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환호 속에 곽진택은 두 손으로 선물 박스를 들고 공손하게 박인철을 향해 걸어갔다. 김연철이 소개했다. “이건 박 장군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파텍 필립의 한정판 골동품 스포츠 시계입니다.”“이 시계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 세계에 딱 하나 있는 값비싼 물건입니다!”“저희 김씨 가문에서는 이건 박 장군님의 신분에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박 장군님,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한테 다 선물을 드릴 겁니다.”“이건 경기도의 룰이자 저희 김씨 가문의 룰이기도 하며 이번 백 세 잔치를 연 이유이기도 합니다.”“이건 다른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약속 드립니다. 장군님께서 이것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절대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기념품이라고 생각하시죠...”김씨 가문에서는 박인철한테 성의를 다 보였다. 경기도에 이런 룰이 있든 없든 김연철이 이 말을 한 이상 그가 이 값비싼 물건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수군댈 사람은 없었다!“열어!”김연철이 명을 내리자 곽진택은 선물 박스를 열었고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계는 보기에 평범해 보였고 심지어 조금 낡아 보였다. 그러나 시계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은 이것이 값비싼 물건이라는 걸 설명해 줬다. 골동품 시계는 정교하다고 값이 비싼 것도 아니고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고 해서 값이 비싼 것도 아니었다. 반면, 극소수의 양으로 생산된 한정판이야말로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파텍 필립은 소장할 가치가 있는 명품 시계였다. 곽진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박인철 앞으로 가져갔다. 이 순간이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박인철은 거절하지 않고 손을 뻗어 선물을 받았다. “이건...”연회장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오늘부터 박인철은 김씨 가문의 인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김씨 가문은 이제 경기도 최고 가문이라는 입지를 더 굳게 다지게 되었다. 김
김연철은 자신의 아들이 당도 부대의 장군 박인철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듣고 많이 기뻐했다. 앞으로 자신의 아들이 당도 부대 장군의 후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김병욱은 소식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박인철은 김연철의 인맥으로 모신 귀인일 뿐이다.박인철은 김연철의 이름만 부른 것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김연철과 김병욱은 고민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분이 좋아 미칠 지경이었다. 박인철이 김 씨 가문의 일원 누구를 지지하던 상관없다. 김 씨 가문은 앞으로 박인철의 소속이라는 것만 확실해졌다.다른 사람은 김 씨 가문의 권력과 투쟁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그저 돈 많은 재벌의 투정으로 보일 뿐이다.김 씨 사걸이 박 장군의 인정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너무 놀라웠다!김연철은 조금 이성을 되찾고 김예훈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김예훈을 쳐다보는 그이 두 눈에는 증오로 가득 찼다.사실, 김예훈이 김만철을 혼수상태로 만든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이제 와보니 그는 김만철의 동아줄을 잘라버렸다.김만철이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 참석했더라면 분명 박 장군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앞으로 자신의 힘과 세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김병욱을 직접 제치고 김 씨 가문의 정권을 잡을 수도 있었다.모두, 김예훈의 잘못이야!김연철은 한숨을 내쉬며 박인철의 앞에 다가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박장군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이 사고로 지금 병원에 누워있습니다.”박인철은 그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장례식장이 아닌 게 어딥니까. 하하하.”“네?”김 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박인철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어떤 의도로 한 말이지?위로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까?부대에 오랜 기간 동안 몸을 담은 사람이라 입바른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사실인가 봐.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박인철은 김연철과 김병욱의 안내를 받으며 미리 준비해 둔 자리에 갔다.김연철은 한껏 아부하며 말했다.“박장군님! 제가 특별히 장군님을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장군님 이외에 누구도 이곳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장군님, 앉으세요!”성남시의 부시장인 공문철도 자리를 두 손으로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박인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박인철은 마련된 자리에 앉지도 않고 그저 미간을 찌푸리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의 돌발 행동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김 씨 가문의 가족 인원들은 멍하니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빨리 앉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박인철의 높으신 신분을 생각해서라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3년 전, 그 사람이 김 씨 가문의 정권을 쥐고 있었을 때, 누구도 자신의 가문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나라의 중요한 의원이 나타나도 마찬가다.김 씨 가문의 가족 인원들은 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오늘은 가문의 아주 중요한 날이다. 3년 전처럼 성남시의 진정한 실세가 될 수 있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한다.김병욱은 눈살을 찌푸리고 김연철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연철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미소를 지었다.“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의 의문을 제가 풀어드릴 수 있을까요?”“방금, 이 자리는 신분이 가장 높고 중요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나요?”박인철은 험상 굳은 표정을 짓고 물었다.김연철은 그의 물음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이 자리는 제일 중요한 손님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자리입니다.”김연철의 대답을 들은 박인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면 저는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옆자리가 바로 저의 자리겠네요.”박인철은 자신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네? 장군님께서도 앉지 못하는 자리에 감히 누가 앉을 수 있겠습니까? 성
