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이 살짝 미소 띤 얼굴로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너무 고마운데 괜찮아. 이미 찬 것 같으니 우린 다음 엘리베이터를 탈게.”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듯 단호히 거절하니 다들 이상한 눈빛으로 장소월과 강영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나 깜빡하고 룸에 물건을 두고 왔어. 금방 다녀올게.”허이준이 말했다.“내가 기다리고 있을게.”“그래.”장소월이 몸을 돌려 룸으로 향하자 엘리베이터 문도 서서히 닫혔다. 사실 강영수는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물건을 두고 오지 않았다. 그저 이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친 것뿐이다.장소월은 룸에서 몇 분 기다리다가 종업원이 청소하러 들어온 뒤에야 문을 나섰다.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장소월이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는 말했다.“됐어. 가자.”“잠깐만.”“왜?”허이준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 장소월의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장소월은 그가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하지만 허이준은 가볍게 여자에게 손대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안전벨트에 걸린 머리카락을 풀어주었다.“머리카락.”장소월이 경계심을 풀며 말했다.“고마워.”허이준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액셀을 밟고 주차장에서 나갔다.한편 멀지 않은 곳에 정차된 벤츠 차 앞엔 담배꽁초 몇 개가 쌓여가고 있었다.김남주가 강영수의 손에서 절반가량 피운 담배를 빼앗아갔다. 다리를 꼬고 앉으니 찢어진 치마 옆으로 가는 다리가 드러났다. 그녀가 빨간 입술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영수야, 그렇게 장소월을 쳐다보면 나 질투해.”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습관적으로 담배 연기를 그의 얼굴에 내뱉었다.“이제 내가 돌아왔어. 난 네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자리 잡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우리 두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커플이잖아, 안 그래?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넌 한 번도 날 놓은 적이 없다는 거 알아. 우리에겐 수많
강영수가 아무리 착하고 어른스러워지려 노력해도 아버지는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그를 칭찬해주지 않았다.그는 그렇게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랐다.강영수는 이후 완전히 돌변했다. 술을 마시고, 문신을 새기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저잣거리의 양아치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그러다 누군가의 원한을 샀고 하마터면 길거리에서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 그가 피를 흘리며 거의 목숨이 끊어져 가고 있을 때, 김남주를 만났다.김남주는 그의 옆에서 1년, 또 1년을 함께했다.당시 강영수의 옆엔 김남주 단 한 명뿐이었다. 사귀자는 말도 강영수가 먼저 했었다. 어쩌면 너무 어려 사리 분별을 못했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충동일 수도 있다.강영수는 당시 사랑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잃기 싫은 마음을 사랑인 줄로 여겼다.김남주가 떠날 거라는 걸 알았을 땐 그녀를 잡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 했었다. 그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하지만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사람이 하나하나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걸 말이다.강영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잡지 못한다면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가정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상황에서 옆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마저 그를 떠나가니, 이 세상 전체에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그는 죽는 것으로 자신을 집어 삼켜버린 어둠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차 사고는 그를 저승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어느 날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존재인 장소월이 나타났고 그에게 살아갈 힘을 부여한 구원자가 되었다. 강영수는 그녀로 인해 스스로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강영수는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위해 했던 것이었는지를 말이다.김남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장난치지 마. 영수야, 넌 날 떠날 수 없어. 날 위해 내 목숨까지 던져버리려 했잖아. 내가 네 말을
“진봉, 남주를 강천으로 데려다줘.”강천은 서울에서 1, 2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였는데 그곳은 김남주의 고향이었다. 차로 달리면 두세 시간 정도 걸렸다.“하지만 대표님...”“이미 결정한 일이니 내 말대로 해.”강영수가 차에서 내리고 김남주도 따라 내리려 하자 진봉은 문을 잠가 버렸다. 너무 울어 눈물범벅이 된 김남주는 손톱으로 창문을 지지직 긁으며 울부짖었다.“강영수, 이 나쁜 놈! 나더러 영원히 네 옆에 있어 달라고 했던 건 너야. 이제 와서 날 이렇게 버려? 거짓말쟁이!”강영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수야, 미안해. 내가 널 떠나는 게 아니었어. 그 사고는 우연이었어. 나도 네가 그렇게 심각한 괴로움에 빠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 이제부터 내가 다 보상해줄게. 응?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내가 이렇게 빌게. 날 보내지 마.”“네가 없으면 난 미쳐버릴 거야!”김남주가 끊임없이 차 창문을 두드렸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사실 강영수는 오늘 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려 했다.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 하나가 계속 그를 다그쳤다. 아직도 장소월에게 가지 않으면 그녀는 완전히 그를 떠날 것이라는 목소리였다.이번 한 번... 고개를 숙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강영수 자신이 절대 그녀를 보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말이다.저녁 9시 문신점.댕기 머리를 한 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한 명이 껌을 씹으며 맞은 편에 앉은 준수한 외모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웃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 팔은 온통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손님... 정말 한 번에 지울 건가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몇 번에 나눠 지우는 걸 추천해 드려요. 아니면 씻어내고 남은 상처에 감염될 위험이 있거든요. 또한 문신 면적이 너무 커 내일까지 지워야 할지도 몰라요.”이 남자의 몸은 정말이지 더 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솔직히 문신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것 같은데...”강영수가 지갑에서 두둑한 5만 원짜리 지폐를
