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공기 중에 응결된 것처럼 어둡고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귀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봉구안은 황제께 잡혀 비틀거렸던 몸을 바로잡았다.‘귀비를 정말 많이 아끼는구나. 귀비에게 오점 하나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구나’“신첩의 추측일 뿐입니다. 믿고 말고 조사하든 말든 폐하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소욱의 얇은 입술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이 여인 항상 겉으로는 공손하지. 진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말 짐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귀비의 병문안, 가보았는가?”“귀비는 황후의 약 때문에 이 심한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황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귀비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느냐?”“귀비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느냐? 남을 해치려다 자신을 해친 멍청이로 보이느냐?”“짐은 황후가 범인 같구나.”봉구안은 동공이 수축했다.하지만 바로 변명하지 않았다.소욱의 눈빛은 봉구안에게 고정시켰다.“조검 사건 후 짐이 경고했거늘… 모든 것을 거기서 마무리하라고… 무고한 귀비 더 이상 해치지 말라고…”“귀비가 낙마한 이유는 결론적이로 황후가 이번 마구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오.”“황후, 짐이 묻겠다. 황후 정말 아무런 계산이 없었는가?”봉구안은 담담하게 황제를 바라보았다.“없습니다.”봉구안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남자의 얼굴은 윤곽은 뚜렷했고 시선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갑자기 밖에서 누가 아뢰었다.“폐하, 귀비 마마께서 아파서 기절하셨습니다.”…영소전.황제는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귀비는 황제의 소매를 가볍게 움켜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폐하… 신첩 너무 아픕니다…”귀비는 왕천해가 죽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그러나 황제는 계속 영화궁에 남아 있었다.봉장미가 또 이간질할까 봐 두려워 황제를 모셔오라고 했다.소욱은 담담한 눈빛으로 귀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왕천해라는 사람을 아느냐?”귀비는 순진한 얼굴로 의아해
사람은 황제 앞으로 끌려왔다.황제는 한눈에 이 사람이 귀비 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물로 깨워라.”촥--찬물 한 바가지를 맞은 수로는 깨어났다.눈을 뜨자 존귀하고 위엄 있는 황제가 눈에 보였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폐하를 뵙겠사옵니다!”수로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만약 황제께서 귀비가 자신을 장신궁에 보내 감시하라고 시킨 걸 알면 큰일 난다.하지만 그가 이미 맞아 쓰러졌다는 것은 황제에게 들켰다는 뜻이다.수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소욱의 턱 선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얇은 입술은 가볍게 움직였다.“팔 하나를 부러뜨리거라.”“예!”진한길은 잽싸고 잔인하게 처리했다.처량한 비명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부러진 팔이 하나 더 생겼다.영소전.귀비가 취침하려 할 때 춘하가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마마, 폐하가 오셨습니다!”‘폐하가 이렇게 늦게 오신 건 틀림없이 마마가 걱정돼서 일 거다.’귀비는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귀비가 정리하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성가는 이미 내전에 도착했다.춘하는 눈치 있게 물러나갔다. 이 밤을 황제와 마마께 드렸다.귀비는 사랑이 가득 찬 눈빛으로 앞으로 다가갔다.“폐하, 신첩…”“짐이 귀비의 사람을 데려왔소.” 소욱은 눈빛이 차가웠고 말투도 예전 같지 않았다.귀비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신첩의 사람요?”이때 귀비는 외전에 있는 춘하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아!”귀비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도대체 무슨 일이…’소욱이 손을 흔들자 문이 닫혔다.귀비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몇 년간 짐은 귀비만을 총애하고 보호했소.”“그런데 애비 이번엔 너무 지나친 거 아니오?”황제가 자신을 '애비'라고 부르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순간 귀비는 한기가 발바닥에서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수로가 들켰나 보다.’지금 아무런 변명을 해도 황제의 노여움을 살 뿐이다.그래서 귀비는 바로 잘못을 인정했다.“폐하, 신첩이 잘
