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마치고 나니 4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마침 강씨 집안의 운전기사가 장소월을 데리러 학교에 도착했다. 그녀가 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갈 때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강영수가 보내온 문자였다.「최근 기온이 떨어져서 추우니까 옷 많이 껴입고 다녀. 저녁에 오 집사한테 두꺼운 이불로 바꿔주라고 할까?」장소월은 문자를 보고는 곧바로 답장했다.「괜찮아. 아직은 별로 안 추워.」강영수는 더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장소월은 문자를 하나 더 보냈다.「나 학교 끝났어. 먼저 집에 갈게.」「오늘 왜 이렇게 일찍 끝난 거야? 운전기사한테 말해뒀어.」「그래. 새 교과서를 받고 시험 하나 보고 나서 끝났어. 조금 전엔 강용을 만나 밥 먹었어.」강영수는 어두워진 눈동자로 화면을 보다가 답장했다.「알았어. 난 회의하러 들어가야 해. 저녁에 봐.」「그래.」장소월은 곧바로 강씨 저택으로 갔다. 흥취반 수업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마쳤다.시간을 아껴 공부에 투자하기 위함이었다.강씨 저택.오부연이 마당에서 새로 온 도우미들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주고 있었다.장소월이 차에서 내리자 십여 명의 도우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소월 아가씨.”장씨 저택에선 이런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장씨 저택은 별로 크지 않아 도우미가 4명 밖에 없었으니 강씨 저택과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장소월은 긴장되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녀의 불편함을 눈치챈 오부연이 말했다.“다들 일하러 가세요.”“네.”도우미들이 자리를 떠난 뒤 오부연이 장소월에게 다가갔다.“아가씨, 평소보다 3시간 일찍 집에 오셨네요. 간식 준비해 드릴까요?”“아니에요. 이미 먹어서 배가 별로 안 고파요. 집사님 전 공부를 해야 해서 바로 방에 들어갈게요.”오부연이 공손히 웃으며 말했다.“그래요.”장소월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렸다.“참, 집에 농어 있어요?”“아가씨, 농어를 드시고 싶으세요?”“저녁에 제가 농어 요리를 할게요.
“영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저도 몰라요.”장소월은 도우미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진봉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진봉이 전화를 받았다.“소월 아가씨?”“아직도 야근하고 있는 거예요?”진봉은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남자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대표님께선 지금 회의 중이시라 늦은 시간에 퇴근하실 거예요. 아가씨는 내일 일찍 학교에 가셔야 하니 오늘 밤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진봉의 목소리는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또한 그녀는 핸드폰 너머로 누군가의 울음소리도 들었다....저녁 열한 시.“소월 아가씨, 기다리지 마세요. 도련님께서 하루 정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에요.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몸이 망가져요.”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문제를 풀며 말했다.“괜찮아요. 30분만 더 기다릴게요. 먼저 주무세요.”마지막 도우미가 방에 돌아가려던 순간, 현관에 서 있는 검소한 옷차림의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집안에 앉아있는 장소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사모님!”“영수가 데려온 아가씨가 바로 저 아이야?”“네.”“지금 뭐 하고 있어?”“도련님이 아직 안 들어오셔서 기다리고 있어요.”“알았어. 이만 가봐.”“네. 사모님.”장소월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노인 한 명이 흙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고 있었다.장소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깥엔 희미한 가로등만 길을 밝히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한 번도 이 노부인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12시가 거의 되어가는 시간에 불쑥 나타난 사람이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최근 보았던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시골 귀신’“할머니...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직 집에 돌아가지 않으셨어요? 길을 잃은 거예요?”땅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본 순간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 날 귀신
장소월은 생선과 국물을 그릇에 담고 숟가락을 얹은 뒤 노부인에게 가져다주었다.“방금 꺼낸 거라 뜨거워요. 조심하세요.”“맛있네요.”“할머니, 길을 잃으신 거죠? 집이 어딘지 기억나세요?”바로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이 내다보니 포르쉐 한 대가 문 앞에 정차되어 있었다.강영수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아직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장소월이 아직도 안 자는 건가?그때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하얀색 잠옷 차림으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그녀를 본 순간, 가슴 속에서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강영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장소월이 살짝 긴장하며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내 예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 생선 요리를 만들었어. 아직 냄비에 있는데 한 번 맛볼래?”“나 먹이려고 만든 거야?”그 순간 진봉이 말했다.“소월 아가씨.”“진봉!”강영수가 눈짓을 하자 진봉은 즉시 입을 닫았다.장소월은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감지했다.하지만 강영수가 그녀가 알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 눈치라 묻지 않았다.강영수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들어가자.”“참, 깜빡하고 말 안 했네. 안에 이상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셔. 길을 잃어버리셨나 봐.”“그래?”강영수는 현관에 들어가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식탁에 앉아 국을 마시고 있는 노부인을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노부인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도련님 오셨어요?”강씨 저택의 사람이었어? 말투를 들으니 강씨 저택의 하인이었던 것 같았다.“내가 국을 떠줄게.”장소월이 주방에 들어가 냄비를 들고 나왔다.강영수는 그릇을 꺼낸 뒤 젓가락 하나를 장소월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아가씨, 고마웠어요. 난 강씨 저택의 도우미였어요. 나이가 들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까지 왔네요.”장소월이 말했다.“제가 모셔다드릴게요.”강영수도
