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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Author: 일설연우
태황태후는 황제의 조모이다. 수년간 예불 수련에 전념하면서 계속 궁 밖 옥양산에 머물고 있었다. 황궁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태황태후는 황후의 혼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귀비는 입궁 한 4년 동안 태황태후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태황태후는 불법을 닦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달리 각박하여 태후조차도 태황태후를 두려워한다.

만약 태황태후가 황후의 순결 잃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진노 끝에 폐하께 휴처하게 할 것이다.

춘하는 마마가 태황태후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마마, 괜찮을까요?”

“태황태후는 마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전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마를 벌한 적도 있지요. 태황태후가 궁에 없으셔서 마마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황태후를 청했다가 어떻게 보내시려고요?”

귀비는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방금 봉장미의 건방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천한 것이 자신 앞에까지 와서 건방 떨었다.

“태황태후가 환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태황태후보다 눈앞의 황후가 더 증오스럽다.”

“똥파리처럼 하루 종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니…”

“황후를 죽여버릴 거다.”

춘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마마, 만약 이 일이 발각되여 황후가 순결 잃은 사실을 말해 버리면 마마도 연루되지 않겠습니까?”

귀비는 차갑게 웃었다.

“산적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다. 봉장미가 지금 와서 산적에게 침범당했다고 주장해도 증거가 없다. 본궁에 연루되지 않을 거다.”

“그때가 되면 본궁은 황후가 본궁을 모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에 산적과 조검을 심사할 때도 본궁은 연루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 죽었으니 황후 수중에는 더더욱 증거가 없을 것이다.”

춘하도 상황 파악을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황후가 자신의 퇴로를 끊어 버리는 게 되는군요.”

“산적들을 심문할 때, 황후는 자신이 모욕당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한다는 것은 첫째는 임금을 속인 죄를 면할 수 없고, 둘째는 제대로 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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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2. 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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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쟁이 거래의 배후를 묻자, 구학은 당황한 듯 보였다.그는 소욱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모릅니다… 소인은 정말 모릅니다.”“그자들은 항상 밀서로만 연락했습니다. 밀서에 물건을 받으러 갈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고, 저희는 그 지시에 따라 물건을 받은 뒤 구매자에게 가져다주기만 했습니다.”“그들은 매번 신중히 움직였고, 접선 장소도 항상 달랐으며, 저희와는 단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폐하, 소인이 드리는 말씀은 모두 진실이며, 감히 속일 생각은 없습니다!”구학은 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절을 올렸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자신의 말을 믿게 하려는 듯, 그는 말을 이어갔다.“소인은 올해 나이가 예순셋입니다. 무릎 아래 자식 하나 없는데, 제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설령 재물과 명예를 얻는다 한들, 제가 얼마나 더 누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운산파의 천 명 넘는 제자들을 굶기지 않는 것뿐입니다!”소욱은 냉담하게 반응했다.“약쟁이에 관한 얘기를 계속하거라.”구학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털어놓았다.“소인은 약쟁이 거래가 그렇게 돈벌이가 좋다는 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약쟁이 한 명을 운송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면, 우리 운산파가 직접 약쟁이를 만들어 팔면 얼마나 큰돈을 벌겠는가 하고요.”그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 짐작한 게 맞습니다. 동쪽 별채에 있던 그 '단약'들은 사실 약쟁이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수년간 실패했고, 약쟁이를 만드는 데 참고할 생각으로 약쟁이 하나를 빼돌렸다가 그자들에게 발각돼 제자 몇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구학은 제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약쟁이 제조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봉구안이 차갑게 물었다.“무고한 이들을 납치한 것도 약쟁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느냐?”구학은 싸늘한 질문에 더듬지 않고 대답했다.“맞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골라 약쟁이를 만들기 위해 잡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7화

