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이 체포한 이는 바로 맹교먹이었다. 그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고, 권위로 가득 차 있었다. “맹교먹, 너는 네 죄를 아느냐!” 교먹은 두 명의 호위에게 제압당한 채, 무의식적으로 봉구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분명히 거론된 것은 대리 혼인을 둘러싼 일인데, 어째서 그녀가 체포되었단 말인가? “폐하, 신첩은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장공주 역시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따졌다. “폐하, 이게 다 어찌 된 일이옵니까? 어찌하여 맹교먹을 잡으시는 것이옵니까?” 대리 혼인의 사실을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으나, 장공주는 폐하의 혈육이니 사정을 알려야 했다. 맹교먹의 속임수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소욱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짐은 이미 황후의 대리 혼인 사실을 알고 있다.” 장공주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폐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 하시면, 왜…” 소욱이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공주는 봉장미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궁금하다면 맹교먹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것이다.”장공주는 멍한 표정으로 교먹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교먹의 표정은 더욱 어둡고 복잡해졌다. 그녀도 알고 싶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황제가 이미 대리 혼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대리 혼인이라는 것은 분명 황제가 크게 진노할 사안이 아닌가! 황후와 봉가를 문책해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자신에게 죄를 묻는단 말인가? 교먹은 황후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깨달았다. 사저가 뭔가를 꾸민 것이 분명했다! ‘언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장공주는 조바심 속에서 물었다. “폐하, 교먹이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옵니까?” 봉구안이 자리에 일어섰다. 그녀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대리 혼인을 강요받은 것은, 전부 제 동생 봉장미가 맹교먹에 의해 해를 당했기
교먹은 사부와 사모의 배신에 젖어 분노로 떨고 있었다. 이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것은 자신에게 아직 면죄부 금패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교먹은 방금까지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 속에는 희망의 빛이 다시금 피어나기 시작했다. 교먹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무릎을 꿇어 죄를 인정했다. “폐하, 신은 죽어 마땅하옵니다!” “용호군의 일은 신이 적을 깊이 유인하기 위한 계책이었사옵니다.” “이 계책으로 양 나라를 정벌할 수 있었으나, 신은 매일같이 괴로움과 후회 속에서 살아왔사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은 여전히 군사를 버려 대세를 구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놓을 것이옵니다.” 교먹의 빠른 변명은 빈틈없이 그럴듯한 논리를 더하며 마치 충성을 맹세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었다. 황제 역시 대의를 위해 사소한 희생을 감수하는 자임을 말이다. 과거 황제는 위기를 마주했을 때, 소규모 병력을 희생해 겨우 돌파구를 열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황제가 그녀의 말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장공주는 분명히 믿었다. 그녀는 교먹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폐하, 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모두 강토를 지키기 위함이옵니다.” “몇 백 명의 희생으로 남제에게 넓은 영토를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방에서 수십 년, 나아가 백 년 동안 양 나라와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의미는 엄청난 것이옵니다!” “교먹이 비록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이는 후세에 길이 남을 공훈이라 생각하옵니다.” “용호군의 장병들이 자신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큰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반드시 황천에서도 웃으며 눈을 감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소욱의 눈빛은 얼음장 같았다. “희생당해야 할 자는 아무도 없다. 또한, 공주는 병서를 더 공부해야 할 듯하구나. 그리하면, 용호군의 희생이 적을 유인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확실히
