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굳건히 말했다. “전하, 소첩의 대체 혼인에 대하여 봉가에서는 실로 아는 바가 없사옵니다.” 소욱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차갑게 그녀를 응시하였다. 마치 그녀의 혼까지 꿰뚫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하자, 침전 안은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분노에 차오른 그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그녀의 턱을 놓고 돌아섰다. 등진 채 두 손을 뒤로 하여 단단히 주먹을 쥔 모습에서, 그의 억누르는 분노가 드러났다. “이런 큰 일을 봉가에서 어찌 모른단 말이냐?” “대체 그대는 나를 얼마나 어리석게 본 것이오?” “아니면, 그대가 무슨 일을 꾸미더라도 내가 그대를 용서하리라 확신한 것이오?” “하지만, 그대는… 그대는 오늘밤, 이 사실을 말해서는 아니 되었소.” “그대는 모든 것을 망쳐놓았소!” 그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하며 등을 돌린 채,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밀었던 봉황 비녀와, 애써 쌓아온 믿음과 마음이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소욱은 스스로 생각했다. 후궁들 간의 치열한 암투 속에서도 황후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그러나, 그녀도 결국 다르지 않았다. “폐하…” “그 입 다물거라! 지금 당장은 네 말을 듣고 싶지 않구나!” 소욱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질책하며 돌아섰다. 그러나 그녀의 고요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문득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을 구하려고 독을 해독하며 중상을 입었고, 그를 품에 안고 말하였다. 당시 그녀는 그에게 분명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그 모든 장면은 가식 없는 진심이었음이 분명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소욱은 마침내 차분히 물었다. “그렇다면, 상처를 복원할 비밀 약재 또한 거짓이더냐?” 그는 그녀에게 얼마나 더 숨긴 진실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욱은 그녀를 응시하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
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눈빛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황귀비를 잡아들인 것은 소인의 결정이옵니다. 그에 따른 죄책은 기꺼이 감수하겠사옵니다. 지금은 이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할 때이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 걸음 나아가 말을 이어갔다. “황귀비는 스스로 인정하였사옵니다. 그녀가 장미를 해하려 한 것은, 신비한 자에게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라 하였사옵니다.”“그 신비한 이는 그녀의 죄를 빌미로 협박했사옵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곳에 있사옵니다.” 봉구안은 한 봉투를 내밀었고, 소욱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 편지를 열었다. 봉구안은 이어 또 다른 봉투를 꺼내들었다. “몇 달 전, 정비도 이 신비한 자의 편지를 받았사옵니다.” “그 편지에는 소인의 아버지가 용화사 승려를 매수하여 명서를 조작한 사실이 적혀 있었사옵니다.” 소욱의 이마는 깊게 찡그려졌고, 그는 묵묵히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정비마저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섞인 혼란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봉구안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소인과 정비는 힘을 합쳐 이번 정월 대보름날 밤, 그 신비한 자가 다시 방비전에 몰래 들어와 고발 편지를 남기려 할 때 그녀를 붙잡았사옵니다.” “그 신비한 자는 다름 아닌 맹교먹이었사옵니다.” 소욱의 눈썹이 떨렸다. 그는 그녀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단호했고,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맹교먹이 정비에게 보낸 편지 역시 이곳에 있사옵니다.” “지금 폐하께서 보시고 있는 두 편지와 그 편지를 비교하시면, 그 글씨가 모두 동일인임을 알게 되실 것이옵니다. 이는 맹교먹이 봉장미를 해친 진범임을 증명하옵니다.” 소욱은 손에 든 편지들과 봉구안이 건넨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글씨체가 분명히 일치했다. 맹교먹, 그토록 신뢰하고 중용했던 그녀가 어찌 이런 끔찍한 음모의 주모자일 수 있는가? 봉구안은 소욱의 침
