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수가 아무리 착하고 어른스러워지려 노력해도 아버지는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그를 칭찬해주지 않았다.그는 그렇게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랐다.강영수는 이후 완전히 돌변했다. 술을 마시고, 문신을 새기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저잣거리의 양아치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그러다 누군가의 원한을 샀고 하마터면 길거리에서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 그가 피를 흘리며 거의 목숨이 끊어져 가고 있을 때, 김남주를 만났다.김남주는 그의 옆에서 1년, 또 1년을 함께했다.당시 강영수의 옆엔 김남주 단 한 명뿐이었다. 사귀자는 말도 강영수가 먼저 했었다. 어쩌면 너무 어려 사리 분별을 못했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충동일 수도 있다.강영수는 당시 사랑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잃기 싫은 마음을 사랑인 줄로 여겼다.김남주가 떠날 거라는 걸 알았을 땐 그녀를 잡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 했었다. 그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하지만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사람이 하나하나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걸 말이다.강영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잡지 못한다면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가정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상황에서 옆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마저 그를 떠나가니, 이 세상 전체에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그는 죽는 것으로 자신을 집어 삼켜버린 어둠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차 사고는 그를 저승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어느 날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존재인 장소월이 나타났고 그에게 살아갈 힘을 부여한 구원자가 되었다. 강영수는 그녀로 인해 스스로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강영수는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위해 했던 것이었는지를 말이다.김남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장난치지 마. 영수야, 넌 날 떠날 수 없어. 날 위해 내 목숨까지 던져버리려 했잖아. 내가 네 말을
“진봉, 남주를 강천으로 데려다줘.”강천은 서울에서 1, 2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였는데 그곳은 김남주의 고향이었다. 차로 달리면 두세 시간 정도 걸렸다.“하지만 대표님...”“이미 결정한 일이니 내 말대로 해.”강영수가 차에서 내리고 김남주도 따라 내리려 하자 진봉은 문을 잠가 버렸다. 너무 울어 눈물범벅이 된 김남주는 손톱으로 창문을 지지직 긁으며 울부짖었다.“강영수, 이 나쁜 놈! 나더러 영원히 네 옆에 있어 달라고 했던 건 너야. 이제 와서 날 이렇게 버려? 거짓말쟁이!”강영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수야, 미안해. 내가 널 떠나는 게 아니었어. 그 사고는 우연이었어. 나도 네가 그렇게 심각한 괴로움에 빠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 이제부터 내가 다 보상해줄게. 응?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내가 이렇게 빌게. 날 보내지 마.”“네가 없으면 난 미쳐버릴 거야!”김남주가 끊임없이 차 창문을 두드렸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사실 강영수는 오늘 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려 했다.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 하나가 계속 그를 다그쳤다. 아직도 장소월에게 가지 않으면 그녀는 완전히 그를 떠날 것이라는 목소리였다.이번 한 번... 고개를 숙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강영수 자신이 절대 그녀를 보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말이다.저녁 9시 문신점.댕기 머리를 한 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한 명이 껌을 씹으며 맞은 편에 앉은 준수한 외모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웃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 팔은 온통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손님... 정말 한 번에 지울 건가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몇 번에 나눠 지우는 걸 추천해 드려요. 아니면 씻어내고 남은 상처에 감염될 위험이 있거든요. 또한 문신 면적이 너무 커 내일까지 지워야 할지도 몰라요.”이 남자의 몸은 정말이지 더 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솔직히 문신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것 같은데...”강영수가 지갑에서 두둑한 5만 원짜리 지폐를
은경애가 장소월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아이고, 이렇게 좋은 집주인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야.”은경애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인삼 전복을 너무 많이 먹어 토하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가족에게도 먹이고 싶어 가져가 보니 남편이 아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 몰래 가져가긴 했지만 장소월의 승낙을 받았었다. 그녀는 나쁜 일은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은경애가 거실 조명을 끄고 깨끗이 씻은 딸기 한 접시를 위층으로 들고 갔다. 자신은 반쯤 시들어가는 것을 먹었고 싱싱한 건 모두 장소월의 방에 가져갔다. 장소월은 참으로 가엾은 아이이다. 사람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큰 방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편하긴 하겠지만 따뜻한 집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은경애는 방에 돌아온 뒤 무언가 생각났는지 급히 오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 걸어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언니. 아가씨가 돌아오면 알려달라고 해서 전화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가씨는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는 언제 돌아와요? 너무 보고 싶어요.”“컥컥컥...”“왜 그렇게 기침하는 거예요? 어디 아파요? 이제 괜찮아요?”