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씨 가문.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아무 상처 없이 돌아온 김예훈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어떻게 됐어? 널 괴롭히지 않았어? 집문서는 대체 뭐야?"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김예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정군이 서명한 차용증을 꺼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이미 해결됐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신경 꺼주세요."김예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 해결됐다고?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정군과 그의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정민아는 그제야 김예훈의 손가락에 온전히 붙어있는 손가락들을 보고 땅에 찢어진 차용증을 쳐다보았다."단서를 알아낸 다음 경찰에 신고했어요. 카지노도 문을 닫았을 거예요."조금 전, 이성을 되찾은 김예훈은 아무도 모르게 문자를 보냈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카지노는 문을 닫고 정군의 차용증도 무효가 되었다는 말이다.모든 용의자가 잡혔으니 정군에게 용감한 시민 증서와 상금을 주겠다는 말도 했다.자신의 잔고를 확인한 정군은 바로 김예훈을 안고 말했다."우리 사위 장하네. 대단해! 이렇게 대단한 사위가 내 사위야!"정군은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며 그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임은숙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망이 없었던 정씨 가문은 김예훈이 구해주었다. 경찰의 힘을 빌렸지만 그것도 김예훈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정민아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너무 많은 것을 보았기에 김 씨 가문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2000억이 뭐가 대수일까? 돈을 어떻게든 마련하면 그만이다.하지만 김 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앞으로 닥칠 위험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든든한 CY 그룹이 있다고 하여도 김 씨 가문이 나선다면 CY 그룹이 얼마나 보탬이 될까?제일 먼저 정씨 가문을 버릴 수 있다.하지만 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프리미엄 가든에 도착한 다음 정민아는 김예훈에게 사실대로 말했다."알고 있어."김예훈은 천천히
김 씨 가문의 수장으로 김예훈이 절정의 시기를 만났을 때에도 그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하였다.김 씨 사걸이 성남시의 실세라고 하여도 여전히 김 씨 가문의 수장 자리에 앉아있다.그것만으로 김연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게다가 그는 김 씨 가문을 대표하여 군사들과 함께 전장에 참가했다고 한다. 과거의 여러 대전들도 모두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이러한 인물이니 사교회에서 유명하지 않아도 김 씨 가문에서는 그의 말은 가훈과 마찬가지였다.특히, 군인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군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모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이뤘다.성남시의 군부대 중 당도 부대 같은 경우에도 박인철은 당도 부대를 꽉 쥐어 잡고 있지만 군인들을 함부로 움직일 능력은 없었다.일반 군인은 김연철이 함부로 군부대를 옮겨도 괜찮은 정도였다.그 시각, 김연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한 짓이야?"개량 한복을 입은 김병철은 한편에서 걸어 나와 말했다."큰아버지, 그 사람입니다..."'"성남시에서 우리 김 씨 가문의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습니다.""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해온 사람인지라 맞으면 맞은 대로 있었습니다...""지금 제일 골치가 아픈 건 바로 저희 김 씨 가문에서 조폭들의 힘을 빌리려고 만든 카지노 장소가...""이번 기회에 우리의 영업도 방해하고 김 씨 가문이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 거죠!"김병철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김연철은 미간을 찌푸리고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가문에서 그런 영업을 하고 있는지 나는 왜 몰랐지?"김병철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큰아버지가 근래 가문의 잡다한 일에 관심이 없어 큰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지금 문제는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경찰에 알렸다는 겁니다...""이제 우리 어떡하면 좋죠?""그러니까... 아니면..."그때, 김병철은 입꼬리 하나만 씰룩
김연철은 김병철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병철아, 내가 깜빡 잊었어. 우리 김 씨 가문의 정사를 네가 결정해 왔었구나...""네가 결정한 일이니 난 아무 의견도 없어...""아닙니다."김병철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저는 큰아버지를 대신한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큰아버지께서 다시 정권을 회수해가시겠다면 저는 두 손들고 환영하겠습니다..."김연철은 담담하게 말했다."다시 달라고 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 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히 처리해야 할 것이야...""내 이름으로 전우와 동료들을 모두 집결시켜도 좋아..."그의 말을 들은 김병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드디어 능구렁이의 손을 쓸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김만철을 내세워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능구렁이의 손을 빌렸으니 이외의 수확이다.능구렁이가 군사나 정치에 높은 인맥을 지닌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어 꽤나 쓸모가 많을 것이다.그들이 김병철의 편을 들어준다면 먼 훗날 자신의 인맥으로 만들 생각에 신이 났다.그들이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비록 김 씨 가문이 성남시의 절대적인 세력이지만 가끔 자신의 위엄을 남에게 보여줄 때도 있어야 한다. 아무 사람이나 김 씨 가문에 도전장을 보내면 안 되니까 말이다.아무 자격도 없는 그 사람을 포함해서 말이다......정민아가 걱정하고 있던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마음이 답답해 정보를 조금씩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경찰서에 있는 정민아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김예훈이 경찰서에 신고를 한 다음 성남시의 시장은 언론에 퍼뜨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의 화를 식게 만들었다고 한다.그 사건이 있은 후, 성남시의 시장도 김예훈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자신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김 씨 가문을 이번 사건으로 마무리 지었으니 말이다.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정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그 자식,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어! 김
