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연은 괜히 유학파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그의 말에 땅속이라도 숨어들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이미 그런 시선에는 익숙한지 오랜 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김예훈은 백미러로 육해연을 쳐다보았다.“여자 등골 빼먹는 게 제 취미라면요?”“그럼 내 손으로 당신 처리할 거예요.”육해연의 살기 어린 음성이었다.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혹시 해외에서 공부한 전공이 살인과예요? 절 처리하겠다고요? 엄연한 법치국가에서?”“말 돌리지 말아요. 이제 돈 가져다주면 그거 가지고 민아 곁에서 떠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마 당신이 평생 놀고먹어도 될 액수니까. 당신이 민아 곁에서 떠나 주기만 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요.”말하는 육해연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냉정하였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육해연 씨, 그 전제가 왜 우리 이혼인겁니까? 좀 더 평화롭고 나이스한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이제 장인어른 장모님도 신경 쓰지 않아요.”“당신...”김예훈에게 정곡을 찔린 육해연의 얼굴은 그대로 찡그러졌다.“좋아요. 그렇게 이혼이 하기 싫으면 당신도 남자니까 남자답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업 하나 정도는 해야 할 거예요. 아니면 제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김에훈이 웃었다.“민아가 지금 쟁취한 모든 기회 제가 준 겁니다. 전 뒤에서 항상 그녀를 지지하고 있고요. 이걸로 부족한가요?”김예훈의 말을 들은 육해연은 이 뻔뻔하고 당황한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김예훈을 보는 그녀의 눈빛에 살기가 어려있었다.“김예훈 씨, 설마 CY그룹이 당신 거고 당신이 그 김세자라고 말할 건 아니죠?”김예훈은 잠시 흠칫하였다.“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이건 극비라서 그룹 내에서도 모르는 일인데.”그의 말에 육해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김예훈 씨, 적당히 좀 해요. 이젠 꿈까지 꾸는 거예요? 설마 꿈이 공상가인 거면 빨리 병원 가서
침묵 속에서 차는 빠르게 대전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로 CY그룹의 대전 지사의 빌딩 앞이었다.육해연이 오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제 짐은 먼저 그쪽이 가지고 있어요. 저녁에 다시 연락하죠. 그리고 이 차는 빨리 주인한테 돌려줘요, 오늘 렌트비는 제가 계산하죠.”말을 마친 육해연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김예훈에게 내밀었다.그녀는 김예훈이 렌트했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러면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김예훈에게 팁까지 주는 호의까지 베풀었다.무례하더라도 조금의 동정은 있다고 해야 하나.그녀가 떠나고 김예훈은 조수석에 놓인 돈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설마 이 여자 자신을 한낱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자신의 직감을 너무도 굳게 믿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김예훈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바로 이때 송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대전 지사에 도착하셨어요? 오늘 면접하기로 한 사람 이미 도착해서 면접 기다리고 있어요.”김예훈이 대답하였다.“지금 로비야, 금방 올라가.”그가 이번에 대전으로 출장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대전 지사장 인사 문제였다.하지만 바로 전에까지 있었던 육해연과의 실랑이 덕분에 하마터면 여기에 온 이유마저 잊어버리게 될 뻔하였다....사무실 안.먼저 도착한 송준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사무실의 큰 모니터 화면은 면접 현장을 실시간으로 담고 있었으며 좀 있으면 오늘 지사장으로 면접 올 사람이 도착하게 될 것이다.회의실에서는 면접관 송준을 포함한 여러 고위 이사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김예훈이 손에 든 찻 잔을 막 마시려고 입에 대려던 순간이었다.여신급 미모를 자랑하는 한 여인이 하이힐을 신고 면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풉!”그녀를 보자마자 김예훈은 입에 가져다 댄 차를 그대로 내뿜었다.육해연 아닌가?그녀가 그렇게도 서두른 게 설마 CY그룹 대전 지사장
하지만 육해연이 능력자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그녀는 송준을 통해 김예훈이 한 난이도 높은 질문마저도 모두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었다.한마디로 그녀는 준비된 자였다.사실 그녀는 이곳에 오려고 할 때 이미 대전 지사의 지사장 자리는 자기것 이라고 확신하고 온 것이었다.면접이 끝나고 김예훈은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직접 송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면접 합격했다고 전해!”송준은 잠시 멍해 있었지만 이내 대답하였다.“네!”김예훈 앞에서 그는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복종만 존재할 뿐이었다.핸드폰을 내려놓은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말하였다.“축하드려요, 방금 저희 대표님께서 연락해 왔어요. 우리 회사 지사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하셨어요. 오늘은 먼저 간단한 인수인계부터 하고 내일부터는 우리 대전 지사 모든 업무를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잘 부탁드려요.”