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던 김예훈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참을 수 없게 되었다.“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밥을 먹겠다고 한 것이 소란입니까?”“그래요. 밥은 안 먹으면 그만이죠.”“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제가 가는 길을 또 막았잖아요. 저는 어떻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죠? 날아서 나갈까요?”그의 말을 들은 심장미는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그건 저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빨리 나가십시오!”“휴,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군요.”“잠시 후 누가 제 발로 나가는지 봅시다.”김예훈이 아직도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자 심장미와 경호원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경호원이 김예훈을 들어 밖으로 내보내려고 할 때, 머지않은 곳에서 연예인들이 나타났다. 팬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심장미는 다급하게 양하나의 곁으로 다가갔다.연예인인 것 같은 두 남녀의 모습은 미치도록 눈부셨다.많은 연예인들이 함께 있는 자리였어도 두 사람만 눈부셨을 것이다.두 사람은 바로 한창 뜨겁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양하나 와 김동민이다.양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에요?”“이 사람이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통제를 하고 있는데 우리더러 꺼지라네?”심장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양하나는 잠시 고미을 하더니 말했다.“언니, 그냥 지나가게 하면 안 돼? 급한 일일 수도 있잖아.”“안돼. 나 농구 피날레도 있어. 바닥에 모래라도 있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김동민은 김예훈을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경호원! 뭐 하는 거야! 빨리 쫓아내!”김동민은 농구 공연으로 한방에 뜬 스타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고 결벽증이 있는 그는 매번 공연을 할 때 농구장을 깨끗하게 청소를 지시했다.자신의 공연장을 가로질러 지나가겠다는 말을 들은 그가 버럭 화를 냈다.양하나는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무대 위로 지나가는 건 어때요?”“안돼! 세균이 날아다녀 내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
순간, 심장미, 김동민, 양하나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경호원들은 바로 자리에 얼어붙었다.중년 남자가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대표님이라고 부른 사람이 바로 김예훈이다.성남 타워의 주인인 것 같았던 남자가 허리를 구부린 사람이 바로 김예훈.정장을 입은 남자의 양복이 땀에 흠뻑 젖었다.어떻게 이런 일이!김예훈이 전화를 걸어 3분 내에 앞에 나타나라고 했다.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게 말을 하던 심장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연예계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된다.일반인들 앞에 서면 신 같은 존재이고 재벌들 앞에서는 웃음을 파는 광대이다.그들은 성남 타워의 지배인들 앞에서도 허리를 숙이며 말하는데 지배인들의 허리를 숙이게 만드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순간, 김동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돈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기가 대수인가? 돈이 만능이다."일분 늦었어요..."김예훈이 입을 열었다.성남 타워의 총책임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 대표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사람이 너무 많아...""도저히 사람들을 뚫는 것이 힘들었습니다..."두 책임자가 말을 하는 동안 다른 매니저들은 몸만 벌벌 떨었다.성남 타워는 CY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이다. 책임자가 대표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영원히 김예훈의 신분을 몰랐을 것이다.그렇구나... 그분이시구나...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김동민, 양하나, 심장미, 경호원들까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대... 대표님?뭐라고?이 남자가 대표라고?이렇게 젊은 대표가 있어?김예훈은 눈앞의 책임자들을 보며 말했다."성남 타워는 성남시의 중심 위치로 복무와 서비스에 신경을 쓰는 장소가 아닙니까?""언제부터 고급 백화점에 광대들이 나타나 공연을 했죠? 누가 동의했나요?"김예훈은 연예인들을 광대라고 부르며 비하했다.자신들의 신분이 고귀하다고 말을 했으니
현장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누구도 김동민이 이성을 잃을 줄 몰랐다.항상 다른 사람의 관심만 받던 사람이 광대라는 말을 들었으니 화를 낼 만도 했다.광고주들도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를 했다.처음 그 순간만 깜짝 놀랐을 뿐, 김예훈도 별거 아닌 사람이다.김예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저희 백화점에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고 하셨나요?""당신 팬들이 이곳을 부술 수 있게 만들겠다고요?""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건가요?""네. 협박하는 거예요. 모르시겠어요?"김동민은 중얼중얼 욕을 했다."재밌네."김예훈은 싱긋 웃으며 총책임자를 쳐다보았다."누가 이곳을 내어주었나요?"총책임자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내어 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서 사용하는 겁니다...""그러니까, 공짜라는 건가요?""네.""계약서는 있나요?""없습니다..."총책임자는 김예훈의 말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김예훈은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박인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인철아. 누가 성남 타워를 허락도 없이 사용하고 부숴버리겠다네? 네가 좀 도와줄래?""뭐라고? 나 금방 갈게!"박인철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들었다.김동민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누굴 속이려는 거야? 어떻게 경찰서에서 나를 잡아가시겠대? 우리 팬들이 경찰서를 폭발시켜 버릴 수도 있어.""마지막 기회야.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빌어. 그러면 없던 일로 할게.""아니면 우리 팬들을 풀어 영업을 하지 못하게 만들 거야!"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있는 김동민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몇 분 후, 성남 타워 건물 밖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중무장한 군부대 트럭들이 성남 타워를 둘러쌌다.차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이 뛰어내렸다.박인철은 제일 앞에 서 명령했다."마지막 시험이다! 누가 김세자를 공격한다고 한다.""제일 빠른 시일 내에 현장을 봉쇄하고 세자를 보호한
