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정민식이 크게 소리치면서 순식간에 진서준의 앞에 나타났다.종사가 만든 기운은 예리한 검보다 더욱 날카로웠다. 무관 안에서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무시무시한 공격을 마주한 진서준은 천천히 손을 들어 정민식을 상대했다.쿵...마치 폭탄이 터지듯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서둘러 자기 귀를 막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과 정민식을 바라보았다.“이... 이게 인간의 힘이야? 정말 너무 무시무시한데?”“저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야, 괴물!”링 위, 정민식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눈동자에서 당장이라도 경악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그는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진서준은 꼼짝하지 않았다.진서준은 오히려 태연한 표정이었다. 마치 정민식이 존재하지 않는 듯 말이다.“내가 말했죠.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이번엔 내 차례예요.”진서준은 말을 마친 뒤 단전 안의 홍수와도 같은 영기를 오른팔에 집중시켰다.그의 오른손바닥 위에 청색 빛이 나타났다.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마침내 정민식의 기운을 집어삼켰다.정민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손을 거두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곧이어 그 힘은 정민식의 방어를 뚫었다. 정민식은 순식간에 멀리 날아가서 링 변두리에 심하게 부딪혔다.무관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강옥산 부자는 벌벌 떨었다. 그들은 진서준에게 복수하겠다고 나댔던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피를 토하고 있는 정민식을 바라보며 말했다.“이게 바로 당신이 말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거예요?’정민식은 뻘쭘했다. 그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그는 이렇게 젊은 진서준이 자신보다 실력이 더 강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넌... 넌 실력이 확실히 아주 강해. 오늘은 내가 졌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지.”정민식은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서울에 1초라도 더 있고
진서준은 정민식이 어느 문파 사람이든 상관없었다. 오늘 그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절대 쉽게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그렇다면 목숨 걸고 싸워야겠군!”정민식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더니 온몸의 힘을 두 주먹에 집중했다. 주먹 위 기운이 조금 전보다 더 무시무시해졌다.“그래봤자 소용없는데 말이죠.”진서준은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는 정민식의 목숨을 건 공격이 안중에도 없었다.진서준이 보기에 그 주먹의 위력은 유혁수와 비교할 수도 없었다.“이 공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냥 보내줄게요.”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진서준이 자신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안전히 보내주겠다고 하자 정민식은 곧바로 투지가 불타올랐다.정민식은 자신이 온 힘을 다하면 진서준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진서준을 다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곧 정민식의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해졌다.그가 본 진서준은 마치 왕처럼 도도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진서준을 경배하고 싶었다.진서준의 눈빛에는 카리스마 넘쳤고 청색 빛이 번쩍이는 손은 마치 푸른 산과 같았다.진서준은 모든 것을 단숨에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진서준의 손바닥과 정민식의 목숨을 건 주먹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링마저 떨리는 것 같았다.쿵!정민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마침내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진서준의 공격을 받은 정민식은 자신이 바닥에 있는 개미처럼 느껴졌다. 그의 생사는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의 생사를 장악한 사람은 눈앞의 무시무시한 청년이었다.정민식은 다시 한번 날아갔다. 이번에는 링 위에서 곤두박질쳤다. 그는 허공에서 몇 번이나 피를 토하며 핏빛 곡선을 남겼다.엄청난 힘은 사라지지 않고 정민식의 팔을 타고 마치 태풍처럼 그의 몸속 곳곳에 휘몰아쳤다. “아...”정민식은 이번 생은 끝장이라는 걸 직감했다. 경맥이 여러 군데 끊겼
강옥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정민식의 단전이 파괴된 걸로 진서준의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강옥산은 오늘 그와 그의 아들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걸 알았다.그는 이미 늙었지만 그의 아들은 젊었다. 어쩌면 앞으로 그를 위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강성준은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앞으로 꼭 복수해 드릴게요.”“됐어. 그만 얘기하고 얼른 떠나...”강옥산은 강성준을 사람들 사이로 밀었다.강성준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무관 밖으로 나갔다.진서준은 정민식에게 집중하느라 강옥산 부자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당신을 죽일 생각이었더라면 조금 전에 이미 죽였을 거야.”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난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야. 당신은 평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거야.”진서준은 아주 잔인했다. 하지만 진서준이 정민식의 상대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진서준이었을 것이다.유지수의 복수로 진서준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적을 봐준다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올 거란 걸 말이다.정민식은 그 말을 듣더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지금 날 죽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사형과 사부님을 찾아가서 복수해달라고 하게?”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그래, 난 언제든지 괜찮아.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야.”정민식이 조금 전 말한 정월문을 진서준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사부님이 대종사면 뭐 어떤가?진서준은 이틀 전 우소영을 혼쭐냈고 그녀의 사부님도 반보 대종사였다.그러나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전라도 쪽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가자...”정민식은 세 제자에게 부축해 달라고 한 뒤 절뚝거리며 용행 무관을 나섰다.무관 안의 사람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일반인인 그들은 오늘 견문을 넓힌 셈이었다. 다른 세계를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진서
