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88화

작가: 일설연우
영소전의 호위들이 문을 막았다.

“황후 마마 용서하여 주시오. 귀비 마마께서 귀빈을 접대하라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호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잔잔한 눈으로 스산한 기운을 풍기며 호위의 말을 끊었다.

“죽기 싫으면 꺼지거라!”

이때 안에서 여유롭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황후 마마 오셨습니까?”

“신첩이 많이 다쳐서 친히 마중 나가지 못한 점을 용서하여 주시오.”

“눈치 없는 것들! 감히 황후 마마를 막는가?”

“이따 본궁이 벌을 내려주마.”

그러자 호위들이 물러서서 봉구안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황후 마마, 들어가시지요. “

내전.

봉구안은 어머니 유씨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귀비를 보았다. 귀비의 두 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독사처럼 차가웠다.

“황후 마마, 신첩 지금 봉 부인께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양육하는지에 대해 여쭙고 있습니다.”

“때마침 잘 오셨어요.”

봉 부인은 봉구안에게 궁절을 올렸다.

“황후 마마를 뵙겠습니다.”

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분부했다.

“연상, 부인을 먼저 영화궁으로 모시거라.”

“예! 마마!”

혼자 남은 봉구안이 걱정된 봉 부인은 떠나면서 여러 번이나 고개 돌려 봤다.

봉 부인이 떠나자 귀비는 피식 웃으며 도발적인 어조로 말했다.

“황후 마마 왜 이렇게 긴장하십니까? 본궁이 봉 부인께 무엇이라도 할까 두려우신 겁니까?”

“여기는 황궁입니다. 신첩이 감히…”

“하물며 신첩과 봉 부인은 말이 잘 통해서…”

봉구안은 찻잔의 조각들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귀비께 향해 갔다.

처음에는 귀비도 아무 일 없이 덤덤하게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황후가 주저함 없이 곧장 귀비의 발끝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그 매서운 기세…

귀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하인 춘하가 경각심을 일으켰다. “황후 마마, 마마…”

봉구안은 허리를 굽혀 귀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폐하께서 본궁께 귀비 병문안 오지 않은 것을 탓하여 오늘 왔소.”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4. 12. 27. AM 09:39
댓글 모두 보기

관련 챕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9화

    태황태후는 황제의 조모이다. 수년간 예불 수련에 전념하면서 계속 궁 밖 옥양산에 머물고 있었다. 황궁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태황태후는 황후의 혼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귀비는 입궁 한 4년 동안 태황태후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태황태후는 불법을 닦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달리 각박하여 태후조차도 태황태후를 두려워한다.만약 태황태후가 황후의 순결 잃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진노 끝에 폐하께 휴처하게 할 것이다.춘하는 마마가 태황태후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마마, 괜찮을까요?”“태황태후는 마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전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마를 벌한 적도 있지요. 태황태후가 궁에 없으셔서 마마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태황태후를 청했다가 어떻게 보내시려고요?”귀비는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방금 봉장미의 건방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천한 것이 자신 앞에까지 와서 건방 떨었다.“태황태후가 환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태황태후보다 눈앞의 황후가 더 증오스럽다.”“똥파리처럼 하루 종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니…”“황후를 죽여버릴 거다.”춘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마마, 만약 이 일이 발각되여 황후가 순결 잃은 사실을 말해 버리면 마마도 연루되지 않겠습니까?”귀비는 차갑게 웃었다.“산적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다. 봉장미가 지금 와서 산적에게 침범당했다고 주장해도 증거가 없다. 본궁에 연루되지 않을 거다.”“그때가 되면 본궁은 황후가 본궁을 모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전에 산적과 조검을 심사할 때도 본궁은 연루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 죽었으니 황후 수중에는 더더욱 증거가 없을 것이다.”춘하도 상황 파악을 하고 맞장구를 쳤다.“그렇게 되면 오히려 황후가 자신의 퇴로를 끊어 버리는 게 되는군요.”“산적들을 심문할 때, 황후는 자신이 모욕당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한다는 것은 첫째는 임금을 속인 죄를 면할 수 없고, 둘째는 제대로 된 증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화