봉구안이 비밀 편지를 태웠다. 그녀의 두 눈에 비친 불꽃은 마치 지옥에서 타오르는 맹렬한 불길처럼 모든 죄악을 삼킬 것만 같았다.“귀비는 빈틈이 없이 일 처리를 하고 사람 관리도 잘하지. 조검부터 왕천해까지, 다들 자신이 죽을지언정 귀비를 배신하지 않았다.”“그래서 산적 사건에서도 귀비에 대한 심증만 있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지. 그래서 황제가 귀비를 믿는 것도 뭐라 할 수 없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귀비의 죄증을 하나씩 모으는 것이다.”“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번에는 궁녀 하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언젠가 증거들이 다 갖추어지면 귀비는 할 말이 없을 거다.”“그때면 폐하도 더 이상 귀비를 지키지 못할 거다.”이렇게 하는 건 귀비를 직접 죽이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하지만 귀비를 쉽게 죽여 버리면 첫째는 마음속의 한을 풀 수 없고, 둘째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장미가 억울해 할 것이다.봉구안은 귀비가 가지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귀비의 죄를 알리려고 한다.황제가 총애하는 비빈이 죽으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죄 많은 여인이 죽으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할 것이다.…자녕궁.태후는 불붙은 향을 향로에 꽂았다.“황후를 다시 보게 됐어.”“열흘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사건을 해결하다니…”계 상궁이 의심했다.“태후 마마, 왕천해가 정말 진범일까요? 배후에서 주범이 있을 않을까요?”태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걸 누가 알아…”이때 영소전.춘하는 귀비께 약을 드리고 입을 열었다.“마마, 이번에 너무 아슬아슬했습니다. 황후가 수를 써서 우리를 끌어들이다니…”“왕천해가 영리하게 바로 궁녀 주아를 죽이고 사전에 당부한 대로 독을 복용해서 자결했으니 다행이지…”“그렇지 않고 그 두 사람이 황후의 손에서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귀비 마마를 토해 낸다면…”귀비는 몸도 아프고 마음도 근심으로 가득했다.불과 두 달 만에 조검과 왕
영소전.봉 부인은 난방에 앉아 있었다. 문과 창이 닫혀 있었고 향을 피우고 있었다. 봉 부인은 연기 때문에 눈을 뜨기 어려웠고 숨도 막혔다.귀비가 갑자기 물어볼 일이 있다고 봉 부인을 궁으로 불러들였다.봉 부인을 난방에 불러들이고는 향이 정신을 맑게 하고 건강에 좋다며 궁안 곳곳에 피웠다.하지만 봉 부인이 맡기에 이 향들은 품질이 나쁜 것들이었다.한 시진이 지나자 궁 안에서 연기로 가득했다.봉 부인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봉 부인이 창문을 열려고 시도했는데 창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밖에서 잠근 것 같았다.봉 부인은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밀었다.문도 움직이지 않았다.봉 부인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설마 여기에 갇힌 것은 아니겠지.’봉 부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귀비가 무엇을 하려는 걸까?’“콜록…”향의 연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마치 화재 현장의 연기처럼 숨을 쉴 수 없게 했다.봉 부인은 얼굴이 파래졌다.봉 부인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조이는 듯 목은 따가워 왔고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현기증이 났다.탁탁!봉 부인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귀부인의 예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누구 없소? 문… 문 좀 열어 주시오…”난방에서 멀지 않은 내전.춘하는 귀비가 화장하는 것을 시중들고 있었다.환관 한 명이 달려들어와 아뢰었다.“마마, 봉 부인께서 문을 두드리며 나오시려고 합니다. 더 이상 참을 못할 것 같습니다.”난방에 많은 향로가 타고 있었다. 가장 저질의 향이었다. 문과 창이 닫혀 있어 건장한 남자도 이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귀비는 못 들은 듯 차가운 눈빛으로 동경 속의 자신을 모습을 쳐다보았다.귀비 얼굴에 생긴 흉터는 매우 추했다.몇 달 동안 약을 쓰면 완치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은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딱지가 떨어져도 두꺼운 분으로 흉터를 가릴 수밖에 없다.이 모든 것은 봉장미 때문이다.그 빌어먹을 마구 경기 때문이
