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그러면 마지막 한 박스는 어떤 용도인 거죠?”딱봐도 액수가 더 많아 보이는 세 번째 박스를 봤을 때, 마지막 요구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똑똑한 사람이라 재밌군요.”손도영은 눈치가 빠르고도 똑똑한 김예훈의 모습에 감탄했다.이때, 손도영의 손짓하나에 마지막 박스가 열리고, 한 무더기로 쌓여있는 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피로 음기를 물리칠 수 있는 기술을 전수 받고 싶은 의미에서, 그리고 김예훈 씨를 저의 제자로 삼고 싶은 의미에서 드리는 현금이에요.”“150억 원 상당의 현금으로 저의 기술을 사가는 것도 모자라 저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요?”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겉으로는 멋있는 척하면서 가소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손도영을 똑같이 쳐다보았다.“정말 나름대로 계획을 잘 세우셨네요. 그런데 이러다 나락으로 갈까 봐 두렵지도 않으세요?”김예훈이 무례했다고 생각했는지 아까 그 여자 부하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급하게 허씨 가문에 오는 바람에 많이 준비하지도 못했네요.”손도영은 김예훈의 숨은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현금 한 묶음을 김예훈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제가 허씨 가문의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고 많이 급하게 왔나 봐요. 그런데 이 와중에 김예훈 씨를 만난 걸 보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이 아닌가 싶네요. 김예훈 씨가 그 기술을 저한테 전수해 주시면 대한민국 풍수 계에서 1인자로 꼽힐지도 모르는데 그때되면 김예훈 씨한테 모든 걸 물려줄게요. 김예훈 씨처럼 아무런 가족 배경도 없는 사람은 무조건 진가를 잘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손도영은 앞으로 다가가 김예훈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김예훈 씨, 제 제자로 들어온다면 평생 호의호식하게 해줄게요. 진주·밀양 상류 인사가 될수 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손도영은 여전히 배시시 웃고 있었다.“저를 사부님으로 모시면 밀양 허씨 가문에서도 김예훈 씨의 체면을 지켜줄 거예요.
“풍수 대가들은 자기보다 더 대단한 풍수 대가가 나타나는 걸 꺼리잖아요. 제1 풍수 대가라는 타이틀을 빼앗길까 봐 그런거 아니에요? 아무리 저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해도 저를 죽이는 순간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를 바로 죽일 거잖아요.”김예훈이 이 정도로 깊이 생각할 줄 몰랐는지 손도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김예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제 의도를 너무 나쁘게 생각했나 봐요. 제가 아무리 명예와 돈을 좋아한다고 해도 어떤 일은 해도 되는지,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이깟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젊은 나이에 왜 이런 나쁜 생각을 하는 거죠?손도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만약 제가 정말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왜 돈까지 주면서 제자로 삼고 싶다고 했겠어요.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경계심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김예훈 씨를 탓하진 않을게요.”손도영은 애써 원망이 가득한 표정을 숨기고 김예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야 했다.김예훈이 한 말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는 티를 내야 했다.이때 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무슨 이유로 저를 제자로 삼고 싶은지 꼭 말해야 아나요? 제가 제자로 들어가는 순간, 직접 저를 죽일 필요도 없이, 돈으로 저를 속박하고, 심지어 저를 궁지로 몰고 갈 거잖아요. 당신의 이익을 위해서 돈으로 저의 입을 막고 싶은 거잖아요. 제가 이 돈을 다 썼을 때 술에 취해서 당신의 실체를 밝혀버리면 어떡하려고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제가 음기를 없애버리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견제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저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그 기술을 전수 받고 싶어서잖아요. 기술을 얻어가는 순간 저를 죽일 거잖아요. 저를 죽이지 못해도 저를 철저히 이용할 거잖아요. 제 기술을 캐내고, 또 저한테 심부름시킬 거잖아요. 저를 직접 죽일 필요도 없이 함정을
“그래서요?”김예훈의 태도는 차갑기만 했다.“죄송한데 저는 도박왕님 구하러 조사 확인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도박왕님만 살려드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보다도 더 많을 거거든요.”김예훈은 한 무더기의 현금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 이곳을 떠났다.“흠...”김예훈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손도영은 시가에 불붙여 연기를 뿜어내면서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잘해줄수록 기어오르더라고. 일부러 대우를 해줬더니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잘난 척하긴. 지금 일부러 내 화를 돋우는 거야? 어디 본때를 보여줘?”손도영은 점잖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포악스러운 얼굴만 남아있었다.김예훈이 뒤돌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손도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대가님께서 지금 저한테 손대려고요?”