    구학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 앞에서 가면을 쓴 이들을 찬찬히 살폈다.이내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철통같이 방비했다고 자부했건만, 결국은 이 지경이 되다니.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도 자신을 구하러 오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 뻔히 보이는 듯했다.황제의 손에 떨어지고 만 이상, 자신에게 더 이상 희망이란 없었다.열무신이 손에 든 단도를 툭툭 튕기며 말했다.“모두 나가시오.”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앞둔 늑대처럼 구학을 응시했고, 바라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사람들이 막 방을 나서려는 찰나, 구학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황제 폐하 좀 만나게 해주시오!”그는 이를 꽉 깨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폐하가 아니고서는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오!”열무신이 돌아서서 봉구안을 바라보며 물었다.“어찌할까요?”봉구안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자가 스스로 자백하겠다면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소욱을 방 안으로 들였다.소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이들은 나가도, 그녀만큼은 반드시 남아야 했다.열무신은 나가기 전 봉구안에게 당부했다.“우린 밖에 있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세요.”“네.” 봉구안은 그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문이 닫히자 구학은 소욱을 빤히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말……폐하이십니까?”소욱은 가면을 벗고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그의 얼굴을 확인한 구학은 목구멍이 턱 막힌 듯 침을 삼켰다.“소인… 폐하를 뵙습니다!”구학은 아까의 당당함을 온데간데없이 잃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을 올렸다.봉구안은 언제든 돌발 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은침 하나를 쥐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운산파의 목적이 줄곧 황제를 암살하고 약쟁이 사건을 덮으려 했던 만큼, 방심할 수 없었다.소욱은 차갑게 구학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무엇을 말하려는 것이냐?”구학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6화

    구학은 관아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운산파 장문인 자신이 마치 죄인처럼 끌려가게 될 줄이야.그는 부장문에게 당부했다.“내가 돌아올 때까지 문파의 모든 일을 자네가 맡아 처리하게. 부디 신중히 행동하도록 하게.”부장문은 진중히 고개를 숙였다.“염려 마십시오, 장문!”관아 사람들은 구학뿐 아니라 엄 장로와 봉구안까지 함께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유골 또한 가져갔다.소욱이 운산파에 온 것은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실마리가 보이자 그는 관아 사람들을 따라 함께 이동했다.봉구안은 떠나기 전 바닥에 누운 정원아의 시신을 깊게 바라보았다.정원아는 자신 때문에 죽었다.그녀는 차선아에게 간곡히 부탁했다.“차 부장문, 정 사저를 부디 잘 안장해 주십시오.”차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운산파 밖 공터에는 여러 대의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구학은 의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죄인을 호송하는데 언제부터 이런 호사가 있었던가?관아 사람들이 각자의 손에 쇠고랑을 채우며 말했다.“당신들은 모두 강호에서 이름난 인사들이니 특별히 비밀리에 심문을 받을 것이오. 백성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차에 타시오! 가는 길에 소리치거나 소란을 피우면 망신당하는 건 당신들이오!”구학은 떳떳한 척하며 제일 먼저 마차에 올랐다. 마치 이러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는 듯이 말이다.봉구안과 소욱은 한 마차에 타고 침묵 속에서 어두운 눈빛을 주고받았다.관아 사람들은 이들을 산 아래로 호송해 관아 쪽으로 향했다.한참 길을 가던 중 구학은 갑자기 몸이 몹시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상함을 감지한 그는 자신을 호송하는 두 명의 관아 사람을 바라보았다.“너희들…”관아 사람 중 하나가 그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노인네, 눈치는 빠르구나.”말을 마친 관아 사람이 순식간에 구학의 목덜미를 강타했다.구학은 쇠고랑을 찬 상태라 저항이 어려웠고, 그 약간의 미향까지 더해지니 그대로 의식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5화

    엄 장로는 싸늘한 눈빛으로 높은 자리에 앉은 구학을 바라보았다.“장문, 제 허락 없이 동쪽 별채에 들어간 건 저의 잘못입니다.”“운산파의 규율대로 이 일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 부친의 유골이 왜 동쪽 별채에 있는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오백도 품에 안긴 유골을 들며 당당히 턱을 들었다.“옳습니다! 남의 아버지 유골을 이런 꼴로 만든 이유부터 제대로 설명하란 말입니다!”구학은 답답한 얼굴로 엄 장로를 쳐다보았다.“이들이 의도적으로 나를 모함하는 게 보이지 않소?”“내가 뭘 설명하길 바라오? 난 이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소!”“조금 전 곳곳에서 불이 난 것도 필시 저들이 벌인 짓이오. 그 틈을 타 유골을 동쪽 별채로 옮긴 것이 분명하오! 저들에게 이용당한 것이오!”“우리는 수십 년을 함께한 사형제이지 않소? 내 사람됨을 아직 모르시오? 내가 어떻게 사부님을 해칠 수 있단 말이오!”엄 장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저는 오늘 그저 진실을 원할 뿐입니다.”봉구안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미 모든 물증이 구 장문의 범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 장문께서 엄 장문의 자리를 탐내 스승을 살해했고, 혹은 스승에 대한 원한 때문에 시신을 훔쳐 별채에 숨겨두고 모욕한 것이겠죠.”“헛소리다! 감히 나를 욕먹이려고 하다니!” 구학은 봉구안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며, 늙고 주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는 다시 엄 장로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저 여인의 말을 믿고 나를 의심한단 말이오? 사부님은 나를 친아들처럼 여겨 모든 무공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셨고, 직접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장문직을 물려주셨소. 내가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리는 죄를 범하겠소? 게다가 내가 무슨 이유로 사부님을 해친단 말이오?”주변 사람들도 동조했다.“맞소. 구 장문은 부족함이 없고, 사형 간의 정이 깊었는데 설마 그런 짓을 했겠소? 이건 분명 무슨 오해가 있는 거요.”“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전 장문님께서는 생전에 구학 장문을 가장 아끼셨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4화

