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성도에 나타난 허윤진을 본 진서준은 놀란 표정으로 허사연을 쳐다보았다.진서준이 의아해하는 것을 예상한 듯, 허사연은 웃으며 설명했다.“어제 네가 잠든 사이에 윤진이 내게 어디 갔냐고 전화했어. 그래서 우리가 곧 여기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줬지.”진서준의 의문은 즉시 풀렸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우려가 묻어났다.여기는 보해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만약 해외의 이족들이 진짜 국안부의 방어선을 뚫고 온다면 이족들이 일반인들에게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그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해외의 이족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우연히 허사연 자매와 마주친다면 그건 정말 골치 아픈 문제였다.“진서준, 너 뭐야? 왜 날 보자마자 그렇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보여?”진서준이 눈살을 찌푸린 걸 보자 허윤진은 진서준이 자기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아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사실 허윤진은 진서준을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이 오해한 것을 보고 급히 솔직한 우려를 털어놓았다.그제야 진서준이 자기를 걱정한 사실을 알게 된 허윤진은 마음이 달콤해졌다.“흥, 그래도 좀 양심이 있구나. 내가 이렇게 널 걱정한 보람이 있네.”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근데 연아는 안 왔어?”진서준은 김연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연아는 어머님이랑 서라랑 함께 집에 있겠다고 해서 오지 않았어.”허윤진이 해명했다.집에 누군가는 있어야 했다.최근 대한민국 무도계가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워서 김연아가 진서라와 조희선의 안전을 염려해서 오지 않은 것이다.진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김연아의 사랑은 봄비처럼 조용하게 진서준의 마음을 적시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얼른 내가 예약한 바다가 보이는 별장으로 가자.”허윤진은 진서준의 손목을 잡고 새로 산 아우디 차로 태웠다.사실 허윤진은 바다가 잘 보이는 별장을 직접 사려고 했지만 이미 다 팔린 상
택시 기사가 미안한 말투로 진서준에게 말했다.차 안에서 진서준은 멀리서 총을 든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봤다.돈을 지불한 후, 진서준은 택시에서 내려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여기는 전면 통제 구역입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군인 한 명이 진서준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곧장 큰 소리로 외쳤다.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응했다.“국안부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지금 진서준은 여전히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 김평안은 국안부 사람이 아니었고 초대받아서 온 사람이었다.“이름이 뭐죠? 확인하러 가겠습니다...”군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흰 트레이닝복을 입은 노인이 그의 말을 끊었다.“저 사람 들어가게 해.”흰옷의 노인이 말하자 문을 지키던 군인들은 진서준을 들어가게 했다.“네가 바로 김평안인가?”흰옷의 노인이 진서준을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이 노인이 이렇게 큰 호기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최근 대한민국 무도계에서 김평안은 너무나도 눈부신 존재였다.경성에서 열린 국제 무도 교류회에서 단 일격에 고필두가 겁에 질려 항복한 사람이 바로 김평안이었다.그리고 그 후, 동부에서 해외 이족들을 여러 명 처치하며 전설을 만들었다.지금의 김평안은 무도계에서 반짝이는 샛별과도 같았고 모든 무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네, 제 이름은 김평안입니다.”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승은 누구지? 전에 왜 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까?”흰옷의 노인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전 오랫동안 스승님과 함께 깊은 산골과 황야에서 수련해서 세상과는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은 소극적인 성격인지라 밖에선 스승님 이름을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진서준이 유창하게 대답했다.진서준이 스승의 이름을 밝히지 않자 흰옷 노인의 얼굴에는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노인은 진서준 같은 천재를 가르친 스승이 어떤 인물일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현천진군님은 어디 계시죠?”진서준이 흰옷의 노인에게 물었다.“저기 홀에 있어.”진서준은 노인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국안부에 가입한 그 순간부터 다들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를 마쳤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겠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밤이 오기 전에 가족에게 전하세요. 자, 이제 해산합시다...”진서훈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모두가 흩어지자 진서훈은 진서준을 향해 손짓했다.“이리 오너라, 내가 이분들을 소개할게.”이번에 보해에 온 호국장군은 진서훈을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그중 한 명은 청연진군 최현우, 한 명은 천자진군 송경식,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하얀 긴머리를 휘날리지만 젊은 얼굴의 남자였다.