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이죠?”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물었다.이내 양정국은 나지막이 대답했다.“손지강이 별다른 능력이 없는데도 손씨 가문의 세자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능한 양아버지를 뒀기 때문이죠.”“누군데요?”“경기도 조직의 보스 홍인경.”양정국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홍인경은 경기도 조직에서 말한 대로 하는 인물로서 신분이 꽤 높았다.양정국은 제아무리 성남시 일인자라고 해도 감히 홍인경을 건드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김예훈이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손지강이 날 상대하려고 홍인경을 찾아갔단 말인가요?”“그럴 가능성이 커요.”양정국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김예훈 씨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쯤은 저도 알지만, 돈 있는 손씨 가문과 사람을 부리는데 도가 튼 홍인경이 손을 잡게 된다면 절대로 쉽게 대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어쨌거나 매사에 조심하는 게 좋을 듯싶어요.”김예훈은 고개를 돌려 양정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나랑 손지강이 피 터지게 싸우고 둘 다 망했으면 하는 바람은 아니고?”“그럴 리가요!”양정국은 감히 김예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재빨리 고개를 떨구었다.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오후에 있었던 일을 봐서 날 이용한 건 그냥 넘어가 줄게요. 물론 지금부터 서로 빚진 게 없는 거예요.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짓을 벌인다면 그 후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양정국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가운데 김예훈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다들 편하게 있어요. 이건 학회잖아요. 각자 볼일 보세요.”양정국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수습에 나섰다.“여러분, 늘 그랬던 것처럼 즐겨요. 방금 일어난 일은 이제 잊어주세요!”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김예훈이 있는 방향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다만 양정국이 끝까지 동행한 관계로 감히 다가가지는 못했다.그렇게 30분이 흘러 김예훈은 점점 지루함이 몰려왔다.소위 교육계 고위층 인사라고 자부하는 이들
“설마 이 나이 먹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게?”의욕이 넘치는 김예훈을 보자 정민아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그녀는 남편만 원한다면 김예훈을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다만 김예훈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나 아니고 소현이 말이야. 올해 고3이잖아. 곧 대학교도 가야 할 텐데, 성남시에 그렇다 할 학교가 없는 것 같아서. 아마 서울이나 부산 또는 대전에 공부하러 보내야 할 것 같아.”정민아는 실소를 터뜨렸다.“소현은 엄마 아빠가 알아서 걱정할 거야. 넌 고작 형부일 뿐이니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도 돼.”김예훈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렇다고 정민아한테 오늘 학회에서 성남시 교육청 사람들의 진면목을 확인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대전 방문 일정을 며칠 더 당겨야 할 것 같군. 소현이 다닐 만한 대학교도 겸사겸사 찾아보고.”김예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전까지만 해도 대전에 가는 게 그리 시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 할 듯싶었다....성남시 교외, 복고풍의 일본식 정원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안팎으로 늘어서 있었다.덩치가 산만 한 사람들은 허리춤에 권총이라도 숨긴 듯 하나같이 불룩 튀어나왔다.이때 정원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황급히 걸어 들어왔다.경호원들이 일제히 눈살을 찌푸리다가 상대방을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경계를 풀었다.왜냐하면 손씨 가문의 세자이자 그들이 모시는 보스 홍인경의 수양아들이 방문했기 때문이다.“대부님, 아들이 밖에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싸대기까지 여러 대 얻어맞았다고요.”방석에 무릎 꿇고 앉은 홍인경의 허벅지 위에는 일본 장검이 놓여 있었다.눈 감고 명상하던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무덤덤하게 물었다.“성남시에서 감히 손씨 가문의 세자인 널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고?”“대부님, 그 자식은 꽤 신분이 있는 놈 같아요. 방금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냈는데, 아마도 김세자 대신 일 처리 하는 사람인가 봐요.”손지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소현이 다닐 대학교를 물색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은 김예훈은 곧바로 하은혜에게 대전 업무를 미리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예를 들면, 대전 지사를 홀로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현지인을 찾아야 하는 등이 있다.김예훈이 정민아에게 대전에 간다고 말하자 그녀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진짜 소현이 다닐 대학교를 찾으러 대전까지 간다고? 며칠 있을 건데?”“길어 봤자 5일?”김예훈은 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지사 업무를 이틀 내로 처리하고, 다음 날부터 대전 대학교에 다니면서 현지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김예훈은 정민아가 동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탓에 도무지 외출할 시간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정민아는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대전에 가는 건 괜찮은데, 이왕 가는 김에 나 대신 일 좀 봐 줄 수 있어?”“뭔데?”