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그룹, 대표 사무실.하은혜의 부재로 대표 사무실은 어딘가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그동안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도 지금은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이에 김예훈은 쓴웃음을 지었다.솔직히 말하면 그는 여태껏 일만 시켰지 실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하은혜가 대체 얼마나 많은 업무를 처리했는지 감이 안 왔다.텅 빈 하은혜의 자리를 보며 김예훈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안심해요. 이 세상에서 은혜 씨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진주 이씨 가문은 물론 서울 하씨 가문이라도 불가능하죠.”약 30분 후,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송준이 공손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알아냈어?”김예훈이 물었다.송준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조사는 했습니다만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사람을 보낸 탓에 정체가 탄로 났나 봅니다.”“괜찮아, 자료 줘.”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송준에게 부탁하는 순간 그는 이미 정체가 탄로 날 거라는 사실을 예상했지만, 지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곧이어 송준은 김예훈에게 파일을 넘겼고, 한국에서 가히 극비에 속하는 자료를 보면서 김예훈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한국에는 10대 제일의 명문가가 있는데, 서울 하씨 가문이 10위에 올랐다.그동안 김예훈은 한국 10대 제일의 명문가는 부와 영향력, 권력을 기반으로 선정한다고 여겼다.하지만 이 자료들을 보고 나서야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한국은 대통령을 제외하고 9대 장관이 있는데, 각각 하나의 체계를 담당하고 있다.예를 들면, 국방부 장관은 한국 국방부 본부와 9대 국방부를 책임지고 국방부에서 최고의 발언권을 갖고 있다.또한, 국방부 장관이 속한 가문은 10대 제일의 명문가 중에서 서열 2위이다.물론 한국 대통령의 집안은 10대 제일의 명문가 중 서열 1위이다.하씨 가문이 10대 제일의 명문가 중 일원이 된 것도 9대 장관 중에서 꼴찌인 사람이 서울 하씨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다.이는 또한 하정
그날 밤, 이장우를 포함한 이들은 편지 한 장을 받았다.빨간색 편지지를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이장우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건방진 놈이 역시 눈에 보이는 게 없군. 지금 나한테 청혼을 취소하라고 강요하는 건가? 아, 아니군. 청혼을 취소하는 건 물론 진주 이씨 가문마저 짓밟으려고 하네? 그럴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나?”맞은편에 앉은 김만태가 웃으면서 말했다.“김세자는 이번에 너무 섣불렀어요. 비록 손씨 가문과 홍인경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이 편지를 돌림으로써 나씨 가문을 포함한 3대 가문이 결국 우리 편에 서게 한 것과 다름없잖아요. 상황이 점점 더 흥미롭게 흘러가는데요?”이장우는 무심하게 말했다.“당연하지, 나성군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미 연락 와서 대책을 의논하겠다고 하더라. 이번에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우리는 어부지리로 덕만 보면 돼.”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선이 마주친 이장우와 김만태는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손씨 가문 사건 때문에 나머지 3대 가문은 하나같이 위축되어 차마 CY그룹을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런 와중에 김예훈이 직접 세 가문을 그들의 편으로 만들어주지 않았겠는가! 인생은 정말 예측불허했다.이장우가 말을 이어갔다.“뭐, 이 얘기는 그렇다 치고, 그보다 방금 전해 들은 소식인데 한국 의학계 거장인 전남산 어르신이 3일 뒤에 귀국한대.”“네? 전남산 어르신이요?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문도 있지 않아요?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나타났대요?”침착함을 유지하던 김만태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전남산은 뛰어난 의술 때문에 저승사자의 천적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그가 치료한다면 목숨이 간당간당한 사람마저 기사회생한다는 소문마저 무성했다.하지만 전남산은 5년 전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 행방을 수소문한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다들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그런 분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무려 성남시에 온다니?