강성준은 용행 무관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명의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혔다.“비켜요!”강성준은 네 사람을 보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자신의 앞을 막은, 중간에 있는 짧은 머리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남자는 절대 밀려나지 않았다.“얼른 비켜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강성준은 얼굴이 빨갛게 됐다. 그는 진서준이 자신을 봤는지 보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만약 진서준이 그가 몰래 도망친 걸 알게 된다면 큰일이었다.“아버지 단전이 파괴됐는데 그냥 이렇게 도망친다고?”하신우는 억울한 얼굴의 강성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당신들은 대체 누구예요?”강성준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면서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하신우 등 네 명을 바라봤다.강성준은 눈앞의 네 사람과 척진 기억이 없었다.“여기서는 얘기하기가 불편하니 장소를 바꾸자고.”예준섭은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려 먼 곳으로 걸어갔다.“만약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우리를 따라 와. 복수하고 싶지 않다면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고.”예준섭 등 네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성준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조금 전에 그는 온 힘을 다해 하신우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는 마치 산처럼 꿈쩍하지 않았다.그렇다는 건 그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의미했다. 심지어 정민식보다 더 강할지 몰랐다.이건 기회였다. 물론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느 것이든 한 번 도박해 볼 생각이었다.강성준은 예준섭 등 네 명을 따라서 한 호텔에 도착했다. 룸을 하나 잡은 뒤 예준섭은 강성준에게 말했다.“앉아.”“우리 정체가 궁금하지?”예준섭이 웃으며 물었다.“그래요. 당신들은 대체 누구죠? 난 당신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강성준이 긴장한 얼굴로 예준섭 등을 바라봤다.“우리 일찌감치 만났었더라면 지금쯤 네 무덤에 풀이 삼 미터까지 자랐을 거야.”변정선은 차갑게 웃더니 조롱 가득한 얼굴로 강성준을 바라봤다
“저야 당연히 좋죠. 그런데 정말 제가 가입해도 되나요? 전 종사도 아닌데...”“혈운 조직에 가입하면 전문적으로 훈련해 주는 사람이 있어. 네 재능이라면 1, 2년쯤 뒤면 종사가 될 수 있을 거야.”강성준은 당황했다.“1, 2 년 만에 종사가 될 수 있다고요?”그의 사부님인 정민식은 40여 년 동안 수련해서 겨우 종사 경지에 다다랐다.강성준은 정민식의 곁에 6, 7년 동안 배워서야 암경을 수련했다.“종사가 되기는 몹시 어렵지만 우리 혈운 조직에는 전문적인 수련 방법이 있어. 물론 그 전제는 네가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함영식은 느긋하게 말했다.“버틸게요. 아주 위험하다고 해도 꼭 버티겠습니다!”강성준이 곧바로 장담했다.강성준에게 있어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만약 2년 안에 종사가 될 수 있다면 아버지를 위해 복수할 기회가 생긴다.“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 실제 상황을 봐야 하니 말이야.”함영식은 계속해 말했다.“종사는 무도 길에 있어서 시작점에 불과해. 종점이 아니야. 우리 손에 죽은 종사만 해도 두 자릿수가 넘어.”강성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압니다...”혈운 조직은 종사를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홀로 남겨진 종사라면 절대 혈운 조직과 마주치지 못했다.그들과 마주친다면 죽음뿐이었기 때문이다.“혈운 조직에 가입하려면 뭘 바쳐야 하나요?”강성준은 갑자기 그 문제가 떠올랐다.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당시 강옥산은 그를 정민식에게 많은 돈을 썼었다.그러니 혈운 조직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들어가는 것도 당연히 공짜는 아닐 것이다.“네 평생을 바쳐야 해. 넌 평생 혈운 조직을 배신할 수 없고, 평생 우리 조직을 위해 움직여야 해.”함영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조직의 사람으로 살고 죽어서도 조직의 귀신이 되는 거야.”“문제없습니다. 할게요!”강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다.“하지만 조직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예준섭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을 죽이는 거?”“
“이 선생님, 이거 200년 된 새박뿌리예요. 이 품질 좀 보세요. 이렇게 좋은 걸 어디서 사겠어요? 60억이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에요. 이 선생님이 부영권 씨 제자만 아니었어도 이 선생님에게 팔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한 중년 남자가 이휘산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진서준은 남자가 200년 된 새박뿌리를 판다고 하자 바로 흥미가 생겼다.유정을 위해 만들 약에 필요한 약재 중 하나가 바로 새박뿌리였기 때문이다.오래된 새박뿌리일수록 약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효과가 더 좋았다.만약 200년 된 새박뿌리를 쓸 수 있다면, 진서준은 유정이 50세가 되어도 여전히 지금처럼 피부가 매끄럽고 탄력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정 사장님, 정 사장님이 가져온 새박뿌리는 확실히 품질이 좋긴 해요. 하지만 60억은 너무 비싸요. 조금만 깎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살 수가 없어요...”이휘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그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다. 