봉구안의 차가운 얼굴에는 한 줄기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이는 마치 서릿발 속 매화가 한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듯하였다.“저 또한 맹가의 사람이옵니다.” 단출한 이 한마디가 천 층의 파도를 일으켰다. 소욱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봉구안이 이어서 말했다. “저는 봉가에서 버림받은 몸이옵니다. 저를 거두어 기른 이는 다름 아닌 맹건 장군 부부였사옵니다.” 소욱은 즉시 깨달았다. 그가 예전부터 느껴왔던 그녀의 맹교먹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이제야 풀리는 순간이었다.알고 보니 그녀와 맹교먹은 같은 문하에서 배운 사제지간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무공이 비범한 이유 또한 밝혀졌다. 스승이 맹건이라면 그럴 법도 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봉장미 사건에 대해서 처음에는 교먹을 의심하지 않았사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증거가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사옵니다.” “저 또한 폐하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었사옵니다. 저는 그 아이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고, 우애가 돈독했으니 말입니다…”“어찌하여 저의 친여동생을 해칠 수 있었는 지 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사옵니다.” “그러던 중 스승님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사옵니다.”“스승님께서 그 아이가 맹성주를 사칭하는 것을 허락한 이유는 집안의 노부인 때문이라 하였사옵니다.” “최근 몇 년간 노부인의 건강이 악화되자 스승께서는 노부인이 돌아가시면 맹성주가 전장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셨사옵니다.” “허나 그렇게 되면 맹성주를 사칭한 이는 반드시 가짜 죽음을 맞이하여 맹 소장군이라는 신분을 버려야 했고, 이는 곧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사옵니다.” 봉구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본래 그녀와 스승, 스승의 부인이 함께 세운 계획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평생 맹성주의 껍데기 속에 갇혀 있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녀는 중요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넘어갔다.
침전 안은 등불 하나 없이 어두웠고, 서로의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암흑 속에서 한 남자의 낮고도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짐은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그대는 제법 편히 자는군.” “깨어난 듯하니 일어나시오.” 둘 다 무예를 익힌 몸인지라 그녀가 깼는지 안 깼는지,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예를 차릴 수밖에 없던 봉구안은 곧장 자리에서 내려와 절을 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막 이불 끝자락을 들어 올리려던 그녀의 손을 남자가 단숨에 눌러 멈추게 했다. “그럴 필요 없소.” 그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손을 잡아 올리더니 뭔가를 쥐어 주었다. 봉구안은 감촉을 느껴 보았다. 그것은 분명 머리 장식인 비녀 같았다. 문득, 그녀는 전에 자진궁에서 그가 그녀에게 주려고 했던 그 봉황비녀를 떠올렸다. 받기를 망설이며 돌려주려 하였으나, 소욱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황후의 자리는 그대의 것이니, 더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어 맹교먹을 조사하게 하였소. 그대가 준 증거가 사실이라면, 법에 따라 처단할 것이오.” “다만, 봉장미를 대신하여 시집온 일로 더는 소란을 일으키지 마시오.” 봉구안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느라 손에 쥔 비녀조차 신경 쓰지 못하였다. 사실, 황제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 교먹을 처벌하기에는 용호군을 해하려 한 죄목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견을 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조용히 절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신분을 감춘 죄를 묻지 않으시니,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갑자기 소욱은 그녀의 손을 덮어 감싸고, 그녀의 손과 비녀를 함께 쥔 채 말했다. “이제 만족한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그녀는 빠르게 대답하였다. 그가 법대로 처리만 해 준다면, 그녀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법으로 교먹을 단죄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소욱이 느닷없이 그녀의 침상 위로 올라왔다.