    모두가 봉구안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저 멀리서 누군가 해골 하나를 품에 안은 채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왔습니다, 왔어요!” 오백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달려왔다.구학은 해골을 보자마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설마 저건…’순간 그의 마음이 요동쳤지만, 금세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을 되찾았다.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다.도대체 저게 무엇인가?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봉구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유골이 바로 운산파의 전임 장문이셨던 엄청송의 것입니다.”“뭐라고!” 장내가 삽시간에 술렁였다.엄청송이라면 무림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던 원로였다. 그는 생전에 수많은 선행을 베풀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백성이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그런 인물이 무덤에 묻혀 평온히 잠들어 있어야 정상 아닌가?운산파 제자들이 즉각 분노하며 소리쳤다.“너희들이 감히 사공의 무덤을 파헤친 것이냐!”“불쌍하신 사공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편히 쉬지 못하다니!”“당장 사공의 유골을 내려놓아라!”오백은 유골을 끌어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항변했다.“억지 부리지 마라! 우리는 무덤을 파헤친 적이 없다! 이 유골은 처음부터 동쪽 별채에 있던 것이다. 조금 전 동쪽 별채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급히 불을 끄러 갔다가 거기서 발견한 것이다!”운산파 제자 하나가 즉시 반박했다.“거짓말하지 마라! 사공께서는 분명히 무덤에 안장되셨는데, 어떻게 동쪽 별채에 계실 수 있느냐!”동쪽 별채는 운산파 제자들에게는 금지 구역이었고 평소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각종 희귀한 단약들이 보관돼 있었다. 그런 곳에 사람의 해골이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운산파 부장문이 날카롭게 따져 물었다.“그 유골을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만약 이 유골이 정말로 엄청송의 것이라면, 이들은 분명히 묘를 도굴한 죄를 범한 것이었다. 반대로 아니라고 해도, 아무 해골이나 가져와 장문을 모함한 죄를 면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저들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3화

    봉구안의 칼날 같은 시선이 운산파 장문 구학을 향했다.“구 장문께서는 스승을 배반하고 조상을 욕되게 하였으며, 자신의 사부까지 살해했으니, 문하의 제자들이 비열하고 악독한 것도 당연하겠지요.”구학은 이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주변 다른 문파 사람들도 크게 놀라며 술렁였다.“뭐라고? 구 장문이 자기 사부를 살해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운산파 제자들은 격분하며 소리를 높였다.“감히 우리 장문을 모욕하다니!”“우리 사형을 죽이고 장문까지 욕보이다니, 죽어 마땅하다!”“장문님, 제가 나가 저 계집을 죽이겠습니다!”봉구안은 두려움 없이 싸늘한 눈으로 구학을 응시했다.“구 장문, 제가 정말 장문을 억울하게 모함한 겁니까?”구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향해 근엄하게 말했다.“저 여인의 말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입니다. 저는 하늘에 맹세코 성현군자는 아니나, 결코 스승을 배반하거나 살해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하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그의 단호한 맹세는 매우 당당하고 결백해 보였다.평소 운산파를 지지하던 다른 문파들도 이에 동조했다.“구 장문께서 그런 사람일 리 없습니다!”“우리는 구 장문의 성품을 잘 압니다. 과거 남제에서 전란이 일어났을 때도, 구 장문은 제자들을 데리고 백성들을 구제하고 도적들을 처단하여 안정을 되찾게 하셨습니다.”“맞습니다! 저 역시 증언할 수 있습니다. 구 장문은 그런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닙니다!”구학은 살짝 예를 표하며 말했다.“여러분의 의로운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하늘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오늘 이런 추악한 중상모략에 대해 더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지금 중요한 것은 전진파 제자가 비무대회의 규칙을 어기고 악독한 수법으로 내 제자를 살해한 사실입니다.”차선아가 그의 말을 냉정히 끊었다.“구 장문, 잘못 짚으셨습니다. 우리 전진파 제자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며, 이 모든 사건은 귀 문파의 제자가 일으킨 일입니다. 또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2화