돈만 있었으면 분명 이 새박뿌리를 샀을 것이다.“안 돼요. 반드시 60억이어야 해요. 한 푼이라도 깎아줄 수 없어요. 살 생각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정석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새박뿌리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떠나려 했다.“정 사장님, 뭐가 그리 급하세요. 이거 제가 살게요. 이거 살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100년 넘는 한약재들은 전부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200년 된 새박뿌리는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돈을 구할 수가 없으니 먼저 40억 드리고 나머지 20억은 한 달 안에 드릴게요.”이휘산이 설득하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정석호는 미간을 구기며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전 한 번도 그렇게 팔아본 적이 없어요.”“정 사장님, 친구 사귀는 거로 생각해주세요. 앞으로 약재가 필요하다면 제가 제공해 드릴게요!”이휘산이 미안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부영권 씨 제자인 걸 봐서 그렇게 해줄게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팔지 않
이휘산은 오랫동안 의사로 살아왔기에 진귀한 약재들을 많이 봐왔었다.이 새박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새박뿌리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오래된 약재는 확실히 다 좋은 약재였다. 백 년 이상이면 아주 진귀했고 짙은 영기를 뿜을 수 있었다.그러나 눈앞의 새박뿌리에서는 그 어떤 영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목석처럼 말이다.“우습네요.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가짜라고 하는 건가요? 값을 깎고 싶은 거면 솔직히 얘기해요. 왜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거예요? 우리 성약당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요?”정석호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진서준은 성약당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이휘산은 서둘러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정 사장님, 화내지 마세요. 진서준 씨는 장난친 거예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장난친 거 아닙니다. 이건 확실히 가짜예요. 믿기지 않는다면 검증해 보도록 하죠.”진서준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정석호는 불안해졌다.이 새박뿌리는 확실히 가짜였다. 다른 곳에서 사 온 것인데 진짜와 아주 비슷했다.그러나 지금은 두려운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휘산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게다가 정석호는 진서준 같은 젊은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그래요, 검증해 보죠. 하지만 진짜면 어떡할래요?”정석호는 당당한 척하며 따졌다.“진짜라면 제가 60억 드릴게요. 어때요?”진서준은 모든 걸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30억이라는 말에 정석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좋아요, 당신이 말한 거예요. 진짜면 돈을 줘야 할 거예요.”정석호는 말을 마친 뒤 진서준의 앞에 박스를 놓았다.진서준은 손을 뻗어 새박뿌리를 쥐었다.“뭐 하는 거예요?”정석호는 그 광경에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손을 뻗어 말릴 생각이었지만 이미 늦었다.새박뿌리는 이미 진서준의 손에 들어갔다.진서준은 새박뿌리를
정석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성약당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었다.성약당은 화진에서 가장 큰 한의학 조직으로 화진의 모든 한약재 거래를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정석호는 성약당의 판매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정석호가 200년 된 새박뿌리를 들고 이휘산을 찾아와서 60억이라는 싼 가격에 그것을 팔려고 한 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이휘산은 사실 아까 그 새박뿌리를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그가 자세히 보기도 전에 정석호가 말을 걸어서 주의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건 정석호가 자신에게 가짜를 팔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성약당 같은 곳에서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돈을 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정석호는 감히 가짜 약을 몇십억에 팔려고 했다.만약 정석호 뒤에 성약당이 없었더라면 이휘산은 절대 그가 서울을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이거 놔요. 난 성약당 사람이라고요. 나한테 손 대면 안 돼요!”정석호는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분노와 경악으로 물든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정석호는 무인이었다. 비록 암경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의 주먹 한 바에 그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건 진서준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정석호의 말을 들은 이휘산은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정석호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확실히 당신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는 당신과 거래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이휘산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휘산의 말을 들은 정석호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성약당에는 고객이 많았고 이휘산의 지인들이 사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었다.“마음대로 해요!”말을 마친 뒤 정석호는 떠날 준비를 했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더니 불쾌한 얼굴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냥 이렇게 보내려고요?”이 가게가 진서준의 가게였다면 진서준은 절대 쉽게 정석호를 보내주지 않았을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