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호텔로 돌아온 김남주는 혁이의 상처를 간단히 치료해주었다. 울다가 지친 아이는 힘이 빠져 바로 잠들었다.강혁은 강렬한 추위에 잠에서 깨어났다.“엄마, 뭐 해요?”욕실에서 김남주는 아이의 머리 위로 냉수를 뿌리고 있었고, 강혁은 추워 욕조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여자는 한 손으로 눌러버렸다.“엄마, 혁이 추워요.”강혁은 추워 온몸을 벌벌 떨었다. 얼어서 새파랗게 된 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김남주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혁아, 조금만 참아. 엄마 말 잘 들으면 아빠가 곧 널 보러 올 거야. 앞으로 우리 가족은 함께 살 수 있고 혁이도 곧 아빠가 생길 거야.”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혁이는 엄마 말 잘 들을 거예요.”“착하네 우리 혁이. 이따가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줄게.”“좋아요!”객실 종업원이 또 얼음 한 바구니를 더 가져다 욕조에 쏟아 넣었다.“엄마, 혁이 너무 아파요.”“조금만 참아.”30분 후, 김남주는 차가운 욕조에서 아이를 안아 올렸고, 물도 닦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창문을 향해 소파에서 자게 했다.깊은 밤, 강혁은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온몸은 화로처럼 뜨거웠고 이미 혼수상태에 빠졌다.김남주는 아이를 데리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향했고 의사는 곧바로 해열 주사를 놓았다.아침 여섯 시에야 강혁의 상황은 호전되었고, 간호사가 말했다.“열이 내렸으니 아래층에 가서 병원비를 지급하시고 오후에 퇴원 절차 밟으시면 돼요.”“네, 감사합니다.”간호사는 그녀가 좀 낯이 익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간호사가 병실을 나간 후, 김남주는 표정이 다시 싸늘해지더니 아직 링거를 꽂고 있는 아이를 매섭고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엄마를 탓하지 마. 나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영수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꼴은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어. 원래 내 자리를 찾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김남주는 그대로 병실을 떠났고, 불쌍한 아이만 혼자 남게 되었다. 시간은
강영수는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장 회장님,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소월이 앞에서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정을 생각해서, 한 가족인 회장님을 위한 결정이에요. 남천 그룹이 강한 그룹 계열사가 되는 건 나쁜 점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 남천의 연간 수익은 100억 정도이지만 앞으로 강한 그룹 계열사가 된다면 연간 수입이 적어도 600억은 되겠죠. 이 600억은 강한 그룹에게 그저 자투리일 뿐,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리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희는 어떤 이유로든 남천 그룹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장 회장님은 여전히 그 위치에 계시면 됩니다. 하지만... 대표 자리는 교체해야 할 것 같네요.” 장해진은 화가 나서 관자놀이에 핏줄이 터질 정도였지만 얼굴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웃고 있었다.“강 대표님, 요 몇 년 동안 전 대표가 회사 실적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는 회사 전 직원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표를 바꾼다면 수중에 있던 프로젝트들은...”“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따로 사람을 파견해 인수인계하겠습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셔도 되고요.”“참, 듣자 하니 최근 남천 그룹에 자금 구멍이 나서 은행에서도 대출을 미루고 있다고 하죠? 회장님께서 키운 후계자는 실력이 좀 부족한 것 같네요. 회사에 위기를 초래한 사람을 이참에 해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아니면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강영수는 덤덤하게 장해진을 바라보며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회장님도 아마 제 뜻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계약만 체결하면 강한은 남천에 거대한 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회수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수표를 드리죠.”“소월이와 제 결혼식에서 전 꼭 장인어른을 뵙고 싶거든요.”남성 부지 개발이 예상대로 완료되지 않으면 남천 그룹에게는 열 배의 위약금이 부과된다. 만약 위약금을 배상할 수 없다면 장해진은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전연우는 장해진을 따라 룸에서 나왔다.“날짜를 잡아 네 신분을 대외적으로 발표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으니 이제 정식으로 발표해야 괜한 말들이 나오지 않는 법이지.”“그러면 강 대표도 널 경계하지 않을 거다.”“네.”전연우의 눈에는 한 줄기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이 정도 일도 못 하면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술 좀 마시면 될 것을 어디서 고고한 척하고 있어? 여긴 직장이지, 제삿집이 아니야! 그 반반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네까짓게 천하일성에 와보기나 보겠어?”엘리베이터 끝 복도에서 뚱뚱한 매니저가 웨이터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송시아는 매니저에게 이마를 쿡쿡 찔리면서도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는 차분한 분위기의 잘생긴 남자를 보았을 때, 그녀의 눈은 계속 그에게 향했고, 귓가에서 들려오는 꾸지람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전연우도 그녀의 시선을 눈치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송시아는 흠칫 놀랐다. 