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영의 눈빛은 승리한 공작새가 자랑스럽게 날개를 펼치듯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도발적으로 백아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선우소훈의 손목을 다정하게 잡고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손님방으로 모시고 갈 테니 제 방 옆방에 묵으세요. 괜찮으시죠?”선우소훈은 기분이 너무 좋아 활짝 웃었다. “그래그래, 좋아.”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멀리 걸어갔다.백아영의 방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자물쇠가 잠기는 차가운 소리는 그녀를 이 작고 비좁은 방에 가두었다.축축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그녀의 코 안으로 파고들었다.이 방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침대에도 먼지가 한 층 쌓여 있었고 공기는 훨씬 더 축축하고 음산하여 사람이 살 수 없었다.박라희는 분명히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배정했다. 정말 “신경 써주느라” 수고했다!박라희가 백채영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백아영은 아이러니했다. 똑같이 혈연관계가 없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이 씨 가문의 별장.이성준은 침대에 앉아 휴대폰 화면의 백아영과의 채팅창에 ‘부모님 찾았어?’라고 입력했다.단어들을 다 입력했지만 끝까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이제 그의 신분은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한참 지나서 결국 이성준은 단어들을 지우고 휴대폰을 꺼버렸다....침대가 축축하고 차가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백아영은 밤새 동안 벽에 기대어 잠을 잤다.날이 밝기도 전에 깨어난 그녀는 온몸이 쑤셨다.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더 이상 잠에 들 수가 없었다.그녀가 막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할 때, 밖에서 방문이 열렸다. 선우주영이 악의에 찬 표정을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백아영 너는 이제 끝났어!”그녀는 말하면서 거칠게 백아영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이때 선우소훈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거실에 있었다.선우소훈이 백아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유독 차가웠다. 그녀의 살갗을 벗겨 뼈를 깎고 싶은 듯한 증오심을 가지고서 말이다.백아영은
“그래, 역시 비열하고 교활하면서 탐욕스러운 네 어미와 똑같구나!”백아영은 포대기에 적힌 글귀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 포대기를 늘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이런 글귀들이 없었다고 백 프로 확신했다!“박라희, 당신은 지금 나를 모함하고 있어요! 난 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없어요. 이건 당신이 방금 쓴 거잖아요!”선우주영은 냉정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 글씨는 딱 봐도 오래된 것 같은데 어떻게 방금 쓴 것일 수가 있어? 백아영, 더는 변명하지 마. 이렇게 증거가 떡하니 있는데, 무슨 말을 해도 다 소용없어!”“할아버지, 백아영이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사기 친 것이 입증되었어요. 결코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안 돼요. 백아영을 지하실에 가두세요!”선우주영은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백아영이 지하실에 갇히게 되면 이번 생은 망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나올 생각은 못할 것이고 시시각각 그녀에게 마음대로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구승호는 이 상황을 보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백아영에게 완전히 실망했고 눈빛은 매우 차갑게 변했고 혐오로 가득 찼다.허수빈이 낳은 딸도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동정할 가치가 없다.선우소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가문의 주인이고 이미 그 제안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다.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백아영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감금은 불법이에요. 당신들 함부로 나를 감금할 수 없어요!”“불법?”선우주영은 그녀를 비웃었다.“선우 일가는 이미 나라를 떠난 지 오래고, 너 하나 처리하는 건 더더욱 쥐도 새도 모르게 할 수 있어. 무슨 법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백아영, 우리가 너를 죽을 때까지 가두어도 아무도 너를 구할 수 없을 거야!”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정말 그녀를 감금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아마도 도망치지 못하고 이번 생은 끝장 날 것이다.어머니를 다시 볼 기회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녀는 선우주영에게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없었고, 지
백채영을 생각하자 선우소훈은 마음이 약해졌다.“의사의 어진 마음”이라고 그는 임산부를 고문할 만큼 잔인하지는 않았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할아버지!”선우주영은 흥분해서 소리쳤다.“이렇게 그냥 내버려두시면 안 돼요!”선우소훈은 불만을 갖고 꾸짖었다.“왜, 임산부에게 손을 대려고?”선우주영은 입을 열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선우 일가의 규율은 그녀가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계속 지속하면 오히려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녀는 분개하며 이를 갈았다.“아이를 낳으려면 아직 반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이 반년 동안 백아영이 도망칠까 봐 걱정돼서 그러죠. 쟤가 품행이 비열하고 지 엄마랑 똑 닮아 어떤 더러운 일이든 저지를 수 있어서 벌 받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이 점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다.박라희는 눈알을 재빨리 돌리더니 곧바로 말했다. “백아영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출산 전부터 여기서 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당연히 그냥 있게 할 수는 없고 백아영의 엄마가 이곳 도우미였으니까 백아영도 여기 도우미를 시킵시다. 