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놈들과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반드시 패배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이건 우리 호국장군이 갖춰야 할 기개가 절대 아닙니다.”네 명의 호국장군과 스무 명 이상의 대종사란 강력한 진영이라면 신농을 포함한 4대 최고 종문도 감히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진서훈은 본인을 포함한 국안부 인원이 전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하고 있었다.“멸용 조직에는 지선이 있어...”진서훈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네 명이 힘을 합쳐도 지선 하나를 상대하기는 버거워.”진서훈의 말에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지선만 제외하면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은 대한민국 무도계의 정상급 존재들이었다.그런데 이런 대단한 인물 네 명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해외 지선에 맞설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그 해외 지선이 정말 이토록 무시무시한 존재란 말인가?“서준아, 네가 우리 경지에 도달하면 그때야 비로소 경지 하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알게 될 거야.”진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팔급 이상만 넘어서면 경지 하나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처럼 엄청났다.그러니 자연스럽게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역사상 팔급 이상 대종사들이 경지를 넘어선 전투에서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승리는커녕, 상대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대다수 외부인은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들이 경지를 넘어서는 전투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사실 경지를 넘어선 전투가 가능할지는 진서훈을 포함한 호국장군 자신들만이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나라를 위해 죽는 건 국안부 모든 사람의 최고 영광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진짜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면 진서준 아버지를 도대체 누가 구할 수 있을까?어머니와 여동생은 그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사연, 연아, 그리고 서지은 등 소중한 사람들은 또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어깨 위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허사연은 자기 가방에서 자단목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나무 상자를 꺼냈다.진서준은 놀란 표정으로 허사연을 바라보았다.여태껏 어머니가 자기에게 줄 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혹시 지난번 신농산에서 나올 때 어머니가 허사연에게 맡긴 걸까?상자가 열리자 고급스러운 하얀 옥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옥반지가 조용히 그 안에 놓여 있었다.반지는 투명하게 빛났고 그 위에는 사나운 기운을 보이는 용맹스러운 용이 새겨져 있었다.용은 당장 반지에서 뛰쳐나와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의아할 정도로 생동했다.진서준은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반지를 바라봤다.진서준은 이 반지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이전에 조희선이 그에게 준 옥패의 에너지보다도 훨씬 강력하다는 걸 알아챘다.“이건 우리 엄마가 네게 준 거야?”허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꺼내서 직접 진서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어머님이 그때 이 반지는 사실 아버님이 예전에 준 거라고 나한테 말했어. 당시 아버님과 어머님이 쫓기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천용 반지 때문이기도 해.”천용 반지로 불리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진서준은 반지 위의 용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사연아, 이 반지 위의 용이 방금 움직인 것 같지 않아?”진서준은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바로 허사연에게 보여주었다.허사연은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움직이지 않았어. 아마 네가 잘못 본 거겠지...”정말 진서준이 잘못 본 걸까?진서준은 방금 분명히 이 옥용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어머님이 네가 이 반지를 끼게 되면 앞으로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거라고 했어. 어머님과 난 네가 위험한 상황에 뛰어드는 걸 원치 않아서 그동안 주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아까 진서준이 우울한 표정으로 넋두리하는 모습을 본 허사연은 가슴이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허사연은 사실 진서준의 마음속 자
역천신을 상대하기엔 국안부 네 호국장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역천신, 25년 전 누가 너희들이 꼬리를 감추고 허겁지겁 도망치게 했던지 벌써 잊었어? 그때 네가 도망치는 속도가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보해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야. 오늘 다시 우리 대한민국을 감히 침범하려 한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너희들 숨통을 끊어놓을 거야.”진서훈의 말이 멸용 조직 모두의 귀에 울려 퍼졌다.하지만 역천신은 화를 내지 않았다.25년 전, 역천신은 아직 지선이 아니었다.그 전투에서 역천신은 철저히 패배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의 역천신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고 그때 겪었던 굴욕을 모두 되갚아 줄 수 있었다.“숨통을 끊는다고? 너희 몇 사람만으로는 힘들걸.”역천신은 발끝을 갑판에 살짝 댄 후, 깃털처럼 천천히 해수면 위로 착지했다.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 서면서도 역천신은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끊임없이 출렁이던 바다도 이 순간 신기하게 조용히 가라앉았다.이 광경을 지켜본 국안부 대종사들의 눈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이 멸용 조직의 지선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였다.