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힘이 그녀를 밀어냈다. 힘없이 바닥으로 밀려 넘어진 장소월은 바닥에 있던 유리 파편에 손바닥을 베였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손바닥에서 선혈의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퍼진 피가 옷깃을 물들였다.강영수의 눈에서 불쾌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는 장소월에게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갔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의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고 그 감정도 바로 사라졌다.그는 바로 등을 돌려 그녀를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넓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백색소음들로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려 노력하고 있었다.“일단 나가 있어.”그는 단지 장소월의 배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 그녀를 다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강영수는 장소월을 너무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강영수를 바보 천치로 여기며 제대로 속이기 시작했다.그녀는 전연우와 침대에서 함께 뒹굴고, 그렇고 그런 짓을 하며 강영수의 무지에 대해 비웃고 있진 않았을까?장소월은 고통을 참으며 손바닥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 상처 난 손을 몸 옆으로 슬쩍 감추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알겠어, 진정 될 때까지 기다릴게.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영수는 바로 등을 돌려 그녀가 머물다 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굳게 닫힌 문을 보던 그의 눈빛에는 깊은 고통이 묻어나왔다.위층으로 올라온 하인이 다친 장소월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뛰어왔다.소월 아가씨께서 다치셨는데 큰 도련님께서 신경도 안 쓰신다니.예전부터 큰 도련님이 제일 애지중지 하던 사람이 바로 소월 아가씨인데. 예전엔 손 다칠까 봐 주방 식칼조차 못 잡게 하셨는데.하인이 구급상자를 들고 와 장소월에게 간단한 처치를 해주었다. 상처가 깊지 않아 다행이었다.장소월이 하인에게 얘기했다.“먼저 가세요. 조금 있다가 이 식사 영수 방까지 가져다주세요. 약 챙기라는 말도 잊지 마시고요.”하인이 대답했다.“네,
남원 별장장가네 서재에서 전화를 끊은 장해진이 전연우에게 눈길을 주었다.“강영수가 약혼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어디서 안 거야?”장해진의 깊은 눈동자가 전연우를 응시했다. 모든 일을 전연우에게 맡긴 이후로 자신의 아들이 은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그도 이제 더 이상 쉽게 다룰 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소월이가 성공적으로 강가네 집에 들어갔는지의 여부가 회사의 이익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소월이 일이잖아요. 아버지 대신 오빠 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신경 써야죠.”그렇게 말을 끝낸 전연우는 책상 앞에서 3가닥의 향초를 꺼내 불을 붙인 후 두 손으로 장해진의 앞에 내밀었다.전연우의 대답에 장해진은 따로 무어라 말을 더 얹을 수가 없었다. 그는 향을 들어 이마 위로 들어올리고는 공손히 3번의 절을 올렸다.“회사에 대한 마음이 깊어보여서 기쁘구나. 그 말인 즉, 네가 날 아버지로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그 순간 전연우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지나갔다가 사라졌다.장해진은 향을 향로에 꽂고 뒤돌아 전연우를 보며 물었다.“강가네 쪽에 사람 심어놨니?”전연우는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영수가 회사를 맡은지 얼마 안 되기도 했으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것도 있고 소월이와 갑자기 트러블이 생길까봐 걱정이 되어서요.”예를 들면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김남주처럼 말이다.장해진은 전연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네가 한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단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어.”전연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예쁜 호선을 그리며 웃어보였다.“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요.”하인이 강영수에게 갖다 준 식사는 진작에 버려진지 오래였고 강영수는 다시 한번 불 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장소월이 급하게 하인에게로 달려가 넘어져있는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괜찮으세요?”겁을 먹은 하인은 고개를 절
“너 떠나는 거야?”장소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영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서류 가방을 꼭 쥐고 있는 장소월의 손으로 시선이 향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약혼식을 당장 취소하진 않을 거야. 필경 내가 너한테 졸라서 진행한 거니까. 돌연 취소하면 우리 강씨 집안 명성에 먹칠을 하는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취소할 거니까 기다려.”“앞으로 학교와 집을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가지 마.”장소월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차가 고장 나서 수리 맡겼어. 이건 도우미 아주머니가 네 차에서 가져온 거야. 적당히 마셔, 난 이만 방에 돌아갈게.”“거기 서.”장소월이 몸을 돌린 순간, 강영수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그녀가 물었다.“또 할 얘기 있어?”“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장소월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그건 네 물건이야. 나한테 열어볼 권리가 없어.”강영수가 그녀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 권리 내가 지금 부여할게. 열어봐.”장소월은 한참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강영수가 위험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왜, 못 하겠어? 무서운 거야?”장소월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 봉투를 열었다.“안에 든 물건을 꺼내.”그가 명령했다.장소월은 그의 말대로 사진을 꺼냈다.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측한 사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영수가 그녀의 반응을 주시하며 뚫어지라 쳐다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장소월이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요즘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이것 때문이었어? 조금 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몇 장 봤었어.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 했었는지 알아? 내 뒷조사를 한 것 외에 또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일