그에게서 익숙하면서도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불과 몇 초 만에 그녀의 시선을 끈 남자는 이미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매니저는 정신이 딴 데 팔린 송시아를 보고는 또 머리를 쥐어박으며 욕했다.욕설이 끝나자 송시아는 테이블을 치우러 갔고, 그녀와 함께 룸서비스를 들어간 직원이 다가와 위로했다.“시아 씨, 괜찮아요? 매니저님이 심하게 말했어요?”송시아는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에요. 얼른 치우고 제시간에 퇴근하죠.”“그래요.”천하일성은 24시간 영업했고 3팀이 교대로 일했다. 이 테이블을 치우고 나면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에 알바를 더 많이 뛰어야 학비를 낼 수 있고, 대학에 다닐 돈이 생긴다.하늘은 원래 불공평한 법이다. 여기서 부자들이 하룻밤에 소비하는 금액은, 아마 그녀가 평생을 벌어도 벌지 못할 돈이었다.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얻는 것들
“지금 아이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더 이상 지체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어요.”“지금까지 병원비가 정산되지 않아서 병원의 규정에 따라 더 이상 아이에게 약을 줄 수 없습니다.”김남주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 강영수는 차갑게 말했다.“전화 잘못 거셨어요. 저는 아이 아버지가 아닙니다.”말을 마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진봉도 잠자코 있었다.보아하니,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김남주가 돈이 없어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도망간 모양이다. 확실히 그녀가 할법한 행동이었다.하지만 아이는 죄가 없다. 이대로 놔두다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노부인이 가장 신경 쓰는 건 강씨 가문의 핏줄이다. 만약 소월 아가씨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김남주에게는 추호의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직원 식당으로 들어가려던 강영수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넌 회사에 있어. 내가 가볼게.”“네.”강영수는 액셀을 밟고는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병원에 도착한 남자는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김남주는 머리에 거즈를 두른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쫓겨났고, 경비원은 비닐봉지에 있는 약도 버렸다.“이건 병원 규정입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수술을 해줍니까? 당장 나가세요!”김남주는 아이를 안고 무릎을 꿇은 채 울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제발 살려주세요.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돈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볼게요.”“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이봐요, 계속 소란 피워도 아무 소용없어요. 요즘 누가 돈도 없이 진료를 받아요? 요 며칠 입원비용은 저희 나 선생님께서 대신 지급하셨어요.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저희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김남주의 어깨에 엎드린 강혁의 작은 얼굴은 이미 탈수증상이 심해 보였다. 며칠 사이에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엄마, 나 죽어요? 혁이 너무 아파요. 아프면 아빠가 혁이 보러 온다고 했잖아요? 아빠 왜 안 와요? 혁이 아빠 보고 싶어요!”강영수
차에서 김남주는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에 둘이 싸우고 냉전을 할 때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언제나 강영수였다.여자가 무릎을 꿇던 순간, 강영수는 확실히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고집스레 말했다.“누가 우리 모자 생사에 관여하래? 이미 약혼도 했으면서, 약혼녀가 알기라도 하면 어떡해? 나랑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않겠어?”남자는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에 몰두했다.“저번에 우리 집에서 내 부인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누구더라?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어.”여자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혁이만 아니었다면 나라고 강씨 가문에 가고 싶은 줄 알아? 가서 네 할머니 눈치 보면서? 어차피 여태까지 넌 아이를 돌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모른 척해도 돼. 길옆에 세워 줘.”강영수는 매서운 눈으로 싸늘하게 말했다.“아이 양육권은 이미 변호사에게 계약서 작성하라고 했어. 넌 나 못 이겨. 법원도 양육권을 정신병 있는 어머니에게 판결하지 않을 거야.”김남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래서, 소월이보고 혁이를 키우라고 할 생각이야? 혁이가 모르는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고? 강영수, 나 아직 안 죽었어! 정신병이 뭐 어때서? 그러는 넌? 너도 미친 인간이잖아!”여자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는 확실히 미치광이가 맞았다.김남주는 그를 보면서 입가에 이상한 미소를 짓더니 유유히 말했다.“지금 혁이 상황이 그때 너랑 똑같다는 걸 모르겠어?”“소월이는... 바로 그때의 심유고. 심유가 어떻게 너희 집을 망쳤는지 잊지 마!”“닥쳐!”강영수는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다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고, 재빨리 아이의 머리를 감쌌다.“내 말이 틀렸어? 그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잘못이라면 네 할머니가 했겠지. 그렇게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우린 헤어지는 일도 없었고 혁이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어.”“소월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심유가 아니야. 넌 영원히 소월이를 이길 수 없어. 너처럼 눈에 온통 계산으로 가득 차지