김만태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편, 성남 공항.VIP 통로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는데, 정지용과 정가을이 제일 앞에 있었다.다만 과거의 오만방자하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하인처럼 비굴해 보였다.두 사람의 뒤로 화려한 슈트 차림의 쌀쌀맞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정지용, 정가을! 난 분명 기회를 줬다? 이번에 잘 좀 해서 전남산 어르신을 부산으로 모셔올 수만 있다면 우리 견씨 가문의 하인으로 받을 줄게. 만약 실패했다면 일찌감치 꺼져! 견씨 가문에 꼬붕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너희까지 필요한 건 아니야.”정지용은 굽신거리며 대답했다.“청오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최선을 다할게요. 성남시는 우리 구역이라서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예요.”정가을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청오 도련님, 먼 길 오시느라 지쳤을 텐데 오늘 밤 확실하게 모실게요.”“찰싹!”견청오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여비서가 불쑥 다가와 정가을의 뺨을 내리치고는 싸늘하게 말했다.“개보다 못한 년이 어디서 나대는 거야?”“죄송합니다!”정가을은 감히 찍소리도 못하고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정지용과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의 눈동자는 원망으로 가득했다.김예훈, 정민아! 우리가 다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너희를 짓밟아 뭉갤 수만 있다면 기꺼이 다른 사람의 하인이 될 테니까!...부산 견씨 가문을 제외하고 크고 작은 가문들이 속속 성남시를 방문했다.대체 누가 전남산 어르신의 귀국 소식을 퍼뜨렸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한국 상류층에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의학계 거장 정도면 아무리 제일의 명문가라고 해도 거의 받들어 모시다시피 하는 귀한 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대통령마저 전남산 어르신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했다.따라서 의학계에서 전남산 어르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갔다.물론 이 일에 대해 논의하는 CY그룹 직원도 적지 않았다.어쨌거나 CY
“대표님, 대체 누구를 픽업하러 가시는데 허름한 차일수록 좋다는 거예요?”하은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김예훈이 대답했다.“그거 알아요? 그분은 취미가 툭 하면 전쟁터에 가서 허름한 차를 구경하는 건데, 고급 차를 끌고 가봤자 쳐다보지도 않을걸요?”비록 김예훈이 누굴 픽업하러 가는지 모르지만, 그가 부탁한 이상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적어도 십여 년은 되어 보이는 봉고차 한 대가 CY그룹 정문에 나타났다.김예훈은 송준한테 운전을 부탁했고, 두 사람은 쏜살같이 성남 공항으로 향했다.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송준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공항을 겹겹이 둘러싼 고급 차 행렬은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마이바흐,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없는 게 없었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급 차를 전시하는 중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반면, 허름한 봉고차를 몰고 온 김예훈과 송준은 기사들의 경멸을 한 몸에 받았다.“저 사람은 뭐 하자는 거지?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나?”“오늘은 무려 전남산 어르신이 귀국하는 경사스러운 날이잖아. 오로지 어르신을 한번 뵙기 위해 여러 가문에서 찾아왔다고! 어떻게든 어르신의 눈에 띄려고 다들 제일 비싼 차를 끌고 오지 못해 안달인데, 고작 봉고차를 타고 온 사람이 있을 줄이야!”조수석에서 내린 김예훈이 허름한 봉고차에 ‘전남산 어르신이 성남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알아봤다.“하하하, 저 사람 정 씨 일가 데릴사위 김예훈 아니야? 역시나 별 보잘것없는 회사에 걸맞게 허름한 봉고차로 전남산 어르신을 픽업하러 왔네? 장난하나?”“하하하, 미쳤나 봐, 어쩌면 이렇게 멍청하지?”“다들 김예훈이라는 사람이 머리에 든 게 없는 데릴사위라더니, 그동안 안 믿었거든? 이제는 왜 그러는지 알겠네!”“역시 백문불여일견이군.”이윽고 정민아의 데릴남편이 봉고차를 끌고 전남산을 픽업하러 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사람들 틈에서
