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 가문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바로 오정범.오정범은 늠름한 모습으로 김예훈의 곁에 다가왔다.그는 김예훈에게 공손한 목례를 하고 박인철의 곁에 섰다.성남시 어둠의 세력이 신인이라 김 씨 가문 사람들은 낯선 모습의 오정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김병욱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오정범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성남시에서 금방 발을 붙인 오정범 맞지?”오점범은 김예훈을 힐끗 쳐다보고 그제야 씩 웃으며 말했다.“오정범, 둘째 도련님을 뵙습니다. 둘째 도련님께서 저의 이름도 알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비릿하게 웃으며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오정범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개 같았다.조금만 협박하면 바로 김예훈을 배신할 것처럼 보였다.방금 성남시에 발을 붙인 신인이 어떻게 김 씨 가문과 대적하겠어?하지만 오정범은 계속하여 웃으며 말했다.“잠시 후, 둘째 도련님의 머리는 제가 살살 베겠습니다.”그의 말투는 아주 공손했지만 말은 도리어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너!”김 씨 가문의 사람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건방진 놈!겨우 발을 붙인 신인이 감히 우리 김 씨 가문의 실세한테!김병욱은 지금 당장 오정범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곁으로 내색하지 않고 씩 웃으며 말했다.“그래, 패기가 아주 좋아. 감히 김 씨 가문의 실세한테 이런 말을 하고 말이야. 그런 패기 아주 마음에 들어..”“기회를 줄게. 지금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면 김 씨 가문의 개라는 칭호를 너에게 줄 수 있어!”“잘 생각해. 우리 김 씨 가문의 개로 사는 건 어떨지. 김예훈은 오늘로서 끝이야.”그때, 김연철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팍팍팍”그의 박수소리와 함께 연회장 2층에서 하얀 무리가 쏟아져 내려왔다.오정범의 사람들과 마침 다른 색깔의 슈트를 입고 있었다.제일 선두에 선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게 되신 남자였다.남자는 하얀 한복을 입고 손에 호두 알 2개를 천천히
“홍 어르신...”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르신께서 우리 김 씨 가문의 내전에 참가하실 생각이십니까?”“아닙니다. 누가 감히 김 씨 가문의 내전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겠습니까?”홍인태는 계속하여 말했다.“그저, 3년 전의 세자가 아니어서 아쉬워 그럽니다”“세자를 내치는 것은 큰 어르신의 명을 거스르는 명이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빚을 진적이 있습니다. 그 대가로 김 씨 가문에서 저의 힘이 필요하시다면 3번은 제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홍인태의 말에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기세등등한 표정이었다.홍인태! 성남시 어둠의 세력의 일인자!성남시에서 그는 절대적인 어둠의 세력이다.어둠의 세력의 규칙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성남시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그가 직접 나서 처리를 해주었다.그리하여 홍인태는 성남시의 일인자라 할 수 있지만 홍인태는 항상 겸손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홍인태는 이곳에서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오점범의 겁을 먹은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있다.“김 씨 둘째 도련님, 김세자만 처리하면 됩니까?”담배를 한 모금 마신 홍인태가 물었다.“네.”“죽일까요?”“알아서 하십시오. 그저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 만들어 주세요.”김병욱은 승리의 여신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고 자부했다.성남시 부대의 원수가 나타나지 않은 이상 김예훈은 이제 끝났다.“네.”홍인태는 김예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김세자, 그간의 정도 있으니 혼자 다리를 하나 부러뜨리는 걸로 끝냅시다.”“홍 어르신, 꼭 끼어들어야겠습니까?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홍인태는 전혀 겁을 먹지 않고 더욱 장엄하게 물었다.“성남시에 다시 돌아왔으니 믿는 구석이 있겠죠. 한번 꺼내 보여주세요.”“누구를 모셔 왔습니까?”“성남시의 원수?? 아니면 ...?”“곧 아시게 될 겁니다..”김예훈이 말했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다 김예훈을 쳐다보았다.태연한 그의 표정을 확인한 후에야 진짜 김예훈이 부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00001번호판을 단 차는 문 앞에 주차되었다.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빠른 속도로 뒷자리의 문을 열었다.한눈에 보아도 기세가 남다른 중년의 남자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보통의 중년 남자들과 확연히 다른 품위와 기세.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밑으로 깔보는 눈빛과 일인자의 기질이 퍼져 나왔다.“성남시의 일인자, 하종석.”홍인태는 그 남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공수를 했다.서로 다른 위치에서 일인자인 두 사람은 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못하였다.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 이름과 차를 발견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침착하기만 했던 이현숙의 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가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드디어 눈엣가시 김세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종석이 김예훈을 구하러 온 거라면 어떡하지?김 씨 가문에서는 그의 체면을 생각해 줘야 하지 않을까?성남시의 일인자니까... 앞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이런 사람은 김 씨 가문이 아니라 부대의 원수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걸까?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당장에 미칠 것 같았다.홍인태의 안색도 어두워졌다.그동안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하종석은 많이 눈감아 주었다.절대 자신이 억지를 부려서 될 사람이 아니다!하종석의 말 한마디로 그동안의 만행이 모두 까발라져 감옥에 갈 수도 있다.지금은 손을 씻었어도 마찬가지다.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종석이 왜 이곳에 왔는지 빨리 알고 싶었다.김 씨 가문의 큰 어르신 이현숙은 한발 앞으로 다가가 하종석의 길을 막아섰다.김 씨 가문은 성남시의 돈을 쓸어 담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렇기에, 하종석의 앞에서 절대적으로 허리를 굽힐 사람들도 아니다....“하 의원님...”이현숙의