대체 왜?혁이는 그녀가 낳은 그녀의 자식이다. 무슨 근거로 소월이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김남주가 죽는 한이 있더라고, 이번 생에는 절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간호사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처량한 울음소리를 듣고 가슴이 오싹해졌다. 미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만약 강영수가 데려온 사람이 아니라면, 병원에서는 진작 경찰에 신고 했을 것이다.박순옥은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차를 타고 달려왔다.원래 고열감기에 시달리던 혁이는 갑자기 백혈병이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는 맞는 골수를 찾느라 바빴다.강영수가 바로 이 아이와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과 골수가 일치할 확률이 높았다.그는 거절하지 않고, 당일 밤 바로 수술에 동의했다.그들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고, 불청객 김남주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박순옥은 두려움에 떨며 두 부자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어르신, 안심하세요. 수술 성공 확률이 높으니 대표님은 아무 일 없을 겁니다.”“일단 소월에게 알리지 마.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 아이 성격이라면 당장이라도 귀국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혁이의 일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강영수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두 사람은 가까스로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당분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다.박순옥은 걸어오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얼굴빛이 차갑게 굳어졌다.“네가 여긴 왜 왔어?”김남주는 수술실 문에 표시된 수술 중이라는 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녀가 사라진 며칠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혁이는 제 아들이니 당연히 와야죠. 어르신이 절 막을 권리 없어요.”박순옥은 콧방귀를 뀌었다.바로 이때, 진봉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그는 조용한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소월 아가씨!”휴대폰 너머 장소월은 호텔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에는 이불커버를 들고, 어깨에
수술은 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두 사람 상태는 모두 안정되었다.강영수가 깨어났을 땐 날이 밝아있었다.침대 옆에서 그를 간호하고 있던 진봉이 강혁의 상황을 보고했다.“제때에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아이는 이미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수술 후 3개월 정도 뒤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3개월이면... 마침 장소월이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다.강영수가 연신 몇 번 기침했다. 그가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자 진봉이 곧바로 그를 제지했다.“대표님, 아직은 내려오시면 안 됩니다. 열흘은 걸려야 회복되실 수 있습니다.”“소월이는... 연락 왔었어?”장소월을 떠올리자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이 일을 설명해야 한다는 불안감이었다. 아이의 일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시한폭탄과도 같았다.진봉이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말했다.“수술이 끝나기 한 시간 전 전화가 왔었습니다. 대표님께선 회사의 급한 일을 처리하고 계신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설사 아신다고 해도 소월 아가씨는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육권만 가져오면 소월 아가씨와 예전처럼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강영수는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낯빛이 창백했다. 이마 앞 잔머리가 검은색 깊은 눈동자를 뒤덮었다. 그 속에 내려져 있는 어둠은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그는 장소월에게 숨기는 것이 구경 맞는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문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남주가 어두워진 표정을 가리며 손에 전기 포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깨어났구나. 혁이 일은 고마워. 병원비는 내가 최대한 갚을게. 이건 내가 만든 곰탕이야. 의사 선생님께서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김남주는 말을 마친 뒤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 위 강영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더는 머물지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김남주 많이 변했네.”예전의 그녀는 안하무인으로
