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육해연이 능력자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그녀는 송준을 통해 김예훈이 한 난이도 높은 질문마저도 모두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었다.한마디로 그녀는 준비된 자였다.사실 그녀는 이곳에 오려고 할 때 이미 대전 지사의 지사장 자리는 자기것 이라고 확신하고 온 것이었다.면접이 끝나고 김예훈은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직접 송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면접 합격했다고 전해!”송준은 잠시 멍해 있었지만 이내 대답하였다.“네!”김예훈 앞에서 그는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복종만 존재할 뿐이었다.핸드폰을 내려놓은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말하였다.“축하드려요, 방금 저희 대표님께서 연락해 왔어요. 우리 회사 지사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하셨어요. 오늘은 먼저 간단한 인수인계부터 하고 내일부터는 우리 대전 지사 모든 업무를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잘 부탁드려요.”“술렁!”면접장에 있던 다른 고위 이사진들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자신들의 대표가 모니터로 모든 면접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에.그러니까 이 여인이 대표 눈에 들었다는 얘기 아닌가?한마디로 육해연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그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육해연은 부자연스럽게 웃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설마 김세자님께서 지금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예요?”“네.”송준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육해연에게 말했다.카메라를 본 육해연은 너무도 괴로웠다.김세자가 자신의 면접을 보러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하지만 이미 그룹의 일원이 된 이상 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한 육해연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사무실 모니터로 육해연의 모습을 지켜본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남자가 눈웃음을 칠 때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거고, 여자의 얼굴이 붉어질 때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이기 때문이다.설마 그녀에게도 봄날이 오는 건가?얼마 지나지 않아 송준
하지만 김예훈도 이미 육해연의 성격을 파악한 뒤였다.그래서 그런지 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을 받아서는 차 안 서랍에 넣어 두었다.이걸 본 육해연의 표정에는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였다.이 머저리 같은 놈이 자기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여기서 꼼수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어떻게 우리 민아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그런데 이때 김예훈의 조롱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일은 잘 보셨어요? 순조롭게 끝났어요? 떼돈 버시게 되면 저 잊지 마시고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육해연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여기 혹시 어떤 곳인지 알아요?”“위에 쓰여 있잖아요. CY그룹 대전 지사라고.”김예훈이 대답하였다.“아신다니 다행이네요. CY그룹은 알고 있어야 겠죠. 김씨 가문이 자산을 통합한 후로 경기도를 이끄는 것으로 미래가 아주 밝죠. 아마 국제적 그룹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전 이런 곳에 방금 지사장으로 당당히 면접에 합격했고요, 대표님이 그러시는데 앞으로 충청지역 뿐만아니라 금릉 쪽 업무도 저한테 맡기신대요.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저도 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연봉도 1억은 넘어가겠죠.”사실 육해연에게 이런 일쯤은 아주 쉬운 일에 불과하였다.그녀의 능력으로 그 어디를 가던 이만한 금액의 돈은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사실 그녀가 CY그룹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룹의 김세자, 그녀가 존경심 가득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존재, 살아있는 전설, 당도 부대의 총사령관 때문이다.겉으로 보기에는 도도하고 차가운 그녀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사춘기 소녀 같은 마음도 소유하고 있었다. 귀국하여 여기에 입사한 제일 큰 이유도 김세자였다.“이렇게 좋은 날 저한테 밥이라도 사야 하겠네요.”김예훈이 웃으며 가볍게 말을 던졌다.김예훈을 보던 육해연이 입을 열었다.“그래요, 오늘 기분도 좋으니 밥 살게요!”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김예훈은 대전의 중심에 놓인 제일 빌딩의 고급
곧이어 육해연은 포크를 손에서 놓고는 커피를 마셨다.“벌써 배불러요?”김예훈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얼굴빛이 변한 육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걸 본 김예훈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손 안 댄 다른 음식들마저도 자신 앞에 놓고 먹기 시작하였다.김예훈의 식사가 끝날 때쯤 육해연이 차가운 목소리고 입을 열었다.“김예훈 씨, 선조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죠, 밥 먹는 걸 보면 그 사람 인품을 알 수 있다고요.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안 봐도 당신 같은 사람은 이기적이고 조금의 염치도 없는 사람 같으니까요! 제 생각이 맞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민아 돈으로 구한 집이죠?”육해연은 정민아가 프리미엄 가든에서 살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관리비도 민아가 내고 있어요!”“그쪽 같은 사람은 염치가 있긴 있는 거예요? 그쪽 같은 사람이 어떻게 민아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육해연은 화가 나 몸이 떨려 올 지경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민아와 어울릴 수 있는데요?”김예훈이 태연하게 물었다.김예훈의 뻔뻔한 물음에 육해연은 말문이 막혔다.“적어도 몸값이 천억 이상은 되야죠! 아니면 옆에 있을 자격 없어요!”김예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육해연 씨, 당신과 민아가 사이좋은 친구인 건 알겠는데 이건 민아와 나 둘 문제예요. 뭐, 기어코 천억이 있어야 민아랑 어울린다고 하면, 전에 김세자가 민아에게 청혼한 사실도 알고 있죠? 김세자 몸값이 20조는 안 돼도 몇조는 되겠죠? 그런데 민아는 그걸 거절했죠, 그러니까 민아는 그런 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란 얘기죠. 그러니까! 민아와 어울리는 사람은 저뿐이에요!”말하는 김예훈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정민아와 어울릴 수 있는 남자는 자신 하나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육해연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김예훈 씨, 그만 해요! 민아와 잘 어울린다고요?! 민아가 김세자를 거절한 건 맞아요, 그렇다고 그
