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때 모진남이 두말없이 검을 들고 돌진했고 손에 도목검을 든 채 조무적의 몸을 가격했다.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무적의 온몸에는 불이 났다. 하지만 그 불은 타오르는 듯하더니 몇 초 만에 사라져 버렸고 일반 좀비들처럼 잿더미가 되기는커녕 얼굴만 새까맣게 탔을 뿐이었다. “모산 도술이 통하지 않다니!” 모진남에 놀라움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아수라, 성주와 태세 등은 이미 모진남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모진남도 반신이었고 그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면은 바로 도술이었다. 그런데 모산 도술이 이 녀석들에게 아무런 위협을 주지 못하는 지금, 모진남은 이들과의 싸움에서 점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하천이 다시 천궐도를 들고 달려들어 엄청난 기세로 아수라 등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하천이 곧 공격을 하려는 찰나, 신전 안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가자!!!” 이 목소리는 아주 온화하고 듣기 좋았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하천은 제자리에 완전히 멍해지고 말았다.20년이 지났지만 하천은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이 목소리는 바로 하천이 꿈에서도 오매불망 그리던 그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하천이 어렸을 때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기도 했다. “어머니!!!” 하천은 더 이상 마음속의 흥분을 억제하지 못했고 심지어 아수라 이들과 더 이상 전투를 치를 겨를도 없이 당장 신전 안으로 성큼성큼 달려갔다. “틀림없어, 틀림없이 어머니야. 내가 잘못 들었을 리 없어.” “신전의 신녀가 바로 내 어머니 강릉평이야.” 하천은 이미 눈시울이 촉촉했다. 그는 신전 안의 백의 신녀가 바로 그의 어머니였음을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 당시 음령설산에 왔을 때 강릉평은 분명 나타났었고 하천은 그녀의 품속에서 아주 편히 잠들었던 것도 진짜 사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강릉평은 결국 하천을 남겨 둔 채 그 이상한 옷을 입은 괴한들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괴한들이 다
“설마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좀비가 된 건 아닐까요?” 모진남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만약 강릉평이 정말 좀비라면 왜 다른 좀비들과 달리 의식을 가지고 있고 정상인처럼 보이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방금 본 강릉평의 모습은 일반인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천은 머리가 혼란스러웠고 아무런 단서가 없는 지근 그 어떤 것도 확정 지을 수 없었다. “저 몇 구의 좀비들이 백의 신녀를 들고 떠났고 우리는 저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으니 먼저 녹성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아직 시간도 있으니 가서 천천히 의논해 보자고요. 급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요.” 이 말에 하천이 고개를 끄덕였고 비록 아쉽긴 했지만 모진남과 함께 몸을 돌려 이곳을 떠났다. ... 한편 신전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태세 등 4명은 그 흰색 가마를 든 채 달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진기를 이용하여 발 밑에 소용돌이를 형성하여 허공 속에서 달리고 있었기에 강도 쉽게 건널 수 있었다. 그 가마 안에는 백의 신녀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이때 맑고 투명했던 신녀의 눈동자 속에는 한 줄기의 빛이 슥 스쳐갔고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하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신녀는 무언가 어렴풋이 떠오를 듯 말 듯했다.점차 백의 신녀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머리가 윙윙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수많은 단편의 기억들이 삽시간에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백의 신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단편의 기억들이 하나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아아악!!!” 잠시 후 가마 안에서는 백의 신녀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마를 들고 있던 태세 등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그들이 얼마나 질주했는지 모르지만 하늘에 떠있던 태양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결국 큰 산의 산기슭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잠깐 산기슭에서 머무르더니 다시 가마를 들고는 끊임없이 정상으로 오르기
“그야, 바로 그야! 그가 나타난 거야. 하하하, 그가 드디어 왔어!” 법대 위의 모든 움직임이 사라진 후,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그 흑포 신사는 마치 간식을 얻은 초등 학생처럼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흑포 신사는 매우 흥분한 채로 궁전을 뛰쳐나와 백의 신녀 앞에 왔다. “신녀, 4권의 기서가 모였어.” “무슨 뜻입니까?” 백의 신녀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흑포 신사가 대답했다. “내가 방금 알아본 결과 네가 만난 그 두 사람은 몸에 4서를 품고 있어. 전설에 의하면 5서를 모으면 신이 될 수 있다고 해.” “이제 곧 난세황 기서가 탄생할 테니 나머지 4서가 감응을 일으켜 그들을 이곳으로 모은 거지.”“감응했다고요? 그럼 제가 만난 그 사람들도 모두 난세황 기서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건가요?” “그렇다.” 흑포 신사가 말했다.“그들은 틀림없이 밖에서 온 사람들일 것이다.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난세황 기서를 찾기 위해서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미 가신의 경지에 오른 우리 주인님의 상대는 되지 못할 거다. 그러니 그들은 단지 주인님이 신령의 되는 길의 제물 같은 거지.” 이 말을 들은 백의 신녀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난세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난세황 기세도 세상에 나오기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건 걱정 말거라.” 흑포 신사가 매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처음부터 다른 방안으로 세워두었다. 네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피나방으로 난세를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여기까지 말한 흑포 신사는 갑자기 깔깔거리기 시작했고 그 표정은 아주 역겹고 공포스러웠으며 매우 기괴한 느낌까지 들었다. “신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난 피나방을 연구하러 갈 테니 너도 이제 가서 쉬거라. 난세를 만드는 일은 이제 나에게 맡기면 된다.” 말을 마친 흑포 신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떠났고 이에 백의 신녀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백의