마침 채영이도 임신 중이어서 시중을 들 사람이 필요하니까요.”‘쟤가 내 시중을 든다고?’백채영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박라희를 끌어당겼다. “백아영이 나를 죽도록 싫어하는데 어떻게 내 시중을 들어요. 기회를 찾아서 나를 죽이면 몰라도. 엄마, 나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지 마요.”“엄마가 어떻게 널 해치려 하겠어?”박라희는 백채영만 들리게 목소리를 낮추고 계속 말했다.“선우소훈 어르신의 마음이 약해서 백아영이 큰 벌을 받지는 않을 거야. 백아영이 곁에 있는 한 쟤는 항상 위험인물이야. 엄마를 믿어. 쟤가 네 시중을 들게 되면 쟤를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있어.”백아영을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백채영은 마음이 흔들렸다.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백아영을 도우미로 삼아 제 시중을 들게 해요.”백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문 앞에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도우미들이 두 줄로 정연하게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어서 오세요, 아가씨!”백채영은 그저 거처가 바뀌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호화스러운 곳인 줄은 몰라서 살짝 놀랐다.“할아버지, 여긴 어디예요?”“시간이 부족해서 선우 일가에서 아직 모든 걸 보여줄 준비는 안 됐다. 그래서 당분간 머물기 위해 잠시 여기를 구입했는데, 나중에 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다시 구입하자꾸나.”선우소훈은 총애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 사람들도 다 너를 보살필 거야.”백채영은 여태껏 이렇게 높은 수준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허영심이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순식간에 기쁨과 교만으로 가득 차서 뽐내듯 고개를 돌려 사람들 중 맨 뒤에 서 있는 백아영을 바라보았다. 백아영이 진짜 선우 가문의 딸이라고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전부 그녀의 것이다!하지만 백아영은...“이 도우미 유니폼 꽤 예쁘네요. 또 있나요? 백아영도 입히게요.”“있습니다, 아가씨.”그 도우미는 즉시 유니폼 한 벌을 가져왔다.백채영은 유니폼을 백아영에게 던지면서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비꼬았다.“이제부터 너도 저 사람들 중 한 명이야. 저들과 똑같은 비천한 도우미야.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내 시중을 들어!”유니폼을 들고 있는 백아영은 손을 꽉 움켜쥐며 치솟는 감정을 억눌렀다.이를 악물고 탈의실로 갔다.백채영은 백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악의가 가득했다. 이제 백아영이 그녀의 도우미가 되었으니 백아영을 철저히 제거하기 전에 먼저 마음껏 괴롭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백아영이 불행하기만 하면 그녀는 행복했다.백아영은 옷을 갈아입은 후 다이닝 룸으로 끌려갔다.마침 점심시간이라 선우소훈, 선우주영, 구승호 그리고 백채영이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에는 호화로운 점심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음식 향기가 넘쳐났다.백아영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뱃속이 텅 비어 엄청 배
백채영을 되찾은 후 백 씨 가문의 부모는 그녀를 백아영과 같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백채영이 의학에 대한 기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재능조차도 없었다.백아영은 학교에서 소문난 천재였으나 백채영은 전 학년의 꼴찌였다.백채영이 후에 백아영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면 백아영의 빛에 가려져 발아래 짓밟히고 멸시를 받았을 것이다.백채영은 다시는 그런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수줍게 말했다.“어릴 때 밖에서 떠돌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또래 친구들한테 의학 지식이 따라 못 가요. 의학 지식을 배운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선우소훈은 백 씨 가문에서 예전에 입양해서 키운 아이는 백아영이고 나중에야 백채영을 찾아온 것을 알고 있었다.자신의 손녀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못 받은 것으로 이렇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선우소훈은 갑자기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날로 얻어먹은 백아영이 더 꼴 보기 싫어졌다.그는 자상하게 말했다.“배운 적이 없어도 괜찮아. 네 사촌 오빠가 가르쳐 줄 거야. 그의 의술은 선우 가문의 젊은 세대 중 최고야. 그에게서 배우면 반년 후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잘할 거야.”다른 사람들은 10년 동안 의술을 배워야 하는데 반년이면 그들을 따라잡고 심지어 백아영을 능가할 수 있다고?이것이 바로 선우 일가의 놀라운 의술인가?백아영도 내세울 게 꽤 괜찮은 의술밖에 없는데, 그녀를 초월하고 심지어 눌러버릴 때면 백아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백채영은 곧바로 기뻐하며 연신 고대를 끄덕였다.“꼭 오빠를 따라 제대로 배울 거예요!”“오빠, 잘 부탁드려요.”구승호는 외부에 알려진 가명이고 그의 본명은 선우경진이었다. 그는 이름을 숨기고 밖에서 단련하면서 은밀히 외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어렸을 때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선우정현 이모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백채영도 좋아했다.“넌 우리 선우 가문의 유일한 공주님이야. 널 가르치게 되어 영광이야. 난 모든 걸
