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에 앉아있던 장소월이 따뜻한 물이 담겨 있는 컵을 감싼 채 기성은에게 물었다.“전연우가 엽준수의 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한 거예요?”기성은은 문어구에 서서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했다.“아가씨, 모르는 게 좋아요. 전 대표님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말끔히 해결할 거예요.”얼마 후 건물 입구에서 누군가 도착한 듯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본 순간 장소월은 너무 놀라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네이비색 정장에 고귀한 분위기의 강영수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너... 여긴 왜 왔어?”뒤에 서 있던 오부연이 말했다.“강한 그룹은 제운 고등학교에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한 회사라 일이 생겼다는 소식에 온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소월 아가씨죠.”강영수가 말했다.“오 집사.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죄송합니다. 도련님.”장소월은 시선을 거두고 불안한 듯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귀찮게 해서 미안해. 이번 일은 전... 오빠가 학교에 누가 되지 않게 잘 처리할 거야.”“소월아, 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 네 일은 이제 내 일과도 같아. 너 손 다쳤다면서? 봐봐...”강영수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자신의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난 괜찮아. 거의 다 나았어.”오부연이 말했다.“아가씨, 도련님에게 보여주세요. 도련님이 며칠 내내 아가씨를 걱정했어요.”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두 사람 사이에 오묘한 감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곳엔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장소월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강영수는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에 오부연은 방에서 나간 뒤 문을 닫았다.장소월은 남자와 단둘이 있는 걸 불편해하는지라 순간 몸이 경직되어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소월아? 너 지금 날 무서워하는 거야?”강영수는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매번 단둘이 있을 때면 이렇듯 심하게 경계했다. 마치 그가 그녀를 해칠까 봐 두려워하는 듯 말이다
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실은 그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회사의 모든 일을 제쳐두고 그녀를 도우려 왔으니 말이다. 장소월은 서울에서 강영수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일에 그가 직접 나설 필요는 전혀 없지만 오직 그녀를 위해 발걸음을 한 것이다...그가 그녀에게 잘해줄 수록 그녀는 더 큰 부담감을 느꼈다. 그의 이 깊은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녀도 강영수도 아직은 어린 나이이다. 앞으로 생길 가능성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그와 하룻밤이라도 함께 보내고 싶어 접근하는 여자는 아주 많다. 때문에 강영수는 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때 그녀가 강영수를 지옥에서 끌어내온 일로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해 이런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면 너무도 과분하다. 이미 충분히 갚고도 남았으니 말이다.그날 강영수가 그녀에게 준 생일 선물과 그녀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은 두 번의 생을 거쳐오면서 받은 가장 큰 서프라이즈였다.장소월은 처음부터 그에게 무언가를 받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강영수는... 그녀의 계획 밖의 사람이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강영수에게 지금보다 더 큰 권력이 쥐어져있어 그녀를 장씨 집안이라는 마귀소굴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한때는 다정하고 능력 있는 그에게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말이다.“좀 괜찮아졌어?”남자가 그녀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입술에 가까이 가져갔다. 시원한 입김을 상처에 불어주니 한결 시원했다.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손등에 있는 문신을 똑똑히 보았다. 강용의 몸에 새겨진 것과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장소월이 물었다.“이 문신 도안에 무슨 의미가 있어?”강영수가 덤덤히 말했다.“그런 거 없어. 그저 당시 꽂혔던 거로 새겼을 뿐이야.”장소월은 그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큰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한 시간 남짓 지나자
전연우는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회의를 취소하고 학교로 달려왔다. 사실 이런 일은 기성은만 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전연우가 직접 걸음을 할 필요는 전혀 없는 일이다.기성은이 조심스레 말했다.“정말 엽준수를 퇴학시키실 겁니까? 10년의 처벌을 받게 하고요? 제가 알기론 아가씨의 행동 때문에 시작된 일입니다.”전연우가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깊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너도 소월이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아닙니다.”“네가 누굴 위해 일하고 있는지 기억해.”전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기성은이 자세를 곧추 세우고 말했다.“전 대표님만을 위해 일합니다.”당시 그가 전연우의 곁에 머무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그녀의 목숨은 전연우의 것이나 다름없었다.전연우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준 것이다.전연우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너한테 월급을 주는 건 내가 아니야!”장소월은 더더욱 불안해졌다. 전연우는 학교의 일에 대해선 종래로 물은 적이 없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날개를 달아 장씨 가문을 박차고 나오는 건 허황된 망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이제 많이 영리해졌다. 하지만... 그 영리함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벌을 받게 되었다.휴게실.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강영수의 눈빛을 피했다.“오빠가 일을 끝낸 것 같아. 난 나가봐야겠어.”그녀는 문을 열고 다급히 걸어 나갔다. 한 손엔 강영수가 준 약을 들고서 말이다.전연우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담배를 별로 피우지 않는다.기성은이 장소월이 오고 있음을 알리자 전연우는 채 피지 않은 담뱃불을 끄고는 휴지통에 버렸다.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전연우를 본 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휴게실에서 나오는 강영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람핀 현장