“큰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들인 하천까지도 희생될 겁니다.” 이 순간 하행풍은 다소 격동한 채 말하기 시작했다. “큰어머니, 숨길 필요 없어요. 어떤 감정은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위장해도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진가신이 큰어머니를 살렸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큰어머니의 영혼, 심지어 기억까지 완전히 깨뜨린 겁니다.” “하지만 큰어머니는 기억이 부서진 기억들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큰어머니가 기억하길 원하면 언젠가는 다시 그 기억들을 복구할 수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진가신이 정말 신령이 되기 위해서는 큰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들인 하천의 목숨까지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천의 손에 4서가 있기 때문이죠. 하천 또한 5서를 모아 신령이 되려 하니까요.” “지금 바깥 세계는 아주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하천은 그 재난에서 세상을 구할 중책을 짊어지고 있고 말입니다.” 백의 신녀는 하행풍의 말에 순간 움찔하며 무언가 생각난 듯했지만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당장 꺼져.” 백의 신녀가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하행풍은 떠날 생각이 없었고 바로 구석에 서있던 아수라의 앞으로 이동하여 그의 목을 졸랐다. 순간 아수라는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렸지만 백의 신녀의 명이 없었기에 감히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큰어머니도 신결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신결은 일정한 정도로 한 사람의 과거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말한 것들을 믿지 못하겠다면 신결로 이 자들에게서 느껴보십시오. 이들 모두 아들 하천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들 모두 전에 하천과 대적한 적 있던 녀석들이니까요. 특히 제 눈 앞에 있는 아수라는 하천과 아주 질긴 연을 갖고 있던 숙적이고요.” 한동안 백의 신녀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하행풍이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정원 밖에서 갑자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자들이 걸어왔다. 이를 발견한 하행풍은 미간을
“으아아앙!!!” 한바탕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단잠에 빠져 있던 부부를 깨웠다. 이때 여인은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아들의 작은 침대로 향했다. “아들, 왜 그래? 악몽 꿨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 옆에 있어.” 여인은 곧바로 작은 침대에서 아들을 일으켜 품에 안고 끊임없이 그를 어루만지며 달래 주었다. 하지만 이 남자아이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점점 더 대성통곡했다. “아들, 왜 그러는 거야?” 여인은 그제야 어린 아들의 목이 피로 물들었고 이빨 자국도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야? 한 밤중에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소년의 울음소리에 남자 또한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고 말투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 사실 남자는 매일 낮에 힘들게 일을 하곤 했기에 저녁의 잠 자는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 하지만 아들의 울음소리에 꿀 같은 잠에서 깨어버리니 마음 속에는 약간 불만의 감정이 든 것이다. 그렇게 남자 또한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와 아이 쪽으로 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피나방 한 마리가 남자에게 날아와 그의 목덜미를 세게 물어버렸다.“악!!!” 놀란 남자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목을 쳤다. 그러자 미처 도망가지 못한 피나방은 남자의 손바닥에 의해 그대로 뭉개졌고 그의 손은 이미 피로 흥건해졌다. “뭐야? 여보는 왜 또 그래? 귀신이라도 봤어?” 여인이 뒤돌아서는 순간 그대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험상궂은 얼굴과 함께 목과 온몸은 붉은 핏줄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인이 그대로 자리에 멈춰선 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상황 파악이 채 되지 않은 순간,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바로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어린 아들이 그녀의 가슴을 덥석 베어 뜯은 것이다. “이, 이게?” 푸슉- 가위가 몸을 찌르는 소리였다. 남자가 언제 테이블 위의 가위를 잡았는지 모르지만 이미 자기 아내의 뒷목을 찌른 것
