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을 다시 살려내! 살려내라고! 세상에 어떻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있을 수 있어! 살인자 김예훈을 엄하게 처벌하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돈이 있으면 다야?”커다란 글씨가 쓰여있는 현수막 외에 스크린에도 후지와라 미유의 동영상들과 김예훈한테 잡혔던 장면까지 방송되고 있었다.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고, 어떤 여행객들은 심지어 촬영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구경거리를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었다.몇몇 아줌마들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내 딸을 살려내! 살려내라고!”애타게 울부짖는 목소리는 불쌍하기 그지없었다.어떤 아줌마들은 훌쩍거리면서 후지와라 미유의 사진을 돌리기 시작했다.그러다 결국 소문이 퍼져 기자들이 몰려오기까지 했다.여론을 이용해 일을 크게 만들어 경찰서에 부담을 줘서 이 사건을 하루빨리 종결시키려는 의도였다.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현재 알리바이를 봤을 땐 김예훈에게 엄청 불리한 상황이었다.단순하고 유치한 방법이었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사람은 약자를 동정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일이 밝혀지면 여론조성 때문에 경찰서에서도 하루빨리 이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할 것이 뻔했다.“제기랄!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아줌마들이야! 분명 회장님을 궁지로 몰아가려는 거잖아!”“그리고 이 타이밍에 우리 부산 용문당 회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라고!”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최산하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그는 흥분한 나머지 몇십 명의 부하를 데리고 현장을 발칵 뒤집고 싶었다.“산하 씨! 흥분하지 마!”조용히 구석에 세워져 있던 마이바흐 차량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우현아가 내렸다.그녀는 사람 몇몇을 데리고 와서 최산하를 진정시켰다.“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대로 뛰어 들어갔다가 김예훈을 더 난처하게 만들려고? 빨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최산하가 냉랭하게 말했다.“현아 씨, 제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던 사람 같아요? 길거리에서 시위하는 건 제 전문
우현아, 최산하, 진윤하 등은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김예훈의 신분을 밝히려는 모양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의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샤라락!분위기가 얼어붙은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 꼭대기에서 수많은 수표가 떨어지고 있었다.누군가 얼굴에 떨어진 수표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돈! 돈이야!”“세상에!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구경만 하던 사람들은 눈꽃처럼 떨어지는 수표를 보더니 벌 떼같이 달려들었다.이런 상황에서 뉴스, 진실, 김예훈의 신분에 관해 관심 가질 사람이 없었다.기자들마저도 흥분한 모습이었다.이들은 큰 기사를 하나 내는데 받는 보너스가 고작 20만 원이었다.운만 좋으면 이 수표들로 한 달 치 월급을 모을 수도 있었다.멍때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아줌마들 중에 누군가 확성기를 뿌리치고 돈을 줍기 시작했다.이 거리에서는 더는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거리에 수표가 수북이 쌓일 때마다 함성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저마다 원래의 목적을 잃고 말았다.우현아 등은 입이 떡 벌어진 채 감탄했다.폭력보다 더 좋은 방법은 바로 돈이었다.돈을 뿌린 덕에 아줌마들도 해결하고 하마터면 대서특필될 기사마저도 잠재운 것이다.브라보!이들은 흥분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수표가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 렉서스 LS 한대가 천천히 부산 교외에 있는 영국풍의 별장 앞에 도착했다.이 별장 앞에는 온통 근조화환이 세워져 있었고 가끔 곡소리도 들려왔다.대신 울어주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다.낯선 차량이 나타나자, 상복을 입은 한 보안요원이 차갑게 물었다.“이곳은 상갓집이니 이대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창문이 내려지고, 부산 버뮤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하은혜는 아리따운 얼굴을 내밀면서 말했다.“오려원 씨한테 전해주세요. 하은혜라는 사람이 거래 때문에 찾는다고. 제가 누군지 알거예요.”...몇 분 뒤, 하은혜는 아무렇
이때, 다시 악독한 표정으로 돌아온 오려원은 일을 그르친 아줌마들을 욕하기 시작했다.이런 일은 실패한 순간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해도 기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오려원은 고개 들어 누구나 질투할 만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는 하은혜를 쳐다보았다.하은혜는 향만 올릴 뿐 무릎을 꿇지도, 허리를 숙이지도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오려원의 앞으로 가 앉았다.“오려원 씨,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게요.”“감사합니다. 하은혜 씨.”오려원은 하은혜를 알고있는 듯 주위 사람들한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은혜 씨가 저랑 거래를 하고 싶다면서요? 어떤 거래인지 여쭤봐도 될까요?”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김예훈 씨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할 만할 증거를 원합니다.”오려원이 멈칫하더니 대뜸 화를 냈다.“하은혜 씨, 심씨 가문의 손녀라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아세요? 김예훈 그놈은 제 딸을 죽였다고요. 어떻게 이곳에 와서 결백을 증명할 만한 증거를 달라고 할 수 있죠? 생각이 짧은 거예요 아니면 저희 오씨 가문을 만만하게 본 거예요?”오려원은 하은혜를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의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막돼먹은 여자였다.“오려원 씨. 굳이 말을 돌려서 하지 않을게요... 저처럼 나약한 여자가 어떻게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어요.”하은혜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오려원에게 건넸다.“당신은 일본 국적을 따내기 위해 남편마저 살해한 사람이잖아요. 당신을 건드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까 봐 겁나네요.”하은혜의 담담한 말투에 오려원은 눈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건네받은 사진을 보고 특히나 그랬다.낡아빠진 사진들을 하나씩 보면 느끼는 바가 없을 테지만 선후 순서대로 보면 오려원이 남편을 살해한 과정을 알수 있었다.오려원은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하은혜 씨, 왜 저한테 이런 사진을 보여주는 건데요? 제 남편은 일본에