며칠간, 정군과 임은숙은 김예훈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다.그간의 미안함을 사과하는 의미로 말이다.김예훈도 그들의 사과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저녁이 되자 정소현도 집으로 돌아왔다."형부, 좋은 소식! 좋은 소식이요!"정소현은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김예훈은 궁금한 듯 다가가 물었다."좋은 소식? 처제 결혼해?""아 진짜!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저 아직 남자친구도 없단 말이에요. 형부와 결혼할까요?"정소현은 정민아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그러면 어떤 소식일까? 빨리 말해봐."김예훈이 물었다.정소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예훈의 팔을 끌어안고 말했다."형부가 맞춰보세요. 형부가 맞추면 제가 뽀뽀로 상을 줄게요."말을 하는 정소현의 눈빛이 뜨거워졌다.김예훈이 말했다."아기는 가라.""형부..."정소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정민아의 곁에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언니, 형부 미워. 여자의 마음 같은 건 하나도 몰라."정민아는 두 사람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웃기만 했다."형부 그만 좀 놀려. 빨리 말해 봐.""소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 성남시에 온대. 하루 종일 말하고 다녔어."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좋은 일이 겨우 이거야?"정소현은 으스대며 말했다."그럼요! 우리 얼굴 천재와 선녀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방문한다는데 얼마나 기쁜 일인데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혀 관심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김예훈의 태도에 정소현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말했다."형부,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내가 왜 질투를 하지?"김예훈이 말했다."질투하지 말아요. 우리 얼굴 천재와 선녀는 멋지고 예쁘고...""형부 형부. 사진부터 보세요..."정소현은 휴대폰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이 사람은 양하나, 천사 같은 얼굴에 콜라병 몸매. 지금 제일 잘나가는 연예인이에요..."정소현은 휴대폰을 김예훈에게 건네며 말했다.김예훈은 모니터를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다음날.정민아는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자신의 남편과 동생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어릴 적부터 멋을 부리기 좋아했던 정소현은 백화점을 한참 둘러보아도 어울리는 옷을 찾지 못했다.김예훈은 쇼핑이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소박한 행복을 즐겼다.평범한 생활, 쇼핑, 군것질 일반 사람들이 즐기는 생활을 김예훈은 이제야 조금씩 즐겼다.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세 사람의 쇼핑은 저녁이 되어도 멈출 줄 몰랐다. 김예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힘들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쇼핑을 하루 종일 했어. 나 더 이상 힘들어서 안되겠어!""밥부터 먹자. 아니면 진짜 죽겠어!"김예훈이 힘들다고 말하자 정민아와 정소현은 알겠다고 했다."조금만 더 가면 성남 타워야. 식당은 내가 예약할게."김예훈은 음식점을 찾는 것도 귀찮아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했다.하루 종일 쇼핑하며 짐꾼이 되어 주느라 많이 힘이 들었다.오늘 성남 타워에 손님이 평소보다 10배 가까이 많이 있었다.화려한 옷차림에 응원봉을 든 사람들은 모두 한곳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양하나!사랑해!""오빠! 내 아를 낳아도!""악!!!!!!!!!!!"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져 들리는 소리는 김예훈의 두통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김예훈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정소현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우리 오빠 언니가 여기 있었네?""성남 타워에서 스케줄을 진행하고 있었어?"정소현은 김예훈과 정민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끼어들었다.성남 타워로 향하는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김예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끌려갔다.하지만 성남 타워 내부로 들어가자 김예훈은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다.사방이 온통 인파로 가득 차 있었고, 중심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잠시 후, 정소현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올라와 공연을 할 것이다.무대의 뒤편에도 사람들도 가득했다. 그곳에 아마 연예인들이 대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모두 성남시 재벌