“미안해... 네 뒷조사를 하는 게 아니었어. 그 사진을 보고 너한테 말 못 했던 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야.”슬프고도 무거운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내가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면 매정히 떠나버릴까 봐 무서웠어.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널 지켜만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난 너한테 상처 못 주겠어. 한 마디 독한 말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아.”“소월아, 사랑해.”“널 너무 사랑해서, 사진 속 장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난 너와 헤어진다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어. 약혼식을 취소하자는 것도 그저 홧김에 한 말일 뿐이야.”“나한텐... 너밖에 없어! 가지 마.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 안 해. 내 곁에만 있어 줘. 난 널 잃고 싶지 않아.”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잃으면 얼마나 큰 절망에 빠져버릴지 모른다.“나한테 한 마디만 해줘. 모두 다 사실이 아니라고. 응?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강영수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애원하듯 말했다.어두운 방 안, 장소월이 눈을 떴다. 그녀의 말투는 여느 때와 같이 평온했다.“사진 속의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녀가 말했다.“좋아!”“이젠 무슨 일이든 나한테 숨기지 마.”사진 속 사람은 확실히 그녀가 아니다. 저번엔 도저히 반항할 수가 없어 강제로 그런 옷을 입었었다. “알았어.”“가서 샤워하고 자. 안 좋은 냄새 나.”“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그녀는 이제 정말 자야 한다. 아니면 내일 제시간에 깨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이 눈을 감았다. 가슴 속 응어리가 씻겨 내려간 것 같은 후련한 마음에 곧바로 잠이 들었다.2시간 뒤, 샤워를 마치고 난 뒤의 청량하고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 바람에 잠시 잠에서 깼지만 몸을 돌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이 지났고 어느덧 수능 날짜가 다가왔다.학교 문 앞은 아이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로 붐비었다. 그들의 기대와 긴장감이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시험 잘 봐
전생.그녀와 송시아가 처음 만났던 건 송시아가 먼저 전연우의 커피숍에서 만남을 청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당시 서울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 주위 모두 빽빽한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중 절반 가까이 되는 회사들이 성세 그룹 소유였다.뜨거운 무더위에 연기가 나도록 펄펄 끓고 있는 도로, 그리고 저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악취, 그야말로 꿉꿉하고 께름칙한 찜통 같은 여름이었다.성세 그룹 로비에 위치하고 있는 커피숍 안, 송시아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질근 묶은 채 도도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누가 봐도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장부의 모습이었다.그녀와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면, 장소월은 늘 열등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장소월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바로 남편의 믿음직스러운 비서 송시아다.송시아의 가소로운 듯한 눈빛에 장소월은 움찔하며 가방을 꽉 움켜쥐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왜 날 보자고 했어요?”송시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빨간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 사람을 거부할만한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0분 뒤 대표님과 함께 유럽으로 출장 가야 해요. 시간이 없으니 짧게 얘기할게요.”그들이 유럽으로 갈 거라는 걸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말해주지 않았다.송시아가 귀 옆 잔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전 대표님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고 있어요. 사모님의 장씨 가문에 입양되셨더라고요. 비록... 장씨 집안엔 이제 사모님 한 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표님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아버님께선 아들을 잘 키우셨어요. 제가 존경할 수 있을 정도로요.”“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와 10년이 지나도록 줄곧 대표님의 옆에 있었어요. 그건 사모님께서도 익히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남천 그룹에서 시작해 지금의 대기업 성세 그룹이 되기까지, 분명 제힘도 적잖은 보탬이 되었을 거예요. 저야말로 대표님의 곁에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에요.”장
“알겠어요.”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진봉이 차 시동을 걸며 말했다.“강씨 집안엔 소월 아가씨와의 파혼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 3일 후 예정대로 약혼식을 진행할 겁니다. 대표님, 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약혼식을 망치려 하는 건가요? 소월 아가씨가 강씨 집안 사람이 되면 대표님에게 이득만 있지 해가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또한 파혼시키고 싶다면 왜 김남주의 그 비밀들을 강영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그럼 저흰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오늘 기분이 좋은지 머릿속 생각들을 진봉에게 털어놓았다.“소월이의 그 사진들은 강영수를 시험하기 위해 보낸 거야. 소월이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보려고.”결과적으로 강영수는 장소월에게 꽤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 배신을 감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강영수가 장소월을 용서할 거라는 걸 전연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말을 이어갔다.“소월이는 그저 나와 장씨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때문에 강영수가 김남주와 만나는 것도 눈감아줬어.”“하지만 애석하게도 장소월은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몰라. 사진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 강씨 집안 권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강영수는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 꿈에도 모르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함정을 파놓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 결국 최후엔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김남주의 비밀은 확실히 좋은 무기야. 하지만 그거론 턱없이 부족해. 아직 그걸 쓸 타이밍이 아니기도 하고.”“난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넣고 싶어. 그럼 절대 다시 강영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거야.”“10여 년 동안 내가 보아온 장소월은 그래.
