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심각해진 부산 제1 경찰서 내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심문실, 김예훈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있었다.하루가 지나도 경찰들은 김예훈을 이곳에 가두어두고 주기적으로 물과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 외에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은 그래도 대충 경찰들의 관심이 온통 인증과 물증에 있다는 것과 후지와라 미유를 영구 제명시키려고 한 증거까지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일부러 그러는지는 몰라도 용의자이자 당사자인 김예훈을 심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의도했던 심리 전술인지,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아무튼 심문실에 잡혀 온 24시간 동안 아무도 김예훈을 신경 쓰지 않았다.겪어보지 못한 것이 없는 김예훈은 이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그저 편안히 한잠 자고 일어나 전체 사건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그러다 결국 후지와라 미유의 죽음은 며칠 전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조효임 일가를 통해 후지와라 미유와 마주치게 한 후 이른바 협박한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상황을 봐서 필요하다면 후지와라 미유는 희생자로 변해야 했다.후지와라 미유의 희생으로 모든 증거를 김예훈에게 돌려 용의자이자 살인자로 만드는 것이다.아마도 이 사건을 클라이맥스로 몰고 갈 더욱 정확한 증거가 남아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방호철이 김예훈 때문에 자극을 받아 완벽했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최종목적에 달하기엔 애매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김예훈은 눈을 감고 전체 사건을 되돌아보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방심한 틈을 타 함정을 파놓은 것도 모자라 김예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예상해서 계획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심지어 분명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라고 볼 수 있었다.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후지와라 미유가 증거를 남기려고 죽기 전날 김예훈의 방에 가서 일부러 샤워하면서 머리카락을 남겨놓은 것이다.
방호철이라는 사람이 절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최소한 김예훈과 맞설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끼익!김예훈이 전체 사건을 되짚어 보고 있을 때, 심문실 문이 열리면서 멀끔하게 경찰 제복을 입은 3명의 경찰이 걸어들어왔다.김예훈을 직접 체포했던 경찰이 의미심장한 태도로 물었다.“김예훈 씨, 진술할 준비 되셨나요?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요? 정말 인간쓰레기나 다름없네요. 아, 맞다. 자기소개를 해보자면 저는 대한민국 격투기왕 변우진의 사촌 형이자 부산 제1 경찰서의 소대장 변장우라고 합니다. 제 사촌 동생이 섭섭지 않게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는데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제 사촌 동생도 당신을 정말 싫어하는데 하은혜 씨 때문에 저한테 어쩔 수 없이 전화해서 부탁한 거예요. 김예훈 씨, 어떻게 연적의 도움을 받을 지경까지 온 거예요? 정말 실패한 인생이나 다름없네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면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주세요!”변장우는 김예훈을 가소롭게 내리깔아 보았다.“했던 짓들 모조리 말하라고요! 사실대로 말하면 제 사촌 동생을 봐서라도 재판장님 앞에서 감형을 선처해 볼게요.”변장우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두 명의 경찰도 김예훈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떻게 살았으면 연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창피하게!’김예훈은 다리를 꼬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변장우를 힐끔 쳐다보았다.“변우진 씨의 사촌 형 되신다고요? 변 도련님께서 저를 이렇게 끔찍이 생각할 줄 몰랐네요. 그런데 도와주라고 부탁한 거 확실해요? 제가 평생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게 짓밟아달라고 한 거 아니고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변장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김예훈의 말대로 돌보기는커녕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짓밟아달라고 했으니 말이다.“이봐요!”이때 다른 한 경찰이 잠깐 멈칫하더니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말했다.“김예훈 씨, 정말 이곳이 무슨 안방인 줄 아세요? 소대
“왜요? 안 쏘세요?”김예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다리를 흔들거렸다.경찰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결국 의자에 퍽 주저앉고 말았다.다른 한 경찰은 담배 한 대를 꺼내 한 모금 빨고는 김예훈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김예훈이라고? 이 사건은 이미 조사가 끝났어. 조씨 가문 파티에서 피해자한테 영구 제명시키겠다면서 협박했다면서? 최소 20명 이상의 증인이 있는데 무슨 수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그래!”김예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당신들 소대장님이 나를 보살펴 주겠다잖아. 그런데 보살펴 주기나 했어?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이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사건이 처리하기 쉽겠네?”“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네?”경찰이 냉랭하게 말하자 김예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난 살인도 하지 않았고,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고, 누구한테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인정해야 하는 건데?”“누구한테 죄짓지 않았다고? 나중에 조상님들 앞에서 말하기 부끄럽지 않겠어?”경찰이 음흉한 표정으로 김예훈의 앞에 조사록을 던졌다.“증인들이 하는 말이 다 똑같아. 너랑 사이좋은 조씨 가문이든 변우진 씨든 너를 모함할 이유가 뭐 있겠어! 아직도 인정 못 해? 그리고 이건 몰랐지? 네가 욕실에서 피해자를 강제추행하는 바람에 하수구에서 피해자랑 너의 모발을 발견했다는 거? 그리고 침대 옆에서 피해자의 속옷도 발견했고. 김예훈, 이게 다 증거가 아니고 뭐야! 아직도 변명할 거 있어?”풉!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변명이라... 자, 그래서 얻은 결론이 뭔데? 피해자를 협박한 죄? 내가 서양인 행세나하는 일본인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너...”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경찰은 김예훈에게 삿대질한 손으로 그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이때 변장우가 냉랭하게 말했다.“그만해. 김예훈 씨의 행실이 극악무도하긴 해도 제 사촌 동생을 봐서 마지막으로 실토할 기회를 드릴게요. 아니면 제가 모든 사실을 까발려야 인정할 거예요? 그러면 자수가 아니라 감형도 안 될 텐데.