박인철은 겸소한 웃음을 지었다.“이 자리에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누구입니까?”“장군님, 알려주세요. 대체 누구입니까!”김연철이 물었다.“그분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신다면 저는 감히 그의 성함을 입에 올릴 수 없습니다.”박인철은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그분은 지금 우리와 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저는 이미 그분을 발견했습니다!”“네? 지금 현장에 장군님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장군님께서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순간,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룸에 있는 큰 어르신도 문틈으로 관찰했다.큰 어르신도 자신의 생일 연회에 참석한 큰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했다.서울에서 귀인이 왔나?“장군님, 그분은 어떤 신분을 갖고 있나요?”룸에 있던 큰 어르신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렸다.김 씨 가문의 큰 어르신은 100세가 되는 나이로 많은 풍파를 겪은 살아있는 역사였다.그런 김 씨 가문의 어르신의 말을 박인철은 무시하지 못하고 큰 어르신이 있는 방향으로 공수를 하며 말했다.“큰 어르신, 바로 전쟁의 신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뭐?”“전쟁의 신화?”“혹시, 당도 부대를 설립한 그 사람?”“쉿!”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박인철도 함부로 못하는 사람, 대체 누구일까?김 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흘렸다.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지금 우리와 같은 장소에 있는데 우리는 왜 눈치도 채지 못했다는 말인가?만약, 우리가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얼마나 큰 풍파가 닥칠까!김연철은 수심이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장군님, 그분은 지금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김 씨 가문의 최고의 예법으로 그분을 모시겠습니다!”박인철은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분은 제가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박인철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자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박인철에게
박인철이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자리를 쳐다보았다. 그 주인공이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길 바라면서.선우정아와 윤창수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고개를 길게 내빼들고 박인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구경을 놓칠까 봐 엉덩이를 빼들고 쳐다보았다.김예훈만 자리에 떡하니 앉아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정소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물었다.“형부, 박 장군께서 말한 사람이 설마 형부는 아니겠죠?”김예훈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도 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맞아.”정소현은 김예훈의 장난이 재밌다고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전쟁의 신화를 감히 제일 뒷자리에 모셨다고?만약 그 소문이 외부에까지 흘러나가면 큰 골치거리다.김 씨 가문은 높으신 분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리게 될 것이다.박인철은 제일 뒷자리에 멈춰 섰다.김연철은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어디에도 위엄 있는 중년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김예훈도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는 김예훈이 높으신 신분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김병욱과 김만태도 눈살을 찌푸렸다. 박인철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제일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오늘 연회의 초대장을 겨우 받은 사람들이다.많은 사람들은 그저 구경이나 하러 온 사람들이다.익숙한 얼굴이 하나도 없다.박 장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이 사람들 중에 있다고?모든 사람들의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다.곧 그 결과가 공개된다.정소현은 덩달아 긴장했다. 박인철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그때, 박인철은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박인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김예훈과 정소현이 앉아있는 줄에 섰다.정소현은 지금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처음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도 지금보다 덜 떨렸을 것이다.진
