬한 추위에 잠에서 깨어났다.“엄마, 뭐 해요?”욕실에서 김남주는 아이의 머리 위로 냉수를 뿌리고 있었고, 강혁은 추워 욕조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여자는 한 손으로 눌러버렸다.“엄마, 혁이 추워요.”강혁은 추워 온몸을 벌벌 떨었다. 얼어서 새파랗게 된 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김남주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혁아, 조금만 참아. 엄마 말 잘 들으면 아빠가 곧 널 보러 올 거야. 앞으로 우리 가족은 함께 살 수 있고 혁이도 곧 아빠가 생길 거야.”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혁이는 엄마 말 잘 들을 거예요.”“착하네 우리 혁이. 이따가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줄게.”“좋아요!”객실 종업원이 또 얼음 한 바구니를 더 가져다 욕조에 쏟아 넣었다.“엄마, 혁이 너무 아파요.”“조금만 참아.”30분 후, 김남주는 차가운 욕조에서 아이를 안아 올렸고, 물도 닦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창문을 향해 소파에서 자게 했다.깊은 밤, 강혁은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온몸은 화로처럼 뜨거웠고 이미 혼수상태에 빠졌다.김남주는 아이를 데리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향했고 의사는 곧바로 해열 주사를 놓았다.아침 여섯 시에야 강혁의 상황은 호전되었고, 간호사가 말했다.“열이 내렸으니 아래층에 가서 병원비를 지급하시고 오후에 퇴원 절차 밟으시면 돼요.”“네, 감사합니다.”간호사는 그녀가 좀 낯이 익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간호사가 병실을 나간 후, 김남주는 표정이 다시 싸늘해지더니 아직 링거를 꽂고 있는 아이를 매섭고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엄마를 탓하지 마. 나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영수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꼴은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어. 원래 내 자리를 찾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김남주는 그대로 병실을 떠났고, 불쌍한 아이만 혼자 남게 되었다. 시간은
강영수는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장 회장님,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소월이 앞에서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정을 생각해서, 한 가족인 회장님을 위한 결정이에요. 남천 그룹이 강한 그룹 계열사가 되는 건 나쁜 점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 남천의 연간 수익은 100억 정도이지만 앞으로 강한 그룹 계열사가 된다면 연간 수입이 적어도 600억은 되겠죠. 이 600억은 강한 그룹에게 그저 자투리일 뿐,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리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희는 어떤 이유로든 남천 그룹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장 회장님은 여전히 그 위치에 계시면 됩니다. 하지만... 대표 자리는 교체해야 할 것 같네요.” 장해진은 화가 나서 관자놀이에 핏줄이 터질 정도였지만 얼굴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웃고 있었다.“강 대표님, 요 몇 년 동안 전 대표가 회사 실적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는 회사 전 직원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표를 바꾼다면 수중에 있던 프로젝트들은...”“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따로 사람을 파견해 인수인계하겠습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셔도 되고요.”“참, 듣자 하니 최근 남천 그룹에 자금 구멍이 나서 은행에서도 대출을 미루고 있다고 하죠? 회장님께서 키운 후계자는 실력이 좀 부족한 것 같네요. 회사에 위기를 초래한 사람을 이참에 해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아니면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강영수는 덤덤하게 장해진을 바라보며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회장님도 아마 제 뜻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계약만 체결하면 강한은 남천에 거대한 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회수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수표를 드리죠.”“소월이와 제 결혼식에서 전 꼭 장인어른을 뵙고 싶거든요.”남성 부지 개발이 예상대로 완료되지 않으면 남천 그룹에게는 열 배의 위약금이 부과된다. 만약 위약금을 배상할 수 없다면 장해진은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전연우는 장해진을 따라 룸에서 나왔다.“날짜를 잡아 네 신분을 대외적으로 발표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으니 이제 정식으로 발표해야 괜한 말들이 나오지 않는 법이지.”“그러면 강 대표도 널 경계하지 않을 거다.”“네.”전연우의 눈에는 한 줄기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이 정도 일도 못 하면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술 좀 마시면 될 것을 어디서 고고한 척하고 있어? 여긴 직장이지, 제삿집이 아니야! 그 반반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네까짓게 천하일성에 와보기나 보겠어?”엘리베이터 끝 복도에서 뚱뚱한 매니저가 웨이터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송시아는 매니저에게 이마를 쿡쿡 찔리면서도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는 차분한 분위기의 잘생긴 남자를 보았을 때, 그녀의 눈은 계속 그에게 향했고, 귓가에서 들려오는 꾸지람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전연우도 그녀의 시선을 눈치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송시아는 흠칫 놀랐다. 그에게서 익숙하면서도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불과 몇 초 만에 그녀의 시선을 끈 남자는 이미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매니저는 정신이 딴 데 팔린 송시아를 보고는 또 머리를 쥐어박으며 욕했다.욕설이 끝나자 송시아는 테이블을 치우러 갔고, 그녀와 함께 룸서비스를 들어간 직원이 다가와 위로했다.“시아 씨, 괜찮아요? 매니저님이 심하게 말했어요?”송시아는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에요. 얼른 치우고 제시간에 퇴근하죠.”“그래요.”천하일성은 24시간 영업했고 3팀이 교대로 일했다. 이 테이블을 치우고 나면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에 알바를 더 많이 뛰어야 학비를 낼 수 있고, 대학에 다닐 돈이 생긴다.하늘은 원래 불공평한 법이다. 여기서 부자들이 하룻밤에 소비하는 금액은, 아마 그녀가 평생을 벌어도 벌지 못할 돈이었다.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얻는 것들
