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차라리 학교에서 지내는 것이 편했지만, 학교는 다음 주에 방학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음 달 21일이 섣달 그믐날이었다.가든 아파트 밑.장소월은 일찍이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 아주머니와 백윤서를 발견했다.차가 멈추자, 오 아주머니는 급히 달려와 조수석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장소월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오 아주머니는 그녀의 다친 손을 잡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어디 한 번 봐요. 아가씨. 왜 또 다치셨어요?”“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피부가 좀 까졌을 뿐이니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백윤서는 다가와 다정하게 장소월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소월아, 방은 이미 정리해놓았어. 근데 불편하더라도 나랑 같은 방을 써야 해. 내가 준비한 방이 맘에 들어야 할 텐데...”“좋아.”장소월은 얼굴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방을 썼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자는 습관이 없었다.아파트 위층에 도착했을 때, 백윤서는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방으로 들어갔다.백윤서의 방에 침대가 하나 더 있는 것이 보였다.침대 시트 이불 커버는 모두 오 아주머니가 장소월의 취향에 따라 연한 핑크로 산 것이다. 침대 머리맡에는 핑크 곰돌이가 있었다. 장소월이 원했던 생일 선물이었다. 백윤서의 침대에도 똑같은 위치에 같은 곰돌이가 있었다.남에게 얹혀사는 신세에 장소월은 싫다고 말할 권리가 없었다.“고마워요. 아주 맘에 들어요.”백윤서는 기뻐하며 말했다.“마음에 들면 됐어. 나랑 오 아주머니가 네가 싫어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직 몸이 낫지 않았으니 일단 쉬어. 나랑 오 아주머니가 짐 정리하면 돼.”장소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미 다 나았어. 내가 정리할게.”“그럼 내가 도와줄게.”장소월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거절한다면 무례할 것 같았다.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장소월의 옷이 옷장 대부분을 차지했고, 책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장소월은 미안한 듯 말했다.“내가 너무 많이 챙겨왔어.
그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오 아주머니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저녁 6시 30분.백윤서는 비로소 펜을 놓고 책을 덮었다.“소월아, 혹시 아저씨가 너한테 압력을 가하시는 거야? 너처럼 집안이 좋은 애들은 사실 이렇게까지 노력할 필요 없잖아.”장소월은 사로가 끊겨 손동작을 멈추었다.“아버지랑 상관없어요. 그냥 제가 자신한테 요구가 높아서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장소월은 감히 멈추지 못했다. 다시는 전생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돈으로 학력을 얻고 싶지 않았다. 송시아처럼 독립적이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자신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렇구나. 확실히 6반은 압력이 크지. 그래도 너무 몸을 혹사하지는 마. 나 먼저 가서 밥 먹을 테니까 너도 너무 늦지마.”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백윤서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소월도 나머지 절반을 마치고 나갔다.오 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는 대부분 장소월이 좋아하는 담백한 음식이었다. 백윤서와 전연우가 좋아하는 매운 닭볶음탕도 있었다.장소월은 매운 요리를 본체도 하지 않고 젓가락은 탕수육을 향해 뻗어 입에 넣었다. 변함없는 맛이었다.식탁에서는 잡담하지 않고 조용히 먹는 것이 장해진이 정해준 규칙이었다.그래서 밥을 먹을 때 장소월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백윤서는 따로 사니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오 아주머니. 같이 앉아 먹어요!”“괜찮아요. 먼저 드세요.”장소월은 입안의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말했다.“같이 먹어요.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규칙을 지킬 필요 없어요.”오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닭고기 수프를 끓였어요. 조금 있다가...”오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비쳤다.‘내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소월 아가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점점 더 우울해지고, 예전처럼 웃지도 않으셔.’장소월의 모습을 본 오 아주머니는 마음이 불편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장소월은 평소보다 밥을 한 그릇 더 먹
