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가 미안한 말투로 진서준에게 말했다.차 안에서 진서준은 멀리서 총을 든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봤다.돈을 지불한 후, 진서준은 택시에서 내려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여기는 전면 통제 구역입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군인 한 명이 진서준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곧장 큰 소리로 외쳤다.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응했다.“국안부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지금 진서준은 여전히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 김평안은 국안부 사람이 아니었고 초대받아서 온 사람이었다.“이름이 뭐죠? 확인하러 가겠습니다...”군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흰 트레이닝복을 입은 노인이 그의 말을 끊었다.“저 사람 들어가게 해.”흰옷의 노인이 말하자 문을 지키던 군인들은 진서준을 들어가게 했다.“네가 바로 김평안인가?”흰옷의 노인이 진서준을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이 노인이 이렇게 큰 호기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최근 대한민국 무도계에서 김평안은 너무나도 눈부신 존재였다.경성에서 열린 국제 무도 교류회에서 단 일격에 고필두가 겁에 질려 항복한 사람이 바로 김평안이었다.그리고 그 후, 동부에서 해외 이족들을 여러 명 처치하며 전설을 만들었다.지금의 김평안은 무도계에서 반짝이는 샛별과도 같았고 모든 무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네, 제 이름은 김평안입니다.”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승은 누구지? 전에 왜 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까?”흰옷의 노인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전 오랫동안 스승님과 함께 깊은 산골과 황야에서 수련해서 세상과는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은 소극적인 성격인지라 밖에선 스승님 이름을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진서준이 유창하게 대답했다.진서준이 스승의 이름을 밝히지 않자 흰옷 노인의 얼굴에는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노인은 진서준 같은 천재를 가르친 스승이 어떤 인물일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현천진군님은 어디 계시죠?”진서준이 흰옷의 노인에게 물었다.“저기 홀에 있어.”진서준은 노인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국안부에 가입한 그 순간부터 다들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를 마쳤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겠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밤이 오기 전에 가족에게 전하세요. 자, 이제 해산합시다...”진서훈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모두가 흩어지자 진서훈은 진서준을 향해 손짓했다.“이리 오너라, 내가 이분들을 소개할게.”이번에 보해에 온 호국장군은 진서훈을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그중 한 명은 청연진군 최현우, 한 명은 천자진군 송경식,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하얀 긴머리를 휘날리지만 젊은 얼굴의 남자였다.“이분은 불로진군 예천우, 이분은 천자진군 송경식, 그리고 이분은 청연진군 최현우야. 네가 경성에서 봉호를 놓고 싸울 때, 이 두 사람은 널 보러 왔었지.”진서준은 경건한 마음으로 세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세 진군님, 처음 뵙겠습니다.”진서준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단지 강력한 실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고귀한 인격 또한 필요한 사람이어야 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수 있는 이들 호국장군이야말로 진서준이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진서준, 김평안, 만약 진 영감이 네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면 난 이 두 사람이 사실 한 사람이란 걸 절대 짐작하지 못했을 거야.”예천우는 진서준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한 명은 검도 대종사, 다른 한 명은 무도 대종사잖아. 외부에서 보면 이 둘은 전설적인 천재일 수밖에 없지. 아무도 진서준과 김평안이 같은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없었을 거야. 너희 진씨 가문에 드디어 용이 나왔구나.”최현우와 다른 두 사람은 아낌없이 진서준을 칭찬했다.“다들 그만해, 더 칭찬했다가는 이 자식이 거만해져서 누구도 안중에 없을 거야.”진서훈은 웃으며 겸손하게 받아들였다.“그리고 우리 진씨 가문도 처음 용이 나온 게 아니야.”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진서훈이 말하는 첫 번째 용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직 그놈들과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반드시 패배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이건 우리 호국장군이 갖춰야 할 기개가 절대 아닙니다.”네 명의 호국장군과 스무 명 이상의 대종사란 강력한 진영이라면 신농을 포함한 4대 최고 종문도 감히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진서훈은 본인을 포함한 국안부 인원이 전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하고 있었다.“멸용 조직에는 지선이 있어...”진서훈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네 명이 힘을 합쳐도 지선 하나를 상대하기는 버거워.”진서훈의 말에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지선만 제외하면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은 대한민국 무도계의 정상급 존재들이었다.그런데 이런 대단한 인물 네 명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해외 지선에 맞설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그 해외 지선이 정말 이토록 무시무시한 존재란 말인가?“서준아, 네가 우리 경지에 도달하면 그때야 비로소 경지 하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알게 될 거야.”진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팔급 이상만 넘어서면 경지 하나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처럼 엄청났다.