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차라리 네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난 분명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어. 다 너 때문이야... 네 그 이기심이 내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전연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가 어때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다 죽었어. 소월아... 오빠 곁에 돌아와.”그가 간절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오늘 일 다 없던 거로 해줄게. 응?”장소월은 그의 얼굴에서 뭐라도 보아내기 위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마취약에 취해 완전히 미쳐버린 고집불통 남자 한 명뿐이었다.장소월은 대체 언제부터 전연우가 자신 때문에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전연우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저번 생에서 그녀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쳤음에도 전연우는 송시아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럼... 전생에서 있었던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왜...”전연우!“사랑해.”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사랑해.”그가 세 걸음 다가왔다.여전히 그 한 마디였다.“사랑해.”장소월이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아니,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네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난 저번 생에서 너한테 모든 걸 바쳤어.”“전연우... 전생에서 널 위해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장소월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전연우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원한이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송시아가 안 알려줬어? 넌 우리가 결혼 생활을 할 때에도 송시아를 데려와 내 침대에서 더러운 짓을 했어!”“결혼기념일에도! 넌 줄곧 송시아와 함께 있었다고!”“그 후... 넌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깥에서 송시아와 아이까지 낳아서 키웠어. 그렇게 난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어.”“그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나서는 기성은을 시켜 나한테 이혼합의서를 가져다줬어. 그렇게 난 빈털터리로 집에서 쫓겨났어.”“오직 송시
장소월은 날카로운 칼날 절반이 전연우의 심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 그가 완전히 바닥에 쓰러지고 눈을 감았다.“전연우!”장소월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맑은 액체가 그의 옷에 스며들어 검붉은 피와 뒤섞였다.장소월은 감히 그의 몸에 손끝도 대지 못했다. 왜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거나...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거나.“전연우, 너... 안 죽어.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전연우의 가슴팍엔 단도 하나가 꽂혀 있었다. 장소월은 조심스레 그의 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소리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빨리 들어와 주세요!”“제발 살려주세요!”문밖에 있던 경호원들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 온몸이 피로 흥건한 사람 한 명이 누워 있었다.경호원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했다.다행히 산장에도 의료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속해 있던 서철용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장소월의 손을 잡고 그 층을 벗어났다.서철용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지금 소월 씨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는 거예요. 기성은이 3분 뒤면 도착할 테니 그 전에 떠나야 해요. 다른 하나는... 다시 전연우의 곁에서 예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는 거예요.”“소월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소월 씨 편이에요. 앞으로 전연우가 살든 죽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죽는다고?지금 장소월은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몸은 다친 곳 하나 없었다.장소월이 전연우를 죽이려 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의 몸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예전 그가 알던 전연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전연우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어떤 말은... 서철용은
송시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요?”소피아가 빠르게 말했다.“송 부대표님, 대표님께서 다치셨어요! 대표님이 구급대원들에게 들려 방 안에서 나가는 걸 제가 똑똑히 봤어요. 온몸에 피가 가득했고, 가슴엔 칼이 하나 꽂혀 있었어요. 심각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모님께서 도망치셨어요.”“부대표님, 저희 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하지만... 기 비서님께선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셨는데...”“뭐라고요? 장소월이 감히 대표님한테 손을 댔다는 거예요?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요?”송시아의 음산한 눈동자가 번뜩거렸다.“부대표님과 같은 병원이에요.”“알겠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절대 들키면 안 돼요.”“네, 부대표님. 전 먼저 회사에 들어가 볼게요. 다른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송시아는 전화를 끊은 뒤 간호사에게 휠체어에 앉혀달라고 부탁했다.“환자분, 죽 안 드실 거예요?”“제 남자가 다쳤어요. 가봐야 해요.”송시아가 알아보니 전연우는 수술을 받고 있는 중이고 기성은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기성은은 휠체어를 타고 온 여자를 보고서도 얼굴에 표정 변화 하나 생기지 않았다.송시아가 ‘수술 중’이라는 빨간색 글자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수술실 밖에서 연우 씨가 나오길 기다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연우 씨, 이게 바로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자예요. 신혼 첫날 밤 가슴에 칼을 꽂아 넣는...”장소월 또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반복적으로 그녀를 시험해본 결과 이제 확신이 들었다.장소월은 확실히 그녀처럼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아니면 그토록 전연우를 좋아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기성은이 쏘아붙였다.“부대표님께선 자신의 일에나 신경 쓰면 됩니다. 대표님께선 무사하실 겁니다.”그때, 돌연 수술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안에서 걸어 나오자 기성은이 다급히 일어나 물었다.“상황이 어떻습니까?”“...”그때, 강지훈은 위풍당당하게