금오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전 안에서는 황제가 여전히 정무에 바쁘게 몰두하고 있었다. 진한길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폐하, 신이 직접 시체들을 확인하고 검시관에게 부검을 명하였사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죽기 전에 독침을 맞은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사옵니다. 그 독침은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사람을 즉시 혼미하게 만드는 효능을 지녔사옵니다.” 소욱은 손을 멈추고 붓을 필산에 올려놓았다. 그의 눈빛은 어두워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서 전군이 몰살당한 것이로군.” 그의 음성은 차분했으나, 듣는 자에게 섬뜩한 한기를 불러일으켰다. 영화궁. 밤이 깊은 후, 황제가 또다시 찾아왔다. 봉구안은 공손히 맞이하며 물었다. “폐하, 여기까지 오시다니 어인 일이옵니까?” 소욱은 바로 물었다.“황귀비는 지금 어디에 있소?” 봉구안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황 귀비를 보시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소욱은 주인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태연한 자세로 대답했다. “첫째, 짐이 귀비를 유배형에 처했건만, 그대가 귀비를 납치하여 짐의 뜻을 어겼소.” “둘째, 귀비는 중요한 증인이니 짐이 직접 확인해야 하오.” 봉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귀비를 만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사옵니다.” 소욱의 눈빛은 그녀를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두웠다. “짐이 언제 직접 가겠다고 했소? 진한길을 보내면 족하오.” 봉구안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알겠사옵니다.” 소욱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황후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가 친정에 간 지도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이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소?”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세한 표정 변화라도 포착하려는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봉구안은 차분히 대답했다. “신첩은 연상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 입궁 시기를 단정하기 어렵사옵니다.” 사실 그녀는 연상을 다시 궁으로 부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소욱은 냉소를 흘리며
황귀비가 실종된 후, 진한길은 황명의 따라 그녀를 찾으려 했으나 줄곧 단서를 찾지 못하였다. 설마했는데, 그녀가 황성 안에 갇혀 암흑천지의 밀실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니… 한때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화려함을 자랑하던 황귀비는 이제 뼈만 남을 정도로 수척해지고, 머리는 거지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여봐라! 폐하께서 너를 보내 나를 찾게 한 것이 맞느냐?” “폐하께서는 아직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어서 와서 나를 풀어주거라…!” 황귀비는 두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이 날이 온 것이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곳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진한길은 그제야 그녀의 발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쇠사슬의 다른 한쪽은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황후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독한 사람이었다.황귀비의 눈빛은 간절했다. “이제는 더 이상 폐하의 총애를 바라지 않겠소. 그저 살아만 있고, 황궁 안에만 있고, 폐하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진한길, 거기 서서 무엇을 하는 것이오, 어서 움직이라니까!” 그녀는 진한길이 꼼짝도 하지 않자 다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한길의 얼굴은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았다. “소신은 그저 폐하의 명을 받아, 봉가 아씨의 피살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몇 가지 묻고자 하니, 사실대로 대답해주시길 바라옵니다…”황귀비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너… 너는 여기 왜 온 것이냐?” “조사 때문에 온 것이냐?” “단지 조사를 위해서란 말이냐!” “아니! 폐하께서 내가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을 아신다면 당연히 날 구해주셔야 하지 않느냐! 너 이 사기꾼 같으니! 이것도 황후의 짓이지? 황후가 널 매수한 게지?”황귀비는 절망하며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울부짖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진한길이 이곳에 온 것은 오로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황제는 황귀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히 말씀하지 않았다. 두 시진 후.진한길
