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몸부림친 탓에 그녀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어느새 얇은 잠옷 치마는 갈기갈기 찢겨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하얀 피부와 수줍은 듯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전연우의 아랫배가 또다시 꿈틀거리게 만들었다.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꿰뚫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장소월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 바람에 유혹적으로 움푹 패인 쇄골이 선명해졌고 남자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입술을 파묻고 자신만의 흔적을 남겼다.은경애가 집에 돌아갔으니 장소월이 아무리 저항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이 별장엔 그들 두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다.장소월의 결말은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찌 됐든 그녀의 몸은 이미 더럽혀졌다. 전연우는 몸에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까지는 진행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만약 통제력을 잃어버린다면 그것 또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장해진이 집을 떠나니 장씨 집안은 그의 천하나 다름없다.전연우에게 남은 한 가닥의 인내심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남자는 이미 지퍼를 내리고 그 위험한 물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 물건이 턱에 닿자 뜨거움에 몸부림쳤다. 그녀가 눈을 감고 말했다.“나쁜 자식, 일어나.”“쉿, 잠깐이면 돼.”40여 분 뒤.장소월이 그의 셔츠를 집어 들고 가슴과 얼굴에 묻은 끈적한 것을 닦아내고는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나 진짜 너 죽여버리고 싶어. 나쁜 자식, 지금 당장 꺼져.”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머리를 덮은 셔츠를 들어 구석에 던져버리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침대 위 소녀를 끌어안았다.장소월이 다리를 뻗어 그에게 발길질하려 했으나 전연우는 곧바로 몸을 피했다. 장소월은 그 기회를 틈타 반대쪽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그 순간...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또다시 굳게 닫혔다.전연우는 강제로 그녀를 문을 잡고 엎드리게 했다. 아름다운 S라인 곡선이 눈을
그는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자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심지어 그녀가 몸을 돌리려 할 때면 힘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도 했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옆으로 누워 잠드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것이다.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0여 년 동안 이어오던 습관은 이미 뼛속까지 익숙해져 쉽게 바뀌지 않는다.장소월은 몸을 돌려 지난날 수많은 여자의 마음을 빼앗았던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그녀 기억 속의 전연우는 마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젊은 날의 전연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어버렸을 것이다.장소월이 고개를 들고 자세히 그를 살펴보았다.지금의 젊은 전연우와 중년이 된 후 전연우의 두 얼굴이 겹쳐 보였다.마흔 살의 전연우는 더욱 성숙했고 더욱 매혹적이었으며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유의 여유가 배어 나왔다.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부딪힌다고 해도 그만 옆에 있다면 모두 해결될 것은 안정감이 느껴져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었다.당시 그와 비슷한 나이대 남자들은 모두 몸이 망가졌거나 머리가 벗어졌었다.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완벽한 몸매를 유지했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매달린 것이다. 장소월에게 찾아와 안주인 자리를 내놓으라 호통치던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그의 눈엔 아무도 담기지 않았다.장소월은 너그럽고 행복한 현모양처인 척 연기하며 아무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영혼 없이 살았다.기억을 되돌려보면 두 사람에겐 행복했던 순간이 극히 적었다. 대부분 그녀가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던 나날들이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다시 평온을 되찾고, 또다시 고통을 호소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장소월은 그를 목졸라 죽이고 싶었으나 그녀의 나약한 힘으론 해낼 수가 없었다. 숨통이 끊어지기 전에 그가 잠에서 깨어났다.장소월은 침대에서 내려와 겉옷을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했다. 대체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예전의 고통에서 걸어 나올 수 있을지
매번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장소월은 끊임없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냈다.당시... 그녀는 어떻게 마음속 고통을 해소했었나?그건 바로 자해였다. 육체의 고통으로 정신적 고통을 덮었다.하지만 자해를 해도 아무런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더욱 큰 우울감이 몰려올 뿐이었다.장소월은 주방에서 가위를 꺼내 손목을 한 번 그었다. 처음이라 피는 나지 않았지만 마음은 더더욱 아파왔다.두 번째로 그었을 땐 피가 흘러내렸다.핏방울이 뚝뚝 싱크대에 떨어져 물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함께 하수구로 내려갔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어두운 방 안, 그녀의 미소는 마치 처량한 처녀 귀신의 미소 같았다.세 번째...육체의 고통이 심화되어 정신적 고통이 감소했다.천천히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장소월은 드디어 만족감을 얻었다. 피와 함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도 서서히 빠져나갔다.예전 그녀가 자해를 하는 걸 발견했을 때 전연우의 얼굴엔 조금의 걱정스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칼을 들고 그녀의 손을 잡고는 같은 위치를 한 번 더 깊숙이 베었다. 허연 뼈가 다 보일 정도였다.그녀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깨어났을 땐 방안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그는 장소월이 미쳤다고 말했다.사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녀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마... 아주 긴 시간이 걸려서야 천천히 자신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너 뭐 하는 거야?”차가운 목소리가 시커먼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이어 전연우가 불을 켰다.눈 부신 빛에 장소월이 눈을 찡긋 감았다.전연우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의 손에서 가위를 빼앗았다.장소월은 덤덤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그의 얼굴에서 걱정과 분노의 감정을 보았다.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당장이라도 분노에 폭발해 버릴 듯 위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너 그렇게 죽고 싶어?
