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월은 의식을 되찾았다. 흐릿한 시선 속 전연우가 문 앞에서 도우미에게 무언가 지시하고 있었다.전연우가 안으로 들어오자 장소월은 침대에 손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전연우가 만지려 하자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가서 몸에 찌든 냄새 깨끗이 씻어내고 와.”전연우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의사 선생님한테 듣기로 너 오늘 저녁밥 안 먹었다면서? 도우미한테 죽 끓이라고 했으니까 곧 될 거야.”“다음부턴 밥은 꼭 잘 챙겨 먹어야 해. 난 샤워하러 갈게.”장소월은 그와 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전연우가 샤워실에 들어가자 그녀는 힘없이 이불을 거두고 걸상에 걸어놓은 그의 정장을 집어 들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휘발유 냄새였다.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또 야밤에 나가 사람을 해치고 온 것이다.장소월은 분노에 차올라 정장을 던져버리고는 작업실에 들어가 서철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철용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전연우가 어디에 갔었는지 알죠? 대체 뭘 하고 왔길래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진동하는지 말해주세요. 전연우...”장소월은 한참이 지나서야 본래의 목소리를 되찾고 말했다.“또 사람을 죽인 거예요?”서철용이 그녀의 감정을 가라앉혀주며 말했다.“소월 씨, 침착해요. 내가 다 말해줄게요.”‘소월 씨, 요즘 누군가 계속 보고 있는 것 같다던 느낌이 맞았어요. 착각이 아니었어요... 인시윤이 줄곧 어둠 속에서 몰래 소월 씨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예요. 정전이 되었던 그날 봤던 그 사람 역시... 인시윤이었어요...’“소월 씨... 인시윤은 죽지 않았어요!”그 말을 들은 순간 장소월은 심장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눈동자 속엔 기쁨과 경악 등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서철용이 말을 이어갔다.“저번에 인시윤이 소월 씨를 해친 일
장소월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외부에서 소란이 생겨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다만 그녀는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었다.전연우가 불꽃 속에 총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의 몸은 온통 검붉은 피로 뒤덮였고 발밑엔 시체들이 무더기로 누워 있었다.장해진, 강만옥, 강영수, 강씨 노부인, 인시윤, 인정아, 그리고... 강용까지...모두 그에게 짓밟혀 죽어버린 것이다.또 별이는 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장소월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전연우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장소월은 한명 한명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안돼!”그녀가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그 소리에 은경애는 다급히 옆방으로 달려왔다.“아가씨, 드디어 깨셨네요. 오전 내내 주무셨어요. 두 시간만 더 지나면 저녁 식사시간이에요. 조금 전 대표님께서 전화하셨는데 아가씨가 아직 주무신다고 하니까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시더라고요.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세요. 대표님은 정말 아가씨를 끔찍이 아끼세요.”장소월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길게 잤을 줄은 정말 몰랐다.그녀가 흐릿하고 무거운 머리를 어루만졌다.“어젯밤에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급히 집에 돌아온 전연우가 가장 처음 확인한 것은 바로 장소월의 몸 상태였다.괜찮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 검사를 받았다.장소월은 그가 과장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걱정의 마음 중 진심이 몇 퍼센트나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장소월은 혈액 검사를 하려 의자에 앉아 소매를 걷었다. 전연우는 장소월의 외투를 받아들고 매서운 눈빛으로 주사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였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절대 그의 공포스러운 시선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간호사는 감히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아프지 않게 해요.”전연우가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대표님, 사모님, 걱정 마세요. 금방 끝날 겁니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저 사람은 신경 쓰
“꺼져. 다가오지 마.”목이 망가진 듯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었을 땐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장소월이 잘 보이지 않아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비춘 것이다. 가까이 가보니 온몸이 화상 자국으로 뒤덮인 여자가 앉아 있었다.너무나도 흉측한 그녀의 모습에 장소월은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 소리를 들은 전연우는 여자 화장실이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로 뛰어 들어갔다.장소월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전연우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왔다.“다친 데는 없어?”전연우가 그녀의 몸을 살펴보았다.장소월은 조금 전 그 얼굴을 떠올리니 또다시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난 괜찮아.”“그 여자 화상이 엄청 심했어. 보자마자 깜짝 놀랐어. 우리... 집에 가자.”그야말로 지옥에서 걸어 나온 귀신과도 같았다.장소월은 귀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지만, 그녀의 모습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가 귀신 밖에는 떠오르지가 않았다.장소월이 나간 뒤, 인시윤을 돌보던 도우미가 그녀를 찾으러 화장실에 왔다.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원래 깨끗했던 환자복 위에 알 수 없는 액체가 한 움큼 묻어 있었고, 역한 비린내가 풍겨왔다.