“누가 타라고 했어?”강지훈의 그 말은 선명히 소민아를 가리키고 있었다.뒤에 있던 부관이 말했다.“현아 아가씨가 차에 태우셨습니다. 함께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한다면서요. 현아 아가씨가 너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소민아는 차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한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지훈의 모습에 그녀는 그를 향해 올렸던 손을 빠르게 내려놓았다.소민아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소현아의 등 뒤로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이 강지훈이라는 놈은 대표님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다.정말이지 사람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대체 언니는 이런 사람과 어떻게 만났단 말인가.그들과 기성은을 비교해보니, 기성은은 그야말로 천사와 다름없었다.또한... 그녀를 보는 강지훈의 눈빛은 항상 그녀로 하여금 소름이 돋아오르게 만들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볼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지훈이 말했다.“외부인을 데려가는 게 그렇게 좋아?”소현아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줍고는 톡톡 먼지를 털며 말했다.“민아는 제 동생이에요. 엄마가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민아는 좋은 사람이에요. 예전 절 도와 나쁜 사람을 쫓아주기도 했는 걸요. 저 민아와 함께 살고 싶어요.”“지훈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민아랑 집에 갈 거예요.”소민아는 더러워진 과자를 입에 넣으려는 소현아를 보고는 재빨리 과자를 빼앗아 창밖에 던져버리고 말했다.“바닥에 떨어진 건 먹지 마.”왜인지 현아 언니의 병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그녀가 팔을 뻗으니 소매 안으로 멍이 든 흔적이 보였다. 색깔이 옅지 않은 거로 보아 적어도 3, 4일 전에 다친 것 같았다.저 상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소민아는 최대한 얼굴로 드러날 뻔한 의심을 가라앉혔다.강지훈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민아를 데리고 북경 감옥에 가는 걸 허락한 것이다.다만 소민아는 아직 그들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그때, 정장을 입
“흑흑흑... 이랑 씨, 저 죽을 것 같아요!”소민아는 쓰러질 듯 힘없이 신이랑에게 다가가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댔다. 신이랑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요.”신이랑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아침밥 먹었어요?”“저 지금은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요.”쌀쌀한 아침이라 산장 길옆에 내린 서리는 아직 채 녹지 않았다. 신이랑이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소민아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가 눈을 내리뜨리니 검은 속눈썹이 조금씩 떨려왔다.“아침엔 추워요. 얼른 타요.”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머지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소민아가 차에 탄 뒤, 신이랑은 운전석에 올라타 얼이 빠진 채 앉아 있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신이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게 운전했다.“어젯밤 일은 미안했어요. 민아 씨를 또 귀찮게 했네요.”“괜찮으면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요?”소민아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아무것도 숨기지 못한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몇 글자 내뱉었다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아니에요. 이랑 씨까지 위험하게 만들 필요 없어요. 이번 일은 모르는 게 더 나을 거예요.”“알겠어요. 묻지 않을게요. 일단 조금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신이랑은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필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어 밤을 새웠을 거라 생각했다.신이랑은 차 속도를 늦추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소민아는 조수석 의자에 기대어 앉아 빠르게 잠이 들었다. 시내에 들어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돌연 소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희미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울 경찰서입니다.”소민아가 번쩍 눈을 떴다. 단번에 모든 졸음이 사라져버렸다.25분 뒤.소민아는 경찰서에 도착했다.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취조실에 갇혀버렸다.4, 5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장소월, 31세, 암으로 사망.서울 강남병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연우야, 오늘 의사선생님이 투석한다고 주사를 놓아주셨는데 너무 아팠어.」「나 곧 죽어. 보러 와 줄 거지?」「제발, 연우야...」장소월이 힘겹게 머리를 돌려 전화기의 메시지 창을 보고 있다.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연우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그녀의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두 눈은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사지는 이미 암 후유증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몸을 까딱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임 간호사도 거의 보름 너머 와보지 않았다.원인: 더 이상 치료해도 의미 없음.그녀는 사실 엄살이 많았고 아픈 걸 끔찍이 무서워했다. 암 말기라 그녀는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전연우에 대한 사랑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하지만 이 넘쳐나던 사랑이 메말라가자 그녀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몸뚱이였다.