    영소전, 해가 막 지자 귀비는 상처가 아프기 시작했다.귀비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 숨 쉴 때마다 상처를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아프다.잠시 후 귀비는 아파서 의식을 잃었다.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춘하를 붙잡고 호통쳤다.“약! 빨리 약을 써서 진통시켜 주거라! 본궁이 아파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게냐?”춘하는 급히 귀비를 달랬다. “마마, 태의가 주혼산이 배출되어야만 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마마.”귀비의 이런 모습을 보는 춘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귀비는 매번 춘하의 팔에 상처 날 정도로 그녀를 꽉 잡았다.이 통증은 참기 어려웠다.반 시진 후, 귀비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 없이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춘하는 조심스럽게 귀비께 약을 먹였다.귀비는 손을 들어 약을 떨쳐버렸다.“쓸모없는 놈들… 태의원 놈들 일부러 지체해서…”“본궁, 본궁이 이렇게 오래 아파하는 동안 아직도 아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주혼산… 빌어먹을 주혼산! 본궁이 이렇게 많은 약을 마셨는데 왜 아직도 다 배출하지 못했어?”춘하가 차근차근 달랬다.“마마, 약만 많이 드시면 주혼산은 곧 다 배출될 겁니다. 그러면 진통제를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 태의께서 진맥을 하셨는데 마마 체내의 주혼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만하거라! 이런 날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게냐?” 귀비는 눈빛이 음산했다.이 아픔을 가빈과 황후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천한 년들, 지금 틀림없이 득의양양해 하고 있을 거야.’귀비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옥양산 쪽 상황은 어찌 되었는가? 태황태후께서 소식을 받았는가?”춘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받았습니다, 마마.”“태황태후 마마께서 이미 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귀비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봉장미 너 이제 곧 황궁에서 쫓겨날 거다.’‘아니, 태황태후가 황후가 순결을 잃었다는 추악한 사실이 외부로 전해지는 것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봉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1화

    장신궁.해시가 3각이나 지났지만, 안에는 소욱 한 사람뿐이었다.소욱이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오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소욱의 찌푸린 미간이 풀렸다.“이번에 또 미행당했는가?” 소욱이 일부러 물었다.지난번에 그녀가 2각 늦었던 것은 영소전의 수로가 미행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것을 처리하느라 늦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오늘 밤은?봉구안은 은침 한 벌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봉구안은 대충 설명했다.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옷을 벗으시오.”소욱은 차가운 눈매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등지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소욱은 여전히 그 모습이었다.“왜 옷을 벗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소욱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요즘 점점 나태해지는군…”“짐은 자네를 3각이나 기다렸다.”태의들은 아무도 감히 황제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늦으면 소식이라도 전해야지. 짐은 저녁에 다른 일이 없는 것 같으냐?’봉구안 담담하게 소욱을 바라보고 있었다.“시간을 어긴 것은 제 잘못입니다.”“그래.” 소욱은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그리고 허리띠를 풀었다.침을 놓는 과정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반 시진 정도였다.원래 침을 맞은 후에 약훈도 해야 했다.하지만 봉구안이 소욱에게 말했다.“이 독은 이미 잡혔습니다. 앞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침을 맞으시면 됩니다. 매일 밤 여기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소욱이 옷깃을 정리하는 동작은 잠시 멈칫했다. 눈 밑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봉구안은 은침을 정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촛불이 세차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갑자기 남자의 펜치 같은 큰 손이 그녀의 팔을 휘감았다.쾅!손목에서 차가움 느낌이 들었다.확인해 보니 쇠고랑이었다.봉구안은 어떻게 자신의 손목에 찼는지 알 수 없었다.쇠고랑은 쇠사슬과 연결되어 있었고, 쇠사슬의 한쪽 끝은 남자의 다른 한 손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2화