전연우: “괜찮아.”“다음부터 많이 마시지 마요. 위도 안 좋으면서.”오 아주머니는 해장국을 끓여 가져왔다.“윤서 씨, 어서 도련님께 먹여주세요.”문밖의 인기척을 들은 장소월은 상관하고 싶지 않아 이어폰을 끼고 영어 단어를 암기했다.저녁 9시 30분.백윤서는 피곤한 기색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머리맡 캐비닛 위에서 충전을 한 상태로 한참이나 울린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소월아, 전화 왔어.”장소월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소월아?”백윤서가 다가가 발신 번호를 보니 일련의 8888 숫자였다. 눈빛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충전기를 뽑아서 장소월의 앞에 놓았다.장소월이 이어폰을 빼자 백윤서가 말했다.“전화 왔어.”“고마워.”장소월은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다시... 전화 안 해?”장소월은 담담하게 말했다.“잘못 거신 것 같아요.”백윤서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걸어갔다.장소월은 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서야 휴대폰을 다시 들고 읽지 않은 수십 개의 메시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감정을 억누르고 바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장소월은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백윤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전연우의 방에 가서 보살폈다.얼마 후, 장소월은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지만 곧 다시 잠이 들었다. 그녀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약간의 인기척에도 잘 깨어났다.백윤서가 방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녀는 완전히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6시 알람이 울렸다.장소월은 조용히 일어나 씻고, 포니테일을 하고 책가방을 메고, 여전히 잠자고 있는 백윤서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떠났다.6반은 아침 7시부턴 아침 자율학습이 있었다.깨어나 씻고 차를 타고 가면 시간이 비슷했다. 아파트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오 아주머니는 여전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방에서 나온 장소월을 보고 깜짝 놀랐다.“왜 이렇게 일찍 깼어요? 9시 수업 아니에
하지만 그는 못 본 척하며 이어폰을 끼고 창가 옆에 앉아 다리를 꼬고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톡을 하고 있었다.장소월은 그날 엽시연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 강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그때 큰비가 내리고 파도가 넘실거려서 그녀가 바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그저 희미한 얼굴만 보여, 그 사람이 전연우인 줄 알았다.왜냐하면 그녀가 사는 것이 전연우에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연우 외의 다른 사람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말이다.만약 장소월이 죽는다면, 전연우는 장해진을 볼 면목이 없다.학교까지 겨우 네 정거장이었지만, 버스가 여러 번 멈추면서, 곧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고, 대부분은 서둘러 출근하는 직장인들이었다.장소월은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버스에는 이미 자리가 없었다. 뜻밖에도... 강용이 일어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강용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어? 저 순수한 웃음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은 말 잘 듣는 모범생인 줄 알겠네.’갑자기, 강용의 시선은 사람들을 넘어 장소월에게 향하더니 미간을 살짝 올렸다. 장소월은 나쁜 일을 하다 들통 난 것처럼 괜히 그를 보기 민망했다.학교 정류장.장소월은 발걸음을 늦췄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제운고등학교에 오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길 건너 맞은 편에서 서울제2중학교의 낭랑한 아침 자습 낭송 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은 갑자기 1반에서 나오기 전 강용이 책을 들고 와서 과외를 해달라고 했고, 그녀가 매정하게 거절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장소월은 확실히 무정했기에 강용이 욕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전에 강용이 그녀를 보는 눈빛에 냉철함만 있었다면, 지금은 냉철함 외에 무정하다고 욕까지 하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강용이 교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성큼성큼 다가가 따라잡으려 했지만,
