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반응 때문에 장소월은 저녁에 먹은 음식물까지 모두 토해냈다. 복통이 더더욱 심해져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 그 바람에 피가 바늘 안으로 거꾸로 흘러갔고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은경애가 간호사를 불러왔다.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장소월의 다른 손에 링거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은경애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걱정스레 물었다.“간호사님, 설마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죠? 이렇게나 고통스러워하는데 다른 방법 더 없어요?”간호사가 링거의 속도를 조절하며 말했다.“생리 시기에 큰 반응을 일으키는 환자는 병원에 매일 수십 명이 들어와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제 더이상 방법이 없어요. 흑설탕을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시고 복부를 부드럽게 문지르면 증상을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간호사가 나가자 은경애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가서 흑설탕을 사올까요?”장소월이 물을 마시려 손을 뻗자 은경애는 곧바로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장소월은 입을 헹구고는 힘없이 침대에 누우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아주머니도 옆방에서 잠시 눈을 붙여요. 곧 날이 밝아요. 내일 또 일하셔야 하잖아요.”“아가씨가 이렇게 아픈데 제가 어떻게 자요. 제가 배를 문질러 줄게요.”은경애는 거친 손을 이불 안으로 집어넣고 장소월의 옷 위에 올려 부드럽게 배를 문질렀다.“좀 괜찮아졌어요?”장소월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괜찮아졌어요.”“그럼 더 자요! 내일 아침 깨어났을 땐 아프지 않을 거예요.”“네.”그녀의 손길은 오 아주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웠기에 장소월은 얼마 지나지 않아 꿈나라로 향했다.시간은 어느덧 다섯 시, 날이 밝았다.은경애는 뻐근해진 손을 꺼내려 일어섰지만 그녀가 멈추는 순간 침대에 누워있는 장소월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때문에 조금도 쉴 수 없다. 계속 이렇게 문지르다간 손목이 꺾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엾은 마음이 피어오른다...바로 그때 은경애는 문
장소월은 팔을 짚고 일어나 침대에 앉아 뒤로 몸을 젖히며 말했다.“여... 여긴 왜 왔어요? 은 아주머니는요?”그녀의 표정에 나타난 경계심, 배척감,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은 고스란히 그의 눈에 담겨졌다.“소월아, 너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싶은 거야?”장소월이 긴장한 얼굴로 이불을 꽉 잡은 채 냉담하게 말했다.“연기하지 않아도 돼요. 전연우 씨가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걸 아빠가 아신다고 해도 나무라지 않을 거예요. 병원엔 은 아주머니만 있으면 돼요.”하지만 전연우는 그녀의 말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선 뒤 집에서 갖고 온 보온병을 열었다.“오 아주머니가 만든 흑설탕 차를 갖고 왔어. 안엔 방금 데운 계란도 있어.”“난 마시고 싶지 않아요. 돌아가세요.”말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전연우는 직접 그릇에 흑설탕 차를 부어 넣고는 숟가락에 한술 떠 그녀의 입가에 가져갔다. 거절은 불허한다는 강렬한 눈빛이었다.“퍽!”“쨍그랑!”그릇은 바닥에 떨어져 몇 바퀴 돌다가 멈추었다.장소월은 그를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이곳엔 보는 눈이 없으니까 연기할 필요 없어요.”예상 밖으로 전연우는 화를 내는 대신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몸에 튕긴 물을 닦아냈다.“성격이 거칠어졌네?”장소월은 생리 탓인지 그를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여 눈을 감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날 괴롭히고 내 몸을 해친 사람에게 예전처럼 웃으며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요? 보기만 해도 증오스럽고 역겨워서 미치겠다고요!”전연우는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던져버리고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가 악마같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내 인내심이 남아있을 때 그 성격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증오든 원망이든 다 가슴 깊이 눌러.”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소월아, 왜 아직도 몰라.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는 사탕을 얻지 못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면 내가 널 편하게 만들어줄
전연우는 아마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면을 벗고 진짜 패를 내보였을 때 두 사람은 오늘과 같은 국면을 맞이할 거라는 걸 말이다.그는 그의 일을 하고 장소월은 그녀의 삶을 살면서 서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된다. 언젠가 그가 장씨 가문의 권력을 손에 움켜쥐었을 땐 그녀는 이미 서울을 떠나있을 것이다.“지금 나한테 그런 객기를 부려 네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야?”전연우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깨지지 않은 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두 번 말하지 않아. 얼른 돌아와서 누워!”장소월은 문 앞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가냘픈 몸에 불어오니 또다시 아랫배에서 통증이 밀려왔다.바로 그때, 간호사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험악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왜 침대에서 내려왔어요? 