영소전의 호위들이 문을 막았다.“황후 마마 용서하여 주시오. 귀비 마마께서 귀빈을 접대하라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호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잔잔한 눈으로 스산한 기운을 풍기며 호위의 말을 끊었다.“죽기 싫으면 꺼지거라!”이때 안에서 여유롭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황후 마마 오셨습니까?”“신첩이 많이 다쳐서 친히 마중 나가지 못한 점을 용서하여 주시오.”“눈치 없는 것들! 감히 황후 마마를 막는가?”“이따 본궁이 벌을 내려주마.”그러자 호위들이 물러서서 봉구안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황후 마마, 들어가시지요. “…내전.봉구안은 어머니 유씨를 먼저 보았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귀비를 보았다. 귀비의 두 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독사처럼 차가웠다.“황후 마마, 신첩 지금 봉 부인께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양육하는지에 대해 여쭙고 있습니다.”“때마침 잘 오셨어요.”봉 부인은 봉구안에게 궁절을 올렸다.“황후 마마를 뵙겠습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분부했다.“연상, 부인을 먼저 영화궁으로 모시거라.”“예! 마마!”혼자 남은 봉구안이 걱정된 봉 부인은 떠나면서 여러 번이나 고개 돌려 봤다.봉 부인이 떠나자 귀비는 피식 웃으며 도발적인 어조로 말했다.“황후 마마 왜 이렇게 긴장하십니까? 본궁이 봉 부인께 무엇이라도 할까 두려우신 겁니까?”“여기는 황궁입니다. 신첩이 감히…”“하물며 신첩과 봉 부인은 말이 잘 통해서…”봉구안은 찻잔의 조각들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귀비께 향해 갔다.처음에는 귀비도 아무 일 없이 덤덤하게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그러나 황후가 주저함 없이 곧장 귀비의 발끝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그 매서운 기세…귀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하인 춘하가 경각심을 일으켰다. “황후 마마, 마마…”봉구안은 허리를 굽혀 귀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폐하께서 본궁께 귀비 병문안 오지 않은 것을 탓하여 오늘 왔소.”이
태황태후는 황제의 조모이다. 수년간 예불 수련에 전념하면서 계속 궁 밖 옥양산에 머물고 있었다. 황궁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태황태후는 황후의 혼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귀비는 입궁 한 4년 동안 태황태후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태황태후는 불법을 닦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달리 각박하여 태후조차도 태황태후를 두려워한다.만약 태황태후가 황후의 순결 잃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진노 끝에 폐하께 휴처하게 할 것이다.춘하는 마마가 태황태후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마마, 괜찮을까요?”“태황태후는 마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전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마를 벌한 적도 있지요. 태황태후가 궁에 없으셔서 마마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태황태후를 청했다가 어떻게 보내시려고요?”귀비는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방금 봉장미의 건방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천한 것이 자신 앞에까지 와서 건방 떨었다.“태황태후가 환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태황태후보다 눈앞의 황후가 더 증오스럽다.”“똥파리처럼 하루 종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니…”“황후를 죽여버릴 거다.”춘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마마, 만약 이 일이 발각되여 황후가 순결 잃은 사실을 말해 버리면 마마도 연루되지 않겠습니까?”귀비는 차갑게 웃었다.“산적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다. 봉장미가 지금 와서 산적에게 침범당했다고 주장해도 증거가 없다. 본궁에 연루되지 않을 거다.”“그때가 되면 본궁은 황후가 본궁을 모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전에 산적과 조검을 심사할 때도 본궁은 연루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 죽었으니 황후 수중에는 더더욱 증거가 없을 것이다.”춘하도 상황 파악을 하고 맞장구를 쳤다.“그렇게 되면 오히려 황후가 자신의 퇴로를 끊어 버리는 게 되는군요.”“산적들을 심문할 때, 황후는 자신이 모욕당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한다는 것은 첫째는 임금을 속인 죄를 면할 수 없고, 둘째는 제대로 된 증거