미친 건 장소월뿐이 아니었다.전연우는 우선 장소월의 상처를 간단하게 치료했다. 상처가 깊지 않고, 가위를 매일 소독했기에 파상풍 주사를 맞을 필요는 없었다.“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장소월이 입은 치마는 전부 피로 물들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창백했다. 장소월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연우는 앞으로 내려온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아침 만들어 줄게. 뭐 먹고 싶어?”“그냥 가.”“그럼 국수를 삶을게.”전연우가 가장 잘하는 요리는 면 요리뿐이다.둘은 매우 평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느낌이다.전연우는 채소와 고기가 가득한 국수를 만들어 식탁에 올리고, 또 뒤를 돌아 작은 그릇을 가져와 장소월에게 덜어 줬다.전연우는 국수를 들어 그릇에 옮기고 국물도 따라 주었다. 국물이 그릇 밖으로 살짝 흘러 식탁에 떨어졌다.“와서 먹어.”장소월은 계단을 밟던 동작을 그만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빠르게 전연우에 의해 끌려와 앉았고 손에는 젓가락도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던져 그릇과 젓가락 모두 떨어졌고 국물과 국수도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너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너만 없으면 그런 고통도 생각나지 않아! 그럼 자해도 안 한다고! 제발 가라고! 부탁이야!”전연우는 화를 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정리했다. 조각을 집은 손은 베여 피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어 장소월을 보자, 장소월은 전연우가 자기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쳤다.“다 먹으면 갈게.”전연우는 자기 그릇을 장소월 앞에 가져다 놓고 쓰레기를 청소하고는 자리를 떠나 문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새벽 여섯 시.공기 중에는 꽃향기와 진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서철용은 침대에 기대어 옆에 있는 여자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줍고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때 전화가 걸려 와 고개를 돌렸다.서철용이 전화를 받고 말했다.“왜? 소월 씨한테 무슨 일 생겼어?
배은란은 빠르게 호텔을 빠져나와 길에서 택시를 잡고 목적지를 말했다. 백미러로 배은란을 보는 기사의 눈빛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배은란은 가방에서 쿠션을 꺼내 옷깃을 내려 거울을 비춰 보니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를 보자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는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배은란은 빠르게 파운데이션을 발랐고 몇 겹을 바르고 나서야 완벽하게 가려졌다.배은란은 서철용이 한 말을 믿지 않았다. 서민용이 직접 배은란을 그 거지 같은 침대에 눕혔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어젯밤에 아이들 일 때문에 싸우고 슬퍼서 뛰쳐나와 친구들과 바에서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갔을 때부터 기억을 잃고 쓰러졌다.배은란은 부잣집 출신은 아니지만 어쨌든 부모님은 모두 학자들이고 그녀에게 엄격하게 교육해 그런 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마 술에 취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호텔에서 서철용과 한 침대에서 나체로 누워 있었다. 배은란은 서민용에게… 너무 미안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돌아와서 어떤 방식으로 서민용을 대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집에 돌아온 배은란.하인이 말했다.“사모님.”배은란이 대답했다.“민용 씨는? 아직도 자는 거야?”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에 사모님과 싸우고 나서 사장님은 계속 방에서 잠 한숨 안 자고 기다리셨어요.”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이 더욱 무거워진 배은란은 깜짝 놀라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은 바늘로 몇천 번이나 후벼 파인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파렴치한 잘못을 용서받을지 몰라 괴로웠다.배은란은 문에 노크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오직 무드 등만 켜져 있었다. 벽에는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고 이를 보니 배은란은 숨이 턱턱 막혀와 조심히 지나쳤다.서민용은 여전히 어젯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배은란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차가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
서민용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도 배은란은 몇 년이고 포기하지 않았다. 설령 서민용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배은란은 계속 옆에서 자리를 지키려 했다.이번 사고가 발생해서 배은란은 서씨 집안에 죄인이 되었다.그녀는 서민용의 옆에서 계속 머물렀다. 몇 년이고 어떻게든 배은란을 쫓아내려 했지만, 그녀는 절대로 서민용 옆을 떠나지 않았다.서민용의 얼굴이 화상자국으로 가득하고 하반신은 장애여도 상관없었다.배은란이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눈앞에 있는 서민용이다.서민용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 배은란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개의치 않았다.“네 마음대로 해.”서민용은 눈을 감고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다.이혼하지 않으면 그녀가 뭘 하든 간에 상관없었다.배은란은 얼굴에 눈물들을 닦았다.“내가 씻겨 줄게. 씻고 이제 편하게 자자. 엄마 쪽은 내가 잘 말해볼게.”