김예훈에게 승낙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였다.사랑하는 아내의 부탁인데 언제 물불 가릴 틈이 있겠는가!“나랑 제일 친한 육해연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미르 제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대전에 가서 일한대. 여자애가 홀로 타지에서 생활한다고 하니 괜스레 걱정되잖아. 어차피 가는 김에 나 대신 확인 좀 해줄래? 지금 다니는 회사는 괜찮은지, 사는 곳은 어떤지 한 번 알아봐 줘.”정민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알았어, 걱정하지 마.”김예훈도 육해연을 알고 있다. 육씨 가문도 그동안 남해시에 살았는데, 나중에 외국으로 이민 갔다고 했다.육해연과 정민아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육해연이 귀국하게 된 계기도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른다.육해연은 능력이 뛰어난 여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미르 제국에서 무려 케임브루대학과 옥스코대학을 다니면서 전 세계 최고 학부인 두 대학교에서 모두 장학금을 탔다.게다가 졸업하고 나서는 리카 제국과 미르 제국의 대형 투자 회사에서 입사를 제안하는 오퍼를 꽤 많이 보냈다고 했다.육해연을 언급하자 정민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
진주국제공항.김병욱과 김청미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세계 일류인 대도시 중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발을 내디뎠다.VIP 게이트에 도착하자 김병욱이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대전 쪽에 이미 연락 해뒀으니 가서 가만히 앉아서 지켜만 보면 돼.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김청미가 호탕하게 웃었다.“두려워?”김병욱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서는 살기 어린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본 김청미는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말이야. 이런 수단이 정말 먹힐 거라고 생각해?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큰 어르신께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으실 것 같은데?”...대전공항. 김청미가 비행기에 오르는 동안 김예훈은 이미 기다리다 지쳐 지루하기까지 하였다.30분이 지나서야 육해연이 모습을 드러냈다.얼추 168cm 돼 보이는 늘씬한 키와 글래머스한 몸매, 그리고 상반되는 시원한 이목구비와 얼굴형은 전형적인 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그녀의 외모와 이미지는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여자 수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할 수 있으며 감히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신비로운 분위기를 소유하였다.그녀가 나타나자 많은 사람은 연예인인 줄 알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육해연은 그들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그 시각 육해연도 김예훈을 알아보고는 이내 자신의 캐리어를 그에게 넘겨주었다.“이따가 절 이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김예훈에게 한 장의 주소가 적힌 종잇장을 내밀더니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김예훈은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이런 무례한 행동을 보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애교로 봐주어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다.하지만 그는 정민아의 부탁도 있었기에 아무 말도 없이 육해연의 캐리어를 들고는 따라나섰다.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육해연은 의아한 듯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김예훈이 대전에서 잠시 운전하는 차는 벤틀리였다
육해연은 괜히 유학파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그의 말에 땅속이라도 숨어들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이미 그런 시선에는 익숙한지 오랜 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김예훈은 백미러로 육해연을 쳐다보았다.“여자 등골 빼먹는 게 제 취미라면요?”“그럼 내 손으로 당신 처리할 거예요.”육해연의 살기 어린 음성이었다.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혹시 해외에서 공부한 전공이 살인과예요? 절 처리하겠다고요? 엄연한 법치국가에서?”“말 돌리지 말아요. 이제 돈 가져다주면 그거 가지고 민아 곁에서 떠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마 당신이 평생 놀고먹어도 될 액수니까. 당신이 민아 곁에서 떠나 주기만 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요.”말하는 육해연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냉정하였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육해연 씨, 그 전제가 왜 우리 이혼인겁니까? 좀 더 평화롭고 나이스한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이제 장인어른 장모님도 신경 쓰지 않아요.”“당신...”김예훈에게 정곡을 찔린 육해연의 얼굴은 그대로 찡그러졌다.“좋아요. 그렇게 이혼이 하기 싫으면 당신도 남자니까 남자답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업 하나 정도는 해야 할 거예요. 아니면 제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김에훈이 웃었다.“민아가 지금 쟁취한 모든 기회 제가 준 겁니다. 전 뒤에서 항상 그녀를 지지하고 있고요. 이걸로 부족한가요?”김예훈의 말을 들은 육해연은 이 뻔뻔하고 당황한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김예훈을 보는 그녀의 눈빛에 살기가 어려있었다.“김예훈 씨, 설마 CY그룹이 당신 거고 당신이 그 김세자라고 말할 건 아니죠?”김예훈은 잠시 흠칫하였다.“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이건 극비라서 그룹 내에서도 모르는 일인데.”그의 말에 육해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김예훈 씨, 적당히 좀 해요. 이젠 꿈까지 꾸는 거예요? 설마 꿈이 공상가인 거면 빨리 병원 가서