장공주는 봉구안의 기만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것은 황실 전체를 우롱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소욱의 시선이 봉구안에게로 향했다. 그의 태도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이 일이 천하에 알려진다면 오히려 황실의 명예에 더 큰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더구나 황후는 어쨌든 봉가의 여인이니, 선제의 유훈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장공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폐하, 그럼… 그럼 이를 추궁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옵니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봉가가 저지른 것은 엄연한 기만죄였다. 황후의 자리는 황명의 결정 사항이다. 어떻게 신부를 바꿔치기할 엄두를 낼 수 있었단 말인가? 더욱이, 황제가 이를 이렇게 가볍게 넘기다니, 이는 말이 되지 않았다. “폐하,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사옵니다!” 장공주는 끝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황후의 대리 혼례에 관한 증거를 찾느라 그녀는 적잖은 노력을 들였다. 그것을 이렇게 쉽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 황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맹소장군을 모함하고, 황제를 유혹하며, 재물에 눈이 어두운 이 여인이 어떻게 황제를 제대로 보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여인은 황제를 해칠 터였다! 봉구안은 장공주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악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고요한 태도로 소욱에게 돌아서며 공손히 절을 올렸다. “폐하, 신첩 또한 스스로가 덕과 재주가 부족하여 이 자리에 합당치 않다고 여기옵니다.”“신첩은 황후로서의 중책을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장공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참으로 교묘한 퇴로였다! 이 여인은 정말로 수완이 뛰어난 자가 아닌가! 하지만 사실, 봉구안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녀는 이 궁에 오래 머물 계획이 없었다. 황후라는 자리도 그녀에게는 오히려 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소욱은 그녀의 발언을 단칼에 잘랐다. “
교먹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감금되었다. 한때 위풍당당하던 장군의 군복은 벗겨지고, 그녀의 몸에는 희끗희끗한 죄수복이 걸쳐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 속에는 불굴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봉구안을 보자마자 얼굴에 서릿발 같은 냉기를 드리우며 물었다. 주위에 다른 이는 없었기에 교먹은 바로 질책하였다. “언니, 그래도 옛정이 있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 “내가 이런 꼴로 전락한 것을 보니, 이제서야 후련하지?” “어떻게 폐하께서는 언니의 기군죄를 눈감아주신 거지?”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교먹은 봉구안을 조롱 섞인 눈빛으로 훑어보며 비웃었다. “아아… 알 것도 같아. 분명히 침상 위에서 폐하를 기쁘게 하려고 갖은 비위를 맞춘 거겠지!” “그치? 하긴, 궁 안의 여자들은 저 궁 밖의 기녀들과 다를 바 없으니까!” “때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고,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밑에서 기꺼이 몸을 굽힌 거겠지!” “언니, 언니가 이정도 천박할 줄은 몰랐어…”“폐하와 한 침상에 있을 때, 단씨 오라버니를 떠올리기는 했어?” “단 씨 오라버니는 아마 저승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야! 언니의 몸은 이미 더럽혀졌어!”“저승에서 단씨 오라버니를 만나도 오라버니는 더 이상 언니를 원치 않을 거야!”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순진하고 소심한 교먹이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진면목이었다. 혀를 놀려 온갖 더럽고 악독한 말들로 상대를 능멸하는 모습이었다. 봉구안은 교먹의 말을 일일이 해명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교먹, 넌 여기서 얌전히 지내며 남은 생을 반성하며 보내도록 해.” “네가 맹 소장군의 이름을 사칭한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것은, 너에게 남겨주는 마지막 생명줄이야.” “그러니 평생 이곳에서 반성하며 지내. 더 이상 다른 욕망을 품지 마.” “그렇지 않으면, 그 마지막 생명줄마저 내가 직접 끊어버릴 거
북연에서 온 사신 웅염이 당당히 나서며 말했다. “폐하, 저희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저를 보내, 폐하의 생신을 축하드릴 예물을 마련하셨사옵니다.” “다만 오는 길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일정이 지체되고 말았사옵니다.” “소신이 늦게 도착했음을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옵소서...” 이 핑계는 너무도 치졸했다. 분명 일부러 늦게 나타난 것 아닌가! 남제에서 대대적으로 제작한 죽화총이 완성될 때를 노려, 그 공을 가로채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북연 사람들은 어찌 이리도 낯짝이 두껍다는 말인가!남제 조정의 신하들은 속이 상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작 알았더라면, 군기감에서 그렇게 서둘러 제작하지 말라고 하였을 터인데… 일 년, 아니 반 년만 더 미루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황제 소욱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대의 귀와 눈이 유난히 밝은 것 같소.” 웅염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과찬이시옵니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폐하, 언제쯤 그 죽화총을 구경할 수 있사옵니까?” “남제는 대국이니, 동위와 같은 소국처럼 배타적이진 않을 줄로 믿사옵니다.” 이 말을 듣고 조정에 있던 모든 신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과거 동위가 신무기 '화룡'을 제작했을 때, 북연이 이를 노리고 참견하려 했던 일을 말이다. 북연은 '참관'을 빌미로 병기 도면을 훔치려 했으나, 작지만 기개가 있었던 동위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하지만 북연은 이를 계기로 동위를 무례하다며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침략했다. 가련한 동위는 급히 화룡을 제작했으나, 단 한 대로 북연의 대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국토는 유린당하고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 이후 북연은 동위에서 빼앗은 화룡을 통해 전장을 제패하며 위세를 떨쳤다. 지금 웅염이 동위를 언급한 것은 곧 남제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었다. 북연은 실로 오만함