견청오는 피식 웃었다.“내가 있는데 감히 어딜 넘봐?”부산 견씨 가문은 한국 10대 제일의 명문가 중 일원으로서 비록 9위에 불과하지만, 현장에 있는 어중이떠중이와 비교하면 견청오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없다.정지용은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청오 도련님, 사람을 시켜서 저 자식을 잡아 올까요?”“괜찮아. 우선 일부터 보고! 여자는 아무 때나 빼앗아 와도 되니까.”견청오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일의 중요도를 구분해야지 않겠는가!견청오 일행과 멀지 않은 곳에 윤해진, 나성군, 임무경이 나란히 서 있었다.김예훈이 다가오자, 임무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쓰레기 같은 놈은 여기 왜 왔지? 창피하게!”김예훈은 임씨 가문의 외손녀 사위로서 망신을 당하는 순간, 임씨 가문마저 체면을 잃기 마련이다.나성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회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외손녀 사위가 색다른 접근으로 전남산 어르신의 눈에 들지도 모르잖아요? 만약 나중에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저희도 좀 잘 챙겨주세요.”그의 말에 윤해진도 히죽 웃었다.오늘 그들이 모인 목적은 아주 간단했고, 바로 전남산을 모셔가는 것이다.그 뒤로 하정민, 공문철, 선우건이의 모습도 보였다.한마디로 오늘 성남 공항에는 성남시 거물급 인사들이 암암리에 다 모여 있었다. 물론 외지에서 온 귀한 손님들은 얼마나 더 많은지 짐작이 안 갔다.이장우는 맨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김예훈을 발견하는 순간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다른 사람은 김예훈의 정체를 모를 수 있지만, 그는 속으로 뻔했다. 김예훈은 절대로 데릴사위에 그칠 분은 아니며, 전설 속의 김세자일 가능성이 컸다.다만 이장우는 김세자가 딱히 두렵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무려 진주 이씨 가문의 세자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진주 이씨 가문은 한국 10대 제일의 명문가를 제외하고 모두를 압도하는 그런 존재이다.“네 놈이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는 거지? 가소롭군, 오늘은 널 상대할
김예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장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시끌벅적하던 공항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다들 하나같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잘못 들었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진주 이씨 가문을 도발하다니? 그것도 이씨 가문 세자의 앞에서 말이다.이장우가 처음 성남시에 왔을 때 상류층 인사들이 발 벗고 마중 나간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따라서 이런 분의 신분과 지위는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감히 진주 이씨 가문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다니?이때 암암리에 지켜보던 하정민 일행도 아무리 김예훈의 정체를 안다고 하지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진주 이씨 가문은 진주 4대 제일의 명문가 중 일원으로서 가히 짐작할 수 없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설령 한국 10대 제일의 명문가라고 해도 진주 이씨 가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꽤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그런데 지금 누군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실제로 하다니!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이 사실 정민아의 데릴남편이라는 걸 알아본 이도 적지 않았다.정민아는 둘째 치고, 정 씨 일가를 놓고 봐도 고작 성남시 이류 가문에 불과할 뿐, 상류층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이런 가문은 당연히 진주 이씨 가문 앞에서 벌레보다 못한 신세였다.하지만 정 씨 일가의 데릴사위에 불과한 놈이 감히 이씨 가문 세자인 이장우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죽고 싶어 안달 났나?“훗.”이장우는 피식 웃었다.“진주 이씨 가문이 생겨난 이후로 우리를 무너뜨리겠다는 사람은 그쪽이 처음이군. 그리고 감히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사람도 당신이 처음이고. 배짱이 대단한데?”김예훈이 싸늘하게 말했다.“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알아서 판단해.”이장우의 옆에 있던 측근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김예훈, 너 따위가 대체 뭐라고? 우리 도련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놈이 감히 세자를 협박해? 무려 세자님한테 사과하라고?