은경애가 장소월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아이고, 이렇게 좋은 집주인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야.”은경애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인삼 전복을 너무 많이 먹어 토하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가족에게도 먹이고 싶어 가져가 보니 남편이 아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 몰래 가져가긴 했지만 장소월의 승낙을 받았었다. 그녀는 나쁜 일은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은경애가 거실 조명을 끄고 깨끗이 씻은 딸기 한 접시를 위층으로 들고 갔다. 자신은 반쯤 시들어가는 것을 먹었고 싱싱한 건 모두 장소월의 방에 가져갔다. 장소월은 참으로 가엾은 아이이다. 사람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큰 방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편하긴 하겠지만 따뜻한 집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은경애는 방에 돌아온 뒤 무언가 생각났는지 급히 오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 걸어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언니. 아가씨가 돌아오면 알려달라고 해서 전화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가씨는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는 언제 돌아와요? 너무 보고 싶어요.”“컥컥컥...”“왜 그렇게 기침하는 거예요? 어디 아파요? 이제 괜찮아요?”오 아주머니가 쇠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질병이 도진 거지 뭐. 아가씨가 잘 지내면 됐어. 잘 보살펴줘. 부탁할게.”은경애가 말했다.“부탁이라니요. 언니가 소개해준 덕에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찾았는걸요. 제가 내일 병원에 언니를 보러 갈게요.”밤이 깊어지고 고요함이 내려앉았다.장소월은 화장실에서 나와 처음으로 받은 트로피를 장식장에 올려두었다.돌연 머릿속에 강영수가 그녀에게 준 문제집에 써주었던 글귀가 떠올랐다.이제... 그녀는 성공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 같았다.그녀는 강영수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았다. 강영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김남주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필경 그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니 말이다.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과거는 있는 법이다.또한 그녀는
깊은 밤 내리는 비는 뼈를 꿰뚫기라도 할 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장소월은 가디건을 걸치고 문을 나섰고 은경애는 불을 켰다.남자는 어둠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장소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빗속으로 뛰쳐나갔고 은경애는 급히 현관에 꽂아두었던 우산을 펴고 따라 나갔다.장소월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너 어떻게 된 거야? 왜 이 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야?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우산은 왜 또 안 썼어? 진봉 비서님은?”초라한 그의 모습에 장소월은 심장이 저려왔다. 누군가 목을 조르기라도 한 듯 답답함까지 몸을 옥죄었다.강영수는 장소월의 몸에 쓰러져버렸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그녀를 꽉 껴안았다. 검은 머리를 적시고 있던 차가운 물방울이 장소월의 하얀 목에 또르륵 떨어졌다. 그녀가 몸을 뒤로 기울이고는 강영수의 등을 두드렸다.“강영수.”은경애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아이고. 정신을 잃었어요.”장소월은 곧바로 그를 부축해 거실 소파에 앉혔다.“아주머니, 뜨거운 물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전연우의 방에서 깨끗한 옷도 가져다주세요.”“아, 네네네...”장소월의 옷도 반이 넘게 젖어있었다. 그녀가 가디건을 벗어보니 군데군데 붉은 핏자국들로 얼룩져있었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렇게 다쳤단 말인가?그의 정장을 벗겨보니 목에 새겨져 있던 문신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많은 흉터가 남아있었고 어떤 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강영수가 더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 고민 없이 곧바로 그의 셔츠를 벗겼다. 이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평온했던 마음에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이었다.그의 상반신은 멀쩡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부터 손가락까지, 불에 덴 것 같은 자국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그에게... 대체 무슨 일