이제 안 아파요? 복도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어요. 오빠라는 사람이 동생한테 양보해야죠. 여자는 생리할 때 성격이 예민하고 난폭해진단 말이에요. 얼른 바닥을 치우세요. 잠시 뒤 의사선생님께서 검사하러 오실 거예요. 별문제 없으면 퇴원할 수 있어요.”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알겠어요. 감사합니다.”간호사가 말했다.“어서 돌아가서 누워요. 더 심각해지면 안 되잖아요.”장소월은 밖에서 걸레를 갖고 와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이런 일은 전혀 그에게 기대할 수 없다.사실 그녀는 이제 별로 아프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리 첫날 가장 견디기 어렵다.주치의는 검사를 마친 뒤 전연우를 불렀다.사무실에서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장소월의 CT를 가리키며 말했다.“환자분의 가족이라고 하니까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어제 한 검사에서 환자분의 자궁 기형을 발견했어요. 수술을 통해 원래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기엔 이미 늦었어요. 환자분의 자궁 기형은 암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일찍 발견했으니 수술로 자궁을 들어낼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늦으면 암세포가 확산 전이될 수 있어요. 그때가 오면 단순히 자궁을 적출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지
“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집엔 규칙이 많아서 전... 오빠 집보다 불편하잖아요. 그리고 은 아주머니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요즘 저 대부분은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집에선 별로 먹지 않아요.”오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매번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제가 만든 만둣국을 드셨잖아요... 제가 이미 만둣국을 만드는 방법을 은 아주머니에게 알려줬으니까 먹고 싶을 때 해달라고 해요. 배를 곯지 말고.”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 아주머니의 요리 솜씨는 진짜 최고예요! 만둣국은 평생 먹는다고 해도 질리지 않을 거예요.”오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아가씨도 참, 말도 예쁘게 하네요.”오 아주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갔고 전연우가 그녀를 도와 퇴원수속을 했다.차 안에서 장소월은 핫팩으로 아랫배를 감싼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절 학교에 데려다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그녀의 말투에서 머나먼 거리감이 느껴졌다.장소월은 한참이 지나서야 전연우는 학교가 아니라 남원 별장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장소월이 미간을 찌푸렸다.“별장에 데려다준다고 해도 혼자 학교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바엔 차라리 그냥 학교에 내려주는 게 낫지 않겠어요?”“만에 하나 네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힘들어지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와의 관계를 끊는 건 네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야.”전연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고생을 하고 싶지 않으면 내 말에 잘 따르는 게 좋을 거야. 난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거든.”차는 신호등 앞에서 코너를 돌았다.장소월은 핫팩을 끌어안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았다.“제 몸 상태에 관한 건 일단 아버지한테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서울대에 붙고 나면 스스로 수술을 할 거예요. 그때 제가 직접 아버지한테 말씀드릴게요.”전연우가 대답하지 않자 장소월이 말을 이어갔다.“이번 일은 제가 빚을 하나 진 걸로 할게요!”그녀의 입장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만약 장해
“전연우!”장소월은 분노에 차올라 손을 번쩍 들어 그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예상이라도 한 듯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비아냥거렸다.“내 몸에 손이라도 대려고? 그럼 재미없는데?”장소월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그를 쏘아보았다.“난 절대 당신한테 굴복하지 않겠어요. 마음대로 해요. 앞으로 부탁 같은 거 하지 않을 테니까!”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전연우의 목적이 바로 그녀가 장씨 집안에서 무기력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니었던가.그런 그에게 부탁이라는 멍청한 짓을 하다니! 정말 미쳤었다!거실에 들어서니 장해진과 강만옥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아버지, 이모님!”장해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연우는?”전연우가 말했다.“의부님.”“마침 잘 됐어. 와서 같이 밥 먹자.”“아닙니다. 전 소월이를 데려다주러 왔을 뿐입니다. 이제 회사에 가봐야 합니다. 저녁에 또 회의가 있어서요.”장해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강만옥은 재빨리 휴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장해진이 입술을 닦고는 말했다.“수고했어. 병원에선 뭐래? 또 무슨 병인데?”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숨 막힐 듯 옥죄어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말했다.“아버지... 전...”“넌 대답할 필요 없으니까 몸이 안 좋으면 올라가서 쉬어.”“네... 알겠습니다. 아버지.”장해진은 늘 그녀에게 이렇듯 냉담했기에 그녀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이 집안에서 그녀에겐 발언권이 없다.장소월이 계단 입구에 도착했을 때 돌연 등 뒤에서 장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반을 옮겼다면서?”“네.”“이왕 옮긴 거 열심히 해. 미리 다음 반년 동안의 내용을 배워둬.”“알겠어요.”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소파에 누웠다. 마음에 파동이 이니 복부 고통이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손에 쥐고 있던 핫팩도 이제 더는 뜨겁지 않았다. 장소월은 그의 말을 떠올리니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핫팩을 홱 던져버리려다가 조심하지 않