“황귀비가 결백하다고 생각하시옵니까?”봉구안의 음성은 비정상적으로 평온했다. 소욱은 그녀 말 속에 깃든 감정을 감지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사로이 형벌을 가하는 것이 옳단 말이오?” 봉구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맑고 담담하며,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제가 사사로이 형벌을 가하지 않았다면, 귀비는 이미 폐하께서 보낸 사람들에 의해 다른 도성에 편히 자리 잡았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귀비를 유배한다고 하셨으나, 속으로는 귀비를 위해 훌륭한 퇴로를 마련해 두셨사옵니다.” “저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귀비를 빼앗아 올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소욱을 향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 그가 공정하게 처단하지 않았다는 비난이었다. 소욱의 아름다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봉구안은 그를 더 이상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말투를 바꾸었다. “그러나 폐하께서 안심하셔도 되옵니다. 맹교먹의 일이 마무리되면 귀비를 풀어주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귀비를 다시 황궁으로 들이도록 하겠사옵니다.” 소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를 황궁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문득 그는 그녀가 질투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 약간의 부드러움이 스며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누그러진 것이었다. “빈정거리는 소리는 그만두시오. 귀비의 처분은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러나 봉구안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폐하께서 오해하셨사옵니다. 이는 제가 귀비에게 한 약속 때문이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만 하면, 귀비의 새로운 신분을 마련해 폐하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사옵니다.” 순간, 소욱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며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것은 묻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경고하는 말투였다. 그녀가
소욱은 이 순간 맹교먹을 보자마자 죽은 용호군 장병들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지?” 그의 시선은 맹교먹을 넘어 장공주를 향했다. 장공주는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봉구안을 노려보았다. “이번 일은 황후와 관련이 있사옵니다.” 봉구안은 여전히 고요하고 담담했다. 마치 이 일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장공주는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폐하, 이 곁에 있는 황후는 진짜 봉장미가 아니옵니다!” 소욱의 표정이 급격히 냉랭해졌다. 그는 손짓으로 궁궐 안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내관들을 물리치고, 장공주에게 반문했다. “누구의 헛소리를 들은 것이냐?” 장공주의 눈은 여전히 봉구안을 향해 차갑게 번뜩였다. “폐하, 저는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저의 성격은 폐하께서 더 잘 알지 않사옵니까?”“이 일은 제가 직접 조사한 것이옵니다.” “예전 봉가의 부인이 쌍생아를 낳았다는 사실이 있었사옵니다. 지금 황후의 자리에 앉아있는 저 여인은 봉가에서 버려졌던 자로, 봉가의 사람이 아니옵니다.” “그런데도 황후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봉구안은 소욱의 곁에 앉아 평온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녀는 이미 장공주가 자신의 신분을 의심하기까지의 경로를 짐작하고 있었다.분명 맹교먹이 장공주를 몰래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맹교먹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며칠 전, 그녀는 이미 황제에게 대리 혼인의 진상을 털어놓았다. 맹교먹은 봉구안을 주시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사저는 늘 위험 속에서도 태연했다. 이것이 사저가 무서울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평범한 사람보다 감정을 더 잘 다스릴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사저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특히 이 일은 봉가와 맹가가 관련이 있다. 사저의 성격이라면, 이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두 가문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 분명했다. 이번 판은 자신이 이긴 것이라 생각하여다. 맹교먹은 장공주를
