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장학수는 너무도 경악스러웠다. 그가 알고 있는 성연신은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특히 영웅놀이에 대해서는 늘 콧방귀를 뀌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여자분을 위해 나선 것도 모자라서 본인이 돈이 많고 젊은 데다가 잘생긴 것까지 인정한 셈이었다.‘영웅놀이를 위해 부끄러운 것도 잊은 건가? 아니지! 저 여자가 설마 심지안인가?’장학수는 성연신과 심지안을 번갈아 보다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심지안과 주원재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잘빠진 몸매에 이목구비까지 훤칠했으며 싸늘하고 도도한 눈빛에는 큰 감정의 변화도 없이 주원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몸을 흠칫 떨던 주원재는 건들거리던 태도를 거둔 채 아버지를 만났을 때보다 더 깍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연… 연신 도련님,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주원재의 말에 심지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저 사람 알아요?”주원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흥신 그룹 대표 주혁재가 건물에서 걸어 나와 주원재를 확 밀치더니 환한 미소로 성연신을 반겼고 성연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한 뒤, 시선은 여전히 주원재에게 꽂혀 있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그의 여자에게 작업을 걸다니.“장 변호사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장학수를 발견한 주혁재가 반가운 듯 물었고 장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오늘 시간이 좀 남아서 사건에 대해 의논하러 왔습니다.”“아, 그럼 제가 도움이 되진 못하겠네요. 회사 법무팀 직원을 불러드릴게요.”주혁재는 그제야 요즘 회사에 골치 아픈 일이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그는 변호사 여러 명을 찾아봤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해서 큰돈을 들여 장학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주혁재의 말에 그의 곁에 있던 여비서가 장학수를 데리고 들어갔고 주혁재는 곁에 있던 성연신을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성 대표님, 저희도 들어가시죠?”성연신은 느긋하게 주원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고 이를 발견한 주혁재가 주원재를
심지안이 두 눈을 깜빡이며 궁금증이 가득 담겨있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했다.“나한테 음식을 준비하라고 한 건 내가 그 사람 집 도우미이기 때문이에요.”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지만 부부 사이 애정은 없고 해야 할 가사노동만 남아있으니 도우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서인수는 어안이 벙벙했다.“도우미라고요?”“네. 왜요? 안 믿겨요?”부자들은 도우미를 뽑을 때 그 조건이 꽤 높다는 걸 서인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지안은 그 기준을 훌쩍 넘겨버릴 정도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그녀는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흥신 그룹 회장으로 하여금 직접 마중 나오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범상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훤칠한 키, 준수한 얼굴, 모두를 압도하는 분위기, 그리고 훌륭한 인품까지 갖춘 인물이다.아쉽지만... 저 선남선녀 커플은 이대로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왜 주원재 씨한테 번호를 주지 않은 거예요? 그분과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퇴근 후 도우미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이재성은 팀 내 나이가 가장 많은 직원이었는데 회사에 들어온 지 5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부팀장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연히 팀장으로 승진할 거라 생각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심지안에게 밀려 물러나게 된 것이다.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투덜거리며 꼬투리를 잡기가 일쑤였다.심지안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난 주원재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주원재 씨의 아버지는 흥신 그룹 회장님이에요. 그 집안에 시집만 간다면 한평생 일할 필요도 없이 편히 호의호식할 수 있잖아요. 이거야말로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요?”서인수가 약간 못마땅한 듯 말했다.“모든 여자들이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건 아니에요.”“쳇. 명문가에 시집갈 게 아니라면 부용 그룹엔 왜 다니는 거예요.”대기업엔 조건 좋은 남성 자원이 풍부하니 출근을 한다는 핑계로 입사해 남편감을 찾는 선례가 적지 않음을 누구든 알고 있다.“그래서 이재성
심지안이 반신반의하며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잠시만요. 전 아직 부르지 않았는데요.”“그러니까요. 제가 마침 잘 온 거죠.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게요.”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이 놀라움에 살짝 벌어졌다.“절 바래다주려고 일부러 오신 거예요?”“네.”심지안의 얼굴에서 점점 짙어져 가는 의심을 감지한 진현수가 잠시 멈칫하고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이 부근에서 진찬우와 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진찬우가 인스타를 보던 중 지안 씨도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발견했고요.”“그랬군요...”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밤이 깊어진지라 차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아 가는 길에 모셔다드리려고 왔어요.”“저까지 데려다주면 열두 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도착할 거예요.”“괜찮아요.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늦게 잠들거든요.”이렇게까지 말하니 심지안도 더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중정원.성연신이 원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원이는 별장을 나서자마자 땅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며 귀여운 반항을 하고 있었다.