야건 업소 룸 안.두 쌍의 남녀로 이루어진 카드 테이블 위, 전연우와 서철용이 서로 다른 편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전연우의 앞엔 가득 쌓인 칩이 놓여있었는데 모두 서철용으로부터 따온 것이었다.“강영수 때문에 남원에서도 쫓겨났으면서 하나도 화가 나지 않나 봐? 오히려 신나 보이는데?”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판, 또 한 판, 서철용은 지니고 있던 1억 원의 돈을 거의 모두 잃고 말았다. 속수무책으로 계속 지기만 하니 슬슬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짜증이 몰려와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으나 눈앞 도련님이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탓에 억지로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정말 이상한 일이다. 전연우와 카드를 치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니 말이다.바로 그때, 문밖 종업원이 문을 열었다.황유나가 온 것이다. 그녀의 눈에 야한 옷차림으로 서철용의 몸에 딱 붙어있는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 못마땅함이 스쳐 지나갔다.“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요?”서철용의 예쁜 눈동자에 흥미로운 미소가 물들었다.“이쪽으로 와서 카드 좀 받아줘요. 마침 화장실에 가려던 참이었어요.”황유나는 전연우도 이곳에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전연우는 늘 청렴하고 점잖은 상류 인사인 척 자신을 위장했다. 보아하니 지금은 가면을 벗어던진 듯 셔츠 단추도 몇 개 풀렸고 넥타이도 마음대로 풀어져 있었다.서철용에게도 그의 이런 모습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하여 그는 지금까지 전연우가 가면을 쓴 모습에 익숙해져 예전 자신이 파렴치한 양아치였단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황유나를 본 전연우는 카드를 내려놓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서철용을 보며 말했다.“일부러 와서 날 역겹게 하려는 거야?”주어가 황유나인지, 서철용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장소월과 똑 닮은 황유나의 그 얼굴은 서철용이 직접 칼을 들어 빚어낸 것이니 말이다.장소월이 해외로 나간 이 타이밍에 황유나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황유나가 분노하며 전연우에게 따져 물었다.“누가 역겹다는 거예요? 난 아직
그녀는 장소월과 전연우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연우 씨, 남원 별장이 없어지고, 두 사람의 아이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마지막은 장소월 차례예요... 장소월까지 죽은 후, 난 영원히 이 별장에서 당신과 함께 살 거예요.” ... 신이랑의 이직 소식이 성세 그룹 전체에 퍼졌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소민아였다. 사무실, 소민아는 손에 회의 자료를 들고 신이랑 앞으로 걸어가 따지듯이 물었다. “왜 회사에서 나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안 믿었는데, 회의하러 잠깐 올라갔다가 와보니 정말 이직한다네요.” “신이랑 씨, 정말 송시아랑 손잡은 거예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내가 본가로 들어가는 건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어요. 민아 씨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내가 민아 씨한테 결혼을 강요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결국 민아 씨는 날 한 번도 믿지 않은 거네요!” 소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듯한 감정이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는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랑 씨,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미안해요. 제가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해서 헛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냥 이랑 씨가 왜 갑자기... 회사를 나가는 건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전에도 말했듯이, 난 구르미 시리즈에 줄곧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나한텐 다른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소민아가 말했다. “무슨... 무슨 일인데요? 왜... 지금까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신이랑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미 민아 씨한테 말했었어요. 다만 민아 씨가 내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뿐이죠.” “난 이만 갈게요. 나머지 업무는 이미 우림 씨에게 인계했어요. 우림 씨가 내 자리를 대신할 거예요.” 소민아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신뢰
“의사 선생님... 선생님...” 송시아는 가득 흥분한 채 의사를 불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달려와 전연우를 진찰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환자분 상처는 아주 잘 아물고 있습니다. 아까 정말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반응이 있었다면, 신경이 스스로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곧, 혹은 예정보다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송시아는 환희가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좋은 소식이었다. 송시아는 전연우의 침대에 앉아 연고를 꺼내 손가락에 조금 묻히고는 그의 옷을 걷고 이미 아문 상처에 발랐다. “연우 씨, 이 팔찌 장소월이 준 거 맞지? 서철용이 당신에게 한 말 전부 다 들은 거야?” “당신도 지금 당장이라도 깨어나서 장소월을 보고 싶겠지?” “당신들은 날 너무 얕잡아 봤어.” “당신의 흉터... 없어지지 않도록 몸에 남겨둬야겠어. 이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잊지 못하게 말이야.” 송시아가 그에게 쓰는 연고는 최고급이라 시중에서 개당 2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흉터 제거뿐 아니라 상처 회복도 빠르게 해준다. 그녀는 휴지를 꺼내 연고를 닦아냈다. 그때 송시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송 대표님, 그 팔찌는 비슷한 디자인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닷가 쪽에서 파는 팔찌는 거의 다 흡사한 유형이거든요. 완전히 똑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마지막 3초를 남기고 연결되었다. 송시아가 말했다. “전연우는 곧 깨어날 거예요. 이직 준비는 다 됐어요? 이랑 씨 마음만 굳건하다면, 내가 꼭 민아와 순조롭게 결혼할 수 있게 할게요. 마음이 변한다 해도 상관없어요. 신씨 집안은 나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니까.” 신이랑이 물었다. “성세 그룹 주식은 왜 팔았어요? 뭘 하려는 거죠?” 송시아는 한쪽 팔을 가