“소현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 만나러 갓겠지. 우리 먼저 밥부터 먹자.”“다 큰 어른이야.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우리 먼저 올라가서 좀 쉬자.”정민아는 김예훈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래.”김예훈과 정민아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고 할 때, 두 명의 경호원이 다가와 말했다.“오늘 엘리베이터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경호원이 손으로 두 사람의 행동을 제지하고 말했다.김예훈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왜죠?”“오늘 엘리베이터 사용은 스태프들과 연예인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반 시민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경호원이 규정에 대해 설명했다.“파파라치가 시민들 틈에 섞여 있을까 봐 그러는 겁니다.”김예훈이 말했다.“이 엘리베이터는 성남 타워 회전 레스토랑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괜찮지 않을까요?”“누가 상관없다고 했습니까? 공연이 끝나면 회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비켜주세요!”경호원은 쌀쌀맞게 말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연예인들만 사용할 수 있고 우리는 밥을 먹지도 못한다는 말이에요?”“네.”“연예인들의 안전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도 식사를 하지도 못합니다.”김예훈은 자신의 레스토랑이 통째로 빌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말하려고 했다.그때 정민아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우리 밖에서 떡볶이 먹자.”“내가 소현이를 찾으러 갈게.”김예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민아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몸을 돌려 정소현을 찾으러 떠났다.경호원은 김예훈이 자신의 말에 겁을 먹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두 사람은 다시 사람들이 가득 모인 장소로 향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김예훈은 잡았던 정민아의 손을 놓쳐버렸다. 김예훈은 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민아는 사람들의 틈에 이끌려 이미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가 다시 만나려고 해도 어렵겠어. 내가 소현이한테 전화할게. 각자
“왜 안되는 거죠?”“오늘 이곳에 연예인 행사가 있습니다. 절대 착오가 나면 안 됩니다. 만일 사고가 나면 혼자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한 경호원이 물었다.김예훈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다시 질문했다.“여기 공공장소가 아닙니까?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안됩니까? 그러면 길은 왜 만들어 놓은 거죠?”“평소에는 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오늘은 안됩니다.”경호원 팀장이 강한 어투로 말했다.“길을 함부로 막는 것도 모자라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연예인입니까?”김예후는 낮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네. 대단한 연예인이 왔습니다.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연예인이 오늘 이 자리에서 벌 수 있는 금액은 당신이 평생 모아도 모을 수 없는 금액입니다.”“이것이 바로 특권입니다!”경호원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꼭 이곳을 지나쳐 가겠다면요?”“한번 도전해 보세요!”경호원 팀장의 말을 들은 주위에 있는 다른 경호원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더니 김예훈을 둘러쌌다.그 모습을 본 김예훈이 말했다.“네.”그리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성남 타워 총책임자 지금 당장 내 앞에 나타나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오늘 성남 타워 백화점 영업 정지하겠습니다.”김예훈의 통화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다.성남 타워 총책임자? 영업정지?이 자식 이거 미친 거 아니야?옷도 후줄근하게 입은 놈이 허세는 어디서 허세야?성남 타워 총책임자를 기다려?그래 3분만 기다려주자.경호원과 김예훈의 실랑이 소리가 연예인 매니저들의 귀에도 들어갔다.몇몇 매니저들은 가까이 다가와 구경을 하기도 했다.제일 선두에 선 여자는 양하나의 매니저 심장미다. 연예계에 오랜 종사자로서 오늘 공연도 그녀가 성남시의 책임자를 만나 성남 타워의 총책임자와 계약을 한 것이다.총책임자가 오늘 성남 타워 백화점을 함부로 사용해도 좋다고 했으니 오늘은 누구든 자신의 말을
조금 전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던 김예훈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참을 수 없게 되었다.“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밥을 먹겠다고 한 것이 소란입니까?”“그래요. 밥은 안 먹으면 그만이죠.”“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제가 가는 길을 또 막았잖아요. 저는 어떻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죠? 날아서 나갈까요?”그의 말을 들은 심장미는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그건 저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빨리 나가십시오!”“휴,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군요.”“잠시 후 누가 제 발로 나가는지 봅시다.”김예훈이 아직도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자 심장미와 경호원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경호원이 김예훈을 들어 밖으로 내보내려고 할 때, 머지않은 곳에서 연예인들이 나타났다. 팬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심장미는 다급하게 양하나의 곁으로 다가갔다.연예인인 것 같은 두 남녀의 모습은 미치도록 눈부셨다.많은 연예인들이 함께 있는 자리였어도 두 사람만 눈부셨을 것이다.두 사람은 바로 한창 뜨겁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양하나 와 김동민이다.양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에요?”“이 사람이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통제를 하고 있는데 우리더러 꺼지라네?”심장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양하나는 잠시 고미을 하더니 말했다.“언니, 그냥 지나가게 하면 안 돼? 급한 일일 수도 있잖아.”“안돼. 나 농구 피날레도 있어. 바닥에 모래라도 있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김동민은 김예훈을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경호원! 뭐 하는 거야! 빨리 쫓아내!”김동민은 농구 공연으로 한방에 뜬 스타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고 결벽증이 있는 그는 매번 공연을 할 때 농구장을 깨끗하게 청소를 지시했다.자신의 공연장을 가로질러 지나가겠다는 말을 들은 그가 버럭 화를 냈다.양하나는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무대 위로 지나가는 건 어때요?”“안돼! 세균이 날아다녀 내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