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을 다시 살려내! 살려내라고! 세상에 어떻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있을 수 있어! 살인자 김예훈을 엄하게 처벌하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돈이 있으면 다야?”커다란 글씨가 쓰여있는 현수막 외에 스크린에도 후지와라 미유의 동영상들과 김예훈한테 잡혔던 장면까지 방송되고 있었다.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고, 어떤 여행객들은 심지어 촬영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구경거리를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었다.몇몇 아줌마들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내 딸을 살려내! 살려내라고!”애타게 울부짖는 목소리는 불쌍하기 그지없었다.어떤 아줌마들은 훌쩍거리면서 후지와라 미유의 사진을 돌리기 시작했다.그러다 결국 소문이 퍼져 기자들이 몰려오기까지 했다.여론을 이용해 일을 크게 만들어 경찰서에 부담을 줘서 이 사건을 하루빨리 종결시키려는 의도였다.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현재 알리바이를 봤을 땐 김예훈에게 엄청 불리한 상황이었다.단순하고 유치한 방법이었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사람은 약자를 동정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일이 밝혀지면 여론조성 때문에 경찰서에서도 하루빨리 이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할 것이 뻔했다.“제기랄!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아줌마들이야! 분명 회장님을 궁지로 몰아가려는 거잖아!”“그리고 이 타이밍에 우리 부산 용문당 회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라고!”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최산하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그는 흥분한 나머지 몇십 명의 부하를 데리고 현장을 발칵 뒤집고 싶었다.“산하 씨! 흥분하지 마!”조용히 구석에 세워져 있던 마이바흐 차량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우현아가 내렸다.그녀는 사람 몇몇을 데리고 와서 최산하를 진정시켰다.“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대로 뛰어 들어갔다가 김예훈을 더 난처하게 만들려고? 빨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최산하가 냉랭하게 말했다.“현아 씨, 제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던 사람 같아요? 길거리에서 시위하는 건 제 전문
우현아, 최산하, 진윤하 등은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김예훈의 신분을 밝히려는 모양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의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샤라락!분위기가 얼어붙은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 꼭대기에서 수많은 수표가 떨어지고 있었다.누군가 얼굴에 떨어진 수표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돈! 돈이야!”“세상에!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구경만 하던 사람들은 눈꽃처럼 떨어지는 수표를 보더니 벌 떼같이 달려들었다.이런 상황에서 뉴스, 진실, 김예훈의 신분에 관해 관심 가질 사람이 없었다.기자들마저도 흥분한 모습이었다.이들은 큰 기사를 하나 내는데 받는 보너스가 고작 20만 원이었다.운만 좋으면 이 수표들로 한 달 치 월급을 모을 수도 있었다.멍때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아줌마들 중에 누군가 확성기를 뿌리치고 돈을 줍기 시작했다.이 거리에서는 더는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거리에 수표가 수북이 쌓일 때마다 함성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저마다 원래의 목적을 잃고 말았다.우현아 등은 입이 떡 벌어진 채 감탄했다.폭력보다 더 좋은 방법은 바로 돈이었다.돈을 뿌린 덕에 아줌마들도 해결하고 하마터면 대서특필될 기사마저도 잠재운 것이다.브라보!이들은 흥분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수표가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 렉서스 LS 한대가 천천히 부산 교외에 있는 영국풍의 별장 앞에 도착했다.이 별장 앞에는 온통 근조화환이 세워져 있었고 가끔 곡소리도 들려왔다.대신 울어주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다.낯선 차량이 나타나자, 상복을 입은 한 보안요원이 차갑게 물었다.“이곳은 상갓집이니 이대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창문이 내려지고, 부산 버뮤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하은혜는 아리따운 얼굴을 내밀면서 말했다.“오려원 씨한테 전해주세요. 하은혜라는 사람이 거래 때문에 찾는다고. 제가 누군지 알거예요.”...몇 분 뒤, 하은혜는 아무렇
이때, 다시 악독한 표정으로 돌아온 오려원은 일을 그르친 아줌마들을 욕하기 시작했다.이런 일은 실패한 순간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해도 기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오려원은 고개 들어 누구나 질투할 만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는 하은혜를 쳐다보았다.하은혜는 향만 올릴 뿐 무릎을 꿇지도, 허리를 숙이지도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오려원의 앞으로 가 앉았다.“오려원 씨,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게요.”“감사합니다. 하은혜 씨.”오려원은 하은혜를 알고있는 듯 주위 사람들한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은혜 씨가 저랑 거래를 하고 싶다면서요? 어떤 거래인지 여쭤봐도 될까요?”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김예훈 씨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할 만할 증거를 원합니다.”오려원이 멈칫하더니 대뜸 화를 냈다.“하은혜 씨, 심씨 가문의 손녀라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아세요? 김예훈 그놈은 제 딸을 죽였다고요. 어떻게 이곳에 와서 결백을 증명할 만한 증거를 달라고 할 수 있죠? 생각이 짧은 거예요 아니면 저희 오씨 가문을 만만하게 본 거예요?”오려원은 하은혜를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의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막돼먹은 여자였다.“오려원 씨. 굳이 말을 돌려서 하지 않을게요... 저처럼 나약한 여자가 어떻게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어요.”하은혜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오려원에게 건넸다.“당신은 일본 국적을 따내기 위해 남편마저 살해한 사람이잖아요. 당신을 건드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까 봐 겁나네요.”하은혜의 담담한 말투에 오려원은 눈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건네받은 사진을 보고 특히나 그랬다.낡아빠진 사진들을 하나씩 보면 느끼는 바가 없을 테지만 선후 순서대로 보면 오려원이 남편을 살해한 과정을 알수 있었다.오려원은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하은혜 씨, 왜 저한테 이런 사진을 보여주는 건데요? 제 남편은 일본에