침묵 속에서 차는 빠르게 대전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로 CY그룹의 대전 지사의 빌딩 앞이었다.육해연이 오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제 짐은 먼저 그쪽이 가지고 있어요. 저녁에 다시 연락하죠. 그리고 이 차는 빨리 주인한테 돌려줘요, 오늘 렌트비는 제가 계산하죠.”말을 마친 육해연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김예훈에게 내밀었다.그녀는 김예훈이 렌트했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러면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김예훈에게 팁까지 주는 호의까지 베풀었다.무례하더라도 조금의 동정은 있다고 해야 하나.그녀가 떠나고 김예훈은 조수석에 놓인 돈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설마 이 여자 자신을 한낱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자신의 직감을 너무도 굳게 믿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김예훈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바로 이때 송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대전 지사에 도착하셨어요? 오늘 면접하기로 한 사람 이미 도착해서 면접 기다리고 있어요.”김예훈이 대답하였다.“지금 로비야, 금방 올라가.”그가 이번에 대전으로 출장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대전 지사장 인사 문제였다.하지만 바로 전에까지 있었던 육해연과의 실랑이 덕분에 하마터면 여기에 온 이유마저 잊어버리게 될 뻔하였다....사무실 안.먼저 도착한 송준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사무실의 큰 모니터 화면은 면접 현장을 실시간으로 담고 있었으며 좀 있으면 오늘 지사장으로 면접 올 사람이 도착하게 될 것이다.회의실에서는 면접관 송준을 포함한 여러 고위 이사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김예훈이 손에 든 찻 잔을 막 마시려고 입에 대려던 순간이었다.여신급 미모를 자랑하는 한 여인이 하이힐을 신고 면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풉!”그녀를 보자마자 김예훈은 입에 가져다 댄 차를 그대로 내뿜었다.육해연 아닌가?그녀가 그렇게도 서두른 게 설마 CY그룹 대전 지사장
하지만 육해연이 능력자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그녀는 송준을 통해 김예훈이 한 난이도 높은 질문마저도 모두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었다.한마디로 그녀는 준비된 자였다.사실 그녀는 이곳에 오려고 할 때 이미 대전 지사의 지사장 자리는 자기것 이라고 확신하고 온 것이었다.면접이 끝나고 김예훈은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직접 송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면접 합격했다고 전해!”송준은 잠시 멍해 있었지만 이내 대답하였다.“네!”김예훈 앞에서 그는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복종만 존재할 뿐이었다.핸드폰을 내려놓은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말하였다.“축하드려요, 방금 저희 대표님께서 연락해 왔어요. 우리 회사 지사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하셨어요. 오늘은 먼저 간단한 인수인계부터 하고 내일부터는 우리 대전 지사 모든 업무를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잘 부탁드려요.”“술렁!”면접장에 있던 다른 고위 이사진들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자신들의 대표가 모니터로 모든 면접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에.그러니까 이 여인이 대표 눈에 들었다는 얘기 아닌가?한마디로 육해연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그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육해연은 부자연스럽게 웃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설마 김세자님께서 지금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예요?”“네.”송준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육해연에게 말했다.카메라를 본 육해연은 너무도 괴로웠다.김세자가 자신의 면접을 보러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하지만 이미 그룹의 일원이 된 이상 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한 육해연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사무실 모니터로 육해연의 모습을 지켜본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남자가 눈웃음을 칠 때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거고, 여자의 얼굴이 붉어질 때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이기 때문이다.설마 그녀에게도 봄날이 오는 건가?얼마 지나지 않아 송준
하지만 김예훈도 이미 육해연의 성격을 파악한 뒤였다.그래서 그런지 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을 받아서는 차 안 서랍에 넣어 두었다.이걸 본 육해연의 표정에는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였다.이 머저리 같은 놈이 자기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여기서 꼼수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어떻게 우리 민아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그런데 이때 김예훈의 조롱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일은 잘 보셨어요? 순조롭게 끝났어요? 떼돈 버시게 되면 저 잊지 마시고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육해연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여기 혹시 어떤 곳인지 알아요?”“위에 쓰여 있잖아요. CY그룹 대전 지사라고.”김예훈이 대답하였다.“아신다니 다행이네요. CY그룹은 알고 있어야 겠죠. 김씨 가문이 자산을 통합한 후로 경기도를 이끄는 것으로 미래가 아주 밝죠. 아마 국제적 그룹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전 이런 곳에 방금 지사장으로 당당히 면접에 합격했고요, 대표님이 그러시는데 앞으로 충청지역 뿐만아니라 금릉 쪽 업무도 저한테 맡기신대요.