장소월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강용이 너한테도 미움을 샀어?”“우리 가족 전체에게 미움을 샀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 필요 없고, 그냥 내 말만 기억하면 돼.”장소월은 일단 다음에 얘기하자고 넘어갔다.인시윤은 다시 화제를 돌렸다.“참,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우리 큰오빠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인데, 첫 대화가 너에 관한 말이었어.”장소월: “...”인시윤은 궁금한 표정으로 장소월을 밀쳤다.“그리고 시간 되면 너랑 같이 밥 먹자고 했어. 빨리 말해봐. 우리 큰오빠랑 뭐 있는 거지?”장소월은 순간 가슴을 졸였다.“오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친구야. 우리 집에서는 내가 벌써 연애하는 걸 허락하지 않아, 공부에 열중하기를 바라지.”인시윤은 웃으며 장소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너 참 대단하단 말이야. 우리 큰오빠가 서울에서 얼마나 인기남인지 몰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자려고 애를 쓰는데? 심지어 나를 통해서 큰오빠랑 인연이 닿으려고 노력하는 여자도 있다고, 그런데 우리 큰오빠랑 선을 긋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그런데 너도 어리지 않아. 우리 엄마는 열여섯 살 때, 전남편이랑 약혼했을 걸? 그러니까 큰오빠의 친아버지 말이야. 나랑 큰오빠 이복남매라는 거 알고 있지? 그리고 두 사람은 열여덟 살에 결혼했어. 혼인신고서 같은 거 없이 구두로 양가 집안에서 결혼했지. 지금은 예전과 다르지...”“우리 엄마는 네 나이에 진작 결혼했어. 그러니까 너도 연애할 나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넌 예쁘니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겠네.” “혹시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니면... 어떤 스타일 좋아해?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말하면서 인시윤은 손가락을 세우고 맹세했다.장소월은 인시윤이 입을 연 첫마디부터 그녀가 자신을 시험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영수가 시킨 것일까?강영수는 왜 이런 유치한 짓을 시켰을까?인시윤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장소월은 그녀
저녁 10시에 도서관은 폐관한다.장소월이 7시에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직도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창가 쪽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펼쳐놓았다.얼마 후, 도서관 불이 하나씩 꺼지더니 도서관 관리원이 다가와 말했다.“학생, 폐관했어요.”강용이 오지 않은 것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돌아가는 길에 장소월은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 하인과 기사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지금 시간에 마지막 버스는 이미 끊겼다.장소월은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거의 11시가 되어서야 장소월은 아파트에 도착했다.고개를 들어보니 12층 불은 이미 꺼졌다. 아마 이미 자고 있을 것이다.장소월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집에 도착해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오류라고 떴다.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여전히 틀린 비밀번호였다.‘분명 1부터 6이었는데, 혹시 바꿨나?’장소월은 휴대폰을 꺼냈지만, 오 아주머니는 휴대폰이 없는 것이 생각났고, 거실의 유선 전화 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백윤서... 거의 연락하지 않는 그녀의 번호에 시선이 떨어졌다.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고, 복도의 음성 제어등이 꺼졌고, 칠흑 같은 어둠이 그녀를 덮었다.장소월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이미 늦은 시간이니 오늘은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 게 좋겠어.’장소월은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거의 도착했을 때,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장소월은 수신 버튼을 바로 누르지 못하고, 10초 정도 망설이다가 끝내 전화를 받았다.휴대폰을 귓가에 대니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어디야?”장소월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문 앞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월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장소월이 주춤주춤 거실로 들어서자 짙은 줄무늬 잠옷 차림의 남자가 냉장고 앞에 서서 물 한잔을 따르고 있었다.장소월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언짢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소월은 부기를 가라앉히려고 얼음물을 마셨다.“안돼요. 시간 없어요.”“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제가 아가씨 때문에 4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어요. 말 들어요. 한창 자랄 때이니 아침을 거르면 안 돼요.”“앞으로는 준비하지 마세요. 그냥 대충 먹으면 돼요.”“참, 어릴 때부터 아가씨를 봐왔는데 제가 모르겠어요?”장소월은 다가가서 오 아주머니를 등 뒤로 껴안고 턱을 어깨에 얹었다.“이모밖에 없다니까요.”문이 열리고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전연우가 돌아왔다.장소월은 손을 놓았다.오 아주머니는 죽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앉아서 드세요.”“네.”비록 전연우를 마주 하고 싶지 않지만, 오 아주머니의 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장소월이 식탁에 앉자 오 아주머니는 수저를 몇 개 들고 와서 죽 두 그릇을 담았다.