“지금 아이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더 이상 지체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어요.”“지금까지 병원비가 정산되지 않아서 병원의 규정에 따라 더 이상 아이에게 약을 줄 수 없습니다.”김남주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 강영수는 차갑게 말했다.“전화 잘못 거셨어요. 저는 아이 아버지가 아닙니다.”말을 마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진봉도 잠자코 있었다.보아하니,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김남주가 돈이 없어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도망간 모양이다. 확실히 그녀가 할법한 행동이었다.하지만 아이는 죄가 없다. 이대로 놔두다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노부인이 가장 신경 쓰는 건 강씨 가문의 핏줄이다. 만약 소월 아가씨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김남주에게는 추호의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직원 식당으로 들어가려던 강영수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넌 회사에 있어. 내가 가볼게.”“네.”강영수는 액셀을 밟고는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병원에 도착한 남자는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김남주는 머리에 거즈를 두른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쫓겨났고, 경비원은 비닐봉지에 있는 약도 버렸다.“이건 병원 규정입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수술을 해줍니까? 당장 나가세요!”김남주는 아이를 안고 무릎을 꿇은 채 울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제발 살려주세요.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돈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볼게요.”“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이봐요, 계속 소란 피워도 아무 소용없어요. 요즘 누가 돈도 없이 진료를 받아요? 요 며칠 입원비용은 저희 나 선생님께서 대신 지급하셨어요.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저희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김남주의 어깨에 엎드린 강혁의 작은 얼굴은 이미 탈수증상이 심해 보였다. 며칠 사이에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엄마, 나 죽어요? 혁이 너무 아파요. 아프면 아빠가 혁이 보러 온다고 했잖아요? 아빠 왜 안 와요? 혁이 아빠 보고 싶어요!”강영수
차에서 김남주는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에 둘이 싸우고 냉전을 할 때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언제나 강영수였다.여자가 무릎을 꿇던 순간, 강영수는 확실히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고집스레 말했다.“누가 우리 모자 생사에 관여하래? 이미 약혼도 했으면서, 약혼녀가 알기라도 하면 어떡해? 나랑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않겠어?”남자는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에 몰두했다.“저번에 우리 집에서 내 부인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누구더라?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어.”여자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혁이만 아니었다면 나라고 강씨 가문에 가고 싶은 줄 알아? 가서 네 할머니 눈치 보면서? 어차피 여태까지 넌 아이를 돌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모른 척해도 돼. 길옆에 세워 줘.”강영수는 매서운 눈으로 싸늘하게 말했다.“아이 양육권은 이미 변호사에게 계약서 작성하라고 했어. 넌 나 못 이겨. 법원도 양육권을 정신병 있는 어머니에게 판결하지 않을 거야.”김남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래서, 소월이보고 혁이를 키우라고 할 생각이야? 혁이가 모르는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고? 강영수, 나 아직 안 죽었어! 정신병이 뭐 어때서? 그러는 넌? 너도 미친 인간이잖아!”여자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는 확실히 미치광이가 맞았다.김남주는 그를 보면서 입가에 이상한 미소를 짓더니 유유히 말했다.“지금 혁이 상황이 그때 너랑 똑같다는 걸 모르겠어?”“소월이는... 바로 그때의 심유고. 심유가 어떻게 너희 집을 망쳤는지 잊지 마!”“닥쳐!”강영수는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다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고, 재빨리 아이의 머리를 감쌌다.“내 말이 틀렸어? 그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잘못이라면 네 할머니가 했겠지. 그렇게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우린 헤어지는 일도 없었고 혁이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어.”“소월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심유가 아니야. 넌 영원히 소월이를 이길 수 없어. 너처럼 눈에 온통 계산으로 가득 차지
대체 왜?혁이는 그녀가 낳은 그녀의 자식이다. 무슨 근거로 소월이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김남주가 죽는 한이 있더라고, 이번 생에는 절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간호사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처량한 울음소리를 듣고 가슴이 오싹해졌다. 미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만약 강영수가 데려온 사람이 아니라면, 병원에서는 진작 경찰에 신고 했을 것이다.박순옥은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차를 타고 달려왔다.원래 고열감기에 시달리던 혁이는 갑자기 백혈병이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는 맞는 골수를 찾느라 바빴다.강영수가 바로 이 아이와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과 골수가 일치할 확률이 높았다.그는 거절하지 않고, 당일 밤 바로 수술에 동의했다.그들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고, 불청객 김남주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박순옥은 두려움에 떨며 두 부자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어르신, 안심하세요. 수술 성공 확률이 높으니 대표님은 아무 일 없을 겁니다.”“일단 소월에게 알리지 마.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 아이 성격이라면 당장이라도 귀국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혁이의 일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강영수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두 사람은 가까스로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당분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다.박순옥은 걸어오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얼굴빛이 차갑게 굳어졌다.“네가 여긴 왜 왔어?”김남주는 수술실 문에 표시된 수술 중이라는 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녀가 사라진 며칠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혁이는 제 아들이니 당연히 와야죠. 어르신이 절 막을 권리 없어요.”박순옥은 콧방귀를 뀌었다.바로 이때, 진봉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그는 조용한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소월 아가씨!”휴대폰 너머 장소월은 호텔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에는 이불커버를 들고, 어깨에