“이분은 불로진군 예천우, 이분은 천자진군 송경식, 그리고 이분은 청연진군 최현우야. 네가 경성에서 봉호를 놓고 싸울 때, 이 두 사람은 널 보러 왔었지.”진서준은 경건한 마음으로 세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세 진군님, 처음 뵙겠습니다.”진서준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단지 강력한 실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고귀한 인격 또한 필요한 사람이어야 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수 있는 이들 호국장군이야말로 진서준이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진서준, 김평안, 만약 진 영감이 네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면 난 이 두 사람이 사실 한 사람이란 걸 절대 짐작하지 못했을 거야.”예천우는 진서준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한 명은 검도 대종사, 다른 한 명은 무도 대종사잖아. 외부에서 보면 이 둘은 전설적인 천재일 수밖에 없지. 아무도 진서준과 김평안이 같은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없었을 거야. 너희 진씨 가문에 드디어 용이 나왔구나.”최현우와 다른 두 사람은 아낌없이 진서준을 칭찬했다.“다들 그만해, 더 칭찬했다가는 이 자식이 거만해져서 누구도 안중에 없을 거야.”진서훈은 웃으며 겸손하게 받아들였다.“그리고 우리 진씨 가문도 처음 용이 나온 게 아니야.”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진서훈이 말하는 첫 번째 용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직 그놈들과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반드시 패배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이건 우리 호국장군이 갖춰야 할 기개가 절대 아닙니다.”네 명의 호국장군과 스무 명 이상의 대종사란 강력한 진영이라면 신농을 포함한 4대 최고 종문도 감히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진서훈은 본인을 포함한 국안부 인원이 전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하고 있었다.“멸용 조직에는 지선이 있어...”진서훈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네 명이 힘을 합쳐도 지선 하나를 상대하기는 버거워.”진서훈의 말에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지선만 제외하면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은 대한민국 무도계의 정상급 존재들이었다.그런데 이런 대단한 인물 네 명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해외 지선에 맞설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그 해외 지선이 정말 이토록 무시무시한 존재란 말인가?“서준아, 네가 우리 경지에 도달하면 그때야 비로소 경지 하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알게 될 거야.”진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팔급 이상만 넘어서면 경지 하나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처럼 엄청났다.그러니 자연스럽게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역사상 팔급 이상 대종사들이 경지를 넘어선 전투에서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승리는커녕, 상대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대다수 외부인은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들이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사실 경지를 넘어선 전투가 가능할지는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 자신들만이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나라를 위해 죽는 건 국안부 모든 사람의 최고 영광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진짜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면 진서준 아버지를 도대체 누가 구할 수 있을까?어머니와 여동생은 그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사연, 연아, 그리고 서지은 등 소중한 사람들은 또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어깨 위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허사연은 자기 가방에서 자단목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나무 상자를 꺼냈다.진서준은 놀란 표정으로 허사연을 바라보았다.여태껏 어머니가 자기에게 줄 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혹시 지난번 신농산에서 나올 때 어머니가 허사연에게 맡긴 걸까?상자가 열리자 고급스러운 하얀 옥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옥반지가 조용히 그 안에 놓여 있었다.반지는 투명하게 빛났고 그 위에는 사나운 기운을 보이는 용맹스러운 용이 새겨져 있었다.용은 당장 반지에서 뛰쳐나와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의아할 정도로 생동했다.진서준은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반지를 바라봤다.진서준은 이 반지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이전에 조희선이 그에게 준 옥패의 에너지보다도 훨씬 강력하다는 걸 알아챘다.“이건 우리 엄마가 네게 준 거야?”허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꺼내서 직접 진서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어머님이 그때 이 반지는 사실 아버님이 예전에 준 거라고 나한테 말했어. 