    “콜록콜록…” 봉구안이 바닥 끌려 내려올 때 발바닥과 지면이 마찰하여 검은 자국을 남겼다.봉구안은 손으로 목 아래를 쳤다. 두드리는 방법으로 약을 진동해 내려고 했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소욱은 안정적으로 봉구안 앞에 착지했다.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못습은 예측할 수 느낌을 줬다.소욱은 차가운 눈으로 봉구안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깊은 심원 같았다.“능력이 대단하군.”“몽화지독은 열흘마다 발작한다.”“자네가 짐에게 제때에 침을 놓아주면 짐도 제때에 해독제를 줄 것이다.”봉구안의 시선은 차가웠다.“쓸데없는 짓입니다.”봉구안은 해독해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욱의 의심이 너무 많았다.남제의 국가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면 봉구안은 결코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봉구안은 몸을 돌려 장신궁을 떠났다.진한길이 쫓아가려는데 소욱이 막았다.“보내주거라.”봉구안은 중독되었다. 그래서 봉구안이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이 여인은 소욱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축골술도 할 줄 알다니… 해독 후 이 여자가 말을 듣지 않으며 죽여버릴 테다.”소욱의 차가운 눈동자에서 살기가 스쳤다.…봉구안은 영화궁으로 돌아온 후 즉시 전서구를 불러 오백에게 편지를 보내 몽화지독의 해독제를 찾으라고 했다.봉구안은 폭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단지 통제당하는 것이 싫었다.오백은 편지를 받은 후 바로 신의인 송려를 찾았다.송려는 곤히 자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건들려 눈을 떴더니 침대 머리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귀신이다!’송려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침복이 활짝 열려 있었다.“너… 욱!”오백이 송려의 입을 막았다. “송신의님 소리 지르지 마시오. 접니다 저!”방에 촛불이 켜지자 송려는 비로소 오백을 알아보고 오백에게 손을 떼라고 손짓했다.“자네 소씨 형님의 사람이잖소. 소씨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오백이 급해 물었다. “도련님께서 몽화지독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3화

    태황태후가 갑작스레 궁으로 돌아오자, 궁중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자녕궁. 태후는 더욱 긴장했다. “왜 갑자기 회궁하신 거지?” 태황태후가 회궁을 하면 적어도 2주 전에는 알려 하고, 회궁 당일에는 환영식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 이렇게 급히 돌아온 것이라면 아마도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일 것이다. 태후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지 의심했다. 무엇이 그 “늙은 마귀할멈”을 불러들인 걸까? 계 상궁이 위로하며 말했다.“태후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태황태후 마마께서 이번에 돌아오시면 바로 황후 마마를 보러 가겠다고 하셨어요. 마마랑은 무관하실 겁니다.”태후는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전 그분의 행동으로 봤을 때, 궁으로 돌아온 직후 하루 동안은 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문안 인사를 허락하셨어. 당일에 사람을 불러들인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어. 설마 진짜로 황후 때문에 온 것일까? 그런데 황후가 어떻게 옥양산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던 태황태후를 노하게 한 거지?” 계 상궁은 잠시 고민하더니 추측에 나섰다. “태후 마마, 혹시 귀비 마마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요?” 태후는 순간 의아해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능연은 마구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고, 비록 범인은 찾지 못했어도 황후를 어느 정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황후를 상대하기 위해 태황태후를 부른 것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태황태후처럼 현명한 사람을 쉽게 끌어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능연이 황후의 큰 약점을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태후는 벽 쪽의 불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가 이번의 위기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러나 그녀도 더 이상 도울 수 없었다. 영소전. 춘하가 귀비를 모시고 약을 드리던 중, 기쁜 소식을 전했다. “마마, 태황태후 마마께서 벌써 궁으로 돌아오셨어요. 황후 마마께서도 함께 불려갔습니다.” 귀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4화