인시윤은 지금껏 이토록 굴욕스러운 적이 없었다. 전연우가 아니었다면 인시윤은 장소월 같은 하찮은 집안 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더 우아하고 아름다워지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인시윤은 마음속에 광기가 일었고, 질투심이 천천히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었다.만약 장소월의 얼굴도 그녀와 같이 망가진다면, 전연우는 한 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이 전연우의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반반한 얼굴 때문이다.장소월... 전연우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단지 너의 그 얼굴일 뿐이야.인시윤이 병실로 돌아온 후, 간호사가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지금껏 차마 잡아보지 못했던
그녀에게 또 복통이 찾아왔다는 것을 서철용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말을 더 많이 함으로써 그녀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서철용이 프로의 손길로 그녀의 배에 안마를 해주었다. 그 결과 배은란은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계속해.”“어젯밤 전연우를 제지하기 위해 나갔던 거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인시윤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전연우 씨가 죽이려 했다는 거야? 왜? 인시윤은 그분의 아내였던 사람이잖아.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가 있어?”서철용이 웃음을 터뜨렸다.“아내? 그냥 이용했던 것뿐이야. 난 예전 전연우 같은 냉혈한에겐 약점이 없는 줄 알았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고.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준 사람이 생겼고, 자연히 약점이 생겨버렸지. 내가 소월 씨를 언급하니까 바로 멈추더라고. 예전의 그 성격대로였다면 인씨 집안은 불에 타 재가 되고 말았을 거야.”“전연우 씨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런데 인시윤은 왜 데려와 치료해주는 거야?”서철용이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역시 내 와이프 대단해. 바로 이렇게 핵심 질문을 던지다니.”배은란이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어젯밤 인시윤한테 강영수에 대해 물었었거든. 무언가 알고는 있는데 일부러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난 그 당시 비행기 사고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고 싶어. 지금 상황으로 봐선 강영수는 죽지 않았어. 어쩌면 그걸 아는 사람은 인시윤 단 한 명일 수도 있어.”배은란이 그에게 물었다.“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은데 어떻게 정보를 캐낼 생각이야?”서철용은 입술을 깨물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느다란 눈에 한 가닥의 안광이 번뜩였다.“지금은 한 단계씩 차례로 밟아보는 수밖에 없어.”다음 날, 서철용은 인시윤의 검사 결과 차트를 보고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수술을 진행했다.서철용이 메스를
서철용이 되물었다.“무슨 문제 있어요?”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약 가지러 갈게요.”이건 오랫동안 꺼내 보지 않은 약이다. 지금 환자에게 처방한다고?“전 대표님, 사모님...”사무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서철용은 고개를 숙이고 씩 웃었다.“귀한 손님이 오셨네!”두 사람이 들어오자 서철용은 물 두 컵을 따라 장소월의 앞에 놓아주었다.“여기엔 설탕을 넣었어요. 몸을 따뜻하게 해줄 거예요.”“고마워요.”“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장소월이 전연우에게 말했다.“먼저 가서 일 봐.”전연우는 잠시 나가야 했다. 그녀를 혼자 보내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저녁 여섯 시가 되니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최근 날씨도 많이 추워졌다.전연우는 입고 있던 정장을 벗어 그녀에게 입혀 주었다.“함부로 다니지 말고 여기에 있어. 곧 데리러 올게. 착하지. 내 말대로 해.”장소월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서철용은 이미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도 좀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전연우가 말했다.“소월이 잘 지키고 있어. 없어지면 절대 너 가만 놔두지 않아.”“얼른 가. 다 큰 어른이 뭐 길이라도 잃을까 봐 그래?”전연우가 나가자 장소월은 백팔십도 바뀐 표정으로 조금 전 그가 만졌던 얼굴을 슥 문질렀다.“저 인시윤 만났어요.”“이거 새것이에요. 아무도 안 썼어요.”담요를 꺼내 그녀 옆 소파 위에 놓아주던 서철용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아직은 인시윤을 만나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에요. 소월 씨... 만나지 말아요. 인시윤은 소월 씨에게 원한을 갖고 있어요. 얼굴까지 완전히 훼손되었으니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거예요.”장소월은 따뜻한 물이 담긴 유리컵을 손으로 감쌌다.“알아요.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서...”“그게 뭔지 나도 알아요. 강영수 소식을 묻고 싶은 거죠? 소월 씨... 인시윤은 말하지 않을
장소월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요. 알겠어요.”그녀는 문을 나서고 잠시 걸은 뒤에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여기는 결코 혈액 검사하러 가는 길이 아니다.이곳 복도는 너무 조용해 센서 등도 모두 꺼져 있는 상태였다.장소월이 걸음을 멈추었다.“당신은 이 병원 간호사가 아니에요. 대체 누구죠?”거짓말이 들키자 여자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뛰어가더니 비상구로 빠져나갔다. 장소월이 쫓아 가보았지만 비상구는 이미 잠겨 있었다.그녀는 돌아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상승 도중 멈추었고 그렇게 그녀는 그 속에 갇혀버렸다.장소월이 쾅쾅 문을 두드렸다.“문 좀 열어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계단으로 다녔던 것이다.아까 그 사람은 누구지?인시윤일까?아니, 인시윤일 리는 없다.인시윤은 지금 수술을 받고 있으니 그렇게 빨리 뛸 수 없는 몸이다.