“술렁!”면접장에 있던 다른 고위 이사진들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자신들의 대표가 모니터로 모든 면접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에.그러니까 이 여인이 대표 눈에 들었다는 얘기 아닌가?한마디로 육해연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그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육해연은 부자연스럽게 웃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설마 김세자님께서 지금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예요?”“네.”송준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육해연에게 말했다.카메라를 본 육해연은 너무도 괴로웠다.김세자가 자신의 면접을 보러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하지만 이미 그룹의 일원이 된 이상 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한 육해연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사무실 모니터로 육해연의 모습을 지켜본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남자가 눈웃음을 칠 때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거고, 여자의 얼굴이 붉어질 때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이기 때문이다.설마 그녀에게도 봄날이 오는 건가?얼마 지나지 않아 송준
하지만 김예훈도 이미 육해연의 성격을 파악한 뒤였다.그래서 그런지 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을 받아서는 차 안 서랍에 넣어 두었다.이걸 본 육해연의 표정에는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였다.이 머저리 같은 놈이 자기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여기서 꼼수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어떻게 우리 민아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그런데 이때 김예훈의 조롱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일은 잘 보셨어요? 순조롭게 끝났어요? 떼돈 버시게 되면 저 잊지 마시고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육해연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여기 혹시 어떤 곳인지 알아요?”“위에 쓰여 있잖아요. CY그룹 대전 지사라고.”김예훈이 대답하였다.“아신다니 다행이네요. CY그룹은 알고 있어야 겠죠. 김씨 가문이 자산을 통합한 후로 경기도를 이끄는 것으로 미래가 아주 밝죠. 아마 국제적 그룹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전 이런 곳에 방금 지사장으로 당당히 면접에 합격했고요, 대표님이 그러시는데 앞으로 충청지역 뿐만아니라 금릉 쪽 업무도 저한테 맡기신대요.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저도 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연봉도 1억은 넘어가겠죠.”사실 육해연에게 이런 일쯤은 아주 쉬운 일에 불과하였다.그녀의 능력으로 그 어디를 가던 이만한 금액의 돈은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사실 그녀가 CY그룹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룹의 김세자, 그녀가 존경심 가득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존재, 살아있는 전설, 당도 부대의 총사령관 때문이다.겉으로 보기에는 도도하고 차가운 그녀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사춘기 소녀 같은 마음도 소유하고 있었다. 귀국하여 여기에 입사한 제일 큰 이유도 김세자였다.“이렇게 좋은 날 저한테 밥이라도 사야 하겠네요.”김예훈이 웃으며 가볍게 말을 던졌다.김예훈을 보던 육해연이 입을 열었다.“그래요, 오늘 기분도 좋으니 밥 살게요!”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김예훈은 대전의 중심에 놓인 제일 빌딩의 고급
곧이어 육해연은 포크를 손에서 놓고는 커피를 마셨다.“벌써 배불러요?”김예훈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얼굴빛이 변한 육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걸 본 김예훈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손 안 댄 다른 음식들마저도 자신 앞에 놓고 먹기 시작하였다.김예훈의 식사가 끝날 때쯤 육해연이 차가운 목소리고 입을 열었다.“김예훈 씨, 선조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죠, 밥 먹는 걸 보면 그 사람 인품을 알 수 있다고요.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안 봐도 당신 같은 사람은 이기적이고 조금의 염치도 없는 사람 같으니까요! 제 생각이 맞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민아 돈으로 구한 집이죠?”육해연은 정민아가 프리미엄 가든에서 살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관리비도 민아가 내고 있어요!”“그쪽 같은 사람은 염치가 있긴 있는 거예요? 그쪽 같은 사람이 어떻게 민아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육해연은 화가 나 몸이 떨려 올 지경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민아와 어울릴 수 있는데요?”김예훈이 태연하게 물었다.김예훈의 뻔뻔한 물음에 육해연은 말문이 막혔다.“적어도 몸값이 천억 이상은 되야죠! 아니면 옆에 있을 자격 없어요!”김예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육해연 씨, 당신과 민아가 사이좋은 친구인 건 알겠는데 이건 민아와 나 둘 문제예요. 뭐, 기어코 천억이 있어야 민아랑 어울린다고 하면, 전에 김세자가 민아에게 청혼한 사실도 알고 있죠? 김세자 몸값이 20조는 안 돼도 몇조는 되겠죠? 그런데 민아는 그걸 거절했죠, 그러니까 민아는 그런 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란 얘기죠. 그러니까! 민아와 어울리는 사람은 저뿐이에요!”말하는 김예훈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정민아와 어울릴 수 있는 남자는 자신 하나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육해연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김예훈 씨, 그만 해요! 민아와 잘 어울린다고요?! 민아가 김세자를 거절한 건 맞아요, 그렇다고 그