설마, 진짜 형부?정소현은 지금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찰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정소현과 김예훈이 앉아있는 곳을 쳐다보았다.두 사람은 현장의 유일한 이슈가 되었다.정소현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 왔다.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고,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정소현은 몸을 벌벌 떨며 김예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힘이 모자랐다.형부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야!“딱 딱 딱!”박인철이 신은 군화가 바닥과 마찰되어 절도감 있는 소리가 들렸다.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제일 뒷자리에 앉은 남자와 여자를 쳐다본 사람들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거 확신했다.여자는 이제야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처럼 보였다. 그러니 절대 박인철이 말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바로!김예훈이다.박인철의 등 뒤에 선 김연철과 김병욱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바보처럼 멍한 표정으로 서있을 뿐이다.설마!모든 일들이 그들의 예상을 빗나가고 있다!절대 아닐 거라고, 아니었으면 하는 사람의 신분이 박 장군보다 높다니.3년 전이었다면,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김예훈을 들쳐 업고 헹가래를 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눈앞이 까매지는 느낌을 받았다.선우정아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박인철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제일 뒷줄에 김예훈만 남자 선우정아는 몸에 소름이 끼쳤다.어떻게? 어떻게 저 사람이? 진짜 숨은 능력자였던 거야?윤창수는 몸을 벌벌 떨며 멘탈이 부서졌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저 사람이 어떻게 당도 부대의 전설? 진짜 저 사람이?아니야! 말이 안 돼!그저 데릴 사위일 뿐이잖아. 아내의 등골을 빨아 먹고사는 사람이 어떻게?몰래카메라인가?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박인철은 김예훈 가까이 다가갔다.정소현은 박인철의 기세에 눌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박인철은
놀라움!충격!믿을 수 없음!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에 있은 일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심장미, 양하나, 김동민은 오늘 이 자리에서 김예훈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하물며, 이곳에서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니!박인철은 깜짝 놀란 사람들을 등지고 계속하여 말했다.“보스, 저와 함께 제일 앞줄에 갑시다! 저기야말로 보스의 자리입니다. 보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기도 하지요.”김예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사람들은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박인철은 천천히 뒤를 돌아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김연철, 김병욱.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제가 말씀드리죠.”“이 분은, 3년 전 성남시를 떠난 김세자 입니다!”“3년 후, 그가 돌아왔습니다. 이 분이 동의하시면 그는 여전히 김세자일 것입니다!”“김 씨 가문은 김세자를 막을 자격이 없습니다.”......“뭐? 김예훈이 김세자라고? 그러니까 당도 부대의 보스? 어떻게?”선우정아는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시각, 김예훈은 전설의 김세자가 되었고, 동시에 전설의 당도 부대의 보스라고 했다.조금 전까지 그를 비웃던 윤창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윤창수는 당장 바지에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 자신이 그렇게 비웃었던 사람이 김세자라니?3년 전, 성남시의 절대적인 세력!김 씨 가문의 김세자!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농락에도 아무렇지 않아 했어.무서운 것이 아니라 상대할 가치가 없었던 거야.하늘에 날아다니는 용은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상대하지 않는다. 개미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용의 발에 밟혀 죽을 자격도 없다.제일 중요한 사실은 바로, 지금의 김예훈은 3년 전의 김세자보다 세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정소현은 식은땀이 발까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던 상관없었다.정소현의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을 의심했던 그녀였다.그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 같았으며 할아버지를 설득해 이 남자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순간, 그녀는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까까지만 해도 어쩔 바를 몰랐다면, 지금은 더 모르게 되었다.김예훈은 윤창수를 힐끗 쳐다보았다.윤창수는 그의 눈빛을 느끼고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것을 마지막으로 김예훈은 앞으로 걸어나갔다.제일 앞자리에 도착한 김예훈에게 박인철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앉을뻔했던 의자를 뒤로 당겨 김예훈을 앉으라고 안내했다.그의 곁으로 박인철과 정소현, 그리고 공문철과 양정국이 차례로 자리에 착석했다.김예훈이 자리에 앉는 순간, 사람들은 그제야 박인철이 왜 무장을 하고 나타났는지 알게 되었다.그는 오늘 연회에 참석하려고 온 게 아니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그의 오늘 임무는 바로 김예훈이자, 김세자를 지키는 임무다!오늘은 김예훈과 김 씨 가문이 만나는 날이다.연회의 날?아니, 오늘은 홍문연이다.그 시각, 성남시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땅을 치고 후회했다.오늘은 자신들이 함부로 구경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김예훈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그의 손짓을 바로 이해 한 박인철은 무대로 올라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김 씨 가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오늘 이곳에서 있은 일들을 발설할 시, 결과는 알아서 감당하시길 바랍니다.”“맞습니다! 소문을 내는 사람은 나 공문철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공문철은 제일 먼저 앞장서 말했다. 그는 성남시의 부시장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는 김예훈을 향해 경례를 하고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뒤를 돌아 나갔다.이것이 바로 그가 김예훈에게 보여준 태도이다.공문철은 성남시의 부시장으로 김 씨 가문의 편이 아니라 김예훈의 손을 들어주었다.그는 김예훈이 그저 이름만 세자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는 당도 부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