강영수는 그레이 색 셔츠와 조끼 차림으로 손에 정장 재킷을 걸치고 이마를 짓누르며 내려왔다. 어젯밤 푹 쉬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아직 식탁에 앉아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는 장소월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평소라면 이 시간이면 이미 학교에 갔을 테니 말이다.장소월이 그에게 인사했다.“좋은 아침이야!”“그래, 좋은 아침. 왜 아직도 안 갔어?”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깜빡하고 핸드폰 충전을 못 했거든. 알람이 울리지 않아 일찍 깨지 못했어. 하지만 괜찮아. 이미 선생님한테 얘기했어.”“아침밥 먹을래? 오늘 죽 맛있어.”강영수가 그릇을 들고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그래.”이어 외투를 의자에 걸쳐놓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강영수는 차를 몰고 장소월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마침 첫 번째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강영수는 몸을 기울여 장소월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고마워. 그럼 난 갈게.”“하교 시간은 여전히 평소와 같은 그 시간이야? 내가 데리러 올까?”장소월이 대답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고 선생님께서 날 특별반에 넣어주셨거든. 그래서 저녁엔 수업하러 가야 해. 몇 시에 끝나는지는 아직 몰라.”강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끝나면 나한테 문자를 보내. 저녁에 나도 야근할 테고 마침 방향도 같으니 함께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장소월이 말했다.“그래.”차에서 내린 뒤 장소월은 다시 몸을 돌렸다. 강영수가 그녀를 바라보며 차 창문을 내렸다.“왜?”장소월은 책가방 끈을 꽉 쥐며 말했다.“강영수, 매일 꼭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해.”그녀가 물건을 차에 두고 내렸을 거라 생각한 강영수는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지극히 일반적인 걱정어린 당부였지만 정말 기뻤다.강영수의 검은 눈동자에서 따뜻함이 더 짙게 일렁였다.“알았어.”“갈게!”장소월이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집을 나설 땐 그녀가 가장 늦게 등교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학교에 도착해보니 그녀보다 늦게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
그때 밖에서 농구를 치던 남학생 몇 명이 걸어왔다.강용은 이마에 검은색 머리띠를 한 채 농구공을 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공표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강용은 손에 들고 있던 농구공을 휙 던져버렸다. 방서연이 곧바로 공을 받아안았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을 버려두고 장소월에게 가는 강용의 모습에 한 아이가 중얼거렸다.“대체 장소월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 술집에 안 가는 건 그렇다고 쳐. 심지어 게임까지 끊었어. 저번 학기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니까? 나 진짜 강용의 몸에 다른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온 건 아닌지 의심이 들어.”허철이 콧등에 걸린 안경을 올리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그는 그저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좋아하는 사람이 이토록 훌륭한데 강용이 어떻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약 장소월을 햇살에 비유한다면 강용은 해를 따라가는 해바라기와도 같다.“이봐, 아가씨... 날 못 믿어서 직접 확인하는 거야?”강용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난 그저 내 성과를 보고 싶었을 뿐이야. 잘했어. 계속 노력해.”장소월은 칭찬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냥 이렇게 가려고? 상은 안 줘?”장소월이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상은 이제 매일 아침 자습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이만 수업하러 갈게!”참 장소월 다운 말이다.점심엔 전교에서 대이동이 진행되었다.강용은 단번에 1층 교실에서 장소월의 옆 반에 옮겨왔다.그가 문신이 새겨진 길고 곧게 뻗은 손으로 한창 문제를 풀고 있는 장소월의 책상을 두드렸다.“아가씨, 밥 먹으러 안 가?”장소월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난 됐어. 혼자 먹으러 가. 난 아까 매점에서 빵을 사 왔으니까 대충 먹으면 돼. 아직 몇 문제 남았어.”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백윤서가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는 강용을 발견했다.“강용, 이번 시험 잘 봤더라? 축하해!”백윤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소월이랑 밥을 먹으려고 온 거야? 우리 같이 가자!”장소월은 이미
