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이럴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사람을 시켜 불을 지르게 하지 말고 내가 직접 남양으로 달려가서 널 죽였어야 했어!” 손성호는 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며 섬뜩하게 말했다.“진짜 당신이었네!” 이 말을 들은 최서준은 급격히 살기에 휩싸였다.단지 떠본 것뿐이었다. 손항준이 수상하다고 손씨 가문 전체가 그런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확인해 보니 역시나 손씨 가문 위아래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곳 전체에 퍼져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사람의 살기가 이토록 짙을 줄이야.뼛속까지 사무치는 증오심이었다.최서준의 머릿속에는 한성 보육원의 형제자매들이 떠올랐고 더 나아가 원장의 자상하고 인자한 얼굴이 떠올랐다.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었다.이윽고 그는 몸을 휙 움직여 손씨 가문 사람들 곁에 나타났고 상대는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렸다. 또다시 휩쓸며 지나다니는 곳마다 손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아버지, 살려주세요!”“최서준, 난 그때 그 사건에 찬성하지 않았어!”“네 형제들을 죽인 건 가주야!”“나도 어렸어, 나도 어린애였다고!”“미안해요, 최 대가.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여기 모인 사람들은 손성운이나 손성호의 직계 후손들이었다.최서준은 자비를 구하는 이들의 호소를 못 들은 척했다.세상을 떠도는 사악한 악귀처럼 나타나는 곳마다 목숨을 거두어갔다.“최서준, 죽여버릴 거야!” 손씨 가문 두 형제의 마음도 순간 분노로 가득 찼다.두 사람은 최서준의 뒤에 따라붙었지만 그저 쫓아다닐 뿐 자신의 후손들이 연이어 학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절망적이야?” 손씨 가문 사람들 뒤에 최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화가 나?” 말하며 그는 어느새 이미 다른 곳에 나타나 있었다.“그래, 그런 느낌이야.” 최서준의 잔영이 보일 때마다 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했다.서서히 수십 명에 달하던 손씨 가문 사람들 중
“하나, 둘, 셋...”손으로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어보았다.“손성운, 이제 여섯 명밖에 안 남았어. 그해 사건의 내막을 말하지 않으면 손씨 가문은 오늘 멸망할 거야!” 차갑게 말하는 최서준의 흉흉한 살기에 사람들은 그가 말한 대로 할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최서준, 꿈 깨. 넌 죽기 전까지 진실을 모를 테니 걱정 마.” 태허결 공법의 특수성으로 인해 손성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원기가 소용돌이치며 파문을 일으켰다.“최서준, 오늘 손씨 가문의 치욕을 네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야!” 손성운은 자신의 생일잔치를 열던 손씨 가문 저택이 이미 피로 붉게 물든 것을 맹수처럼 충혈된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흑과 백의 원기가 충돌했지만 최서준은 이를 외면했다.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며 두 사람이 지키고 있던 여섯 명 중 한 명, 또 한 명이 쓰러졌다.“바람아!”손성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죽은 사람은 그의 자식 중 한 명이었고 또다시 그림자가 번뜩이며 한 명이 죽었다.그렇게 몇 차례 반복 끝에 자리에 남은 손씨 가문 사람은 오직 두 형제뿐이었다.손성호 형제는 최서준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고 최서준이 자식들을 모두 죽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한수영, 저놈이 살인에 미쳐서 우리 두 가문까지 몰살시키는 건 아니겠지?”옆에 있던 엄씨 가문 가주가 이 지옥 같은 광경을 보고 중얼거리자 한씨 가문 미인이 말했다.“정말 죽이려 한다면 엄씨 가문이 도망칠 수 있을까요?”한수영이 되물었다.하긴, 저 무서운 고수가 자신의 가문을 죽이려 했다면 진작 아비규환이 됐겠지, 그가 이곳에서 가만히 지켜볼 틈이 있었을까.“최서준,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손성호가 버럭 소리치며 그의 모습이 허공에서 희미해지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손 회장이 죽기 살기로 싸우려는 거야!” 이 장면을 본 한씨 가문 가주는 충격에 휩싸여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소문에 손 회장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데 한번 나서면 필시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먼저 달려들다가 몇 발짝 떨어져 있던 손성운은 공격은커녕 서 있는 것조차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최서준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동안 손성운은 온몸의 모든 뚫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고 저항할수록 죽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살고 싶으면 무릎을 꿇는 길밖에 없다!그때, 최서준은 물론이고 형인 손성호마저도 손성운을 쳐다보지 않았다.“최서준, 내가 네 상대가 아니어도, 네가 나와 손씨 가문을 무너뜨려도, 네가 아무리 무서운 존재로 성장했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개미에 불과해, 하하하!” 손성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웃는 그의 모습에 최서준은 그가 미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손성호가 큰 소리로 웃을 때 손성운은 더 이상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털썩-손성운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동생아, 아직도 모르겠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도 저 망할 놈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손성호는 비통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고 동시에 혼돈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최서준은 그가 이미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자각하고 원기를 동원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종사 7단계까지 수련한 그가 원기를 뒤집자 종사 8단계의 경지에 도달했다.하지만 그게 다였다.최서준이 휙 움직이더니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손성호 앞에 도착해 있었고, 손성호가 미처 따라잡지 못할 빠른 속도로 손성호의 단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 순간 이미 역전된 원기는 마치 근원이 잘린 것처럼 끊어져 버렸다.이미 한 번 자폭의 고통을 겪은 최서준은 당연히 두 번 다시 걸려들지 않았다.“죽음을 자초한다면 뜻대로 해주지!”최서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손바닥으로 손성호의 머리를 똑바로 내리쳤다.만약 이 손바닥을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무리 종사 7단계의 경지에 이른 몸이라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바로 그때, 뒤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손성운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말했다.“최서준, 말할게. 우리 형