“그냥 주제 파악 좀 하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지.”이때 손도영이 정갈하게 메이크업을 한 여성에게 말했다.“니콜 리, 김예훈이 반성할 수 있도록 본때를 좀 보여줘. 음기를 물리치는 비법을 내놓고, 우리 손씨 풍수협회에 가입하겠다고 할때까지 절대 못 가.”손도영은 피식 웃으면서 뒤돌아 서재를 떠났다.김예훈이 발걸음을 움직이자 니콜 리가 손을 뻗어 그의 앞길을 막았다.“김 도련님, 발걸음을 멈추시죠. 떠나기 전에 대가님의 조건부터 들어주셔야죠.”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지금 저를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시는 거예요?”이때 니콜 리가 피식 웃으면서 왼쪽 손바닥에 붙어있는 노란색 부적 몇 개를 보여주었다.그러더니 오른손으로 뒤에서 목검을 하나 꺼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풍수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 수련한 것이 마침 살인술인데 과연 도망칠 수 있을지 확인해 보시든가요.”이때 네명의 손씨 풍수협회 제자들이 걸어들어왔다.이들은 하나같이 수맥 탐지 봉에 목검을 들고 차가운 표정으로 김예훈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니콜 리가 목검을 수중에 있는 석 장의 부적에 갖다
퍽!니콜 리의 목검이 김예훈에게 닿기도 전에 김예훈이 먼저 발을 뻗었다.다음 순간, 저 멀리 날아가 책장에 부딪힌 니콜 리는 한참동안 일어서지도 못했다.손에 쥐고 있던 목검도 두 동강 나고 말았다.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한 니콜 리의 얼굴은 잿빛보다도 더 어두웠다.김예훈은 이들한테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이곳을 떠났다.김예훈이 어느새 손에 수맥 탐지 봉을 쥐고 뒷짐 쥐고 있는 손도영의 앞에 나타나자, 제자들은 한순간에 반응하지도 못했다.이들이 멍때리고 있을 때 김예훈은 이미 손도영의 앞으로 가 앞길을 막았고, 수맥 탐지 봉을 들고 있던 손도영은 김예훈을 발견하자마자 멈칫하고 말았다.“대가님,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게요.”김예훈은 어느샌가 다가온 손씨 풍수협회 제자를 저 멀리 날려버리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이 좁다고 하더니,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 몰랐네요.”손도영은 자기 실력을 물려받은 니콜 리가 김예훈이 이렇게 거들먹거리기까지 잡지 못한 것에 의외였다.손도영은 앞길을 막고 있는 김예훈을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뭐하는 짓이야.”“무슨 짓이긴요.”김예훈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그냥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도박왕님께서 미리 저한테 전화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대가님께서 도박왕님을 죽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꼭 살려야겠어요. 대가님께서는 살아서 밀양을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손도영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대노하면서 김예훈에게 삿대질했다.“감히 날 모함해? 김예훈, 내가 말해주는데...”쨕!손도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예훈은 이미 손을 손도영의 얼굴에 갖다 댔다.이때 깔끔한 뺨 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한데 저는 지금 대가님이랑 쓸데없는 말이나 할 시간이 없어서요. 이러고 있을 바에 도박왕님께 어떻게 말씀드릴지나 미리 생각해 보세요.”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허씨 가문 조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손도영은 얼굴을 감싸쥔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박장대소를 지었다.이내 눈빛이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 있는 실내로 들어간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확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얼마 크지도 않은 마당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모습은 많이 비참하긴 해도 아직 목숨을 잃은 건 아니었다.김예훈은 이 사람들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조사 밖으로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것 같지만 차마 입구를 벗어나지 못했다.김예훈이 이곳 상황을 확인하려고 할때, 멀지 않은 곳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김 회장님...”구석 쪽을 쳐다보았더니 허순재가 초췌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어있는 것이다. 그의 옆에는 총을 맞고 목숨을 거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김예훈이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도박왕님,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허순재가 피를 토해내면서 말했다.“제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어요. 손도영 그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알고 같이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주문을 외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핑계 대고 도망치더라고요. 저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되었어요.”“악령이 판장을 둘러친 거군요.”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몽롱한 공기가 사람들의 오감을 둔감하게 만들어 조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그렇군요. 