한편, 성남 공항 게이트 앞에 포르쉐가 한 대가 어렵게 주차할 곳을 찾아 멈춰섰다.운전석에서 내린 정민아는 눈앞의 광경에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엄마, 아빠, 진짜 전남산 어르신을 모시러 갈 거예요?”정민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오늘 아침 집에서 전남산이 성남시에 온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임은숙과 정군은 그녀한테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이때, 임은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딸아, 너희 회사에서 지금 백운 별장을 짓고 있지 않아? 시공 일정대로 진행한다면 아마 한두 달 뒤부터 매매할 수 있겠네?”정민아는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대답했다.“네, 비슷해요.”임은숙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홍보할지도 고민해 봐야지. 그동안 대체 어디 가서 광고 모델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지금 눈앞에 떡하니 나타날 줄이야!”“무슨 뜻이죠?”정민아는 아리송했다.“전남산 어르신 말이야! 만약 우리 백운 별장 공사 현장에 찾아가서 얼굴이라도 비춘다면 나중에 전남산 어르신마저 인정한 살기 딱 좋은 곳이라고 홍보하면 그만이잖아! 그렇다면 별장 매매가도 쑥쑥 오르지 않겠어?”비록 무식하게 행동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임은숙은 어디까지나 부잣집 출신으로서 사업 감각은 타고났다.정민아는 눈이 반짝 빛났다가 이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이렇게 하면 분명 홍보 효과는 톡톡히 보겠지만, 엄마 아빠도 보셨다시피 현장에 고급 차들이 즐비해 있잖아요. 다들 유명한 가문이나 대기업에서 찾아온 분일 텐데, 우리처럼 자그마한 회사에서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전남산 어르신을 초대하겠어요?”이때 정군이 목을 가다듬었다.“딸아, 자신감을 가져. 넌 무려 김세자가 공개 프러포즈한 여자라는 걸 잊지 마! 이따가 자기소개할 때 김세자의 약혼녀라고 하면 되잖아. 과연 경기도 일인자인 김세자의 체면마저 안 봐주는 사람이 있을까?”정군과 임은숙은 결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어떻게든 이 일을 성사시키고 싶었다. 사실 전남산을 이용하여 홍보하는 것보다 정민아
이때, 성남 국제공항 VIP 통로 밖에는 이미 수천 명이 모여들었고, 인원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자격 여부와 관계없이 다들 운에 맡기자는 심정으로 출구 쪽에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그 순간 공항 내부에서 소식이 들려왔는데, 전남산이 탑승한 전용기가 이미 착륙했고 곧 밖으로 나올 거라고 했다.이장우를 비롯한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기대에 들뜬 마음을 안고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김예훈은 굳이 경쟁할 생각이 없는 듯 구석진 곳으로 물러났다.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냉소를 터뜨렸다.아무리 데릴사위라고 해도 자기 분수는 알고 있는 듯싶었다. 전남산 어르신을 초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항복한 꼴이라니.물론 그렇게 납득이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진주 이씨 가문의 세자인 이장우가 버젓이 있는데, 대체 누가 감히 그와 경쟁하겠는가?약 3분 뒤, VIP 통로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맨 앞에서 걸어오는 분은 다름 아닌 전남산이다.어르신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지만 기운이 넘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그는 의술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전통 무술도 뛰어나다고 했는데 태극권, 태권도, 합기도, 무술 등 못 하는 게 없을 정도였다.심지어 젊은 시절에는 여러 전국 대회에 익명으로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이런 인물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에 그가 해외로 출국한 이유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전염병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남산은 무려 사비를 들여서 갔는데, 그 나라의 전염병을 종식하는 데 몇 년이나 걸렸다.하지만 이런 위인일수록 더더욱 소탈했다. 새하얀 셔츠를 입은 그의 곁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비서 한 명이 있었다.심지어 백팩마저 직접 메고 있지 않겠는가! 비록 VIP 통로에서 걸어 나왔지만 허세가 전혀 없어 보였다.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외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자세를 똑바로 했다.이때, 이장우가 가장 먼저 나서며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추문성은 최대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동하임까지 데려갔다.진주에서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동하임을 데려간 것이다. 이로써 상대방을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말에 힘을 실어 넣을 수 있었다.뒤따르던 김예훈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경호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차량 행렬은 곧 옥루 회관에 도착했다.땅값이 비싼 이곳 건물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시내 중심에서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옥루 회관은 시적인 미적 감각을 보여주었다.