“지아야, 약속할게. 결혼하고 네가 연예계에서 발전하고 싶다고 해도 난 똑같이 응원할게.”임지석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예쁜 선물 상자를 꺼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안에 반지가 들어있을 거라는 건 뻔한 사실이었다.“오빠, 이러지 마. 난 단지 오빠를 친오빠로만 생각했다는 걸 알잖아.”이 모습을 본 임지아는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최서준 그 자식 때문이야? 지아야, 더 이상 그놈한테 마음 주지 마. 그 자식은 이제 돌아오지 못해. 죽을 운명이라고!”“최서준 씨가 왜, 무슨 일인데?”최서준의 소식을 들은 임지아가 서둘러 물었다.“역시 그 자식 때문이었구나. 그 멍청한 자식이 대체 뭐가 좋다고. 지아야, 그 자식 진릉의 거물을 건드렸어. 이제 죽을 목숨이라고, 절대 돌아오지 못해.”임지석이 단호하게 말했다.“지야, 내 곁으로 돌아와서 임씨 가문 공주님이 되는 게 좋지 않겠어?”“오빠, 그만해!” 임지아는 다시 한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임지아, 적당히 해.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네가 연예계에서 발전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돈도 주고 데뷔 자금도 지원해 줬는데, 그동안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알아?” 임지석의 말투가 점점 차가워졌다. 부드러운 방법이 먹히지 않자 그는 강하게 밀어붙일 생각이었다.“임지아, 주제넘게 굴지 마. 넌 우리 부모님이 입양한 버려진 아이일 뿐이야. 우리 부모님과 내가 아니었다면 오늘 네가 여기 있을 수 있었겠어? 싫어도 좋다고 해야지.”임지석은 단번에 문을 넘어 임지아의 손을 낚아챈 뒤 입을 맞추려 했다.짜악-임지아는 임지석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반격했다.“오빠, 가.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할 테니까.” 이 순간 임지아 역시 분노가 치밀었다.어렸을 때부터 친오빠로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임지석은 뺨을 맞은 곳을 손으로 만지며 천천히 임지아에게 다가갔다.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똑같이 뺨을 때렸고 그 자리에서 임
“최서준, 네가 어떻게 손씨 가문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 임씨 가문 일이니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너였으면 얼른 진릉을 떠나 멀리 가버렸을 거야. 손씨 가문이 널 쫓아오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널 노리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구석에서 벽을 잡고 일어난 임지석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그 말을 들은 최서준은 덤덤하게 웃었다.보아하니 무림 가문에서는 소식을 차단하고 그날의 내막이 퍼지지 않도록 한 것 같았다.하지만 소문이 나더라도 임지석 실력으로는 거기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최서준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임지석은 자신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다.“최서준, 알아들었으면 꺼져. 지금 당장 내가 너 여기 있다고 알리기 전에.”임지석은 약점을 잡은 듯 더욱 무모해졌다.“불쌍하네. 사실대로 알려줄게. 손씨 가문, 내 손으로 전부 죽였어.”최서준은 가볍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하하하, 허풍도 정도껏 떨어야지. 다음에 허세 부릴 땐 미리 대사부터 다듬어서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는 하지 마.”임지석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지만 이런 식으로 지아 씨 괴롭히면, 너 하나 더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최서준은 확 바뀐 말투로 임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임지아, 정말 저놈 때문에 날 쫓아낼 거야?”최서준이 정말로 손을 댈 기세를 보이자 임지석은 더 이상 으름장을 놓지 못하고 소파에 앉은 임지아에게 고개를 돌렸다.“임지석, 네가 자기 동생한테까지 손을 대는 음흉한 놈일 줄은 몰랐어. 오늘부터 난 임지석 당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만 가!”임지아는 방금 전의 장면을 떠올렸고 최서준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몹쓸 짓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래, 네가 한 말이야. 이제부터 나와 임씨 가문은 너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야. 임지아, 후회하지 마!”임지석 역시 이 순간 최서준이 자리에 있는 이상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서준이 여신님과 다정한 모습으로 레드카펫을 걷는 것을 본 방구석 남자 팬들은 불만을 터뜨리며 함께 모여 의논하기까지 했다.레드카펫을 걷고 사인을 한 후 곧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행사장에서 감독은 인사하느라 분주했고 그곳에는 유명 영화 평론가들과 여러 스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작품이 흥행하려면 영화 평론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전문가들이 먼저 높은 점수를 매긴다면 자연스레 다른 팬들도 대거 몰려들 것이고, 이젠 사람들의 SNS 활동도 활발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그래서 감독님은 바빴지만, 임지아는 낯익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간단히 안부만 물은 뒤 할 일이 없었다.