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저도 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연봉도 1억은 넘어가겠죠.”사실 육해연에게 이런 일쯤은 아주 쉬운 일에 불과하였다.그녀의 능력으로 그 어디를 가던 이만한 금액의 돈은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사실 그녀가 CY그룹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룹의 김세자, 그녀가 존경심 가득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존재, 살아있는 전설, 당도 부대의 총사령관 때문이다.겉으로 보기에는 도도하고 차가운 그녀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사춘기 소녀 같은 마음도 소유하고 있었다. 귀국하여 여기에 입사한 제일 큰 이유도 김세자였다.“이렇게 좋은 날 저한테 밥이라도 사야 하겠네요.”김예훈이 웃으며 가볍게 말을 던졌다.김예훈을 보던 육해연이 입을 열었다.“그래요, 오늘 기분도 좋으니 밥 살게요!”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김예훈은 대전의 중심에 놓인 제일 빌딩의 고급
툭.바닥에 떨어진 수류탄은 폭발하지 않고 계속 돌고 있었다.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어? 폭발하지 않는데?”“죄송해요. 불이 꺼졌네요?”김예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맹승현의 몸에서 다른 수류탄을 꺼내 또다시 안전핀을 뽑았다.“풀어줄게! 내가 사람을 풀어주겠다고!”맹승현이 반응할 틈도 없이 남윤지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남윤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고싶지 않았다.탄탄대로인데 절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표정이 일그러진 맹승현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자기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맡았다.이순간 그는 땅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맹승현은 살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는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남윤지의 전화 한 통에 몇몇 보디가드들이 강서연을 데려왔다.그녀는 얼굴이 조금 창백했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결국 서로 다 아는 사이이기에 남윤지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동하임과 추하린이 달려와서 강서연을 뒤로 보호하는 사이, 이상한 눈빛이 김예훈을 향했다.“오늘은 내가 졌어.”전세 역전에 지린내가 진동하는 맹승현은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나보고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무릎은 꿇을 수 있지만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이 순간까지도 맹승현은 김예훈을 도발하고 있었다.강서연은 맹승현이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순간 본능적으로 말했다.“김예훈 도련님, 이제 그만 해요...”다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김예훈을 바라보며 자비를 베풀었으면 했다.김예훈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남윤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예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다음 순간 그녀는 온몸을 떨면서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너였어? 맹승현 도련님의 무릎을 꿇게 하는 순간 맹씨 가문, 남씨 가문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가 사람을 놓아주라면 놓아주고, 무릎 꿇으라면 꿇고, 사과하라면 사과해야 하는 거야.”퍽!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맹승현을 발로
맹승현은 계속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김예훈을 마주한 순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이 순간 그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말했다.“이 자식이. 너 정말 죽는 게 두렵지 않아?”“무섭지. 죽는 게 왜 두렵지 않겠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난 아무것도 아니라 괜찮지만 너는 진주·밀양 4대 도련님 중의 한명이자 흑아프리카에서 천하무적이라 앞날이 창창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 죽으면 과연 누가 손해일까? 나는 이대로 잊히겠지만 맹승현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체면을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죽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기억되지 않을까?”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임수민 등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미친 자는 한 명으로도 족한데 두명이 함께 모이니 정말 무서웠다.이들은 두려워서 곧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맹승현은 김예훈한테서 어떤 두려움이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미 생사에 익숙한 듯 무덤덤하기만 했다.맹승현은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기백을 가졌는지 궁금했다.‘설마 전쟁터에 나가본 적 있는 걸까? 아니면 시체 더미에서 살아남은 걸까? 일반인은 절대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이런 생각에 맹승현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네가 대단한 사람인 건 인정해. 내가 졌어. 사과할게.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모두에게 한마디 사과할게.”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맹승현 도련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지. 무릎 꿇고 사과하고 강서연 씨를 풀어줘. 셋 중에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해야 할 거야. 아니면 다 함께 죽는 거야.”맹승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그래도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서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추문성에게 사과할게. 그런데 강서연은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윤지 씨와의 원한을 내가 무슨 수로 간섭해. 그리고 내가 정말 너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까짓거 총 쏘라고 명령을 내리면 누가 먼저 죽을지 해보자고.”맹승현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총알을 장