갑자기, 사람들은 뭔가를 의식한 듯, 모두 김예훈한테로 시선을 돌렸다.이렇게 담담한 모습을 보이다니? 설마 이 자가 하종석의 손녀사위라는 말인가?이 순간,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엄청 당황스러웠다!만약 김예훈이 정말 하종석의 예비 손녀사위라면 이 경기도에서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하종석의 말 한마디에 한 가문이 부흥할 수도 있고 한 가문이 망할 수도 있다. 아무리 김씨 가문이 경기도에서 최고의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하종석 앞에서는 그들도 엄청 조심스러워 했다. 비록 하종석이 김씨 가문을 망하게는 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와 맞서 싸우게 된다면 김씨 가문한테는 엄청난 적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현숙은 손에 지팡이를 쥔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주름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김예훈을 다시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 가문에서 버려진 자식이 이 3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한 것인가?오늘, 하종석이 그를 위해 선뜻 나서줬다!이건 경기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종석은 김예훈은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큰 어르신, 비켜주시죠...”하종석은 공손하게 말했다. 이현숙의 신분이 워낙 높다 보니 하종석이라 할지라도 그녀한테는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했었다. 이 말을 듣고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똑똑히 봤어? 이분이 바로 김씨 가문의 큰 어르신이야.경기도의 일인자라고 할지라도 이분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그러나 이내, 이현숙은 몸을 움직여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비록 한 발짝 물러났지만 이건 일종의 의사 표현이었다. 최소한 김씨 가문은 겉으로 하종석과 대놓고 맞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그 모습을 보고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설마 오늘 그냥 이대로 접어둔다는 말인가? 하종석이 김예훈을 데려가는 걸 그냥 지켜만 봐야 한다는 말인가?그렇게 된다면 가문에서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내, 하종석은 김예훈 앞으로 걸어갔다. 오정범이 막으려고 했지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에 오정범도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한편, 박인철은 오른손을 천천히 허리에 있는 칼에 가져다 댔다. 경기도 일인자인 하종석이 이곳에 온 이유를 그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있는 한 그 어떤 사람도 김예훈을 해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인철 씨, 정범 씨, 물러서요!”김예훈은 이 상황에서도 일어서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하 의원께서 갑자기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방자한 것! 경기도의 일인자 앞에서 감히 앉아있다니!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야!” 김연철은 갑자기 호통을 쳤다. 하종석과 김예훈의 관계를 알 리가 없는 그는 김예훈의 행동거지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다. 그가 보기에 이건 하종석과 김예훈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 말을 듣고 김병욱도 차갑게 말했다. “김예훈, 아직까지도 이리 잘난 척을 하다니. 설마 네가 경기도에서 하 의원님보다 신분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거야?”똑똑한 김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도 이 순간 하나같이 맞장구를 쳤다. “일인자한테 존경을 표해야 하는 게 원칙이야! 김예훈, 보스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예의가 없어?”“큰 어르신도 하 의원님의 체면을 세워 드리는데 너 따위가 감히 뭐라고? 어떻게 하 의원님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거야?”“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말인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차갑게 웃으며 조롱했다. 만약 김예훈과 하종석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하종석은 김예훈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미소를 거두고 엄숙한 얼굴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숙여 김예훈한테 인사를 건넸다!“맙소사-”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지 버튼을 누른 듯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고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그들은 얼음물에라도 빠진
김예훈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하 의원님, 농담이시죠?!”“손녀분은 저를 대신해 회사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저와는 그저 동료 사이일 뿐이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그리고 전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입니다.”“아내가 저한테 잘해주고 있고 저도 아내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그래?” 하종석은 뒷짐을 지고 말했다. “그럼, 이혼할 생각은 있나?”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3년 동안, 아내한테 진 빚이 많습니다. 평생 아내를 잘 돌봐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못 해준 데 대해 보상해 줄 생각입니다!”“그녀한테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그래, 좋아!”