장소월은 어젯밤 먹고 남은 물로 약을 삼켰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참고 마실 수밖에 없었다.“전 이미 오빠와 충분히 멀어졌어요.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음 학기엔 학교 기숙사를 신청할게요. 됐어요. 나갈 때 문을 잘 닫아주세요. 전 쉬어야겠어요.”기진맥진한 그녀는 힘없이 말하고는 침대에 축 늘어져 버렸다.보아하니 전연우는 아직 그녀의 몸 상태를 장해진에게 말하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이미 아래층으로 끌려가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이제야 사람 노릇을 하는 건가. 장소월은 그가 또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어젯밤 충분히 자지 못한 탓에 그녀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이불을 푹 덮어썼다.보고 싶으면 보라지.전연우는 나무 옷걸이에 걸린 외투 두 개를 발견했다. 다른 옷과 함께 걸려있으니 강한 이질감이 들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남자가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듣지 못했다.전연우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은경애가 주방에서 나와 물었다.“도련님, 아가씨는 약 드셨어요? 이건 생리통에 아주 효과 좋은 약이에요. 제 며느리도 생리 기간에 꼭 이 약을 먹는다니까요. 도련님은 몰라요. 여자들이 이 시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말이에요. 이 약은 절대 부작용 같은 거 없을 거예요!”“...”은경애는 대꾸도 하지 않고 차갑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을 삐죽거렸다.“왜 사람을 무시하는 거야! 짜증나!”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위층을 쳐다보고는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진짜 나쁜 사람이야...”볼수록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준수하게 생긴 얼굴이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전연우는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머지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장소월...그의 머릿속에 고통 때문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아랫배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던 장소월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윤서는 장소월을 불러 오 아주머니가 준 거라면서 약을 한 갑 주었다. 만약 오 아주머니가 직접 준 약이 아니면 장소월도 감히 먹지 못할 것이다.백윤서는 전연우의 사람이니, 대체 무슨 약을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장소월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인시윤과 식당으로 갔다.서문정은 말을 걸기도 전에 장소월이 가버려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소월이 진짜 점점 대단해지는데? 내 성적이 소월이 절반만 해도 아버지가 매일 집에서 나를 나무라지 않을 텐데. 나 같은 딸 때문에 밖에 나가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면서.”백윤서는 눈을 내리뜨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말했다.“그래? 너도 노력만 한다면 소월이처럼 6반에 들어갈 수 있어.”장소월은 평소대로 고건우의 수업을 들으러 갔다. 고건우의 수업은 확실히 훌륭했다. 매 학생의 약점에 따라 학습계획을 세팅해주었다. 하지만 장소월에게 준 문제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어려웠고, 심지어 그녀가 공부한 지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지난번에 고건우가 준 연습문제 중, 장소월은 절반만 완성하고 나머지는 다른 과외 서적을 찾아야 했다.훈련동 밑에 도착하자 장소월이 물었다.“요즘 엽준수가 왜 안 보이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인시윤은 무심코 대답했다.“몰라, 집에 일이 있겠지? 내 생각에는 아마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을 것 같아.”장소월은 웃으며 말했다.“그냥 물어봤어.”두 사람은 별생각 없이 교실로 들어갔다....어둠이 깔리고 저녁 9시 30분. 거실에는 여전히 불이 커져 있었고, 오 아주머니는 야식을 만들어 백윤서의 방에 가져갔다. 백윤서가 아직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때마침 문이 드르륵 열렸다.“연우 도련님, 또 술자리 가셨어요? 해장국을 준비할까요?”전연우는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피곤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괜찮아요.”전연우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보고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갔다.“윤서 아직도 안 자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자 전연우가 손동작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 벨 소리가 멈추었다. 전연우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더니 끊긴 부재중 번호를 확인한 후, 깊은 눈동자가 더 어두워졌다.경찰서.장소월은 전화를 걸려는 경찰의 전화를 급히 끊었지만, 이미 남자의 휴대폰 벨 소리가 몇 초 울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아저씨, 저랑 제 친구가 장난한 것뿐이에요. 보세요, 저 멀쩡하잖아요.”“늦은 시간인데 학부모까지 부를 필요 있나요...”“장난? 