    “뭐라? 폐하께 그 천한 여자랑 합방을 하라고 하셨다고?!" 귀비의 좋았던 기분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소식을 전하러 온 궁인은 고개를 숙였다. 귀비의 분노를 감히 마주하지 못했다.“소인은…소인은 그저 전해 들은 겁니다. 태황태후 마마께서…”“됐다!”귀비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놀람을 넘어 의심이 생겼다.태황태후가 궁에 돌아온 건 황후의 정조를 조사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왜 이렇게 서둘러 황후와 합방하게 하려는 걸까?귀비의 시선은 싸늘하게 변했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본궁이 다시 묻겠다. 태황태후께서 황후에게 납치 사건에 대해 추궁했느냐?”궁인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소인도 잘 모르겠사옵니다.”“내전에는 몇 명만 모셨고, 소인은 전각 밖에 있었어서 상전분들의 대화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사옵니다.”그 말을 듣자 귀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태황태후가 도대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도 알고 싶었다!황후가 순결하지 않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황후를 폐위시키는 것이 아닌가?태황태후의 칼 같은 성격상, 어떻게 그런 일을 용납하겠나...귀비는 혼란스러웠다.마치 무언가가 서서히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다급히 궁인에게 물었다.“그렇다면 지금은?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시느냐!”궁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황제 폐하께서는 태황태후의 명을 받들어, 지금 영화궁에 가 계십니다.”귀비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이 대낮에 태황태후께서 당장 합방을 하라고 하셨단 말인가!설마 황제 폐하께서도 동의하신 일일까?“춘하, 당장 옷을 가져와라! 본궁이 황제 폐하를 만나러 가겠다!”귀비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비록 황제 폐하께서 황후를 건드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태황태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굴복하게 된다면 어떻겠나?그녀는 어떠한 돌발 상황도 용납할 수 없었다!“빨리!”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촉했다.춘하는 허둥지둥 움직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5화

    봉구안은 합방 준비물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갈수록 기가 찼다!소욱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주 상궁은 궁녀들에게 명령했다.“물건들을 내려놓고, 황후 마마의 목욕을 준비해라.”“예.”봉구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연상 한 명이면 충분하네.”주 상궁은 태황태후의 명을 받들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 꽤나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봉구안에게 상전의 태도를 취했다.“황후 마마, 처음으로 폐하의 총애를 받으시니, 궁중의 규칙을 잘 모르실 겁니다.”“합방 전 목욕은 평소 목욕과는 다릅니다. 절차가 세세하게 정해져 있어요!”“한 사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마마, 폐하를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마시지요."주 상궁은 공손하게 한쪽 팔을 내밀며 “이쪽으로 오라”는 행동를 취했다.봉구안의 눈빛은 싸늘했고, 목소리는 낮고 무게감 있었다.“태황태후께서 널 보낸 것은 본궁과 황제 폐하가 원만히 합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과연 본궁의 기분이 상해 합방을 거부하게 돼도 일이 잘 풀릴지 한번 지켜보거라.”주 상궁은 순간 깜짝 놀랐다.황후 마마의 말이 너무나 당돌하지 않은가!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황후가 이토록 강경한데, 만약 그 뜻을 거스르면 태황태후의 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고, 자신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잠시 고민한 후, 주 상궁은 궁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나가 전각 밖에서 대기하라.”그리고 봉구안에게 몸을 굽혀 예를 표하며 말했다.“소인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연상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봉구안 곁으로 빠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마마, 저 주 상궁도 꽤나 까다로운 사람인데 어떻게 이리 순순히 물러난 거예요?”봉구안은 별다른 말없이 내실로 들어가 모든 옷을 벗어 던진 후 욕조에 몸을 담갔다.그녀 주변의 분위기는 점점 차가워졌고,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냉기가 감돌았다.연상은 욕조에 꽃잎을 뿌리며 걱정스럽게 물었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화