영소전, 해가 막 지자 귀비는 상처가 아프기 시작했다.귀비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 숨 쉴 때마다 상처를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아프다.잠시 후 귀비는 아파서 의식을 잃었다.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춘하를 붙잡고 호통쳤다.“약! 빨리 약을 써서 진통시켜 주거라! 본궁이 아파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게냐?”춘하는 급히 귀비를 달랬다. “마마, 태의가 주혼산이 배출되어야만 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마마.”귀비의 이런 모습을 보는 춘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귀비는 매번 춘하의 팔에 상처 날 정도로 그녀를 꽉 잡았다.이 통증은 참기 어려웠다.반 시진 후, 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 없이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춘하는 조심스럽게 귀비께 약을 먹였다.귀비는 손을 들어 약을 떨쳐버렸다.“쓸모없는 놈들… 태의원 놈들 일부러 지체해서…”“본궁, 본궁이 이렇게 오래 아파하는 동안 아직도 아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주혼산… 빌어먹을 주혼산! 본궁이 이렇게 많은 약을 마셨는데 왜 아직도 다 배출하지 못했어?”춘하가 차근차근 달랬다.“마마, 약만 많이 드시면 주혼산은 곧 다 배출될 겁니다. 그러면 진통제를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 태의께서 진맥을 하셨는데 마마 체내의 주혼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만하거라! 이런 날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게냐?” 귀비는 눈빛이 음산했다.이 아픔을 가빈과 황후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천한 년들, 지금 틀림없이 득의양양해 하고 있을 거야.’귀비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옥양산 쪽 상황은 어찌 되었는가? 태황태후께서 소식을 받았는가?”춘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받았습니다, 마마.”“태황태후 마마께서 이미 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귀비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봉장미 너 이제 곧 황궁에서 쫓겨날 거다.’‘아니, 태황태후가 황후가 순결을 잃었다는 추악한 사실이 외부로 전해지는 것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봉
장신궁.해시가 3각이나 지났지만, 안에는 소욱 한 사람뿐이었다.소욱이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오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소욱의 찌푸린 미간이 풀렸다.“이번에 또 미행당했는가?” 소욱이 일부러 물었다.지난번에 그녀가 2각 늦었던 것은 영소전의 수로가 미행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것을 처리하느라 늦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오늘 밤은?봉구안은 은침 한 벌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봉구안은 대충 설명했다.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옷을 벗으시오.”소욱은 차가운 눈매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등지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소욱은 여전히 그 모습이었다.“왜 옷을 벗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소욱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요즘 점점 나태해지는군…”“짐은 자네를 3각이나 기다렸다.”태의들은 아무도 감히 황제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늦으면 소식이라도 전해야지. 짐은 저녁에 다른 일이 없는 것 같으냐?’봉구안 담담하게 소욱을 바라보고 있었다.“시간을 어긴 것은 제 잘못입니다.”“그래.” 소욱은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그리고 허리띠를 풀었다.침을 놓는 과정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반 시진 정도였다.원래 침을 맞은 후에 약훈도 해야 했다.하지만 봉구안이 소욱에게 말했다.“이 독은 이미 잡혔습니다. 앞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침을 맞으시면 됩니다. 매일 밤 여기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소욱이 옷깃을 정리하는 동작은 잠시 멈칫했다. 눈 밑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봉구안은 은침을 정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촛불이 세차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갑자기 남자의 펜치 같은 큰 손이 그녀의 팔을 휘감았다.쾅!손목에서 차가움 느낌이 들었다.확인해 보니 쇠고랑이었다.봉구안은 어떻게 자신의 손목에 찼는지 알 수 없었다.쇠고랑은 쇠사슬과 연결되어 있었고, 쇠사슬의 한쪽 끝은 남자의 다른 한 손에