채월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씨께서 송 대부의 청혼을 받아들이신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제가 걱정되는 건 송가가 아씨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요. 나중에 괜히 헛된 기쁨을 누리다가 상처받는 건 결국 아씨일 겁니다.“구안 아씨, 제발 장미 아씨를 설득해 주세요.”채월은 늘 아씨를 위해 애쓰며 마치 친정 식구처럼 한 걸음 더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었다.봉구안은 북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송려가 봉장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때 그녀는 송려에게 먼저 집안 어른들을 설득한 뒤 봉장미에게 고백하라고 경고했었다.그리고 그 당시에는 봉장미가 송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이제 사태가 그녀의 예상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봉구안은 즉시 송려를 찾아갔다.그녀의 추궁에 송려는 솔직하게 시인했다.“나는 이미 결심했소. 봉장미가 아니면 누구도 아내로 맞이하지 않을 것이오.”“일전에 집안 어른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고,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소.”봉구안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속마음에는 분노와 의심이 억눌려 있었다.“정말로 사실대로 말했소? 장미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알렸소?”송려의 준수한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어색함이 스쳤다.그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아직 말하지 않았소. 하지만 꼭 말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오. 혼인 후에 내가 책임지고 불임이라고 말할 생각이오.”이 말에 봉구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이 함께하려면 기반이 튼튼해야 하오.”“거짓말로 쌓은 기반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소?”“게다가 거짓말은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소. 그뿐 아니라, 그대 자신은 정말로 평생 아이가 없는 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소?”그녀는 지금 둘이 단지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여겼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종 이런 애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에 의해 무너지는 법이다.비록 송려가 그녀의 친구이자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봉구안은
봉구안은 맹 부인을 뵙고 난 뒤 곧장 자유각으로 향했다.그녀는 남장을 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만약 가면을 쓴 채로 들어가면, 아마도 봉장미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유각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조용히 가면을 벗었다.마당에 들어서자, 봉장미가 그네에 앉아있고, 송려가 옆에서 조용히 그네를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송려의 눈빛은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했다. 이때 봉장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발견했다.“언니!”봉장미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왔다.봉구안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받아 안았다.봉장미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고,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얼굴에 간단한 화장으로 그려 넣은 가짜 흉터만 빼면, 두 사람의 모습은 거의 완벽히 닮아 있었다.“언니! 드디어 돌아왔네요!”송려는 뒤에서 이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봉구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랐다.더욱 놀라운 건 이 사람의 외모가 소환과 똑같다는 점이었다!하지만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잠시 생각한 뒤 금세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속으로 탄식했다.‘소환이 정말 나를 철저히 속였군.’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소환이 봉장미를 대하는 태도에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봉장미를 만나본 후, 봉구안은 사모의 머뭇거림이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다.이전 북방에 왔을 때와 달리, 봉장미는 이제 기억도, 정신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어린아이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녀의 정신은 온전히 제자리를 찾았다.이 모든 것은 송려의 뛰어난 의술 덕분이었다.세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갔고, 봉구안은 송려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어 말했다.“정말 감사드립니다.”송려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잠시 적응하지 못하다가 말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소.”그는 더 묻지 않았다.강호에서 정체를 숨기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한다면, 굳이 파고들 필요가