    운산파 장문은 아끼는 제자 은사성의 팔이 부러진 것을 보고 급히 경기를 중지시키려 했다.그러나 무대 위의 봉구안은 번개 같은 속도로 은사성의 다른 팔을 잡아, 그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꺾어버렸다.콰직!“으아악! 이 천한 계집! 죽여버리겠다!” 두 팔이 모두 부러진 은사성은 아무리 뛰어난 독술을 지녔더라도 더는 발휘할 수 없었다.다른 문파 사람들은 봉구안의 냉혹하고 단호한 수법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은사성과 싸울 땐 모두가 신중하지. 독술이 워낙 뛰어나니 가까이 가지 않고 거리를 두는데, 이 여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어 팔을 꺾었으니, 정말 무섭구나!”“남자가 독해야 큰일을 이룬다고 하지만, 역시 여자의 독한 마음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야!”“자기 몸까지 아끼지 않으니 얼마나 독한가! 나라면 은사성 가까이 갈 엄두도 못 냈을 거야.”쿵!봉구안은 은사성을 발로 차서 비무장 아래로 내동댕이쳤다.팔이 부러져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 은사성은 처참하게 쓰러져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운산파 제자 두 명이 급히 그를 부축하며 외쳤다.“사형!”은사성은 축 늘어진 두 팔을 매단 채 봉구안을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이때 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차가운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의 몸에 쏟아지는 햇빛이 너무도 눈부셔 감히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그녀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악행을 저지르면 결국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법이다.”말을 마친 봉구안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섰다.“다음 상대는 누구냐!”그녀가 바라본 것은 운산파 장문 구학이었다.구학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곁에서 제자가 급하게 속삭였다.“장문님, 전진파가 이제 한 판만 더 이기면…!”“닥쳐라.” 구학이 낮게 꾸짖었다.그 또한 전진파의 승리가 코앞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운산파에 고수는 많았다.은사성 하나가 졌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다만 다음에 누구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71화

    소욱이 위급한 것을 본 차선아는 아직 무대 위에서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 채 즉시 소매에서 암기를 꺼내 은사성의 손목을 향해 던졌다.하지만 은사성은 재빨리 소욱을 놓고 몸을 틀어 가볍게 피했다.차선아의 개입에 다른 문파들이 곧바로 불만을 터뜨렸다.그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들개처럼 한꺼번에 고함을 질렀다.“전진파가 규칙을 어겼다!”“두 사람의 비무에 제삼자가 개입하다니 말이 되느냐! 전진파는 패배를 인정하라!”“옳소! 나도 똑똑히 봤소! 전진파는 엄청난 금기를 범했소!”운산파 장문 구학은 싸늘한 얼굴로 차선아를 바라보았다.차선아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피하지 않았다.그녀는 단호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번 승부는 전진파가 졌습니다.”그녀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소욱을 바라보았다.그가 방금 전 비무하던 모습을 보니 명백히 독에 당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경기가 계속됐다면 그는 교활한 은사성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그의 무공은 뛰어났지만, 강호의 험악한 술수를 몰랐다.물론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은사성이 독을 쓰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그조차도 언제, 어떻게 독을 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소욱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진한길이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소욱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운기를 시작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깊은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정원아가 물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사매, 물 좀 마시세요. 덕분에 우리 전진파가 이렇게 많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어요!”소욱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도, 그녀가 건넨 물도 쳐다보지 않았다.지금 막 독에 당한 직후였기에 주변의 모든 것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정원아는 그가 마음을 몰라줘도 화내지 않았다.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용히 물을 그의 옆에 두고 물러났다.소욱이 물러난 뒤 전진파 제자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최종 승리를 얻기까지 단 두 판의 승리만이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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