이곳은 진주·밀양 권력자들이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로 가난한 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었다.이 사람들 외에도 많은 부잣집 따님들이 오가며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추문성은 익숙하게 정차하고 김예훈, 동하임과 함께 입구로 걸어갔다.막 들어가려던 찰나 기모노를 입고있는 한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죄송한데 이곳은 개인 회관으로서 회원 카드를 제시하셔야 입장이 가능해요.”일본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차가운 기운을 풍기기도 했다.“회원 카드요?”추문성은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추문성이라고 해요. 제가 이곳을 드나드는데 회원 카드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아무리 그래도 밀양 1인자 가문의 도련님인데 예전에 방탕한 생황을 누리고 있을 때는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이 자주 찾아왔다.그때는 이른바 회원 카드도 필요하지 않았다. 얼굴도장만 찍으면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다.그런데 그런 그에게 회원 카드를 제시하라고 한다고?이것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거나 다름없었다.일본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죄송한데 방금 접한 저희 아가씨 명령대로 오늘부로 회원 카드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해요. 부잣집 도련님이든 김현민 도련님이 오시든 예외는 없어요. 그리고 개인 출입만 가능하고요.”추문성이 냉랭하게 말했다.“정말 회원 카드가 있어야 하겠어요? 저를 막을 수나 있겠어요?”일본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 임수민은 당연히 추 도련님을 알고 있죠... 그런데 제
김예훈을 추문성에게 전화해서 현장을 처리해달라고 했다.동하임에게도 전화하려고 했지만 여자한테 이런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여주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얼마 후, 주우섭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상처를 치료받았다.추문성은 아까 쓰러진 고서희를 알아본 듯 미간을 찌푸렸다.“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김예훈은 추문성의 표정을 캐치하고 물었다.추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서희는 옥루 회관 사람이거든요. 옥루 회관은 진주 4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남씨 가문의 구역인데 어젯밤 남윤지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 옥루 회관까지 건드렸으니 남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남씨 가문?”김예훈은 실성하고 말았다.“남씨 가문이 나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씨 가문을 건드렸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건데?”추문성은 멈칫하더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조사해 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강서연 씨가 정말 잡혀갔어?”김예훈이 화제를 돌리자 추문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맞아요. 제가 받은 정보에 의하면 남씨 가문이 화해의 의미로 강서연 씨를 데려갔다고 했는데 사실 반강제로 끌려갔다고 했어요.”“그러면 강준 씨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김예훈이 물었다.“강준 씨는 집법부대 사람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고 있어서 아무도 그와 연락할 수 없었어요. 이 중요한 순간에 강서연 씨가 옥루 회관으로 끌려간 걸 보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강준 씨는 늘 조심스러운 사람인데 어떻게 갑자기 남씨 가문을 건드렸을까요?”추문성은 어제 사건의 세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의아하기만 했다.“내 편에 서기로 했거든.”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섰다.“겉으로는 남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를 노리고 있어. 나랑 함께 옥루 회관에 가보자고. 강서연 씨를 무사히 데려오지 못하면 아마 진주·밀양에서 아무도 나한테 투자하지 않으려고 할 거야.”추문성은 이제야 이해한 표정이었다
“그래. 지금 놔줄게.”김예훈은 그를 힘껏 바닥에 던져버렸다.“푸!”정장남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목구멍이 달아오르고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에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동시에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와 그를 절망에 빠뜨렸다.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벌려 숨을 쉬고 싶었지만 마치 누군가에 의해 목이 조여진 것처럼 전혀 공기를 들이마실 수가 없었다.김예훈이 이 정도로 강하게 나올 줄 몰랐던 그는 그래도 기절하고 말았다.퍽!김예훈은 정장남을 발로 차서 그녀 앞으로 날려 보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풀어줬어. 이제는 됐어?”이 장면을 지켜보던 주우섭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것이 바로 그가 원하던 결말이었다.“죽여버려!”이때 일곱, 여덟 명의 정장남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김예훈을 향해 달려들었다.두목이 쓰러졌는데 김예훈을 죽여버리지 않으면 어떤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지 몰랐다.쨕! 