장소월은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죽기를 기다렸다.고통으로 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졌다.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 깐 힘을 다해 전연우와 결혼했고 8년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려 했다. 모든 걸 다 바쳐 그 사람 곁을 지켰는데 그녀가 얻은 건 무엇인가?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났고 가난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가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전연우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다. 더 이상 징그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전연우, 드디어 소원대로 송시아와 결혼할 수 있다.8개월 전.전연우의 생일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테이블 위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도 이미 차갑게 식어갔다.기다리던 전연우는 오지 않고 비서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비서가 싱겁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사장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큰 전 씨 집안 산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되잖아요.”장
새벽 12시.장소월이 악몽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마엔 땀이 맺혀있다.순간 익숙한 소독제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냄새다.장소월은 잠시 멍해졌다. 죽은 거 아니었나?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했던 병실이 밝아졌다. 눈부신 불빛에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악몽이라도 꾼 거야?”긴 다리로 침대 곁에 다가왔다. 큰 체구가 그녀의 왜소한 몸에 비친 빛을 막아주기엔 넉넉했다.“전...전연우?”장소월이 머리를 들어 뼈속까지 증오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놀라움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다가오지 마!”왜 또 이 악마의 곁으로 돌아온 걸까?그녀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뒤로 물러선다.장소월의 머리는 지금 복잡하기 그지없다. 전연우를 본 순간 크나큰 두려움과 절망이 몰려와 숨이 막혔다.전연우가 멈칫한다. 이내 가느다란 눈은 차가움으로 가득 찬다. 불쾌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고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의사 불러줄게.”남자의 차가운 저음이 칼처럼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문이 쾅 하고 닫기고 나서야 장소월도 긴장이 풀렸다.남자가 떠난 후 방안에 떠돌던 강렬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장소월은 황급히 이불을 걷어냈다. 순간 째질듯한 아픔이 손목에 전해졌다.손목을 보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손목을 그은 건가?장소월은 아픔을 견디면서 다른 한 손으로 침대맡의 테이블에서 구식 전화기를 들어 달력을 찾아보았다.시간을 본 순간 장소월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지금은 무려 2000년, 그녀가 18살 되던 그해였다.장소월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지금 입원 중이고 손목을 그어 전연우를 협박해 고백을 받아달라는 중인 것 같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10살 되던 해에 장해진이 밖에서 데려온 양자였다.장소월이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 건 그녀가 15살 되던 해 집에서 키우던 티베탄 마스티프가 갑자기 실성해 그녀한테 달려들어 물
장소월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전연우에게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미안해. 전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오빠를 궁지로 내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제 깨달았어. 앞으로도 꼭 기억할게. 오빠는 오빠일 뿐이라고.”난리를 피우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나머지 아무런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전연우의 어두운 눈동자가 빛나더니 얇은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비웃음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수작인 건가?전연우가 입을 열었다.“알았다니 다행이네. 밤새우지 말고 얼른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그러고는 어른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장소월은 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고 수긍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돌아선 전연우의 눈에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병실에서 나온 전연우는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장소월을 만졌던 손을 닦았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간 그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손수건을 던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누른다.아우디 한 대가 라이트를 킨 채로 있다. 조수석에는 긴 파마머리를 한 여인이 앉아있다. 섹시한 옷차림에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다. 야릇한 붉은 입술은 담배연기를 뿜어냈다.여자의 시선은 차에 타는 남자의 잘빠진 몸을 따라 움직였다.“잘 달래줬어?”전연우가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했다. 그의 눈에 역겨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여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내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여자가 매혹적으로 웃어 보이더니 다리를 꼬았다.“안 피면 어린 아가씨 향수 냄새를 어떻게 덮어.”아이라인을 그린 예쁜 눈이 차 안에 놓인 핑크색 향수병으로 향한다. 거기엔 글자가 쓰여있는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다: 장소월 전용 좌석.그녀가 살짝 웃어 보이더니 말한다.“18살밖에 안되는 여자애가 점유 욕은 굉장히 강하단 말이야. 왜? 장가에 데릴 사위로 들어갈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