전연우는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윤서 씨 깨워서 같이 드시라고 할까요?”전연우는 의자를 당겨 메인 자리에 앉았다.“됐어요. 좀 더 자게 두세요.”전연우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소월은 일어섰다.“배불러요. 저 먼저 학교 갈게요.”“벌써요? 죽도 많이 남았는데 다 드시고 가세요.”“괜찮아요. 버스 시간이 돼서요.”전연우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앉아! 다 먹고 가! 어제 담임 선생님한테 물었더니 너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졌다며? 어디 갔어?”“그쪽이랑 뭔 상관이죠?”장해진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는데, 전연우가 무슨 자격으로 참견일까?장소월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을까?전연우가 저지른 그 수많은 악행은 매번 장소월의 목숨을 위협했는데, 이제 와서 장소월을 관심하는 척하고 있다니...너무 우스웠다.“만약 올림피아드 팀에 참석했다면, 적어도 8시 30분에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 30분까지 더해도 겨우 9시야.”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구구절절 분명하게 말했다.“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학교 더 이상 못 가.”“내가 학교를 가든 말든, 그건 당신이 결정
갑자기 강한 힘이 장소월의 손목을 잡았고, 그녀는 하마터면 균형을 못 잡고 넘어질 뻔했다.전연우는 거칠게 그녀를 서재로 끌고 갔고, 순식간에 그녀를 안에 가두었다.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오 아주머니는 얼른 와서 말했다.“도련님, 왜 이러세요?”서재에서는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뭐 하는 짓이야! 당장 열어! 전연우 이 자식, 네가 뭔데 날 가둬!”전연우는 문을 잠그고 열쇠를 뽑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제 허락 없이는 아무 음식도 주지 마세요.”“잘못을 뉘우치면, 그때 나와! 내가 네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겠어!”백윤서는 바깥의 인기척에 잠이 깨서 방문 뒤에 붙어 동정을 살폈다. ‘오빠랑 소월이가 싸우나?’7시 30분.백윤서는 방에서 나와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거실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 백윤서는 죽을 먹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오빠, 오늘 출근 안 해요?”전연우는 여전히 잠옷 차림에 최신 경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거실의 험악한 분위기는 그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재택근무. 성은이한테 너 학교 데려다 주라고 할게.” “아... 알겠어요.”백윤서는 떠나면서 굳게 닫힌 서재 문을 쳐다보았다.‘연우 오빠는 항상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하고 예의 발라 화도 잘 내지 않는 사람인데, 대체 소월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오 아주머니는 나와서 식탁 위의 수저를 치우고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전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제가 집에 있을 테니 이모는 오늘 하루 휴가를 내셔도 돼요.”‘도련님이 소월 아가씨를 하루 동안 가두기로 한 모양이네? 어려서부터 고생이라고는 못해본 아가씨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아가씨는 아직 어려서 철이 없...”오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연우가 말을 낚아챘다.“어려요? 열여덟이에요! 성인으로서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요!”전연우는 더 말하지 않고 신문을 내려놓고 어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침실로 돌아갔다.오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재를 바라
신이랑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신군회의 책상에 내려놓았다.“이 안에 6억이 들어있어요. 제가 모아둔 돈이에요. 나머지 돈은 민아 씨와 결혼식 준비하는 데에 쓸게요.”“안... 안 돼요. 오빠...”“아빠, 빨리 오빠 좀 설득해주세요! 소민아 그 여자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신이랑은 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신군회는 이 일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랑이 권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지금 신이랑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의 도움 없이 신이랑 본인의 능력만으로도 서울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역시 신군회의 아들이다.신수지는 이제 유연홍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엄마, 아빠한테 말해주세요. 아빠... 엄마 말씀은 잘 들으시잖아요.”“그만! 다 나가!”신군회는 벌컥 화를 내며 책상 위 서류들을 모두 바닥에 내던져버렸다.유연홍은 차분하게 신수지를 달랜 뒤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겼다.