장공주는 자신이 황후를 업신여긴다 여겼지만, 정작 이 죽화총의 도면을 그린 이는 다름 아닌 봉구안이었다. 그녀는 교먹이 반드시 개량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으나, 교먹은 처음부터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교먹은 그저 이 기회를 붙잡아 감옥을 벗어나고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보니 주저함이 앞섰다. 특히 황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죄에 또 죄를 물게 될 것이다.” 소욱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교먹은 마음이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다. 그저 시험 삼아 해보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그녀의 이런 얕은 수작은 황제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터였다.장공주는 불안해하며 간청했다. “폐하, 맹교먹은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말하려던 순간, 교먹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할 수 없사옵니다.” 장공주는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먹이 방금 뭐라고 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인가? 기존의 도면에 몇 가지 기계를 더하는 것에 불과한데,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던 교먹에게 어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교먹의 등에는 이미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죄를 더 짊어질 수 없었다. “폐하… 소인 확신할 수 없사옵니다.”봉구안은 냉랭한 눈빛을 보냈고, 소욱은 교먹에게 더욱 크게 실망했다. 이토록 위급한 순간에 그녀는 안 된다고 말하다니… 그가 기억하던, 절망 속에서도 출구를 찾던 소년 명장은 사라진 듯했다. 장공주는 교먹을 감싸며 다시 나섰다. “폐하, 맹교먹은 그저 잘못될까 두려워 말한 것뿐이옵니다.” “제발 이 아이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지금은 힘을 뭉칠 사람이 많을수록 득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녀는 그러면서도 봉구안을 노려보았다. “황후마마, 어쩌자고 맹교먹을 이토록 몰아붙이는 것입니까!” 소욱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북연 사신들은 연일 남제의 군기감에 머물며 기세등등하게 구는 중이었다. 그들은 한 군기고 앞에 이르렀으나, 출입을 금지당하자 크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사신을 대표하는 웅염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황제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죽화총을 보여주겠노라 약조하셨다. 너희 따위가 어찌 감히 이를 막겠단 말이더냐!” 군기감의 감장이 직접 나서 예를 갖추며 사죄했다. “대인, 죽화총은 아직 완전히 제작되지 않았사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청하옵니다.” 웅염은 남제가 이를 일부러 지연하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남제가 이미 몸을 낮춘 상황에서 북연이 지나치게 몰아붙였다가는 도리어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며칠을 더 기다린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떠나기 전, 웅염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어차피 우리 북연에게 보여주게 될 터. 더 이상의 시간은 끌지 말거라!” 그가 떠난 뒤, 군기감의 관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분개했다. “북연의 횡포가 정말 도를 넘었군!” …저녁이 되자, 소욱은 영화궁에서 봉구안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조용히 말했다. “맹교먹의 죄가 산처럼 쌓여 있소.” “이번에 큰 공을 세운다 한들, 짐은 그 아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이 말은 이어질 주제를 꺼내기 위한 서두였다. 그는 봉구안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장공주의 말도 맞소.”“짐은 맹교먹에게 감옥 안에서라도 도안을 그리게 할 것이오.” “그 아이가 성공한다면 당장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터…” “짐은 그대가가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이번 일은 대의를 위한 것이니,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아주시오.” 봉구안은 손을 빼내며 고개를 숙여 말했다. “신첩, 명심하겠사옵니다.” 등불 아래 비친 그녀의 옅은 미소를 본 소욱은, 잠시 감정이 흔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협소한 공간, 침상 위에서 봉구안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소욱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 그녀를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곳에 가둬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맞춤을 피하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그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갑작스레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왜 피하는 것이오?” 봉구안의 눈동자는 고요한 우물과도 같았다. 그녀의 두 주먹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소욱은 이를 갈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갑작스레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강하게 훑으며,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숨결은 거칠어졌고,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허리띠에 닿아 단숨에 풀어버렸다. 