생각을 마친 김예훈은 그녀의 이런 위험한 생각은 애초에 단념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였다.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육해연 씨, 제가 알기론 김세자 그 분 바람둥이 성격은 아니신 거로 아는데요. 접근해 보아도 별 소득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분 이미 마음에 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육해연 씨, 취직하셨으면 똑바로 출근이나 하세요!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시고!”이 사람 자기 주제를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건가!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그녀가 쌀쌀맞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나랑 김세자 일에 당신이 상관할 필요 없어요!”김예훈이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육해연 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쪽 내 취향 아니에요!”“풉!”육해연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하였다. 화가 난 그녀는 온몸이 떨려왔다.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 나갔다.“그러니까 그쪽 얘기는 그쪽이 총사령관이란 말이에요? 아니면 김세자란 말이에요?”“둘 다요!”김예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였다.“그쪽 정말!”육해연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냥 눈앞의 남자는 체면도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었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고 나아가서 김세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니?“착”하는 소리와 함께 육해연은 테이블에 지폐를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떠났다.“이봐요, 그쪽 짐 아직 내 차 안에 있어요!”김예훈이 다급히 불렀다.하지만 이미 흥분상태에 있는 육해연에게 그게 들릴 리 없었다.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육해연이 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해연아? 예훈 씨 데리러 갔어? 가서 안내 잘해주라고 당부까지 했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만약 실수라도 하면 나한테 말해! 혼내주게.”핸드폰 건너편에서는 정민아가 웃으며 농담하고 있었다.정민아의 목소리를 들은 육해연의 표정은 삽시간에 바뀌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민아야, 오늘 내가 연락한 건 너한테 중요한 말을 해주
전화 너머에서 정민아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그제야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해연아, 나도 알아 너도 날 위해 이런다는거. 하지만 나랑 예훈 씨 결혼한 지 삼 년이 넘어가. 그리고 그만큼 감정도 깊어졌고 나 이혼 안 해.”“너...”육해연은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단짝 친구가 이대로 김예훈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었다.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그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김예훈이 먼저 이혼을 제기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생각을 마친 육해연은 이를 갈며 다시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예훈을 찾아갈 예정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대전 대학교.국내 십대 명문 학교의 하나로 캠퍼스 안의 환경도 일품이라고 소문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학우가 이미 부산, 대전에서 유명한 사회의 인사가 되어 있는거로 유명한 학교이다.김예훈은 캠퍼스 안에서 천천히 산책하면서 돌아보았지만 별 특별한 건 딱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사람은 적고 모기가 많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환경일수록 김예훈은 오히려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성남시의 상황은 겉에서 보기에는 매우 좋아 보이나 그 실세는 어둡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그룹이 김씨 가문의 자원을 통합하는 일에 바빠 많은 일들에 신경을 못 쓰고 있을 뿐이었다.그룹의 많은 일도 사실 전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적만 물리치면 되니까 말이다.그만큼 뒷수습 또한 잘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예를 들면 이번 일처럼 김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CY그룹이 합병하지 않았다면 아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산당하고 실업자가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었다.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해치는 건 김예훈의 철학이 아니었다.만약 이런 걸 다 고려하지 않았다면 사실 김예훈에게 사대 일류 가족들을 와해시키는 일 따위는 사실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어려운 건 항상 뒷수습이었다.하지만 이번에 운 좋게도 육해연 같은 인재를 회사로 들이
