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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남지유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주동겸은 자주 뉴스에 나오는 인물인지라 어쩐지 그녀의 눈에 익었다.

“그 사람이라고요?”

남지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민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남지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동겸 어르신의 신분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긴 하죠. 근데 그의 손녀가 대표님한테 의견이 많은 것 같던데요.”

“그냥 내버려 둬요.”

이민혁이 말했다.

남지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도 김현욱과 유소희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래요?”

이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남 대표님의 일 처리는 깔끔하니 안심됩니다.”

남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

“결혼식에 깜짝 이벤트를 할 예정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저야 좋죠.”

유소희가 자신에게 했던 모든 것을 떠올리며 이민혁은 천천히 말했다.

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 마시지 않은 술과 이민혁을 번갈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제가 같이 마셔드릴까요?”

“술 잘 마셔요?”

이민혁이 웃었다.

“조금 마실 수 있어요.”

그러자 이민혁은 남지유에게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확실히 흥이 제대로 오르지 않았네요.”

남지유는 이민혁과 잔을 부딪쳤고 둘은 단숨에 많은 술을 들이켰다.

이어서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동겸이 가져온 술을 다 마셨다.

남지유는 약간 취기가 올라온 듯, 술 보관함에 가서 또 한 병을 들고 왔고 두말없이 병뚜껑을 열었다.

이민혁은 허허 웃었고 남지유가 자신에게 술을 따르자 군말 없이 계속 마셨다.

한 시간 뒤, 소파에 쓰러진 남지유를 말없이 바라보던 이민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못 마시면 조금만 마실 것이지, 이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그는 인사불성이 된 남지유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남지유의 몸매, 여인의 체취 그리고 성숙한 여인의 독특한 매력은 이민혁의 심리와 신체적 한계에 모두 도전하고 있었다.

겨우 남지유를 방으로 데려다주었고 친절히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하지만 잠시도 머물러있지 않았고 재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이민혁이 떠난 후, 남지유는 천천히 눈을 떴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래도 안 넘어온다고?!”

...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이민혁은 일부러 집에 더 있다가 남지유가 떠난 후에야 방을 나갔다.

어젯밤 그 일은 지금 생각하면 좀 어색하여 그는 남지유를 마주할 엄두가 안 났다.

어쨌든 대표라는 사람이 여자 부하 직원에게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게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침밥을 대충 먹고 이민혁은 공원에 가서 공법을 수련했다.

이때 1호 별장에서 주아름은 주동겸의 방문 앞에 서서 처절하게 빌었다.

“할아버지, 오늘 건강검진 받으셔야 하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안에서 대답이 없자 주아름은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다.

한참 후 방에서 수련하던 주동겸은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열었다.

그는 마치 감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손녀를 보니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주동겸이 나오자 주아름은 황급히 말했다.

“할아버지, 연구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가자꾸나.”

주동겸은 자신이 가지 않으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주아름은 주동겸을 부축해 밖으로 나가면서 물었다.

“할아버지, 그 신약은 잘 챙겨 드시고 계시죠?”

“먹고 있어.”

주동겸은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사실 그 약은 아직 신발장에 그대로 있었다.

주아름은 고개를 끄덕였고 주동겸과 함께 의과대학 연구소로 가서 일련의 검사를 받았다.

조 교수는 주아름에게 말했다.

“오후에 자세한 결과가 나오니까 그때 가서 전화할게.”

“감사합니다.”

주아름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주동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주동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방에 가두고 수련을 계속했다.

주아름은 주동겸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지만 검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금 나아졌는지 아닌지는 이 신약에 달려 있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조 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조 교수는 격동된 목소리로 주동겸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고 폐부전까지 기적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몸 상태를 말한 후, 조 교수는 주동겸에게 약을 계속 먹게 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거듭 설명했다.

주아름은 환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전화를 끊자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동겸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어 몇 년을 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조 교수의 말은 주씨 가문에게는 큰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사기꾼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주아름은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을 그녀는 너무 많이 보았다.

그들 주씨 가문은 국내에서 예측불허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접근하여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주동겸은 진작에 주씨 가문의 명성을 이용하여 나라의 이익을 해치거나 사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지금 주동겸은 노망이 들었고, 그 사기꾼을 철석같이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말도 잊어버렸다.

그 생각에 주아름은 참지 못하고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언제 돌아오세요? 그 사기꾼이 지금 할아버지한테 술과 담배를 권했어요. 정말 괘씸하다고요.”

맞은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 신상정보 좀 보내줘, 내일 갈게.”

“어서요. 할아버지는 지금 단단히 홀렸어요.”

전화를 끊은 주아름은 이민혁의 전화와 주소, 심지어 사진까지 아버지에게 보냈다.

이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딱 기다려, 우리 아빠가 널 어떻게 혼내는지 봐. 이 깡패 새끼, 사기꾼 같은 게.”

...

오후 5시.

이민혁은 명상을 미리 끝내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와서는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종일 남지유에게 밥을 얻어먹어서, 그는 좀 쑥스러웠다.

저녁 무렵 퇴근 후 별장으로 돌아온 남지유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이민혁을 보고 놀라서 입을 막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급히 부엌으로 가서 그를 말렸다.

“대표님, 이 일은 저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제가 어떻게 대표님께서 해 주신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게다가 종일 밥 해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오늘 내 음식 솜씨 좀 발휘하게 해줘요.”

그러자 이민혁은 반찬 몇 개를 들고 식탁에 올려놓았다.

“대표님, 옷 갈아입고 올게요.”

남지유는 마치 아이처럼 신나서 위층으로 올라가 레이스 잠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잠옷은 적당히 가려져 있었지만 움직이면서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는 이들의 상상을 자아냈다.

“밥 먹어요.”

이민혁은 밥 두 공기를 퍼왔고 반찬에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남지유는 흥분한 얼굴로 이민혁의 요리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몇 가지 간단한 가정식 요리였지만 남지유는 자신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복스럽게 먹었다.

이민혁 자신도 밥 세 그릇을 먹었기에 두 사람은 너무 배불러서 마주 보고 웃었고, 남지유는 웃으면서 은근슬쩍 소파에 가로누워 하얀 긴 다리,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한 곳으로 시시각각 이민혁을 유혹했다.

하지만 이민혁은 넘어가지 않았다.

“설거지 좀 해 주세요.”

남지유는 바로 일어나 수저를 치운 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이민혁을 바라보며 그의 곁에 앉으며 천천히 말했다.

“대표님, 내일이 김현욱과 유소희의 결혼식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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