배은란은 서민용을 옆에서 더 잘 케어하기 위해 하던 일들을 다 그만두고 환자케어 방법을 열심히 배웠다. 먹는 것부터 입고 쓰는 것까지 모두 옆에서 도우며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욕실에 물을 받아 수건으로 서민용을 닦았다. 등에는 큰 화상 자국이 있어 고른 피부가 하나도 없었다.30분 정도 지난 뒤 배은란은 서민용에 옷을 입히고 앉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머리카락이 또 자랐어. 내일 내가 잘라줄게. 어때? 참, 얼마 전에 내가 알아봤는데 미국에 어떤 병원에서 케이스를 보고 치료할 수 있을 거 같대! 비자 처리하고 같이 치료받으러 가자.”머리를 다 말리고 배은란은 서민용을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옷장 앞에서 잠옷을 꺼내 들어 욕실로 가 씻었다. 거울 속에 자신을 보니 웃고 있던 얼굴이 착잡해졌다. 또 후회와 원망이 밀려 와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 이런 감정보다 더 많이 차지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욕실에서 나온 배은란은 침대에 누워 머리맡에 있는 무드 등을 껐다. 이제 막 눕자, 눈을 감고 있던 서민용은 몸을 돌려 그녀를 등졌다. 그리고
진봉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오부연에게 말했다.두 사람은 그를 이 지경까지 만들 사람은 오직 소월 아가씨뿐이라고 대충 짐작했다.사실 당시 큰 도련님과 소월 아가씨가 같이 있을 때부터 이들은 큰 도련님이 소월 아가씨 앞에서만 웃음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당시에 소월 아가씨가 큰 병을 앓고 있는 큰 도련님을 지옥에서 꺼내줬다. 이번에도 꺼낼 수 있는 사람도 소월 아가씨뿐이다.일은 저지른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 큰 도련님이 과거를 잊고 했던 모든 일들도 모두 소월 아가씨를 위해서였다. 혹여나 언젠가 소월 아가씨가 큰 도련님의 마음을 읽었을 때는 알게 될 거다.오부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번에... 소월 아가씨가 쉽게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거야. 만약 사모님이 직접 가서도 안 된다면 큰 도련님이 하는 기회도 있어. 진 비서, 안심해. 큰 도련님은 아무 문제 없을 거야.”어떻게 됐든 강가네 유일한 후자에겐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진봉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 쪽은 오부연 씨에게 맡길게요. 저는 또 할 일이 있어 회사로 돌아가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응.”지금 대표님은 혼수상태로 회사 쪽에는 반드시 결정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주들은 이를 트집 잡을 것이고 나중에 또 난리 칠 수도 있다.가위눌림.불빛.폭발...“강영수... 헤어지자!”“...”“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난 널 처음부터 끝까지 속였어. 넌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나보고 너랑 같이 살자고?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장가올 건데? 말로만 하는 거야? 아니면 침대에서만 했던 약속이야?”“...”“정신차려. 넌 항상 내 세컨드였어. 몰랐어? 그냥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충실한 개일 뿐이야. 내가 너한테 잘해준 건 말 잘 듣는 개가 필요했을 뿐이야. 정말로 내가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차가 전복되어 절벽 밑으로 떨어졌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눈앞에는 온통 피로 얼룩진 광경 뿐이었다.“깨어났어요?
오부연은 남원별장에 도착했고 공교롭게도 남원별장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안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결과가 올 거라고 오부연은 생각지 못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전화도 통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부연은 알지 못했다. 위층 방안에는 장소월이 있었고 반응을 해주지 않은 것뿐이었다.지금 장소월의 상태는 문밖을 나갈 상황이 아니었다.마찬가지로 전연우도 방안에서 그녀의 행동 하나까지 감시하고 있었다. 장소월은 똑같이 숨어있었기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일은 한두 마디 말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전연우는 머플러 하나를 가져와 그녀의 몸에 둘렀다.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목 주변에는 누가 한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선명한 키스 마크가 있었다.장소월은 연한 색의 니트를 입고 있었고 헐렁한 목 주변으로 인해 보드라운 어깨가 드러났다. 남자의 살짝 거친 손이 여자의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에 키스했고 장소월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거야? 아니면 오빠와 어울리지 않는 거야? 백윤서 언니가 나와 오빠가 만난걸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봤어? 우리 사이의 일이 새어나가길 바라지 않는다면 여기서 그만해.”옷무새를 정리하고 전연우를 밀어낸 그녀는 그 길로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전연우는 찰떡처럼 붙어와서 그녀를 안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서재로 갔다. 전연우는 장소월을 무릎 위에 앉힌 상태로 안고 있었다.“뭐 하는 거야? 난 방으로 갈 거야.”전연우는 그녀의 허리를 움직일 수 없게 꽉 끌어안았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주면 나가게 해줄게. 아니면 여기서 그냥 할 거야.”전연우의 한마디에 장소월은 조용해졌다. 전연우는 메일로 온 문서들을 처리했고 온통 러시아어로 된 문서들을 장소월은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심심해 보이는 장소월을 보고 전연우는 책상 위의 책장에서 책을 하나 가져와 그녀에게 주었다.“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