“피해자가 그걸 안 믿자 당신은 자기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별장에까지 초대했고, 가치가 2천억 원이나 되는 별장을 보여주면서 피해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줬지. 그리고 조씨 가문의 별장에 돌아갔을 때 일부러 피해자를 방으로 유인해서 강제로 추행했고. 피해자는 그 치욕을 못 이겨서 결국엔 자살을 선택한 거지. 이것이 바로 전체 사건의 경과야. 김예훈! 인증, 물증이 모두 명확한데 그래도 인정 안 할 거야?”변장우는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은 놀라운 표정으로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대단해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막장 드라마가 제일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변 소대장님의 추리를 들어보니 막장 드라마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의문스러운 점을 여쭤봐도 될까요?”변우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첫째, 제가 포레스트 별장도 가지고 있고, 유명 플랫폼과 혜성 엔터테인먼트까지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이지 않고도 마음대로 여자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미쳤다고 예쁜 여배우들을 놔두고 서양인인 척하는 일본 인플루언서한테 들이댔겠어요? 둘째, 방금 피해자가 제 방에 들어왔다고 하셨는데 하은혜 씨 진술은 들어보셨어요? 피해자 욕실에 있는 샤워기가 고장 나서 잠깐 제방에 있는 욕실을 빌렸을 뿐이라고요! 저도 사용했던 욕실인데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된 건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저를 살해자로 몰아가는 거,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변장우가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안타깝지만 하은혜 씨는 당신의 비즈니스 파트너라 그분이 하신 진술은 믿을바가 못돼. 나는 물론 재판장님께서도 당신의 밀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현재 모든 증거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 당신이 피해자를 모욕하고 살해했거나, 피해자가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살했거나. 만약 전자라면 사형을 받을 것이고 후자라면 최소한 10년 형을 받을 거야. 아
“저한테 이럴 권력마저 없다고 말씀하실 건 아니죠? 그랬다간 곧 저의 변호사님한테서 고소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국민의 합법적 권력을 침범했으니까요!”김예훈은 앞에 놓인 물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변장우는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역시 고지능 범죄자야. 법에 대해 알고있는 것도 많고! 뻔히 법을 알면서 왜 법을 어기려고 하는 거지? 내가 말하는데,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사촌 동생의 부탁대로 내가 보호해 줄 줄 알았어? 천만에. 나는 더 엄하게 다룰 거야. 그래야 법에 대한 존중이지!”변장우는 정의로운 척 김예훈이 자신한테 의지하지 못하게 딱 잘라 말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웃었다.“소대장님, 제가 소대장님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소대장님은 저를 보호하지도 못해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통화 한번 할게요.”“허허허, 내가 보호하지 못해? 너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되고?”변우진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해봐! 어디 어떤 대단한 사람이 보호해 줄지 지켜봐야겠어!”변장우는 자신의 핸드폰을 김예훈의 앞에 툭 던져주었다.‘촌놈 주제에 아무리 돈 많다고 해도 얼마나 많겠어. 이 큰 부산을 뒤집어 놓을 정도라도 돼? 정말 웃겨!’김예훈도 아무 말 없이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저예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어르신, 안녕하세요.”임강호가 멈칫하더니 다시 정신을 차리면서 말했다.“김예훈 군, 왜 낯선 번호로 전화하는 건가?”“일이 좀 있어서요.”김예훈이 웃었다.반나절이 지나도 그럴듯한 대화가 들리지 않자 변장우가 테이블을 툭툭 쳤다.“얼른 말해. 사람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수다나 떠는 곳이라고 아니라고! 1분만 더 줄게. 1분 뒤에 바로 끊어버릴 거야.”이 대화를 엿듣고 있던 임강호가 심각한 말투로 물었다.“김
“내가 알기론 부산 기관에서 임씨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임강호 어르신뿐인데 설마 방금 연락한 사람이 임강호 어르신은 아니지?”변장우는 틈을 노리려고 차가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만약 전화 받은 사람이 임강호 어르신이라면 이 전화를 씹어먹을 거야!”옆에 있던 두 명의 경찰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살인 용의자 주제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전화 한 통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웃겨!’김예훈은 굳이 부정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임강호 어르신께 연락드린 거 맞아요. 어르신께서 이 일을 해결해 줄 만한 사람을 보내준다네요?”“뭐라고? 너 같은 놈이 감히 내 앞에서 허세를 부려?”변장우는 한껏 무시하는 말투였다.“임강호 어르신이 아무리 부산 일인자라고 해도 경찰서 일에 관여하지는 못해. 경찰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고 싶다면 유홍기 서장님을 찾아야지! 염치도 없어! 어떻게 자기 입으로 임강호 어르신께 전화드렸다고 말할 수 있어? 정말 웃겨!”사람들은 저마다 김예훈을 비웃었다.‘감히 우리 앞에서 수작을 부려? 상대를 가려가면서 해야지! 어떻게 모두가 다 아는 임강호 어르신을 입에 오르내릴 수 있어? 부산 일인자가 이렇게 사소한 일까지 챙길 정도로 한가해 보여?’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믿든 말든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굳이 핸드폰을 씹어 드시겠다는데 나중에 정말 지켜볼 거예요.”변장우가 콧방귀를 꼈다.“그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남는 게 시간이거든! 일단 밥 먹고 나서 다시 얘기해. 그동안 자수할지 말지 잘 생각해 봐. 얻어 맞는 것보다 순순히 죄를 인정하는 것이 낫겠지? 아, 그리고 임강호 어르신께서 보내신 사람이 누군지 기대해 볼 거야! 분명 네가 그 입으로 임강호 어르신께 연락드렸다고 했어!”변장우 등은 웃으면서 심문실에서 나갔다.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들을 무시한 채 계속 눈감고 휴식을 취했다.변장우 등은 심문실에서 나가자마