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관심 없으시다? 그러면 흥미를 느낄만한 일에 대해 말해볼까요?”하은혜는 계좌이체 기록이 담겨있는 자료들을 꺼냈다.“이 은행 계좌들은 오려원 씨가 해외에서 사용하시는 계좌이죠? 따님이 죽기 전, 이 돈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입금되었더라고요. 저마다 거래 내용이 있긴 한데 조사해 보니 전부 가짜 거래더라고요. 누군가 돈세탁을 하기 위해 당신의 명의를 빌렸을 뿐이죠. 액수는 많지 않던데... 400억 원이었나?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어떻게 고작 400억 원 때문에 따님을 팔아넘길 수 있죠? 제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도박으로 빚진 6천억 원마저도 모두 청산되었더라고요? 따님의 몸값이 꽤 높았나요?”하은혜는 또 자료 몇 개를 꺼내 오려원의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오려원은 하은혜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누군가 저한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안 믿었거든요. 오늘 은혜 씨를 보니 이제야 알겠네요. 심씨 가문은 역시 충청 부잣집이 맞네요! 말씀해 보세요. 원하는 게 무엇인지!”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저희 김 대표님은 무사히 풀려나야 합니다. 이미지에도 손상가면 안 되고요.”오려원의 미소는 어색하기만 했다.“제 딸이 자살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세요? 그리고 이 증거는 김예훈 씨가 모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요?”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네.”오려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하은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고작 김예훈 같은 이방인 때문에 어떻게 죽은 사람을 건드릴 수가 있어요?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렵지도 않으세요?”하은혜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아니요. 저한테는 또 다른 자료도 있거든요. 당신은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영주권을 따내고 싶어 했죠. 영주권을 따내기 위해, 일본 성씨를 가지기 위해 당신의 딸은 여러 남자들의 애인이 되어야 했죠. 결국 몇 년이 안 지나 원하던 것을 따내긴 했지만 그때는 어려서 몰랐던 사실이 있었죠.
“정말 따님을 잘 두셨어요!”하은혜가 비꼬면서 말했다.“따님이 목숨 걸고 따낸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거 양심에 찔리지도 않으세요? 급히 부정할 필요도 없어요. 그 표정, 그 눈빛, 그 행동을 보니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네요. 만약 모르는 사실이었다면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겠죠. 안 그래요?”오려원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냉랭하게 말했다.“하은혜 씨, 만약 김예훈이 제 딸 때문에 억울하게 잡힌 거라고 생각되면 이 자료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억울함을 풀어주면 될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시간 낭비하면서까지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하은혜가 솔직하게 말했다.“사실 이 자료들은 부정행위를 통해 얻은 자료들이에요. 증거로 제출해봤자 인정도 안해줄 거예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이나 마찬가지죠.”오려원이 피식 웃었다.“그러면 꺼지든가!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하은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저한테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오려원 씨한테 유용할 거예요.”오려원은 하은혜를 째려보았다.“이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딸은 이미 죽었는데 나한테 어떻게 김예훈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있겠냐고! 도대체 무슨 논리야! 이 말을 믿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믿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경찰분들만 믿으면 되니까. 그리고 당신 따님이 했던 짓들을 보면 정말 의심 많고, 똑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더라고요. 죽기 직전까지도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은 분명 증거를 남겨뒀을 거예요. 상대방이 돈을 안 줄까 봐 증거로 남겨둔 거죠. 그래야 당신이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증거는 바로 당신한테 있을 거라고요. 안 그래요?”오려원은 극도로 어두워진 표정으로 하은혜를 째려보았다.“이 년이 그만하지 못해? 그 잘난 얼굴에 흠집을 내줘? 내 딸이 아무리 자작극을 벌였다고 해도 어떻게 나한테 말할 수 있겠냐고! 내가 죽을힘을 다해