강영수는 김남주를 놓지 못했다. 마치 전생에서 백윤서가 죽은 뒤 전연우가 그녀를 놓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완전히 김남주에게로 돌아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왜 이 밤에 그녀를 찾아왔단 말인가?강영수 역시 전연우처럼 마음을 읽기가 어려운 사람이다.그녀는 지금 19살밖에 되지 않은 앳된 소녀였지만, 마음은 두 번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만큼이나 깊었다.새벽 4시 26분.불이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서재에서 전연우가 차디찬 눈빛으로 CCTV 속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 속엔 한 마리의 독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서재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가 분노를 못 이겨 옆에 놓아두었던 컵을 문으로 내던졌다. 커피가 회색 벽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고 바닥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뒤덮였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우렛소리, 끊임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빗소리, 그리고 밤하늘을 가르며 번쩍거리는 번개까지...이 모든 것이 남자의 소름 끼치는 표정에 더해지니 실로 공포스러웠다.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잠이 깬 백윤서가 다급히 서재로 달려왔다.“오빠!”컴퓨터 화면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백윤서는 깜짝 놀랐다.“오빠, 왜 그래요? 아까...”“나가!”전연우가 이를 꽉 깨물고 소리쳤다.백윤서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난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내 말 못 알아들어? 다시 한번 말할게. 내 허락을 받기 전엔 서재에 들어오지 마.”백윤서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알... 알겠어요.”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자신의 상한 기분을 분출하기라도 하는 듯 방을 나서고는 쾅 하고 서재 문을 닫았다.그때 책상 위 핸드폰이 진동했다.번호를 확인한 전연우는 창가로 걸어갔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은 채 조용히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핸드폰 너머로 여자의 미치광이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강영수가 돌아갔어요. 분
김남주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백윤서는 문밖에서 전연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충격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조금의 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 모습은 무시무시한 비밀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았다.백윤서는 자신의 오빠가 이토록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가 사람을 죽인다고? 왜 그녀의 목숨을 요구한단 말인가?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백윤서의 기억 속의 전연우는 그녀가 거의 굶어 죽어갈 때 밥 한 끼를 가져다주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 애원한 사람이다.버려진 동물을 불쌍히 여겨 항상 집으로 데려와 보살핀 사람이고, 장씨 집안에 입양된 뒤엔 매해 보육원에 기부해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나누어준 사람이다. 그는 절대 그런 나쁜 일은 하지 못한다.백윤서는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침대에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있은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남자는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책상 위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이 강영수의 상처를 모두 치료하고 나자 날이 밝아왔다. 밤새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기승을 부렸으니 바닥엔 떨어진 낙엽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은경애가 다가와 말했다.“아가씨도 좀 쉬세요.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잖아요. 이제 핸드폰 신호도 회복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화했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자리에서 일어서니 몸이 휘청거렸다. 다행히 은경애가 빠르게 움직여 장소월을 잡아주었다.“열이 내렸으니 다른 건 별로 문제 될 게 없어요. 깨어나면 전 나갔다고 전해주세요.”“네. 알겠어요.”은경애가 말을 이어갔다.“아침 식사를 준비했어요. 아가씨, 조금이라도 드세요. 거르면 위가 상해요.”“영수가 가면 아주머니도 집에 돌아가 며칠 쉬세요.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했잖아요.”장소월은 말을 마친 뒤 방을 나섰다.그녀가 그리 말한다고 해도 정말 그녀에 관여하지 않을 은경애가 아니었다
얼마나 잤을까, 장소월은 돌연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잠이 깼다. 몽롱함 속에서 그녀는 무언가에 강하게 짓눌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목에선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그녀가 괴로움에 신음소리를 내뱉으려 한 순간, 폭풍 같은 키스 때문에 다시 목구멍 안으로 되돌아갔다. 남자의 한 손은 그녀의 치마 속을 헤집었고, 다른 한 손은 가슴 위 봉긋 솟아오른 새하얀 봉우리를 움켜쥐었다.장소월은 어렸을 때부터 발육이 남달라 이젠 한 손에 다 담기도 어려웠다.그가 조금의 소중함도 알지 못하는 듯 제멋대로 장소월의 몸을 주물렀다.그녀는 그저 고통스럽게 앓은 소리를 낼 뿐이었다.통증은 천천히 그녀를 잠에서 깨게 만들었고, 그의 차가운 숨결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방안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으나 남자의 체취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해 이 파렴치한 남자가 전연우임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항상 이렇듯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즐겼다. 그녀가 잠들어 있을 때 시작해 조금씩 힘을 더하며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괴롭히는 걸 특히나 좋아했다.매번 그녀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을 때도 멈추기는커녕 더더욱 흥분하며 그녀의 몸을 탐했다.장소월은 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던가.그녀가 두 손으로 전연우를 때리며 희미하게 소리를 질렀다.“이.. 이러지 마.”그 소리는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전연우에겐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허리를 감싸던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전연우가 돌연 그녀에게서 입을 떼고 한 손으로 그녀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오빠를 도와줘. 알았지?”장소월의 가슴이 격렬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녀는 두 다리 사이로 남자의 거물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전연우는 그녀가 명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몇 번이고 잠자리해도 처음 하는 것처럼 흥분이 차올랐다.그는 심지어 그녀의 몸에서 죽어도 좋을 거라는 말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