서철용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전 나중에 갈 거예요. 거긴 아주 안전한 곳이에요.” 도우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사모님을 모시러 가겠습니다.” 군병원 아래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흰색 장갑을 끼고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배은란은 딸을 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돼?” “민용 씨, 나 혼자 가는 거 무서워. 같이 가자, 응?” 서철용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이 끝나면 금방 너한테 갈게. 네가 가는 곳은 내 스승님과 사모님의 댁이야. 그분들은 평생을 의학에 헌신하셨고, 자녀가 없어서 날 친아들처럼 여기셨어. 너에게도 잘해주실 테니까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 그분들은 분명 너 좋아하실 거야.” 배은란은 그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거나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차에 올라탔다. “그럼 꼭 빨리 나한테 와야 해.” “그래.” 점차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서철용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배은란, 이건 내가 너한테 진 빚이야.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땐 진짜 서민용이 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완전한... 서민용을 너에게 돌려줄게!’ 그날 밤, 서민용은 분명히 죽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 서철용이 그를 지옥에서 구출해 냈다. 다만, 그의 상황은 아직도 좋지 않다. 여전히 스승님의 병원에 누워 연명 치료만 받고 있을 뿐이다. 전연우 외에, 지금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바로 서민용이다...배은란이 계속 그의 곁에 있으면, 서철용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녀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배은란은 정신과 약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기억도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반산 별장. 송시아는 바로 그 소식을 들었다. “쯧,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서 형수를 얻
전연우가 어떻게 성세 그룹 주식 매각을 허락할 수 있지? 혹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파도가 넘실거리며 해안에 부딪히고 있었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해초와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를 질근 묶고는 조개껍데기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손에 들고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장소월 앞으로 걸어와 유창한 러시아어를 말했다. 이곳은 외딴곳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예쁜 언니, 이 목걸이 선물로 줄게요.” 전설에 따르면, 예전 이곳은 황량한 사막이었는데, 신의 딸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아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물을 찾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고, 그 후 바다가 되어 이 해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에선 조개껍데기와 소라를 신의 은총을 받은 물건이라고 믿고 있다. 이걸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하면 상대방이 신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주는 것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외에 남녀가 서로에게 프러포즈 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휴대폰에 서철용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번에 보낸 팔찌, 전연우가 아주 좋아하네요. 수고했어요.] 장소월은 그의 상황을 묻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 메시지를 지웠다 썼다 반복했다. 시간이 꽤 오래 흘렀는데도 전연우에 대한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유일한 소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유튜브 계정에서 올린 결혼식 다음 날 그녀와 전연우가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영상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이곳에 머무른 이후로 그녀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편안하지 못했다. 산장 신혼 방에서 칼날을 전연우의 가슴에 꽂아 넣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시뻘건 피를 온몸에 뒤집어썼었다. 그날 밤 손바닥에 스며든 붉은 피는 아무리 씻어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었다. 장소월은 한참을 갈등하다가 휴대폰을 들어 한마디 물었다. [그 사람은 괜찮나요?] 어린 소녀가 말했다. “언니, 나랑 같이 놀러