하종석은 웃으며 말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이현숙과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고 홍인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치 이곳에 온 이유가 김예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듯 말이다. 답을 얻은 그는 그냥 돌아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경기도의 일인자가 손녀딸을 위해 나선 것인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한편, 김예훈을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남자들만 알 수 있는 부러움이 섞여있었다. 이 자식, 아주 독한 놈이네, 감히 하종석의 손녀도 가지고 놀다니!할아버지가 찾아와서 결혼을 강요하는데도 인정조차 하지 않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것인가!죽음이 두렵지 않는 가보군!중요한 건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만약 이혼하고 하종석의 손녀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오늘 이 자리에서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어찌 됐든, 이현숙은 하종석의 체면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근데 김예훈은 감히 그걸 거절한 것인가?전혀 여지도 없이?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탄복해야 할지 조롱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김세자는 역시 김세자였다!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쉽게 굽히지 않은 당당한 모습이 바로 김세자였다!이때, 오정범은 하마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김병욱을 쳐다보았다. 이런 중요한 시각에 급해하지 말라니?무슨 뜻인가?이현숙조차도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선택한 꼭두각시가 자신을 거역한다는 말인가?바로 이때, 김병욱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을 빤히 쳐다보고는 이내 이현숙한테 공손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큰 어르신, 사자가 토끼를 잡는 데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게다가 김예훈은 토끼가 아닙니다!”“비록 그는 지금 당도 부대에서 전역했지만...”“그러나 박인철은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 그를 위해 나서주고 있습니다!”“김씨 가문에서 특별히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쓰려고 합니다. 큰 어르신께서 허락해 주십시오!”“좋아!” 이현숙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10분 줄게, 저놈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어!”말을 마치고 이현숙은 자리를 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녀는 경과를 지켜볼 흥미가 없었고 그녀한테는 경과보다 결과가 더 중요했다. 한편,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김청미가 이현숙을 부추기고 뒤로 걸어갔다. 이때, 계속 앉아 있던 김예훈이 갑자기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현숙 어르신, 내가 언제 가도 된다고 했나요?”이현숙은 몸을 떨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저놈을 죽어버려!”“네!”김병욱은 음산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짓했다. “움직여!”김만태는 고개를 들고 무전기를 꺼내 명을 내렸다. “당장 시작해!”다음 순간, 사방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김병욱은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지었고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김에훈은 쳐다보았다. “미안한데, 오래 기다렸지. 우리 김세자...”“김세자로 오랫동안 살았어도 아마 몰랐을 거야. 우리 김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죽기 전에 김씨 가문의 비장의 무기를 보여줄게. 이건 너의 행운이자 불행이기도 해...”김병욱은 두려움도 분노도 없었고 그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면 김예훈은
지금 이 순간, 오정범의 안색이 많이 어두워졌고 그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용병들인 것 같습니다!”“네, 알아요.” 김예훈은 무심하게 밖을 쳐다보면서 갑자기 말했다. “우리 사람들한테 다 철수하라고 하세요!”“네!”박인철은 망설임없이 무선기를 꺼내 들어 명을 내렸다. 오정범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스는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제정신인가?상대방에서 늑대 부대까지 불러온 마당에 당도 부대의 군사들을 철수시킨다고? 이건...설마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그 생각을 한 오정범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한편, 김씨 가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김연철의 귓가에 대고 수군거렸다. 이내, 김연철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김예훈, 네가 준비한 게 뭐라도 된 줄 알았는데!”“고작 20명의 병사였어?!”“20명? 고작 그걸 비장의 무기로 우리 김씨 가문을 상대하려 했던 거야?! 바보인 거야 아니면 무식한 거야?”김연철은 차갑게 웃었다. 박인철은 앞으로 걸어 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당도 부대의 20명 군인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습니다.”“하하하하-”김연철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래, 당도 부대가 대단한 건 맞지. 20명이면 천군만마나 다름없다니! 아이고 무서워라!”“근데 방금 그 천군만마가 철수를 했다고 하네!”“하하하하—”이 말을 듣고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경호원이 들어와서 김연철한테 당도 부대 20명의 군인이 이미 철수를 했다고 보고를 한 게 틀림없었다. “푸하하하-”“김예훈, 너 진짜 웃기는 놈이구나? 고작 20명으로 우리 김씨 가문을 상대하려 한 거야?”“결국은?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무서워서 다 도망가 버렸네! 그런 인간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이미 다 철수를 한 마당에 넌 이제 어떡할 거야?”“우리는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있는데. 널 처리하는 건 개미 한 마리 죽이듯이 아주 간단한 일이야!”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입을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