“여보, 수지한텐 이렇게 불같이 화내면서 왜 그 아들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수지는 내 딸이에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무슨 수를 쓰든 신이랑과 우리 수지 결혼시켜요. 아니면... 절대 집에 들이지 않을 거예요.”신군회는 시뻘게진 눈으로 유연홍을 쳐다보다가 들고 있던 찻잔을 던져버렸다. 그가 유연홍에게 화를 분출하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 입 다물어! 여자가 뭘 안다고.”“당신 소민아가 누군지 알아?”“송시아의 잃어버렸던 동생이야. 내 대다수 인맥들은 다 송시아와 연결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세 그룹과 닿아있고, 또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알아? 이건 내 유일한 기회야. 이번 일이 잘못되면 우린 끝이라고!”그 지독한 여자의 동생이었으니 소민아가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었던 것이다.유연홍은 더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신수지도 잔뜩
“이랑 씨한테 너무 불공평한 일 아닌가요?”소민아는 그제야 자신이 늘 고민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이랑 씨, 대체 무엇 때문이에요?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우린... 분명 예전엔 만난 적 없잖아요, 안 그래요?”소민아는 종래로 첫눈에 반해 모든 걸 바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신이랑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호선을 그렸다. 그는 설명 대신 그녀에게 대충 둘러댔다.“민아 씨, 세상엔 이유가 없는 일들도 있어요. 한 사람을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어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우리 일단 밥부터 먹어요. 아까 거의 안 먹었잖아요. 내가 가서 음식 데울게요. 다 먹으면 집에 데려다줄게요.”소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오늘 차 몰고 왔어요.”신이랑은 분명 누군가의 최고의 동반자가 될 것이고, 친구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다만 소민아와의 관계는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녀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굳히면 영원히 그 사람만 보기 때문이다.3년이라는 시간제한도 오직 기성은을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또한 어쩌면 자신의 기다림을 합리화하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모든 말을 털어놓고 나니 그녀는 마음속 거대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이 홀가분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니 명세진이 주방에서 죽을 꺼내왔다.“이랑이네 집에서 밥 먹었다면서? 그래도 시간이 늦으면 네가 배고파할까 봐 아주머니한테 먹을 것 좀 만들어놓으라고 했어.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힘든 거 있으면 고모한테 말해.”소민아는 이미 배가 불렀지만, 고모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회사 일로 고민 좀 하고 있어서 그래요. 참, 현아 언니 최근 집에 온 적 있어요? 저번 엄마아빠가 오셨을 때 왜 다음 날 바로 간 거예요?”명세진은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대체 우리 현아한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소민아는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이어갔다.“만약 아니라면, 송시아는 왜 나더러 반드시 이랑 씨와 결혼해 신씨 집안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우린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는 거 이랑 씨도 인정하잖아요. 나한텐 기성은 씨가 있어요... 이런 말이 이랑 씨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송시아가 소월 언니 목숨을 담보로 날 협박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송시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월 언니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게 될 거예요.”“이랑 씨, 사실 제 머릿속에 예전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송시아는... 제 언니가 맞아요...”소민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죽을 때까지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송시아가 그녀의 언니이고, 두 사람은 혈연관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민아는 어린 시절 송시아를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지만, 이젠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민아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송시아가 돈을 벌기 위해 더러운 곳에 가서 늙은 아저씨들의 노리개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생활비를 벌어 동생을 키우기 위함이었다.그녀 역시 당시의 고됨이 송시아를 이토록 권력에 눈이 먼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종래로 그녀를 해친 적이 없다.