소욱은 알고 있었다.지금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번져버린 것은 모두 황후가 낮에 태황태후를 찾은 탓이었다.그는 그녀가 할마마마께 도움을 청하려는 줄로만 알았다.이제야 깨달았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온 세상이 그를 규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하지만 도대체 언제부터였단 말인가?후궁들조차 그녀를 이렇게까지 감싸게 된 것이!정말이지,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다.소욱은 내전으로 들어섰다.그곳에 태연히 앉아 있는 봉구안을 거칠게 끌어올리며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광경이느냐?”봉구안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폐하께서 이대로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면, 장차 폐하께 제 목숨을 청원할 이들은 백성과 장병들이 될 것이옵니다.”소욱은 자신을 비웃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대체 무슨 청원이란 말인가? 내가 너에게 해를 끼쳤다고 말하려는 것이냐?”“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자일 것이다!”“분명히 떠나겠다고 한 건 너였고, 나를 저버린 것도 너였다!”“나는 너에게 천 번 만 번 잘해 주었는데, 너는 마음이 돌처럼 차가워, 죽은 사람 하나만도 못하지 않았느냐!”봉구안은 여전히 고요한 얼굴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그 고요함이 그를 더욱 비참하고 화나게 만들었다.마치 자신이 혼자만 난리를 치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침묵은 소욱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그는 이를 악물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나와 끝까지 싸우겠다면, 내가 너에게 이 남제의 태양이 누구를 위해 떠오르는지 보여주도록 하마!”…그날 밤.후궁들은 영화궁 밖에서 밤새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다.다음 날이 되자 전조의 대신들 몇몇이 차례로 상소를 올렸다.“폐하, 후궁의 일은 원래 신들이 간섭할 바가 아니지만, 황후께서는 모범적인 군후이십니다.”“전쟁 중에는 기도를 올리셨고, 그 뒤로는 군량미를 직접 보내셨사옵니다.”“이토록 어진 황후를 어찌 그렇게
영화궁 밖.수많은 후궁들이 줄지어 꿇어앉아 있었다.그들 모두 황후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황제께서 자신들에게 무심하신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으나, 황후마마처럼 훌륭하신 분께까지 그러하시다니!황후마마는 군량미를 보내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으셨건만, 결과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영비가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황후께 냉담해지셨고, 심지어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면벽 자숙을 명하셨다.이런 일을 겪고도 황후마마께서 심신이 지쳐 스스로 하당을 청하시고 궁을 떠나시길 구하신 것이 어찌 이상하단 말인가?폐하께서 억지로 황후마마를 붙들어 두시며 그 마음을 짓밟으시는 것은 참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었다.후궁들은 마음을 합해 한목소리로 탄원하였고, 이렇게까지 하나로 뭉친 적은 없었다.그들 대부분은 명문가 출신으로, 이미 은밀히 집안에 소식을 전하여 전조에도 힘을 보태도록 요청하였다.소욱은 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황후는 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그가 황후를 붙잡아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처음에는 후궁들의 행태를 무시하려 했으나, 그녀들이 외치는 소리는 지나치게 크고 비통한 기색이 역력했다.멀리서 들으면 황제가 붕어한 줄 알 정도였다!결국 소욱은 무겁게 명을 내렸다.“모두 물러가라!”그러나, 어명을 받은 호위들은 후궁들에게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그녀들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손을 대면 곧바로 ‘무례하다’고 소리쳤다.심지어 몇몇은 머리 장식인 발채를 목에 들이대며 죽음으로 저항하였다.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천기를 울리며 돌아와 아뢰었다.“폐하, 신하들이 무능하여 대처할 수 없사옵니다.”자녕궁.장공주 역시 이 소식을 들었다.황후가 궁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빨리 옷을 갈아입혀라! 황제를 만나러 가야겠다!”장공주는 오래전부터 황후는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며