기성은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했다면, 전연우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잔혹한 그의 출신이 늘 발목을 잡았다. 모든 사람의 출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은도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신만의 아픈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의 과거는 그저 과거라는 단어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소민아가 정말로 기성은과 함께하려 한다면, 그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그들 손으로 직접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소민아는 이 난관을 스스로 떨쳐내고 성장해야 한다. 그녀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면, 그녀와 기성은의 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소민아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전혀 몰랐다. 송시아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대표 사무실. 소민아는 결국 송시아와 직접 대면하여 분명히 따져 묻기로 했다. 송시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회사 경영이 좀 힘들어서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 문제 있어?”소민아가 말했다. “전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거예요. 지금 이 행동은 회사를 망치는 거예요.”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팔려고 내놓은 주식은 내가 갖고 있던 거야. 문제 있어?” “혹시 다른 일 없으면, 언니랑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까?” “당신을 보면, 입맛이 뚝 떨어져요.” 소민아는 곧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송시아가 한 말은 단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대체 왜 주식을 팔고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중, 마케팅팀 직원 몇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민아는 구석에 서 있었던지라 아무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 다음 주부터 연차 시작이에요. 외국에 다녀올 생각인데, 지유 씨는요? 연차 다 썼어요?” “아직이요.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너무 짜증 나요!” 그 순간 소민아의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은 하지 말고 내가 지시한 일이나 해요.”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송시아는 회사 대부분의 주식을 던져버렸다. 성세 그룹이 설립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호시탐탐 주식이 시장에 풀리기를 노렸다. 하지만 주식은 줄곧 전연우와 송시아의 수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었다. 다들 그들의 주식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절대 한 푼도 빼내 오기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지금 팔려나가는 10%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소민아도 이 소식을 듣고 서철용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성세 그룹이 주식을 처분한다는 소식은 30분도 안 되어 이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서철용은 발코니에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코웃음을 쳤다. “전연우, 송시아가 정말 네 성세 그룹을 완전히 거덜 내려고 하고 있어.”“너와 송시아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율은 똑같고, 인씨 가문이 3% 지분을 갖고 있어. 만약 인씨 가문이 그 3%를 양도한다면, 네 성세 그룹 대표 자리는 언제든지 빼앗길 수도 있겠어.” “송시아가 하는 꼴을 보니 너를 완전히 새장 속에 가둘 모양이야.” 서철용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연우, 다 자업자득이야. 배은란은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서철용 앞으로 걸어와 휴대폰을 건넸다. “민용 씨, 전화 왔어.” 서철용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일어서 배은란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익숙한 전화번호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안 끝났어요?”소민아는 미안한 듯 말했다. “서 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서 선생님이 제 전화번호를 차단해서 와이프분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서 연락드린 거예요. 뉴스 보셨죠? 송시아가 성세 그룹 주식을 매도하고 있어요. 서 선생님, 송시아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서철용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앞에 있는 여자를 보고는 애써 감정을
송시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목적을 달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경호원에게 말했다.“퇴원 준비해요.”경호원이 말했다.“송 대표님, 간호사가 대표님은 상처가 아물기 전엔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송시아는 아랫배를 만지며 빙그레 웃었다.“이 고비만 넘기면 나도 한동안 푹 쉬어야겠어요.”“알겠습니다.”저녁 12시 커다란 승합차 안, 송시아는 누워있는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어떤 곳에 도착했다. 핸드폰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천 명은 족히 담을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랗고, 쥐 죽은 듯 고요한 그곳 별장 안은 의료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 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 주치의 또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주위엔 높디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전연우를 가두기 위해 만든 새장 같았다.안방은 수영장 하나도 담을 수 있을 만큼 드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연우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의사는 그의 손등에 다시 링거 바늘을 꽂고 있었다.