    봉구안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고, 눈빛은 동요 없이 평온했다.소욱은 책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어둡고 눈빛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왜, 주 상궁이 합방 예정을 가르쳐 주지 않았소?”봉구안은 그의 작은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다.보아하니, 그 역시 이 합방을 원치 않는 것이 분명했다. 순간, 소욱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그의 손가락이 옷을 사이에 두고도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눌렀다.그녀에게 꽂힌 그의 시선은 서늘하면서도 강한 폭력성을 품고 있었다.“아플까 두려운 것이오?”봉구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뭐가 아프다는 거지?그가 말하는 고통이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일까?그는 정말 태황태후의 말을 따르며 착한 손자 역할을 할 작정인가? 봉구안은 순간 거부감이 들었다. 이빨을 꽉 물고 불꽃이 튈 듯한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자의 잘생긴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붙잡고,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고 있었다.봉구안은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그는 왜 칼을 들고 있는 걸까?짧은 순간, 그녀는 혼례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그때 그는 그녀의 순결을 의심하며 스스로 단검으로 증명하라 요구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녀에게 스스로 순결을 증명하게 하려는 건가?봉구안의 미간이 조금씩 풀어졌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일이 간단해질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직접 하는 편이 낫다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한 봉구안은 순순히 단검을 받아들려고 했다.그러나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를 베어도 상관없소. 그저 침구에 피를 묻혀 명을 따랐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그는 그녀에게 자해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 거짓으로 일을 꾸며내라고 요구한 것이다.이 말을 들은 봉구안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소욱은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미간에는 짜증이

최신 챕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11화

    선성 밖에서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수십만 남제 장병이 다양한 무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소리는 선성 위를 울려 퍼지며,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성 안에서도 그 소리가 선성을 흔들 만큼 강렬하게 울렸다.봉구안은 전마를 타고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갑옷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성문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성루 위에서는 단춘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옆의 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장군, 저건 동방군입니다. 대체 어떻게 선성에 나타난 걸까요?! 분명 감주에 있어야 할 자들인데…”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북연의 황제는 성 밖 동방군의 존재에 크게 분노했다.그는 단춘의 옷깃을 움켜잡고 호통을 쳤다.“감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이게 대체 뭐냐! 단춘, 정말 잘도 해냈구나!”단춘은 당혹스러웠다.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기에 황제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그때 수화부 연합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남제가 당신들을 속인 게 확실하군!”황제는 점점 격분하며 단춘을 더욱 매섭게 쏘아봤다.“동방군이 너희 뒤를 따라왔는데도 모르다니, 이런 실력으로 남제를 우리 북연과 나누겠다고? 정말 가소롭구나!”단춘은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반박했다.“폐하, 성 밖에 있는 건 일부 동방군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우리 동부 연합군만 속은 것도 아닙니다.”“남부 연합군인 수화부는 어땠습니까? 그들이 남제군을 알아챘습니까? 똑같이 속았으면서 왜 저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동부 연합군의 장수들도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남제의 계략은 워낙 교묘합니다. 감주를 언제 빠져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폐하, 북부 연합군이라고 해서 뒤따라오는 남제군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그만들 하십시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10화

    강력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어리석은 동맹이었다.단춘은 선성의 옥석비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그는 정정당당히 조유관을 공략하며 남제에 진입했다.그런데 수화부 연합군은 도대체 뭘 하는가?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동부 연합군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아닐까?그들의 이런 태도는 단춘을 화나게 했다.그렇다고 이미 도착한 연합군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결국 단춘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들어라. 먹을 것도 쉬는 것도 뒤로 미뤄라.”“다른 나라보다 앞서 선성에 도달해야 한다!”“예!”……감주.대하국 연합군은 성 밖에서 남제 동부군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남제 황후 봉구안이 이미 거미줄이라 불리는 비밀 통로를 통해 대군을 이끌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녀는 소수의 병력을 남겨 감주에 대규모 병력이 주둔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 계책에 말려든 동부 연합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그 사이, 봉구안의 동부군은 비밀 통로를 통해 이미 묵성에 도착해 있었다.그곳에서 그녀는 동방세를 만났다.동방세는 거미줄 비밀 통로의 마지막 관문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그는 고된 작업 중에도 농담을 잊지 않았다.“이번 거미줄 개조를 위해 황제께서 이 장군의 10만 대군을 내게 맡기셨소.”“덕분에 난 한동안 대장처럼 군림하며 유세를 떨었네.”황제가 보낸 인력 덕분에 그는 북부와 동부의 거미줄 비밀 통로를 효율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관문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봉구안은 그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동방세, 남제 장병들을 대신해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하네.”“선성으로 갈 계획이오?”동방세가 웃으며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동방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여기 작업만 끝내면 범진과 함께 선성에서 보도록 하세.”그는 선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직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9화