태황태후는 눈앞의 사람을 보며 깜짝 놀라 물었다.“황후, 네가 방금 뭐라 했느냐!?”봉구안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신첩, 스스로 폐위하길 청하옵니다.”전각 안에 있던 궁인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황후마마께서 무슨 망령된 짓을 하시는 것인지?“건방진 소리 마라! 이런 말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구나! 황상은, 황상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봉구안은 숨김 없이 말했다.“황제 폐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신첩이 마마의 의지를 구하러 온 것이옵니다.”태황태후는 사실 이 손자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이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냐?” 태황태후가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사옵니다.”“좋다. 내가…”태황태후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일로 할마마마께서 수고하실 필요 없습니다.”태황태후가 고개를 들어보니, 황제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전각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그 눈빛은 심지어 그녀를 향해서도 약간의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황상, 네가…”소욱은 봉구안의 허리를 감싸며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황후가 짐과 다투다가 그런 헛소리를 한 것뿐입니다. 할마마마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태황태후는 속으로 모든 것을 간파했으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소욱이 봉구안을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만수궁을 나선 후.소욱은 봉구안을 나무라지 않았다.다만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었다.영화궁에 이르러 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할마마마께서는 이미 폐후할 마음을 품으셨었지. 오늘, 그 바램을 이룰 뻔 했구나?”봉구안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소욱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그러니 다시는 이런 의미 없는 일을 하지 마라.”봉구안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띠었다.“제 마음은 변함이 없사옵니다.”소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는 그녀가 웃는 것을 좋아했으나, 이 순간
소욱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는 바닥에 흩어진 깨진 도자기 조각을 한 번 보고 나서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봉구안 위로 드리워졌다.“짐은 황제다.”“황제의 권위 아래 자유란 존재하지 않아.”“네가 분노하든, 불복하든, 이것은 네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내가 만약 너였다면, 이런 어리석은 방식으로 황제의 인내심을 시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안에는 반박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남방에서의 온화한 양보는 단지 황제의 신분을 잠시 내려놓은 결과로 그녀가 품게 된 착각일 뿐이었다.그의 본성은 여전히 강압적이고 폭군다운 군주였다.봉구안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선택할 권리를 주실 거라고 착각했나 봅니다.”그가 분노했던 것은 그녀가 스스로 계약 기간을 바꿨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의 떠남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가지는 안심하거라.”“이 일은 너와 나 사이의 일이니…”“짐은 봉가에게든, 그 외 누구의 목숨이든 너를 협박하는 데 쓰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짐은 네가 다른 이들을 위해 짐에게 가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봉구안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연상은 황제가 내전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요 며칠 황제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살기를 풍겼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그와 동시에, 전조 또한 평온하지 않았다.황제의 ‘옛 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진왕의 양식 탈취 사건이 황제의 친심으로 다뤄졌다.이 사건에 연루된 관리들은 모두 오마분시의 극형을 받았다.심지어 진왕조차 사형을 선고받았다.태황태후는 이를 알고 진왕을 위해 황제에게 탄원했다.하지만 소욱은 냉담하게 대답했다.“모반을 꾀한 자에게 짐은 살아갈 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그리하면 마치 호랑이를 풀어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천옥 안.