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탓에 송시아도 많이 피곤했던지라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옷을 벗고는 반신욕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우유를 마시며 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얼마 후,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남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다가왔다.송시아는 매끄러운 긴 다리를 뻗어 눈앞의 남자를 도발했다.“여기 찾지 못할 줄 알았어요.”“나한테 누군가를 찾는 건 아주 간단한 거라고 했잖아.”송시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내가 알아봐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요?”“그건 알려줄 수 없어. 너희들 사이 일엔 끼어들지 않을 거야. 난 그냥 네 뱃속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 내 대를 잇게만 하면 돼.”송시아는 씁쓸한 얼굴로 컵 안
송시아는 전연우의 손을 잡고 그 걸리적거리는 물건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팔찌에 손을 댄 순간, 행동을 멈추고 느긋하게 그의 옆에 앉아 핸드폰으로 팔찌 사진을 찍고는 저장되지 않은 누군가의 번호에 전송했다.[이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봐 줘요.]이어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전연우 씨, 지금 내가 하는 말 다 듣고 있다는 거 알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연우 씨가 깨어났을 땐 성세 그룹은 이미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전생에서 당신은 날 망가뜨렸어요. 이번엔 내가 당신의 모든 걸 빼앗아 빈털터리로 만들 거예요. 그래야 내가 더 쉽게 당신을 통제할 수 있잖아요.”“당신은 권력을 너무 욕심낸 탓에 제일 중요한 걸 잃은 거예요.”소민아는 회사에 돌아간 뒤 기성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서 선생님이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거라고 했어요. 기성은 씨도 이제 돌아오는 거 맞죠?]쨍그랑.컵이 깨지는 소리에 소민아가 고개를 돌렸다. 신이랑이 일어나 유리 조각을 주우려하자 그녀는 급히 다가갔다.“움직이지 말아요. 다쳐요.”하지만 신이랑의 손가락은 이미 유리 조각에 찢어져 있었다. 소민아는 휴지로 그의 손가락을 감쌌다.“왜 그래요? 집에 돌아온 뒤로 쭉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았어요.”신이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른 한 손은 소민아에게 잡혀 있었다.“난 괜찮아요. 요즘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래요.”소민아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신이랑이 결혼 때문에 복잡해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솔직히 이게 더 좋은 상황 아니에요? 이랑 씨는 내 상사고, 우린 친구잖아요. 이랑 씨... 난 무슨 이유로든 지금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아요.”신이랑은 자신의 손을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바람 좀 쐬러 나갈게요.”급히 나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무언가 회피하는 것 같았다.늘 차분했던 신이랑은 평소와는 달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발코니에서 주먹을 꽉 말아쥐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으스러지는 듯한 두통이 또다시 밀려오기
“됐어. 너 같은 냉혈한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서철용은 침대 옆에 앉아 호주머니에서 조개껍질 팔찌를 꺼냈다.“너 지금 모든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거 알아.”“전연우, 기억해. 깨어나면 소월 씨한테 죄를 묻는 게 아니라... 예전 네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해.”“소월 씨는 줄곧 강영수의 죽음이 너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너희 두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긴 거야. 하지만... 이건 기억해야 해, 소월 씨는 너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는 거. 소월 씨에겐 감정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지금 강영수는 죽지 않고 잘 살아 있어.”“네가 계속 고집부리면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너한텐 영원히 소월 씨를 잃어야 하는 처벌이 내려질 거야.”“소월 씨가 성까지 바꾸고 강영수와 결혼하면 넌 어떻게 할까!”서철용은 전연우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반지를 끼고 있는 무명지가 살짝 움직였다. 서철용의 입꼬리가 위로 씩 올라갔다.“이제야 조급해졌어? 지금까지 뭐 하다 이제야 온 거야!”소민아가 일정을 말하기 시작한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이 보이자 소민아는 바로 일어섰다.“서 선생님, 대표님은 어떻게 됐어요?”“뭐 어떻겠어요. 당연히 식물인간 상태죠. 하지만 이번 달 안엔 깨어날 거예요.”소민아는 활짝 웃어 보였다.“그래요? 정말 잘됐네요.”서철용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신이랑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 언제 결혼해요? 나한테도 청첩장 보내는 거 잊지 말아요.”그 말에 신이랑과 소민아의 사이는 더 어색해졌다.소민아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말했다.“서 선생님, 오해예요.”서철용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내가 찾아가지 않았는데 제 발로 왔네요?”송시아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민아와 이랑 씨 결혼 청첩장은 내가 직접 보내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서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