    남강.서왕은 수화부 연합군의 갑작스러운 철수가 단순한 계략일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밤중에 직접 확인한 결과, 그들의 철수는 패주와 다름없었다.식기조차 챙기지 못하고 떠난 흔적이 역력했으며, 모닥불조차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조사를 거듭한 끝에, 수화부 연합군이 선성의 보물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왕은 당황스러웠다.적군이 사라졌으니, 그는 계속 방어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한편, 수화부 연합군은 선성을 향해 급히 북진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병사들은 강추위를 뚫고 말을 달리며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선두에서 말을 탄 장수가 외쳤다.“장군의 명령이다! 속도를 더 내라!”병사들은 지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우리가 가봤자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그러게! 선성 보물 얘기를 듣자마자 진지를 철수했지만, 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잖아. 그 유명한 옥석비도 하나뿐인데,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어?”“명령이 내려왔으니 따를 수밖에. 우리가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동산국 황궁.동산국 황제는 어마장에서 여전히 기력이 넘쳤다.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이어 과녁 중심을 명중시켰다.곁에 있던 신하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폐하, 수화부 연합군이 남강 공격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조유관으로 향했다고 합니다.”조유관은 대하국 연합군이 최초로 돌파한 약점이었다.더 많은 연합군이 조유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했다.그러나 그로 인해 남부 방면의 공격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황제는 활을 내려놓았다.머리칼에는 은빛이 드리워졌지만,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담대연의 소식은 알아왔느냐?”“담대연은 여전히 남제에 억류되어 천옥에 갇혀 있습니다.”황제는 다시 활을 들어 두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한 번의 발사로 과녁을 뚫자, 곁에 있던 신하가 찬사를 보냈다.“폐하, 화살로 만물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8화

    남강.서왕의 어깨는 부상으로 아파왔고, 완부옥은 표면적으로는 화목한 부부처럼 행동하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막상 군막 안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듯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완부옥은 저녁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배가 부른 상태였다. 갑작스런 복통에 허리를 구부린 그녀를 보자, 서왕은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유화! 군의를 데려오라!”그는 완부옥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완부옥은 그저 체한 것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필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내심 불안했던 그녀는 거짓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벌레가 최근에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태아의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군의가 와서 진찰을 하면, 모든 게 드러날 위험이 컸다.서왕은 그녀의 상태가 진정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녀를 침대에 앉힌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이는 괜찮은가?”그의 시선은 그녀의 배로 향했다. 완부옥은 워낙 마른 체형이라 배가 불러도 잘 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느슨한 옷을 입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서왕은 그녀의 진짜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일반적인 임산부라면 나타날 만한 불편함이 완부옥에게는 전혀 없었다. 이런 점들이 서왕에게 의심을 품게 했다.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우리 아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드디어 이 남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걸까? 완부옥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초조해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어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어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깃을 살짝 건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솔직히 말해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완부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평소에는 성격이 부드럽던 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7화