봉구안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연상이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고,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마마, 몸은 어떠세요?”봉구안은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호흡을 고르고 내력을 운행해 보았다.내력은 회복되었으나, 몸은 여전히 심히 쇠약했다.그녀의 입술은 창백했고,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아련했다.연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마, 부인께서 궁에 오셨습니다.”봉 부인은 봉구안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한순간에 나이가 부쩍 들어 보였다.“너의 신분을 폐하께서 이미 다 아셨다.”“그분께서 너의 아버지를 궁으로 부르셨고, 네 사정을 모두 말씀하셨어.”“얘야, 어찌 이리 어리석게 굴었느냐?”“이미 폐하께 시집갔거늘, 어찌 다시 떠날 생각을 한단 말이더냐?”“폐하께서 너와 봉가와 맹가의 기군지죄를 묻지 않고도 1 년 약조를 받아들여 주셨거늘, 네 생각엔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누가 폐하를 탓하겠느냐?”봉구안은 뜻밖이었다.소욱이 모든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으며, 표정에는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봉 부인의 말이 그녀의 마음에 닿지 않았음이 분명했다.봉 부인은 그녀를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다.만약 이 자리에 봉장미가 있었다면, 분명 어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봉 부인은 그녀의 목에 새겨진 흔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폐하께서 너를 아끼는 마음은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바라고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란다.”“넌 대체 무엇을 그리 고집하는 것이냐?”“여인이란 결국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게 본분이란다.”“네가 그토록 오래 전장을 누볐다지만, 설마 평생 전장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냐?”“나와 네 아버지는 그저 네가 평안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란다.”“제발 폐하께 그만 역정을 내거라. 폐하의 옆에 계속 있어주면 안 되겠느냐?”봉구안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다.“그분께서 어머니를 보내 이 말씀을 하라
구슬발이 쿵하고 열리며, 봉구안은 이윽고 침상 안으로 들여지려는 순간, 장막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러나 힘이 부족해 끝내 장막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소욱의 걸음이 계속되자, 장막이 완전히 닫혔다.그녀는 닫힌 장막을 보며 눈에 서린 기세가 한층 강렬해졌다.소욱은 그녀를 안은 채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그는 세심하게 그녀의 머리를 묶은 나무 비녀와 비단 끈을 풀어냈다.검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흩어지자,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칼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며 그녀의 뒷머리를 받쳤다.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오늘은 원래 너와 잘 이야기하려 했다.”“비록 네가 약속을 지켜 1년을 채우고 떠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너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너무나도 독단적이구나.”“그래서 나는 내 방식으로 너를 억지로라도 약속을 지키게 할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은 자신의 입술을 힘껏 깨물며 정신을 붙들어 매려 했다.소욱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채고는 다시 한번 경고했다.“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계속 내공을 억지로 쓰려 한다면, 네가 더욱 쇠약해질 뿐이다.”그는 말하는 도중 손가락으로 그녀의 옷깃을 풀었다.옷깃이 풀어지며, 그녀의 피부 위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봉구안은 눈을 꼭 감으며 두 눈썹을 단단히 찌푸렸다.그녀의 귓가에는 차갑고 낮은 그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네가 한 번은 내게 실용적인 것을 배우라고 했지 않았느냐.”“배우긴 배웠다만, 과연 내가 잘 배웠는지는 모르겠구나.”그가 손에 힘을 더하자, 그녀의 미간은 더욱 깊게 주름이 졌다.소욱은 갑작스레 몸을 뒤집어 그녀를 침상 위로 내리누르며 그녀를 응시했다.그의 붉어진 눈동자 속에는 무시당한 억울함과 강렬한 소유욕이 담겨 있었다.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으며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넌 결국 나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단호했다.그녀는 믿고 있었다. 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할 리
연상이 내전을 들어섰을 때, 넘어져 있는 병풍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마마, 정말로 떠나실 건가요?”봉구안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그래. 진 씨 가문의 사건은 내 마음에 새길 것이다.”그 검은 옷은 진 대인마저 해쳤다.연상은 얼굴에 걱정을 띠며 물었다.“마마, 저는 폐하께서…”“폐하께서도 결국 납득할 것이다.” 봉구안의 눈빛은 깊은 어둠에 잠긴 듯했다.만약 필요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그날 밤, 소욱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그의 마음속은 불타오르는 듯했다.그는 1년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몰래 그것을 반년으로 바꿔놓았다!온 마음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천천히 다가가려 했건만, 그녀는 이미 떠날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다!세상에 어찌 그녀만큼 무정한 여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다음 날.소욱은 조정 일을 마친 후, 영화궁으로 향했다.호위들은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황후의 처소가 아닌 감옥과도 같았다.내전 안.