봉구안이 떠난 지 이틀 뒤, 소욱 역시 황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백성들의 불안을 막기 위해, 그는 남산왕과 여러 장수들에게 구중탑과 양연삭의 일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도록 특별히 당부했다.동방세는 자유로운 협객의 삶을 선택하며 다시 강호로 나섰다.천룡회의 음모로 많은 무림인이 목숨을 잃었기에, 이제 강호에는 더 많은 정의로운 이들이 필요했다.무림맹을 재건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동방세를 맹주로 추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동안의 일을 겪으며 스스로가 맹주에 적합하지 않음을 절감했고, 더구나 덕으로 원한을 갚을 만큼 대인배도 아니었기에 단호히 거절했다.“무림맹? 필요할 때는 보배요, 필요 없을 땐 썩은 짚단이지.”그는 이를 깨달았다.과거 수환이 왜 부맹주 자리를 죽어도 원치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음모와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강호가 조정은 아니더라도, 세속의 더러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동방세는 차라리 자유로운 협객으로 남길 원했다.그가 맹주를 거절하자, 무림맹은 다시금 무력으로 강자를 뽑자는 의견을 냈다.그리고 보름 뒤, 무림대회가 열렸다.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등장했다.천룡회 교주를 압살했던 염추가 연이어 고수들을 쓰러뜨리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무림인들은 결과를 승복했다.맹주가 여자라 한들, 아무도 그녀를 이길 수 없다면 그게 도리였다.그리하여 염추는 새로운 무림맹 맹주로 추대되었다.동방세가 안정과 균형을 중시했다면, 염추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맹주가 되자마자, 그녀는 무림맹의 본거지를 기존의 심가오에서 오양산으로 옮기고, 영향력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오양산.염추는 이 익숙한 장소를 바라보며, 과거 교주가 앉았던 자리 위에 당당히 올랐다.밤이 깊고, 대청 안에는 그녀 홀로 남았다.마치 여제의 등극처럼, 그녀의 눈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드디어, 더는 누구 아래에도 억눌리지 않아.”늘 그녀를 따라다니던 부하가 어둠에서 나와 단
“북방으로 가겠다고?”소욱은 봉구안이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자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다.소욱은 본래 구중탑의 일이 끝나면 봉구안이 자신과 함께 황성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였다.그래서 그녀를 기다리며 떠나지 않았던 것이었다.겨우 단회욱이 숨을 거두기를 기다렸건만, 이제 그녀는 단회욱의 유골을 위해 북방으로 가려 하다니…물론 그녀는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이런 일이 특별하진 않았다.하지만 그는?그녀는 그를 위해 생각해 준 적이 있었던가?소욱은 제자리에 선 채, 주먹을 조금씩 쥐어갔다.그가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다시 돌아올 것이냐.”봉구안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즉시 답하지 않았다.그녀가 잠시 망설이는 몇 초 사이, 소욱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나고 말았다.어둑했던 그의 눈동자는 삽시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그는 봉구안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문 뒤에 밀어붙이며 거칠게 물었다.“너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봉구안, 네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단회욱이 죽기 전에 했던 말 때문인가? 네가 나를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가 죽자마자 네 마음은 그쪽으로 기울어 버렸어!”봉구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북방에 가는 건 회욱 오라버니 때문만은 아닙니다…”소욱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전부 변명으로 여겼다.그는 들으려 하지 않고 차갑게 몰아붙였다.“네가 바라는 대로라면 황위를 내려놓으란 말이냐!”“좋아, 솔직히 말하지.”“대의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유언을 남기고 황위를 물려줄 수 있다. 하지만, 여인을 위해 천하를 포기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나는 너를 위해 끝없이 양보할 수 있지만, 저 흙바닥처럼 낮아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봉구안은 그를 밀쳐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북방에 가는 건 무엇보다도 제 쌍둥이 여동생 봉장미 때문입니다.”소욱은 순간 멍해졌다.장미? 봉장미?그 아이는 이미 죽지 않았던가?혹 그녀의 시신이 북방에 묻혀 있는 걸까?봉구안은 그에게 진실을 말
남산왕부.다음 날, 봉구안은 자신의 방에서 깨어났다.눈을 뜨니 한 시녀가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소 공자, 깨어나셨군요!”왕부의 시녀들은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그녀가 남장을 한 탓에 공자라 부르고 있었다.봉구안은 몸을 일으켜 앉아 이마를 짚으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양연삭이 도망쳤다.누군가 그를 구해간 것이다.분명 그들 눈에 띄지 않은 누군가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간단히 세수한 후 소욱을 찾아갔다.소욱은 그녀가 이렇게 일찍 깨어난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내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쉬어야 낫는다.”봉구안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곧바로 물었다.“사람을 보내 양연삭을 수색했습니까? 무슨 소식이라도 있나요?”소욱은 담담히 대답했다.“아직 아무런 실마리가 없다. 일어난 김에 아침을 들도록 해라. 양연삭은 중상을 입었으니 큰 일을 벌일 힘도 없을 것이다.”그가 말하는 사이, 눈빛으로 진한길에게 아침상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봉구안은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상 위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옆방.