쨕! 쨕!김예훈은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가 그들의 뺨을 가차 없이 때렸다.잠시 후, 이들은 모두 저 멀리 날아가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눈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이들은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이 정도로 무서운 존재인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김예훈을 마주했을 때 이 일곱, 여덟 명의 장정들은 반격은커녕 전혀 피할 수조차 없었다.아까 그녀는 눈빛이 반짝이더니 곧바로 소리쳤다.“김예훈, 넌 이제 큰일 났어!”쨕!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뺨 한 대로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렸다.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겨우 일어나려고 할 때, 김예훈은 그녀의 머리를 밟아버렸다.“말해. 누가 나를 괴롭히라고 보낸 건지.”김예훈은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누가 너를 괴롭힌다고 그래? 분명 네가 먼저 우리의 좋은 일을 망쳤잖아. 죽고 싶어?”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멀리 있는 총을 다시 잡으려 했다.하지만 김예훈은 다른 한 발로 그녀의 손가락을 부
누군가 호통치는 소리를 듣자 일곱 여덟 명의 장정은 뒤돌아 날카로운 시선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아까 그 여자는 피식 웃더니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의 등장이 매우 만족스러운 모양이다.“우리 지금 영화 촬영하고 있는 거 안 보여?”앞장서있던 남자가 김예훈을 잠시 눈여겨본 후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꺼져! 그리고 오늘 본 거 다 잊어버려. 아니면 너도 우리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될 거야.”“이대로 갈수 없겠는데?”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지금 맞고있는 사람이 나랑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거든.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모른는 체할 수는 없잖아? 내 체면을 봐서라도 이대로 풀어주는 거 어때?”김예훈의 말에 상대방은 멈칫하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너 죽고 싶어? 우리가 누군지 알기나 해? 왜 네 체면을 지켜줘야 하는데? 체면이 있기라도 해?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꺼져!”이때 그의 손짓하나에 두 명의 부하가 목을 비틀며 잔인한 표정으로 다가왔다.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다.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반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아까 그녀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소리쳤다.“조심해!”정장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고 싶었지만 김예훈의 속도를 이길 수가 없었다.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순간, 김예훈은 이미 오른손을 뻗었다.이때 정장남이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이 자식이...”빠직!말도 끝나기 전에 김예훈은 이미 그의 목을 잡고 천천히 들어올렸다.이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정장남은 숨을 쉴 수 없어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한순간 죽음의 기운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그 손 안 놔?”“빨리 내려놔!”“죽고 싶어?”일곱, 여덟 명의 정장남들은 멈칫도 잠시 동시에 총을 들었다.아까 그녀도 차에서 뛰어내려 총알을 장전하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서서히 다가왔다.바로 이때, 공중에 떠 있던 정장남도 충격에서 회복하고 김예훈을 째려보며 악랄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감히
“도련님, 저 지금 해양 공원 야외 주차장에 있어요.”주우섭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두려움이 담겨 있는 듯했다.“지금 컨테이너 뒤에 숨어있는데 계속 저를 찾고 있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어요... 서연이가 잡혀갔다고요. 빨리 와주시면 안 돼요?”“알겠어요. 곧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김예훈은 조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는 웨이터에게 현금을 건네고는 택시를 잡아 해양 공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김예훈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누군가 어두운 구석에서 걸어 나와 무전기를 꺼내 조용히 말했다.“걸려들었어.”...십몇 분 뒤, 김예훈은 해양 공원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서 택시요금을 낸 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곧 김예훈은 구석 자리를 찾았다.몇몇 정장을 입은 장정들은 입에 시가를 물고 한 남자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이들이 하나같이 호스, 야구방망이 같은 것들을 휘두르는 바람에 구석에 있는 남자를 울부짖게 했다.이들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랭글러 차 보닛 위에는 어떤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몸매 좋은 그녀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차가운 표정으로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영락없는 명사수의 모습이었다.