칼로 친구를 찌른 게 장난이라고요?”경찰의 시선은 붕대를 감은 장소월의 손등에 떨어졌다.“누군가 제때 발견하지 않았으면, 학생은 아마 지금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큰일인데 당연히 학부모를 불러 학생을 데려가게 해야죠!”“그리고 너희들! 풀어준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들어와?”벽 모퉁이에는 알록달록한 머리색의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중간에 서 있는 가죽옷 세트를 입고 문신을 한 불량소녀는 딱 봐도 사회에서 안 좋은 것들을 많이 배운 모습이었다.이 몇 명은 다름 아닌 장소월이 도원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이름이 엽시연이었고 강용과 한 패거리였다.“이번에는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 너희 몇은 먼저 가도 좋아.”녹색 머리와 빨강 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착하게 살겠습니다.”“좋은 시민이 되려면, 일단 그 알록달록한 머리부터 어떻게 해 봐. 보기만 해도 정신 사나워.”“하지만 학생은 집에 못 가요. 양쪽 학부모를 다 불러야 해요. 아니면... 계속 경찰서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경찰은 장소월에게 말했다.장소월이 상처를 입었으니, 진짜 따지기 시작하면 엽준수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장소월은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갑자기 밤이 먹고 싶어 줄을 서서 밤을 샀다.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뛰쳐나와 그녀의 목을 조르며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나중에 그들 몇 명에게 구조되
“그 바보 같은 여자... 충고하는데, 당장 내쫓거나 아니면 단체 여행이라도 보내요. 최대한 멀리요. 그 여자가 소월 씨 곁에 있으면, 강지훈이 언젠간 반드시 찾아갈 거예요.”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서철용의 말투에 장소월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잖아요. 전 현아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요. 게다가 현아는 임신까지 했는 걸요.”“뭐, 뭐라고요?” 서철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 여자가 어떻게 임신을 할 수가 있어요!”장소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이미 뱉어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예전 강지훈이 나한테 피임약을 달라고 했었어요. 소현아에게 먹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만약 약에 문제가 있어서 제때 피임을 하지 못했고 지금 임신까지 했다면, 아이는 90% 확률로 기형아거나 사산아로 태어날 거예요. 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아이를 지우게 해야 해요.”그 소식을 들은 순간 장소월은 충격에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서 힘없이 휴대폰이 미끄러 떨어졌다.서철용도 그녀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소현아가 임신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강지훈이 소현아를 러시아에 보낸 건, 뇌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내가 확인해봤는데, 소현아가 맞은 약물은 뇌 속의 어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지만,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때문에... 그 아이는 낳으면 안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소현아의 가족 쪽은... 알아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서철용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너무나 청천벽력 같은 잔인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강용은 바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다급히 위층으로 달려갔다. 장소월의 방에서 흘러나온 소리라는 걸 알
강용은 자신의 자리를 뺏기자 눈에 띄게 불쾌해했다. 장소월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내가 할게. 너는 좀 쉬어.” 강용은 장소월이 하던 일을 빼앗았다.장소월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손이준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기에, 흔쾌히 그에게 일을 넘겨주기로 했다. “소금은 조금만 넣어. 현아 짠 거 잘 못 먹어.”“알았어.”이제 한가해진 장소월이 강용에게 물었다.“방 청소해 줄까?”강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대충 치워주면 돼.”“그래.”강용은 성격이 깔끔한 편이라 방 청소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현아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장소월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깨웠다. 소현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장소월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침구 세트를 본 그녀는 잔뜩 신이 난 듯 장소월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 소월아.”“됐어. 얼른 쉬어. 밥 다 되면 깨워줄게.”소현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약간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월아, 나 방금 엄청 무서운 꿈 꿨어. 강지훈이 내가 몰래 도망친 걸 알고 엄청 화냈어. 날 잡아서 가둬놓고 다시는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더라고.”“소월아, 나 강지훈은 만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사실 그녀는 이토록 걱정에 잠겨 있는 소현아의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소현아는 만날 때마다 마냥 즐거워만 보였는데... 아무래도 북경 감옥에 있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괜찮아, 현아야. 여긴 강지훈이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사람이 널 붙잡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잖아.”소현아는 걱정스러운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몰래 전화 해봤는데, 강지훈이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았어. 소월아... 나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너무 무서워.”“강지훈은 항상 날 괴롭히기만 해.”