진봉이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날 밤 지나갔던 모든 차량을 조사해보았는데 사고 차량은 폐차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관한 정보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 생각에 그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강영수가 눈을 질근 감았다.“조사할 필요 없어.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으니까.”그 말을 들으니 진봉은 대표님이 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장소월은 전연우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아래로 내려갔다.학교 문 앞에서 백윤서와 인시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인시윤이 장소월에게 다가가 말했다.“너 괜찮아? 미안해! 내가 고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아니었어. 괜히 그것 때문에 엽준수가 널 오해했잖아.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나 ㅂ고 선생님한테 얘기해 네 시험지를 가져왔어. 소월아, 너 진짜 대단해!”장소월은 멍하니 시험지를 쳐다보았다.역시... 그녀는 인시윤의 힘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합격한 것이다.이 사실을 확인하자 그녀는 마음속에서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고... 고마워요...”“그리고...”인시윤이 장소월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우리 오빠가 넌 부담가질 필요 없다고 했어. 엽준수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엄마는 요독증 말기래. 설사 이번에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수술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소월아, 네 잘못이 아니야. 나 이번 일로 오빠한테 처벌을 받았는데 글쎄 시를 300번이나 베끼래.”“그래...”처벌을 받는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우리 오빠가 나한테 했던 두 번째 한 마디 때문에 난 처벌을 받아도 행복해.”백윤서가 말했다.“괜찮으면 됐어요. 엽준수는 감옥에 가게 되는 거예요?”전연우가 대답했다.“그럴 거야.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지.”6년 아니면 10년?전연우가 관여하면 종신형을 받을지도 모른다.천만 원을 요구했다가 한 푼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
“네가 칼을 막아줬어도 장소월은 너한테 고마워하지도 않아.”그때, 장소월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엽시연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장소월도 양반은 못 되겠네.”아직 문 앞에 서 있던 세 사람은 돌연 자리를 뜨는 장소월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장소월은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전연우를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장소월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고마워!”장소월이 마음을 담아 말하고는 허리를 폈다.“병원에 못 가봐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재덕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괜찮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상처가 깊지 않으니 며칠만 치료하면 된다고 했어요.”엽시연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시끄러워! 장까지 배 밖으로 나왔는데 상처가 깊지 않다고? 이제 와 착한 척하지 말고 꺼져. 꼴 보기 싫으니까.”재덕이 엽시연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형,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내 말이 틀렸어? 예전에 우릴 얕잡아보고 무시한 게 누군지 잊었어?”“강용, 쟤 학교에서도 저렇게 착한 척해?”엽시연이 강용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예전엔 화도 잘 냈는데 지금은 많이 누르고 있어.”“전엔 내가 너희들한테 편견이 있었다는 거 인정해.”장소월이 솔직히 털어놓았다.“난 혼자 있는 게 익숙해서 너희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몰랐어. 미안해.”“다시 내 소개를 할게. 난 장소월이라고 해...”그녀가 손을 내밀자 재덕이 약간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전 재덕이에요.”“고마워.”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장소월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간 순간이었다.장소월은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거기엔 장소월의 꾀도 숨겨져 있었다.오늘 밤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할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분명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질 것이다.그들과 헤어지고 인시윤과 함께 돌아가던 중 인시윤이 물었다.“너 무슨 말을 한 거야?”장소월이 말했다.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 장소월은 학교를 나섰다.오후 네 시 반, 경찰서 취조실.엽준수가 머리를 밀고 죄수복을 입은 채 어두운 눈동자로 멍하니 한곳을 쳐다보며 진술실 안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얇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혼자 온 것이었다.그녀가 벽에 걸려있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엽준수도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시선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향하지 않았다.경찰이 나가자 장소월이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에 온 건 아무도 모르니까.”엽준수는 이미 많은 고초를 당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악에 받쳐 소리쳤다.“내가 어떤 꼴로 있는지 보고 싶어서 왔어? 이제 만족해? 장소월, 넌 돈 많은 부모님을 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넌 날 망쳤어.