김예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힐끔 쳐다보더니 곧바로 살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멀리서 총으로 김예훈을 겨냥하면서 저리 꺼지라는 제스처를 했다.한껏 거만한 태도에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정말 아무것도 간파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김예훈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도대체 누가 자기를 건드리려고 하는지 보고 싶어서였다.김예훈은 그녀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 구석에서 구타당하고 있는 주우섭을 발견했다.이 순간 그의 얼굴에는 뺨 자국이 가득했고 퉁퉁 부어있었다. 그리고 여러 곳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전혀 재벌 2세의 모습이 아니었다.게다가 그가 입고있는 정장은 너덜너덜해져 악취가 계속 풍겨 나왔다.앞장서있던 남자는 야구 방망이를 세게 내리쳐 주우섭의 비명을
남윤지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 남지훈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동생아, 이제 이 늙은 호랑이가 진주에 돌아와 소란을 피울 때도 된 거야. 그 사람이 이기면 우리 남씨 가문도 다시 체면을 되찾을 수 있는 거야. 어차피 그 사람이 죽어도 앞으로 너의 걱정이 하나 줄어드는 거 아니겠어?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 우리한테는 좋은 일일 거라고.”남윤지는 표정이 확 변했다.“설마 김현민 도련님이랑...”“쉿!”남지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현민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4대 도련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건데? 예전의 4대 도련님은 이미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 대신 김병욱이 올라섰어. 만약 나랑 곽영현이 이렇게 바보처럼 지내고 있으면 얼마 안 지나 또 다시 물갈이하지 않겠어?”남윤지가 말했다.“그러면 맹승현은...”남지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맹승현이 우리의 체면을 되찾아 줄 수 있다면 우리 편에 설 자격이 있는 거지. 아니면 그냥 버려진 존재일 뿐이야. 진주에서는 오직 나랑 곽영현이 힘을 합쳐야만 김현민과 맞설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설마 나랑 곽영현이 계속해서 심부름꾼이나 할거로 생각하지 않았지? 그래도 남자 대장부인데 남에게 짓밟혀 살아야 하겠어?”뒤쪽에서 곽영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의 등장에 남윤지는 멈칫하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그녀는 이 두 사람이 손을 잡았을 때 정말 김현민과 힘겨루기를 할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김예훈은 앱으로 주변에 있는 딤섬 가게를 찾았다.진주 경찰서와의 약속에 따라 단기간 내에 진주를 떠날 수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그의 자유를 제한할 방법은 없었다.적어도 김예훈은 지금도 동하임이 자신에게 ‘착한 시민상’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밥을 먹고 있는데 김예훈은 어두워진 날씨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주변이 끔찍하게 어두워 하늘이 언제든지 내려앉을 것만 같았
남윤지 뒤에는 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남지훈이 카푸치노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남윤지의 화가 거의 가라앉을 때쯤, 그제야 담담하게 말했다.“왜 이렇게 화를 내고 흥분하는 건데? 생각해 봐. 진세은, 김청미, 류서우도 그 사람한테 당했는데 너도 손해 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야? 왜 그 사람을 건드리러 갔는지 자신을 탓해야지. 다른 사람을 보냈어도 되잖아. 내가 몇번을 말해. 우리 남씨 가문은 폭력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건 홍성파에서나 할 짓이지. 우리는 머리를 써야 해.”퍽!남윤지는 남지훈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닥에 던져버리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안 가게 생겼어? 김현민 도련님이 강서연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했는데 옥루정도 우리 남씨 가문의 재산이고,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서겠어. 너는 감히 나설 수가 있겠어?”남지훈은 아쉬운 표정으로 바닥에 던져진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에르메스에서 20억 원 이상은 소비해야 받을 수 있는 선물인데 이렇게 깨져버리니 너무나도 아쉬웠다.이때 남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흥분하지 마. 우리가 비록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김현민 도련님한테 우리는 언제나 그의 편인 것을 알렸잖아. 그것도 투자나 마찬가지라 좋은 일이지. 도련님께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우리 남씨 가문이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남씨 가문의 충성을 기쁘게 여길 것이야.”남윤지가 냉랭하게 말했다.“너는 당연히 괜찮겠지. 나는 어떨 것 같아? 도련님한테 내가 무능한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어떻게 안방마님이 되라고. 김청미를 겨우 없애고 나한테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있겠어? 내가 안동 김씨 가문에 시집가면 진주 4대 도련님인 너한테도 좋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내가 지금 무엇때문에 머리 아파하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여기서 비꼬기만 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남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이 정도로 흥분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안