진서훈 일행 네 명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저 녀석은 우리 넷이 맡을 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맡기겠어.”진서훈은 뒤쪽에 있던 호국사들을 돌아보며 부탁했다.“진군님,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해외 이족들을 절대 대한민국에 들이지 않겠습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단번에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대한민국 천의방 50위 안에 드는 네 명의 강자와 멸용 조직의 역천신이 바다 위에서 대치하게 되었다.진서훈 일행 네 명은 아직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들 뒤의 파도는 갑자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진서훈 일행이 발산하는 기운을 받고 10여 미터 높이의 파도가 역천신을 향해 몰아쳤다.역천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냉소만 지었다.그러자 역천신의 발 아래에 있는 바닷물이 갑자
역천신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기세가 대폭 상승한 진서훈 네 명을 바라봤다.진서훈 일행과 역천신의 경지 차이는 무려 두 단계나 벌어져 있었다.역천신이 지선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폭원단을 복용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을 마주하는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역천신 지선 경지에 이른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이 10년 동안 역천신의 실력은 하나도 상승하지 않았지만 그는 지선의 힘을 극한까지 갈고 닦았다.지선의 힘이 선천강기보다 훨씬 뛰어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계란으로 돌을 깨려는 것과 같아 아무리 단단한 계란이라도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네 가지 색깔이 다른 선천강기가 진서훈 일행의 주위를 감쌌다.“죽어!”진서훈의 포효와 함께 그는 포탄처럼 하늘로 날아올랐고 예천우 등 세 명도 그를 뒤따랐다.네 명은 앞쪽과 뒤쪽 그리고 좌우 양측으로 역천신을 에워쌌다.하지만 겹겹이 포위된 역천신의 표정은 평온했고 눈에는 오히려 조롱이 담긴 눈빛이 서려 있었다.역천신은 자신을 과대평가한 진서훈 일행 네 명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웠다.“좋아, 너희에게 지선과 선천 대종사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보여주겠어.”역천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옷이 갑자기 찢어졌다.덩굴처럼 얽힌 근육질의 몸이 달빛에 비치며 극도로 공포스럽게 보였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이름은 그의 실력에 걸맞았다.같은 경지에서도 횡련 무인은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한 법이다.횡련 지선인 역천신의 몸은 심지어 크루즈 한 척의 무게도 버틸 수 있었다.쾅!진서훈 일행 네 명의 선천 강기가 역천신의 몸에 닿자 역천신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피어올랐다.순식간에 진서훈 네 호국장이 모아낸 선천강기가 힘없이 부서졌다.그리고 진서훈 일행 네 명은 거대한 충격을 받고 체내의 선천강기가 심각하게 흔들려 얼른 후퇴했다. 호국장군들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가득했다.“다들 확인했어? 이게 너희와 내
이 위급한 순간, 쇠 채찍 하나가 역천신의 오른 주먹을 단단히 휘감아 더 이상 앞으로 휘두르지 못하게 제지했다.동시에 한 손에 불타는 장검을 든 송경식이 소리 없이 역천신의 등 뒤에 나타났다.장검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역천신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역천신의 발 아래 바닷물이 주동적으로 양옆으로 갈라지며 약 20미터 깊이의 바닷길이 나타났다.“젠장!”역천신은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즉시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불타는 장검은 그 순간 역천신의 어깨에 떨어졌다.평소엔 절대 상처 입지 않을 단단한 역천신의 몸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조금 흘러나왔다.“네 하늘을 찌르는 오만 때문에 오늘 넌 여기서 즉사하게 될 거야.”은빛 창을 든 예천우가 허공에 나타났고 날카로운 창끝이 역천신의 어깨를 단번에 꿰뚫었다.푸슉...뾰족한 무기가 살을 뚫는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이 빌어먹을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내게 상처 입혀?”역천신은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역천신이 양손을 흔들자 몸에서 강렬한 금빛이 발산되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찬란하게 비추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훈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다들 즉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펑! 펑! 펑! 펑!네 명의 몸이 탄알처럼 백 미터나 뒤로 날아가 바다 위에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10여 미터 높이의 물결이 하늘로 치솟았다.진서훈 일행의 손바닥에서 핏방울이 스며 나왔고 다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금발이 휘날리는 역천신을 바라보았다.이 순간의 역천신은 분노한 사자 같았고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진서훈 일행은 혼란스러운 호흡을 가다듬고 역천신을 주시하며 그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다음 공격으로 저 녀석 팔 하나를 잘라내자.”진서훈은 말을 마치고 다시 선두로 뛰어들었다.진서훈 일행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한 척의 요트가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요트 위에서 진서준은 멀리서 요동치는 바다와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들을 보