오늘 밤 이미 다섯 바퀴를 돌았다. 더 이상 산책하다간 녹초가 되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성연신은 그런 원이의 상태를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더더욱 다그쳤다.“매일 그렇게 많이 먹더니 3킬로나 쪘잖아. 운동해서 살 빼야지.”오늘은 심지안이 원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미 밤이 깊어졌는데도 심지안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무슨 회식을 다섯 시간이 넘게 한단 말인가?보광 그룹 이사 회의도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 않는다.부용 그룹은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데에만 능하다.원이는 헐떡거리기만 할 뿐 고단함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원통했다.‘너희 두 발 달린 짐승들의 다툼에 왜 날 끌어들이는 거야!’성연신이 원이와 함께 열 바퀴를 돌았을 때, 드디어 한 줄기의 자동차 불빛이 비쳐왔다.차가 문 앞에 멈춰 선 뒤 심지안이 안에서 내렸다.성연신의 차가운 얼굴에 부드러움이 피
성연신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한테 데리러 오라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해요?”“내가 말한다고 데리러 올 거예요?”성연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아니’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심지안이 택시를 잡지 못해 다른 남자의 차에 앉아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데리러 나갔을 것이다.이 어리석은 여자가 누구한테 팔려 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그가 침묵하는 모습에서 답을 찾은 심지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성연신은 이마를 찌푸리고 원이를 묶은 줄을 그녀에게 쥐여주었다.“뭐 하는 거예요?”“오늘 아직 원이를 산책시키지 않았어요.”“아직까지도 안 했다고요?”“그러게 왜 일찍 돌아오지 않았어요.”심지안은 깊게 심호흡하며 그와 싸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짓누르고는 줄을 잡고 산책로로 향했다.원이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힘없이 짖어댔다.멍멍멍. 싫어요. 이미 열 바퀴나 돌았단 말이에요!...심지안은 평소 산책하던 곳에 원이를 데리고 왔지만 원이는 푹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많이 지친 듯 힘겹게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원이야, 너 어디 아파?”“멍멍멍!”그게 아니라 단순히 힘든 거라고요.원이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심지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100미터 이내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원이를 묶고 있는 줄을 놓아주었다.“너 혼자 마음껏 놀아. 그러고 나서 집에 가자.”원이는 전혀 예전처럼 신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지안의 발 옆에서 몸을 뒤집으며 애교만 부릴 뿐이었다.평소 같지 않은 원이의 모습에 심지안은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그녀가 허리를 굽히고 앉아 원이의 상태를 살펴보려 할 때, 돌연 풀숲에서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원이를 덮치러 달려왔다.심지안은 화들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처음엔 전에 보았던 그 골든 리트리버인 줄로 알았으나 원이가 으르릉
중정원은 도심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여 있다. 단독 주택단지는 워낙 조용해 특히 밤이 되면 사람의 모습이라곤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때문에 눈앞 중년 남자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려 한다면 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할 것이다.심지안의 손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뒤로 물러서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다시 말하면 어쩔 건데요? 난 틀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강아지를 제대로 지켜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규정도 어겼어요. 금관성에선 셰퍼드를 키우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잖아요. 저한텐 당신을 고발할 권리가 있어요.”남자는 고발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겁을 먹고 입을 꾹 다문 채 강아지를 데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그제야 심지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내 성연신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에 와달라고 말했다.“끈을 묶지 않았어요?”“묶었어요. 하지만 숲에 들어가서는 잠시 놓았었어요.”“바보예요?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반드시 끈을 묶어야 한다는 것도 몰라요?”“알아요. 전 그저 사람이 없으니까 몇 분 놓아준 것뿐이에요.”“고작 몇 분일지라도 놓으면 안 돼요.”“하지만 그땐 사람이 없었다고요. 갑자기 셰퍼드가 나타날 거라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심지안은 억울함과 답답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원이는 성연신의 강아지지만 그녀에게도 원이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원이의 상처를 보니 그녀도 몹시 괴로웠다.성연신의 눈동자가 한층 더 어두워졌다.“지금 무슨 낯으로 말대답을 하는 거예요?”“됐어요. 이렇게 싸울 시간 없어요.”심지안이 입술을 깨물며 힘없이 말했다.“일단 원이의 상처부터 살펴요.”원이는 보기엔 걸음걸이가 조금 삐걱대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배를 까뒤집고 누워 애교를 부리기까지 했다.성연신은 원이의 털을 파헤쳐 셰퍼드에게 물린 상처를 살펴보았다.단 한 곳이었지만 상처는 꽤 깊었다. 아직 피도 멎지 않아 끊임없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심지안은 또다시 깊은 자책감