소민아는 정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예전 기억이 모두 돌아오니 송시아에게 드는 감정은 애증이에요. 절 살리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벌던 언니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눈물을 흘리는 소민아를 본 신이랑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껴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었다.“나 민아 씨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나 다 알고 있어요. 한 번도 민아 씨를 힘들게 할 생각 없었어요. 난 영원히 민아 씨 편이라는 거 기억해요.”“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뭘 요구하든 다
6시 퇴근 후, 소민아는 호텔에 들러 신이랑의 컴퓨터 가방과 옷을 챙기고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그녀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딸깍 문이 열렸다.신이랑이 편한 잠옷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아까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왔어요?”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민아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네. 이랑 씨 물건 가져왔어요.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해봐요.”거실에 들어와 보니 깜빡하고 청소하지 못했던 거실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공기청정기까지 작동하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소파에 던져놓았던 카펫도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구석구석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이랑 씨가 청소한 거예요?”소민아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푹 쉬라고 했잖아요. 이런 일은 왜 한 거예요!”심지어 식탁엔 신이랑이 만든 음식까지 놓여 있었고 주방에선 채 완성되지 않은 음식이 조리되고 있었다.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들었다.“손 씻고 와요. 내가 갈비탕 만들고 있어요. 곧 다 돼요.”소민아는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모두 삼켜버리고 말머리를 돌렸다.“그럼 약은 먹었어요? 좀 좋아졌어요? 머리 아직도 아파요?”신이랑이 머리를 저었다.“이제 안 아파요. 내가 가서 젓가락 가져올게요. 앉아요.”실은 소민아는 물건을 전해준 뒤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가버린단 말인가?그녀는 여전히 그의 마음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소민아는 어쩔 수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신이랑이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많이 만들었으니까 얼른 먹어요. 내일까지 놔두면 상할 거예요.”“나 혼자 먹으라고요? 이랑 씨도 앉아요. 저 다 못 먹어요.”“그래요.”신이랑은 앞치마를 벗고 마지막으로 국을 가져온 뒤 그녀 옆에 앉았다.소민아는 얼이 빠진 얼굴로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 채 입안에 밥을 넣고 있었다. 신이랑은 그동안 줄곧 그녀에게 음식을
송시아는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소민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언니가 했던 고생 넌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민아야, 그때 언니가 널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서 미안해. 다 언니 잘못이야. 널 잃어버렸던 그 날 밤... 얼마나 많이 찾아다녔는지 몰라.”“이제 언니한테 가족은 너밖에 없어.”“난 다시는 너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지난 시간 너한테 잘못했던 거 하나하나 다 보상해 줘야지.”“이번 한 번만 언니 말대로 해줄래? 기성은은 잊고 신이랑과 결혼해. 언니가 있는 한 신씨 가문에서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지금으로선 널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야.”“소씨 가문은 널 도울 능력이 없어.”소민아가 말했다.“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요, 이랑 씨 좋죠. 하지만 전 그 사람한테 마음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성은 씨라고요. 꼭 이렇게까지 절 몰아붙여야겠어요?”“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주선호는 지금 신장암 말기야. 치료될 가능성은 제로고. 지금은 선거 시즌이잖아. 신군회도 후보자 중 한 명이야. 신군회도 성세 그룹 임원들과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으니 분명 당선될 거야. 신군회가 시장 자리에 앉으면 지금 그 사람이 맡고 있는 비서실장 자리는 공석이 돼. 신이랑이 정계에 진출하기만 하면 그 자리는 자연히 신이랑의 것이 될 거야. 애초부터 신군회는 신이랑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었거든.”소민아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신씨 가문과 예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네요!”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건 전연우한테 물어야지.”“전연우야말로 이런 면에서 가장 빠삭한 사람이야. 전연우와 장소월이 결혼하기 전, 주선호는 전연우와 자신의 딸인 주가은을 맺어주려 했었어. 하지만 아쉽게도 전연우는 이미 장소월에게 단단히 빠져버려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해버렸어.”“정치와 사업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전연우가 짧은 몇 년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생각해?”주가