그러니 자연스럽게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역사상 팔급 이상 대종사들이 경지를 넘어선 전투에서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승리는커녕, 상대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대다수 외부인은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들이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사실 경지를 넘어선 전투가 가능할지는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 자신들만이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나라를 위해 죽는 건 국안부 모든 사람의 최고 영광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진짜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면 진서준 아버지를 도대체 누가 구할 수 있을까?어머니와 여동생은 그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사연, 연아, 그리고 서지은 등 소중한 사람들은 또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어깨 위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허사연은 자기 가방에서 자단목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나무 상자를 꺼냈다.진서준은 놀란 표정으로 허사연을 바라보았다.여태껏 어머니가 자기에게 줄 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혹시 지난번 신농산에서 나올 때 어머니가 허사연에게 맡긴 걸까?상자가 열리자 고급스러운 하얀 옥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옥반지가 조용히 그 안에 놓여 있었다.반지는 투명하게 빛났고 그 위에는 사나운 기운을 보이는 용맹스러운 용이 새겨져 있었다.용은 당장 반지에서 뛰쳐나와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의아할 정도로 생동했다.진서준은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반지를 바라봤다.진서준은 이 반지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이전에 조희선이 그에게 준 옥패의 에너지보다도 훨씬 강력하다는 걸 알아챘다.“이건 우리 엄마가 네게 준 거야?”허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꺼내서 직접 진서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어머님이 그때 이 반지는 사실 아버님이 예전에 준 거라고 나한테 말했어. 당시 아버님과 어머님이 쫓기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천용 반지 때문이기도 해.”천용 반지로 불리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진서준은 반지 위의 용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사연아, 이 반지 위의 용이 방금 움직인 것 같지 않아?”진서준은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바로 허사연에게 보여주었다.허사연은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움직이지 않았어. 아마 네가 잘못 본 거겠지...”정말 진서준이 잘못 본 걸까?진서준은 방금 분명히 이 옥용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어머님이 네가 이 반지를 끼게 되면 앞으로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거라고 했어. 어머님과 난 네가 위험한 상황에 뛰어드는 걸 원치 않아서 그동안 주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아까 진서준이 우울한 표정으로 넋두리하는 모습을 본 허사연은 가슴이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허사연은 사실 진서준의 마음속 자
역천신을 상대하기엔 국안부 네 호국장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역천신, 25년 전 누가 너희들이 꼬리를 감추고 허겁지겁 도망치게 했던지 벌써 잊었어? 그때 네가 도망치는 속도가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보해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야. 오늘 다시 우리 대한민국을 감히 침범하려 한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너희들 숨통을 끊어놓을 거야.”진서훈의 말이 멸용 조직 모두의 귀에 울려 퍼졌다.하지만 역천신은 화를 내지 않았다.25년 전, 역천신은 아직 지선이 아니었다.그 전투에서 역천신은 철저히 패배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의 역천신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고 그때 겪었던 굴욕을 모두 되갚아 줄 수 있었다.“숨통을 끊는다고? 너희 몇 사람만으로는 힘들걸.”역천신은 발끝을 갑판에 살짝 댄 후, 깃털처럼 천천히 해수면 위로 착지했다.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 서면서도 역천신은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끊임없이 출렁이던 바다도 이 순간 신기하게 조용히 가라앉았다.이 광경을 지켜본 국안부 대종사들의 눈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이 멸용 조직의 지선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였다.진서훈 일행 네 명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저 녀석은 우리 넷이 맡을 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맡기겠어.”진서훈은 뒤쪽에 있던 호국사들을 돌아보며 부탁했다.“진군님,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해외 이족들을 절대 대한민국에 들이지 않겠습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단번에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대한민국 천의방 50위 안에 드는 네 명의 강자와 멸용 조직의 역천신이 바다 위에서 대치하게 되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아직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들 뒤의 파도는 갑자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진서훈 일행이 발산하는 기운을 받고 10여 미터 높이의 파도가 역천신을 향해 몰아쳤다.역천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냉소만 지었다.그러자 역천신의 발 아래에 있는 바닷물이 갑자