이 순간 맹승현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눈앞의 이 장면은 그에게 진정한 치욕이었다.흑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면서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날 이렇게 짓밟힐 줄 몰랐다.게다가 김예훈은 그보다 더 잔인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류탄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었다.맹승현은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튀어나온 줄도 모르는 놈때문에 마음속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다.과거에 거만하고 미친 짓을 했던 것은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성립된 것이다.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겁을 먹게 된다.맹승현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져 사람 전체가 우울해 보였다.“대단한데? 추씨 가문의 부하인 거야? 이름 대볼래? 내일이면 어떻게 너희 온 가족을 죽여버리고 조상님들의 무덤을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지 두고봐.”맹승현은 분명 동반자살을 하지 못할 거면서 음흉한 표정으로 협박하고 있었다.쨕!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 같이 죽든가. 아니면 무릎 꿇고 사과하든가.”김예훈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전쟁터에서 수년을 보내면서 머리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송이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맹승현은 평생 받아보지 못한 치욕감에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다.“악!”아름다운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청백해지고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이들은 맹승현이 한 번의 충동으로 수류탄을 놓아버리면 한창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까 봐 두려웠다.남윤지 역시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힐 줄 몰랐는지 표정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자기가 맹승현을 불러와 놓고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현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용전 사람들이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모든 입구를 막고 있어 도망칠 수가 없었다.이 순간, 남윤지는
“둘째, 죽고싶지 않으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스스로 자기 뺨을 열대 때리세요. 사과하라는 대로 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드릴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제가 끝까지 함께해 드릴게요. 어때요?”김예훈은 무심한 말투로 맹승현을 죽일 듯한 표정을 지었다.맹승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순간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넌 도대체 누구야?”그는 김예훈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자기 손을 단단히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안전장치를 뺀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져 모두가 함께 죽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제가 누군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할 거냐예요.”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손끝에 힘을 주었다.“선택 못 하겠다면 제가 도와줄까요?”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맹승현은 손의 힘이 점점 약해져 수류탄이 당장 떨어질 것만 같았다.“이런 미친놈!”아까까지만 해도 거만하던 맹승현은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김예훈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어서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매우 보기 흉했다.소파 뒤에서 머리를 내민 남윤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거만하던 얼굴에는 온통 두려움이 가득했다.이순간 남윤지는 이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마음속에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맹승현의 손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수류탄이 바로 폭발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반신불수가 될수 있었다.“자! 그냥 같이 죽죠?”김예훈이 손에 힘을 더하는 순간 맹승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수류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왜요? 못하겠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수류탄으로 협박하지 않았어요?”맹승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하하하! 역시 병신이 맞았어!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너희들 꼬락서니를 봐!”추문성 일행의 처참한 모습을 본 맹승현은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이러고도 내 앞에서 잘난 척했던 거야? 그것도 모자라 정의를 되찾고 싶어? 아직 수류탄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겁을 먹다니! 정말 던져버리면 무서워서 울겠네? 