수술은 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두 사람 상태는 모두 안정되었다.강영수가 깨어났을 땐 날이 밝아있었다.침대 옆에서 그를 간호하고 있던 진봉이 강혁의 상황을 보고했다.“제때에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아이는 이미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수술 후 3개월 정도 뒤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3개월이면... 마침 장소월이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다.강영수가 연신 몇 번 기침했다. 그가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자 진봉이 곧바로 그를 제지했다.“대표님, 아직은 내려오시면 안 됩니다. 열흘은 걸려야 회복되실 수 있습니다.”“소월이는... 연락 왔었어?”장소월을 떠올리자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이 일을 설명해야 한다는 불안감이었다. 아이의 일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시한폭탄과도 같았다.진봉이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말했다.“수술이 끝나기 한 시간 전 전화가 왔었습니다. 대표님께선 회사의 급한 일을 처리하고 계신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설사 아신다고 해도 소월 아가씨는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육권만 가져오면 소월 아가씨와 예전처럼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강영수는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낯빛이 창백했다. 이마 앞 잔머리가 검은색 깊은 눈동자를 뒤덮었다. 그 속에 내려져 있는 어둠은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그는 장소월에게 숨기는 것이 구경 맞는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문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남주가 어두워진 표정을 가리며 손에 전기 포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깨어났구나. 혁이 일은 고마워. 병원비는 내가 최대한 갚을게. 이건 내가 만든 곰탕이야. 의사 선생님께서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김남주는 말을 마친 뒤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 위 강영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더는 머물지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김남주 많이 변했네.”예전의 그녀는 안하무인으로
야건 업소 룸 안.두 쌍의 남녀로 이루어진 카드 테이블 위, 전연우와 서철용이 서로 다른 편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전연우의 앞엔 가득 쌓인 칩이 놓여있었는데 모두 서철용으로부터 따온 것이었다.“강영수 때문에 남원에서도 쫓겨났으면서 하나도 화가 나지 않나 봐? 오히려 신나 보이는데?”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판, 또 한 판, 서철용은 지니고 있던 1억 원의 돈을 거의 모두 잃고 말았다. 속수무책으로 계속 지기만 하니 슬슬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짜증이 몰려와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으나 눈앞 도련님이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탓에 억지로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정말 이상한 일이다. 전연우와 카드를 치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니 말이다.바로 그때, 문밖 종업원이 문을 열었다.황유나가 온 것이다. 그녀의 눈에 야한 옷차림으로 서철용의 몸에 딱 붙어있는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 못마땅함이 스쳐 지나갔다.“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요?”서철용의 예쁜 눈동자에 흥미로운 미소가 물들었다.“이쪽으로 와서 카드 좀 받아줘요. 마침 화장실에 가려던 참이었어요.”황유나는 전연우도 이곳에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전연우는 늘 청렴하고 점잖은 상류 인사인 척 자신을 위장했다. 보아하니 지금은 가면을 벗어던진 듯 셔츠 단추도 몇 개 풀렸고 넥타이도 마음대로 풀어져 있었다.서철용에게도 그의 이런 모습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하여 그는 지금까지 전연우가 가면을 쓴 모습에 익숙해져 예전 자신이 파렴치한 양아치였단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황유나를 본 전연우는 카드를 내려놓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서철용을 보며 말했다.“일부러 와서 날 역겹게 하려는 거야?”주어가 황유나인지, 서철용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장소월과 똑 닮은 황유나의 그 얼굴은 서철용이 직접 칼을 들어 빚어낸 것이니 말이다.장소월이 해외로 나간 이 타이밍에 황유나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황유나가 분노하며 전연우에게 따져 물었다.“누가 역겹다는 거예요? 난 아직
전연우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리샬이 태블릿을 들고 전연우의 병실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지역에 들어가신 후 신호가 사라졌습니다.”전연우는 눈을 감고 침대에 기대앉았다.“오늘은 그만하면 됐어. 나가봐.”“알겠습니다.”그가 가까이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그녀는 더 깊숙이 몸을 숨길 것이다. 그녀가 시내로 발을 디딘 순간, 즉시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소월아, 7일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시간이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와 함께 떠나야 할 거야.’강지훈은 전연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에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본 순간, 서늘했던 그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강지훈은 흥미로운 듯 의자에 앉았고, 뒤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이렇게 엉망인 모습은 처음 보네요. 