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다면 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야! 난 그저 엄마의 치료비를 벌고 싶었을 뿐인데 너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내 인생은 네가 망친 거야! 나 널 죽이지 못한 게 미친 듯이 후회돼!”장소월은 맑은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엽준수, 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네 인생을 망쳤다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돈이 있었다고 해도 네 엄마는 그 수술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넌 그냥 나한테 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던 거야.”장소월은 그의 동공이 당황한 듯 확장되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아마 그의 정곡을 찔렀을 것이다.그녀가 말을 이어갔다.“난 예전 성적이 가장 낮은 반의 꼴등이었어. 그래서 6반에선 내가 부정행위로 반을 옮길 기회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그리고 내가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간 것도 넌 아마 인시윤의 도움이 작용했다고 생각해 질투하고 불공평하다고 느꼈겠지... 사실 나도 나 자신을 의심한 적 있어. 정말 다 내 잘못인가? 내가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건가? 라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난 알게 됐어. 난 틀리지 않았어. 난 그저 내 인생에 깃든 모든 불행
장소월은 떠날 때 엽준수에게 만점에 근접한 시험지를 남겨주었다.점수를 본 순간, 그는 살을 에이는 얼음 구덩이에 들어간 듯 부들부들 떨었다.그가 틀렸다.그가 틀린 것이다!장소월의 말처럼 허영심 때문에 사채까지 쓰며 억지로 제운 고등학교에 오는 게 아니었다. 엄마를 죽이고 모든 걸 망쳐버린 건 다름 아닌 엽준수 자신이다.18세 소년은 경찰서 안에서 시험지를 꽉 움켜쥔 채 서럽게 울부짖었다.그게 무엇이든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이건 변하지 않는 이 세상의 이치다!장소월이 경찰서에서 나왔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골목길 안에서 그녀와 같은 검은색 교복을 입고 바짓자락을 거두어올린 소년이 책가방을 메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고개를 들고 눈꽃을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은 장인이 빚어놓은 듯 준수했다. 하얀 눈꽃 한 송이가 코끝에 내려앉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강용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평소 사고뭉치 악동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장소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강용이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그녀에게 걸어갔다.“밥 사준다며?”“그래서 계속 이곳에서 기다린 거야?”“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뭔데!”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몇 마디만 나누면 곧바로 삐딱해진다.장소월은 그를 무시해버린 채 고개를 돌리고 걸어갔다.강용은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기며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한동안의 침묵 끝에 강용이 입을 열었다.“저번에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해?”장소월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유효기간은 이미 지났어.”“흥! 양심도 없는 년!”장소월은 사실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 역시 일부로 발걸음을 늦추는 것 같았다.“마지막이야!”“...”“강용, 마지막이야. 내일도 오지 않으면 다시는 널 기다리지 않을 거야.”강용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알았어.”저녁 식사는 구영관에서 하기로 했다.이곳의
강용이 언급되자 장소월은 조심스레 강영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강용의 이름을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장소월은 자신이 사람들의 사이에서 가장 난처한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장소월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이곳의 화차가 맛있어. 마셔봐.”“그래.”강영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하지만 그가 기뻐하는지 아닌지는 보아낼 수 없었다.이 차가 그의 입에 맞을까? 이곳의 차는 모두 일반적인 자스민 차라 그가 평소 마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장해진도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데 그 가격은 모두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한다.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해 꺼내 보니 강용으로부터 짧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일이 생겨서 못 가!」장소월은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전화 한 통 하고 올게.”강영수가 문신이 새겨진 손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래. 다녀와.”그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장소월은 조용한 구석으로 가 강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술집 안, 음악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강용은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양쪽에 늘씬한 몸매의 아가씨를 안고 앉아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어떤 사람들은 카드를 치고 있었다.강용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오만 원 짜리 한 무더기를 밀며 카드 한 장을 던졌다.그때 돌연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옆자리 아가씨를 쳐다보며 자신의 호주머니를 힐끗거렸다. 아가씨가 그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른 뒤 강용의 귓가에 가져갔다.“누구시죠?”장소월은 핸드폰 너머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니 어디에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그녀는 어쩌면 처음부터 강용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장소월은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바빠? 오늘 사지 못한 밥은 다음에 꼭 살게.」강용은 핸드폰을 힐끗 보고는 뒤집어놓고 계속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