“송시아 씨, 당신은 정말 답도 없이 망가져 버렸네요. 분명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소민아는 목이 부서져라 송시아를 향해 소리쳤다.그때, 사무실 문밖엔 소피아가 송시아에게 결재를 받을 서류를 들고 와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섰다.“대가? 이 세상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전연우, 강지훈, 기성은은... 필시 나보다 먼저 숨통이 끊어질 거야. 나보다 장소월을 더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못 믿겠으면 지켜봐. 내가 3일 안에 장소월을 목숨을 거둘 수 있는지 없는지.”송시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말이야. 너무 쉽게 죽이고 싶진 않아. 죽는 것보다도 못하게 살도록 만들어줄 거야. 그림 그리는 손목이 뜨거운 불에 구워지는 고통을 맛보게 해줘야지. 참... 전연우가 그 반반한 얼굴에 홀딱 빠져버렸었지?”“난 언제든 그 얼굴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어. 그때가 돼도 남자들이 장소월을 위해 나랑 맞설 수 있을지 궁금하네.”“송시아 씨, 그만 해요!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미친 사람이네요! 당신 같은 사람은 분명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송시아가 가장 개의치 않아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전혀 상관없다.“그럼 똑똑히 지켜봐. 내가 장소월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고 전연우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말이야.”소민아는 눈앞 완전히 악마가 되어버린 여자를 쳐다보았다.“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네요. 대표님에겐 적어도 자신의 목숨으로라도 그분의 뜻을 지키려 하는 기성은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에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바깥에서 어울려 다니는 그 남자들 또한 당신을 성욕을 분출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할 거예요.”“제 말이 좀 과격하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당신 귀엔 한 글자도 들어가지 않잖아요.”“송시아 씨... 자신이 이렇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하면... 괴롭지 않아요?”“세상엔 수많은 남자들이 있어요. 왜 하필 전 대표님이어야 하는
신이랑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래요.”소민아는 회사에 돌아가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던 도중 캡모자를 눌러쓰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소민아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얼마 후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누님, 그 여자 위치 찾았어요. 사진도 있고요. 전 지금 지하주차장에 있어요.”소민아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송시아가 찾는 그 여자?소월 언니다!송시아가 이렇게나 빨리 소월 언니를 찾았다고?그... 그럴 리가 없다!3분 뒤, 송시아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자 남자는 그녀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누님, 그 여자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 몰래...”그가 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동작을 취했다.소민아는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급할 필요 없어. 넌 일단 돌아가 내 전화 기다리고 있어. 너무 쉽게 죽게 하면 안 되지.”“알겠어요. 그럼... 누님, 저희한테 줄 수고비는... 저희들 요즘 전국을 휘젓고 다니고 해외에까지 나가느라 정말 힘들었어요.”송시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남자에게 돈을 이체해주었다.“이건 수고비의 3분의 1이야. 나머지는 일이 다 끝나면 줄게. 너희들 고생한 거 잊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걱정하지 마십시오, 누님. 저희들 절대 누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의 거래가 끝나자 지하주차장엔 다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소민아는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가 대표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소민아가 벌컥 문을 열었을 때, 송시아는 서류 봉투를 뜯고 있었다. 그녀는 소민아를 보고는 다시 서류 봉투를 닫아 옆에 놓아두었다.“언니한테 무슨 할 말 있는 거야?”“아까 지하주차장에서 만났던 그 남자 누구예요? 송시아 씨, 이번엔 또 누굴 죽이려는 거예요! 왜 꼭 그렇게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건데요! 아무도 당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송시아가 웃으며 그 서류 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소민아 앞에서