“이제 어떻게 하지?” 김대관이 속이 타기 시작했고 이때 하천과 모진남이 도착했다. 그리고 하천은 곧바로 천궐도를 뽑아 들고 말했다. “피나방에 물린 사람들은 모두 이성을 잃고 괴물로 변하니 그게 누구든 모조리 처리해야 합니다.” “김대관님, 나머지 병사들도 호출하여 전부 방호복을 입힌 후 무릇 피나방에 물린 자들이면 전부 죽이라고 명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비록 김대관은 백성들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자였지만 이 상황에서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천과 모진남 그리고 조진원의 인솔하에 많은 병사들이 녹성 안에서 피나방에 물린 사람들을 찾아 처리하기 시작했다.모진남은 모산 도술을 이용하여 피나방을 없애려 했지만 이 피나방의 수는 너무 많았고 이동속도 또한 너무 빨랐기에 모산 도술만으로 이것들을 전부 소멸하기는 어려웠다. 시간은 곧 한밤중이 되었다. 하천 이행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드디어 성 내에 피나방에 물린 사람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그 후 하천 일행은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그 상공에는 붉은 형체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것들은 피나방이었다.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피나방이 전부 이쪽으로 몰린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두피가 저려왔다. 그 공중의 피나방은 정말 너무 많았고 적어도 수십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모진남은 곧장 맨 앞으로 다가가 거대한 부적을 날려 보내자 허공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대량의 피나방은 공중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태반의 불나방은 이미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한데 모여 공격해오곤 했다. “이대로는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이 피나방이 날아들면 우리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하천과 모진남은 즉시 체내의 진기를 이용하여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냈고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전부 보호할 수는 없었다. 필경 이 피나방의 수는 정말 너무 많
“형, 그 백의 신녀가 제 어머니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하천이 물었다. 그러자 하행풍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하천, 네가 이번에 여기에 온 것도 난세황 기서 때문이겠지? 나와 함께 가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어디로 가는 건데요?” 하천이 물었다. 이때 날은 철저히 어두워진 뒤였고 하행풍은 고개를 들어 어둠에 휩싸인 하늘을 물끄러니 바라보더니 말했다. “함께 날자.” 하천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아직 하천이 멍하니 서 있을 때, 온몸에 불꽃을 머금은 봉황 한 마리가 이미 하행풍의 몸에서 날아올랐다. 비록 이 봉황은 봉황결에 의해 기운이 모여 형성된 것이지만 이것은 고대 신령의 남긴 신결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기운으로 만들어진 봉황은 이미 완전히 진짜 봉황처럼 보였다. 바로 이때 하행풍은 그 봉황의 등에 올랐고 하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천, 얼른 올라와. 데리고 이 공간 전체를 보여줄게.” 비록 하천은 하행풍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망설임 없이 그 봉황의 등 뒤에 올라탔다. “모진남 선배님, 녹성의 피나방은 이미 전부 소멸됐으니 잠시 여기서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하천은 한마디 분부했고 모진남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행풍은 하천과 함께 봉황을 타고 바로 성문 쪽으로 날아갔다. 이때 김대관은 이미 새로운 병사들을 파견하여 성문을 지키게 했고 전에 피나방에 물린 병사들도 철저히 통제하였다. “뒤로 물러나세요.” 하행풍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으로 법결을 만들었고 그 성벽 위로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의 불꽃이 그 성벽 위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하행풍은 고개를 돌려 하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불꽃은 내일 새벽까지 타오를 거야. 그러니 다른 피나방들이 이곳으로 날아와도 절대 성벽을 뚫진 못할 거야.” “형님,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하천이 물었다.그러자 하행풍이 대답했다. “피나방이 난동을 부리니
도시 내에는 여전히 피나방들이 돌아다녔고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인 신조는 날개를 퍼덕이며 그 속으로 뛰어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피나방들을 소멸시켰다. 이때 하행풍이 말했다. “현재 천하에 대란이 일어난 건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어. 때문에 난세황 기서가 나타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뿐이야.” “그러니 가능한 빨리 사람들을 도와 이 피나방들을 없애자고.” 그러자 하천이 말했다. “형님의 말에 의하면 이 피나방들은 가신궁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가 그곳에 가서 진짜 근원을 찾고 파괴하지 않는다면 이 피나방들 또한 완전히 소멸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곳의 모드 도시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피나방을 소멸하는 것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아닐까요?” 하행풍은 여전히 신조를 타고 밤하늘의 먼 곳을 향해 날며 말했다. “하천, 큰어머니가 널 기억한가면 반드시 이 모든 걸 막으실 거야.” 이 말을 들은 하천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 다음날 저녁, 그 신궁 뒤의 큰 산이었다. 온통 기괴함과 공포로 휩싸인 제대 중앙에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흑포 신사가 앉아 있었고 여전히 무수한 피나방을 만들어 하늘로 날려보내곤 했다. 사실 어젯밤 흑포 신사가 풀어놓은 그 피나방들로 온 천하를 엉망으로 만들기에는 아주 충분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흑포 신사는 피나방이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인 듯 매우 만족했고 그래서 전혀 멈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 산 전체는 짙은 악취로 가득 찼고 그 산 아래 움푹 파인 곳은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곳으로 변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저릿한 느낌이었다. 신궁 이쪽, 백의 신녀는 뒷산의 방향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피나방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낮에 하산했을 때 봤던 그 화면들을 떠올렸고 눈살을 찌푸렸다.신녀의 머릿속에는 때때로 단편적인 장면들이 스치곤 했는데 이로 인해 그녀의 확고하던 신념에 큰 변화가 일어난 듯했다. 백의 신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고 곧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