이번 식사 자리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강서연은 대충 몇 입 먹고는 계산을 마치고 곧바로 이곳을 떠났다.김예훈은 그녀가 보고하러 갈 거라고 예상하고 막지 않았다.진주·밀양 용문당 무도관.방석에 앉아있는 강준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강서연이 맞은편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서연의 말이 끝나자 강준은 그제야 눈을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잘못 들은 게 아니야? 정말 김현민을 포함한 전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했다고?”강서연은 자세히 기억을 되새겨서야 대답했다.“김예훈 씨가 정말 그렇게 말한 거 맞아요.”“재밌네.”강준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남윤지가 부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단 말이지. 모든 걸 계산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이 와도 상관없었던 거야?”강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떤 경우든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김예훈이 진주·밀양에서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강서연은 강준의 표정을 보며 조금 망설였다.“할아버지, 저희 남씨 가문을 찾아가서 잘 이야기해 보는 거 어때요? 아니면 김예훈 씨랑 끝까지 가는 것이 좋을까요? 문제는 집법부대가 안동 김씨 가문의 편이잖아요. 김예훈 씨를 따라갔다간 위험해질지도 몰라요.”강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진주·밀양에 지금 거대한 폭풍이 일고 있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고. 우리 강씨 가문이 진주·밀양 용문당을 수년간 지배해 오면서 절대적으로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잖아. 한쪽은 집법부대고 한쪽은 부산 회장인데 우리도 용문당 사람으로서 더 이상 중립을 지킬 수 없어. 무조건 한쪽을 선택해야 해.”강서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할아버지,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누구의 편에 설 필요도 없잖아요.”강준은 고개를 흔들었다.“어쩔 수가 없잖아. 최소한 지금은 선택할 여지가 있잖아.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안동 김씨 가문이랑 엮
김현민까지 이곳에 부를 바에 남윤지는 결국 조용히 있기로 했다.오늘 너무 급하게 온 나머지 너무 경솔하기도 했다.조금만 더 잘 준비하면 김예훈을 죽이기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이순간 수많은 음흉한 계획이 남윤지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음 순간, 그녀는 복수의 결의를 다지며 강서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강서연 씨, 미안해요. 오늘은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무례한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게요. 옥루정 이익에 관해서는 잘 정리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드릴게요.”“그래요. 사과를 받아들일게요.”강서연은 일이 더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무덤덤하게 말했다.“이제 가보셔도 좋아요.”남윤지는 강서연의 태도에 화가 나서 거의 피를 토할 뻔했지만 결국 분노를 억누르며 차가운 시선으로 김예훈과 강서연을 쳐다본 후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남윤지 일행이 떠나자 주우섭이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그러고는 이상한 눈빛으로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강서연의 옆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연 씨, 오늘 일을 크게 벌였는데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남씨 가문은 4대 명문가 중의 하나로서 만약 남윤지 씨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찾아오면 우리가 손해 볼지도 몰라. 아니면 지금 바로 김현민 도련님을 찾으러 가는 건 어때? 직접 사과하고 손해배상도 드리자고.”“맞아! 맞아!”“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남윤지 씨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안방마님이 될 사람인데 절대 건드리면 안 돼.”“우리가 지금은 이겼다고 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거야.”아까 남윤지가 있을 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던 강서연 친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혹시라도 잘못 연루될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이들이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외감 외에도 적대감이 더해졌다.분명 오늘 김예훈의 행동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였다.남씨 가문에서 발끈해서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 후과를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