여러 겹의 옷 위로 그의 뜨거운 손길이 그녀의 매끈한 아랫배를 덮었다. 그는 그녀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고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자를 낳아주시오.아니, 황자를 낳거라.” 이것은 협상의 말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그녀의 옷을 마구잡이로 벗기기 시작했다. 봉구안은 고개를 돌려 침상 너머의 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고, 미간은 단단히 좁혀져 있었다. “폐하, 저는 동침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 이 말은 마치 평지에 벼락이 치는 듯했다. 소욱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몸을 약간 들어 올리고 그녀의 얼굴을 강제로 돌려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뭐라고 하였소?” 그의 눈에는 분노와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정리된 상황에서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거짓말을 문제 삼지 않으려 했는데도 말이다. 봉구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처럼 차갑고, 소나무처럼 단단했다. “폐하께서 황자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낳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옵니다.” 소욱은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차갑고 냉랭
오백이 동산국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봉구안의 표정은 곧바로 냉엄해졌다. 소욱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일찍 말하지 않은 건, 네가…” “살아 있습니까?” 봉구안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직접 물었다. 소욱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현재로서는 포로로 잡혀 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하니 걱정 말거라. 이미 구출 작전을 진행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오백의 일은 절대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봉구안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 소욱에게 말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단대연을 찾는 것입니다.” 그날 황제는 단대연을 급히 소환했다. 그날 당일.단대연이 어전에 들어서자, 황후 또한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회임한 듯한 작은 배를 살짝 드러낸 모습이었다. 봉구안은 회임한 경험은 없었지만, 수많은 임산부를 보며 체득한 모양인지, 정확하게 임산부의 걸음을 흉내 내고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지만, 항상 태아를 신경 쓰는 듯한 몸가짐이었다. 단대연은 공손히 두 사람에게 절을 올렸다. 며칠 전까지 단대연은 거미줄로 불리는 은밀한 조직의 잔당을 찾아다니며, 동방세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그는 십방산의 해독제를 받기 위해 도성에 와 있었고, 진전 상황을 보고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제가 이렇게 급히 부를 줄은 몰랐다.봉구안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단대연,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날 위해 나서줄 수 있겠느냐.”그녀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단대연은 곧바로 물었다.“무슨 일이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그의 태도는 진지하면서도 친근해, 마치 오랜 벗처럼 보였다.봉구안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몇 달 전, 나는 동산국의 비밀 상로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 상로는 약쟁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어, 사람을 보내 조사를 진행하였지. 허나 내가 동산국에 보낸 자가 동산국에 붙잡혔다는 소식
진한길이 떠난 뒤, 장순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서둘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침상 위에는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 빼면, 그녀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장순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그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힘겹게 말했다.“어머니, 제가 교무당에 들어가게 됐습니다.”“이제부터 매달 조정에서 제게 녹봉을 줄 것이라 합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약을 살 돈이 생겼습니다!”그의 모친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왔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장순이 과거시험에 목을 매고 관리가 되려 했던 이유도 어머니를 치료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그에게 글을 읽고 과거에 급제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올해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황제가 갑작스레 시험 일정을 앞당겨버리고 말았다.그는 황제에게 크게 원망을 품었고, 그 분노를 풀기 위해 등불에 황제를 비방하는 시구를 써넣었다.등불들이 따로 팔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구가 연결된 것을 발견한 관아가 그를 붙잡았다.칠석날 관아에 잡혀간 그는 며칠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그 시간 동안 그는 깊이 후회했다.