단정과 염추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염추는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네가 날 의심한다고? 단정, 사람이라면 양심은 있어야지. 난 너희들 중 누구보다도 양연삭이 죽길 바란다! 내가 그를 구했을 리가 없잖아!”단정의 의심은 단순히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네가 그렇게 딱 맞춰 나타난 걸 우연이라 믿으라는 거냐? 말해봐, 네가 우릴 몰래 지켜본 게 아니면 뭐겠어?”“예전에도 네가 우리 형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형이 네 도움이 가장 필요했을 때, 이번 구중탑에서도,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도, 오양산을 잃었을 때도, 네가 무슨 도움을 줬지?”“난 네가 진심으로 형을 돕고 싶어 했는지조차 의심스럽워. 도대체 목적이 뭐야!”“무슨 소란이냐.”봉구안이 문가에 서서 단호한 어조로 물었다.단정은 즉시 염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이 여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접근
양연삭을 상대하기 위해 소욱은 이미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호위병들은 결진을 이루며 그물을 내려 양연삭을 마치 고기잡이하듯 가두었다.곧이어 병사 몇 명이 주변을 돌며 위치를 바꾸자, 그물구멍은 더욱 단단히 조여졌다.양연삭은 두 손을 휘저으며 발버둥쳤다.그러나, 구중탑이 붕괴하면서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데다, 여러 명과 싸운 후 특히 소환의 일격까지 더해져 그의 진기는 안으로 흡수되기는커녕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평소라면 이 그물을 쉽게 부숴버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진기가 계속 새어나가며 그의 몸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화살을 쏴라!” 남산왕이 소리쳤다.이제 곧 대마두를 사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갑자기 주변에 하얀 연기가 터져 나왔다.그 연기의 중심은 바로 양연삭이었다.봉구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누군가 양연삭을 구하고 있었다!연기가 너무 짙어 모두 앞을 볼 수 없었고,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남산왕은 급하게 외쳤다.“화살을 쏴라! 어서 쏴라!”그러나, 양연삭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한 잔의 차를 다 마실 시간이 지나서야 연기가 완전히 가셨다.봉구안은 즉시 양연삭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그가 있던 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를 가뒀던 그물은 찢겨나간 상태였다.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확인하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녀의 반쯤 기댄 몸은 소욱의 어깨에 의지하고 있었다.소욱은 그녀를 그대로 안아 들며 냉랭한 표정으로 남산왕에게 명령을 내렸다.“온 도시를 뒤져 양연삭을 잡아라. 죽었으면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동방세는 그물을 살펴본 후 찢어진 자국을 보고 말했다.“검기로 끊은 것이군.”…남산왕부.귀환한 이들을 본 단정은 얼굴에 분노를 띤채 물었다.“양연삭은 죽었나요?”이어 소욱의 품에 안긴 채 의식을 잃은 봉구안을 보고는 급히 묻기 시작했다.“형수님,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양연삭에게 당한 것이란 말인가요? 이렇게 많
양연삭은 많은 이들의 내력을 흡수했지만, 이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봉구안의 말로 인해 그의 진기가 크게 요동쳤고, 몸속에서 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억제하려다 보니 만건성법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내력을 소모하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이 짧은 순간, 봉구안과 동방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파공참… 두 사람의 협동 공격이었다.봉구안은 자신의 검을 동방세에게 던졌고, 동방세는 먼저 직격으로 나아가 어지러운 검술로 양연삭을 몰아붙였다.양연삭이 몇 발자국 물러섰을 때, 그는 머리 위를 주시하지 못했다. 그 순간, 봉구안이 독수리처럼 급습하며 손바닥에 기를 모았다.쾅!봉구안의 손바닥이 양연삭의 정수리를 직격했다.양연삭의 두개골이 울리는 순간, 소욱은 곧바로 옆에서 손바닥으로 보강했고, 십이사명이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여러 갈래의 힘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양연삭은 본능적으로 진기를 발산하며 모두를 튕겨냈다.그의 면갑이 부서지며 드러난 얼굴은 단단하고도 강직한 모습이었다.쿵! 쿵쿵!모두가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남산왕과 장사들은 방패로 결진해 그들을 보호하며 물러서지 않았다.그러나 양연삭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발광하듯 비명을 질렀다.“아아악…!”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그의 시야에는 온통 붉은 빛이 퍼져 있었다.뜨겁고 비릿한 액체가 눈가를 타고 흘렀다.피였다.선혈이 두 줄기 눈물처럼 흘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소환! 소환!!” 양연삭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는 무작정 주위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돌들이 튕겨 날아가고, 땅은 기류에 의해 먼지가 날렸으며, 나무들이 쓰러져 내렸다.봉구안은 파공참을 사용하기 위해 전신의 내력을 한 곳에 집중했기에 자신을 방어할 여력을 두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일어서기조차 힘겨운 상태였다.소욱은 그녀를 부축하며 어깨를 감싸 함께 섰다.그는 그녀가 진정으로 양연삭을