당도 부대의 특수 훈련은 받은 군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무대 앞에 다가왔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군인들이 김예훈의 앞에 서는 모습을 쳐다보았다.박인철은 김예훈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 경례를 하고 아무 말도 없이 김동민과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김예훈의 말 한마디에 포위당했다.군인?진짜 군인이라고?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한 김동민은 넋이 나갔다.전화 한 통으로 군인들을 불러와 현장을 봉쇄하고 자신의 팬들을 밖으로 내보냈다.현장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얼굴을 보려고 해도 어렵게 되었다.군인은 경찰들과 하는 행동부터 틀렸다.군인들은 명령만 기다리는 특수 전사 같았다.김예훈... 당신은 대체 누구야?김동민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새로운 병사들이 훌륭하네."김예훈은 한눈에 오늘 출전한 군인들은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는 군인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얼마 전에 눈앞의 군인들은 김예훈의 진정한 신분을 알기 때문이다.김예훈의 앞에 다가간 군인들은 모두 가슴을 펴고 자신을 앞세웠다.김예훈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동민을 쳐다보았다."내 건물을 부수겠다고 했잖아? 팬들을 시켜 하겠다며? 기회를 줄게.""내가 진짜 하면 어떡하려고? 내가 못할 것 같아?"김동민은 몸을 벌벌 떨며 입은 살아있었다.김예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인철아, 공공 기물 파손 죄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박인철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당도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바로 죽여버리겠습니다."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비켜 서고 말했다."빨리 부숴. 나 많이 바빠.""현장을 처리하는 시간도 있고..."김예훈의 말을 들은 김동민은 당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싶었다.심장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지독한 사람!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김동민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전쟁에 참가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다.조금 전까지 입만 살아있던 김동민은
하지만 김예훈은 여전히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저의 용서를 구하는 이유가 저의 신분과 지위 세력이 강한게 원인입니까?""네네네... 물론입니다..."심장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만일 제가 이런 신분과 지위가 없었더라면 경찰서에 잡혀가는 건 저였겠네요?""제가 일반 시민이었다면 백화점을 걸어나가지도 못했겠네요?""광대 따위가 진짜 높은 신분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하는 행동이 너무 우습네요.""얼굴 천재? 여신? 너무 터무니가 없는 말입니다.""감히 나한테 특권 어쩌고저쩌고. 작은 성과 하나로 이런 특권을 남용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우습게 변하겠어요?""공연? 팬미팅? 좋습니다... 하지만 통로를 막고 봉쇄하고 너무 안일한 행동과 말투는 지나쳤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당신들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세요?""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휴식일에 외식을 하고 쇼핑을 하러 왔는지 아세요? 당신들 때문에 휴식도 밥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특권 남용. 저는 오늘 당신들이 저의 백화점을 허락도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한창 뜨거운 인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없을 것 같으세요?""당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현장을 부수겠다고요? 연예인으로서 팬들한테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의 모습을 보세요. 누구 하나 정상적인 연예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세계관이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특권을 남용하는 행동. 부끄럽지도 않습니까?"김예훈의 질문에 사람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줄곧 자신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다.공연이나 팬사인회 같은 행사에서도 한 번도 다른 사람의 편의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팬들은 자신들한테 돈을 써주는 물주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오늘, 그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대표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제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김예훈은 김동민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남자라면 말한 대로 합니다. 저의 백화점을 부숴버리겠다고 말하고 하지 못했으니 암사내 보다 못한 행동입니다."김동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암사내라고? 어릴 적부터 여자들보다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바로 암사내라는 말이다.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한 말이니 반박을 할 수 없다.