    대하 연합군은 묵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선성을 향해 진격했다.장수들 중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 말했다.“단 장군, 지금까지의 남제 원정이 너무 순조롭습니다.”“선성에서 매복을 준비한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단춘 역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부군은 현재 감주에 주둔 중이었다.그는 전력을 선성으로 보내면서도 일부 병력을 감주로 보내 허위 공격을 감행하고, 동부군을 묶어두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만약 선성에 매복이 있다 해도, 우리의 10만 대군에 북부 연합군까지 합하면 수십만 병력인데, 선성 하나를 못 뚫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그럼에도 신중한 장수는 여전히 망설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남제의 전략은 적을 깊이 유인하려는 술책 같습니다.”“단 장군, 처음 계획대로 동부군을 견제하며 진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단춘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 짜증을 드러냈다.“유인이라니? 남제가 그렇게 어리석어 감주를 내놓고 선성에 매복을 펼친다는 말인가?”“만약 남제가 유인책을 쓴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감주로 끌어들이는 것이겠지!”“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둬라. 만약 북연이 먼저 선성에 도달해 옥석비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북연의 손발 노릇을 하게 될 거야!”“북연이 동부를 맡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다 해먹으려는 술책일 뿐이다.”“기다릴 테면 기다려 봐. 하지만 대하는 그렇게 바보처럼 속지 않는다!”선성은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북연 황제 역시 선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그들은 남하하는 도중 남제 잔병들에게 여러 차례 매복 공격을 받았으나, 모두 격퇴시키며 계속해서 진격했다.남제군이 계속 후퇴하면서,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졌다.그러다 어느덧 설날 전야가 되었다.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정적이 감돌았다.백성들은 해가 지자마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설날을 맞이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전란을 피해 숨으려는 모습이었다.황성.궁궐 안, 후궁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밤을 지새웠다.그들은 한 손에 작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6화

    군막 안.서왕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앉아 있었고, 군의가 그의 상처에서 독을 빼내고 있었다.예리한 단검을 손에 쥔 군의가 상처를 살피자, 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두꺼운 수건을 꽉 깨물었다.그 모습을 본 완부옥이 눈썹을 찌푸렸다.“이미 독화살을 뽑아냈는데, 왜 또 칼을 드는 거죠?”호위 유화가 대신 답했다.“군의께서 남아 있는 독을 빼려면 살을 도려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완부옥은 소리 내어 웃었다.“살을 도려낸다고? 군의가 혹시 적국에서 온 첩자가 아닐까요?”그녀의 말에, 군의의 손이 떨렸다.“부인, 어찌 그런 망언을!”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수건을 깨물며 눈빛으로 완부옥에게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그러나 그녀는 군의를 밀어내고 서왕의 상처를 살폈다.피부가 갈라지고, 독이 퍼지며 상처 주변이 검게 변해 있었다.흔한 여인이라면 얼굴을 돌리며 기겁했을 터였다.그러나 완부옥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그녀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이게 그렇게 심각한 건가? 별거 아니네.”그 말에 유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부인, 아직 독이 남아 있습니다! 군의께서 말하길 어서 전하의 몸을 도려내 독을 빼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완부옥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독을 빼는 방법이 꼭 살을 도려내는 것뿐인가?”그녀는 품 속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냈다.군의는 그것을 보며 해독약이라고 생각했다.유화 또한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그러나 항아리가 열리자, 그들이 본 것은 해독약이 아니었다.완부옥은 맨손으로 뚱뚱하고 하얀 벌레 하나를 꺼내더니, 서왕의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군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전하! 조심하십시오! 저것은 독충입니다!”유화도 경악하며 외쳤다.“부인, 대체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시끄럽다!”완부옥은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한번만 더 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군의는 이성을 잃고 외쳤다.“남강의 독충은 맹독입니다! 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5화

    대하 사국 연합군이 묵성을 함락시키려 진격했을 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묵성은 조유관과 똑같이, 텅 비어 있었다."말도 안 돼!"단춘은 차마 현실을 믿지 못했다.이 짧은 시간 동안,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그들이 모두 감주로 이동한 것일까?그때, 정찰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보고 드립니다! 장군! 묵성에 적군이 없습니다!"연합군은 도시 곳곳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단 한 명의 인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니..."묵성은 한때 인구가 많은 번화한 도시였다.그런데 지금은 마치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듯했다.연합군은 묵성에 주둔했지만, 밤이 되자 몰아치는 한파와 함께 불길한 분위기가 마을 전체를 감쌌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병사들은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끓이려 했지만,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어.’주군이 모여 있는 대장막 안.장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단춘을 바라보았다."단 장군, 이건 분명 남제의 계략입니다!""우리가 이미 두 번이나 빈 성을 마주하면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더욱이, 우리는 전쟁을 통해 식량을 보충하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얻은 것은 없습니다!""장군!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내일도 계속 진군하시겠습니까?"단춘의 표정은 냉랭했다.눈빛은 날카롭게 빛났고,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묵성이 비어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감주로 이동했을 것이다.""그러나 감주에 적의 매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그는 고개를 들어 정찰병을 바라보았다."북연은 어떤가? 북부 연합군은 어디까지 진격했지?"정찰병이 빠르게 답했다."장군! 북부 연합군은 이미 풍양까지 진격했습니다.""풍양은 작은 군현으로, 바로 인근에 있는 박주를 넘어가면, 그다음은 곧바로 선성입니다!"회의실은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북연군의 속도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4화