심지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머리에 처음 든 생각은 무언가 오해가 생겼을 거라는 것이었다.“전 베끼지 않았어요.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난 잘못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흥신에서도 잘못 볼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 그쪽에서 직접 나한테 전화해 말한 거예요.”“그럴 리가 없어요. 전 베끼지 않았어요. 최종 버전은 그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수정한 거예요. 저한텐 베낄 기회조차 없었어요.”“인터넷의 문건과 흥신에 보낸 문건 내용은 50퍼센트 이상 일치해요. 이래도 변명할 게 있어요?”“보낸...”문득 무언가 떠오른 심지안은 우유가 묻은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한 번 훑어본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이건 제가 수정한 게 아니에요.”상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심지안 씨가 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 누명을 씌우기라도 했단 말인가요?”“정말 제가 쓴 게 아니에요. 어젯밤 팀원들과 회식하러 나가기 전 이미 거의 수정을 마쳤었어요. 이재성 씨가 야근하겠다고 하길래 마무리 작업을 맡겼고요.”서인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증언할 수 있어요! 지안 언니는 어젯밤 저희들과 함께 있었어요.”상사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재성 씨는요?”이재성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저 맹세할 수 있어요.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전 어젯밤 분명 심지안 씨가 지시한 대로 수정한 뒤 와이프를 데리러 갔었어요.”서인수가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하지만 최종 수정을 할 기회는 오직 이재성 씨 한 명에게만 있었잖아요.”“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들이 밖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동안 전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했다고요. 그런데 이제 와 제 탓이라고요? 거기다 최종 수정본은 심지안 씨의 메일로 발송한 거잖아요. 휴. 제가 이렇게 억울함을 많이 당한답니다.”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즉시 부인했다.“전 메일을 보내지 않았어요. 오늘 아침 출근해서 보내려고 했단 말이에요.”이재성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보냈는지
심지안이 택시에 탄 뒤 운전 기사에게 흥신 그룹 위치를 알려주었다.운전기사가 말했다.“아, 흥신이요. 저 그쪽 길에 대해 잘 알아요.”“빨리 부탁드립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요.”“알겠어요. 저 운전 잘해요. 절대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게요!”그 말과 함께 속도를 끌어올리며 코너링을 하던 순간, 돌연 차 한 대가 그들 택시 앞에 나타났다.순간 깜짝 놀란 택시 기사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귀를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두 차가 맞부딪혔다.다행히 두 차 운전기사 모두 반응속도가 빨랐기에 심지안은 몸이 약간 앞으로 휘청거렸을 뿐 유리에 부딪히지는 않았다.운전 잘하신다면서요...“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코너를 돌면서 그렇게 속도를 낸다고요? 심장도 안 좋은 우리 어르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임수현이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 소리쳤다.택시 기사는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있었기에 얼른 사과하고 보험 회사에 연락해 처리하려고 했다.하지만 자세히 보니 상대 차량은 가격이 몇십억 원에 달하는 링컨이었다.택시 기사의 얼굴에 순간 어둠이 내려앉았다.‘망했어.’차에서 내린 심지안은 상대 차 안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할아버지.”성수광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환히 웃음꽃을 피웠다.“지안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저 서류를 가져다주는 길이었는데...”그녀가 택시 기사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기사님께 빨리 가달라고 말했었거든요. 할아버지, 몸은 괜찮으세요?”“괜찮아. 임수현, 너 더 이상 택시 기사님을 난처하게 하지 마. 이런 접촉 사고는 흔한 일이잖아.”성수광이 심지안을 향해 손을 저으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얼른 들어와 앉아. 여긴 택시를 잡기가 어려우니까 할아버지가 데려다줄게.”시간이 급박했던지라 심지안은 거절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지안아, 어디로 가?”“할아버지, 흥신이에요.
“네.”비서가 심지안을 바라보았다.“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심지안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여비서는 이어 프로젝트 책임자를 부르고는 그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그 순간 책임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얼이 빠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음을 표했다.여비서와의 대화가 끝난 뒤 그가 심지안을 향해 걸어와 조금 전과는 180도 바뀐 태도로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죠. 우리 다시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 볼까요?”심지안은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 굳어있다가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너무 좋죠!”책임자는 10분 동안 심지안이 가져온 수정본을 살펴보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아주 좋아요. 이거로 정하죠.”“이... 이렇게 빨리 결정한다고요?”“전 심지안 씨의 능력을 믿어요.”심지안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절 믿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잠시만요. 오늘 오전 제가 지안 씨의 상사분께 지안 씨가 베껴서 보냈다고 얘기했어요. 저 때문에 그분이 지안 씨를 오해했을 것 같네요.”“이 프로젝트는 제가 맡은 거니까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도 제가 책임져야죠.”그녀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제가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게 만들었어요.”그녀와 동료들은 그저 일로 맺어진 인연일 뿐, 항상 회사의 이익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아야 한다.그래도 다행히 서인수는 그녀를 믿고 있다.책임자가 여비서가 했던 당부를 떠올리고는 말했다.“이렇게 해요. 이 일엔 제 책임도 있으니까 제가 지안 씨와 함께 부용에 가서 설명할게요.”심지안은 깜짝 놀라 크고 맑은 눈을 깜박거렸다.“아니에요. 제가 말하면 돼요. 책임자분께선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하지만 상대는 끝까지 부용에 함께 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심지안은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