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관심 없으시다? 그러면 흥미를 느낄만한 일에 대해 말해볼까요?”하은혜는 계좌이체 기록이 담겨있는 자료들을 꺼냈다.“이 은행 계좌들은 오려원 씨가 해외에서 사용하시는 계좌이죠? 따님이 죽기 전, 이 돈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입금되었더라고요. 저마다 거래 내용이 있긴 한데 조사해 보니 전부 가짜 거래더라고요. 누군가 돈세탁을 하기 위해 당신의 명의를 빌렸을 뿐이죠. 액수는 많지 않던데... 400억 원이었나?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어떻게 고작 400억 원 때문에 따님을 팔아넘길 수 있죠? 제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도박으로 빚진 6천억 원마저도 모두 청산되었더라고요? 따님의 몸값이 꽤 높았나요?”하은혜는 또 자료 몇 개를 꺼내 오려원의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오려원은 하은혜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누군가 저한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안 믿었거든요. 오늘 은혜 씨를 보니 이제야 알겠네요. 심씨 가문은 역시 충청 부잣집이 맞네요! 말씀해 보세요. 원하는 게 무엇인지!”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저희 김 대표님은 무사히 풀려나야 합니다. 이미지에도 손상가면 안 되고요.”오려원의 미소는 어색하기만 했다.“제 딸이 자살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세요? 그리고 이 증거는 김예훈 씨가 모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요?”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네.”오려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하은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고작 김예훈 같은 이방인 때문에 어떻게 죽은 사람을 건드릴 수가 있어요?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렵지도 않으세요?”하은혜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아니요. 저한테는 또 다른 자료도 있거든요. 당신은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영주권을 따내고 싶어 했죠. 영주권을 따내기 위해, 일본 성씨를 가지기 위해 당신의 딸은 여러 남자들의 애인이 되어야 했죠. 결국 몇 년이 안 지나 원하던 것을 따내긴 했지만 그때는 어려서 몰랐던 사실이 있었죠.
“정말 따님을 잘 두셨어요!”하은혜가 비꼬면서 말했다.“따님이 목숨 걸고 따낸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거 양심에 찔리지도 않으세요? 급히 부정할 필요도 없어요. 그 표정, 그 눈빛, 그 행동을 보니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네요. 만약 모르는 사실이었다면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겠죠. 안 그래요?”오려원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냉랭하게 말했다.“하은혜 씨, 만약 김예훈이 제 딸 때문에 억울하게 잡힌 거라고 생각되면 이 자료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억울함을 풀어주면 될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시간 낭비하면서까지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하은혜가 솔직하게 말했다.“사실 이 자료들은 부정행위를 통해 얻은 자료들이에요. 증거로 제출해봤자 인정도 안해줄 거예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이나 마찬가지죠.”오려원이 피식 웃었다.“그러면 꺼지든가!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하은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저한테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오려원 씨한테 유용할 거예요.”오려원은 하은혜를 째려보았다.“이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딸은 이미 죽었는데 나한테 어떻게 김예훈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있겠냐고! 도대체 무슨 논리야! 이 말을 믿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믿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경찰분들만 믿으면 되니까. 그리고 당신 따님이 했던 짓들을 보면 정말 의심 많고, 똑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더라고요. 죽기 직전까지도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은 분명 증거를 남겨뒀을 거예요. 상대방이 돈을 안 줄까 봐 증거로 남겨둔 거죠. 그래야 당신이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증거는 바로 당신한테 있을 거라고요. 안 그래요?”오려원은 극도로 어두워진 표정으로 하은혜를 째려보았다.“이 년이 그만하지 못해? 그 잘난 얼굴에 흠집을 내줘? 내 딸이 아무리 자작극을 벌였다고 해도 어떻게 나한테 말할 수 있겠냐고! 내가 죽을힘을 다해