최서준은 더더욱 그랬다.두 사람이 마침 한가할 때 임지아는 뜻밖의 인물을 발견했다.감독님에 의해 작품에서 쫓겨난 이진희뿐만 아니라 그녀 옆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에는 두 사람 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임지석이었다.“저분은 장 감독님인데 진 감독님보다 더 선배세요. 최서준 씨, 우리도 가서 인사드려요.”임지아는 최서준을 끌고 그쪽으로 향했다.“장 감독님,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요. 이쪽은 최서준 씨입니다.”임지아는 당당하게 소개했다.“안녕하세요.”장 감독은 최서준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임지아에게 말했다.“지아 씨였구나. 나랑 진 감독 사이에 당연히 응원하러 와야지, 새로운 캐릭터 물색도 할 겸. 이번 작품에서 연기 기대하고 있어요. 연기가 얼마나 늘었는지 지켜볼 겁니다.”“그런 말씀 마세요, 장 감독님. 전 아직 신인인데 내세울 연기력이 어디 있겠어요. 감독님께서 기회 되면 많이 가르쳐 주세요.”“그래요, 우선 이번 작품부터 봅시다.”장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장 감독님, 저희 이번 작품에는 멍청하고 귀여운 캐릭터 없지 않나요?”문득 옆에 있던 이진희가 끼어들었다.이 말을 들은 임지아는 고개를 기울여 이진희를 바라보았다.“지아 씨는 아직 모르겠네. 장 감독님 새 작품
첫 상영이 끝나자 누구부터 시작한 것인지 모를 박수갈채가 상영관을 울렸다.많은 사람들이 몰두해서 영화를 본 후 눈물을 쏟아내며 슬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진 감독님, 한마디 하시죠.”“한 마디 해주세요!”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진 감독은 그 장면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영관 내의 대부분 사람을 감동하게 했니 성공이 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진 감독은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감정을 약간 추스른 그는 그제야 마이크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영화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제작진들의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반 년에 봅시다.”진 감독은 그렇게 간단하게 몇 마디만 얘기한 후 무대를 내려갔다.“진 감독, 축하해. 딱 보니까 그림이 나오네. 이번 해 백상 대상은 진 감독이 받겠네.”장 감독이 진 감독에게로 걸어오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과찬이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이잖아.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지.”진 감독은 겸손해하면서 얘기했다.“겸손은, 내가 진 감독을 모를까 봐? 다른 건 아니고, 내 새로운 영화가 제작 준비 중이야. 하지만 배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진 감독한테서 사람을 한 명 빌릴까 해.”“사람을 빌린다고? 누구를?”진 감독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이 영화의 서브 남자 주인공 말이야.”장 감독이 얘기했다.“서브 남자 주인공? 그건 어려워. 여자 주인공을 빌리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수는 있는데. 하지만 이 영화의 서브 남자 주인공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함부로 모셔 올 수 없어. 나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저분을 모셔 온 거니까.”진 감독은 난감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래? 정말 아쉽네. 저렇게 좋은 연기 실력에,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있는데. 정말 장은우 역할에 딱이란 말이야.”장철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리고 이 일은 물 건너갔다고 생
“멍해서 뭐 해요. 얼른 승낙해요.”임지아는 최서준보다 더욱 조급해했다.“흥미 없어요.”최서준이 내뱉은 몇 글자에 상영관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뭐라고? 장철수가 직접 섭외하러 왔는데, 그를 거절했다니.이럴 수가. 이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가?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다니.장철수의 영화는 무조건 흥한다는 걸 모를 사람이 없었다.“이유 좀 물어봐도 될까요?”장철수도 깜짝 놀랐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의 무게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최서준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할 줄은 몰랐다.“왜냐면 저 사람이랑 저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최서준은 각각 임지석과 이진희를 가리켰다.이진희는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최서준이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당황해했다.장철수가 누군데, 과연 최서준의 말 한마디를 들어줄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거 아니야?그냥 일할 때 임지아를 몇 번 뭐라고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이진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만약 저 사람들을 시야에서 치우면 내 영화에 참여해 줄 건가요?”장철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그 말에 이진희는 귀를 의심했다.이게 장철수가 맞나?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언론에 흔들리지 않던 장철수가 맞나?최서준 앞에서 잘 보이려고 애를 쓰다니.최서준의 연기력 때문에?이진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장철수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감독님, 에일리언은 아주 중요한 영화예요. 애들 소꿉놀이가 아니라고요. 저는 여자 주인공으로서 장은우 배역의 캐스팅에 발언권이 있어요.”이진희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겨우 용기를 내서 얘기했다.“지금부터 진희 씨는 에일리언의 여자 주인공이 아니야. 진희 씨는 해고됐어.”장철수는 이진희와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장철수 씨, 아무리 당신이 국내 탑 급 감독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면 안 되죠.”이진희는 화가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