어때요? 버림받은 기분이?”“아, 참. 그 여자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소용없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그 여자 당신과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설사 돌아간다 해도,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여자를 옆에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많은 돈을 생판 남에게 물려줄 리는 없을 테고.”“당신한테 어울리는 여자 소개해 줄까요? 당신한테 아기를 낳아줄 여자 말이에요.”강지훈은 사람을 약 올리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바보 하나랑 노는 게 그렇게 즐거워?”강지훈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시원한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밖에 있던 간호사가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듣고 제지하러 들어가려 했지만, 문밖의 경호원들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들의 허리에 찬 총을 본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강지훈은 다시 반격했다. “내 여자는 내 아이를 둘이나 가졌어요. 전연우 씨... 당신 여자는 어때요?”전연우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강지훈을 쏘아보고
“알겠습니다.”이미 정체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위장할 필요가 없으니, 전연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울고 있는 별이를 전연우 곁으로 데려왔다. 별이는 얼굴 분장을 지웠지만, 분홍색 드레스는 여전히 입고 있었다.“네가 여자아이였다면, 엄마가 떠나는 게 더 어려웠을까?”별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빤히 바라보며 옹알이를 했다.“엄... 엄마...”전연우는 보기 드문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말에 답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별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전연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강용은 주변 길에 꽤 익숙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무인 구역에 도착했다. 액셀을 끝까지 밟고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강용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소현아는 가슴을 움켜쥐고 토할 것 같은 충동을 참았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힘들면 나한테 기대서 좀 자.”“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흐어엉... 소월아, 나 강지훈한테 잡혀가기 싫어.”장소월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괜찮아. 우리 이제 안전해.”강지훈에게 이 지역의 경찰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기와 탄약을 합법적으로 휴대할 수 있는 곳에는 강지훈만의 인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소현아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알기만 하면 즉시 도시 전체를 포위하여 그녀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봉쇄 직전, 강용이 모는 차가 딱 30초, 간발의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이다.강지훈은 소현아가 묵었던 호텔을 찾아갔다. 스위트룸 안, 침대에 던져진 임부복 드레스와 머리맡에 놓인 소현아의 사진이 보였다. “멍청한 년, 그깟 사람 하나 못 잡고, 뭐 하는
소현아는 규영과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제 이름은 김소단이에요.”규영은 즉시 소현아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미경아, 빨리 주인님 모셔와. 현아 아가씨 찾았어.”소현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아아아... 나쁜 사람. 빨리 이거 놔요.”“살려주세요! 임신부를 납치하려고 해요!”“미경아, 빨리 와... 아가씨, 더는 도망가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찾으러 오셨단 말이에요. 주인님은 아가씨를 잊지 않으셨어요.”“난 당신 몰라요. 놔줘요!”아무리 용을 써도 규영을 뿌리칠 수 없자, 소현아는 그녀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규영은 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현아 아가씨...”소현아는 작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재빨리 도망쳤다.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병원으로 달려갔고, 마침 강용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과 마주쳤다. 장소월이 말했다. “현아야, 조심해. 뛰지 마.”“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소현아는 체형이 약간 통통한 데다 평소에 운동도 부족했던지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소현아가 다급히 말했다.“큰일 났어... 소월아, 강지훈이 나 찾으러 왔어. 방금 쇼핑몰에서 규영이랑 마주쳤어.”“흐흑... 소월아, 강지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현아는 너희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전연우 하나로도 모자라 이제 강지훈까지 나타나다니. 장소월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전연우는 강용이 풀어놓은 수면제를 먹고 기절한 상태라 당분간은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강지훈도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연우보다 상대하기 훨씬 어려운 인물이었다. 장소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용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강용이 말했다.“지