당시 아버님과 어머님이 쫓기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천용 반지 때문이기도 해.”천용 반지로 불리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진서준은 반지 위의 용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사연아, 이 반지 위의 용이 방금 움직인 것 같지 않아?”진서준은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바로 허사연에게 보여주었다.허사연은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움직이지 않았어. 아마 네가 잘못 본 거겠지...”정말 진서준이 잘못 본 걸까?진서준은 방금 분명히 이 옥용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어머님이 네가 이 반지를 끼게 되면 앞으로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거라고 했어. 어머님과 난 네가 위험한 상황에 뛰어드는 걸 원치 않아서 그동안 주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아까 진서준이 우울한 표정으로 넋두리하는 모습을 본 허사연은 가슴이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허사연은 사실 진서준의 마음속 자
역천신을 상대하기엔 국안부 네 호국장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역천신, 25년 전 누가 너희들이 꼬리를 감추고 허겁지겁 도망치게 했던지 벌써 잊었어? 그때 네가 도망치는 속도가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보해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야. 오늘 다시 우리 대한민국을 감히 침범하려 한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너희들 숨통을 끊어놓을 거야.”진서훈의 말이 멸용 조직 모두의 귀에 울려 퍼졌다.하지만 역천신은 화를 내지 않았다.25년 전, 역천신은 아직 지선이 아니었다.그 전투에서 역천신은 철저히 패배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의 역천신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고 그때 겪었던 굴욕을 모두 되갚아 줄 수 있었다.“숨통을 끊는다고? 너희 몇 사람만으로는 힘들걸.”역천신은 발끝을 갑판에 살짝 댄 후, 깃털처럼 천천히 해수면 위로 착지했다.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 서면서도 역천신은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끊임없이 출렁이던 바다도 이 순간 신기하게 조용히 가라앉았다.이 광경을 지켜본 국안부 대종사들의 눈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이 멸용 조직의 지선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였다.진서훈 일행 네 명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저 녀석은 우리 넷이 맡을 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맡기겠어.”진서훈은 뒤쪽에 있던 호국사들을 돌아보며 부탁했다.“진군님,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해외 이족들을 절대 대한민국에 들이지 않겠습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단번에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대한민국 천의방 50위 안에 드는 네 명의 강자와 멸용 조직의 역천신이 바다 위에서 대치하게 되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아직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들 뒤의 파도는 갑자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진서훈 일행이 발산하는 기운을 받고 10여 미터 높이의 파도가 역천신을 향해 몰아쳤다.역천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냉소만 지었다.그러자 역천신의 발 아래에 있는 바닷물이 갑자
역천신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기세가 대폭 상승한 진서훈 네 명을 바라봤다.진서훈 일행과 역천신의 경지 차이는 무려 두 단계나 벌어져 있었다.역천신이 지선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폭원단을 복용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을 마주하는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역천신 지선 경지에 이른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이 10년 동안 역천신의 실력은 하나도 상승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선의 힘을 극한까지 갈고 닦았다.지선의 힘이 선천강기보다 훨씬 뛰어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계란으로 돌을 깨려는 것과 같아 아무리 단단한 계란이라도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네 가지 색깔이 다른 선천강기가 진서훈 일행의 주위를 감쌌다.“죽어!”진서훈의 포효와 함께 그는 포탄처럼 하늘로 날아올랐고 예천우 등 세 명도 그를 뒤따랐다.네 명은 앞쪽과 뒤쪽 그리고 좌우 양측으로 역천신을 에워쌌다.하지만 겹겹이 포위된 역천신의 표정은 평온했고 눈에는 오히려 조롱이 담긴 눈빛이 서려 있었다.역천신은 자신을 과대평가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웠다.“좋아, 너희에게 지선과 선천 대종사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보여주겠어.”역천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옷이 갑자기 찢어졌다.덩굴처럼 얽힌 근육질의 몸이 달빛에 비치며 극도로 공포스럽게 보였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이름은 그의 실력에 걸맞았다.같은 경지에서도 횡련 무인은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한 법이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몸은 심지어 크루즈 한 척의 무게도 버틸 수 있었다.쾅!진서훈 일행 네 명의 선천 강기가 역천신의 몸에 닿자 역천신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피어올랐다.순식간에 진서훈 네 호국장이 모아낸 선천강기가 힘없이 부서졌다.그리고 진서훈 일행 네 명은 거대한 충격을 받고 체내의 선천강기가 심각하게 흔들려 얼른 후퇴했다. 호국장군들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가득했다.“다들 확인했어? 이게 너희와 내