월이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 양념을 만들던 장소월은 시커멓게 변해버린 밀가루 반죽을 입에 넣고 있는 월이를 발견했다.“월아, 안 돼!”장소월은 재빨리 뛰쳐나가 월이의 입안에 있던 밀가루 반죽을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강용, 냉장고에 뭐 먹을 거 있나 봐 봐. 배고픈 것 같으니까 뭐라도 좀 줘야겠어.”강용은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고 냉장고에서 오이 하나와 삶은 감자 하나를 찾아냈다.강용은 감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후 휴지로 감싸서 전해줬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투덜거렸을 텐데, 오늘은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여기.”장소월은 감자를 건네받아 월이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많이 먹으면 안 돼. 탈 날 수도 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 조금만 기다리면 밥 먹을 수 있어.”월이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한입 크게 베어 물려고 했지만 그 작은 입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입가에 침만 잔뜩 흘리고 말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의 눈에 강용의 얼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하얀 밀가루가 들어왔다. 아까 만두피를 밀 때 실수로 묻은 듯했다. 장소월은 손을 뻗었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머리 숙여 봐.”강용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머리를 숙였다.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이준은 빨래한 옷을 쾅 하고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그 소리에 소파에 누워 쉬고 있던 소현아까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눈을 떴다가 아무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장소월은 강용의 얼굴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며 말했다. “됐어.”“오빠, 오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장소월은 강용에게 말했다. “빨래 너는 거 좀 도와줄 수 있어?”강용은 기분 좋게 걸어가며 말했다.“그렇게 하지, 동생.”강용도 장소월이 곧 생리를 시작할
장소월은 월이를 집으로 데려와 의료 상자를 꺼내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물을 짜냈다. “아파?”월이는 침까지 흘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파, 엄마... 호호.”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월이를 보며, 장소월은 머리를 다친 아이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휴지로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아내며 말했다. “우리 월이 정말 용감하구나.”“하지만 다시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머리카락이 타서 하나도 안 예쁘잖아.” 장소월은 월이가 입고 있는 원피스에서도 불에 타서 생긴 커다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이봐, 여기도 탔네. 벗어봐, 이모가 꿰매줄게.”약을 다 바른 후, 장소월은 월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을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바늘과 실을 가져와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바느질 솜씨도 훌륭한 장소월이었다. 전생에 한가할 때면 수공업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옷을 다 꿰매고 아이에게 입혀주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손이준에게 또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너 정말 사람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어야겠어? 조금만 먹으라고 했잖아.”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장소월은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뜻밖의 화목한 장면이 펼쳐졌다. 강용이 어깨에 크고 작은 짐을 걸친 채 소현아를 부축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현아야, 무슨 일이야?”강용은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병이 나았다고 금세 또 돼지가 되어버렸어.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목을 접질렸어. 그건 그렇고, 어제 저녁 우리한테 밥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왜 안 왔어?”장소월이 대답했다.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혹시 저혈당 아니야? 병원에 같이 가볼까?”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돼. 현아는 괜찮은 거야?”강용은 이마를 짚었다. “저 얼굴 좀 봐. 어디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