“그쪽 정말 ... 파렴치해!”육해연은 입을 깨물며 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어떻게 자신의 와이프와 가장 친한 친구한테 이런 말을?이런 남자는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하였다.“그것 봐요. 이렇게 간단한 조건조차도 동의하지 않은 걸 보아서는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죠.”사실 김예훈도 육해연을 조롱하거나 희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녀와 정민아의 우정이 얼마큼 두터운지 알고 싶어서였다.김예훈의 말을 들은 육해연의 얼굴은 금세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이를 악물며 대답하였다.“그래요, 그래요 그럼! 대신 그쪽도 맹세해요, 잠자리가 끝나면 바로 민아와 이혼하고 다시는 민아한테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쪽과 저 사이에 발생한 일은 없던 걸로 하죠! 그리고 제가 따로 주는 10억은 보상금으로 해두죠.”육해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냉기 서린 목소리는 마치 한 기업의 여자 총수와도 같았다.이런 그녀의 단호한 표정을 본 김예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눈앞에 있는 그녀와 정민아의 관계가 어지간히 돈독한 게 아닌가 보다.그녀를 위해서 이런 무리한 요구조차도 승낙하는 걸 보니.하지만 문제는 육해연의 눈에 자신이 그렇게도 형편없어 보인단 말인가?자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정민아의 옆에서 떼어놀 만큼?김예훈은 도대체 이 상황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는 한참을 육해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민아에게 이런 친구가 있어 기쁘네요. 방금전에 한 얘기는 제가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전 민아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쪽은 대전 발전 사업에만 신경 써 주세요. 그리고 별일 없으면 전 곧 성남으로 돌아갈 거예요. 혹시 알아요? 다음에 만날 때에는 절 인정해 줄지도?”그는 정민아를 향해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으려고 하고 있었다.어차피 육해연이 자신의 신분에 대해 아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그때가 되면 육해연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거부 반응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삼 일내로 이 프로젝트에 관한 사전 준비는 모두 끝낼게요.”육해연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였다.김세자가 직접 지휘한다니!육해연은 긴장하면서도 격동되었다.어쩌면 직접 김세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흥! 김예훈, 당신이 그랬지 김세자가 날 맘에 안 들어 할뿐만 아니라 그에게 이미 여자가 있다고! 그런데 어쩌지 김세자가 이미 날 대신해 직접 이번 프로젝트를 지휘한다고 하니 나한테 마음 있는 게 확실해!’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육해연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그런데, 송준 씨, 김세자님은 언제 대전에 오시는 거예요? 제가 만나 뵐 수 있나요?”송준이 웃으며 대답하였다.“글쎄요, 세자님은 평소에도 비교적 바쁘세요. 하지만 만약 이번 일만 잘 성사하시면 친히 나서서 격려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만나 뵐 수 있지 않겠어요?”그 말을 들은 육해연은 자신에게 주문을 걸기 시작하였다.‘육해연아, 해연아. 네 남신을 찾아가는 데에는 이 프로젝트밖에 없으리라.’이어서 그녀는 입지 선정부터 프로젝트의 완성까지 모두 직접 나서서 하였다.그녀가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창, 친구 나아가서 연장자들마저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태고 있었다.대전 이런 곳에서 그녀가 상업 입지 선정을 하는 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당연히 이 모든 건 사전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제일 어려운 건 육해연이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선택한 그 부지를 따내는 것이냐였다.왜냐하면 상업 중심은 도시 중심에 건설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전의 부지는 금싸락과도 같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으며 더욱이 나아가서 어떤 부지는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도 많았다.많은 사람들이 사재기하듯 땅을 사들여 횡재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대전 중심의 한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 룸 안.정장 차림을 한 한 무리의 남성들이 모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하얀 정장 차림을 한 남성이 서 있었다.만약 대전 상
김청미가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녀는 백기영처럼 자신의 분수를 아는 태도를 매우 좋아하였다.이런 사람은 능력뿐만 아니라 야망도 있기 때문이다.“CY그룹에 대해 들어본 적 있겠지?”백청미가 자신의 손가락을 거둬들이며 가볍게 물었다.백기영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정신은 집중하여 대답하였다.“들어본 적 있어요. 그들 대전 지사가 최근 며칠 동안 충청 지역의 자원을 통합하여 대전에 새로운 쇼핑몰을 계획 중이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김청미가 미간을 좁혔다.“난 이 쇼핑몰이 건설되지 않았으면 해. 영원히!”“네!”백기영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숙연하게 고개만 숙였다.얼마나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리고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표정에는 살기가 가득한 채 말이다.“대전에 피 바람이 불 것 같네. 하지만 이건 우리 백씨 가문에게도 기회일지 몰라. CY그룹이라. 재밌네.”백기영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표정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육해연이 선정한 곳은 오래전 폐기된 대형 상가였다.이곳은 오래전에 폐기되어 호화로운 대전 지구에서는 꽤 골치 아픈 상가였다.육해연의 생각이 맞다면 여기에 자신의 상업 중심지를 세운다면 아마 앞으로 대전의 랜드마크로 될 것이다.또 새롭게 건설되는 쇼핑몰은 곧 CY그룹이 대전의 중심이 되는 것에 한몫할 거고 나아가 이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경제가 확장될 것이 틀림없었다.자회사는 이 부지를 얻기 위하여 이미 20억의 계약금을 지불한 상태이며 오늘은 정식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남은 100억 잔금도 치르는 날이었다.나름 스케일도 있는 자리인지라 김예훈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CY그룹에서는 이미 고위 인사들이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와 있었다.김예훈과 송준도 현장에 도착하였다.폐기된 상가 안 사무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정장을 입은 남성이 앞장섰고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 보였다.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전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탁자 위에 걸치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