오 아주머니가 쇠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질병이 도진 거지 뭐. 아가씨가 잘 지내면 됐어. 잘 보살펴줘. 부탁할게.”은경애가 말했다.“부탁이라니요. 언니가 소개해준 덕에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찾았는걸요. 제가 내일 병원에 언니를 보러 갈게요.”밤이 깊어지고 고요함이 내려앉았다.장소월은 화장실에서 나와 처음으로 받은 트로피를 장식장에 올려두었다.돌연 머릿속에 강영수가 그녀에게 준 문제집에 써주었던 글귀가 떠올랐다.이제... 그녀는 성공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 같았다.그녀는 강영수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았다. 강영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김남주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필경 그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니 말이다.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과거는 있는 법이다.또한 그녀는
깊은 밤 내리는 비는 뼈를 꿰뚫기라도 할 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장소월은 가디건을 걸치고 문을 나섰고 은경애는 불을 켰다.남자는 어둠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장소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빗속으로 뛰쳐나갔고 은경애는 급히 현관에 꽂아두었던 우산을 펴고 따라 나갔다.장소월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너 어떻게 된 거야? 왜 이 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야?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우산은 왜 또 안 썼어? 진봉 비서님은?”초라한 그의 모습에 장소월은 심장이 저려왔다. 누군가 목을 조르기라도 한 듯 답답함까지 몸을 옥죄었다.강영수는 장소월의 몸에 쓰러져버렸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그녀를 꽉 껴안았다. 검은 머리를 적시고 있던 차가운 물방울이 장소월의 하얀 목에 또르륵 떨어졌다. 그녀가 몸을 뒤로 기울이고는 강영수의 등을 두드렸다.“강영수.”은경애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아이고. 정신을 잃었어요.”장소월은 곧바로 그를 부축해 거실 소파에 앉혔다.“아주머니, 뜨거운 물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전연우의 방에서 깨끗한 옷도 가져다주세요.”“아, 네네네...”장소월의 옷도 반이 넘게 젖어있었다. 그녀가 가디건을 벗어보니 군데군데 붉은 핏자국들로 얼룩져있었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렇게 다쳤단 말인가?그의 정장을 벗겨보니 목에 새겨져 있던 문신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많은 흉터가 남아있었고 어떤 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강영수가 더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 고민 없이 곧바로 그의 셔츠를 벗겼다. 이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평온했던 마음에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이었다.그의 상반신은 멀쩡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부터 손가락까지, 불에 덴 것 같은 자국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그에게... 대체 무슨 일
강영수는 김남주를 놓지 못했다. 마치 전생에서 백윤서가 죽은 뒤 전연우가 그녀를 놓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완전히 김남주에게로 돌아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왜 이 밤에 그녀를 찾아왔단 말인가?강영수 역시 전연우처럼 마음을 읽기가 어려운 사람이다.그녀는 지금 19살밖에 되지 않은 앳된 소녀였지만, 마음은 두 번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만큼이나 깊었다.새벽 4시 26분.불이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서재에서 전연우가 차디찬 눈빛으로 CCTV 속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 속엔 한 마리의 독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서재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가 분노를 못 이겨 옆에 놓아두었던 컵을 문으로 내던졌다. 커피가 회색 벽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고 바닥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뒤덮였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우렛소리, 끊임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빗소리, 그리고 밤하늘을 가르며 번쩍거리는 번개까지...이 모든 것이 남자의 소름 끼치는 표정에 더해지니 실로 공포스러웠다.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잠이 깬 백윤서가 다급히 서재로 달려왔다.“오빠!”컴퓨터 화면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백윤서는 깜짝 놀랐다.“오빠, 왜 그래요? 아까...”“나가!”전연우가 이를 꽉 깨물고 소리쳤다.백윤서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난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내 말 못 알아들어? 다시 한번 말할게. 내 허락을 받기 전엔 서재에 들어오지 마.”백윤서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알... 알겠어요.”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자신의 상한 기분을 분출하기라도 하는 듯 방을 나서고는 쾅 하고 서재 문을 닫았다.그때 책상 위 핸드폰이 진동했다.번호를 확인한 전연우는 창가로 걸어갔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은 채 조용히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핸드폰 너머로 여자의 미치광이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강영수가 돌아갔어요. 분