장소월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오늘은 빨래도 해야 해서요. 그냥 집에서 기다릴 거예요.”손이준이 짧게 말했다.“마음대로 해요.”부엌을 다 사용한 후, 손이준은 깨끗하게 치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소월은 위층으로 돌아가 소현아의 방을 정리했다. 소현아에겐 이불 속에 간식을 숨겨두고 밤중에 몰래 먹는 버릇이 있었다. 임신 중인 그녀를 위해 과자 섭취를 금지했지만, 이불을 들춰보니 아직 다 먹지 않은 과자 봉지가 놓여 있었다. 장소월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녀는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베갯잇까지 모두 새것으로 갈아 놓았다. 이곳은 경제 발전이 더딘 곳이라 세탁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장소월은 세숫대야를 들고 공동 세탁실로 향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수돗물을 틀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아이가 끌어안는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월아? 머리카락 왜 이렇게 됐어?”“불에 탔어요.”“뭐라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 옆에 손이준이 물통을 들고 서 있었다. “이준 오빠? 빨래하러 오신 거예요?”“네.”장소월은 월이의 머리카락에서 불에 그을린 탄 냄새를 맡았다. “월아, 너 머리 왜 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쁜... 나쁜 거 잡으려고... 몰래... 먹었어.”“무슨 뜻이야?”손이준은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그녀에게 설명했다. “쥐가 나타나서 월이의 과자를 먹어치웠어요.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쥐를 잡겠다고 아궁이에 들어갔더라고요.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탄 거예요.”장소월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다른 곳은 안 다쳤어요?”“아파! 엄마... 호호.”월이는 조심하지 않아 뜨
송시아를 처리했으니, 다음은 서철용 차례다.두 번의 삶의 기억을 가진 전연우는 잠시 그를 남겨두는 것에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전화가 끊어졌다.장소월은 마치 물에 빠진 듯,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 그녀는 늘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수십 번 반복했었다. 오늘처럼 깊이 잠든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평소에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깨어나기가 일쑤였는데...사실 전연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옷장 속에 숨겨둔 약병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 약이 우울증 치료제라는 것을 전연우가 모를 리 없었다.과거 장소월이 죽은 후, 전연우는 그녀가 쓰던 옷방에서 엄청난 양의 이런 약을 발견했었다.장소월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이 묘하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아침 9시였다.옷을 갈아입던 중,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두 개의 약병을 발견했다. 혹시 어젯밤 실수로 수면제를 먹은 걸까? 하지만 옷장에서 약을 꺼냈던 기억은 꽤나 선명했다.어젯밤 어떻게 기절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방에서 나온 순간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지?’음식 냄새를 맡은 장소월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손이준이였다.“이준 오빠? 왜 여기에...?”손이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라이팬 속 음식을 저으며 말했다. “어젯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쓰러지더라고요.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예요?”장소월이 하려던 질문을 그가 쏟아내자 이상하게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장소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저혈당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그럼... 이건...”손이준이 말했다. “가게에 손님이 왔는데 가스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여기 주방을 빌렸어요. 그 보답으로 점심은 내가 만들어줄게요.”장소월은 기억이 나지 않아 미간을
그녀는 분명 아직 꽃다운 젊은 나이다. 하지만 스스로 쌓아 놓은 마음의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장소월은 약병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몇 알을 쏟았다. 살펴보니 약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보는 수밖에 없다.“뭘 먹고 있는 거예요?”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요리 도구를 든 채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왠지 아까보다 얼굴빛이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장소월은 재빨리 약을 삼키고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고질병이 도져서 진통제 좀 먹었어요. 선... 아니, 오빠...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손이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소금이 없어서요.”그제야 장소월은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사 오려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렸어요.”“지금 사 올게요.”몇 걸음 내디뎠을 때, 약을 먹어서인지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장소월은 비틀거리며 벽을 붙잡았다. 순간 손이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몇 분 뒤,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손이준으로 위장한 전연우는 쓰러지는 장소월을 품에 안았다.더 이상 차갑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전연우의 눈빛이었다. 그는 가면을 내려놓고 예전 같은 탐욕스럽고 강렬한 눈빛으로 품 안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소월아, 내 아내...”“정말... 보고 싶었어!”그 한마디에 장소월은 억지로 눈을 떴지만, 그저 단 한 순간이었을 뿐 곧바로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전연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팔을 괴고 엎드려 그녀를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스, 식사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가져다드릴까요?”전연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병원에 있는 놈들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전해. 오늘