김예훈은 큰 발걸음으로 회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박인철도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현장을 떠났다.백화점은 본래의 질서를 되찾았다.정소현도 회전 레스토랑에 올라와 김예훈을 찾았다."형부, 방금 어마어마한 인물이 왔어요. 그분이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경호원들이 막았대요!""그리고 현장의 공연을 취소했어요. 저는 저의 최애들을 볼 기회를 놓쳐 버렸어요."조금 전, 정소현은 현장에서 사건의 발생을 대략적으로 구경을 한 것 같다."그럴만했어."김예훈이 말했다.정소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요.""형부, 방금 그 사람은 갓 20대가 넘은 엄청 젊은 나이에 능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무섭죠? 누군지 알아요?""나야."김예훈이 말했다."형부, 장난도 정도껏 쳐야죠. 형부가 대단한 건 알겠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전화 한 통으로 당도 부대를 부를 수 있어요?""나 당도 부대 시험까지 참가한 사람이야...""제 예상이 맞는다면 방금 그 젊은이는 군인인 것 같아요...""내가 만약 그 남자와 친한 사이라면 지금쯤..."정소현은 큰 인물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 것 마냥 아쉬워했다.그때, 그녀는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형부, 이모와 이모부께서 김 씨 가문의 어르신 100세 생신 연회에 저를 데려가겠다고 했어요.""제가 초대장을 많이 가져올 테니 함께 갈까요?"김 씨 가문의 어르신 생신 연회라는 말에 김예훈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그러자.""밥부터 먹어."......성남시 군부대박인철은 방금 자신의 부
“특별히 저희한테 초대장을 보냈으니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유지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같이 가요.” 박인철이 답했다. 이내 김씨 가문에서도 박인철이 큰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김연철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그래도 체면은 있나보군...”“박인철은 비록 수령이기는 하나, 당도 부대는 경기도 부대의 핵심 부대이고 경기도 부대의 혼이라고도 할 수 있어...”“그런 그가 우리 김씨 가문의 연회에 참석한다는 건 경기도 부대에서 우리 김씨 가문에...”“이번 연회가 끝나면 우리 김씨 가문은 3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게 될 것이야...”김병욱은 웃으며 말했다. “감축드립니다. 어르신...”“그 사람이 떠난 이후 우리 김씨 가문은 여전히 경기도를 이끄는 명문 가문이라고 불렸으나, 다른 명문 가문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지위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많았어...”“하지만 이번 연회가 끝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서로 마주 보았다. 지금까지, 김씨 가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그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그 몇 년 동안이었다. 그 몇 년 동안 김씨 가문은 무기력한 가문에서 다시 활기차게 변했고 경기도를 이끄는 진정한 명문 가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심지어 그 몇 년 동안에는 김씨 가문이 한국의 10대 가문 중에 들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김씨 가문의 내란으로 그 사람이 강제로 떠나게 되면서 가문의 위세가 꺾이게 되었다. 3년 동안, 김씨 가문은 사걸의 장악하에 경기도 최고 가문의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더 높이 한 단계 올라가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박인철이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면 이는 김씨 가문이 다시 경기도 부대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하며 김씨 가문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앞으로 김씨 가문은 경기도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어쩌면 한국에서 제멋대로
김연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김예훈이 어떤 사람인지 그와 김병욱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연회에 그들은 김예훈을 초대할 생각이 없었지만 뜻박에도 하객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오라고 해!” 이내 김연철은 단호하게 말했다. “성남시로 돌아온 이상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일이야, 파티에서의 만남보다 더 적당한 건 없지...”“물론 이 3년 동안 김예훈도 칼을 갈고 있었을 거야...”“다른 사람들은 김예훈이 폐인이 되었고 별 볼 일 없는 정씨 일가에서 개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암암리에 그가 손을 쓴 일들을 보면...”“이번 연회에서 3년 만에 그와 정식으로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되었군. 적당한 시기에 연회가 끝나고 그를 죽여버리는 게 좋겠어...”김연철은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김병욱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가문의 명이라면 반드시 집행하겠습니다...”“내가 말했잖아, 이제는 네가 가문의 권력을 잡고 있으니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자네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그 사람을 처리하는 건 네 눈엣가시를 처리하는 것과 다름없을 거야...”“이게 다 자네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김연철은 입이 닳도록 설득했다. 김병욱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서울에서 의료 전문가들을 불러 만철의 수술을 진행하게 하였습니다. 7일 뒤 생신 연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수고했어.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못난 두 아들을 자네가 많이 챙겨주었으면 하네.” 김연철은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제가 잘 돌봐주겠습니다.”...김연철의 방을 나와 김병욱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늙은 여우 같은 노인네, 나더러 그 사람을 상대하라고 하다니...”“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어디 한번 두고봐...”...방안에서, 김연철도 미소를 거두고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들이 그 사람한테 정신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