아기 귀신이라는 것도 어찌나 흉악하던지 전혀 상대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아기 귀신 때문에 보디가드들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니까요?”아기 귀신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는지 다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정도였다.심지어 김예훈마저도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근심되기도 했다.“김 회장님께서 저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제부터 제 목숨도, 전체 허씨 가문도 김 회장님의 것이 되는 거예요.”김예훈이 아기 귀신을 해결하지 못할 줄 알고 그저 목숨만 구제하고 싶은 모양이다.“왜 도망쳐요?”김예훈은 덤덤하게 뒤돌아서더니 자신의 검지를 깨물었다.“이제 모두 끝날 때도 되었어요.”“김 회장님, 아기 귀신이 정말 만
누군가 김예훈과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김예훈이 빠른 속도로 주먹을 뻗자, 상대방은 정통으로 맞아 비명과 함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이어 김예훈은 공중으로 뜨더니 상대방의 오른쪽 발목을 짓밟았다.빠직!벼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꺅!”처참한 비명과 함께 상대방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남양 의상을 입고 검은 피부에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그는 마치 성성이와도 같았다.그는 발버둥 치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이런 젠장! 감히 내 일을 그르치다니. 빨리 안 놔줘? 너희 온 가족을 죽여줄까?”남양인은 이 처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흉악한 모습을 하고있었다.빠직!김예훈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든 나머지 한쪽 발목마저 부러뜨렸다.“꺅!”또 한 번 처참한 비명이 들려오고, 남양인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바닥에서 몸부림쳤다.김예훈이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는지 흉악스럽던 표정은 두려운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이때, 뒤따라오던 허순재가 남양인을 보자마자 멈칫했다.“신대호?”김예훈이 허순재를 힐끔 보면서 물었다.“도박왕님께서 아는 사람이세요?”“남양파면 진주에서 꽤 잘나가는 조직인데 왜 저희 허씨 가문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네요...”남양파는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양인 조직으로서 어느정도 홍성파와 붙어볼 만한 존재였다.남양인이 워낙 신비롭고 흉악스러운 관계로 홍성파 사람들도 많이 꺼렸기 때문에 진주에서 악명이 자자했다.상류 인사들도 그들을 만나면 목숨을 구제하려고 큰돈 들이는 일이 많았다.남양파한테 잘못 보이면 바로 목숨을 잃진 않아도 서서히 고통스럽게 피 말라 죽을 것이 뻔했다.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신대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당신이 아기 귀신을 만든 장본인 맞지? 도박왕님, 허씨 가문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원인도 이 사람 때문이에요.”허순재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총을 꺼내 신대호의 이마를 겨냥했다.“이런 제기랄! 감히 허씨 가문을 건드려? 죽고 싶
김예훈이 허순재를 힐끔 쳐다보았다.‘독한 사람이네. 평소에는 점잖은 늙은 여유처럼 보여도 칼 같은 사람이었어.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야.’허순재는 이 한방으로 자기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신대호 하나쯤은 죽이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김예훈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잘하셨어요!”김예훈이 허순재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칭찬했다.“도박왕님께서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주셨는데 저도 제 성의를 보여야죠. 날이 밝아지기 전까지 조사를 태워버리고 굴착기로 깔끔하게 뿌리까지 뽑아야겠어요.”허순재는 문뜩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아까 남양파가 무서워서 신대호를 죽이지 않고 김예훈을 배신했다면 지금쯤 자신이 어떻게 죽었을지도 몰랐다.허순재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김 회장님 말씀을 따를게요.”지금의 허순재는 김예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허순재는 바로 사람을 불러와 조사를 모조리 태워버렸고, 날 밝을 때쯤 굴착기도 빌려왔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조사 무덤 위에 올라서서 마당 정중앙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여기를 파세요.”허순재는 이곳이 허씨 가문의 명당자리라 아쉽긴 했지만 곧 작업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파놓은 땅 면적이 점점 커지면서 깊이도 4, 5미터 가까이 되었다.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여기 뭐 있어요!”얼마 안 지나 사람시체며 동물시체가 보이기 시작했고, 정중앙에는 매장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로운 관이 놓여있었다.음기가 공중에 솟아오르면서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에 또 쓰러질 지경이었다.허씨 가문의 조사 밑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 몰랐는지 허순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누군가 허씨 가문의 설계도를 얻게 되면서 아래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봐요. 아까 저 남양인도 아기 귀신을 여기에 숨겨뒀고요. 허씨 가문에서 실종된 하인들도 모두 여기 갇혀있었어요.”김예훈의 설명에 허순재는 한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참 지나 허순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김 회장님, 그러면 지