정말 안 되겠네. 추씨 가문? 동씨 가문? 제발 웃기지 마! 1인자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무도 너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야. 정말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나 같은 사람이랑 비교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럴 자격이 있기나 해?”맹승현은 추문성의 얼굴을 때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임수민 등 아름다운 여성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동씨 가문이든 추씨 가문이든 진주·밀양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추문성은 맹승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맹승현과 함께 죽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됐어. 오늘은 충분히 기회를 많이 줬어.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마.”맹승현은 한껏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길에서 나를 만나든 윤지 씨를 만나든 멀리 썩 꺼져. 앞으로 우리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동씨 가문도, 추씨 가문도 나타나지 말아야 할 거야. 아니면 만날 때마다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 그리고 내 말대로 얼른 돈이랑 고서희 씨를 돌려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기 전에. 알겠어?”맹승현은 테이블 위에서 샴페인 병을 집어 들고 추문성의 머리를 내리치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진주·밀양에서는 아무도 내 앞에서 뭐라 하지 못해. 너희들은 그럴 자격도 없어.”추문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일그러진 것이 맹승현이 수류탄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직접 나섰을 것이다.추문성이 이토록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맹승현은 더욱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나는 어때!”바로 이때, 인파를 뚫고 한 사람이 거만한 모습으로 맹승현 앞에
한계를 넘어선 맹승현의 행동에 추하린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말았다.그녀는 진주·밀양 용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김예훈의 이익도 대표하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맞을 수가 있겠는가?다음 수난 추하린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맹승현, 내가 괜히 진주·밀양 용전 전주가 된 줄 알아? 정말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아?”추하린의 명령과 함께 주위에 열몇 명의 부하들이 동시에 나타나 총알을 장전하고 맹승현을 겨냥했다.하지만 맹승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그는 무표정으로 추하린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옥루 회관을 무단침입한 것도 모자라 윤지 씨 앞에서 위세를 부리는데 너를 건드리지 않으면 누굴 건드리겠어? 내가 말해주는데 추하린! 진주·밀양 용전 전주면 다른 사람에게 겁줄 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안 먹혀. 네까짓 게 추문성을 위해 나서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추하린이 냉랭하게 말했다.“나랑 제대로 한번 붙어볼 생각인가 봐? 사람도 많고 총도 많은데 굳이 나를 건드리겠다고?”맹승현은 피식 웃기만 했다.“총으로 나를 쏴보든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추씨 가문의 남자는 대대로 노예가 되고 여자는 창녀가 될 것이야.”맹승현이 외투를 풀어 헤치는 순간 옷 속에서 또 몇 개의 검은 수류탄이 보였다.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을 운명이었다.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에 사람들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수십 명의 용전 부하들과 경호원들은 본능적으로 후퇴했고, 어떤 사람들은 은신처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맹승현은 그야말로 진정한 미친놈이었다.남윤지조차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심지어 왜 이런 미치광이를 전쟁터에서 데려왔는지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맹승현의 스타일을 봤을 때 정말로 동반자살 하는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추문성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추하린이 꽉 잡았다.“왜. 아까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나를 죽이겠다면서? 왜 이제는 하나둘 겁먹은 거야
“체면을 지켜주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뺨을 때리면 뭐 어쩔 거냐고.”남윤지는 천천히 소파로 돌아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그러면서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추문성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참기만 하더니 드디어 폭발할 준비가 된 거야? 이제는 나를 때리려고? 자, 한 대 쳐봐. 어떻게 나를 건드릴 건지 지켜볼 거니까.”“너!”추문성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수십 명의 제복을 입고 전신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총을 빼 들고 전체 마당을 포위했다.이때 제복을 입고있는 추하린이 긴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남윤지 씨, 저희 추씨 가문을 건드리기 전에 제 의견을 물어본 적 있어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있냐고요.”말하는 사이 추하린은 추문성 앞으로 다가가 그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처참한 모습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진주·밀양 용전 전주 추하린이잖아. 왜? 전주를 며칠 해봤다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감히 옥루 회관에 와서 소란을 피워? 