소민아는 며칠 더 휴가를 주겠다는 신이랑의 배려를 거절했다. 다음 날 회사에 나와보니 신이랑은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신이랑이 고개를 드니 눈에 가득 퍼진 실핏줄이 보였다. 소민아는 바로 가방을 내려놓고는 걱정스레 다가갔다.“이랑 씨, 두통이 또 발작한 거예요? 약은 먹었어요?”신이랑은 고개를 저었다. 한눈에 봐도 예전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 모습이었다.소민아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지려다가 허공에서 멈춰 섰다.“제가 병원 예약해 둘 테니까 가봐요. 이렇게 참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에요. 오늘 스케줄은 오후에 예정된 중문 시리즈 사람과의 미팅밖에 없어요. 지금 병원에 가면 그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소민아는 이제 신이랑의 스케줄도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엔 항상 신이랑이 먼저 말했고, 장소가 어디든 그녀는 따라가기만 했었는데 말이다.지금의 소민아는 정말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신이랑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나 괜찮아요.”소민아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핸드폰을 들고 신경내과에 예약했다.“편집장님, 30분 뒤로 예약해 뒀어요. 얼른 물건 챙겨서 나랑 같이 가요.”소민아의 말투도 조금 사나워졌다.신이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알았어요.”소민아는 부하 직원에게 남은 일을 맡겨두고는 차를 몰고 신이랑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소민아가 운전하다가 물었다.“혹시 어젯밤 샜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 잊었어요? 수술 뒤엔 몸을 잘 챙겨야 한다고 했잖아요. 잠을 제대로 안 자는 건 건강 회복에 치명적이에요.”눈을 감고 있던 신이랑은 그녀의 말을 들으니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어젯밤 신수지가 왔었는데 보기 싫어서 호텔로 옮겼어요. 난 신수지가 싫어요.”소민아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신수지가 이랑 씨를 왜 찾아가요? 동생 아니었어요?”신이랑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소민아는 그가 뭘 말하려는
막무가내인 그녀의 모습을 신이랑은 더는 참아낼 수가 없어 단호히 말했다.“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세요. 난 절대 신수지 씨와 결혼하지 않아요. 당신 집안의 도움은 더더욱 필요 없고요. 성세 그룹에 들어간 건 민아 씨를 위해서예요. 민아 씨가 없어도 난 당신들과 얽히지 않을 거예요.”“계속 여기에 있고 싶으면 있어요.”신이랑은 바로 서재에 걸어 들어가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고는 노트북 가방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신수지는 얼른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았다.“어디에 가려고요? 오빠, 가지 말아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신이랑은 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쳐버렸다.“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 하지 말아요.”신이랑은 물건을 들고 바로 떠나버렸다.신수지는 그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쳤다.“오빠!”신이랑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떴다.신수지는 분노에 차올라 발을 동동 굴렀다.“이게 다 소민아 때문이야. 너만 없었다면 오빠도 날 멀리하지 않았을 거라고!”신이랑은 차를 몰고 집에서 나가 한 호텔 방에 체크인했다.신수지는 엉엉 울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유연홍은 자신의 귀한 딸이 울며 들어오자 얼른 뛰어가 달랬다.“왜 그래, 수지야? 누가 너 괴롭혔어? 엄마한테 말해.”유연홍은 신수지의 옆에 앉아 휴지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엄마! 저 신이랑한테 갔었는데 쫓겨났어요. 밥 한 끼 같이 먹겠다고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쳤는데...”“절 완전히 무시하더라고요.”“욕까지 했어요! 대체 제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뭐예요? 그 여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예쁘지도 않잖아요.”유연홍이 그녀를 달랬다.“수지야, 네가 이랑이를 찾아간 일 절대 아빠가 알게 하시면 안 돼. 아빠는 이미 이랑이를 집에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으셨어. 이랑이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가 어떻게든 널 받아들이게 할게.”“그러니까 지금은 너무 밀어붙이면 안 돼. 알겠니?”그 말에 신수지는 다운되었던 기분이 많이 괜찮아졌다.“하지만 오빠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