하지만 이것은 백채영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한 일이었다.백아영은 아무 말 없이 청소하러 갔다.백아영이 평온한 표정으로 안도하듯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백채영은 가슴에 화가 꽉 차 더욱 답답해졌다. 그녀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선우경진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저으며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채영아, 너 배 속에 아기도 있는데 화를 내면 안 좋아. 저런 사람한테 신경 쓰지 마.”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백아영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선우 일가 사람들한테 그녀가 안달 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말이 맞아요. 저런 비천한 도우미를 신경 쓰지 않을래요.”선우경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의학 실험실을 보여주고 의술을 가르쳐줄게. 우리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어떻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천천히 배우면 될 것을. 하지만 백채영도 얼른 잘 배워서 백아영을 짓밟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에 따지지 않았다.백채영과 선우경진은 의학 실험실로 갔다. 하룻밤 사이에 서둘러 설치한 것이지만 내부에는 기본 시설들이 전부 다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많은 물건들은 백채영이 학교에서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선우경진의 의학에 대한 태도는 아주 엄격했다. 의학 실험실로 들어서자 그의 온화한 모습은 사라졌고 진지한 태도로 백채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선우 일가의 사람들은 의학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좋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선우 일가의 어린 공주의 재능이 가장 높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측정할 수 있었다. 선우 일가의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그래서 다른 집에 시집간 선우정현이 낳은 딸한테도 “선우”라는 성을 주었다. 심지어 오래전부터 나중에 공주님이 커서 선우 가문을 물려받을 것을 결정해 왔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기 시작한 후 점점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백채영은 그가 가르친 내용들을
백채영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의학 실험실을 떠나면서 낮은 목소리로 욕했다.“선우 의가는 무슨. 그냥 그렇네. 여기서도 기초부터 시작하면 그 구린 교수들이랑 다를게 뭐가 있어.”반년만 있으면 의술을 배워서 백아영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선우 의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쓰레기인 거야.”선우주영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백채영을 조롱했다.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백채영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났다.백채영은 깜짝 놀랐다가 앞에 있는 사람이 선우주영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곧바로 불만을 품고 반박했다.“아직 적응이 안 된 것뿐이지 시간만 주면 적응해서 바로 배울 거예요.”“네가 적응할 때 되면 선우경진도 네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할 거야.”선우주영은 비웃으며 말했다.“너 선우 가문의 딸을 그렇게 쉽게 사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혈액 검사는 넘겼지만 아직 재능이 남아있어. 선우 가문의 공주님은 백 년에 한 번 나타나는 천재라 아무리 복잡한 선우 가문의 의술도 한 번 보면 배울 거야. 넌 기초적인 것도 한참 배워야 하는데 과연 들통이 안 날까?”백채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제야 선우경진이 방금 전까지 왜 그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는지 뒤늦게 이해했다.그녀가 멍청하다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해서 그녀에게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그럼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더 이상 선우경진을 따라 의술을 배울 수는 없잖아요.”선우주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너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널 감싸주고 있는데, 핑계를 대서 배우지 않으면 되잖아. 얼마나 쉬워? 하지만 백아영이 여기 있어서 혹시 어느 날에 선우 가문의 의술을 접할 기회가 생겨 바로 배워서 걔의 재능을 뽐낸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만약 선우 가문 사람들이 백아영의 뛰어난 의학 실력을 보게 된다면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채영은
“봤어? 성준 도련님은 혼사를 제안하려고 찾아온 거야. 이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회장님과 어머니도 모시고 왔잖아. 그때 네가 성준 도련님과 결혼했을 때는 감히 꿈도 못 꿨지? 하긴, 성준 도련님 같은 귀공자와 어울리는 사람은 존귀한 신분을 가진 채영 아가씨뿐이지.”도우미는 쌀쌀맞은 얼굴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우리 채영 아가씨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가 따로 없는 주제에 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꺼웠으면 뻔뻔스럽게 성준 도련님과 결혼한 거야?”쟁반을 들고 있는 백아영의 손이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이성준이 혼사를 제안하러 왔을 줄이야.게다가 격식까지 갖추었으니 이성준과 백채영의 예식은 빠른 시일 내로 준비를 마치고 진행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두 사람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부부였다.“얼른 다과를 가져가서 세팅하지 않고 뭐해? 성준 도련님한테도 두 눈으로 직접 너랑 우리 채영 아가씨의 격차를 확인하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 채영 아가씨는 귀한 선우 일가 따님인 반면 넌 남의 시중이나 들고 심부름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야.”도우미가 백아영을 앞으로 밀치자, 그녀는 중심을 잃은 나머지 휘청거리며 본의 아니게 거실로 들어섰다.거실에서 시중을 들던 도우미가 즉시 큰소리로 꾸짖었다.“백아영, 조심해! 어쩌면 그렇게 칠칠맞지 못해? 음료수 하나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거야?”갑작스러운 호통에 거실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백아영한테 집중되었다.그녀를 발견한 이영철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금세 아무도 모르게 표정을 폈다. 포커페이스로 일관한 그의 얼굴은 과연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반면, 백아영이 이곳에서 도우미로 있을 줄은 몰랐던 오미란은 깜짝 놀랐다.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후로 이 정도로 몰락했단 말인가?그녀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백아영이 이혼하고 나서도 이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 먹는다는 생각에 더더욱 못마땅했다.이성준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