모든 일을 해결 마친 김예훈은 이만 허씨 가문을 떠나려고 했다.손도영과 선재 스님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허순재의 성격에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 뻔했다.김예훈은 손도영과 선재 스님이 김현민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이들이 살아있든, 허순재의 손에 죽든 김현민과 밀양 허씨 가문 사이를 이간질하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싶은 김예훈은 이 둘을 전혀 죽일 마음이 없었다....허씨 가문을 떠났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김예훈이 보이지 않자, 추하린은 직접 레드 페라리 488를 몰고 허씨 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음기가 사라진 허씨 가문에는 다시 따스한 햇볕이 비춰들어 오기 시작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일부러 신경 써서 메이크업을 한 추하린이 허씨 가문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김 도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제가 알기로는 이번 사건의 주선자가 선재 스님이고 행동파가 손도영이었어요. 목적은 허순재를 죽이고 밀양 허씨 가문을 접수하는 것이었어요. 도박패를 석 장이나 가지고 있어 밀양을 휘어잡고 있으니까 선재 스님이 김현민을 대신해 허씨 가문을 접수하는 것으로 자금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겠죠.”“역시나 김현민이였어요?”김예훈이 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선재 스님이 김현민을 대신해서 한 짓이라는 걸 증명할 만한 증거는 있어요? 그리고 선재 스님은 오륜 사찰의 사람이 아닌가요? 왜 김현민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거죠?”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랭하던 추하린이 미소를 활짝 짓자 매혹스럽기 그지없었다.“선재 스님도 결국엔 여자잖아요. 오륜 사찰에서 다년간 속세를 잊고 살다가 진주에 오자마자 김현민 같은 멋진 사람을 보고 빠져든 거죠.”“그러면 김현민이 선재 스님을 유혹했다는 말이에요?”김예훈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추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예훈에게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그래도 한 인물은 하잖아요.”사진을 확대해 보니 진주 빅토리아 항구에서 열린 연말 파티 모습이었다.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
류서우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가 집법 부대를 대표해서 알려드리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나오키 씨한테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저희 집법 부대에서 회장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체면이고 뭐고 바로 체포할 거예요. 어차피 나오토 씨도 죽이고 세이이치로 씨도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증거가 확실하고 사실도 명백하니 당신을 죽여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이때, 류서우의 손짓하나에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이 활을 꺼내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류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마치 자신을 싫어하는 듯 공격성이 강했다.하지만 집법 부대라는 말에 김예훈은 조금이나마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이후로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다.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집법 부대를 짓밟아버렸는데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짓밟힌 상황에서도 류서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신분이 심상치 않거나 용문당 몇몇 장로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일반적인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면 김예훈 앞에서 아마 기침도 하지 못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확실한 증거도 있고, 증인과 물증도 충분한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야? 세이이치로는 내가 나오토를 죽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 핑계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저 정방 방위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오키도 복수심에 불타서 고수들을 조직해 나를 포위하려고 했고, 이 많은 사람이 나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잘못이야? 루미코 역시 의사로 가장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어. 타케이 가문에서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해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당 방위했을 뿐이라고. 집법 부대 제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넌 도대체 한국인이야? 아니면 일본인이야?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