심문실.김예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경찰 서장 유홍기는 그의 앞에서 공손하게 예의를 갖췄다.“김 도련님, 저는 임강호 어르신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어르신께서는 오늘 마침 서울에 회의가 잡혀있는 바람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섭섭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도련님을 도와드리라고 말씀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유홍기는 임강호의 최측근으로 오래전부터 김예훈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임강호 부부가 김예훈에게 큰 빚을 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아무리 관직이 높은 경찰서 서장이라고 해도 굽신거릴 뿐이다.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변장우 등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지경이었다. 김예훈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과 친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의 앞에서 센척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유홍기에게 심문실 안에 있는 녹음기를 꺼달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유 서장님, 굳이 말을 돌려서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이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저의 현재 처지가 어떤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유홍기는 살짝 고개를 쳐들더니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께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증을 보든 물증을 보든 모두 김 도련님께 불리한 상황입니다. 특히 20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피해자를 협박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일은 아니잖아요. 비록 재판장님께서 법대로 하실 테지만 이 부분이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서장님께서 높은 곳에 오르기까지 분명 많은 것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할 때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아시잖아요. 제가 어떤 장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조사해 보셨나요?”유홍기가 멈칫하고 말았다.“아니요.”“그러면 그 많은 증인 중에 사건 발생 전과 후를 언급한 사람은 없을까요?”김예훈의 계속되는 물음에 유홍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김예훈은 태양혈을 문지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두 가지 증거 모두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었지만 두 가지가 합쳐지면 완벽한 알리바이가 형성되는 것이다.방호철이 파놓은 함정은 꽤 재미있었다.유홍기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아, 김 도련님. 어제 경찰서에 이상한 일이 발생하긴 했어요.”김예훈은 계속해서 말해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유홍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어제 서울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방호철 도련님께서 나타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김 도련님을 구해내겠다고 했죠. 심지어 김 도련님을 위해 진술마저 바꿔드릴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조건이 바로 하은혜 씨와 저녁 식사 한 끼 하는 것이고요.”이 말에 김예훈은 멈칫하더니 피식 웃고 말았다.“방 도련님은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네요. 살인의 여파로 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네요.”유홍기가 슬쩍 물었다.“김 도련님, 무슨 말씀이죠?”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은혜 씨가 그 거래를 받아들이면 아마도 제가 경찰서를 나서는 순간 기자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면 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저의 편을 들어준 임강호 어르신께서도 따라서 그 대가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거죠!”유홍기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김예훈의 말이 맞았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순간 전체 부산 기관의 명예와 공신력이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아무리 강서 임씨 가문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 일을 잠재우려면 임강호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유홍기는 똑똑한 사람이라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김 도련님, 솔직히 방금 들어오면서 도련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련님께서 서양인 행세를 하는 일본인한테 관심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피해자의 죽음은 도련님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함정에 깊숙이 빠진 상태라 저는 물론 임강호 어르신께서도 아무리 도련님을 믿는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 지금은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