하은혜의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에 오려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역시 서울 하씨 가문과 부산 심씨 가문의 후계자는 다르네. 10대 명문가는 상상력마저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난가? 그런데 똑똑히 말해주는데, 당신이 원하는 증거 따위는 없다고! 이 자료들이 쓸모 있다고 해도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재판장님 앞에 세우려면 일본에 보내야 할 텐데? 대한민국 법은 나한테 아무 소용이 없어. 이 사실이 공개되어 사람들이 날 비난한다고 해도 내가 신경 쓸 것 같아? 딸마저 죽은 상황에서 이런 걸 신경 쓸 것 같냐고! 내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려원 씨,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부산 버뮤다 거리에 시위하라고 보낸 아줌마들은 이미 법을 어겼어요. 용연옥에서도 관심 가지고 보고 있다는데 이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면 경찰이 가만둘 것 같아요?”오려원이 음흉하게 웃었다.“그렇구나. 누가 돈이 그렇게 많나 했네. 감히 거리에 돈을 뿌려가면서 내 일을 망쳐? 충청 갑부 심현섭의 손녀라면 말이 달라지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지금부터 법을 잘 지키고 일본에 가서 살면 되지. 왜,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하은혜는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야마자키파에서 부산 버뮤다 H 번지를 그렇게 욕심내고 있던데 이 땅을 선물로 드리는 대가로 김 대표님의 결백을 증명해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을까요? 당신이 잘 협조해 주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영주권을 다시 잃을 수도 있겠죠? 영주권이 없어지만 그 은행 계좌가 어떻게 될까요?”오려원은 아까와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그녀에게는 영주권이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죽기보다 못했다.“제 거래를 받아주면 200억 원을 더 드릴게요. 깨끗한 돈이니 걱정하지 말고요. 이 돈이면 충분히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대신, 부산에서의 모든 재산은 김 대표님의 소유로 들어가는 거예요.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저녁 무렵, 유홍기는 자료 하나를 들고 부산 제1 경찰서에 도착했다.심택연은 그런 그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뭐 하러 왔어?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빌러 왔어? 내가 말해주는데, 난 오늘 임 어르신 전화를 10통이나 끊은 사람이야.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어림도 없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권력을 남용했다간 부산 경찰서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고, 임 어르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야! 그러니까 나가!”심택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출입문을 가리키자 유홍기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심 도련님, 저는 김 도련님을 풀어달라고 사정하러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익명으로 증거를 보내왔길래요. 심 도련님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증거죠. 자료에 의하면 후지와라 미유 씨는 에이즈 말기라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었습니다. 어머님이신 오려원 씨가 남은 평생 편하게 살라고 고의로 김 도련님을 모함했던 것입니다. 김 도련님한테 에이즈를 감염시키려고 우연한 만남을 가정해 김 도련님 욕실마저 빌렸던 것입니다. 이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니 제 죽음으로 김 도련님을 궁지로 몰고 간 거죠. 그래서 모든 알리바이는 전부 거짓입니다. 김 도련님께서는 무죄로 석방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저희 경찰서에서 사과해야할 정도입니다...”유홍기는 주머니에서 녹음기 하나를 꺼내 심택연에게 들려주었고, 또 사진 한 장과 친필서까지 보여주었다.심택연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서서히 말했다.“확실한 거 맞아? 원본이긴 하고? 다른 사람한테 공개한 적 있어?”유홍기가 담담하게 말했다.“이 증거들을 받자마자 임 어르신께 보고드렸습니다. 임 어르신께서는 심 도련님께 드리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 도련님을 그 정도로 믿는다고 하셨습니다.”심택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공과 사를 엄연히 구분하는 것이 맞긴 하지. 내일 아침 바로 석방해 드려. 그리고 언론에 사건의 진실도 알려드리고, 일
부산 제1 경찰서.김예훈은 변장우가 준비해 준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풀려났다.변장우 이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경찰서 앞까지 배웅했다.아무도 김예훈이 잡힌 지 48시간도 안 되어 모든 알리바이가 뒤집힐 줄은 몰랐다.어쩌면 내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을 다시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고, 심지어 이 사건이 더 복잡해질지도 몰랐다.하지만 김예훈이 무죄로 풀려난 것은 사실이었다.변장우 이들은 김예훈에게 너무 지나치게 무례하지 않았던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포르쉐 918 한대가 김예훈 앞에 세워지고, 차창이 내려지자 하은혜의 아리따운 얼굴이 보였다. 변장우 이들은 질투 나고 부럽기 그지없었다.하은혜는 차에서 내려 김예훈을 위해 직접 차 문을 열어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김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김예훈은 변장우 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어떻게 해결하셨어요?”하은혜는 운전대를 돌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후지와라 미유 씨 쪽에서 크게 발견된 점은 없었지만 방향만 잘 잡으면 사건을 파헤치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오려원 씨한테 며칠만 더 줬다면 진작에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저희한테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텐데 배후자가 성급한 나머지 저희에게 틈을 보여준 거죠. 그리고 저희 외삼촌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희 외삼촌은 피도 눈물도 없으신 분이신데, 외삼촌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김 대표님을 궁지로 몰고 갔을 거예요. 아무튼 계획이 치밀해 보여도 빈틈이 있어서 김 대표님을 빼내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김예훈은 창문을 닫더니 말했다.“배후자가 방호철 씨라는 거 저희가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요. 제가 경매장에서 방호철 씨를 자극하는 바람에 완벽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해도 믿을 거예요?”하은혜가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방호철 씨는 서울 4대 도련님인 것만큼 철저하게 계획하여 빈틈이 없을 거예요. 처음부터 목적이 저랑 임 어르신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