옥령산.양연삭은 어지럽게 얽힌 바위 틈에서 뛰쳐나왔다.병사들은 적을 만난 듯 경계태세에 들어갔다.동방세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혼자서 양연삭을 저지해, 그를 그냥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곧이어 산을 지키는 십이사명이 출동해 진을 결성하였고, 양연삭을 가두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봉구안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격전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며 이어졌다.병사들이 활과 화살로 공격했지만, 양연삭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제대로 맞히기 어려웠다.봉구안은 가면을 쓰지 않고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그때 양연삭은 소욱을 알아보았고, 더불어 맹성주도 알아차렸다. 바로 자신의 아들 양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였다.맹성주가 아니었다면, 양소도 그렇게 비참한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양연삭의 가면 속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는 즉시 십이사명의 포위를 뚫고 소욱과 봉구안을 향해 돌진했다.봉구안은 장검을 뽑아 정면에서 맞섰다.소욱과 동방세는 양쪽에서 협공했다.세 사람은 마치 화살처럼 날카로운 진형을 이루었다.진한길과 병사들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 양연삭의 공격을 저지하며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양연삭의 목표는 분명했다. 먼저 소욱을 죽이고, 그다음 맹성주를 죽이는 것이었다.그는 전투 중 바위 파편에 의해 이미 중상을 입었으나, 그의 마공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방해가 되는 한 사명을 붙잡아 그들의 내공을 전부 흡수했다.나머지 열한 사명이 분노하며 외쳤다.“마두야! 목숨을 내놔라!”동방세는 가장 먼저 봉구안의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녀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예전 같지 않았다.양연삭의 함정에 빠진 봉구안이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동방세가 다급히 외쳤다.“비켜! 소환!”양연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소환?동방세가 맹성주를 소환이라 불렀다?설마… 맹성주와 소환이 같은 사람인가!?양연삭은 순간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다.새로운 원한과 옛 원한이
단회욱은 죽었다.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기력이 다해 있었다.그동안 간신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다섯 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이제, 그의 구안이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곁에는 친구와 연인이 있는 것을 본 이상, 자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완전히 힘을 놓아버렸다.그는 이 생에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단정의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찢어발겼다.온 왕부가 암울한 그림자에 휩싸였다.소욱은 뜰에 서서, 창백한 달을 올려다보았다.처음으로 마음이 불안해졌다.만약 단회욱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었을까?그들과 단 며칠 함께했을 뿐이고, 나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왜 봉구안이 과거에 단회욱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이토록 온화한 군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타인을 생각했다.소욱은 봉구안이 단회욱 때문에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뭐 하나 잡히지도 않고,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남산왕은 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불길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단회욱을 위해 묻을 자리를 찾겠다고 나섰다.하지만 단정은 이를 거절했다.그는 형을 옥령산에 묻고 싶지 않았다.양연삭도 옥령산에서 죽었으니, 형이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단정은 화장을 하고, 유골을 북방에 묻겠다고 했다.그곳은 형이 평생 가장 행복했던 곳이고, 형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형님께서는 살아 있을 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적어도 죽어서만큼은 북방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단정은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삼키며 봉구안에게 말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단회욱의 시신이 화장되던 날, 소욱도 자리에 있었다.그의 시선은 내내 봉구안을 향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줄곧 무표정이었다. 두 눈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마치 죽은 사람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