생각을 마친 김예훈은 그녀의 이런 위험한 생각은 애초에 단념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였다.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육해연 씨, 제가 알기론 김세자 그 분 바람둥이 성격은 아니신 거로 아는데요. 접근해 보아도 별 소득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분 이미 마음에 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육해연 씨, 취직하셨으면 똑바로 출근이나 하세요!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시고!”이 사람 자기 주제를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건가!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그녀가 쌀쌀맞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나랑 김세자 일에 당신이 상관할 필요 없어요!”김예훈이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육해연 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쪽 내 취향 아니에요!”“풉!”육해연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하였다. 화가 난 그녀는 온몸이 떨려왔다.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 나갔다.“그러니까 그쪽 얘기는 그쪽이 총사령관이란 말이에요? 아니면 김세자란 말이에요?”“둘 다요!”김예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였다.“그쪽 정말!”육해연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냥 눈앞의 남자는 체면도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었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고 나아가서 김세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니?“착”하는 소리와 함께 육해연은 테이블에 지폐를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떠났다.“이봐요, 그쪽 짐 아직 내 차 안에 있어요!”김예훈이 다급히 불렀다.하지만 이미 흥분상태에 있는 육해연에게 그게 들릴 리 없었다.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육해연이 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해연아? 예훈 씨 데리러 갔어? 가서 안내 잘해주라고 당부까지 했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만약 실수라도 하면 나한테 말해! 혼내주게.”핸드폰 건너편에서는 정민아가 웃으며 농담하고 있었다.정민아의 목소리를 들은 육해연의 표정은 삽시간에 바뀌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민아야, 오늘 내가 연락한 건 너한테 중요한 말을 해주
전화 너머에서 정민아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그제야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해연아, 나도 알아 너도 날 위해 이런다는거. 하지만 나랑 예훈 씨 결혼한 지 삼 년이 넘어가. 그리고 그만큼 감정도 깊어졌고 나 이혼 안 해.”“너...”육해연은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단짝 친구가 이대로 김예훈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었다.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그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김예훈이 먼저 이혼을 제기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생각을 마친 육해연은 이를 갈며 다시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예훈을 찾아갈 예정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대전 대학교.국내 십대 명문 학교의 하나로 캠퍼스 안의 환경도 일품이라고 소문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학우가 이미 부산, 대전에서 유명한 사회의 인사가 되어 있는거로 유명한 학교이다.김예훈은 캠퍼스 안에서 천천히 산책하면서 돌아보았지만 별 특별한 건 딱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사람은 적고 모기가 많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환경일수록 김예훈은 오히려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성남시의 상황은 겉에서 보기에는 매우 좋아 보이나 그 실세는 어둡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그룹이 김씨 가문의 자원을 통합하는 일에 바빠 많은 일들에 신경을 못 쓰고 있을 뿐이었다.그룹의 많은 일도 사실 전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적만 물리치면 되니까 말이다.그만큼 뒷수습 또한 잘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예를 들면 이번 일처럼 김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CY그룹이 합병하지 않았다면 아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산당하고 실업자가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었다.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해치는 건 김예훈의 철학이 아니었다.만약 이런 걸 다 고려하지 않았다면 사실 김예훈에게 사대 일류 가족들을 와해시키는 일 따위는 사실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어려운 건 항상 뒷수습이었다.하지만 이번에 운 좋게도 육해연 같은 인재를 회사로 들이