그가 붙잡힌 동안 아무도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출소한 후에도 다시 붙잡혀 더 큰 벌을 받을까 두려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그러나 예상 밖으로 황제는 그를 벌하기는커녕, 교무당 입학을 허락하고 모친을 치료할 어의까지 보내주겠다고 했다.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이제부터는 황제 폐하를 찬양하는 시를 더 많이 써야겠습니다!”장순이 침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모친은 미동조차 없었다.깨진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휘날리고, 어두운 입술 위로 햇살이 스며들었다.장순이 교무당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곧 숙부님 집에도 전해졌다.칠석날 그를 꾸짖으며 거의 연을 끊으려 했던 숙부와 숙모는 황제의 은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소욱은 봉구안의 대답에 눈빛이 따뜻하게 녹아내렸다.그는 그녀의 손을 놓기 아쉬운 듯 꼭 붙잡으며 말했다.“내일 바로 이 일을 공표하도록 하마.”그러나 봉구안은 차분히 말했다.“그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남제의 사경이 불안정하니 우선 적군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다. 그럼 이만 식사부터 하자구나. 이 일은 나중에 다시 논하자.”그는 그녀가 오랜 여정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봉구안은 배가 고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내 곧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폐하께서 제 손을 붙잡고 계시니 제가 젓가락을 어떻게 쓰겠습니까?”소욱은 웃으며 답했다.“그럼 내가 친히 먹여주도록 하마.”“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봉구안은 그의 손가락을 재빨리 풀며 단호히 말했다.……궁으로 돌아가기 전, 봉구안은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성 외곽의 한 농가.뜰은 난장판이었다.개가 닭을 쫓아가고, 닭은 날아오르며 달걀은 땅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어른스럽게 뜰 구석에 앉아 대나무 바구니를 엮고 있었다.그의 발치에는 낡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소년의 이름은 장구단, 학명으로는 장순이라 불렸다.그는 낯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경계하며 바구니를 내려놓고 벽에 기대 있던 막대를 집어 들었다.“누구를 찾으십니까!”진한길과 몇 명의 호위병들은 칼을 차고 서 있었고, 이 모습은 순박한 시골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소년의 얼굴은 때가 묻어 칙칙했지만, 검은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났다.그는 진한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 사람이 평범한 이가 아님을 알아챘다.진한길은 소년의 사정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지붕은 기와가 빠져 비 오는 날이면 물이 새기 일쑤일 것 같았고, 기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문 옆에 붙은 대련은 소년이 직접 쓴 듯했지만, 형편없는 종이와 먹물로 인해
소욱은 곧바로 봉구안을 일으키려 하며 물었다.“황후, 어서 일어나거라.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그녀가 비응군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어느 쪽이든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봉구안은 일어나지 않은 채,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비응군을 북대영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소욱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그녀가 이 문제를 위해 이렇게까지 예를 갖추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며 말했다.“구안아, 너와 나 사이에 이런 격식은 필요 없지 않느냐.”“비응군의 일이라면 그냥 내게 따로 부탁했으면 됐을 것이다.”그 말에 봉구안은 품에서 병부를 꺼냈다.그것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소욱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맡겼던 병부였다.봉구안은 그것을 항상 신중히 보관해왔고, 이제 남제로 돌아왔으니 마땅히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소욱은 병부를 받지 않았다.그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부부는 일심동체다. 나의 것은 너의 것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명확히 구분하려 하느냐? 병부는 네가 계속 가지고 있어라.”그러나 봉구안은 단호히 말했다.“여인은 국정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병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이 병부는 폐하께 돌려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조정 관료들이 알게 되면 쓸데없는 소란을 일으킬 것입니다.”소욱은 그녀의 고집에 결국 병부를 받아들였지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마음을 품은 채 조용히 있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이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소욱은 더 이상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봉구안의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구안, 내가 너를 황후로 맞아들인 건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대영을 자유롭게 이끌던 너에게 이 궁은 분명 답답한 곳이었을 것이다.”“너는 분명 억울했겠지.”“네가 소장군이었다면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우고, 심지어 봉왕이나 봉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