그 순간 환풍구로 이상한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얼마 후, 장소월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아무런 예고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서철용이 배은란을 찾았을 때, 남자 한 명이 껄떡거리며 길을 묻고 있었다. 불순한 의도가 명확했다. 그 순간 다행히 서철용이 나타난 것이다.“다음엔 조심할게. 집안에만 있다 보니까 너무 답답해서 나오고 싶었어.”“나가고 싶을 땐 나한테 전화해. 아니면 도우미랑 같이 나가도 되고. 너 혼자 나가는 거 걱정돼.”도우미가 마지막 음식까지 밥상 위에 차려놓았다.서철용이 물었다.“소월 씨는요? 왜 안 보이는 거예요?”도우미가 말했다.“아까 간호사가 찾아와 혈액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다면서 모시고 갔어요. 한참 됐는데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네요.”서철용이 불길한 예감에 이마를 찌푸렸다. 어떻게 이상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바로 5분 전에 검사 결과 보고서를 전연우의 메일에 전송했는데 말이다.“큰일 났어. 은란아, 누가 부르든 절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난 나가봐야겠어.”배은란이 그를 부르려고 입을 뗀 순간, 서철용
분명 이곳이다.서철용은 반지를 주워들었다. 장소월은 틀림없이 이곳에 있을 것이다. 아니면 6천억짜리 반지가 왜 여기에서 굴러다니겠는가.서철용은 거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방을 뒤져 공구를 찾고는 소화기 버튼을 눌러 작동시켰다.그때, 서철용의 귀에 비상구 복도 쪽 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열어보려 했지만 이미 단단히 잠겨 있었다.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다행히 일찍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몇 분만 늦게 왔다면 불길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장소월은 틀림없이 이곳에 있다. 아니면... 악의를 가진 그 사람들이 장소월을 여기까지 유인하고 불까지 질렀을 리 없으니 말이다.불길이 조금 잡히자 서철용은 수건으로 코를 막고 모든 방을 뒤져보았다.소방대가 도착했을 때, 서철용은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흡수해 정신이 흐릿해지고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계속해 찾아야만 했다.“너 절대 다치게 안 해.”‘난 이모한테 반드시 널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어.’‘그토록 오랫동안 너한테 상처를 줬으니, 이번엔 내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꼭 무사히 구해낼 거야...’마지막으로 서철용은 엘리베이터 옆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불길은 그의 몸에까지 번지지 않았다. 비상구를 통해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완전히 정신을 잃은 그에게 산소마스크를 끼워주고는 밖으로 구조해 나갔다.“팀장님,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장소월은 쓰러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힘으로 문을 두드렸다.몇 분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들은 완전히 혼미상태에 빠진 장소월을 구해냈다.전연우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천추 산장을 나섰다.송시아가 그를 잡았다.“전연우 씨, 잘 생각해봐야 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천신만고 끝에 따온 거란 말이에요. 지금 이렇게 가면 이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말 거예요.”전연우는 단호히 송시아의 손을 뿌리쳐버렸다.김 대표가 물었다.“송시아 씨,
수술이 진행되고 한 시간 뒤.전연우는 병원에 도착했다. 배은란도 수술실 문밖에서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전연우가 경직된 얼굴로 배은란에게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갑자기 왜 불이 난 건데요.”배은란은 서철용이 걱정되어 한참을 운 탓에 눈이 새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그녀 역시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배은란을 보살피던 도우미가 일어나 자초지종을 한번 말해주었다.전연우의 눈동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CCTV 영상 찾아봐.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내.”기성은이 머리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기성은은 병원 16층 CCTV 영상에서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고 있어 얼굴은 조금도 확인할 수 없었다.경찰서에서는 이 일을 조사한 뒤 대체적인 그녀의 얼굴을 그려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윤곽으로 조금의 단서는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장소월이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기성은이 조사 결과를 전연우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조사해보았는데 이 사람은 병원 간호사 명단에 없습니다. 외부 인원이 간호사로 위장해 들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16층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사원증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저희가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전연우가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으로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어헤쳤다.“인시윤은 몇 층에 있어?”“12층입니다.”전연우는 바로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걸어갔다.기성은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대표님, 인시윤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하지만 인시윤은 지금 저희들의 감시 아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인시윤은 아닙니다.”전연우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인시윤에 대해 잘 알아?”기성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