“서울 강남 병원으로 가. 도착하면 전연우한테 연락해. 수술할 때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해.”“알았어.”장소월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서철용을 불렀다.수술 전, 서철용은 검사를 진행했다. 그녀의 자궁에서 감염이 일어나 큰 출혈이 생긴 것이었다.“왜 이제야 온 거예요. 이미 감염이 일어났잖아요.”장소월은 수술대에 누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바로 당신들이 원했던 거잖아요.”서철용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전연우는 소월 씨를 너무 많이 봐줬어요. 나였다면... 그 정도 약으론 턱없이 부족했을 거예요.”그가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는 말했다.“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면 수술을 시작할 수 있어요. 잘 생각해요. 자궁을 들어내면 영원히 임신할 수 없어요.”장소월이 처량하게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머리카락을 적셨다.“... 나한테 다른 선택은 없잖아요.”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때 서철용의 머릿속에 예전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시름시름 앓다가 2년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었다.전연우가 소식을 듣고 수술실로 급히 달려와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어떻게 됐어?”“지금으로선 적출 수술을 제외하고 아무런 방법도 없어.”그때 강용은 벽에 기대어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당신들 장소월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장씨 집안 아가씨가 굴러온 돌에 처참히 당하다니. 이봐, 전씨... 대단하네!”서철용이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전연우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아는 사람이야?”전연우의 깊은 눈동자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강용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수술은 언제 끝나?”“한 시간 정도 뒤면 끝나.”서철용이 빙그레 웃으며 강용에게 말했다.“간단한 맹장 수술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여자친구는 곧 나올 거예요.”“내가 바본 줄 알아요? 대체 누가 맹장염으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요!”휴. 이 아이도
더러워진 수술 도구를 폐기하러 소각실로 향하던 간호사는 안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다급히 멀리 몸을 피했다.사무실 안엔 옅은 피비린내가 가득 차 있었다.용기 안에 들어있는 이상한 모양의 붉은 고깃덩어리엔 감염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바로 장소월의 몸에서 나온 기형 자궁이었다.“처음에 아직 되돌릴 기회가 있다고 했던 건 널 위로하는 말일 뿐이었어. 이걸 좀 봐. 이미 감염이 진행됐어. 본래의 모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잖아. 계속 장소월의 몸에 남아있으면 악화만 될 뿐이야. 빨리 적출해내지 않는다면 목숨도 보장하지 못해.”서철용이 용기를 들어 전연우에게 보여주고는 덤덤히 휴지통에 던져버렸다.“아이를 낳지 못하면 입양하면 되잖아. 불임임에도 불구하고 장소월에게 목맬 남자는 많을 텐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서철용이 그의 검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몸에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오싹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왜 그래? 마음이 약해졌어? 아니면 후회라도 하는 거야?”서철용이 책상 위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돌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연우, 너 설마 장소월한테 다른 감정이 생긴 거야? 그런 장난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와 장소월이 연인이 되면 하느님도 노할 거라고!”“쓸데없는 말 하지 마.”전연우는 짧게 한 마디 내뱉고는 방에서 걸어 나가다가 입구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일을 깨끗이 처리해야 해. 아무도 이번 일을 알아선 안 돼.”“날 믿지 못하는 거야?”서철용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담뱃불을 끄고는 이어 흰 의사 가운을 벗고 개인 휴식실에 들어갔다. 안엔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아름다운 여자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서철용은 그녀가 자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곧바로 이불을 들어 올린 뒤 여자의 몸을 뒤집고는 애무 하나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여자의 가장 깊은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그때 잠에서 깬 여자는 두 다리를 남자의 허리에 올리고
장소월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죄책감에 눈을 피했다. 그녀는 왜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이용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속였다는 것 때문에?강영수가 말했다.“의사 선생님께서 간단한 맹장 수술이니까 곧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넌 그냥 병원에서...”장소월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 눈을 내리깔고 이불 위 강영수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옥같이 하얗던 그녀의 얼굴은 가엽도록 창백해져 있었다.“맹장 수술이 아니라 자궁 적출 수술이야.”강영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솔직히 털어놓자 장소월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맹장 수술이라고 한 건 아버지를 속이기 위함이야. 하지만 난 너까지 속이고 싶지 않아.”강영수가 물었다.“왜 그래야 하는데?”장소월은 용기를 한껏 끌어 올려서야 그와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아버지가 아신다면 난 애를 낳는 도구가 될 수 없어. 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거고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할 거야... 아마 누군가에게 팔려 가겠지.”결혼한 늙은 남자한테 팔려갈 가능성이 컸다. 그 연령대 사람은 이미 아이가 있으니 장소월이 아이를 낳든 말든 상관이 없을 테니 말이다.젊음과 아름다운 미모야말로 그녀의 최고의 자본이고 무기였다.“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숨기려는 거야.”장씨 집안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거였어?강영수가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잡아주었다.“소월아, 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는 중요하지 않아!”하지만 장소월은 여전히 심장이 저려왔다. 의연히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속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날 위로해줄 필요 없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아무리 감정이 깊다고 해도 언젠가는 틈이 벌어지는 도화선으로 작용할 거야.”“영수야, 내가 강씨 집안에 가기로 결정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