“그쪽 정말 ... 파렴치해!”육해연은 입을 깨물며 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어떻게 자신의 와이프와 가장 친한 친구한테 이런 말을?이런 남자는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하였다.“그것 봐요. 이렇게 간단한 조건조차도 동의하지 않은 걸 보아서는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죠.”사실 김예훈도 육해연을 조롱하거나 희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녀와 정민아의 우정이 얼마큼 두터운지 알고 싶어서였다.김예훈의 말을 들은 육해연의 얼굴은 금세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이를 악물며 대답하였다.“그래요, 그래요 그럼! 대신 그쪽도 맹세해요, 잠자리가 끝나면 바로 민아와 이혼하고 다시는 민아한테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쪽과 저 사이에 발생한 일은 없던 걸로 하죠! 그리고 제가 따로 주는 10억은 보상금으로 해두죠.”육해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냉기 서린 목소리는 마치 한 기업의 여자 총수와도 같았다.이런 그녀의 단호한 표정을 본 김예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눈앞에 있는 그녀와 정민아의 관계가 어지간히 돈독한 게 아닌가 보다.그녀를 위해서 이런 무리한 요구조차도 승낙하는 걸 보니.하지만 문제는 육해연의 눈에 자신이 그렇게도 형편없어 보인단 말인가?자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정민아의 옆에서 떼어놀 만큼?김예훈은 도대체 이 상황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는 한참을 육해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민아에게 이런 친구가 있어 기쁘네요. 방금전에 한 얘기는 제가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전 민아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쪽은 대전 발전 사업에만 신경 써 주세요. 그리고 별일 없으면 전 곧 성남으로 돌아갈 거예요. 혹시 알아요? 다음에 만날 때에는 절 인정해 줄지도?”그는 정민아를 향해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으려고 하고 있었다.어차피 육해연이 자신의 신분에 대해 아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그때가 되면 육해연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거부 반응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
류서우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가 집법 부대를 대표해서 알려드리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나오키 씨한테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저희 집법 부대에서 회장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체면이고 뭐고 바로 체포할 거예요. 어차피 나오토 씨도 죽이고 세이이치로 씨도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증거가 확실하고 사실도 명백하니 당신을 죽여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이때, 류서우의 손짓하나에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이 활을 꺼내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류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마치 자신을 싫어하는 듯 공격성이 강했다.하지만 집법 부대라는 말에 김예훈은 조금이나마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이후로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다.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집법 부대를 짓밟아버렸는데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짓밟힌 상황에서도 류서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신분이 심상치 않거나 용문당 몇몇 장로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일반적인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면 김예훈 앞에서 아마 기침도 하지 못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확실한 증거도 있고, 증인과 물증도 충분한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야? 세이이치로는 내가 나오토를 죽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 핑계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저 정방 방위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오키도 복수심에 불타서 고수들을 조직해 나를 포위하려고 했고, 이 많은 사람이 나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잘못이야? 루미코 역시 의사로 가장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어. 타케이 가문에서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해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당 방위했을 뿐이라고. 집법 부대 제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넌 도대체 한국인이야? 아니면 일본인이야?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