그것도 모자라 지금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거야?”남윤지가 가소로운 표정으로 말했다.“김현민 도련님이 어르신 생신 때문에 너를 해결할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판에 여기서 허세를 부려? 이런 제기랄! 이따 네 뺨까지 때려줄까?”맹승현도 냉랭하게 말했다.“추하린, 창피하게 그깟 총을 꺼내지도 마. 하나같이 피를 본 적도 없는 초보들이 방아쇠를 당길 줄이나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잘난 척하는 거야.”‘맹승현?’이때 추하린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추문성이 여기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다고 해서 바로 달려오느라 김예훈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추문성이 남윤지만 건드렸다면 그걸로 끝났겠지만 문제는 맹승현도 있다는 것이다.남윤지와 맹승현은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 두 가문을 대표하고 있어 잘못했다간 용전도 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수도 있었
“그리고 강씨 가문 지분이 추씨 가문의 것도 아닌데 대신 결정할 자격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당신 주인이 이미 두려워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굴욕적인 조건을 스스로 제안한 건가?”남윤지는 차가운 눈빛으로 추문성을 응시하며 다음 행동을 위해 그의 표정으로 뭔가를 읽어내려 했다.하지만 추문성이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남윤지 씨,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고 한 번만 더 물을게요. 저희랑 이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는 거예요?”남윤지는 천천히 다가와서 추문성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물론 거래할 의향이 있지만 아쉽게도 네가 강서연 씨를 납치한 게 아니거든. 설령 그렇다 해도 당신 주인이 이렇게 큰 힘을 들여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차라리 계속 붙잡아 두고 강씨 가문이 당신들이랑 연을 끊게 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을까? 당신 주인이라는 사람은 그깟 똑똑한 척하는 머리와 기술로 진주·밀양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지? 정말 순진하긴. 나타나기조차 두려워서 너 같은 쓰레기를 보낸 것만 해도 병신인 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남윤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오늘 이 모든 것은 김예훈을 위해 준비된 것인데 김예훈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거래를 할수 없었다.게다가 추문성은 그녀와 거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추문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남윤지 씨는 저의 체면을 지켜줄 생각이 없나 봐요?”“당연히 체면은 지켜줘야지.”남윤지는 샴페인을 들고 다가왔다.“당신 체면을 봐서 고서희를 납치한 일은 따지지 않을게. 돌아가서 사람을 풀어주고 옥루 회관에 2천억 원을 배상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을게. 내 조건을 들어줄 수 있겠어? 안 된다면 너까지 잡아둘 수밖에. 네가 먼저 옥루 회관 사람들을 건드렸으니 붙잡아도 너희 누나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걸어오던 임수민이 웃으면서 말했다.“추문성 도련님, 동의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까 동영상이랑 사진을 많이 찍었
가까워진 남윤지의 얼굴을 보던 추문성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추문성은 그녀를 때리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었다.쨕!추문성이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남윤지가 다시 한번 추문성의 다른 한쪽 뺨을 때렸다.“쓸모없는 자식. 여자한테 맞고도 반격할 용기도 없는 멍청한 자식. 이러고도 체면을 지켜달라고? 체면이라고 있는 거야?”이순간 남윤지는 추문성을 극도로 경멸했다.‘진주·밀양 도련님 중의 한 명으로서 나한테 손대지도 못하는데 잘나면 얼마나 잘났을까? 그냥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얼굴을 감싸고 있는 추문성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지 이보다도 더 처참할 수가 없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박장대소를 지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며 좋은 구경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부잣집 도련님이 쩔쩔매는 모습이 온라인에 퍼진다면 절대 큰 화제가 될 수 있었다.동하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윤지 씨,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동하임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남윤지와 맹승현의 막무가내를 봤을 때 가끔은 능력과 인맥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실력이야말로 진정으로 믿을 구석이었다.지금 이 순간 남윤지의 실력이 추문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추문성이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심지어 말도 하지 못했다.“농담도 심하시네요. 남윤지 씨는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남씨 가문의 따님이자 안동 김씨 가문의 안방마님이 될 사람인데 제가 아무리 겁 없는 사람이라도 남윤지 씨를 어떻게 모욕하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제 체면을 지켜주셨으면 바람이네요.”추문성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 순간 그는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으며 오히려 얼굴에 남은 손자국을 문질렀다.“저는 오늘 화해를 구하러 온 것이지 남윤지 씨가 두려워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가끔 어떤 일은 크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문제가 커져봤자 모두에게 좋지 않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