이 위급한 순간, 쇠 채찍 하나가 역천신의 오른 주먹을 단단히 휘감아 더 이상 앞으로 휘두르지 못하게 제지했다.동시에 한 손에 불타는 장검을 든 송경식이 소리 없이 역천신의 등 뒤에 나타났다.장검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역천신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역천신의 발 아래 바닷물이 주동적으로 양옆으로 갈라지며 약 20미터 깊이의 바닷길이 나타났다.“젠장!”역천신은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즉시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불타는 장검은 그 순간 역천신의 어깨에 떨어졌다.평소엔 절대 상처 입지 않을 단단한 역천신의 몸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조금 흘러나왔다.“네 하늘을 찌르는 오만 때문에 오늘 넌 여기서 즉사하게 될 거야.”은빛 창을 든 예천우가 허공에 나타났고 날카로운 창끝이 역천신의 어깨를 단번에 꿰뚫었다.푸슉...뾰족한 무기가 살을 뚫는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이 빌어먹을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내게 상처 입혀?”역천신은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역천신이 양손을 흔들자 몸에서 강렬한 금빛이 발산되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찬란하게 비추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훈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다들 즉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펑! 펑! 펑! 펑!네 명의 몸이 탄알처럼 백 미터나 뒤로 날아가 바다 위에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10여 미터 높이의 물결이 하늘로 치솟았다.진서훈 일행의 손바닥에서 핏방울이 스며 나왔고 다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금발이 휘날리는 역천신을 바라보았다.이 순간의 역천신은 분노한 사자 같았고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진서훈 일행은 혼란스러운 호흡을 가다듬고 역천신을 주시하며 그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다음 공격으로 저 녀석 팔 하나를 잘라내자.”진서훈은 말을 마치고 다시 선두로 뛰어들었다.진서훈 일행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한 척의 요트가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요트 위에서 진서준은 멀리서 요동치는 바다와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들을 보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진서준과 곽윤상은 약속된 호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곽윤상이 말문을 열었다.“진 마스터님이 황씨 가문 따님을 데리고 떠난 직후, 경찰청과 군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습니다.”그 총격 사건에 관련된 총잡이들은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을 받았다.하지만 진서준이 사람을 구할 당시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누가 황예은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아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쪽에서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의 수행자입니다. 이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죠.”아까 진서준이 그 총잡이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이미 중독된 상태란 걸 알아챘다.그 독은 독성이 맹렬한 독이었고 섭취 후 12시간 안에 즉사하게 되어 있었다.이를 통해 배후의 진짜 범인은 상당히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명문대가로 불리는 가문들은 흔히 이런 죽음의 수행자들을 양성한다.이 죽음의 수행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명주시에서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 알아요?”진서준의 질문에 곽윤상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진 마스터님은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겁니까? 황씨 가문 따님과 친구 사이신가요?”“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조사 중인 다른 일이 오늘 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진서준이 답했다.간첩 문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황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황예은이 확보한 자료 중에 진서준이 필요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주시에서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외에도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열 곳은 넘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명주시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땅값이 금값입니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