의사가 들어와 손이준을 진찰했다.장소월은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의사가 대답했다.“상처 회복은 잘 되고 있습니다. 휴식만 잘 취하면 됩니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떠나자, 장소월은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강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전 씨, 그 총알 맞고 왜 안 죽은 거요.”“무... 무슨 소리야?” 이불을 덮어주던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어 멈춰 섰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강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거두려던 순간, 돌연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언제 알아차린 거야? 눈썰미 꽤 쓸만하네.”정... 정말 그 사람이었다!장소월은 충격에 휩싸여 병상에 누워 있는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저항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강용은 재빨리 그들을 떼어놓았다. 전연우가 일어나려고 하자 강용은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접근하려고 정말 애썼네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 누구예요?”강용의 손은 전연우의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전연우 씨, 내 손에 잡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장소월은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전연우였다니.그를 본 순간 도망쳤어야 했지만, 그녀의 발은 납덩이라도 매달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라고 했었잖아.”“소월아, 넌 내 아내야.”그 애절한 말에 장소월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아... 아니에요. 당신이 전연우일 리 없어요...”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악마와 마주치기라도 한 듯, 강력한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급기야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소월아...”강용이 그녀를 재빨리 붙잡았다.전연우는 애타게 그리고 그리던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
강지훈이 명령했다.“말해.”부관은 손에 든 정보를 강지훈에게 건넸다. “최근 근처 도시에 세 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현재 저희가 일차적으로 걸러낸 상태이고, 곧 시스템으로 소현아 씨의 사진을 인식할 겁니다. 30분 안에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강지훈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권총을 건네며 말했다.“지금 호텔로 간다.”“알겠습니다, 주인님.”거꾸로 매달려 있던 흑인 남자는 그야말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곳은 사막과 가까운지라 지면에서 뜨거운 열기까지 올라오고 있었다.“가지 마세요! 형님!”“저 혼자 여기 두지 마세요. 무서워요, 아빠!”옆에 있던 규영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사람 풀어주는 게 어떠십니까.”“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제가 옛날 어르신께 듣기로는...” 그 순간 규영은 자기도 모르게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어르신의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강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 계속해!”규영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을 때는 피를 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재앙이 닥친다고요.”강지훈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하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신은 대체 어디에서 주워들은 거야? 북경 감옥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럼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는 거야?”“주인님,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 믿는 게 좋습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작은 주인님을 위해서라도요.”“주인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면 자연히 작은 주인님에게 복이 쌓일 겁니다. 또한 현아 아가씨께서 순산도 하실 수 있을 거고요.”강지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 둘 다 옷도 입고 있었어. 그냥 너무 추워서 그랬어. 강용 몸은 뜨겁고 따뜻하더라고.”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횡설수설 변명하는 소현아의 모습이 귀여워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 나는 단지 강용의 안전을 걱정하는 거야.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아주 나쁜 놈이거든. 혹시 그 사람이 강용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야 해. 강용과 모르는 사이인 척,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해야 해. 알았지?”“그럼 소월이랑도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 해?”장소월은 소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나중에 돌아가서 강지훈의 입에서 남자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 해. 여자는 괜찮아.”“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널 괴롭히면 울면서 그 사람이 너를 때렸다고, 욕했다고 말해야 해. 강지훈한테 전부 고자질해.”소현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해? 꼭 울어야 해?”장소월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현아야,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나중에 나한테도 딸이 생기면 너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그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다.사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신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가두기 십상이니까.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녀처럼 되어버리고 만다.소현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소현아는 장소월의 손을 잡고 북경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장소월은 강지훈이 소현아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사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다.왜 하필 강지훈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보며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강지훈 같은 사람은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소현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꺼려질