장소월이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거실은 손이준의 손에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손님으로 오셨잖아요.”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장소월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선생님, 차 드세요.”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손이준은 손에 들고 있던 먼지떨이를 내려놓고 말없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어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부엌에 가서 장소월이 뭘 사 왔는지 살펴보았다.“왜 그러세요?”손이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서요. 쌀 씻어 놔요. 물은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붓고요.”장소월이 난처한 듯 만류했다.“이... 이러시면 안 되죠. 그냥 제가 할게요.”손이준은 냉정한 목소리로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요리 나보다 잘해요?”장소월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선생님.”손이준은 고개를 숙여 채소를 다듬으며 말했다. “호칭이 너무 듣기 거북하네요. 그냥 이준이라고 이름을 부르던가, 아니면 오빠라고 불러요.”장소월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뭇거렸다.“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으니... 그럼... 이준 오빠라고 부를까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손이준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해요.”손이준은 누구에게나 차갑고 냉담하게 대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는 감정 없는 로봇 같은 사람인 듯했지만, 또 그렇게만 보기도 어려웠다.솔직히 오빠라는 호칭은 너무 친밀한 느낌이라 그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장소월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정말 그 사람이 아닌 건가?“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그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바로 고개를 들고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부탁드릴게요.”장소월은 위층 방으로 올라가 닫혀 있는 옷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나갈 때 분명 문이 열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한테 하는 것처럼 똑같이 잘해줘... 어린아이 챙겨주는 것처럼 해도 돼, 응?”세 사람의 관계는 확실히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평소 장소월은 소현아를 좀 더 챙기려고 노력했었다.하지만 강용은 워낙 솔직한 성격이라 장소월 앞에서는 소현아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만, 뒤돌아서면 감히 3미터 안으로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소현아는 그의 차가운 눈빛만 봐도 두려움에 떨곤 했었다.소현아가 강용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걸 알지만, 장소월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강용이 소현아를 어린아이 대하듯 조금만 더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다.“현아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뿐이야. 강용, 현아는... 우리 친구잖아.”강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앞으로는... 좀 더 잘해주도록 할게.”“그러니까 나 밀어내지 마.”장소월이 말했다.“꼭 약속 지켜줘.”“병원에 가서 현아 좀 보살펴줘. 강용, 내가 한 말 잊지 말고.”장소월이 핏자국을 지우려 위층에 올라가 보니 이미 누군가가 깨끗하게 치워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바닥은 물기 때문에 축축해져 있었다.장소월은 방에 가서 마른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엎드려 물기를 닦아냈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피비린내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러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계단을 내려갔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손이준은 빨간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가 과일까지 들고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 많이 놀라셨죠?”“앉으세요.” 장소월이 소파에 앉자, 손이준도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장소월이 대답했다.“조금요. 그래도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선생님 따님은요?”“자고 있습니다.”길 건너편 국수 가게에서 별이는 재갈처럼 물린 고무젖꼭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칭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