장소월이 다가오자 강영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햇볕이 너무 따가웠던 탓에 서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 안 온도는 아주 시원했다. 강영수가 차가운 물을 장소월에게 건넸다.“시험 잘 봤어?”물을 한 모금 마시니 무더위가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괜찮은 거 같아.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어.”강영수는 그녀와 함께 이미 예약해 놓은 촬영 회사로 향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이번이 그중 한 번이다.촬영을 마치고 나자 녹초가 된 장소월은 차 안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강영수는 운전을 하다 그녀의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팔을 뻗어 얼굴을 감쌌다. 빨간불이 되어 정차한 다음엔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혀 그녀를 편히 눕혔다.그녀는 화장한 얼굴로 편안히 누워 강씨 저택에 도착했다.강영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안은 뒤 현관으로 들어갔다.도우미가 달려 나왔다.“도련님...”그의 품속 장소월을 본 순간 도우미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할 말 있으면 밤에 해요.”강영수가 장소월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 안에 들어간 뒤 강영수는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영수는 발신자 이름을 보고선 곧바로 전원을 꺼버렸다.요즘 시험 준비에 바삐 돌아친 데다 약혼식 등 많은 일까지 겹치다 보니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깊이 잠들지 못했었다.강영수는 화장대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려서야 겨우 클렌징 오일을 찾아냈다. 그는 세심히 성분표를 살펴본 뒤 비교적 온화한 클렌징 오일을 선택해 조금씩 장소월의 얼굴을 문지르며 화장을 지워냈다.은은한 레몬 향을 맡은 장소월이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뭐 하는 거야?”강영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화장한 채 자면 피부에 안 좋아. 내가 지워줄게. 금방이면 돼.”“응.”화장을 지우고 난 뒤 강영
인씨 가문.강영수가 약혼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인정아가 강씨 집안으로 전화를 걸었다.“어머님, 영수가 곧 약혼한다면서요? 왜 저한텐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전 영수의 엄마예요. 이렇게 큰일을 알 권리조차 저한텐 없는 건가요?”강씨 노부인이 말했다.“이건 영수의 결정이야. 난 간섭할 수 없어. 영수는 이제야 가까스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어. 엄마로서 정말 영수를 위한다면 조용히 있어. 너와 강씨 집안 인연은 이미 끝났어. 나 또한 네가 영수의 엄마니까 전화통화라도 해주는 거야.”“당시 영수는 고작 다섯 살이었어. 넌 그 어린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괴롭혔어.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까지 했지. 이제 와 자책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마. 우리 강씨 집안에선 이미 너라는 사람을 잊었으니까!”뚜뚜 통화음과 함께 전화가 끊겨버렸다.인정아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얼굴을 감쌌다.인시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엄마... 괜찮으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흥분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우리 오빠한테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네? 분명 용서해줄 거예요.”“오빠의 약혼식에 가고 싶으시면 제가 소월이에게 전화해 얘기할게요. 소월이가 갈 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신다면 어떻게 약혼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강영수도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인시윤의 그 말에 희망이 생긴 인정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시윤아, 이번 일은 너한테 부탁할게. 난 네 오빠한테 너무 큰 빚을 졌어.”“엄마 마음 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 오빠가 엄마를 용서할 날이 꼭 올 거예요.”그녀는 줄곧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 말인가.그녀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당시 그녀는 강일주의 배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강일주가 밖에서 심유와 외도하며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사생아까지 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