역천신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기세가 대폭 상승한 진서훈 네 명을 바라봤다.진서훈 일행과 역천신의 경지 차이는 무려 두 단계나 벌어져 있었다.역천신이 지선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폭원단을 복용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을 마주하는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역천신 지선 경지에 이른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이 10년 동안 역천신의 실력은 하나도 상승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선의 힘을 극한까지 갈고 닦았다.지선의 힘이 선천강기보다 훨씬 뛰어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계란으로 돌을 깨려는 것과 같아 아무리 단단한 계란이라도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네 가지 색깔이 다른 선천강기가 진서훈 일행의 주위를 감쌌다.“죽어!”진서훈의 포효와 함께 그는 포탄처럼 하늘로 날아올랐고 예천우 등 세 명도 그를 뒤따랐다.네 명은 앞쪽과 뒤쪽 그리고 좌우 양측으로 역천신을 에워쌌다.하지만 겹겹이 포위된 역천신의 표정은 평온했고 눈에는 오히려 조롱이 담긴 눈빛이 서려 있었다.역천신은 자신을 과대평가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웠다.“좋아, 너희에게 지선과 선천 대종사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보여주겠어.”역천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옷이 갑자기 찢어졌다.덩굴처럼 얽힌 근육질의 몸이 달빛에 비치며 극도로 공포스럽게 보였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이름은 그의 실력에 걸맞았다.같은 경지에서도 횡련 무인은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한 법이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몸은 심지어 크루즈 한 척의 무게도 버틸 수 있었다.쾅!진서훈 일행 네 명의 선천 강기가 역천신의 몸에 닿자 역천신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피어올랐다.순식간에 진서훈 네 호국장이 모아낸 선천강기가 힘없이 부서졌다.그리고 진서훈 일행 네 명은 거대한 충격을 받고 체내의 선천강기가 심각하게 흔들려 얼른 후퇴했다. 호국장군들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가득했다.“다들 확인했어? 이게 너희와 내
이 위급한 순간, 쇠 채찍 하나가 역천신의 오른 주먹을 단단히 휘감아 더 이상 앞으로 휘두르지 못하게 제지했다.동시에 한 손에 불타는 장검을 든 송경식이 소리 없이 역천신의 등 뒤에 나타났다.장검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역천신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역천신의 발 아래 바닷물이 주동적으로 양옆으로 갈라지며 약 20미터 깊이의 바닷길이 나타났다.“젠장!”역천신은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즉시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불타는 장검은 그 순간 역천신의 어깨에 떨어졌다.평소엔 절대 상처 입지 않을 단단한 역천신의 몸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조금 흘러나왔다.“네 하늘을 찌르는 오만 때문에 오늘 넌 여기서 즉사하게 될 거야.”은빛 창을 든 예천우가 허공에 나타났고 날카로운 창끝이 역천신의 어깨를 단번에 꿰뚫었다.푸슉...뾰족한 무기가 살을 뚫는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이 빌어먹을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내게 상처 입혀?”역천신은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역천신이 양손을 흔들자 몸에서 강렬한 금빛이 발산되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찬란하게 비추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훈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다들 즉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펑! 펑! 펑! 펑!네 명의 몸이 탄알처럼 백 미터나 뒤로 날아가 바다 위에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10여 미터 높이의 물결이 하늘로 치솟았다.진서훈 일행의 손바닥에서 핏방울이 스며 나왔고 다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금발이 휘날리는 역천신을 바라보았다.이 순간의 역천신은 분노한 사자 같았고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진서훈 일행은 혼란스러운 호흡을 가다듬고 역천신을 주시하며 그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다음 공격으로 저 녀석 팔 하나를 잘라내자.”진서훈은 말을 마치고 다시 선두로 뛰어들었다.진서훈 일행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한 척의 요트가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요트 위에서 진서준은 멀리서 요동치는 바다와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들을 보
진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 검광이 번쩍였다.매미 날개처럼 얇은 푸른 검광이 이 이국 강자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그러자 목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며 바닷물 위로 떨어졌다.곧이어 이족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이족의 눈에는 끝없는 억울함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남아 있었다.해외 강자인 자기가 이렇게 쉽게, 그것도 겨우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맙소사... 이게 용존의 실력인가? 너무 공포스러운데?”“저 붉은 머리 녀석은 지의방 35위일 거야, 게다가 육급 정점 대종사잖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용존이 육급 대종사를 이렇게 손쉽게 죽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야.”바다 위에 있던 호국사들은 이 장면을 보고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아무래도 이건 평범한 무인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고 스물여섯 살 생일도 아직 지나지 않았다.스물다섯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하는 무인이 몇 년만 더 수련하면 아마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다른 해외 강자들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진서준을 향해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로 소리를 질렀다.그 모습을 보니 다들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인 감정을 분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해외 이족의 감정 따위는 진서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누가 개미 같은 존재의 희로애락을 신경 쓰겠는가?“선배님들, 이제는 물러나 쉬십시오. 남은 건 전부 저에게 맡기십시오.”진서준은 아직 전장에 서 있는 여덟 명 정도의 호국사들을 바라보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들은 전부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니 존경을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진 마스터, 조심하십시오. 저기 남은 놈들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한 호국사가 소리 내어 진서준을 경고했다.남아 있는 해외 이족은 총 아홉 명이었다.그중 가장 강한 자는 칠급 대종사였고 가장 약한 자도 오급 경지였다.진서준이 천용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