수술실 문밖에 돌아와 보니, 강용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수고했어. 먼저 가서 쉬어. 나랑 현아가 근처에 방 두 개 잡아놨어. 현아는 당분간 나랑 같이 잘 거고, 이건 네 방 카드야. 현아랑 같이 먼저 가 있어.”“됐어, 너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나중에 그 사람이 나오면 내가 도와야할 일이 있을 거야. 여자인 너 혼자서는 불편해.”장소월은 화장실에서 꾸물거리며 나오는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손에는 간식 두 봉지도 들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나는 옷이라도 좀 사러 가야겠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많이 못 챙겨왔거든.”“그래, 갔다 와.” 강용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두 비웠다.장소월이 물었다. “옷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무거나, 네 맘대로 해.”강용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돈 좀 있어. 내 걸로 결제해.”“됐어. 이 돈은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너는 남자니까,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무거워진 장소월의 말투를 눈치챈 강용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쳇, 네 그림 한 점이 몇천만 원이나 된다고 지금 날 비웃는 거지? 어휴. 아가씨, 절 키워주시는 건 어때요?“계속 아가씨의 개가 될게요.”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개는 무슨.”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옷을 몇 벌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등록하려고 프런트에 선 순간, 장소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여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 등록 정보로 사용했다.“미카엘 씨, 여기 객실 카드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감사합니다.”원래는 저렴한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지만, 소현아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10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아름다운 강 풍경이 눈
아이...지금 세 사람은 확실히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전 부인이 말했다. “절대 월이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내 아이 뺏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우리 셋 다 당신 아이 봐줄 시간 없어요. 당신이 준다고 해도 우리가 싫어요.”“참, 그리고 전 남편 치료비도 잊지 말고 내줘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때 부부였는데 너무 매정하게 굴지는 말아야죠.”그녀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던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양육비와 예전 나한테 줬던 돈 전부 갚았어요. 이제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요.”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된 채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다. 장소월은 차마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필경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무에게도 막을 권리가 없다.그들이 위풍당당하게 떠난 후, 강용은 돈을 세어보았다. 몇백 달러 정도였다. “제기랄, 몇만 달러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전 남편에게는 쥐꼬리만큼도 안 주다니.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이 돈으로는 수술도 못 하겠네.”장소월이 말했다. “됐어, 강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일단 이준 씨 어떻게 됐는지부터 알아보자.”“그래.”소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월아, 아기가 배고픈 것 같아. 들어봐... 얘네 둘이 소리치고 있어.”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배고픈 거면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넌 소현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어. 이준 씨한테는 내가 가볼게.”며칠 동안 강용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빨리 먹고 포장해서 갖다 줄게.”“그래.”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향했다. 30분 후, 결과가 나왔고 예상외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의사는 검사
바로 맞은편 길에서 또 한 무리의 차량이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규영이 돌연 즉시 차를 세우라며 소리쳤다. “...저... 현아 아가씨 목소리 들은 것 같아요.”강지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확실해?”규영은 확신할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현아 아가씨 같았어요. 소월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요. 현아 아가씨 친구분이 장소월 씨잖아요. 그냥 우연인 걸까요?”강지훈은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난 듯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운전석에 묶여 있던 남자는 강지훈이 꽤 많은 힘을 들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소현아의 행방을 쫓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이 남자가 소현아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지훈의 정보 조직이 오랫동안 소현아의 소식을 찾지 못했던 이유였다.강지훈은 항공편 정보를 토대로 소현아의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그녀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곳 사막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얼마 전 폭동이 일어났고, 소현아는 무사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흑인 남자가 한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사투리가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강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곧이어 뒤따라오던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겨 있는 대문을 본 강지훈은 그대로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층으로 올라갔고, 강지훈도 천천히 소파 옆으로 걸어갔다. 규영과 미경은 주방으로 향했다.2분 후, 위층으로 올라갔던 흑인 남자가 보고했다. “위층에는 세 명이 살고 있고, 옷가지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떠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규영이 말했다.“주인님, 냉장고에 현아 아가씨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포도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흔적도 있습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강지훈은 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