진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 검광이 번쩍였다.매미 날개처럼 얇은 푸른 검광이 이 이국 강자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그러자 목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며 바닷물 위로 떨어졌다.곧이어 이족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이족의 눈에는 끝없는 억울함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남아 있었다.해외 강자인 자기가 이렇게 쉽게, 그것도 겨우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맙소사... 이게 용존의 실력인가? 너무 공포스러운데?”“저 붉은 머리 녀석은 지의방 35위일 거야, 게다가 육급 정점 대종사잖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용존이 육급 대종사를 이렇게 손쉽게 죽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야.”바다 위에 있던 호국사들은 이 장면을 보고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아무래도 이건 평범한 무인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고 스물여섯 살 생일도 아직 지나지 않았다.스물다섯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하는 무인이 몇 년만 더 수련하면 아마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다른 해외 강자들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진서준을 향해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로 소리를 질렀다.그 모습을 보니 다들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인 감정을 분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해외 이족의 감정 따위는 진서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누가 개미 같은 존재의 희로애락을 신경 쓰겠는가?“선배님들, 이제는 물러나 쉬십시오. 남은 건 전부 저에게 맡기십시오.”진서준은 아직 전장에 서 있는 여덟 명 정도의 호국사들을 바라보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들은 전부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니 존경을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진 마스터, 조심하십시오. 저기 남은 놈들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한 호국사가 소리 내어 진서준을 경고했다.남아 있는 해외 이족은 총 아홉 명이었다.그중 가장 강한 자는 칠급 대종사였고 가장 약한 자도 오급 경지였다.진서준이 천용
만약 1분 안에 역천신을 죽이지 못하면 이 이족 지선은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진서훈 일행이 죽은 후, 그다음 차례는 진서준과 호국사들이 될 것이다.“아무래도 그 기술을 써야겠어...”진서훈의 얼굴에 처량한 미소가 떠올랐다.이를 들은 예천우를 포함한 세 사람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이기든 지든 마지막 검 한 방에 달렸군.”세 사람은 진서훈의 등 뒤로 다가가 손바닥을 그의 등에 올렸다.곧이어 세 사람은 체내 모든 선천강기를 동시에 진서훈에게 전달했다.선천강기가 전달되자 진서훈의 몸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고 예천우를 포함한 세 사람은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진서훈의 손에 든 현철로 만든 유연검이 미세하게 떨리며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역천신은 온몸의 근육이 긴장되어 발끝부터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역천신은 진서훈 일행을 방해하지 않았다.이건 강자인 역천신이 자기 자존심을 과시하는 일종 수단이었다.진서훈 네 명에게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결코 자기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이기도 했다.“나머진 전부 너에게 맡기겠어...”예천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힘없이 바다 위로 쓰러졌고 송경식과 최현우도 뒤따라 쓰러졌다.세 사람이 쓰러진 그 순간, 진서훈이 검을 내질렀다.그 검격은 마치 10급 태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며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찰나의 순간, 바닷물과 밤하늘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이 무시무시한 검기를 본 역천신은 전력을 다해 포효했다.“나 역천신이 너희 같은 개미가 주제넘게 나무를 흔든 처참한 결과를 알려주마!”역천신의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그의 양손으로 모여들었고 그 빛은 하나의 보호막으로 변해 역천신의 앞을 가로막았다.쾅!검광이 역천신이 보여준 지선의 힘에 부딪히자 사방으로 끝없이 거친 파도가 솟구쳤다.그 파도는 천 미터를 넘게 뻗어나가며 진서준과 해외 강자들마저 흔들리게 했다.다들 그 여파 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자기가
자기 앞을 막아선 개미 한 마리를 보며 역천신은 순간 분노에 휩싸였다.“꺼져!”냉랭한 눈빛을 번뜩이는 역천신은 호통치며 손바닥을 내리쳤다.콰직!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진서훈 앞을 가로막았던 칠급 대종사는 온몸의 뼈가 부러졌고 강기가 완전히 고갈됐다.그 대종사는 낡은 천 조각처럼 바다 위로 힘없이 떨어졌고 입에서 끊임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이 광경을 본 진서훈과 다른 사람들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터질 정도였다.죽어가는 낙타가 살아있는 말보다 크다는 말이 이 상황에 딱 맞아떨이지는 것 같았다.지금 역천신은 팔 하나가 잘려 나가고 체내 지선의 힘도 많이 소모되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칠급 대종사가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호국사와 지선 사이의 실력 차이는 이토록 크단 말인가?다른 호국사들 또한 이 순간 깊은 절망에 빠졌다.지선의 힘은 역시 호국사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다음 한 방으로 네 놈을 지옥으로 보내주마.”역천신의 음침한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진서훈은 가슴 속에 온갖 불만과 분노가 들끓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역천신이 손을 들어 올리자 체내 지선의 힘이 그의 손바닥에 맴돌기 시작했다.진서훈의 머리를 날려 버리려는 그 순간, 또 다른 형체가 갑자기 진서훈 앞에 나타났다.“개미 같은 것들이 끝까지 제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덤비는구나. 어디서 굴러온 놈이 감히 날 막아보겠다고 설쳐대?”방금도 개미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또 다른 개미가 튀어나오자 역천신은 가슴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진서훈의 표정이 달라졌다.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어리숙해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서준아, 너 미쳤어?”자기 손자를 본 진서훈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진서훈은 죽어도 상관없지만 진서준은 절대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조금 전의 칠급 대종사와는 다르게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