    이촌은 그야말로 유령 마을이 되어 있었다.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연합군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북연 황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지막 생존자를 끌어오라 명령했다.화살에 맞은 병사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끌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분명 이곳입니다! 바로 이 마을에서 기습을 당했습니다!”하지만 북연 황제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귀신조차 보이지 않는구나.”조사에 나섰던 정찰병들도 나섰다.“폐하,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북연 황제의 손이 힘껏 말고삐를 쥐었다.“찾아라.”병사들은 마을 곳곳을 수색했지만, 백성은커녕 전날 죽은 병사들의 시신조차 사라져 있었다.그 순간, 눈보라가 더욱 거세졌다.쌓인 눈이 빠르게 대지를 덮으며 모든 흔적을 삼켰다.북연 황제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행군을 계속한다.”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남제의 백성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임현에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같았다.원래라면 사람이 넘쳐나야 할 곳,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병사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이건 이상하다. 아무리 전쟁이 나도, 이렇게까지 흔적 없이 사라질 리가…”“설마, 남제 황실이 모든 백성을 대피시킨 건가?”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은 피난길에 오르기 마련이었다.이는 그리 드문 광경이 아니었다.그러나 이번은 달랐다.정찰병들이 조사한 결과, 십 리 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그것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북연 황제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조용히 시켰다.“정찰병을 보내라.”이튿날 새벽.한 정찰병이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폐하, 확인된 바에 따르면 남제 황실은 일찍이 백성들을 남쪽으로 대피시켰습니다!”“그들이 향하는 곳은… 선성입니다!”선성.남제의 전략 요충지이자, 철벽 방어를 자랑하는 도시.이곳만 함락하면, 남제 황궁까지 진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북연 황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3화

    동방이 함락된 데 이어, 이번에는 북방까지 무너졌다.끝없는 위기였다.조정 대신들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궁중 곳곳에서는 남제가 정말 끝장나는 것이냐는 말이 오갔다.그러나 용상에 앉은 소욱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그는 남제의 황제,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질 수 없었다.조정이 파한 후, 문무백관들은 삼삼오오 모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된 일인가! 북방이 무너졌다니!”“연합군은 어디까지 쳐들어온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방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는가!”“황후마마께서 그토록 신중하게 군을 이끌었음에도 동부를 지키지 못했으니, 서부와 남부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겠군.”혼자의 힘으로 십여 개국의 연합군을 막는 것은 결국 무리였던 것일까.많은 대신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황궁 안.궁궐 안에도 불안감이 퍼졌다.후궁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했다.그들은 조묘의 난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성이 무너지고 적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가축과 다를 바 없어요.”“북연은 호랑이 같은 나라라더니…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입니다.”그녀들은 북연과 대하의 야만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포로가 된다면, 그들에겐 지옥보다 더한 운명이 기다릴 터였다.자녕궁.자녕궁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녕비는 잔뜩 겁에 질린 채 태후에게 물었다.“고모님… 남제는 정말 망하는 겁니까?”태후는 이미 곳곳의 정보를 통해 전황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태평성대에는 꽃이 피지만, 난세에서는 한낱 들풀에 불과하구나…”“내가 널 지키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서 이 병을 받거라… 들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사용하거라.”그녀는 조용히 손을 뻗어, 작은 약병을 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그 의미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녕비의 손이 떨렸다.그녀는 약병을 쥔 채, 눈을 뗄 수 없었다.“고모님…”태후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애처롭게 미소 지었다.“내가 너를 궁에 들인 것은 잘못된 선택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