하은혜의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에 오려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역시 서울 하씨 가문과 부산 심씨 가문의 후계자는 다르네. 10대 명문가는 상상력마저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난가? 그런데 똑똑히 말해주는데, 당신이 원하는 증거 따위는 없다고! 이 자료들이 쓸모 있다고 해도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재판장님 앞에 세우려면 일본에 보내야 할 텐데? 대한민국 법은 나한테 아무 소용이 없어. 이 사실이 공개되어 사람들이 날 비난한다고 해도 내가 신경 쓸 것 같아? 딸마저 죽은 상황에서 이런 걸 신경 쓸 것 같냐고! 내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려원 씨,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부산 버뮤다 거리에 시위하라고 보낸 아줌마들은 이미 법을 어겼어요. 용연옥에서도 관심 가지고 보고 있다는데 이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면 경찰이 가만둘 것 같아요?”오려원이 음흉하게 웃었다.“그렇구나. 누가 돈이 그렇게 많나 했네. 감히 거리에 돈을 뿌려가면서 내 일을 망쳐? 충청 갑부 심현섭의 손녀라면 말이 달라지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지금부터 법을 잘 지키고 일본에 가서 살면 되지. 왜,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하은혜는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야마자키파에서 부산 버뮤다 H 번지를 그렇게 욕심내고 있던데 이 땅을 선물로 드리는 대가로 김 대표님의 결백을 증명해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을까요? 당신이 잘 협조해 주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영주권을 다시 잃을 수도 있겠죠? 영주권이 없어지만 그 은행 계좌가 어떻게 될까요?”오려원은 아까와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그녀에게는 영주권이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죽기보다 못했다.“제 거래를 받아주면 200억 원을 더 드릴게요. 깨끗한 돈이니 걱정하지 말고요. 이 돈이면 충분히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대신, 부산에서의 모든 재산은 김 대표님의 소유로 들어가는 거예요.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저녁 무렵, 유홍기는 자료 하나를 들고 부산 제1 경찰서에 도착했다.심택연은 그런 그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뭐 하러 왔어?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빌러 왔어? 내가 말해주는데, 난 오늘 임 어르신 전화를 10통이나 끊은 사람이야.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어림도 없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권력을 남용했다간 부산 경찰서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고, 임 어르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야! 그러니까 나가!”심택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출입문을 가리키자 유홍기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심 도련님, 저는 김 도련님을 풀어달라고 사정하러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익명으로 증거를 보내왔길래요. 심 도련님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증거죠. 자료에 의하면 후지와라 미유 씨는 에이즈 말기라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었습니다. 어머님이신 오려원 씨가 남은 평생 편하게 살라고 고의로 김 도련님을 모함했던 것입니다. 김 도련님한테 에이즈를 감염시키려고 우연한 만남을 가정해 김 도련님 욕실마저 빌렸던 것입니다. 이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니 제 죽음으로 김 도련님을 궁지로 몰고 간 거죠. 그래서 모든 알리바이는 전부 거짓입니다. 김 도련님께서는 무죄로 석방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저희 경찰서에서 사과해야할 정도입니다...”유홍기는 주머니에서 녹음기 하나를 꺼내 심택연에게 들려주었고, 또 사진 한 장과 친필서까지 보여주었다.심택연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서서히 말했다.“확실한 거 맞아? 원본이긴 하고? 다른 사람한테 공개한 적 있어?”유홍기가 담담하게 말했다.“이 증거들을 받자마자 임 어르신께 보고드렸습니다. 임 어르신께서는 심 도련님께 드리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 도련님을 그 정도로 믿는다고 하셨습니다.”심택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공과 사를 엄연히 구분하는 것이 맞긴 하지. 내일 아침 바로 석방해 드려. 그리고 언론에 사건의 진실도 알려드리고, 일
부산 제1 경찰서.김예훈은 변장우가 준비해 준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풀려났다.변장우 이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경찰서 앞까지 배웅했다.아무도 김예훈이 잡힌 지 48시간도 안 되어 모든 알리바이가 뒤집힐 줄은 몰랐다.어쩌면 내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을 다시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고, 심지어 이 사건이 더 복잡해질지도 몰랐다.하지만 김예훈이 무죄로 풀려난 것은 사실이었다.변장우 이들은 김예훈에게 너무 지나치게 무례하지 않았던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포르쉐 918 한대가 김예훈 앞에 세워지고, 차창이 내려지자 하은혜의 아리따운 얼굴이 보였다. 변장우 이들은 질투 나고 부럽기 그지없었다.하은혜는 차에서 내려 김예훈을 위해 직접 차 문을 열어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김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김예훈은 변장우 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어떻게 해결하셨어요?”하은혜는 운전대를 돌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후지와라 미유 씨 쪽에서 크게 발견된 점은 없었지만 방향만 잘 잡으면 사건을 파헤치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오려원 씨한테 며칠만 더 줬다면 진작에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저희한테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텐데 배후자가 성급한 나머지 저희에게 틈을 보여준 거죠. 그리고 저희 외삼촌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희 외삼촌은 피도 눈물도 없으신 분이신데, 외삼촌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김 대표님을 궁지로 몰고 갔을 거예요. 아무튼 계획이 치밀해 보여도 빈틈이 있어서 김 대표님을 빼내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김예훈은 창문을 닫더니 말했다.“배후자가 방호철 씨라는 거 저희가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요. 제가 경매장에서 방호철 씨를 자극하는 바람에 완벽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해도 믿을 거예요?”하은혜가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방호철 씨는 서울 4대 도련님인 것만큼 철저하게 계획하여 빈틈이 없을 거예요. 처음부터 목적이 저랑 임 어르신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