그는 장자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얼굴에는 억제된 감정이 서려 있었다.봉구안을 보자, 그녀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어떤 비녀나 장식도 없이 나무 비녀 하나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그녀는 공손히 절을 올렸다. 신하의 예법이었다.소욱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어젯밤보다 훨씬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아침상은 들었느냐?”봉구안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예.”“짐은 이미 사람을 보내 그 검은 옷을 추적하게 했다. 머지않아 소식이 올 것이다.”말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그녀는 살짝 물러나 피했다.소욱의 목이 탁 막히는 듯했다. 그는 억지로 감정을 억눌렀다.“궁에서 이 오랜 시간동안 그대는 짐에게 아무런…”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단호히 대답했다.“없었사옵니다.”감정이란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 법.비록 그녀의 마음속에 망설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철석같은 마음을 가진
소욱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곧장 봉구안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궁에서 나가 그 검은 옷을 쫓겠다는 거지? 좋아, 허락하마.”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어떻게 조사하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라.”봉구안은 흔들림 없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히 말했다.“검은 옷을 쫓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폐하, 이번에 떠나면 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소욱의 가늘고 긴 눈이 살짝 감기더니, 약간의 분노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차분한 척하며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계약서에 분명 1년이라고 적지 않았느냐...”“폐하가 기억을 잘못하셨사옵니다. 6개월입니다.”봉구안은 손에 든 계약서를 그에게 건넸다.소욱은 즉시 계약서를 펼쳐 보았고, 냉정한 얼굴에는 놀람과 충격, 그리고 후회가 서렸다.계약서에는 정말 6개월이라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그는 분명히 기억했다. 처음 약속했던 것은 1년이었다.그렇다면 가능한 설명은 하나뿐이었다.그녀가 ‘1년’을 ‘6개월’로 고쳐 쓴 것이다…소욱은 눈을 떨구고 감정을 억누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차가운 물에 담긴 옥처럼 묵직하고 서늘했다.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은 어두워졌고 미세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억지 웃음이 떠올랐다.“황후, 이런 농담은 하지 마라.”“1년이면 1년이다. 네가 멋대로 고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봉구안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녀의 태도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저는 계약서를 믿사옵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소욱이 계약서를 바로 찢어버린 것이다.봉구안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욱은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고 제왕의 위엄을 드러내며 불가항력적인 어조로 말했다.“내가 말했듯이 1년이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줄일 수 없다!”봉구안은 바닥의 찢어진 종이를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잊으셨
장락궁 안.영비는 진왕과 그의 동조자들 간의 내밀한 서신과 증거를 소상히 황제 앞에 올렸다.“이 모든 증거는 아버지께서 찾아내신 것이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진왕의 속셈을 의심하시어, 겉으로는 그와 친분을 쌓는 척하며 이 명단을 입수하셨사옵니다.”영비가 제출한 증거들은 소욱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그는 서류를 검토한 뒤, 정색하며 말했다.“그대의 부친에게 큰 공이 있다.”영비의 눈에는 결연한 충성과 확신이 담겨 있었다.“충신은 제 부친의 본분이옵니다.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옵니다.”“폐하께서는 요 며칠 진왕 일로 매일 늦은 밤까지 고생하셨는데, 이제 조금이나마 쉴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사실 소욱이 오늘 장락궁에 온 이유는 영비가 손에 넣은 이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는 예전부터 전조를 관리하고, 영비는 온 가문을 동원하여 그를 도왔다.영비는 평범한 여인들과 달랐다. 겉보기엔 연약해 보였지만, 실은 단호하고 남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그는 그녀를 첩이 아닌 참모로 여겼고, ‘후궁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예외로 여겼다.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이제는 황후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떠나기 전, 소욱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이런 증거는 앞으로 그대 부친이 직접 올리도록 하라. 전조와 후궁이 서로 얽히지 않는 것이 낫다.”영비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으나, 곧 평온을 되찾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알겠사옵니다. 폐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그녀는 황제 앞에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때, 밖에서 진한길이 문을 두드렸다.“폐하, 소신이 아뢸 일이 있습니다!”…“감옥에서 실종되었다고? 아니면 탈옥한 것이냐?”소욱의 이마는 잔뜩 찌푸려졌고, 그의 눈빛은 어둡고 날카로웠다.진한길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아마도… 탈옥한 것 같사옵니다.”어쨌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소욱의 눈은 더욱 차가워졌다.“이 일은 당분간 황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