김남주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백윤서는 문밖에서 전연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충격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조금의 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 모습은 무시무시한 비밀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았다.백윤서는 자신의 오빠가 이토록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가 사람을 죽인다고? 왜 그녀의 목숨을 요구한단 말인가?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백윤서의 기억 속의 전연우는 그녀가 거의 굶어 죽어갈 때 밥 한 끼를 가져다주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 애원한 사람이다.버려진 동물을 불쌍히 여겨 항상 집으로 데려와 보살핀 사람이고, 장씨 집안에 입양된 뒤엔 매해 보육원에 기부해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나누어준 사람이다. 그는 절대 그런 나쁜 일은 하지 못한다.백윤서는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침대에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있은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남자는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책상 위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이 강영수의 상처를 모두 치료하고 나자 날이 밝아왔다. 밤새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기승을 부렸으니 바닥엔 떨어진 낙엽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은경애가 다가와 말했다.“아가씨도 좀 쉬세요.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잖아요. 이제 핸드폰 신호도 회복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화했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자리에서 일어서니 몸이 휘청거렸다. 다행히 은경애가 빠르게 움직여 장소월을 잡아주었다.“열이 내렸으니 다른 건 별로 문제 될 게 없어요. 깨어나면 전 나갔다고 전해주세요.”“네. 알겠어요.”은경애가 말을 이어갔다.“아침 식사를 준비했어요. 아가씨, 조금이라도 드세요. 거르면 위가 상해요.”“영수가 가면 아주머니도 집에 돌아가 며칠 쉬세요.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했잖아요.”장소월은 말을 마친 뒤 방을 나섰다.그녀가 그리 말한다고 해도 정말 그녀에 관여하지 않을 은경애가 아니었다
얼마나 잤을까, 장소월은 돌연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잠이 깼다. 몽롱함 속에서 그녀는 무언가에 강하게 짓눌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목에선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그녀가 괴로움에 신음소리를 내뱉으려 한 순간, 폭풍 같은 키스 때문에 다시 목구멍 안으로 되돌아갔다. 남자의 한 손은 그녀의 치마 속을 헤집었고, 다른 한 손은 가슴 위 봉긋 솟아오른 새하얀 봉우리를 움켜쥐었다.장소월은 어렸을 때부터 발육이 남달라 이젠 한 손에 다 담기도 어려웠다.그가 조금의 소중함도 알지 못하는 듯 제멋대로 장소월의 몸을 주물렀다.그녀는 그저 고통스럽게 앓은 소리를 낼 뿐이었다.통증은 천천히 그녀를 잠에서 깨게 만들었고, 그의 차가운 숨결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방안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으나 남자의 체취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해 이 파렴치한 남자가 전연우임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항상 이렇듯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즐겼다. 그녀가 잠들어 있을 때 시작해 조금씩 힘을 더하며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괴롭히는 걸 특히나 좋아했다.매번 그녀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을 때도 멈추기는커녕 더더욱 흥분하며 그녀의 몸을 탐했다.장소월은 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던가.그녀가 두 손으로 전연우를 때리며 희미하게 소리를 질렀다.“이.. 이러지 마.”그 소리는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전연우에겐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허리를 감싸던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전연우가 돌연 그녀에게서 입을 떼고 한 손으로 그녀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오빠를 도와줘. 알았지?”장소월의 가슴이 격렬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녀는 두 다리 사이로 남자의 거물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전연우는 그녀가 명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몇 번이고 잠자리해도 처음 하는 것처럼 흥분이 차올랐다.그는 심지어 그녀의 몸에서 죽어도 좋을 거라는 말도 했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친 탓에 그녀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어느새 얇은 잠옷 치마는 갈기갈기 찢겨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하얀 피부와 수줍은 듯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전연우의 아랫배가 또다시 꿈틀거리게 만들었다.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꿰뚫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장소월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 바람에 유혹적으로 움푹 패인 쇄골이 선명해졌고 남자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입술을 파묻고 자신만의 흔적을 남겼다.은경애가 집에 돌아갔으니 장소월이 아무리 저항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이 별장엔 그들 두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다.장소월의 결말은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찌 됐든 그녀의 몸은 이미 더럽혀졌다. 전연우는 몸에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까지는 진행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만약 통제력을 잃어버린다면 그것 또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장해진이 집을 떠나니 장씨 집안은 그의 천하나 다름없다.전연우에게 남은 한 가닥의 인내심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남자는 이미 지퍼를 내리고 그 위험한 물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 물건이 턱에 닿자 뜨거움에 몸부림쳤다. 그녀가 눈을 감고 말했다.“나쁜 자식, 일어나.”“쉿, 잠깐이면 돼.”40여 분 뒤.장소월이 그의 셔츠를 집어 들고 가슴과 얼굴에 묻은 끈적한 것을 닦아내고는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나 진짜 너 죽여버리고 싶어. 나쁜 자식, 지금 당장 꺼져.”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머리를 덮은 셔츠를 들어 구석에 던져버리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침대 위 소녀를 끌어안았다.장소월이 다리를 뻗어 그에게 발길질하려 했으나 전연우는 곧바로 몸을 피했다. 장소월은 그 기회를 틈타 반대쪽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또다시 굳게 닫혔다.전연우는 강제로 그녀를 문을 잡고 엎드리게 했다. 아름다운 S라인 곡선이 눈을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